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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공장이라는 단어에 태유준은 흠칫했다. 이 짓거리를 확대하려고 하는구나. 인천 부근뿐만 아니라 서울에서도 이런 비인간적인 짓을 벌이려는 거다.
팔뚝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하지만 정보를 캐낼 수 있는 귀중한 기회란 생각에, 그는 다시 한번 능청을 떨었다.
“아. 맞네. 듣고도 자꾸 잊어버려. 건망증인가?”
“서울 가면 아무래도 재료가 많으니까 지금보다 사정이 나아지겠지. 이렇게 찔끔찔끔 입고해서야 어디 생산 일정 맞추겠나, 원.”
“그러게.”
원혁이 태유준의 어깨를 툭 치며 주의를 환기했다.
“이만 가 보자고.”
“어. 그래. 그럼 또 보자!”
검은 옷이 손을 들어 화답했다.
“수고!”
두 사람은 들어왔던 문으로 나가지 않고 감옥 더 깊은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감옥 안의 작태를 살피고자 함이었다. 이쪽으로 지나가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인지 입구의 경비병들은 딱히 그들을 막지 않았다. 걷다 보니 일직선으로 늘어선 감옥이 끝이 아니었고 양옆으로 갈라진 지점이 나왔다. 이 감옥은 T자 형이었던 것이다.
둘은 왼쪽 길로 꺾어 걸으며 소곤거렸다.
“옆에 좀 봐. 창문이 있어.”
“보입니다. 창문 너머로 복도가 내다보이는데 관찰 좀 할까요.”
“그래. 여기쯤이 좋겠다.”
두 사람은 가장 구석진 곳, 감옥에 갇힌 자들과 이따금 있는 간수들의 시야 모두를 피할 수 있는 벽 뒤에 자리를 잡고 창문에 얼굴을 가져다 댔다.
창문 너머로는 대학교나 기업체의 연구소를 연상케 하는 복도가 보였으며, 자세히 보니 ‘연구실’이라는 팻말을 단 방들도 보였다. 이따금 그 문에서 하얀 가운을 입고 마스크를 쓴 자들이 서류 뭉치나 밀봉된 플라스크, 주사기 등을 들고나오기도 했다.
조금 더 지켜보고 있자니 카트를 끄는 듯한 드르륵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검은 옷을 입고 방독면을 쓴 자들 대여섯 명이 나타났다. 그들은 커다란 카트에 점프 슈트를 입은 남자를 한 명씩 눕히고 꽁꽁 동여맨 채 한 방으로 들어갔다.
점프 슈트를 입은 자들은 항상 봐 오던 좀비의 모습이 아닌 멀쩡한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최후의 반항을 하는 듯 꿈틀거렸지만 사지가 결박되어 있어 큰 의미가 없었다.
그리고 5분쯤 기다렸을까. 다시 방문이 열렸을 때, 점프 슈트를 입은 좀비 여럿이 카트에 고스란히 실려 나왔다. 빈 주사기 여러 개를 들고나오는 연구원의 모습도 보였다. 아까의 멀쩡한 남자들이 좀비가 되었음이 자명했다.
이런 식으로 산 인간을 좀비로 만들어 왔던 건가. 저 정체 모를 주사를 놓아서 산 사람의 육체를 부패시키고 이지를 앗아 갔구나. 이건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죄다.
태유준은 주먹을 꾹 말아 쥐며 몸을 떨었다. 원혁은 한숨을 쉬었다.
“여기에서 입고된 사람들이 저기서 좀비로 변하는 거군. 여긴 이를테면 원재료 보관장, 저기는 연구소 겸 생산장. 우리가 새벽에 들어왔을 때 본 셔터 달린 문 안은 출하 전 보관소.”
“맞습니다. 그렇다면… 여긴 하나의 공장 그 자체군요.”
“그렇지.”
“혹시 저 연구동에 장 박사님이 계실까요? 연구 인력이시니까요.”
태유준이 물었지만, 원혁은 회의적이었다.
“글쎄. 그건 희망적인 생각이고. 실제로는 어디에서 어떤 대우를 받고 있을지는 알 수 없어.”
“그래도 한번 가 봐요.”
둘은 사방을 살핀 다음 문의 개폐 장치를 살폈다. 비밀번호를 입력해야 열 수 있는 문이었다. 억지로 문을 연다 한들, 소음 때문에 쓸데없이 검은 옷들의 주의만 끌 가능성이 높았다.
“우회해서 들어갑시다.”
“그래야겠어. 일단 이 바깥으로 나가자고.”
그들은 재빠르게 걸음을 옮겨 뛰듯이 걸었다.
* * *
원래 들어왔던 문을 열고 나온 두 사람은 경사로 입구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대강 구조는 파악했어. 문제는 어떻게 연구동에 접근하냐겠군.”
“무작정 부딪쳐 보기에는 위험이 큽니다.”
“내 생각도 그래. 지금까지 우리가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고, 입구를 아는 곳이라고는 방금 그 방뿐이야. 어떻게 해야 연구동으로 넘어갈 수 있는지 가닥이 안 잡혀.”
태유준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분명 통으로 된 건물인데 건너갈 길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연구동의 특성상 그 통행로는 제한 구역이지 않을까 짐작이 되기도 했다.
“형제님. 우리가 병원에 가면 동선이 어지러워도 각 과에서 다른 과로 가는 통로가 하나씩 있지 않습니까? 본관과 별관 역시 어떤 식으로든 이어져 있고요.”
“그렇지.”
“여기도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지하를 통해 이어질 수도 있고, 한가운데 제한 구역을 두고 연결될 수도 있고요.”
“음… 맞아. 그렇다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지하죠. 마음대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니까.”
