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10화>
10화 혈통이 궁금함 (1)
이튿날부터 흑천 일가에서의 본격적인 훈련이 시작됐다.
세계적인 기업, 동아시아의 지배자라는 흑천 그룹답게 훈련 방식부터가 예사롭지 않았다.
스무 명이 넘는 트레이너와 의사들이 팀을 꾸려서 오로지 권한울만을 위해서 움직였다.
미디어에서 들어 봤음직한 인물도 여럿 보였다.
최첨단 과학 기술을 도입해 신체에 대한 모든 것을 파악하고, 최적의 단련 방식을 찾아냈다.
훈련이 끝나면 전담 스포츠 마사지사들이 달라붙어서 권한울의 뭉친 근육을 풀고, 값비싼 약재를 발라서 체계적인 플랜 아래 신체를 회복시켰다.
‘이런 건 상위 헌터들이나 받는 건데.’
길드의 중심이나 다름없는 상위 헌터들도 이와 비슷한 대우를 받는다고 들었다.
질적으로 보나 양적으로 보나 권한울이 훨씬 우위에 있었지만.
그만큼 막대한 비용이 들어갈 게 뻔했으나 흑천 그룹은 이런 걸 가지고 속 좁게 구는 곳이 아니었다.
‘과연 헌터들이 비싼 돈을 들여서 받는 이유가 있네.’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전담팀이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굉장한 일이었다.
권한울의 능력치는 하루가 다르게 상승을 했다. 여기에 건강혈과 여의석의 효능까지 더해지자 그 속도가 더더욱 빨라졌다.
심지어 권한울이 일부로 능력치를 숨겨야 될 정도였다.
‘건강혈이 드러나서 좋을 거 없다.’
건강혈은 마지막까지 숨겨야 할 비장의 한수다. 들켜서 좋을 게 없었다.
신체 단련이 끝나면 반드시 용현무고에 들렸다. 그곳에서 목각 인형을 패며 현룡승천공의 숙련도를 상승시켰다.
‘스킬의 단계는 성(成)으로 표현된다.’
1성부터 10성까지.
그 이상은 극성이라 불리며 초월 단계라고 불렸다.
‘플래티넘급 던전에서 데뷔전을 치르기 위해서는 현룡승천공을 7성까지 익혀야 한다.’
권한울은 신체단련보다 현룡승천공에 더욱 시간과 노력을 쏟아 부었다.
신체능력은 건강혈과 여의석 덕분에 금방 올릴 수 있었으나 스킬은 오로지 많이 사용해 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나는 용현무고의 칭호 효과가 있어서 다행이야.’
이 칭호가 있으면 용현무고 내에서 스킬 숙련도의 상승 속도가 최대 50%까지 증가한다.
덕분에 권한울은 스킬 숙련도를 빠르게 상승시킬 수 있었다.
그렇게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낼 때였다.
“권한울 님, 오늘부터 교습에 들어갈 겁니다.”
주하연이 권한울에게 말했다. 권한울은 어리둥절해 하며 물었다.
“교습이라뇨? 이미 훈련이라면 충분…….”
“신체를 충분히 단련시키셨으니 이제 내면을 가꾸실 차례입니다.”
“내면이요?”
주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흑천의 혈족에게는 그에 어울리는 품위와 지성이 필요합니다.”
순간, 몸에 소름이 돋았다. 권한울은 설마 하는 얼굴로 주하연을 바라봤다.
“오늘부터 교양과 예절, 그리고 언어와 인문학 수업에 들어갈 예정입니다.”
맙소사.
권한울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 * *
당연한 말이지만 권한울은 공부와는 담을 쌓은 인생을 살아왔다.
딱 의무교육만 받았으며 그 이후에는 헌터 생활만 계속했다.
헌터가 알아야할 것은 몬스터를 죽이는 방법이지 영어 단어 따위가 아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공부라니?
권한울의 몸에 소름이 돋을 만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복병을 만날 줄이야…… 역시 흑천의 혈족이 되는 건 어려운 일이네.’
응? 어, 이거?
그런데 막상 시작해 보니 나름 할 만했다.
“권한울 님, 기억력이 상당히 좋으시군요.”
아니, 할 만한 정도가 아니었다.
“……벌써 다 외우셨다고요?”
주하연이 가르쳐 주는 족족 스펀지처럼 흡수했다. 확인 차 주하연이 낸 문제도 모조리 맞췄다.
복잡한 식사 예법도, 각 나라별 인사법도 단 한 번 본 것만으로 모두 외웠다.
