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늘에서 좀비가 비처럼 내려와-88화 (8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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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준아.”

“…형제님.”

두 사람은 더 이상 무언가를 인내할 힘이 없었다. 뜨거운 입술과 입술이 겹쳐졌다. 머릿속의 퓨즈가 끊기는 것 같아, 태유준은 몸을 떨었다. 두 사람은 숨 막히는 키스를 하면서 샤워기 아래로 갔다.

시리도록 차가운 물이 쏟아져 원혁과 태유준의 정수리를 적셨다. 세찬 물줄기가 온몸의 신경을 깨어나게 했다. 태유준은 원혁의 등이 구원의 동아줄이라도 되는 양 강하게 매달렸다. 원혁은 그런 태유준의 목뒤를 받치고 뜨거운 키스를 퍼부었다.

애절한 눈빛으로 원혁을 올려다보며, 태유준은 그의 온몸을 어루만졌다. 남가도에서부터 묻히고 왔을 핏방울이 욕실 바닥을 분홍색으로 물들였다.

피와 먼지를 떨어내고 나니, 원혁의 몸 곳곳에 난 상처가 드러났다. 태유준은 안쓰러운 마음으로 그 상처들을 어루만지다가 제 입술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상처가 낫기 시작했다.

“읏….”

원혁의 아랫배에도 상처가 있어, 태유준은 무릎을 꿇고 앉아 그의 복부에 입술을 가져다 댔다. 그러자 곧 그곳에 새살이 돋아났다.

태유준은 좀비에게 물어뜯겼던 원혁의 왼손을 가져다가 품에 껴안은 후, 아주 오랫동안 그 손의 구석구석을 입술로 감쌌다. 원혁의 손바닥에는 좀비의 이빨 때문에 난 구멍이 있었다. 태유준은 일말의 흉터도 남길 수 없다는 의지를 담아 그의 손바닥을 핥았다.

“태유준.”

머리 위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태유준이 고개를 들었다. 정염에 번들거리는 눈빛과 눈빛이 마주치며 스파크가 튀었다.

“따라와.”

더는 참지 못하고, 원혁은 태유준을 잡아 일으켰다. 욕실 문을 열고 침대로 걸어가는 길이 영겁 같았다.

원혁이 태유준을 침대 위로 던졌다. 새하얀 시트를 깔고 누운 태유준, 온몸이 젖어 번들거리는 태유준은 원혁의 이성을 마비시키기에 충분했다.

“형…제님.”

“그렇게 부르지 마.”

원혁이 태유준 위로 엎드리며 으르렁거렸다.

“그러면… 형?”

“사람 미치게 하려고 환장했군.”

침대에 누워 자신을 올려다보는 태유준은 늪에 핀 장미와는 비견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웠다. 원혁은 사납게 태유준을 덮쳤다. 태유준은 기꺼이 그를 맞이하며 원혁의 목에 팔을 둘렀다. 빈틈없이 맞물린 두 육체에서 열감이 피어올랐다.

* * *

태유준은 따뜻하다 못해 뜨거운 온기에 눈을 떴다. 창문에 암막 커튼을 쳐 놓은 터라 사위가 캄캄했고, 시야에 제대로 들어오는 게 없었다.

“아….”

온몸이 나른하고 피곤했다. 그래서인지 뒤쪽에서 자신을 감싸 안은 온기에 더욱 정신이 팔렸다.

왜 이렇게 따뜻하지. 이 호텔에는 난방이 공급되지 않을 텐데.

태유준은 졸린 눈을 비비며 뒤돌았다. 그러다가 흠칫 놀랐다. 원혁이 눈을 감고 제 쪽으로 돌아누워 있었다.

간밤의 일은 꿈이 아니었어. 원혁이 살아 돌아온 것도, 내가 그를 씻긴 것도, 그리고 이어진… 불같은 결합까지도.

“더 자자.”

원혁이 굵직한 팔을 들어 태유준의 허리를 꽉 짓눌렀다.

“형제님, 아니, 형.”

“…너랑 조금 더 이러고 있고 싶다.”

원혁이 태유준을 추슬러 품에 깊게 안았다. 까칠하고 단단해서 유난히도 남자다운 입술이 태유준의 날개뼈를 스쳤다. 태유준은 전신에 전기가 오르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몸 이곳저곳에 입을 맞추는 행위가 반복되자니 자기도 모르게 이불을 움켜쥐었다.

“아.”

그러다가 신음이 새어 나갔다. 원혁이 감고 있던 눈꺼풀을 열었다.

“아침부터 나 자극하는 거야?”

“아, 아니….”

말을 하다가 가로막혔다. 원혁의 손가락이 태유준의 입술을 더듬은 탓이었다. 길고 굵직한 손가락이 여린 입술을 꾹 눌렀다가, 가볍게 윤곽을 덧그리더니 이윽고 입 안을 파고들었다.

“으음….”

침이 흥건해져, 태유준은 본능적으로 손가락을 빨았다. 그러자 원혁이 들릴 듯 말 듯 한 크기로 욕을 지껄였다.

“아침부터 나 자극하는 거 맞네.”

“아니, 아니라니까요.”

“유준이가 먼저 형 유혹했어.”

어느새 태유준을 똑바로 눕히고 그 위로 자리를 잡은 원혁이 한쪽 눈을 찡긋했다. 그가 태유준의 한쪽 발목을 붙잡아 제 입가로 가져왔다.

“아!”

아프지 않고 딱 간지러울 만큼만 뒤꿈치를 깨물고 핥아 주니, 태유준은 딱 죽을 맛이었다.

