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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좀비가 비처럼 내려와-82화 (8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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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사라져라 저주받은 존재들이여, 소멸해 버려라.

마음속으로 간절한 기도가 뒤따랐다. 태어나 이렇게까지 절실하게 소망을 빌어 본 적이 있었던가. 아마도 스물세 해를 통틀어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숫자로 열을 센 다음, 태유준은 시뻘게진 손을 빼냈다. 그리고 있는 힘을 다해 외쳤다.

“지금입니다! 밸브 열어요!”

“예!”

형제가 미친 듯한 속도로 밸브를 풀기 시작했다. 끼릭, 끼릭. 녹슨 쇳소리가 귓가를 사납게 긁으며 물이 조금씩 탱크 바깥으로 새어 나왔다. 태유준도 형제와 힘을 합쳐 밸브를 돌리기 시작했다.

원혁이 쥐고 있는 호스를 통해 소량의 물이 흘러나왔다. 잠시 후에는 줄줄, 이윽고 콸콸 쏟아졌다. 바닥을 거세게 때릴 정도로 물이 흘러나왔다. 원혁은 팔의 힘으로 호스를 단단히 붙들었다.

“꾸에엑…?”

“꿰에엑!”

물소리에 자극받은 좀비들이 고개를 꺾어 원혁을 쳐다봤다. 호기심을 느낀 것인지 원혁이 있는 화단 쪽으로 뛰어오는 좀비도 있었다. 쿵, 쿵, 좀비들이 만들어 내는 발소리가 요란했다.

좀비들이 아가리를 쩍 벌리고 원혁에게 돌진했다. 원혁은 이를 악물고 놈들에게 호스를 겨누었다. 촤아악, 소리와 함께 물대포가 좀비들을 덮쳤다.

좌에서 우로 물살이 좀비 떼를 스칠 때마다 놈들의 몸뚱이가 회색 시멘트 빛깔로 굳었다. 정통으로 물을 뒤집어쓴 놈, 상체와 하체 중 한쪽만 조준당한 놈, 어설프게 몇 방울만 맞은 놈들이 제각기 괴성을 질러 댔다.

“끼에에!”

“끄아!”

섬 전체를 날려 버릴 만큼 크고, 기괴한 음성이 산 자들의 귀청을 찢었다.

좀비들은 돌처럼 굳어 가는 와중에도 누군가를 베어 물겠다고 아등바등 발버둥을 쳐 댔고, 자기들끼리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원혁은 그런 놈들에게 물세례를 아끼지 않았다. 놈들은 사정없이 고꾸라졌다.

원혁이 호스를 총처럼 조준해 좀비들을 쓸어버리는 동안 옥상에 있던 태유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박광식과 박광민 형제는 보고도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소스라치게 놀랐으나, 태유준이 아까 박광식의 동생을 테스트할 때처럼 물탱크에 특수 약품을 섞었다고 거짓말을 하니 이내 납득하는 듯했다.

족히 500마리는 되었을 좀비들이 거의 다 처리되었다. 태유준과 형제는 빠르게 1층으로 내려가 원혁과 합류했다.

“작전 성공이네.”

“다행입니다.”

두 사람이 서로의 안위를 살피려는 때였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 한 명이 멀쩡한 걸음을 하고 손에는 총을 쥔 채로 다가왔다. 이 사달이 났는데 멀쩡한 자가 있다니, 원혁은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뭐야, 아직도 남았어?”

원혁이 중화도를 쥐며 공격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검은 옷이 두 손을 번쩍 들며 항복을 표시했다.

“나야, 날세.”

“박사님!”

태유준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상대는 검은 옷으로 위장한 장 박사였다.

“박사님이라고 하셨어야죠. 하마터면 이 사람 칼에 맞으실 뻔했어요.”

태유준이 장 박사에게 달려가 그를 살폈다. 얼굴이 푸석하고 몰골이 말이 아니었으나, 그래도 멀쩡하게 걸어 다니고 있으니 무사하다고 봐야 했다.

“이제 빠져나가는 것만 남았군.”

