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13화>
13화 혈통이 궁금함 (4)
권지석은 허망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현재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다고 해서 권한울은 권지석을 봐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권지석의 자손심을 철저하게 짓밟아서 굴육을 안겨 줄 생각이었다.
“아, 그리고 우리 사이에 정산해야 할 빚이 아직 남아 있죠?”
“빚……?”
“그간의 잘못을 나한테 사죄해야 하지 않습니까.”
권지석의 눈동자에 점차 생기가 돌아왔다. 아니, 그건 생기가 아니라 분노였다.
“너, 너너! 너! 나한테 이, 이딴 짓을 저지르고도 무, 무사할 줄 알아?”
“그거야 내가 알아서 걱정할 테니 신경 쓰지 말고.”
권한울이 싸늘하게 대꾸했다.
“빨리 빌기나 하시죠. 마침 무릎도 꿇고 있겠다, 수고도 덜고 좋네.”
“이, 이 개 같은 자식이!”
권지석이 분노를 토해 냈다. 그때, 주하연이 입을 열었다.
“권지석 님, 약조하신 내용을 지키지 않았다가 이 일이 회장님의 귀에 들어가면 큰 불호령이 떨어질 것입니다.”
“하, 할아버지 이야기가 여기서 왜 나와!”
“저는 그저 권지석 님께서 현명하게 생각하시라는 뜻에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권지석은 무릎을 꿇은 채 몸을 떨었다. 다섯 손가락이 바닥을 파고들었다.
“나, 나는…… 나 궈, 권지석은…….”
권지석은 억지로 입을 움직였다. 그 바람에 말이 제대로 완성되지 못하고 허공으로 흩어졌다.
그럼에도 권한울의 얼굴에는 지겨움을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자신을 배반자의 아들이라며 그토록 무시하던 권지석이 무릎을 꿇고 있다. 머리를 숙이고 사죄를 하고 있다.
가슴 속에 무언가가 벅차올랐다. 난생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으나 권한울은 곧바로 깨달았다.
승리감.
자신의 손으로 승리를 쟁취하고, 적을 굴복시키고, 전리품을 손에 넣었다.
이 상황에서 느껴지는 승리감이 권한울을 고취시켰다.
“궈, 권한울에게 지, 지금까지 저지른 모, 모든 일을…… 사, 사죄…….”
마지막 말이 완성되려던 찰나였다.
“권한울 님께 감히 한 말씀드리겠습니다!”
권지석의 측근 중 한 명이 소리를 질렀다.
“권지석 님께서는 본가의 혈족이시자 가주이신 권선우님의 직계이십니다! 이런 굴욕적인 처사는 용납될 수 없습니다!”
측근의 얼굴은 울분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단순히 권지석에게 점수를 따기 위함이 아니라 진심으로 주군의 처지에 분노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권지석이 성격은 개차반이라도 인복이 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지금 권한울에게 측근의 행동은 단순한 방해에 불과했다.
“그걸로 치면 나도 본가의 혈족에 가주님의 직계다.”
권한울의 반론에 측근은 말문이 턱 막혔다.
배반자의 자식, 혹은 천한 년의 피가 섞였다고 조롱을 듣는 권한울이었으나 신분만 따지면 감히 분가의 혈족인 측근 따위가 말대꾸를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그럼에도 측근은 쉽게 물러나지 않았다.
“권지석 님께서는 현 부회장이신 권혁 님의 차남으로…….”
“지금 분위기 파악이 안 되는 모양인데.”
권한울의 목소리에 날이 섰다.
“분가 따위가 나설 자리가 아니니까 입 닥치고 꺼져.”
권한울의 한마디에 측근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입을 다문 채 두 번 다시 나서지 않았다.
지금까지 봤던 분가의 혈족들과는 사뭇 다른 반응이었다. 마치 진심으로 권한울을 두려워하는 기색이었다.
권한울은 다른 혈족들을 돌아봤다. 다들 시선을 피하는 데 급급했다.
“허.”
권한울은 짧게 웃음을 터트렸다.
권한울이 권지석과의 내기에서 승리함으로서 얻은 것은 고작 제작 재료가 끝이 아니었다.
권위.
진(眞) 흑룡혈으로도 얻지 못했던 권위가 만들어졌다. 분가 혈족들의 태도가 바로 그 증거였다.
권한울의 시선이 다시 권지석에게 향했다. 그는 애처로운 얼굴로 측근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데 대체 뭘 하고 계십니까?”
