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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좀비가 비처럼 내려와-80화 (8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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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의 살을 실컷 맛본 놈들은 더욱 강력하게 흥분하기 시작했다. 검은 옷들은 크게 당황해 좀비들을 총으로 쐈다. 남자들이 두다다다, 연발을 날렸지만 좀비들은 총성에 더욱 흥분해 총을 쏘는 자의 뒷덜미를 물고, 우적우적 먹어 삼켰다.

    “으아악!”

    좀비들의 본성이 깨어났다. 놈들은 창고 안에 잔뜩 쌓인 박스에 올라가거나 천장의 콘크리트 빔에 거꾸로 매달린 다음 후드득, 땅으로 떨어지며 검은 옷들에게 낙하 공격을 쏟아부었다. 원체 힘이 좋고 날렵한 좀비들이라 검은 옷들은 좀비들을 감당하지 못했다.

    원혁과 태유준은 자신들에게 달려드는 좀비들을 정신없이 막아 냈다. 중화도와 가위가 날렵하게 움직이며 좀비들의 목을 닥치는 대로 벴다.

    좀비에 물린 자들이 좀비로 변하기까지의 시간이 있으므로, 남아 있는 검은 옷들은 이 창고를 빠져나가 방어 태세를 갖출 것이다. 또한, 좀비에 물린 놈들은 30분 뒤 좀비로 변화할 것이므로 괴물의 숫자는 불어난다. 그러므로 최대한 빨리 산 사람들을 탈옥시키고 이 섬을 벗어나야만 한다.

    태유준이 머릿속으로 계획을 정리하는 동안 한 놈이 또 눈앞으로 날아들었다. 인정사정없이 가위를 좀비의 얼굴에 꽂아 넣으며 태유준은 빨간 헬멧을 찾았다. 그는 부하들을 버리고 벽에 붙은 문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형제님. 저기 빨간 헬멧이 도망칩니다!”

    “따라가자!”

    원혁과 태유준은 달려드는 좀비를 발로 차 버린 다음 그의 뒤를 쫓았다. 빨간 헬멧은 떨리는 손으로 비밀번호를 누르더니, 문을 열고 후다닥 내부로 뛰어 들어갔다. 태유준과 원혁은 문이 닫히기 전 가까스로 문을 잡고 내부로 들어가 쿵. 문을 닫았다.

    문 너머로 아비규환이 벌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으악!”

    “꾸에엑!”

    인간과 좀비가 만들어 내는 괴성이 귀청을 찢을 듯했다. 원혁과 태유준은 빨간 헬멧의 뒤를 바짝 쫓았다. 그는 복잡한 통로를 여러 차례 꺾어 달린 다음 문을 벌컥 열고 나갔다. 그러자 로비가 나왔다.

    “좀비, 좀비들이 폭동을 일으켰다!”

    그가 외침과 동시에 위잉- 사이렌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아직 사태를 파악하지 못한 검은 옷들은 우왕좌왕하며 어찌할 바를 모른 채 어설프게 움직였다. 지휘관이 없었기 때문에 어디로 가야 할지, 탈출을 해야 하는 건지 좀비를 무찔러야 하는 건지 전혀 감을 잡지 못한 모습이었다.

    그때 은색 헬멧을 쓴 자가 로비 중앙으로 뛰어 들어왔다.

    “당장 출하장으로 가! 무차별 사살 가능하다. 발포해!”

    “네! 알겠습니다.”

    그의 명령에 따라 검은 옷의 사나이들이 지하로 통하는 경사로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했다. 원혁과 태유준 역시 그들을 따라 달렸다. 그러다가 한순간, 왼쪽에 위치한 문으로 쓱 빠져나갔다.

    바깥으로 나온 두 사람은 놈들이 산 사람들을 끌고 들어가던 지하 출입구로 달렸다. 이제부터 산 사람들과 장 박사를 구출하는 일이 남아 있었다. 장 박사는 지하 3층에서 자력으로 나오기로 했기 때문에, 지하 1층의 사람들을 탈옥시키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러려면 기계실이나 보안실에 들어가 잠금장치를 단번에 해제시켜야 할 것이었다.