원혁이 경사로의 까마득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방금 자신들이 들어갔던 지하 1층 문을 지나, 더 아래로 이어지는 길이 굽이굽이 보였다.
“마트 지하 주차장같이 생겼군. 더 내려갈 수 있게 돼 있어.”
“B2, B3… 네. 더 깊은 층이 있어요.”
“가 보자. 지금으로서는 저 길밖에 없어.”
두 사람은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지하 2층으로 내려가는 경사로는 위층에 비해 조명이 더 어둑했다. 점점 깊이 들어갈수록 조명의 개수가 줄어들어 시야는 거의 암흑에 가까워졌다. 오직 ‘비상구’ 표시만이 어둠 속에서 시퍼렇게 빛나고 있을 뿐이었다.
“여기로 들어가자.”
원혁이 소곤거리며 비상구 문을 열었다. 그는 좌우를 살핀 다음 태유준에게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사방은 적막했고 지나다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산 사람들로 꽉 차고 검은 옷들이 수십 명 돌아다니던, 또 연구동이 내다보였던 지하 1층과는 확연히 분위기가 달랐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사실. 공기에서는 지독한 악취가 났다. 이건 바로 좀비의 냄새다.
“조심해야겠네.”
“네.”
둘은 복도를 신중하게, 또 조심스럽게 걸었다. 약 3분여를 걷는 동안 그들은 이렇다 할 방도, 연구실도 마주하지 못했다. 다만 짧은 복도 끝에 문이 하나 더 있었다. 서슬 퍼렇게 빛나고 있는 철문에는 ‘주의’라는 빨간 글씨가 크게 박혀 있었다.
“…이 안으로 들어가야겠죠.”
유일한 문이자 꼭 들어가야 할 문. 하지만 이 안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지 태유준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문은 수동식 걸쇠로 잠겨 있어 손재주 좋은 원혁은 이내 문을 열 수 있었다. 둘은 철문을 밀어 열고 아주 천천히 실내로 진입했다. 최소한의 조명만 밝힌 공간은 지하 1층과 사이즈가 흡사했다. 또한 좌우로 쇠창살 감옥이 쫙 늘어서 있다는 사실도 동일했다.
다만 복도 방향으로 난 창은 아까처럼 투명한 유리 재질이 아닌, 굵직한 쇠창살로 되어 있었다. 긴장감에 절로 손바닥이 땀으로 젖고 목이 탔다.
일단은 좀비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데 냄새는 왜 나는 거지. 공기 중에 좀비 냄새가 배어 버린 건가? 그렇다고 하기엔 너무 진한데….
태유준이 한 감옥 안을 슬쩍 들여다보았다. 어두운 큐브 안에는 좀비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는데. 여기 있다가 어딘가로 옮긴 건가?
그 순간 문이 쿵 하고 울렸다.
헉.
태유준은 퍼뜩 문에서 떨어졌다. 그제야 보였다. 점프 슈트를 입은 좀비가 바닥에 쭈그려 앉아 태유준의 사각지대에 숨어 있었다.
“이런 개새끼들. 쭈그려 앉아서 안 보이게 숨어 있었어.”
원혁이 욕을 짓씹는 순간 좀비가 펄쩍 뛰어 몸을 폈다. 흉악한 얼굴이 태유준의 눈 바로 앞에 나타나며 좀비가 꾸에엑 소리를 질렀다.
“윽!”
태유준은 재빨리 몸을 피했으나, 좀비는 쇠창살 틈으로 손을 욱여넣어 태유준을 움켜쥐려 했다. 손이 쇠창살에 걸려 살점이 뜯겨 나가는데도 좀비는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다는 듯, 태유준을 향해 소리를 지르고 쇠창살을 마구 흔들었다.
“깜짝 놀랐네. 망할 새끼들.”
“저도 놀랐습니다.”
그때였다. 저 멀리 위치한 감옥의 쇠창살들이 흔들리는 소리가 났다.
“젠장. 이 새끼 때문에 다 깼나 봐.”
소리가 점차 커졌다. 좌우로 늘어선 감옥 곳곳에서 좀비들이 깨어났다.
“빠져나가야겠어.”
이 소란 때문에 검은 옷들이 출동하면 곤란했다. 두 사람은 최대한 빨리 빠져나가기로 하고 서둘러 몸을 돌렸다. 하지만 한발 늦었다.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안내 방송이 흘러나왔다.
―지하 2층 격리 1실, 이상 상황 발생. 다시 한번 알린다. 지하 2층 격리 1실로 출동하라.
“도망쳐야 돼.”
“아는 길은 경사로뿐이에요.”
“나가자!”
태유준과 원혁이 출입구 쪽으로 달렸다. 복도로 나가는 문을 연 순간, 그들은 숨을 멈췄다. 반대편에서 우르르, 검은 옷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났다. 어림잡아도 수십 명이 만들어 내는 군홧발 소리가 점차 가까워졌다.
이대로 여기서 잡히면 끝이다. 장 박사님을 구하기는커녕 우리 목숨도 위험하게 생겼어. 태유준의 가슴이 미친 듯이 뛰며 맥박이 올라갔다.
박사님,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박사님…!
태유준은 입술을 세게 씹으며 장 박사를 떠올렸다.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장 박사의 얼굴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쳤다. 그를 찾기 위해 굳은 결심을 하고 수도원을 뛰쳐나왔던 날, 용산에서 안타깝게 그를 놓쳤을 때의 참담한 심경, 그리고 여의도 연구실이 풍비박산 나 있었을 때… 그때 받았던 충격.
그때였다. 장 박사의 여의도 집을 떠올리자 퍼뜩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