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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좀비가 비처럼 내려와-75화 (7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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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넘게 통신이 끊겼는데, 그건 왜 그랬나? 내가 대원들한테 무전을 수십 번 쳤는데 아무도 응답이 없었어.”

원혁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이 남자는 의심에 빠져 있는 상황. 그렇다면 반격을 해야 한다.

“갑자기 총은 왜 들이대. 난 무전 받은 거 없고 대원들도 무전 수신한 사람 없었어. 지금 생사람 잡는 거야?”

“난 분명히 무전을 보냈어.”

“수신 못 할 수도 있지.”

“전 대원이 갑자기? 말이 안 돼. 합당한 이유를 대기 전에는 난 이 총 못 내린다.”

총을 겨눈 쪽이 강경하게 말하던 차였다. 원혁이 순간적인 발길질로 총을 쥔 손을 걷어찼다.

“이유는 무슨!”

“윽!”

총이 멀리 날아가고 갑작스러운 공격에 고스란히 당한 남자가 손을 감싸 쥐었다.

“너, 너희 뭐야!”

나머지 한 명이 허둥지둥 소총을 겨누며 소리쳤다. 그러나 그가 장전을 마치기도 전에 태유준이 남자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아악!”

아까 한번 때려 봤다고 그사이 요령이 붙은 것인지, 태유준은 매섭게 주먹을 휘둘렀다. 콧등을 정확히 가격해 코피를 내고 안구에 주먹을 질러 넣기도 했다.

“그, 그만! 아악!”

“이 자식들! 으윽!”

원혁이 팔꿈치로 두 명의 목울대를 차례차례 가격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고꾸라진 경비병들은 그대로 질질 끌려가 바위 뒤에 던져졌다. 그사이에 태유준은 배에서 테이프와 노끈을 가져와서 놈들의 입을 막고 줄로 몸을 묶었다.

“소총 확보네.”

“무전기도요.”

원혁과 태유준은 남자들의 총과 무전기를 하나씩 나누어 가졌다.

“처음부터 장벽이 있었네.”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것 같습니다.”

“문제는 지금부터가 본 게임이라는 거겠지.”

원혁이 소총을 둘러메며 일어났다. 박광식은 얼이 빠져 입을 쩍 벌리고 있었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어. 이제 시작이니까.”

“네, 네!”

“그럼 일단 저기로 가자. 정문 같아.”

해안가를 따라 500미터 정도 걸으면 닿을 곳에 건물이 하나 보였다. 콘크리트로 지어진 단층짜리 건물은 이 작은 섬과 어울리지 않는 대형 규모였다.

“가까이 가서 봐 보죠.”

세 사람은 기척을 최대한 죽인 채로 건물 쪽으로 발길을 향했다. 건물은 꼭 수용소처럼 생겼는데, 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거대한 철문이 인상적이었다.

이따금 철문이 개방되며 지프차나 트럭이 드나들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검은 옷의 문지기들이 차에 투명한 액체를 분무했다.

“저번에 본 그 액체 같네.”

“좀비 기피제요.”

“응.”

“음… 우리도 저 액체를 맞고 들어가야 할 텐데요. 그러려면 무조건 정문으로 들어가야겠죠.”

“잠깐, 쉿.”

원혁이 일행을 조용히 시키며 정문 앞에 나타난 자들을 가리켰다. 검은 옷 두 명이 민간인으로 보이는 남자를 질질 끌고 철문을 통과하는 중이었다. 문지기들이 세 사람에게 액체를 분무했고, 그들은 곧 철문 너머로 사라졌다.

“우리도 저렇게 해야겠네요.”

“응. 저렇게 하면 셋이 들어갈 수 있겠어.”

세 사람은 정문을 당당하게 통과하는 방법 외에는 침입로를 찾을 수 없다고 결론 내린 다음, 동선을 짰다. 원혁과 태유준이 박광식을 가운데 끼고 연행하기로 이야기를 마친 다음 나서려는데 갑자기 건물 한편에 있는 셔터가 철컹철컹, 올라가기 시작했다.

“뭐지?”

“생긴 건 주택에 딸린 차고같이 생겼는데요. 그런 차고들은 보통 셔터로 여닫잖아요.”

