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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통이 깡패임-2화 (2/221)

<혈통이 깡패임 2화>

2화 혈통이 이상함 (1)

도로 위를 OGMG사의 최고급 세단이 질주하고 있었다.

이한울은 뒷좌석에 앉은 채로 차 내부를 구경하고 있었다.

넓은 내부와 값비싼 가죽으로 만들어진 시트. 오른쪽 팔 받침에 있는 버튼만 누르면 뭐든지 다 되는 시스템까지.

버튼을 만지작거리며 이한울은 헛웃음을 흘렸다.

평생 동안 승용차라고는 택시만 타 본 이한울에겐 무척 어색한 광경이었다.

“이한울 님, 감사드립니다.”

조수석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하연이 백미러를 통해서 이한울을 바라보고 있었다.

“감사받을 짓을 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요.”

“흑천으로 돌아오시겠다는 결정을 내리지 않으셨습니까.”

“그거야 저 좋다고 한 일이죠. 흑천 그룹으로 가면 빚도 갚아 주고 의식주도 모두 해결해 준다면서요?”

동아시아의 지배자라고 불리는 흑천 그룹에 소속되는 이유 치고는 지나치게 속물적이었다.

주하연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한울 님께서는 흑천의 혈족이십니다. 그 사실에 대한 기쁨이나 자부심은 느껴지지 않으시는 겁니까?”

“20년을 넘게 고아로 자란 사람한테 그런 걸 물어보면 좀 웃기지 않을까요.”

잠시 침묵이 흘렀다. 뭐라 할 말이 없었는지. 주하연은 슬쩍 화제를 돌렸다.

“흑천 그룹에 적응하는 건 쉽지 않으실 겁니다. 마음 준비를 단단히 하셔야 할 겁니다.”

“뭐 그렇겠죠.”

주하연의 경고를 이한울은 너무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만약 이게 삼류 만화였다면 모르겠지만 엄연한 현실이잖아요. 흑천 그룹에 가 봤자 굴러들어온 돌 취급을 받을 게 뻔해요.”

“이한울 님은 굴러들어온 돌이 아닙니다. 회장님의 직계 혈족…….”

“20년이 넘도록 제대로 배운 것도 없지. 할 줄 아는 거라고는 헌터 노릇밖에 없지. 애물단지의 취급이야 안 봐도 그림이죠.”

그뿐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제 아버지가 흑천 그룹에서 도망치고 멋대로 절 낳았다면서요. 사람들이 퍽이나 절 좋아하시겠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주하연은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다.

“그럼 어째서 이런 결정을 내리신 겁니까?”

“말했잖아요. 빚 갚아 주고, 돈 주니까 간다고.”

이한울이 씩 웃었다.

“삼류 헌터 노릇하면서 월세도 못 내고 골골 거리느니 흑천 그룹으로 가서 눈총 좀 받고 돈 걱정 없이 사는 게 낫지 않겠어요?”

너무 속물적이라 되레 할 말이 없어지는 이유였다.

“그런데 지금 어디로 가는 겁니까?”

“회장님을 뵈러 갑니다.”

“흑천 그룹의 회장님은 흑천 일가에 계신다고 들었는데요. 거기 되게 멀지 않나요?”

흑천 그룹은 이미 거대한 왕국에 가까웠다.

때문에 흑천 그룹은 한반도 북부에 자신들 만의 영토를 가지고 있었다.

“보통은 흑천 일가에 계십니다만, 지금은 흑천의 중요한 행사 때문에 서울에 계십니다.”

중요한 행사?

이한울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차가 멈춰 섰다.

주하연이 먼저 내려서 뒷좌석의 문을 내렸다. 이한울이 밖으로 걸어 나오자 마천루가 보였다.

‘크긴 더럽게 크네.’

주위의 어떤 빌딩보다 압도적으로 크고, 높았다. 그 압도적인 크기 때문에 서울의 새로운 랜드마크라 불리는 ‘블랙폴리스’였다.

“가시죠. 회장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한울은 주하연을 따라서 블랙폴리스로 향했다.

흑천 그룹의 중요한 행사가 있다더니 입구부터 분위기가 남달랐다.

