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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좀비가 비처럼 내려와-83화 (8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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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가 절벽에 시커먼 옷을 입은 자들과 점프 슈트를 입은 자들이 개미 떼처럼 우글거리고 있었다. 팔다리 관절을 멋대로 튕기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절대 사람은 아니었고 죄다 좀비였다.

그들이 서 있는 곳의 높이는 대략 100미터, 모여 있는 수는 30여 마리.

높은 곳을 좋아하는 좀비들. 놈들은 나무나 건물, 짐 위에 올라탔다가 낙하하는 방법으로 사람을 공격하고는 한다. 지금 그 짓거리를 하려고 일부러 높은 데 올라갔구나. 그 생각을 하자 태유준은 오싹 소름이 끼쳤다.

“혀, 형제님…!”

태유준이 외치는 순간과 동시에 좀비들이 우수수 낙하하기 시작했다. 끼에엑, 꾸아악. 듣기 싫은 소리를 내면서 날개 없는 벌레처럼 놈들은 땅을 향해 펄쩍 뛰어내렸다. 원혁은 그 기척에 퍼뜩 위를 올려다보았다.

“형제님!”

태유준이 간절하게 외쳤다. 하지만 때는 늦었다. 땅에 무사히 착지한 놈들이 순식간에 원혁을 에워쌌다. 한 놈이 원혁의 몸을 끌어안듯이 결박했다. 그러자 한 놈이 그의 손을 끌어다 제 아가리에 집어넣었다.

원혁은 인상을 쓰고 좀비를 걷어찬 다음, 자신을 결박하고 있던 좀비를 떼어 냈다. 그는 곧바로 품에서 중화도를 꺼내 휘둘렀다. 하지만 칼을 휘두르는 그의 손에서는 피가 뚝뚝 흐르고 있었다. 좀비에게 물렸다는 증거였다.

태유준은 머리가 미치도록 어지러웠다. 세상이 빙빙 돌고 귀에는 이명이 울려 퍼졌다. 이럴 수는 없다.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다.

“유준아, 가.”

“형제님….”

“나 이미 물렸어! 가라고!”

원혁이 소리 높여 외쳤다. 태유준은 이 현실을 믿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슬로 모션처럼 보였다. ‘어서 타!’, ‘나 버리고 가라고!’ 하는 원혁의 고함도 환청처럼 들렸다.

“아… 혀, 형제님.”

태유준이 멍하니 있다가 원혁 쪽으로 뛰어가려 하자, 장 박사가 태유준의 팔뚝을 잡았다.

“안 된다!”

“형제, 형제님이…! 같이 가야 돼요. 같이!”

태유준이 울부짖었다. 그가 발버둥을 치자 박광식 형제가 그를 양쪽에서 붙들고 질질 끌었다.

“그냥 가!”

“안 돼요!”

“당장 출발해, 어서!”

“싫어!”

태유준은 끌려가는 와중에도 처절하게 울부짖었다.

여기까지 와서. 이제 다 됐는데 왜 하필 지금인가.

이렇게 허무하게 당할 줄은 몰랐다. 원혁이 당할 것이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다. 태유준의 마음속에서 원혁은 무적이나 다름없었기에, 이 현실이 도저히 실감 나지 않았다.

“박사님. 당장 유준이 데리고 가세요. 어서!”

“싫, 어…. 못 가.”

아직 원혁과 태유준 둘 사이에는 해 보지 않은 것이 많았다. 약속만 해 놓고 지키지 못한 일이 셀 수도 없이 많았다.

트럭에 남겨 놓은 고구마도 구워 먹지 못했다. 화창한 바닷가에서 칵테일을 마시지도 못했다. 그건 세상이 정상으로 돌아온 이후에, 태유준이 꼭 해 보고 싶은 일이었다. 원혁에게는 차마 털어놓지 못한 비밀이었지만.

그뿐이 아니었다. 말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아직 사랑한다는 말을 들려주지 못했는데. 날 놀릴 때마다 내심 두근거렸던 순간들에 대해 말해 주지 못했는데 어떻게 이대로 이야기가 끝나 버린단 말인가.

어둡고 또 적막한 이 세상에, 살아남는 것만이 전부가 되어 버린 이 지옥에 유일하게 달콤한 것이 있다면 원혁과의 시간이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그 시간은 선명한 빛의 자국을 남겼다.

…그랬는데 이제는 다 끝이다. 모든 것이 허무로 귀결된다. 태유준은 다시 한번 어지럼증을 느꼈다. 멀리서 원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이놈들 끌고 다른 데로 갈 테니까, 배 출발시켜!”

한편 원혁은 초조했다. 좀비에 물린 이 상황 자체보다도, 자신이 좀비가 되어 이지를 잃고 태유준을 공격할까 그게 더 두려웠다. 그런 일만큼은 일어나서는 안 됐다.

모든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가고 세상이 평화를 되찾으면 꼭 햇빛 밝은 바닷가에 데려가고 싶었는데. 이름 어려운 칵테일을 먹이면서 놀리고 싶었는데. 그러다가 살짝 취한 태유준의 입술에 키스하면 얼마나 좋을까, 그게 원혁이 요즘 하던 상상이었다.

