<혈통이 깡패임 23화>
23화 혈통이 발견함 (2)
며칠 뒤, 권한울은 흑천 일가로 귀환했다.
모처럼 자택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주하연이 수첩 크기의 얇은 석판을 내밀었다. 스킬을 익힐 수 있는 메모리 페이지였다.
“회장님께서 약속하셨던 아공간 스킬입니다. 회장님께서 많이 바쁘시기에 제가 직접 받아왔습니다.”
권한울은 메모리 페이지를 받았다.
과연 아공간 스킬답게 메모리 페이지는 유니크 품질을 뜻하는 황금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메모리 페이지를 반으로 분지르니 빛나는 가루가 되어 몸에 흡수가 되었다.
<스킬 ‘도깨비의 비밀장소’를 습득하셨습니다.> 도깨비의 비밀창고.
-품질 : 유니크(S+)
-설명 : 도깨비들이 물건을 숨기고 다녔다는 보이지 않는 창고를 연다. 최대 50kg까지 물품을 보관할 수 있다.
스킬을 사용하자 허공에 검은 구멍이 생겼다.
시험 삼아 구멍 안에 손을 집어넣자 묘한 이물감이 느껴졌다.
“이거 신기하네요.”
“그리고 이것도 받아 주십시오.”
주하연이 커다란 상자를 내밀었다. 상자 안에는 여러 가지 물건들이 담겨 있었다.
“이건 또 뭔가요?”
“던전 공략 시 필요한 물건들과 응급 상황 시 사용하실 약품입니다.”
권한울은 약병을 집어서 겉면에 붙은 라벨을 확인했다.
“주식회사 만수무강…… 설마 연고 하나에 수백만 원씩 받기로 유명한 그 제약회사인가요?”
“예 맞습니다.”
던전에는 지구에 없는 온갖 종류의 생물이 서식한다. 때문에 현대에는 그런 생물을 이용해서 약품을 만드는 제약 산업이 크게 발달했다.
주식회사 만수무강도 그런 제약회사 중 한 곳이다. 특이한 점이라면 오직 고급 재료만 이용해서 약품을 만든다는 것.
“만수무강에서 제대로 된 약품을 구입하려면 수천만 원은 필요하다고 들었는데…….”
권한울은 상자에 담긴 약품의 양을 확인했다. 아무리 낮게 잡아도 수억은 가볍게 넘을 것 같았다.
“이것도 회장님께서 주신 건가요?”
“아뇨, 제가 준비한 선물입니다.”
권한울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러면 너무 죄송한데요.”
“원래 아공간 스킬을 얻으면 주변 사람들이 내용물을 채워 주는 게 관례입니다.”
주하연은 부담 갖지 말라는 듯이 말했으나 양심상 그럴 수는 없었다.
권한울은 나중에 꼭 보답하겠다고 생각하며 감사히 받기로 했다.
효능이 뛰어난 의약품은 제 2의 목숨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후에는 흑천 비고에 방문 예약이 잡혀 있습니다.”
“잠깐 물건만 고르고 나오는 건데. 예약도 해야 하나요?”
“흑천 비고는 수백 배가 넘는 보안 시스템으로 보호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해진 시간에만 열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죠.”
흑천 비고에는 흑천 그룹의 모든 보물이 담겨 있다.
그만큼 이곳을 노리는 사람도 많을 터. 보안이 철저할 수밖에 없었다.
“권한울 님, 흑천 비고에서 어떤 물건을 얻으실지 생각은 해두셨습니까?”
“아직 못 정했어요.”
“흑천 비고는 상상도 못할 만큼 넓습니다. 모두 돌아보려면 한 달은 넉넉히 잡아야 하죠. 미리 생각해 두고 들어가셔야 합니다.”
흑천 비고의 위상을 생각하면 무엇을 가져와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기회를 대충 쓸 수야 없는 법이다.
“저한테 뭐가 필요할지 잘 몰라서요.”
현재로선 크게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없었다.
무려 세 개나 되는 혈통과 현룡승천공. 그리고 교룡지체와 용주까지.
현재 권한울은 공격, 방어, 체력 등등. 모든 면에서 완벽했다.
