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ail protected]
두 사람은 그 말뜻을 곧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좀비가 지나치게 창궐해 인간의 수가 줄면 약을 구매해 줄 사람이 적어진다는 소리였다. 원혁은 회장의 멱살을 틀어쥔 손을 들어 올리며 그의 숨통을 조였다.
“미친 새끼. 치료제를 얼마나 비싸게 팔아먹으려고 이 지랄이야?”
“오. 치료제 존재를 아나? 누구한테 들었길래.”
회장은 희번득한 눈빛으로 원혁과 태유준을 훑었다. 그러고는 흥미롭다는 듯 킬킬거렸다.
“혹시 장준식 그놈인가?”
“박사님 이름 함부로 입에 올리지 마.”
태유준이 이를 악물고 대답하자 노인은 눈꺼풀에 경련을 일으키며 입가를 떨었다.
“어떤 쥐새끼들인가 했더니, 네놈들이었구나. 내 소중한 남가도 공장을 날려 버린 놈들이. 응?”
노인은 앞니가 없었다. 그의 텅 빈 잇몸으로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거기 있던 연구 자료들도 다 날아갔어. 네놈들 때문에.”
“개같은 연구 소리 좀 집어치워.”
원혁이 그를 잡아먹을 듯 노려봤다. 회장은 지지 않고 눈을 부릅떴다.
“개같은 연구라니? 불로불사의 비결을 담은 연구야. 우습게 보지 마라. 그 연구가 있었기에 저 예술품도 만들 수 있었지.”
노인이 턱짓을 했다. 그의 시선을 따라간 곳에는 투명한 관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아까 이 방에 들어올 때는 사각지대에 있어서 보지 못했던 관. 그 안에는 점프 슈트를 입은 좀비가 팔목과 발목을 결박당한 채 누워 있었다. 태유준은 경악했다. 방 한가운데 좀비를 가둬 두고 있다니. 태유준은 조심스레 관을 향해 걸어가서 살펴보았다.
그것의 이마 정중앙에는 ‘Ⅰ’이라는 로마자 숫자가 큼직하게 새겨져 있었다.
이게 바로 좀비 1호구나. 모든 일의 시발점이 여기 있다. 장 박사님의 여의도 연구소에 남아 있던 점프 슈트, 그 주인이 여기에 누워 있다.
태유준의 등줄기를 따라 소름이 끼쳤다.
“어때. 내 피조물이?”
노인이 기침을 섞어 가면서도 흐뭇하다는 듯 웃었다.
“내가 아주 공들여 가면서 만들어 낸 작품이라네.”
“작품은 무슨 얼어 죽을. 네 역겨운 욕망이 만들어 낸 괴물이겠지.”
“아냐. 아니야.”
노인이 눈을 희번덕거리며 쉰 목소리를 냈다. 말 중간중간 듣기 싫은 웃음소리가 섞여 들었다.
“내가 맨 처음 저놈을 손에 넣고 얼마나 기뻐했는지 알아? 아, 이제 세상 모든 부는 내 손안에 들어오겠구나. 권력자들도 정치인들도 약 한 알만 달라며 내 발치에 무릎 꿇겠구나. 그때 느낀 희열만 생각하면 지금도… 히, 히….”
노인의 욕망은 생각보다 더 추접스러웠다. 회장은 치료제를 이용해 모든 돈을 쓸어 담고, 권력마저 손아귀에 넣으려 했다. 태유준은 더 이상 그의 입에서 나오는 역겨운 자아도취성 발언을 듣고 싶지 않았다.
태유준이 성큼성큼 걸어가 가위를 그의 관자놀이에 가져다 댔다.
“제발 그 입 좀 닥쳐.”
“왜. 내 말이 너무 매력적이라서 귀가 간지러운가? 너희도 약을 손에 넣고 싶다면 장 박사 떼어 내고 내 아래에서 일해.”
“닥치라고!”
