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늘에서 좀비가 비처럼 내려와-81화 (8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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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식 씨….”

태유준이 다가와 박광식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같이 열어 봐요.”

“…네.”

두 사람이 손을 겹쳤다. 태유준은 잠시 눈을 감고 기도를 올린 다음, 문손잡이를 비틀었다. 문을 여는 손이 긴장으로 떨렸다. 이 너머에 광식의 동생이 있을지, 있다면 과연 그는 무사할지 두려움이 밀려왔다.

그리고 문을 열었을 때, 두 사람은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박광식과 아주 닮은 남자가 사지를 결박당한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광민아!”

박광식이 갈라진 목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읍! 으읍!”

하지만 박광식의 동생은 입까지 재갈로 틀어막혀 있어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광민아! 내가 풀어 줄게, 기다려.”

허둥지둥 뛰어가려는 그를 태유준이 힘껏 붙잡았다. 박광식이 태유준을 사납게 뿌리쳤다.

“왜 이러십니까. 놓으세요!”

“진정하세요. 진정해야 합니다.”

“왜요! 제 동생이 맞습니다. 어서 구해 내야 해요!”

“…이미 주사를 맞았는지 어떤지 알 수 없습니다.”

그 말을 듣고서야 박광식의 시야가 트였다. 동생의 옆에는 희한하게 생긴 실험 장비, 링거, 그리고 반쯤 채워져 있는 주사기가 있었다. 놓다 만 것인지 아닌지 남은 용량이 애매했다.

“사이렌이 울리기 전에 주사를 맞았다면 곧 좀비로 변할 거예요.”

“아… 안 돼, 안 돼!”

박광식이 머리를 감싸고 주저앉았다.

“내가 늦어서 그래. 형이… 형이 늦었어. 미안해.”

그는 자신이 늦게 와서 동생이 변을 당했다는 자책감에 시달리고 있었다. 눈물까지 흘리며 땅을 치는 모습을 보며, 원혁이 입을 열었다.

“좀비로 변했는지 아닌지 아직 확실하진 않아. 보통 30분 정도 지나야 변하니까. 그렇지만 지금 그걸 기다리고 앉아 있을 상황이 아니니 바로 확인하자고.”

“확인이라니요?”

“일단 물부터 받아야겠어.”

어리둥절해하는 박광식을 내버려 두고 원혁은 실험용 급수대의 수도꼭지를 열었다. 그는 비커를 들어 물을 한 컵 받은 다음, 태유준의 앞에 내려놓았다. 원혁의 의중을 알 수 있었다. 태유준은 물을 움켜쥐듯 비커 안에 손을 넣었다 뺐다.

“뭐 하시는 겁니까?”

“잘 들어. 지금부터 당신 동생을 테스트할 거야. 만약 동생이 이미 좀비화한 단계라면 이 자리에서 돌처럼 굳은 다음, 산산조각 나서 죽게 돼.”

“예?”

박광식은 크게 충격을 받은 듯 두 눈을 부릅떴다.

“하지만 살아 있는 인간이라면, 간단하게 증명이 돼. 물을 뿌렸을 때 아무런 변화가 없으면 멀쩡한 사람이야. 그리고 우린 그 테스트 없이는 동생을 풀어 줄 수 없어.”

“하아….”

박광식이 머리를 감싸 쥐고 몸을 웅크렸다. 얼굴은 엉망진창으로 일그러졌다.

“이 문제는 당신이 독단적으로 결정하도록 놔둘 수 없어. 좀비화가 진행되고 있다면 우리 모두가 위험해지니까.”

“맞는… 말씀입니다.”

냉정하고 이성적인 지적이었다. 만약 동생이 이미 좀비가 된 후라면 풀어 준들 의미가 없고, 오히려 역효과만 낼 뿐이다. 그러니 원혁이 하자는 대로 해야 했다.

“…광민아….”

인간인지 아닌지 짐작할 수 없는 내 동생. 그러니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이름을 불러 보았다. 입이 막힌 동생은 간절한 눈으로 형을 바라볼 뿐이었다.

박광식은 짧게 침묵을 지키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행해도 좋다는 의미였다.

“그러면 제가 실험하도록 하겠습니다.”

태유준이 앞으로 나서며 비커를 들어 올렸다. 박광식은 두 손을 모아 간절하게 빌었다. 제발 인간이기를, 자신의 동생이 괴물로 변하지 않았기만을 바랐다.

태유준이 박광민의 얼굴에 물을 부었다. 흘러내린 물줄기가 박광민의 얼굴을 적셨다. 박광민은 찬물 세례에 몸을 뒤틀고 얼굴을 찌푸리기만 할 뿐, 아무런 변화도 보이지 않았다.

“…주여.”

태유준이 탄식했다. 박광식은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어떻게 된 거죠?”

“산 자입니다. 인간이에요.”

“세상에. 광민아…!”

박광식이 한달음에 침상으로 달려가 동생을 끌어안았다. 동생의 입에서 재갈을 벗겨 주자, 지치고 갈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형….”

“그래, 형이야. 형이 너 데리러 왔어.”

“형…!”

형제가 부둥켜안고 우는 광경에 태유준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때였다. 바깥에서 폭발음이 났다. 가스통이 터졌거나 최소 화학 물질이 폭발하는 소리 같았다.

“뭐, 뭐죠?”

“여기 더 있으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나가야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광민아, 일어나. 형 붙잡고 일어나 봐.”