중무장을 한 병사들이 1층은 물론이고 야외로 나와서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블랙폴리스 주변은 개미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았다.

입구를 지키고 있던 병사들이 주하연을 발견하고는 자리를 비켰다.

“엘리베이터는 이쪽입니다.”

말을 하던 도중, 걸음소리가 들렸다. 화장이 무척 짙은 중년 여성이 이한울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주하연이 공손히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권미 님, 안녕하십니까.”

“안녕 못해!”

여성은 신경질적으로 대답하며 이한울을 노려봤다.

“네가 권천 오라버니의 자식이지?”

이한울은 기억을 더듬었다. 어디선가 본적이 있는데. 금방 기억이 나지 않았다.

“희장님의 장녀이자 둘째 자식이신 권미 님이십니다. 이한울 님의 고모님…….”

“고모는 무슨 고모야! 누가 저런 놈을 조카로 인정할 것 같아?”

권미는 노골적인 적의를 표출하고 있었다.

“뻔뻔한 놈! 여기가 어디라고 너 같은 놈이 발을 들여놔! 당장 꺼지지 못해!”

“권미 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이한울 님은 엄연히 회장님의 명령으로…….”

“넌 닥치고 있어! 감히 어디서 네까짓 게 내가 말하는데 끼어드는 거야! 아버지께 조금 귀여움을 받는다고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지?”

“권미 님 그게 아니라…….”

“그러면 회장님께 따지시지요.”

주하연과 권미의 시선이 이한울에게 모여들었다. 이한울은 심드렁한 얼굴로 말했다.

“그렇게 제가 마음에 안 들면 회장님께 가서 말씀하세요. 저는 그냥 오라고 해서 온 것뿐이니까.”

“뭐야? 이 건방진 놈이 어디서 감히!”

권미가 손을 치켜들었다. 그때, 누군가 그 손을 잡았다.

“어이쿠, 우리 동생. 왜 이렇게 흥분했을까.”

“오빠! 이거 놓지 못해!”

“진정해. 이렇게 흥분할 일도 아니잖아.”

풍채가 좋은 중년 남성이 권미를 어르고 달랬다. 효과가 있었는지 권미의 표정이 한층 누그러졌다.

“동생의 행동은 내가 대신 사과하지. 미안하게 됐네.”

이번에는 주하연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정도로 유명한 사내였다.

“내 얼굴은 알고 있겠지? 권혁이라고 하네. 그러니까 자네의 백부가 되는 사람이지.”

권혁.

흑천 일가의 장남이자 흑천 그룹의 부회장.

대외적인 활동은 모두 권혁이 하기에 실질적인 2인자요, 후계자라고 여겨지는 남자였다.

“흑천은 처음이라서 많이 낯설 거야. 언제든지 날 찾아와서 의지해도 좋아.”

권혁은 이한울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정말 인자하고, 따뜻한 사람이라는 이미지였다.

하지만 바로 느낄 수 있었다. 자신을 쳐다보는 권혁의 눈빛이 결코 호의적이지 않다는 것을.

“오빠! 그게 무슨 말이야! 당장 저놈을 쫓아내야지!”

“어허, 권미야. 아버지께서 부른 아이야. 우리가 함부로 하면 안 돼.”

“그럼 저놈을 흑천에 들어오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잔 말이야?”

둘이서 실랑이를 벌일 때였다.

띵동,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했다. 문이 열리며 노인 한 명이 나타났다.

노인을 본 순간, 주하연의 눈동자가 커졌다. 황급히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소리쳤다.

“흑천의 하늘을 뵙습니다.”

흑천의 하늘.

주하연이 그렇게 지칭할 존재는 딱 한 명밖에 없었다.

흑천 그룹의 회장이자 이한울의 조부.

권선우가 1층을 쓱 둘러보더니 입을 열었다.

“하연이가 도착했다 해서 내려와 봤더니 난장판이 따로 없군.”

“아버지! 저는 절대로 이번 결정에 동의할 수 없어요!”

권미가 앙칼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여자가 하는 행동은 철부지나 다름없군.’

이한울은 속으로 혀를 찼다.

권선우는 권미 쪽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대신 주하연에게 물었다.

“하연아, 이 아이가 그 아이가 맞는 게냐?”