“…근데 저거 점프 슈트 새끼들 아닌가?”

창고 같은 공간이 입구를 쩍 벌렸다. 그 안에서 비틀거리며 걸어 나오는 존재들은 바로 점프 슈트를 입은 좀비들이었다.

좀비들은 약 백여 마리 되었는데,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이 앞뒤 좌우에서 놈들을 인솔했다. 저벅저벅, 그들이 내는 발소리가 적막을 깨웠다.

가끔가다가 대열을 이탈하려 하거나 관절을 심하게 튕기며 경련하는 좀비들은 총부리에 찔리며 다시 안으로 밀어 넣어졌다. 인솔자들이 능숙하게 좀비들을 데리고 텅 빈 길까지 나오자 곧 어둠 속에서 거대한 트럭 다섯 대가 차례로 들어왔다. 태유준과 원혁이 인천항에서 봤던 것과 똑같이 생긴 트럭이었다.

“어이! 1호 차부터 적재해!”

“알겠습니다!”

인솔자들은 빠르게 움직여 사다리를 세운 후, 좀비들을 트럭 짐칸으로 올려 보냈다. 워낙에 차가 대형인지라 한 차당 스무 마리씩은 태울 수 있었다. 곧 차량 다섯 대가 꽉 차고 오케이 사인을 받은 트럭들이 하나둘 출발했다.

“저 안에 제 동생이 있으면 어떡하죠.”

박광식은 적잖이 충격을 받은 말투였다. 목소리가 떨리고 목이 멘 그에게 태유준은 손을 꼭 잡아 주었다.

“분명 동생을 찾을 수 있을 겁니다. 가죠.”

박광식은 얼굴을 한 번 쓸어내린 다음 각오를 단단히 굳힌 눈빛을 만들어 보였다. 여기까지 온 이상 어쩔 수 없었다. 낙심하지 말고 일단 찾아볼 수밖에.

“태연하게 해, 태연하게.”

원혁이 소곤거렸다. 태유준은 최대한 몸의 긴장을 풀고 박광식의 어깨를 꽉 붙든 채 걸었다. 두 사람은 아까 해안가에서 그랬던 것처럼 가운데 박광식을 끼고 연행하는 척했다.

그 모습이 자연스러워 보였는지 철문 앞을 지키며 잡담을 하던 자들은 3인방을 전혀 제지하지 않았다. 태유준이 생각건대 여기까지 오면 이미 통제 구역이기에 별다른 신분 확인 절차가 없는 듯했다. 어차피 산 사람을 억지로 끌고 가는 정황이니 남들 눈에는 영락없는 자기들 편으로 보이기도 할 테고.

“수고하셨습니다!”

오히려 문을 지키고 있던 자들이 경례를 붙이며 친근한 척을 해 왔다. 원혁은 능청맞게도 장난스러운 경례를 붙이며 늦은 시간 고생이 많았다고 한 놈의 어깨를 두드려 주기까지 했다.

태유준도 질세라 경례를 해 보였다. 결과는 무사통과. 세 사람은 기지 안으로 발을 들이는 데 성공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요.”

“남들을 따라가야 하는데…. 저기 저 사람들 어때.”

원혁이 턱짓으로 가리키는 곳에 한 무리의 남자들이 있었다. 검은 옷 세 명이 신발도 신지 못한 민간인 한 명을 허공에 들다시피 하며 질질 끌고 가는 중이었다. 일행들은 서로 눈빛을 교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이 하는 양을 잘 지켜봐야 했다.

“살려, 살려 줘!”

“조용히 좀 해. 마취총 없냐?”

“상부에서는 약물 쓰지 말라잖아요. 주사가 잘 안 먹힐 수도 있다면서. 귀찮아 죽겠어요.”

“하긴. 나한테도 함부로 수면제 같은 거 먹이지 말라고 하더라. 싱싱하게 잡아 오라고.”

검은 옷들이 낄낄대며 웃었다. 태유준은 속으로 욕을 하며 놈들을 따라갔다.

3인방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남자들을 따라 걸었다. 앞선 자들은 커다란 건물 본채의 정문으로 향하는가 싶더니 바로 옆길로 빠졌다.

“지하로 가나 봅니다.”