“네. 놈들은 처치된 것 같으니까요.”

“천국 가려면 여기서 포인트 더 쌓아야 하고. 맞지?”

원혁이 눈썹을 까딱였다. 산 사람들을 감옥에서 꺼내 주자는 소리였다. 어차피 원혁과 태유준이 타고 온 배는 수용 인원이 굉장히 큰 배였다. 잘하면 지하 감옥에서 본 산 사람들을 다 태울 수 있을 듯했다.

“어떻게 보면 다행이네요. 산 사람들이 격리돼 있었던 게.”

방금 전의 사태로 좀비들과 검은 옷들만 죽었으니, 산 사람들을 구하는 게 훨씬 수월해졌다. 태유준은 장 박사와 형제들에게 먼저 배에 가 있으라 말했다.

“신부님은 어쩌시려고 저희더러 먼저 가라 하십니까.”

“유준아, 위험하다.”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이 형제님과 함께 배로 가겠습니다. 산 사람들을 구하고자 함이니 이해해 주십시오.”

태유준의 결의에 찬 말투에, 나머지 사람들은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 아니면 포로들을 데리고 나갈 수 없는 건 사실이었다.

“그럼, 조심히 대기하고 계십시오. 얼른 가겠습니다.”

태유준은 장 박사와 형제들의 손을 잡고 짧은 기도를 올린 다음 뒤돌았다.

원혁과 그는 다시금 경사로 입구를 통해 지하로 내려가기로 했다. 계단에 비해 무슨 일이 있을 때 도망치기가 쉽고 동선이 단순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지하 1층에 있었죠?”

“맞아.”

“그럼 한 층만 내려가면…. 잠시만요.”

앞장서 걷던 태유준이 쉿, 소리를 내며 몸을 낮췄다. 원혁은 즉시 기민하게 사방을 살폈다. 경사로가 끝나고 지하 감옥이 시작되는 입구에 한 남자가 웅크리고 있었다. 빨간 헬멧을 쓴 것으로 보아 관리직이지 싶었다.

“허, 헉…!”

빨간 헬멧은 원혁과 태유준을 보자마자 경기를 일으켰다. 그는 방금의 물세례 사태로 크게 놀라 구석에 처박혀 있는 중이었다. 좀비가 물을 맞고 돌이 되다니,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인체에 바이러스를 주입해 좀비를 만드는 건 이해가 갔다. 바로 자신들이 그런 일을 벌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걸 돌로 만들어 부수어 버리는 건 이해가 안 갔다. 그는 사태의 장본인인 태유준과 원혁이 너무나 두려웠다. 무슨 짓을 한 건지는 몰라도 자신도 그런 신세가 될까 봐 덜덜 떨고 있는 것이었다.

“사, 살려….”

“죽이러 온 거 아닌데, 아저씨.”

원혁과 태유준이 빨간 헬멧 앞으로 저벅저벅 다가갔다. 그러자 빨간 헬멧이 몸을 웅크리며 비명을 질렀다.

“저기. 아저씨한테 관심 없으니까 오바하지 말고.”

“네, 네 알겠습니다. 살려만 주세요.”

“열쇠 있지?”

원혁이 손바닥을 내밀었다. 빨간 헬멧은 원혁의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거렸다. 주머니 안에 열쇠 꾸러미가 있긴 했지만 이걸 함부로 원혁과 태유준에게 건네도 되는지 확신이 없었다.

그러나 곧바로 날아온 원혁의 어퍼컷이 없던 확신을 만들어 주었다.

“억!”

“열쇠 내놔.”

“기절한 것 같은데요?”

힘 조절이 어려웠던 관계로, 빨간 헬멧은 목이 꺾인 채 기절했다. 태유준은 그를 위해 기도할 시간 따위 없었기 때문에, 빠르게 남자의 주머니를 뒤졌다. 열쇠 꾸러미가 한 개 나왔고, 은색 열쇠들 사이에 홀로 눈에 띄는 황금색 열쇠가 하나 있었다.

“느낌이 이 금색 열쇠 같아요.”

“빨리 가 보자.”

