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늘에서 좀비가 비처럼 내려와-79화 (7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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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움직이자. 시간이 없어.”

“유준아, 몸조심해라.”

“이따가 꼭 봬요. 박사님.”

“내 걱정은 말아라.”

태유준은 원혁과 함께 뒤돌아 다시금 출입구 쪽으로 향했다. 왔던 길을 되짚어가니 올 때보다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었다.

지하 3층에서 지하 2층, 그리고 지하 1층을 직접 들르지 않고 경사로 통로만을 이용해 나온 두 사람은 건물 로비를 살폈다. 마침 1층 로비가 여러 사람들로 분주했다.

“섞이죠.”

“좋아.”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걸어가 로비에 들어선 후, 검은 옷들 사이에 섞여 들었다. 아까 훔친 무전기로 간간이 교신이 들어왔다.

―출하 준비다. 경비 인원 제외하고 전원 로비로 집합하라. 다시 한번 알린다. 인천행 출하 준비한다.

태유준은 무전에 귀를 기울이며 사태를 파악했다.

또 한 차례 좀비들을 외부로 반출하려는 거구나. 타이밍이 좋았다.

로비의 검은 옷들이 약 50여 명 모여들었을 때, 간부 격으로 보이는 자가 앞으로 나왔다. 그는 남가도로 오는 배에 있던 중년의 사내처럼 혼자만 빨간색 헬멧을 쓰고 있어 눈에 띄었다.

“자. 출하하러 가겠다. 줄 맞춰서 똑바로 걷고, 정신 잘 차리도록.”

“예!”

무리가 일제히 움직여 로비 끝에 있는 경사로를 향했다. 선두에 선 자부터 하나씩 지하로 내려가는 것을 보며 태유준은 건물의 구조를 머릿속으로 그려 보았다.

지하 1층은 산 사람들이 갇혀 있는 곳. 그리고 지하 2층이 좀비들이 완성되어 보관되는 곳. 그러니 아마도 이 무리는 지하 2층까지 내려가 거기서 좀비들을 끄집어낸 다음 엘리베이터 등을 이용해 출하장으로 나올 것이다.

처음 섬에 도착했을 때 보았던 차고 같은 구조의 셔터 문이 최종 출구가 될 것이고.

무리 속에 섞여 걸으며 태유준은 심호흡을 거듭했다.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 만에 하나라도 어긋나면, 이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다면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되어 버린다.

장 박사를 구출하지 못하는 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자신도 살아서 나가지 못할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원혁. 원혁이 다치거나 심한 경우 목숨을 잃을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자 이 현실이 너무나 끔찍했다.

앞서 걷는 원혁의 등이 유난히도 위태로워 보여 태유준은 자꾸만 기분이 묘했다. 강인하고 굳건한 저 등. 원혁의 등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불안감을 주지. 그 불길한 꿈 때문일까.

하지만 지금은 한 걸음도 지체할 수 없는 상황. 대열에 섞인 태유준도 경사로를 따라 아래로 내려가야만 했다.

외부 경사로와 다른 점이라면 이곳의 벽면에는 ‘DANGER’라는 빨간 글씨나 ‘경고’, ‘주의’ 등의 표식이 무척이나 많이 새겨져 있다는 것이었다.

이윽고 무리가 멈추어 섰다. 원혁과 태유준은 선두를 잘 관찰했다. 가장 앞에 선 빨간 헬멧이 잠금장치를 풀고 검은 옷들에게 빨리 들어가라는 듯이 손짓을 했다. 다른 남자들과 엇비슷한 속도를 내며 원혁과 태유준도 안으로 들어갔다.

내부는 거대한 물류 창고와도 같은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 펼쳐진 끔찍한 광경에 태유준은 할 말을 잃었다.

마치 약에 취한 듯 힘이 빠진 점프 슈트 좀비들이 투명한 상자에 하나씩 들어가 누워 있었다. 수백 마리가 떼를 지어 누워 있는 풍경이 마치 공동묘지를 연상케 해서 태유준은 일순간 아찔함마저 느꼈다.

“넘버링 잘 봐라. 절대 헷갈리면 안 돼.”

“예!”

“701번부터 800번까지 일으켜 세워.”

한 남자가 가장 끝에 있는 좀비의 손을 들어 보더니, 무언가를 확인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반대편에 있던 자도 오케이 사인을 그려 보였다.

곧 천장에서 푸른빛을 띤 액체가 분사되어 좀비들을 뒤덮었다. 무색투명한 액체가 쏟아져 나왔다. 그 액체를 맞은 순간 좀비들이 하나둘 유리 관에서 기어 나왔다.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이 기피제 스프레이를 칙칙 뿌려 댔다. 스프레이 통이 없는 태유준과 원혁이 가만히 서 있자니, 왜 안 뿌리냐며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야! 약통 제대로 안 들고 다니지, 응? 죽고 싶어 환장을 했냐?”

“죄송합니다. 다 떨어져서….”

“뒈지기 싫으면 어서 뿌려!”

한 남자가 원혁을 구박하며 통을 건넸다. 원혁과 태유준은 능숙한 척 온몸에 기피제를 끼얹은 다음, 유리 관에서 나온 좀비들이 움직이는 모습을 관찰했다.

“한 놈씩 줄 세워.”

빨간 헬멧이 명령을 내리자 그의 부하들이 좀비들의 멱살을 잡고 차례로 줄을 세웠다. 열 마리씩 한 묶음을 만드는 동안 태유준과 원혁은 일을 하는 척 적당히 어슬렁거렸다.