계단 대신 아래로 내려갈 수 있는 경사로가 설치돼 있었다. 마치 지하 주차장 진입로를 연상케 하는 생김새였다.

바로 뒤를 쫓았다가는 티가 날 것 같아, 일행은 조금 기다렸다가 놈들을 쫓기로 했다.

“조금만 기다렸다가 가자.”

“네. 그리고… 이제 이 안으로 들어가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광식 씨, 마음의 준비가 되셨습니까.”

박광식은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두려움과 결연함이 뒤섞인 그의 눈빛에 점차 강한 의지가 드러났다.

“우리끼리 조금 있다가 만나서 다시 섬을 탈출해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저희 계획은 이 건물에 큰 소란을 일으키고, 저희가 찾는 사람을 구해 낸 다음, 광식 씨 그리고 민간인들만 구출해 다시 돌아가는 겁니다. 초록색 배를 타고요.”

“알겠습니다.”

“소란이 일어나면 경비가 허술해지고 검은 옷들이 우왕좌왕할 겁니다. 그때를 노려 어떻게든 탈출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기회는… 한 번뿐입니다.”

남자들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무렵 3인방은 길을 가로질러 경사로 입구로 다가갔다.

자주 쓰이는 길인지 경사로를 거슬러 올라오는 검은 옷들이 여럿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3인방에게 관심을 두지는 않았다.

이윽고 경사로가 끝나는 지점이 나왔다. 앞선 팀이 거대한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하도 커서 끼긱 소리를 내며 천천히 닫혔다.

“저긴가 본데요.”

“빨리 가자. 문에 잠금장치라도 돼 있으면 큰일 나.”

세 사람은 걸음을 서둘렀다. 태유준이 막 닫히려는 문을 가까스로 잡아채서 셋은 무사히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믿기 어려운 광경이 세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닭장이라고 해야 할까 감옥이라고 해야 할까. 그것도 아니면 가축우리라는 표현이 적합할 것이다.

세로로 복도가 길쭉하게 나 있었고, 검은 옷의 남자 수십 명이 그 구조에 맞게 열을 맞춰 도열해 있었다. 그들이 지키고 있는 것은 쇠창살이 달린, 높이 2미터 정도의 큐브형 감옥이었다.

그 감옥은 성인 남자 한 명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정도의 크기였는데, 실제로 한 개당 한 명씩 남자들이 갇혀 있었다. 그리고 마치 상자를 적재하듯이 세로로는 3층, 가로로는 못해도 백여 개가 쫙 늘어서 있었다.

감옥 안에는 쇠창살을 두드리며 웅크리고 있는 남자, 숨이 붙었는지 아닌지 분간이 가지 않게 늘어진 남자들이 골고루 섞여 있었다.

인간을 인간으로 보고 있지 않구나. 끔찍한 광경에 태유준의 등줄기에 소름이 돋아났다.

“오늘 입고분인가?”

검은 옷 한 명이 다가와 태유준에게 대뜸 말을 걸었다. 태유준은 살짝 당황했지만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그렇다. 오늘 새벽에 채집해 왔다.”

남자는 컴퓨터에 무엇인가를 기입하더니, 박광식을 묶은 로프를 풀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태유준과 원혁이 로프를 풀기가 무섭게 박광식의 팔을 잡아당겼다.

쾅. 남자가 오늘 날짜가 찍힌 스탬프를 박광식의 손목 안쪽에 찍어 넣었다.

들어오는 날짜별로 관리하는 건가. 도축한 짐승같이 취급하는군. 태유준은 당장이라도 구토를 하고 싶었지만 꾹 참고 무감각한 얼굴을 만들어 보였다.

“요새 채집이 어려워졌다던데 고생했네.”

“이 근방은 텄어. 샅샅이 뒤져 봤자 겨우 하나 구한다니까? 성과도 없는데 자꾸 내보내니까 스트레스 받아.”

원혁이 자연스럽게 구시렁거렸다. 태유준도 장단을 맞춰야 할 것 같아 최대한 능청맞게 말을 꺼냈다.

“그러니까. 이다음엔 어쩌려고 이러는 건지 모르겠네.”

그러자 컴퓨터 앞에 있던 남자가 대답했다.

“못 들었어? 서울 공장 가동할 거라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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