태유준이 욱하는 순간이었다. 문 밖에서 우르르, 남자들이 달려오는 발소리가 났다. 회장이 책상 아래 위급 경보 버튼을 누른 것이다.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안에 계십니까!”
남자들이 밖에서 문을 두드렸다. 원혁과 태유준은 빠르게 방 안을 훑었다. 만약 남자들이 문을 깨부수고 들어온다면 퇴각로가 없었다. 이곳은 10층, 막말로 뛰어내릴 수조차 없었다.
“히, 히… 너희는 도망칠 수 없다. 이제 내 부하들이 네놈들을 잡아다 죽일 거야. 아니다. 좀비 재료로 삼을까?”
“우리 예쁜이가 너더러 닥치라고 두 번이나 말했는데, 더럽게 시끄럽네 노친네.”
“뭐?”
탕. 예고 없이 총성이 울려 퍼졌다. 원혁이 쏜 곳은 회장이 아니라 좀비가 들어 있는 관이었다. 파열음과 함께 관이 산산조각 났다.
“뭐, 뭐 하는 짓이야!”
“네가 자랑하는 피조물 좀 네 품에 안겨 주려고.”
원혁이 중화도를 휘둘러 좀비의 팔다리를 묶은 끈을 잘라 냈다. 그러자 좀비는 몸을 일으켜 목을 두둑, 꺾더니 총알 같은 속도로 일어났다.
“끼에엑!”
“으, 으아악!”
이 방 안에 좀비 기피제를 뿌리지 않은 자는 한 명, 회장뿐이었다. 좀비 1호는 먹음직스러운 냄새를 풍기는 노인을 향해 가공할 속도로 달려갔다.
좀비와 회장이 한 덩어리로 얽혀 바닥에 쓰러졌다. 좀비가 회장의 목덜미를 물었다.
“으아아악!”
회장은 귀청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크게 소리를 질렀다. 좀비는 그의 코를 베어 먹고, 손을 씹었다. 으드득, 소름 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회장의 눈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패닉에 빠진 것이다.
“아, 안 돼.”
좀비는 그러고도 배가 고픈지 회장을 계속해 물어뜯었다. 회장은 다급하게 전면 창을 향해 뛰었다. 하지만 가는 길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좀비가 회장의 정장 재킷을 붙들고 늘어졌다.
회장은 좀비를 발로 가차 없이 걷어찼지만, 그의 피조물답게 좀비는 끈질겼다. 결국 좀비가 회장의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떨어져! 나한테서 떨어지라고!”
회장은 사력을 다해 손잡이를 비틀어 열었다. 창을 열 수 있는 손잡이였다. 제정신이 아닌 회장은 그저 문을 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찼다.
“꾸에엑!”
좀비가 한순간 회장의 몸을 치받았다. 때마침 잠금이 풀린 창문이 활짝 열렸다. 회장의 몸은 손쓸 새도 없이 창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를 강하게 끌어안고 있던 좀비가 뒤를 따랐다.
“아아아악!”
아득히 먼 곳에서 절규가 들려왔다. 그리고 이내 쾅 소리가 났다. 좀비와 회장이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였다.
태유준이 잽싸게 달려 나가 창 아래를 내려다봤다. 회장과 좀비가 한 덩어리가 되어 얽혀 있었다.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것으로 보아 둘 다 즉사한 듯했다.
“이제 여기서 나가야 해.”
“도망치지 말고 이 새끼들 틈에 섞여요.”
“좋아. 그럼 내가 문을 열게.”
원혁과 태유준이 안쪽의 잠금쇠를 열었다. 그러자 열댓 명도 넘는 경비병들이 밀물처럼 집무실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두 사람은 잠금쇠를 열자마자 바로 문 뒤로 몸을 피하며 경비병들의 시선을 피했다. 경비병들은 원혁과 태유준이 외부인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신경을 빼앗긴 탓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회장님이 안 계시잖아.”