“지금으로서는 영약이 가장 도움이 될 거 같네요.”
“괜찮으시다면 제가 추천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얼마든지요.”
“저는 보법을 비롯한 이동스킬을 습득하시는 걸 추천 드립니다.”
이동 스킬?
고려해 본 적도 없는 물건이었다.
“오러 이동술이 있는데. 굳이 이동스킬을 익혀야 하낭?”
권한울은 용마기를 습득하자마자 오러 이동술을 자유자재로 사용했다.
그 수준은 어느 누구도 따라오기 힘들 정도로 뛰어났다.
“권한울 님의 오러 이동술은 훌륭합니다. 몬스터를 상대할 때는 차고 넘치는 수준이지요. 하지만 권한울 님께서 앞으로 대적해야 할 적들은 몬스터만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주하연의 말이 맞았다. 권한울의 주적은 몬스터가 아니라 인간, 더 정확히 말하면 흑천의 혈족들이다.
“대인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보법의 유무입니다. 전투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고, 공격의 기회를 잡는 것. 모두 보법이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하수는 근육을 키우고, 고수는 발을 단련시킨다는 말이 있다.
“사실 보법은 지금도 습득하실 수 있습니다. 흑천 그룹에는 혈족들을 위해서 수많은 스킬들이 배치되어 있으니까요. 전부 뛰어난 스킬들입니다만…….”
“앞서나가기에는 부족하다 이거군요.”
주하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메이 가문과 싸우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보법이 중요합니다. 그들의 기술은 기묘한 구석이 있어서 보법의 수준이 낮다면 제대로 싸워보기도 전에 패배하게 됩니다.”
“알겠습니다. 흑천 비고에서 보법을 가져올게요.”
“제 조언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권한울 님, 하나만 더 여쭈어 보겠습니다.”
또 뭐가 있지? 권한울은 주하연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안전성이 높고 뛰어난 보법과 위험천만하지만 그걸 뛰어넘을 만한 가치가 있는 보법. 둘 중에 무엇을 원하십니까?”
“당연히 두 번째죠.”
권한울은 즉각 대답했다.
“안전하게 강해질 수 있을 만큼 제 상황이 만만하지 않잖아요?”
권한울의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주하연은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제부터 어떤 물건을 가져와야 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 * *
흑천 비고는 흑천 일가의 지하 깊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권한울은 중무장을 한 헌터들이 지키고 있는 관문을 다섯 개나 통과하고 나서야 흑천 비고로 통하는 엘리베이터에 탑승할 수 있었다.
고속으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낙하하기를 수 분.
드디어 흑천 비고의 입구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비고의 보안을 담당하고 있는 권수진이라고 합니다!”
흑천 비고의 담당자는 권한울과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여자였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진혈이시라면서요! 제 인생에서 진혈을 보게 될 줄은 몰랐어요!”
“반갑습니다.”
“굳이 인사를 하지 않으셔도 돼요! 저는 분가 쪽 혈족이라 권한울 님께 인사를 받을 위치가 아니거든요…… 그래도 감사해요!”
그리고 무척 활기찬 여자였다.
“플래티넘 던전으로 데뷔전을 치르셨다면서요? 그런 사람은 흑천의 역사 중에서도 손꼽는데! 정말 대단하세요!”
“운이 좋아서 깰 수 있었습니다.”
“운이라뇨! 플래티넘 던전을 혼자 공략하는 건 절대! 결코! 운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죠! 저 같은 잡(雜) 흑룡혈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인 걸요! 정말 대단하세요!”
권수진은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냈다. 마치 아이돌을 영접한 팬 같은 반응이었다.
상당히, 아니 굉장히 부담스러운 반응이었다.
“그럼 이쪽으로 오세요. 흑천 비고로 안내해 드릴 게요!”
권한울은 권수진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엘리베이터가 멈춘 공동을 지나자 요새를 연상시킬 정도로 거대한 문이 나타났다.
“지금부터 비고의 보안을 해제하기 위한 절차에 들어갈게요. 금고가 열리고 난 뒤, 권한울 님께서는 1시간 동안 비고를 돌아보실 수 있어요.”