    이 건물 어디에 그런 중요 시설이 있을까. 그들이 건물 안으로 다시 들어갈 궁리를 하던 중이었다. 경사로 아래에서 헐레벌떡 올라오는 한 남자가 보였다. 박광식이었다.

    “광식 씨!”

    태유준은 황급하게 그를 향해 달려갔다.

    “어떻게 빠져나온 겁니까?”

    “저 갇혀 있었는데, 그놈들이 마침 저를 연행하던 차에 사이렌이 울렸어요. 놈들이 절 다시 감방에 처넣긴 했는데 문을 안 잠그고 가더라고요. 그 틈에 잽싸게 빠져나왔죠.”

    “천만다행입니다. 세상에…….”

    태유준이 탄식했다.

    “동생분은 찾으셨습니까?”

    “찾긴 찾았는데, 공교롭게도 사이렌이 울리기 직전에 놈들에게 연행돼서 외부로 나갔습니다.”

    박광식의 표정은 참담했다. 그는 지금 두려워하고 있었다.

    “……둘 중 하나군요. 아직 개조 실험을 당하지 않았든가…… 아니면.”

    “네. 이미 그 끔찍한 주사를 맞았을지도 모르죠.”

    세 사람은 잠깐 침묵을 지켰다. 정적을 깬 것은 원혁이었다.

    “이렇게 넋 놓고 있지 말고 동생을 찾으러 가지.”

    “무슨 생각이라도 있습니까, 형제님?”

    “우리가 직접 가서 뒤지는 거야. 연구동을.”

    “연구동을요?”

    “지금 거기 텅 비었을걸.”

    그러고 보니 아까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이 황급하게 대피하는 것을 보았다. 여기 잠입했을 때 지하를 뒤지고 다니면서 창문 너머로 흰 가운을 입은 연구진들이 주사기와 각종 실험 도구를 들고 복도를 돌아다니는 모습을 봤는데, 사이렌 소리에 모두 도망간 것이 틀림없었다. 하긴, 그들로서도 좀비를 막을 방책은 없을 테니.

    “맞네요. 지금 간다면 연구동을 지키는 인력은 거의 없을 겁니다.”

    “그렇지. 출하장 좀비 대처한답시고 총출동한 상태니까.”

    “장 박사님은 자력으로 탈출하신다고 했으니 그 말을 믿고, 우린 연구동으로 갑시다.”

    세 사람은 과감하게 로비로 향했다. 검은 옷의 남자들은 모조리 차출되었는지 로비는 쥐 새끼 한 마리 찾아볼 수 없을 지경으로 텅 비어 있었다.

    “저쪽에 지하랑 통하는 비밀 통로가 있습니다. 별도 비상구 같은 개념이라 좀비랑 마주치지 않아요.”

    태유준이 아까 빨간 헬멧을 따라 올라온 출입문을 가리켰다. 박광식과 태유준, 원혁은 정신없이 문을 향해 달렸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문에 도어 록이 설치돼 있다는 점이었다.

    “비밀번호를 모르는데 어떻게 하죠?”

    박광식이 초조하게 물었다. 여기까지 와서 비밀번호를 모른다면 문이 있어도 다 소용없는 게 아닌가. 그는 울고 싶었다. 하지만 원혁의 생각은 달랐다. 길이 없다면 길을 만들면 되는 것이었고 도어 록이 있다면 그걸 파괴하면 그만이었다.

    “다들 물러나. 총 쏠 거니까.”

    “부수시게요?”

    “부숴야지 별수 있나. 파편 맞지 않게 조심들 해.”

    원혁이 품 안에서 권총을 꺼냈다. 검은 옷들에게 빼앗은 자동 권총이 아닌, 리볼버였다.

    “왜 그 총을 쓰는 거예요. 놈들한테 뺏은 총이 있잖아요.”

    “그건 성능이 딸리는 일반 모델이야. 내 총이 상대적으로 파괴력이 강해. 이 정도 금속을 부수려면 내 총으로 쏘는 게 훨씬 효과적일걸.”

    “아무리 그래도 총알을 아껴야죠.”