“예, 맞습니다. 틀림없이 권천 님의 아드님이십니다.”

“수고가 많았다.”

권선우가 이한울에게 시선을 옮겼다. 이한울도 권선우를 쳐다봤다.

겉보기에는 별 볼 일없는 노인에 불과했다. 체구는 작고, 근육은 말랐다.

하지만 분위기가 달랐다.

헌터 일을 하면서 몇 번인가 상위 헌터들을 본적이 있다.

그들은 마치 인간이 아닌 것 같은, 흉포한 짐승을 마주하고 있는 듯한 위압감이 들었다.

그러나 이 남자, 권선우는 달랐다.

어두운 바다.

얼마나 깊은지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넓은지도 모르겠다.

그저 두려웠다.

저 안에 무엇이 살고 있을지.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몰라서 소름이 끼쳤다.

“얼굴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인가?”

권선우의 말에 이한울은 잠시 고민했다. 호칭을 결정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할아버지라고 말해야할지. 아니면 회장님이라고 해야 할지.

고민이 끝나기도 전에 권선우가 먼저 말했다.

“권천 놈의 자식이라고 해서 어떨까 싶었는데…… 이건 기대 이하로군.”

무척 싸늘한 어조였다.

“그 나이가 되도록 흑룡혈을 각성시키지 못할 줄이야. 이래서 천한 것들과 피를 섞는 것을 내 철저히 금지한 게야.”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권선우의 반응은 냉담하다 못해서 적대적이었다.

“내 실수다. 이딴 놈을 흑천에 들여놓으려고 하다니. 당장 되돌려 보내라.”

그 한마디를 남기고 회장은 몸을 돌렸다. 그 모습에 권미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러게 말입니다. 실수 한번 크게 하셨습니다.”

이한울이 내뱉은 한 마디에 회장이 몸을 멈칫했다.

“20년을 넘도록 밖에서 고아로 지난 놈한테 뭘 바라신 겁니까. 안 봐도 뻔한 거 아닙니까?”

“지금 날 조롱하는 것이냐?”

“조롱이라뇨. 그냥 어이가 없어서 한 말씀 드린 건데. 제가 뭐 받아먹은 게 있으면 회장님을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하다고 빈말이라도 했을 텐데. 그것도 아니잖습니까.”

해 준 것도 없으면서 뭔 말이 많냐는 말에 회장의 미간이 좁아졌다.

주하연도, 뒤에 서 있던 모든 사람들의 표정이 하얗게 질렸다.

“내 앞에서 멋대로 입을 놀리는 놈은 실로 오랜만이군.”

“실례했습니다.”

이한울은 살짝 고개를 숙인 뒤, 건물의 정문 쪽으로 몸을 돌렸다.

“받은 게 없다고 했더냐? 앞으로 두 번 다시 그딴 헛소리는 입 밖에 못 꺼내게 해 주마.”

그런 이한울의 등 뒤로 권선우가 말했다.

“하연이는 듣거라.”

“예, 회장님.”

“이제 곧 위에서 성인식이 시작된다. 거기에 이 녀석도 참가시켜라. 못난 놈이지만 그래도 사람 구실은 시켜야하지 않겠느냐.”

“분부를 따르겠습니다.”

권선우는 망설임 없이 몸을 돌렸다. 권미가 당황한 얼굴로 뒤따라갔다.

“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설마 저놈을 진짜 흑천에 받아들일 생각이세요?”

권선우는 대꾸조차 하지 않고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권미도 따라 들어갔다.

“이런 나도 가 봐야겠군. 아, 흑천에 들어온 것을 축하하네.”

권혁도 허겁지겁 엘리베이터로 달려갔다.

세 사람이 사라지자 1층 라운지가 텅 비어 버렸다.

“거참 살벌한 집안이네.”

흑천 그룹에 대한 이한울의 첫 감상이었다.

“이한울 님, 축하드립니다.”

“축하라뇨?”

“회장님께 인정을 받지 않으셨습니까.”

“그게 인정이라고?”

이한울은 방금 전 권선우의 언행을 떠올렸다. 인정처럼 긍정적인 단어가 들어갈 요소가 전혀 없었다.

