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통이 깡패임 8화>
8화 혈통이 같잖음 (2)
“어우 남자답네. 그럼 밑으로 내려갈까?”
사내가 씩 웃으며 앞장섰다. 그와 함께 왔던 분가의 혈족들이 그를 말렸다.
“야야, 너 미쳤어? 왜 이래?”
“진혈을 상대로 뒷감당을 어떻게 하려고!”
하지만 사내는 동기들을 무시한 채 단련실 밖으로 나갔다.
권한울은 그런 사내의 움직임을 눈여겨봤다.
‘다른 분가 혈족들이 놀라고 있다. 저 행동이 돌발적이라는 뜻이지.’
분명 사주한 사람이 있다. 권한울은 확신했다.
“뭐해? 안 따라오고.”
권한울은 사내를 따라 아래층으로 향했다.
단련실의 바로 아래는 대련장이었다.
흑천의 혈족들이 이용하는 곳답게 축구장만큼이나 넓고, 견고해 보였다.
“참, 내 이름은 권우진이라고 해.”
대련장에 도착하자마자 사내가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위대한 진혈이시니 선수 양보 같은 건 필요 없겠지?”
“잡혈한테 그딴 걸 받았다가는 망신살이 뻗지 않겠습니까.”
권우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례? 그럼 봐줄 필요는 없겠네.”
사내가 주먹을 쥐고 자세를 잡았다. 흑룡십이승무의 자세 중 하나였다.
권한울도 자세를 잡았다. 권우진에 비해서 어딘가 어설퍼보였다.
그게 우스웠는지. 권우진은 히죽 입 꼬리를 올렸다.
“그럼 시작할까?”
전투의 개시.
권우진이 먼저 몸을 날렸다.
* * *
대련장의 중앙에서 권한울과 권우진의 전투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세상에…….”
“어떻게 저럴 수가…….”
그 광경을 지켜보던 분가의 혈족들은 전부 탄성을 내뱉었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돼…….”
“내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들 정도야…….”
그들의 두 눈은 오로지 두 사람에게 꽂혀 있었다. 그럴 정도로 놀라운 장면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어떻게 저렇게 못 싸울 수가 있지?”
전투는 일방적이었다.
권우진이 공격을 하면 권한울은 필사적으로 막거나, 피했다.
그마저도 완벽하지 않기에 몸이 이리저리 휘청거렸다. 마치 파도에 휩쓸리는 조각배 같은 광경이었다.
“왜 이렇게 미적지근해! 진혈이잖아! 뭘 좀 보여 줘야 하는 거 아니야?”
권우진은 한껏 비웃음을 머금은 채 권한울을 밀어붙였다.
얼굴을 가득 채운 미소가 보여 주듯 지금 권우진의 기분은 최고였다.
‘멍청한 놈. 그깟 도발에 걸려들어서 대련을 수락하다니.’
전투 도중만 아니라면 배를 붙잡고 폭소를 터트리고 싶을 정도였다.
‘이래서 밖에서 살다온 놈들은 무식해서 안 돼. 아무리 내가 분가의 혈족이라지만 D밖에 안 되는 능력치로 개겨?’
권우진은 권한울에 대한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그가 지금까지 삼류 헌터 노릇을 하면서 살아왔다는 것. 모든 능력치가 D등급밖에 안 된다는 것. 마지막으로 오늘 처음으로 용현무고에서 비급을 얻고 흑룡혈을 깨웠다는 것까지.
권우진이 조사한 내용은 아니었다. 그에게 이 일을 부탁한 ‘분’께서 알려 준 사실이었다.
‘이놈만 밟아 버리면 나도 순혈 파벌에 속할 수 있어!’
그분께서는 말씀하셨다.
권한울을 두 번 다시 재기할 수 없도록 처참하게 박살을 내면 자신의 파벌에 받아주겠다고.
뒷감당은 자신이 할 테니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조언까지 덧붙이면서.
‘세상에 이렇게 쉬운 일이 어디에 있겠어?’
이 일이 좋은 이유가 한 가지 더 있었다.
‘그리고 지금이 아니면 언제 상위 혈통을 몰아붙이겠어!’
용현무고는 사람의 자질에 따라서 비급을 달리 전해준다.
비급을 많이 익힌 사람일수록 더 강한 것은 당연한 일.
그럼에도 흑천 일가는 혈통에 따라서 계급을 나눈다. 그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잡(雜), 열(劣), 순(順).
흑룡혈에 의해서 얻을 수 있는 용의 힘은 순도가 높을 수 록 강해진다.
그리고 그 격차는 절대적이다. 일개 인간의 재능으로는 결코 그 차이를 좁힐 수 없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라는 게 있지.’
권한울의 능력치는 전부 D등급. 반면 권우진은 B등급이었다.
게다가 비급도 수준급으로 익혔으며 흑룡혈도 30퍼까지 끌어올린 상황.
이쯤 되면 권한울과 권우진의 전투는 어린이와 맹수가 싸우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아니, 그 이상이었다.