단순히 암기 과목뿐만 아니라 응용이 필요한 분야까지 완벽하게 해냈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살면서 기억력이 안 좋아서, 혹은 이해력이 부족해서 곤란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어쩌면 권한울의 자질은 육체가 아니라 머리 쪽에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권한울 님께서는 헌터가 아니더라도 뭔가를 이루셨을 것 같습니다.”
빈말이라도 낯부끄러운 소리였다. 권한울은 주하연이 내온 찻잔을 들며 말했다.
“차 효능이 좋아서 그런 거겠죠.”
그리 말하며 차를 한 모금 머금었다. 청량한 향기와 함께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건강혈(健康血)’이 음식을 감지합니다!> <대단한 기운을 가지고 있는 음식입니다!> <해독력이 0.5 증가합니다!>
<독 저항력이 0.5 증가합니다!>
세계수 묘목의 새순을 볶아 만든 채.
권한울은 요즘 이 차를 수시로 챙겨 마시고 있었다.
차뿐만이 아니다. 저택의 주방장에게 특별히 부탁해서 해독에 좋은 음식들만 먹고 있었다.
이무기 내단을 섭취하기 위핸 내성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현재 내 해독력은 5. 독 저항력은 6이다.’
이무기의 내단을 섭취하기 위해서 해독력과 독 저항력을 어느 정도까지 끌어올려야 하는가.
그거에 대해서는 권한울도 명확하게 알 수가 없었다.
다만, 느낄 뿐이었다.
진(眞) 흑룡혈이 아직 부족하다고 경고를 해 왔다.
그렇다고 해서 권한울은 조급해 하지 않았다. 어차피 시간문제일 뿐이니까.
“권한울 님, 통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설마 권지석은 아니겠죠?”
“맞습니다.”
별로 상대하고 싶은 인간은 아니었으나 무슨 용건으로 전화했는지 호기심이 생겼다.
게다가 꼭 확인하고 싶은 것도 있었고.
“연결해 주시죠.”
주하연이 무선 전화기를 내밀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권지석의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야! 왜 이렇게 늦게 받아!
“무시하려다 받은 겁니다. 고맙게 생각하시죠.”
-뭐, 뭐야? 이놈이 감히 말대꾸를…….
“그보다 축하나 좀 해 주시죠.”
-갑자기 무슨 개소리야?
의아해하는 권지석에게 권한울이 말했다.
“혹시 못 들으신 겁니까? 제가 이번에 용현무고에서 흑룡십이승무를 전부 다 습득했거든요.”
갑자기 전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예상했던 그대로의 반응에 권한울은 한쪽 입 꼬리를 쓱 올렸다.
모를 리가 없다.
권한울이 흑룡십이승무를 전부 다 익히고, 잡혈을 상대로 완승을 거뒀다는 소문이 지금 흑천 일가 전체에 파다하게 퍼졌으니까.
“왜 아무 말씀도 없으십니까? 혹시 전화기가 끊어진 건 아니겠죠?”
-…….
“하긴, 그 대단하신 권혁 부회장님의 차남께서 할 말이 없어서 입을 다물고 있지는 않겠죠.
옆에서 있던 주하연은 크게 당혹스러워했다. 원래 성격이 이렇게 나쁘셨냐고 묻고 싶은 얼굴이 분명했다.
-벼, 별것도 아닌 걸로 자, 잘난 척 하고 있네!
“아, 이게 별것도 아니었군요. 그럼 그쪽도 당연히 모든 비급을 습득했겠죠?”
또 다시 침묵이 내려앉았다. 골려먹기 딱 좋았으니 이대로는 대화가 진행이 안 될 것 같아 권한울은 다음으로 넘어갔다.
“그래서 용건이 뭡니까?”
-너! 이번에 할아버지한테 이무기의 내단을 받았지?
“예, 그런데요.”
-그거 나한테 팔아라.
“싫습니다.”
권한울은 딱 잘라 거절했다.
세상에는 억만금을 주고도 절대로 구할 수 없는 물건이 있다.
이무기의 내단이 바로 그런 물건이었다. 그걸 돈 받고 파는 건 천하의 얼간이나 할 짓이었다.
-생각 똑바로 해. 이무기의 내단은 독성을 가지고 있어서 반드시 해독을 해야 해. 근데 이무기의 내단 정도되면 해독하는 것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야.
“그럼 그쪽은 독성을 해독할 방법을 가지고 있습니까?”
-가지고 있고말고. 그러니까 너한테 말하는 거 아니겠어?