“네.”

두 사람은 지하 감옥의 문으로 다가갔다. 안쪽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로 가득 차 있었다.

‘대체 무슨 일이야. 바깥이 엄청 시끄러웠어. 우리 다 죽는 건가?’

불안과 공포에 휩싸인 자들은 원혁과 태유준을 보고도 놀랐다.

“뭐, 뭐가 어떻게 돼 가는 거야.”

“우릴 한꺼번에 죽이려는 거야?”

태유준은 빈손을 들어 보이며 무기가 없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진정하세요. 저희는 여기서 일하는 인간들이 아닙니다. 바깥에서 여러분을 구하러 온 사람입니다.”

“뭐? 하지만 옷을 봐. 우릴 끌고 온 놈들하고 똑같은데.”

어리둥절해하는 사람 반, 못 믿는 사람 반이었다. 뒤이어 원혁이 나섰다.

“감방을 열어 줄 테니까 다들 해안가로 가서 초록색 배를 타.”

“열어 준다고?”

“난 빈말 안 해.”

원혁은 이미 황금색 열쇠를 정중앙에 서 있던 기둥의 열쇠 구멍에 꽂아 돌린 상태였다. 철컥 소리가 나며 각 감방의 문이 동시에 활짝 열렸다. 열쇠는 긴급 상황에 대비해 전체 감방 문을 열고 닫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었던 것이다.

“지금 좀비도 감시자도 없습니다. 하지만 언제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요. 지금이 기회입니다! 빨리 나와서 해안가로 뛰세요.”

“저, 정말입니까.”

“네. 서둘러야 합니다. 당장 나오세요.”

오랫동안 갇혀 있어서인지 포로들은 거동이 자유롭지 못했다. 비틀거리는 사람, 다리를 저는 사람들이 여럿이었다.

“어서 달리세요. 어서!”

탈옥자들이 비틀대며 하나둘씩 감옥을 빠져나왔다. 태유준이 그들의 앞머리에 서서 길을 인솔했다. 원혁은 가장 뒤에 빠져나오는 사람을 확인한 다음 열쇠를 자기 주머니에 넣었다.

족히 백여 명도 넘는 사람들이 경사로를 따라 우르르 달렸다. 비록 몸은 힘들었으나 살고 싶다는 욕망이 그들을 채찍질했다.

마침내 그들이 공장 앞마당으로 폭포수처럼 쏟아져 나왔다.

“와아!”

땅 위에 돌처럼 굳은 좀비들을 헤치고, 산 사람들은 달리고 또 달렸다. 태유준 역시 무리를 이끌기 위해 이를 악물고 앞서 나갔다. 이제 해안가까지는 불과 1킬로미터 남짓. 저 멀리서 박광식 형제와 장 박사가 손을 흔드는 게 보였다.

“여기야! 여기!”

“어서 타요!”

“다들 배에 타!”

형제들은 지친 사람들을 이끌어서 하나씩 배에 태웠다. 장 박사도 쓰러진 자들을 일으켜 세우며 격려를 지속했다. 힘이 빠져서 더는 걷지 못하는 자는 태유준이 업어서 직접 선실로 옮겼다. 그는 여러 차례 선실과 해안가를 오가며 땀을 흘렸다. 그사이 원혁이 후발 주자들을 데리고 배 근처에 도착했다.

“어서 타!”

원혁이 뒤처진 사람들에게 고함을 질렀다. 사람들은 이를 악물고, 눈물 콧물을 흘리며 마지막 힘을 쥐어짜 냈다.

포로들이 전부 승선을 마친 다음, 박광식 형제가 배에 올랐다. 이어서 장 박사가 서둘러 배에 탔다. 이제 남은 것은 태유준과 원혁뿐이었다.

“먼저 타.”

원혁이 태유준에게 손짓했다.

“형제님도 어서 타세요.”

“알았어. 지금 가.”

원혁이 뛰듯이 걸어 배 쪽으로 접근하던 때였다. 원혁을 기다리고 서 있던 태유준의 눈에 경악할 만한 광경이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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