“이 맹맹한 주먹은 뭐야! 더 힘껏 때리란 말이야!”
맞아도 아프지 않았다.
대비 따위는 하지 않아도 몸에 충격이 오지 않았다.
능력치의 격차가 물리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봐 주먹을 휘두를 거면 이렇게 해야지!”
권우진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강맹한 마력이 주먹으로 모여들었다.
흑룡십이승무 입문형(黑龍十二昇武 入門形)
강격식 철명퇴(强擊式 鐵鳴槌)
주먹이 공기를 찢으며 날아들었다. 권한울은 양팔을 교차해서 주먹을 막아냈다.
야구배트에 얻어맞은 공처럼 권한울은 뒤로 멀리 날아갔다.
“하, 제대로 들어갔네.”
권우진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감촉이 왔다. 저 두 팔은 지금쯤 산산조각 났을 터.
……라고 생각을 때, 권한울이 아무렇지도 않게 양팔을 털었다.
멀쩡했다.
‘……어떻게?’
방금 전 공격은 결코 봐주지 않았다. 있는 힘껏, 온힘을 다해서 때려 박았다.
그런데 어떻게 버틴 거지?
‘윽?’
별안간 몸 곳곳이 아려왔다. 정확히 권한울에게 얻어맞은 자리였다.
‘……뭐지?’
둘의 격차를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대체 왜?
“내가 듣기로는 흑천의 혈족은 하나 같이 괴물 같은 족속들이라고 하던데.”
뜬금없이 권한울이 입을 열었다. 옅은 조소를 띄운 채 말했다.
“역시 소문은 믿을 게 못 되는 거 같아. 안 그래?”
권우진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분노가 들끓기 시작했다.
권우진의 전신에 검은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마력.
헌터가 몬스터와 맞설 수 있는 이유.
일개 인간 따위를 초월자로 격상시킨 힘.
“딱 대라, 이 새끼야. 척추를 뽑아 줄 테니까.”
* * *
높게 뛰어오른 권우진이 아래를 향해 낙하한다.
착지하는 순간, 바닥이 뒤흔들렸다. 그 바람에 권한울은 중심을 잃고 비틀거렸다.
그 틈을 노리고 권우진이 달려들었다.
흑룡십이승무 입문형(黑龍十二昇武 入門形)
강격식 철명퇴(强擊式 鐵鳴槌)
마력이 담긴 주먹이 권한울의 머리를 박살내려 했다. 권한울은 양손을 교차했다.
현룡승천공 입문형(玄龍昇天功 入門形)
방격식 강완(旁格式 姜腕)
권우진도, 권한울도 방금 전과 똑같은 기술을 사용했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철명퇴가 강완을 부수며 들어왔. 권우진은 내장을 직접 때려 맞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쿨럭.”
기침 속에 피가 섞였다. 그 모습 본 권우진은 더욱 날뛰었다.
“겨우 한 대로 아파하는 거야? 우리 잘난 진혈께서 그러면 안 되지!”
흑룡십이승무 입문형(黑龍十二昇武 入門形)
강격식 골추각(骨墜脚)
권한울의 옆구리에 정강이가 틀어박혔다.
그 직전, 아슬아슬하게 몸을 틀었다. 옷이 찢겨나가며 피부가 베였다.
“그렇게 쥐새끼처럼 도망치지만 말고 뭐라도 해 봐! 응? 잘난 진혈이잖아!”
권우진의 권격이 쏟아진다. 그럴 때마다 땅이 파이고, 건물이 흔들렸다.
권한울은 묵묵히 권우진의 공격을 막아냈다.
사실 막는다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었다. 손과 발이 닿을 때마다 근육은 짓눌리고, 뼈는 비명을 질렀다.
아팠다.
힘들었다.
무엇보다 무서웠다.
오크 한 마리조차 제대로 사냥하지 못했던 자신이 그와 비교할 수조차 없는 괴물과 싸우고 있다.
그렇다고 무섭다고 도망칠 수는 없었다. 불평할 수도 없었다.
이건 어디까지나 권한울 본인의 결정이었으니까.
‘나는 왜 싸우자고 한 거지?’
전투를 하는 내내 의문이었다.
누가 봐도 격차는 명백했다. 능력치, 비급의 숙련도, 전투 경험.
모든 면에서 권한울은 권우진보다 아래였다.
‘그런데 어째서 싸우려 한 거지?’
평소의 권한울이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는 삼류 헌터였다. 그리고 삼류 헌터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적을 가늠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대체 왜?’
단순히 도발에 넘어가서? 아니다. 그게 아니다.
분노가 불씨가 된 것은 맞다. 하지만 대련을 수락했을 때, 권한울은 분노 때문에 이성을 잃은 상황이 아니었다.
그 이면에는 자신감이 깔려 있었다.
그렇다 자신감이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지만 자신이 있었다. 이깟 분가의 혈족쯤은 이길 수 있다는.