“그, 그게…….”
“잘 안 들리는군요. 더 크게 말씀하시죠.”
“나, 나 권지석은 궈, 권한울에게 지, 지금까지 저지른 모, 모든 일을…… 사, 사죄…….”
권지석이 눈을 질끈 감으며 소리쳤다.
“……사죄한다!”
승리감이 온몸에 퍼졌다.
그 짜릿함에 권한울의 입 꼬리가 쓱 올라갔다.
* * *
“덕분에 아주 멋진 구경을 했다.”
소형 트럭을 운전하며 박태식이 말했다. 조수석에는 권한울이 타고 있었다.
“권지석이 그놈 성격이 보통 더러운 놈이 아니잖냐. 근데 네놈한텐 쪽도 못 쓰는 게 아주 볼 만했어.”
박태식은 큰소리로 웃었다. 정말 웃음이 많은 남자였다.
“게다가 희귀한 재료들도 손에 넣었지. 이거 모처럼 망치질을 하는 맛이 나겠는데.”
현재 권한울은 박태식의 개인 공방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비밀스러운 곳이기에 박태식은 오직 권한울 한 명만 출입을 허가했다.
그곳에서 권지석에게 얻은 재료를 가지고 어떤 장비를 만들지 구체적으로 상의할 예정이었다.
소형 트럭으로 이동하는 이유도 권지석에게 얻은 재료들을 모두 싣고 가고 위함이었다.
“진(眞) 흑룡혈을 가지고 있다지만 대단한 추진력과 배짱이야. 과연 그 애비에 그 자식이군.”
그 한마디에 권한울은 바로 박태식을 돌아봤다.
“……저희 아버지에 대해서 알고 계신가요?”
“권천 말이냐? 몇 번 얼굴은 본 사이지.”
그 말에 권한울은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저희 아버지께서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하연이한테 물어보면 될 게 아니냐.”
“회장님께서 기밀로 하라는 엄명을 내렸다면서 대답을 안 해 주더군요.”
“기밀? 아무리 그래도 자식 놈한테까지 그러다니 권선우 그놈이 좀 쪼잔 한 면이 있어.”
국가 원수조차 고개를 조아린다는 흑천의 회장을 이름으로 부르다니.
생각보다 둘은 굉장히 친밀한 관계인 듯싶었다.
“나도 많이 아는 건 아니다. 흑천 일가는 결코 집안 사정을 외부에 드러내지 않아. 흑천 공방에서 일하는 나한테도 예외는 아니지.”
권한울은 실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천재 중의 천재였지.”
박태식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
“장인으로 일하면서 수많은 헌터들을 만나봤지만 권천 같은 놈은 처음이었어. 장담하건데 흑천 그룹이 낳은 최고의 기재였을 거다.”
최고의 극찬이었다. 자신에 대한 이야기도 아닌데 권한울은 괜히 어깨가 으쓱해졌다.
“내가 데뷔전을 치르지도 않은 애송이한테 장비를 만들어 준 적이 딱 한 번 있는데, 그게 바로 권천이었지. 너처럼 시험을 통과하지는 못했지만 그놈의 실력이 그만큼 뛰어났거든.”
“대단한 분이셨군요.”
“대단했고말고. 그 녀석, 데뷔전도 플래티넘급 던전에서 치르지 않았던가?”
권한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동시에 그 천재성 때문에 쫓겨났을지도 모르겠어.”
그리고 다음 순간, 온몸의 피가 식는 것을 느꼈다.
“……쫓겨나다뇨?”
“너, 다른 사람들의 입에서 권천이라는 이름이 나오는 걸 한 번이라도 들어본 적이 있냐?”
없다.
다른 흑천의 혈족들은 꼭 한두 번씩 이름을 날리는데. 권천은 그렇지 않았다.
“권천은 데뷔전을 치르고, 제대로 활동하기도 전에 사라졌어. 다들 가문의 이름을 짊어지기 싫어서 도망쳤다고 말하지만 글쎄…… 내가 본 권천은 흑천 그룹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진 놈이었지.”
그런 사람이 가문을 버릴 리 없다.
버려지면 모를까.
“어디까지나 내 추측일 뿐이다. 하지만 주의해서 나쁠 건 없지. 더군다나 너 같이 골치 아픈 상황에 놓여 있다면 말이야.”
장인으로 일했으나 경륜이 경륜인 만큼 박태식은 권한울의 상황을 정확하게 추측하고 있었다.
대화를 하는 사이 박태식의 공방에 도착했다.