“실험체 1호도 사라졌습니다.”
“창문, 창문이 열려 있습니다.”
경비병들은 큰 충격을 받은 듯 우왕좌왕했다. 원혁과 태유준은 그들 사이를 정신 사납게 돌아다니다가 눈치를 봐서 한순간 복도로 내달렸다.
그다음부터는 숨 막히도록 달리는 일의 연속이었다. 10층에서 지상 1층까지 단숨에 내려온 그들은 숨을 고를 새도 없이 바로 생산 설비를 찾기 시작했다.
“공장, 좀비 공장을 폭파시켜야 해.”
“일단 좀비들이 어디 있는지부터 알아야 합니다.”
분명 1층에 생산 설비가 있을 것이므로, 두 사람은 정신없이 건물 안을 뛰어다녔다.
“저기야!”
쉴 새 없이 뛴 덕에 원혁이 먼저 생산 라인을 찾았다. 한밤중인데도 불이 들어와 있어 다행이었다. 유리창 너머로 점프 슈트 좀비 수백 마리가 컨베이어 벨트에 실려 있는 게 보였다. 벨트 위 좀비들은 소란을 피우지 못하도록 사지가 꽁꽁 묶여 있는 모습이었다.
“젠장 할 놈들. 인형 만드는 것도 아니고 이딴 식으로 공장을 돌리고 있었어?”
“이렇게 하면 남가도 공장보다 훨씬 대량으로 빨리 생산할 수 있겠는데요.”
“당장 부숴야 해.”
태유준은 어릴 때 딱 한 번, 수입 탄산음료 공장에 견학을 가 본 적이 있었다. 그때의 흐릿한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공장은 대부분 자동화 설비가 되어 있어, 거대한 탱크와 컨베이어 벨트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리고 원료가 지나가는 파이프. 그 안에 탄산음료가 가득 들어 유리병이나 페트병에 주입하는 기기까지 연결이 되어 있었다. 어린 마음에 그 과정이 얼마나 신기했는지, 아직도 그 밸브에서 음료가 나오던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이 공장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용도가 음료수 공장이었기 때문에 커다란 배합 탱크와 그에 연결된 밸브가 어지럽게 공장 안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저 안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아요. 저기 배합 탱크에 음료수가 있다면 제가 손을 담그면 됩니다. 그런 다음에 파이프를 터뜨리면 돼요. 저 라인에 누워 있는 좀비들이 다 돌이 될 겁니다.”
태유준의 계획은 기발했지만, 그만큼 위험했다. 이곳 좀비들은 남가도 좀비들처럼 약에 절어 있지도 않았고, 얌전히 말을 듣는 것 같지도 않았다.
아직 마취 전인 것인지 놈들은 구속 벨트를 벗으려 했고, 팔다리를 격렬하게 움찔거렸다.
“유준아, 위험해.”
“전 이미 산전수전 다 겪은 몸이에요. 저 탱크에 쳐들어간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태유준이 원혁의 손을 꽉 잡았다.
“형. 함께 가 주세요.”
“네가 그렇게 말 안 해도 가.”
원혁이 태유준의 입술에 짧게 입술을 겹쳤다.
“가자!”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출입구를 향해 뛰었다.
안으로 들어오자 시체 썩는 악취가 코를 찔렀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기피제를 뿌린 덕분인지 좀비들은 두 사람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듯하다는 점이었다.
“저게 배합 탱크 같습니다.”
“같이 가.”
거대 공장답게, 이곳의 탱크는 남가도의 옥상 물탱크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규모였다. 거의 3미터 이상의 사다리를 타고 꼭대기까지 올라간 태유준은 긴장으로 숨이 막혀 왔다. 다리가 덜덜 떨리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탱크 안에 물이 보이자, 모든 긴장이 눈 녹듯 사라지고 안도가 찾아왔다.
이게 내가 세상을 도울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