“이제 출하장으로 데리고 나간다. 완성품들 좌우랑 앞뒤로 에워싸라!”

“네!”

남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태유준과 원혁은 첫 번째 좀비 블록의 왼쪽에 섰다.

“출하장으로 이동한다. 일동 승강기 탑승!”

빨간 헬멧이 정면에 있는 거대 승강기를 가리켰다. 저벅저벅. 태유준과 원혁은 다른 남자들과 발을 맞춰 걸으며 좀비를 이동시켰다.

가장 늦게 탄 남자가 ‘지상 1층(출하 게이트)’라 쓰인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저기였구나. 셔터 문으로 닫혀 있던 공간이.

태유준은 자꾸만 가빠지려는 호흡을 진정시키며 엘리베이터 내의 침묵과 압박감을 견뎌 내려 애썼다. 공기 중에는 좀비가 뿜어내는 매캐한 악취가 가득했다.

곧 엘리베이터가 멈춰 서고 텅 빈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수백 명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넓은 공간은 어둡고 습했다. 또한 악취가 배어 있었다. 빨간 헬멧이 뒷걸음질 치면서 좀비들을 전진시켰다. 좀비 떼를 둘러싼 검은 옷들도 좀비들이 줄을 지어 걷도록 그들을 총부리로 쿡쿡 찌르거나 발길질을 퍼부었다.

“구…엑….”

좀비들은 느려 터진 발걸음으로 줄을 섰다.

“첫 번째 열 마리 완료. 이제 두 번째 열 마리 올려 보내라.”

빨간 헬멧이 무전기에 대고 말하자 곧 찌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알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이후 엘리베이터가 여러 번 오가며 나머지 수십 마리 좀비들이 올라왔다.

“총 백 마리 맞는지 세어 봐.”

졸개들이 사방을 오가며 좀비 개체 수를 확인했다.

“총 백 마리 맞습니다.”

그때였다. 보고를 마친 자의 바로 옆에 있던 좀비가 대열을 이탈했다.

“뭐, 뭐야. 이 새끼 왜 이래.”

남자가 좀비에게 총을 겨누었으나 좀비는 흥분 상태였다. 휙, 좀비가 팔을 휘둘러 남자의 얼굴을 할퀴었다. 엄청난 힘에 일격을 당한 남자는 저항하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이런 망할.”

빨간 헬멧은 다급하게 품 안에서 총을 꺼내더니 좀비를 쐈다.

“약이 덜 들었나. 내가 그렇게 검수 철저히 하라고 말을 해도 안 들어 처먹지.”

빨간 헬멧은 골치 아프다는 듯이 말하고는 널브러진 좀비와 제 부하를 발로 차 구석으로 빼냈다. 그러는 동안 나머지 아흔아홉 마리 좀비들은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태유준은 ‘약’이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방금 그 좀비를 제외하고 나머지 좀비들이 이토록 말을 잘 듣는 이유는 특수 약물에 절어 있기 때문이구나. 아마도 후각과 청각을 마비시키면서 공격성 또한 퇴화시키는 약이리라 짐작이 갔다.

하긴, 인천까지 배로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데 무사히 수송하려면 공격성을 가라앉혀 놓는 게 중요할 터였다.

그렇다면 원혁이 계획한 좀비 교란 작전은 예상보다 더 시끄럽고 요란해야 할 텐데. 웬만한 총성이나 굉음에는 끄떡도 안 할 가능성이 있다.

어떡하면 좋을까. 태유준은 계속해서 좀비들을 살폈다. 그때 빨간 헬멧이 좌우로 돌아다니며 부하들에게 외쳤다.

“절대 접촉하지 마. 알겠나? 우리 피부랑 접촉하는 순간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니까 조심해라!”

“예!”

“첫째도 안전, 둘째도 안전이다. 이 새끼들 만질 때 절대 장갑 벗지 마. 보다시피 방금 당한 우리 대원도 장갑을 벗고 있었다. 피부를 스쳐서 당한 거야.”

태유준과 원혁이 순간적으로 시선을 교환했다. 무리해서 총을 쏘지 않고도 좀비를 흥분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다. 인간 피부와의 직접적 접촉이 이들의 공격성을 깨운다.

덜컹거리는 소리와 함께 셔터가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셔터가 끝까지 열리자 햇빛이 쏟아지는 가운데 바깥에 트럭이 세 대 대기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원혁은 품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총을 쥐었다. 태유준은 속으로 하나, 둘, 셋 숫자를 셌다. 그리고 모든 용기를 그러모아 장갑을 벗고 바로 옆에 선 좀비의 손을 움켜쥐었다.

“끄엑!”

좀비가 즉각적으로 반응하며 온몸의 관절을 튕겼다. 태유준은 다시 장갑을 낀 다음 좀비 무리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는 세 마리당 한 번씩 손을 잡고, 장갑을 끼고를 반복했다. 그러자 약에서 깨어난 좀비들이 사정없이 팔다리를 휘저으며 요란하게 몸을 움직였다.

“뭐야! 어떻게 된 거야!”

검은 옷들이 당황하며 소동이 벌어진 중앙부로 달려왔다.

“이 새끼들이!”

“께엑!”

흥분한 좀비 몇 마리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검은 옷들에게 달려들었다. 좀비들은 그들이 미처 가리지 못한 목덜미, 얼굴을 사정없이 더듬으며 아예 으깨 버렸다.

“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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