하지만 그 꿈은 이제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좀비에게 제대로 손을 물린 이상, 자신도 곧 좀비로 변할 것이다. 그 전에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 가지뿐. 자신의 의지로 움직일 수 있을 때 좀비들을 최대한 멀리 유인해 배에 탄 사람들의 안전을 지켜야 한다. 태유준이 무사히 이곳을 떠나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다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원혁이 중화도를 크게 휘둘렀다. 좀비들이 시커먼 피를 흘리며 소리를 질러 댔다. 원혁은 일부러 더 요란하게 좀비를 처단하며 다시 공장 쪽으로 달렸다. 좀비들은 원혁의 냄새에 미쳐 날뛰며 그를 따라 달렸다.

* * *

조종실에서 키를 쥐고 선 태유준은 조용히 울었다. 정확히 말하면 소리 내서 울 힘조차 없다고 보는 게 맞겠지만.

“유준아.”

장 박사가 태유준의 어깨에 손을 짚었다. 태유준은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스터 어빙의 희생을 헛되이 여기지 말자. 그 사람이 아니었으면 우린 아마 다….”

“…예.”

“기도를 해 드리자. 그것만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같다.”

장 박사가 태유준을 두고 조종실을 나섰다. 탁, 문 닫히는 소리와 함께 태유준은 참아 왔던 오열을 터뜨렸다. 다른 사람이 들을까 봐 입을 틀어막은 채로 그는 울었다.

해가 진다. 낙조가 작은 섬 위를 새빨갛게 물들인다. 그 섬은 점점 멀어져, 이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작아진다.

태유준은 가까스로 키를 움켜쥐고 입술을 깨물었다.

원혁이 저곳에 남아 있는데, 나는 그에게서 멀어지려고 키를 잡고 있다. 날 살려 준 사람이 저기 있는데. 나는 함께 남지 못했다.

지금쯤 원혁은 좀비로 변했겠지. 아마도 그럴 것이다. 물리는 걸 두 눈으로 똑똑히 봤으니까.

그렇다면 그의 기억 속에서 나도 지워지는 걸까?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추운 가을날도, 안토니오로부터 날 지켜 주었던 순간도, 내게 장난스럽게 치근덕거리던 장면들도, 가끔은 날 위로해 주던 나날도 모두?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에게 의문을 가져 봤자 의미는 없다. 태유준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굳이 묻고 싶었다.

좀비가 되어 버리면, 그 사람 안의 세계는 어떻게 되나요. 새까만 어둠이 되어서 사라져 버리는 건가요. 아무것도 남지 않는 건가요.

* * *

“동가도입니다. 조심히 내리세요.”

배가 가장 먼저 닿은 곳은 동가도였다. 포로들은 땅에 발을 딛자마자 실신할 것처럼 울어 젖혔다. 바닷가에서 때 아닌 소란이 일어나자 마을 사람들이 달려 나와 남자들을 살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살아 돌아왔어!”

“아이고, 어떡하면 좋아…!”

섬에 남겨졌던 여자들의 통곡과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자그마한 항구를 가득 메웠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스무 명 남짓한 남자들이 배에 대고 인사를 했다. 태유준은 조종실 창밖으로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화답할 기력이 없어 침묵했다. 그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남가도를 떠나고부터 매 순간 가슴이 욱신거려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사람들을 구한 것에는 당연히 한 점 후회도 없다. 하지만 함께 있어야 할 사람이 없다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한 번 숨을 들이쉴 때마다 슬픔이 무거운 짐 덩이처럼 그의 마음을 짓눌렀다. 그것은 태유준이 태어나 처음 겪어 보는 종류의 상실감이었다. 그는 습관처럼 옆을 돌아보았다가, 그곳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숙였다.

배는 이어서 북가도에 들러 많은 사람을 내려 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출발지였던 서가도에 입항했다.

“고맙습니다.”

“살려 주신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뭍에 내리자마자 사람들은 감사 인사를 하고는 제각기 자신의 집을 향해 달려갔다. 태유준은 그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집으로 가는 도중에 가족들을 만나 부둥켜안고 우는 사람들도 있었다. 태유준은 그 모든 것이 남 일처럼 여겨졌다.

“정말 고맙습니다. 선생님이 아니었더라면 저와 동생은 살아 돌아오지 못했을 겁니다.”

박광식이 배에서 내리는 태유준의 손을 잡고 울었다. 태유준은 갈라지고 가라앉은 목소리로 답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입니다. 감사할 일이 아닙니다.”

인사를 마치고 고개를 돌린 그때, 태유준은 낯익은 얼굴을 발견했다. 서가도에 처음 왔을 때 마주쳤던 소년, 지훈이었다.

“아빠!”

지훈은 태유준에게 뛰어오는 게 아니었다. 배에서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하선하는 남루한 남자에게 달려와 안겼다.

남가도에서 구해 낸 사람들 중에 지훈이의 아버지도 있었구나. 다행이다. 태유준은 멍들고 상처받은 가슴에 작은 기쁨이 피어나는 것을 느꼈다.

“지훈아, 지훈아…!”

“아빠! 어디 갔다가 이제 왔어!”

지훈이가 울었다. 어린아이답게 순수하고 절박한 울음이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보다가 태유준은 다시금 원혁을 떠올렸다. 처음 지훈이를 만나고 지훈이의 집에 갔을 때, 내 곁에는 원혁이 있었는데 지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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