권지석의 목소리는 확신에 가득차 있었다.
권한울은 속으로 감탄했다. 과연 썩어도 준치라고 흑천 일가 직계 혈족쯤 되니 나름대로 저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팔 생각은 없는데요.”
-뭐야? 야! 너 미쳤냐!
“안 미쳤으니 안파는 거죠. 그렇지 않습니까?”
-이 새끼가 정말!
결국 머리에 열이 올랐는지 권지석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건 옛날부터 내가 노리고 있던 놓은 물건이야! 그래서 간신히 해독할 방법을 찾아냈는데. 그걸 네가 가져간 거란 말이야!
“좀 더 빨리 찾아내지 그랬습니까.”
-그리고 인마! 그건 우리 흑천 그룹에서 찾아낸 거야! 너 따위가 가져갈 물건이 아니라고!
권한울의 눈동자에 짜증이 담겼다.
흑룡혈을 각성시키고, 비급까지 습득했음에도 권지석은 여전히 권한울을 이방인 취급하고 있었다.
-닥치고 당장 계좌번호 불러. 안 그러면…….
“권지석 님, 방금 전 말씀은 상당히 듣기 불쾌하군요.”
별안간 주하연이 끼어들었다. 그녀는 전화기 너머에 있는 권지석을 향해 말했다.
“너 따위라고요? 따지고 보면 저 내단은 권한울 님께 권리가 있습니다. 이무기를 쓰러트리고 내단을 얻은 사람은 권한울 님의 아버지인 권천 님이 아니십니까.”
-하, 하연이 네가 어떻게 나한테 크, 큰소리를…….
권지석의 목소리가 충격 덜덜 떨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받은 충격은 권한울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부, 분명 그 내단은 배반자 놈이 얻은 거지만…… 할아버지한테 선물로 바쳤잖아! 더 이상 상관없어!
권지석은 주하연의 말에 반박을 했다. 그럴수록 추하게 보인다는 것도 모른 채.
-어, 어쨌든 나한테 넘겨! 너는 어차피 먹지도 못할 거 아니야! 그럼 제대로 된 사람한테 맡기라 이 말이야!
권한울은 짜증을 느꼈다. 빨리 권천에 대한 것을 물어야 하는데. 언제까지 권지석을 상대하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내가 내단을 섭취하면 어떻게 할 건데요?”
-헛소리 하지 말고 나한테 넘기라고 했지!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도 비슷한 말을 했던 거 같은데요. 용현무고에서 비급을 습득 못할 거라고 했던가.”
세 번째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번에는 조금 짧았다.
-이, 이 새끼가! 나, 날 놀려?
권지석은 한껏 분노를 토해 냈다.
-그렇게 자신 있으면 어디 이번에도 한번 처먹어 보던가!
“먹으면 어떻게 할 겁니까?”
-하! 그러면 네가 해 달라는 건 다 해 주마! 어차피 먹어 봤자 금방 뒈지겠지만!
“그렇게 두루뭉술하게 말하지 말고 확실하게 하죠. 제가 이무기의 내단을 흡수하는데 성공하면 제 부탁 하나는 무조건 들어줘야 합니다.”
-좋아! 얼마든지 그렇게 해 주마! 정말로 네가 내단을 흡수하는데 성공하다면 말이야!
쾅.
큰 소리와 함께 전화가 끊어졌다. 권한울은 주하연에게 전화기를 건네며 물었다.
”이무기의 내단을 얻은 사람이 제 아버지였다고요?”
주하연은 실수했다는 듯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예, 맞습니다.”
“왜 비밀로 하셨던 거죠”
“회장님의 명령이셨습니다.”
그리고 덧붙였다.
“제가 저번에 플래티넘급 던전으로 데뷔전을 치루는 혈족 분들이 종종 계시다고 말씀드렸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권한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중 한 분이 권천 님이셨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데뷔전을 치룬 던전에서 나온 몬스터가 이무기였죠.”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내 아버지가 플래티넘급 던전을 혼자서 클리어하셨다고?’
‘종종’ 있는 일이라고 말할 정도로 플래티넘급 던전을 혼자 클리어하는 건 흑천 그룹 내에서도 힘든 일이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이 자신의 아버지인 권천이라니.
‘아버지는 대체 어떤 분이셨을까.’
흑천 그룹에 도착하고 처음으로 아버지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한참 동안 고민에 잠겨 있던 권한울이 짧게 중얼거렸다.
“그나저나 권지석 그 인간한테는 뭘 요구하는 게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