권수진은 문으로 다가가서 여러 가지 절차를 거치기 시작했다.
지문, 홍채, 혈액, 손등의 혈관, 마력 속성, 마력 패턴 등등.
수십 가지가 넘는 인증 절차가 끝나자 문 너머에서 온갖 종류의 소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엔진이 돌아가는 굉음, 거대한 톱니바퀴가 굴러가는 마찰음, 육중한 철이 서로 부딪히는 타격음.
이윽고 철문이 서서히 좌우로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또 다른 엘리베이터였다.
“들어가죠!”
권수진과 함께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슬쩍 보자 지하 30층에 달하는 층수가 보였다.
실로 엄청난 규모였다. 이걸 둘러보는데 겨우 1시간밖에 주지 않다니.
보안을 위해서라지만 너무한 처사였다.
“그럼 몇 층으로 모실까요? 참고로 1층부터 5층은 영약을 모아놓은 곳이고…….”
권수진은 비고에 대한 대략적인 설명을 했다. 권한울은 말을 자르며 말했다.
“30층으로 부탁드립니다.”
그 말에 권수진은 감탄했다는 듯이 말했다.
“이미 뭘 가져가실지 다 알아보고 오셨군요! 역시 대단하세요! 그럼 30층으로 모실 게요!”
권수진이 층수를 누르자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한참을 내려간 끝에야 엘리베이터가 멈췄다.
“자, 그럼 둘러보세요! 제한 시간이 1시간이라는 거 잊지 마시구요!”
흑천 비고의 구체적인 모습은 창고형 마트와 비슷했다.
철근으로 제작된 높고 넓은 진열대가 줄지어 서 있었으며 그 위에 여러 가지 물건이 놓여 있었다.
권한울은 30층의 내부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이미 주하연에게 모든 정보를 얻은 뒤였다.
어디로 가야하며, 어떤 물건을 선택해야 하는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새파랗게 빛나는 가죽 부츠를 찾으라고 했는데.’
부츠를 찾는 동안 여러 가지 엄청난 아이템들을 볼 수 있었다.
어느 것 하나 대단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헌터라면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아이템들이 즐비했다.
하지만 권한울은 다른 아이템에는 관심조차 주지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권한울은 찾던 물건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진열대의 구석진 곳에 새파란 부츠가 먼지를 맞고 있었다.
권한울은 부츠를 들고 엘리베이터로 돌아왔다.
“빨리 돌아오셨네요! 어……?”
파란 부츠를 발견한 권수진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로 그 부츠를 고르시려구요?”
“안 되나요?”
“안 될 건 없는데…….”
권수진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반응이 나오는 게 당연했다. 권한울이 가져온 부츠는 완전히 엉망이었으니까.
무두질을 어떻게 한 것인지 가죽은 누더기라고 봐도 무방했고 바느질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으며 모양도 형태도 짝짝이였다.
흑천 비고에 있다는 게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물건이었다.
“다른 걸 고르는 게 어떠세요?”
“괜찮습니다. 이걸로 선택하겠습니다.”
“하지만…… 알겠어요.”
권수진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권한울은 부츠를 안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문득, 걸음을 멈췄다.
“잠시만요.”
“앗, 다른 물건을 고르시려고요?”
권수진이 반색을 하며 말했다. 하지만 권한울은 그것 때문에 멈춘 게 아니었다.
묘하게 익숙한 기운이 느껴진 것이다.
권한울은 기운이 느껴지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30층의 가장 구석진 곳에서 멈춰 섰다.
‘뭐지? 아무 것도 없는데…….’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권한울은 허리를 숙여 땅바닥에 손을 댔다.
그러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진(眞) 흑룡혈을 감지합니다.>
<소유자 ‘권현문’의 비밀 금고를 발견하셨습니다.> <인증 절차에 들어가겠습니까?>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용현무고와 여의석 때처럼 흑천 비고에도 진(眞) 흑룡혈을 위한 권현문의 안배가 존재했다.
대체 이 안에는 뭐가 있을까. 두근거리는 기대감을 안고 금고로 손을 뻗었다.