“그보다 아까 말한 성인식이라는 게 뭡니까?”

“이한울 님께서 생각하시는 성인식과는 조금 다를 겁니다. 흑천 일가의 성인식이란 흑룡혈을 개화하는 것을 말합니다.”

“흑룡혈이라면 제가 아는 그 흑룡혈이 맞는 겁니까?”

“예, 맞습니다.”

흑천의 권세는 결코 사업이나 시류에 편승해서 얻은 것이 아니다. 오로지 무력만으로 쌓아올린 것이다.

흑천의 혈족들은 개개인이 뛰어난 헌터들이다. 직접 본 사람들은 다들 종이 다른 것 같다는 말을 자주했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오로지 흑천의 혈족에게만 발현되는 특수한 혈통, 흑룡혈이 있다.

“흑천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주기적으로 본가에 모여서 성인식을 통해 흑룡혈을 각성시킵니다. 흑룡혈을 각성시켜야 진정한 흑천의 혈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아까 회장님이 나보고 이 나이가 되도록 흑룡혈을 개화시키지 못했냐고 아니꼽게 말하시던데요.”

“자질이 뛰어난 이들은 성인식에 참가하지 않고도 흑룡혈을 각성시키곤 합니다. 자질이 떨어질 수 록 그 시기가 늦어지죠.”

이한울은 쓴웃음을 지었다.

재능이 없는 거야 새삼스럽지도 않다. 여태까지 삼류 헌터 노릇도 간신히 하면서 살아 왔으니까.

“만약 흑룡혈을 개화시키지 못하면 어떻게 됩니까?”

“그런 사례는 한 번도 없습니다. 다만, 명심하셔야 할 것은 어떤 흑룡혈을 얻느냐에 따라서 흑천 그룹 내에서 이한울 님의 지위가 결정된다는 겁니다.”

“흑룡혈에도 등급이 있습니까?”

“잡(雜), 열(劣), 순(順). 이렇게 세 개의 등급이 있습니다.”

이건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정보였다.

“등급이 높은 흑룡혈일 수록 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흑천의 혈족은 오직 흑룡혈 만으로 지위가 결정됩니다.”

잡(雜)보다는 열(劣)이 강하다. 열(劣)보다는 순(順)이 강하다.

“보통 직계 혈족이라면 순(順) 등급을. 방계라면 열(劣), 잡(雜)의 등급을 얻게 됩니다.”

“보통?”

“순(順)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직계 혈족이라 해도 열(劣) 등급의 흑룡혈을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럼 어떻게 되는 겁니까?”

“방계로 격하가 됩니다.”

잔혹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저는 어떤 등급을 얻게 될까요?”

“가장 낮은 잡(雜)을 얻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썩 달갑지 않은 소리였다.

“흑룡혈을 보존하기란 무척 어렵습니다. 직계 혈족에서도 온갖 노력을 기울여서 간신히 순(順) 등급을 유지하고 있죠.”

사실 이한울은 낮은 등급의 흑룡혈을 얻어도 상관이 없었다.

그는 그저 흑천 그룹의 휘광으로 적당히 잘먹고 잘사는 게 목표였으니까.

하지만 상황이 안 좋아도 너무 안 좋았다.

회장인 권선우부터 백부인 권혁, 고모인 권미에 이르기까지.

호의를 보여 준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게다가 분위기로 보건데 방계의 혈족들조차 이한울을 반기지 않을 확률이 높았다.

이런 상황에서 흑룡혈의 등급마저 낮게 나와서 방계로 격하가 된다면 이한울이 어떤 취급을 받을지는 불보듯뻔했다.

“제 걱정은 마시고 빨리 움직이시죠.”

“예? 하지만…….”

“말했잖아요. 눈칫밥 먹는 데는 익숙하다고.”

그리 말하며 이한울이 앞장섰다.

“그리고 또 모르죠. 내가 높은 등급의 흑룡혈을 각성시킬지 말이에요.”

주하연이 실소를 터트렸다. 이한울이 처음으로 들은 웃음 소리였다.

“진지하게 말한 건데 웃다니. 너무하시네.”

장난스럽게 말하며 이한울이 앞장섰다.

“갑시다. 성인식이니 뭔가에 참가해야 한다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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