박광식이 동생을 부축하고, 태유준과 원혁이 앞장서 길을 뚫었다. 네 사람은 사방을 살피면서 연구동 정문까지 이동했다. 유리문 너머로 바깥 상황을 살피니 가관도 이런 가관이 없었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속수무책으로 좀비에게 살점을 물어뜯기는 중이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소리였다. 남자들이 기피제를 갖고 있다 한들, 좀비는 사람 피부와 접촉을 하면 크게 흥분해 공격 본능이 살아난다. 그런 좀비는 총 따위로 막을 수 없다. 정확하게 경동맥을 공격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하지만 이런 아비규환에서 침착하게 좀비의 급소를 노릴 여유는 없었다.

“조심해서 나가야겠는데요.”

“정면 돌파는 무리야. 퇴로를 만들어서 신중하게 빠져나가야 해.”

생각보다 더 심각한 상황에 태유준과 원혁은 머리를 맞댔다. 자신들이야 이런 상황에 이골이 났지만 박광식과 동생은 무기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일반인이다. 칼이나 총을 쥐여 줘 봤자 좀비 혹은 검은 옷의 사나이들과 제대로 전투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저놈들을 다 죽이고 배로 탈출한다는 건 말이 안 돼. 무작정 공격했다가는 분명히 우리가 다쳐.”

“맞아요. 우리 쪽은 수적으로 너무 열세입니다.”

“유준이 네 능력을 활용할 방법이 없을까….”

모두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던 때였다. 원혁의 눈에 들어오는 물건이 있었다. 화재 시를 대비해 갖춰 놓은 것인지, 건물 옥상에 거대한 물탱크가 설치돼 있었다.

“저거야. 물탱크.”

“…저거라면!”

태유준과 원혁이 시선을 교환했다. 물만 있다면 좀비들을 쓸어버릴 수 있었다.

“저 물탱크 안의 물을 죄다 성수로 바꿔. 그런 다음에 여기 있는 모든 놈들한테 흩뿌리는 거지.”

영문을 모르는 형제에게 태유준은 아주 간략하게 말을 했다. 좀비는 특수 약품을 탄 물에 약하다는 거짓말을 보태서 설명하자, 형제는 빠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너희는 다 옥상으로 올라가서 물탱크에 달린 호스 나한테 던져. 그리고 신호 주면 탱크 개방해. 내가 여기서 좀비 새끼들 물로 싹 쓸어버릴 테니까.”

“혼자서 괜찮으시겠어요?”

“나보다는 유준이 널 돕는 사람이 많은 게 나아. 넌 절대 다쳐선 안 되는 인물이잖아.”

원혁이 태유준의 양어깨를 잡고 눈을 맞췄다. 그가 말하려는 게 무슨 뜻인지는 알겠으나, 태유준은 내키지 않았다. 이곳은 좀비들끼리 물고 뜯으며 대전쟁을 벌이는 지옥 같은 상황. 상대적으로 물탱크가 있는 옥상이 더 안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지상에 남겠다니. 태유준은 여태껏 싸워 온 모든 불안과 공포를 통틀어 가장 힘든 감정과 마주해야 했다.

원혁과 떨어져서 행동을 하려니 이상했다. 뭐라고 설명할 수 없을 만큼, 아주 많이 불길했다. 태유준의 등줄기를 따라 식은땀이 흘렀다.

“어서 움직여. 저놈들이 우리 냄새 맡으면 끝장이야.”

“형제님.”

“어서. 유준아.”

원혁이 태유준의 등을 떠밀어 형제에게 넘겼다. 형제가 태유준을 재촉하듯이 밀며 다시 건물로 들어갔다. 태유준은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 * *

옥상은 여느 건물과 구조가 비슷했다. 방수 처리가 되어 있는 바닥을 가로질러 달리니 거대한 물탱크가 나왔고, 부속품으로 성인 남자 다리 굵기의 호스가 딸려 있었다.

“급수 조작 밸브네요. 이건 제가 열게요.”

박광식이 나서서 탱크를 만졌다. 그의 동생은 땅바닥에 널브러진 호스를 정리했다.

“호스를 아래에 있는 형제님께 내려 주세요. 그리고 제가 준비가 되었다고 말하면 그때 물탱크 밸브를 열어 주십시오.”

“네.”

“호스 내려갑니다! 잘 받으세요!”

박광식이 저 아래 있는 원혁에게 외쳤다. 그런 다음 그는 호스를 빙빙 돌려 호스 머리에 원심력을 실은 다음 아래로 냅다 던졌다. 원혁이 뱀처럼 길게 내려오는 호스를 타이밍 좋게 잡았다. 이제 남은 것은 태유준의 능력 발휘뿐이었다.

“물탱크 뚜껑 열어 주세요. 제가 안에 손을 집어넣을 겁니다.”

“네!”

박광식과 동생은 태유준이 안전하게 사다리를 타도록 도와주었다. 사다리를 오르는 동안, 형제가 물탱크 뚜껑을 열어젖혔다. 안에는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을 찬물이 가득했다.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는 수면에는 미약한 소독약 냄새가 났다. 물탱크 바닥이 비쳐 보일 만큼 투명한 물이었다.

이제 이 물에 내 손을 넣어, 새로운 물로 바꾼 다음 적을 없앤다. 그래야만 한다. 긴장이 온몸을 태우는 듯했지만 태유준은 필사적으로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는 몸을 푹 숙여 물속으로 손과 팔뚝을 집어넣었다. 한겨울, 실외에 놓여 있던 물은 곳곳에 살얼음이 끼어 있었다. 지독한 차가움에 태유준은 순간 숨을 멈췄다.

Effuge satana maledicte.

썩 물러가라, 저주받은 사탄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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