<동화율이 낮아서 금고를 열 수 없습니다.> 하지만 흑천 비고의 안배는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다시 시도해 봤지만 그대로였다.
‘나중에 다시 와야겠군.’
결국 권한울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엘리베이터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 * *
흑천 비고를 나온 권한울은 곧바로 저택으로 향했다. 저택에서 기다리고 있던 주하연에게 부츠를 내밀었다.
“말씀하신 물건이 이 부츠 맞죠?”
“예, 정확히 잘 가져오셨습니다.”
“근데 정말 이 부츠가 맞는 건가요?”
권한울은 의심스럽다는 듯이 말했다. 단순히 부츠의 외형이 못나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돌개 부츠
-품질 : 유니크(E-)
-능력
1. 절대로 파괴되지 않는다.
상태창에 표시되는 정보도 볼품이 없었다.
“권한울 님, 이 세상에는 보이는 게 전부 다가 아닙니다. 상태창도 예외가 아니지요.”
주하연이 코르크 마개가 꽂혀 있는 작은 유리병을 꺼냈다. 유리병 안에는 찐득한 액체가 담겨 있었다.
“그게 뭐죠?”
“악마의 마력입니다.”
권한울의 눈동자가 커졌다.
던전이 나타난 이후, 지구에는 수많은 몬스터가 나타났다.
그중에서 악마종이라 불리는 몬스터는 높은 지능을 바탕으로 군단을 이루어 지구를 침공했을 정도로 위험했다.
지금도 악마종이 나타나면 반드시 말살해야 한다는 지침이 있을 정도였다.
“악마의 마력은 개인이 소유하서는 안 되는 위험물 아닌가요?”
“어쩌다 보니 가지게 됐습니다.”
어쩌다 보니?
악마의 마력이라는 게 어쩌다 가질 수 있는 물건이던가?
이 사람은 알면 알수록 더 모르겠다.
“이 악마의 마력을 부츠에 뿌리면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죠.”
주하연은 망설임 없이 악마의 마력을 부츠에 쏟았다. 그러자 부츠에 표시되는 설명이 달라졌다.
버나크 후작의 일곱 번째 다리.
-품질 : 레전더리(S+)
-능력
1. 절대로 파괴되지 않는다.
2. 악마의 시험을 통과하면 버나크 공작의 권능을 물려받을 수 있다.
“악마종 몬스터를 죽이면 권능을 계승할 수 있는 아이템을 얻을 수 있습니다.”
권한울은 놀랍다는 얼굴로 부츠를 바라봤다.
“시험을 통과해야 하고, 그 시험이라는 게 자칫 잘못하면 죽을 수 있다는 큰 문제점이 있지만 악마의 권능은 그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권한울은 한 가지 의문을 떠올렸다.
주하연은 대체 이 모든 것을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부츠의 정확한 위치부터 이것이 계승 아이템이라는 것. 심지어 부츠의 각성에 필요한 악마의 마력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주하연이 보통 인물이 아니라는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오늘 보여 준 모습은 여러모로 충격적이었다.
“저한테 위험하다고 미리 경고하신 이유가 있었네요.”
“그만 두셔도 괜찮습니다.”
“아뇨, 이 정도도 극복하지 못하면 아무 것도 못합니다.”
악마종은 작위가 높을수록 강하다.
후작이라면 악마종에서 세 번째로 높은 작위다. 그런 존재의 권능이라면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권한울은 결심을 굳히고 부츠를 신었다.
<악마의 시험이 시작됩니다.>
음습한 기운이 다리를 타고 올라왔다. 저항할 없이 순식간에 몸을 점령했다.
눈앞이 어두워졌다가 다시 밝아졌다.
여긴 저택이 아니었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창공 위에 떠 있었다.
<내 권능을 물려받을 자가 바로 그대인가!> 천둥 같은 호통소리가 들려왔다. 폭풍우를 찢으며 한 악마가 모습을 드러냈다.
인간과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신장이 5미터는 가볍게 넘을 만큼 컸다.
권한울은 악마의 정체를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었다.
버나크 후작.
권능의 주인이었다.