    “물러나.”

    태유준이 만류했지만 원혁의 뜻은 확고했다. 태유준이 한 발 물러나자, 원혁이 곧장 도어 록을 조준했다. 탕! 굉음과 함께 도어 록이 박살 났다. 삐익, 삐익, 경보음이 울렸다. 원혁은 도어 록을 발로 차 그마저도 완벽하게 잠재웠다.

    문손잡이를 돌려 보니 문이 활짝 열렸다.

    “세상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격한 박광식을 데리고 원혁과 태유준은 빠르게 계단으로 발을 디뎠다. 조명이 어두웠지만 지체할 수는 없었으므로 그들은 최대한 속도를 붙여 계단을 내려갔다. 미친 듯한 속도로 지하 1층으로 내려온 그들은 벌컥, 안쪽에서 문을 열었다. 여기부터는 아는 길이었다.

    “여기는 중앙 통로네. 오른쪽으로 가면 산 사람들을 가둬 놓는 통로, 왼쪽으로 가면 연구동일 거야. 아까 우리가 본 방향대로라면.”

    “아까 보니까 연구동은 복도부터가 유리 벽으로 가로막혀 있었어요.”

    “그렇다면?”

    “제가 총으로 뚫겠습니다.”

    태유준은 이제 거칠 것이 없었다. 여기서 망설임은 곧 죽음을 의미했고, 작전 실패를 의미했으니까. 그들은 더욱 속도를 붙여 왼쪽으로 꺾어 달렸다. 문이 나오면 총으로 부쉈고, 장애물이 있으면 발로 걷어찼다. 그렇게 한참을 달린 끝에 그들은 ‘연구동: 통제 구역’이라고 써 붙여진 유리문 앞에 도달할 수 있었다.

    “강화 유리일 거야.”

    문을 만져 본 원혁이 말했다.

    “한 번에 안 깨지고 구겨지는 느낌만 날 거야. 그래도 쏴야 해. 한 지점 노려서 수십 발 쏘면 그 지점이 약해져.”

    “알겠습니다. 다들 물러나세요.”

    태유준은 이를 악물고 총탄을 장전했다. 원혁이 준 리볼버는 아껴 놓고 일단은 일반 피스톨로 승부를 보려 했다.

    탕! 날아간 총알이 유리문에 명중했으나 원혁의 말대로 유리가 와장창 깨지는 게 아니라 거미줄 같은 선을 그리며 우그러졌다.

    탕. 탕. 태유준의 사격은 멈추지 않았다. 여러 번 같은 지점을 맞히며 그는 눈에 핏발이 설 때까지 집요하게 총을 쐈다. 그리고 마침내, 유리창에 구멍이 생겼다.

    “지금이야!”

    원혁이 달려가 유리창을 걷어찼다. 와장창, 유리가 깨지며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 덕분에 안쪽으로 손을 집어넣어 내부 개폐 버튼을 누를 수 있었다. 이윽고 슉,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드디어.

    태유준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다시금 속력을 냈다. 연구동 안은 수십 개의 방으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마치 병원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워낙에 실내가 넓고 구조가 복잡해 어디가 어딘지 파악하기조차 어려웠다.

    “구역을 나눠서 살펴봐요. 안에 사람이 있는지, 좀비가 있는지 조심하고요.”

    태유준이 세 사람에게 각자 맡은 바 구역을 나누어 주었다. 원혁은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각종 시설을 살피기로 하고 태유준은 왼쪽 병실들을, 박광식은 오른쪽 병실들을 살피기로 했다.

    박광식은 미친 사람처럼 각 방문을 열었다. 안에 좀비가 도사리고 있다가 뛰쳐나와 자기 목덜미를 문다 해도 상관없었다. 동생이 여기 있기만 한다면. 마지막으로 그 얼굴을 볼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1호부터 19호까지 그는 빠른 속도로 문을 열었다. 하지만 사이렌과 함께 다 도주한 것인지, 방은 텅 비어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20호라고 팻말이 붙어 있는 방 하나뿐. 박광식은 가슴이 짓눌려 와 숨을 제대로 쉴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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