“유준이가 책임져야겠다.”

“형, 제발… 으음, 형…!”

다시 두 몸뚱어리가 겹쳐졌다. 지난밤 미처 해소되지 못한 격정을 담은 침대가 삐걱거렸다.

* * *

지쳐 잠든 태유준이 다시 눈을 뜬 것은 오후의 일이었다.

“허리 아파….”

기운 없이 중얼대자 원혁이 태유준에게 물을 가져다주면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이 굉장히 부드럽고 자상해 태유준은 어리광을 부리고 싶었다.

“고마워요, 형.”

“이제 형 소리 잘하네.”

“당연하죠. 어제도 그랬고 아까 아침에도 형 소리 안 할 때마다….”

간밤과 아침에 벌어졌던 일을 떠올리자 태유준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원혁은 그런 그의 볼을 아프지 않게 깨물고 옆에 누웠다.

서로의 얼굴을 하나하나 곱씹듯 뜯어보다가, 태유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요?”

“이야기하자면 복잡해. 그때 좀비들하고 싸움이 꽤 길었어. 다 해치웠나 싶으면 나무에서, 절벽에서 우수수 떨어지더라고. 해치워도 해치워도 끝이 없는 거야.”

원혁이 그때를 회상하며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그래서 난 내가 놈들을 다 처리하기 전에 좀비로 변할 거라고 각오했었어. 그런데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변화가 없더라고. 좀비들을 다 해치우고 외진 곳으로 몸을 피해서 조금 더 기다려 봤는데도 마찬가지로.”

“그럼 설마… 저처럼 아무 일이 없었던 건가요.”

태유준의 물음에 원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혼자 남은 듯한 외로움. 쓸쓸함. 그것이 바로 원혁이 좀비에 물리고 홀로 남가도에 남았을 때 느낀 감정이었다. 미국에 살던 시절 못된 형제들에게 끌려가 길을 잃은 날, 황량한 도로를 하염없이 걸으며 엄마를 찾았을 때도 그렇게까지 외롭진 않았었다.

이대로 태유준과 영원히 유리되어 다른 세계의 존재가 된다는 사실이, 끔찍하게도 쓸쓸했다. 실로 오랜만에 느껴 보는 낯선 감각이었다.

하지만 육체가 썩어 들어가지 않고 이지 또한 온전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는 구원받은 기분이었다. 어떤 이유로 살아남았는지 몰라도, 중요한 건 인간으로서 삶을 더 이어 나갈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였다.

“너한테 일어났던 일이 나한테도 일어난 것 같아.”

원혁이 태유준의 손 위로 손등을 겹쳤다. 온기가 맞닿는 느낌이 좋았는지, 그는 태유준의 손을 끌어다가 손가락 마디마디마다 입을 맞췄다.

“정신을 차린 다음에는 일단 섬을 탈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배를 구하기 시작했고 해안가에 방치된 배 중에 그나마 쓸 만한 걸 타고 섬을 빠져나왔어. 그리고 인천항에 왔는데 우리 트럭이 없더라고. 유준이 네가 무사히 어딘가로 갔겠구나. 그때 확신했어.”

원혁의 눈빛에는 안도감과 애틋함이 어려 있었다.

“이 트럭을 타고 갈 사람은 세상에 너밖에 없으니까. 그때 굉장히 기뻤어.”

“형….”

태유준의 눈가에 눈물이 차올랐다. 원혁은 그런 그의 눈가를 닦아 주었다.

“거기서 적당한 차 훔쳐 타고 여기까지 왔어.”

“어쩌다가 여기로 와야겠다고 생각한 거예요?”

“네가 여기 있을 것 같았어.”

원혁이 낮게 웃으며 말했다.

“왜요?”

“왜긴. 예전에 우리 약속했던 것 생각 안 나? 무슨 일 있어서 찢어지면 여기서 다시 합류하기로 했잖아.”

태유준의 눈가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약속을 기억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

“…형, 나는… 난 정말.”

태유준이 주먹을 들어 자신의 심장께를 쳤다.

“여기가, 여기가 찢어지는 줄 알았어요.”

“유준아.”

원혁이 태유준을 꽉 감싸 안았다. 태유준은 그의 품으로 빨려 들어가며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런데 형이 이곳을 기억하고 약속을 지켜 줘서… 난, 난….”

태유준이 원혁의 등과 목덜미에 매달리듯 안겼다. 이제 알았다. 이 호텔방이 아니라 이 남자의 품이 은신처고 대피처다. 이 험난한 세상의 유일한 파라다이스다. 신께서 나를 구원하기 위해 보내 주신 이 남자가.

“…사랑해요.”

태유준이 떨리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원혁은 잠시 말이 없었다.

“말하지 않은 거 후회했어요. 고백 미루지 말걸, 단 한 번이라도 사랑한다고 말해 줄걸 하고.”

원혁은 몸을 떨며 우는 태유준을 품 안에서 꺼냈다. 작은 얼굴을 두 손으로 소중히 감싼 뒤, 그가 피식 웃었다.

“선수 뺏겼네. 내가 먼저 말하려고 했는데.”

“형.”

“유준아, 사랑해.”

태유준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대로 심장이 부풀어 올라 풍선처럼 터져 버릴 것도 같았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일평생 누구에게도 듣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말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들었다.

나를 있는 그대로 아껴 주고 보호해 주는 남자. 내가 되살려 낸 나의 구세주. 이 남자가 나를 사랑한다.

“사랑해요, 사랑해.”

“나도.”

태유준은 마음껏 오열했다. 원혁은 그런 그의 등을 끝없이 쓸어내려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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