<동화율 3% -> 5%>
메시지가 떠오르는 순간, 권한울은 본인의 내면이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전투의 흥분이 가라앉았다. 공포와 두려움 따위의 감정들이 저편으로 사라졌다.
<동화율 5% -> 7%>
그저 빠르게만 보이던 권우진의 움직임이 조금씩 눈에 들어왔다.
움직임뿐만이 아니었다. 권우진이 호흡을 내뱉는 타이밍, 공격 직전의 버릇.
그 모든 것이 읽히기 시작했다.
<동화율 7% -> 9%>
그리고 9%에 달한 순간, 온몸의 혈액이 들끓기 시작했다.
터지기 직전의 활화산을 몸속에 담아두고 있는 것 같았다. 지금 당장 튀어나가서 권우진의 머리를 짓밟고 싶었다.
그러나 그 욕망을 억눌렀다.
아직 아니다.
아직 승기는 기울지 않았다.
“어쭈! 계속 막는다 이거지!”
권우진의 자세가 달라졌다. 마력의 흐름이 변화했다.
흑룡십이승무 기본형(玄龍昇天功 基本形)
강격식 진산타(强擊式 振山打)
주먹이 아니라 장(掌).
섬뜩한 기운을 담은 장법이 권한울의 몸통을 후려쳤다.
피하지 않았다. 똑같이 손바닥을 마주 댔다.
“멍청한 새끼!”
권우진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그려졌다. 강격식 진산타(强擊式 振山打)는 사물을 박살내는 게 아니라 터트리는 기술.
그걸 피하지 않고 똑같이 마주 댔으니 권한울의 손은 흔적도 남지 않으리라.
그때였다.
권한울이 권우진의 손을 움켜잡고 비틀었다
현룡승천공 기본형(玄龍昇天功 基本形)
유격식 탈혼(柳擊式 脫魂)
온몸의 힘이 쑥 빨려갔다. 권우진은 온몸에 힘이 풀린 채 땅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어? 어어?”
권우진은 재빨리 일어나려 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현룡승천공 입문형(玄龍昇天功 入門形)
연격식 난휘난격(聯擊式 亂揮亂擊)
권한울의 연격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타격할 수 있는 모든 부위를 이용해서 권우진의 급소를 가격했다.
“컥! 커억!”
공격이 들어올 때마다 권우진은 비명을 질렀다.
방금 전과 달리 권한울의 주먹은 하나하나가 묵직했다.
“왜, 왜 이렇게 아, 아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권한울은 방금 전의 권한울과 달랐으니까.
<‘건강혈(健康血)’이 격한 동작을 감지했습니다!> <‘여의석(如意石)’의 영향력 내에 있습니다. 효과가 증대됩니다!> <근력, 체력, 민첩이 0.5씩 증가가 됩니다.> 권우진과 대련을 하는 내내 권한울의 능력치는 지속적으로 상승했다.
그 결과 B등급의 능력치에도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수준까지 왔다.
“악, 으아악!”
권우진은 급기야 괴성을 질러댔다. 더 이상 전투 의지는 남아 있지 않았다. 그저 빨리 끝나기만을 바랄 뿐.
별안간 공격이 뚝 멈췄다.
끝났나 싶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때, 권우진의 얼굴에 길쭉한 그림자가 생겼다.
권한울이 한쪽 다리를 높게 쳐든 채 서 있었다.
“자, 잠깐만!”
현룡승천공 입문형(玄龍昇天功 入門形)
강격식 파죽(强擊式 破竹)
일직선으로 떨어진 발꿈치가 권우진의 정수리를 내려찍었다.
* * *
“회장님께서도 심술궃으십니다.”
대련장의 복도를 걸으며 주하연이 말했다. 스마트폰 너머로 회장이 툴툴거렸다.
“권한울 님께서 시건방진 게 문제라고요? 하지만 첫 번째 선물이지 않습니까. 그럼 좀 무난한 걸로…….”
회장이 고함을 질렀다. 주하연은 잠시 스마트폰을 멀찍히 떨어트렸다.
“예, 선물이 아니라 보상이요. 알겠으니 누차 강조하실 필요 없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탑승하려 할 때였다. 주하연의 감각에 무언가가 걸렸다.
권한울의 마력이 불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주하연의 경험상 이런 경우는 딱 하나뿐이었다.
전투.
그것도 목숨을 건 사투 말이다.
“……회장님, 다시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주하연은 엘리베이터가 아니라 계단으로 달려갔다. 단숨에 대련장까지 뛰어올랐다.
“권한울 님!”
황급히 소리치며 문을 열었다. 그 직후, 주하연은 봤다.
권한울이 발꿈치로 혈족의 정수리를 내려찍는 모습을.
그 충격으로 눈동자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혈족은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주하연은 한동안 멍한 얼굴로 서 있었다. 그러다 다시 스마트폰을 꺼냈다.
“……회장님? 아무래도 보상을 추가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