<이대로 권능이 소멸하는 게 아닐까 싶었는데. 잘됐구나! 잘됐어!> 버나크 후작은 호쾌하게 웃으며 허공을 내달렸다.
그가 허공을 박찰 때마다 폭풍이 거세지고, 천둥번개가 쳤다.
권한울은 깨달았다. 이게 악마가 살아생전 가지고 있던 권능이라는 것을.
<잠깐! 네 놈은 악마가 아니잖아! 인간? 감히 인간 따위가 내 권능을 물려받으려 하려는 것이냐!> 버나크 후작의 눈썹이 치켜 올라갔다. 권한울의 주변을 맴돌다가 분노를 터트렸다.
<이 건방진 놈에게 그만한 대가를 치르게 해야지! 몇 배로 힘들고 끔찍한 시험을 내려 주마!> 악마의 마력이 하늘을 잠식했다.
엄청난 기운.
숨통이 조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네놈에게 내릴 시험은…… 그래, 시작은 가볍게 이 높이에서 살아남는 걸로 해 볼까?> 살아남아? 그게 무슨 소리지?
권한울이 당황한 그 순간, 갑자기 부유감이 사라졌다.
“엇?”
몸이 아래를 향해 낙하하기 시작했다. 공기가 온몸을 때렸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땅이 보였다.
대체 얼마나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건지 땅덩어리가 미니어처처럼 보였다.
이 높이에서 살아남으라고?
모골이 송연해지는 두려움이 온몸을 잠식했다.
<네놈이 이 높이에서 살아남는다면 너에게 내 권능을 물려주도록 하마.> 미친 시험이 아닐 수 없었다. 낙하산도 없이 이 높이에서 어떻게 살아남으란 말인가.
팔다리를 허우적거렸으나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헛짓거리에 불과했다.
권한울의 몸은 계속 아래로 낙하했다. 도저히 살아남을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였다.
<진(眞) 흑룡혈이 악마의 힘을 감지합니다.> <감히 자신의 영역을 침범하려는 악마에게 분노합니다!> 별안간 권한울의 몸이 허공에서 멈춰 섰다.
그와 동시에 먹구름이 찢겨나가고 폭풍우와 천둥번개가 사라졌다.
<허, 허어어억!>
별안간 악마가 비명을 질렀다. 믿기 힘들다는 듯이 소리쳤다.
<마, 말도 안 돼! 이, 인간이 어찌 용을…… 아, 안 된다! 안 돼! 인간 따위에게 굴복할 수 없어!> 어디선가 포효 소리가 들려왔다. 그 순간, 악마의 몸이 찢겨나갔다.
<진(眞) 흑룡혈이 악마의 힘을 흡수합니다.> <동화율 16% -> 18%>
<악마 버나크 후작의 권능과 스킬을 물려받습니다!> “……허.”
일이 이렇게 쉽게 풀려도 되나 싶었다.
다시 어둠이 눈앞을 뒤덮었다. 다시 눈을 뜨자 저택의 풍경이 들어왔다.
고개를 숙여 자신의 발목을 쳐다봤다. 소용돌이 같은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
“권한울 님! 무사히 시험을 통과하셨군요!”
주하연이 다행이라는 듯이 소리쳤다.
“시험은 어떠셨습니까? 어떤 방법으로 통과하신 겁니까.”
주하연이 이것저것 캐물었으나 대답해 줄 말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흑룡혈이 덕분에 쉽게 통과했으니까.
“일단 권능부터 시험해 보죠.”
권한울은 슬쩍 화제를 돌렸다.
눈을 감고 악마의 권능을 일으켰다. 방 안의 공기가 움직이며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버나크 후작의 권능을 사용합니다.>
<돌풍이 당신을 돕습니다!>
“악마 버나크는 기기괴괴한 움직임으로 이름이 높았죠. 그 권능을 개발시키면 권한울 님만의 보법을 만드실 수 있을 겁니다.”
그때, 주하연의 전화기가 울렸다. 전화를 받고 난 뒤, 권한울에게 말했다.
“권한울 님, 회장님께서 부르십니다.”
“무슨 일인데요?”
“메이 가문과의 단체전 때문에 회의를 시작한다고 합니다.”
드디어 올 것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