권한울과 박태식은 트럭에 놓여 있던 재료들을 모두 내렸다.
“여기가 내 개인 공방이다.”
박태식이 불을 켜자 내부가 훤히 보였다. 아까 봤던 공방보다 규모는 작았으나 내용물은 더 많았다.
완성된, 혹은 제작 중인 장비들이 사방에 널려 있었다. 시퍼런 날과 빈틈없는 마감 등. 딱 봐도 심상치 않은 장비들이었다.
과연 명장이라 부리는 박태식의 개인 공방다웠다.
“권지석 그놈이 모자란 놈이긴 해도 물건을 구하는 재주는 쓸 만하더구나. 어디서 이런 보물덩어리들을 구해 왔는지 원.”
박태식은 재료가 담긴 철제 상자를 보며 기꺼워했다. 장인은 장인인지라 좋은 재료를 보고 있자니 손이 근질근질 거리는 모양이다.
“질도 질이지만 양도 엄청나군. 이거라면 네놈이 원하는 건 뭐든지 만들 수 있겠어.”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잘 부탁할 것까지야…… 뭘 만들지 상의하기 전에 일단 네놈의 치수부터 재 볼까?”
박태식은 줄자를 가지고 이리저리 권한울에 가져다 댔다.
작업이 끝난 뒤, 무언가를 한참 동안 고민하기 시작했다.
“흠…… 똑같군. 똑같아.”
“뭐가 말입니까?”
박태식은 대답하지도 않은 채 개인 공방 창고로 들어갔다. 요란한 소리가 한참 동안 들리더니 거치대 하나를 가지고 왔다.
거치대에는 흑색 갑주가 하나 걸려 있었다.
그것을 본 순간, 번개에 맞는 듯한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갑주의 외관은 용과 꼭 닮아 있었다. 팔뚝과 어깨 같이 각이진 부분은 뾰족했으나 그 외의 부분은 매끄러운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외관도 대단했으나 권한울이 충격을 받은 부분은 갑주에 잠재되어 있는 거대란 마력 때문이었다.
“대단하지 않나?”
권한울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보호 기능은 물론이고 수부와 족부를 강화시켜서 권법의 파괴력을 극대화시켰지.”
박태식의 자랑은 멈출 줄 몰랐다.
“게다가 중심이 되는 소재가 엄청난 물건이라 기능도 다양한데다 원 재료가 되는 몬스터의 능력도 사용할 수 있지.”
그쯤 되면 유니크가 아니라 레전더리 급이 분명했다.
“내가 지금까지 만든 물건들 중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 거다. 그 정도로 중심이 되는 재료도 엄청난 물건이고, 시간도 많이 들어갔거든.”
세계 최고의 명장이 열 손가락 안에 든다고 자부하는 명품.
그 가치가 얼마나 대단할지는 굳이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문제는 이게 미완성품이라는 거지만.”
“어째서 완성하지 않으셨습니까?”
“두 가지 이유가 있지. 첫 번째로 이미 주문자가 죽었다는 거야. 그런데 굳이 완성시킬 필요는 없지. 사용할 사람도 없고, 재료를 대줄 사람도 없으니까.”
“다른 사람에게 줘도 되지 않습니까.”
“그게 가장 큰 이유인데. 맞춤형 장비라서 주문자 이외에 다른 사람은 몸에 안 맞아서 쓸 수가 없어.”
주문 제작은 철저하게 주문자에게 맞추기에 장비의 성능을 극대화시킬 수 있다.
문제는 주문자 이외에 다른 사람은 쓸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걸 왜 저한테 보여 주신 겁니까?”
“네가 얻은 재료들로 이 갑옷을 완성시킬 생각은 없냐?”
“방금 전에 말씀하셨잖습니까. 사이즈가 안 맞아서 주문 제작한 사람 외에는 쓸 수가 없…….”
“이 갑주를 주문한 사람이 누군지 아냐? 네 아버지 권천이다.”
몸이 움찔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우연의 일치인지. 유전자의 힘인지는 모르겠지만 너는 네 아버지랑 체형이 똑같더구나. 즉, 너라면 이 갑주를 쓸 수 있다는 뜻이지.”
방금 전, 치수를 재다가 고민에 빠진 이유가 이것 때문인 듯했다.
“마침 이번에 권지석 놈에게 얻은 재료들도 있고…….”
박태식이 권한울에게 다시 물었다.
“어떠냐, 이 갑주를 완성시킬 생각 없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