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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좀비가 비처럼 내려와-73화 (7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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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혁이 태유준의 손목을 낚아채더니 으슥한 곳으로 끌고 갔다. 다급하고 거친 움직임에 태유준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왜 이래요.”

“너야말로 왜 이러세요.”

교회 뒤편에 도착한 원혁이 태유준을 휙, 벽에 던지듯 놓아주었다. 그러고는 훅 다가와 자신과 벽 사이에 태유준을 가두고 입술을 맞댔다. 남자 냄새와 땀 냄새, 약간의 소금기 어린 물 냄새가 멋대로 섞여 태유준의 숨통을 막았다.

“으…읍.”

숨쉬기가 힘들 만큼 키스는 강렬하고 뜨거웠다. 태유준은 뭍에 내놓은 물고기처럼 숨을 몰아쉬며 헐떡였지만, 원혁은 태유준의 사정 따위 알 바 아니라는 듯 연이어 그의 입술을 베어 물었다.

“자, 잠시.”

“잠시가 어딨어. 네가 먼저 건드렸어.”

원혁의 단단한 손바닥이 태유준의 뺨부터 목덜미, 쇄골께를 차례로 배회하다가 이내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허리춤을 붙들린 태유준은 반항조차 포기하고 몸에서 힘을 뺐다. 대신 원혁의 목덜미에 양팔을 두르고 자신 쪽으로 끌어당겼다.

츕. 입술이 잠시 떨어지자 태유준에게 겨우 호흡할 시간이 생겼다. 입까지 벌리고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데 목덜미에 뜨거운 입술이 인두처럼 내려앉았다. 여린 살갗에 날것의 애무가 가미되었다.

“아!”

목에 걸린 묵주 줄에도 원혁의 입술이 스쳤다. 원혁이 그 묵주까지 포함해 입을 맞추는 기분이라 배덕감이 훅 끼쳤다. 태유준은 눈을 감고 신음하며 원혁의 등에 손톱을 세웠다.

죄를 짓는 것 같잖아, 꼭.

“혀, 형제님….”

“딴생각하지 마.”

바르작거리는 태유준을 고정시키고 원혁이 재차 그의 목을 깨물었다. 약한 고통은 곧 쾌감이 되었다.

“으읏.”

태유준은 눈도 뜨지 못하고 쾌락의 홍수에 제 몸을 내맡겼다. 입술과 목덜미, 귓가에 폭풍 같은 키스가 쏟아졌다. 그러던 중 원혁의 손마디가 태유준의 티셔츠 안으로 쑥 들어왔다. 정신이 화들짝 깬 태유준이 헉하며 원혁의 손을 잡아 뺐다.

“여, 여기서는 안 됩니다!”

태유준은 식겁하며 몸뚱이에 팔로 엑스 자를 그었다. 원혁은 죽자 살자 도리질을 하는 그를 보며 픽 웃었다.

“그럼 여기가 아니면 되고?”

“아니, 그런 뜻이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둘이 시답잖은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였다. 교회 문이 열렸다.

“형님들?”

박광식이 문을 열고 나와 두리번거리며 두 사람을 찾았다. 원혁은 쯧, 하고 혀를 차며 허리춤에 손을 얹었고 태유준은 안도감에 가슴을 쓸어내렸다.

“어디 계십니까?”

“여기, 여기 있어요.”

“아. 잠시 드릴 말씀이 있는데 이야기 가능하실까요.”

“금방 내려가겠습니다!”

“네.”

태유준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열 오른 뺨을 손등으로 식힌 후 걸음을 서둘렀다.

“천천히 가도 안 잡아먹는다.”

“제가 그 말을 믿을 것 같습니까?”

태유준이 원혁의 등을 떠밀어 교회 문 안으로 입장시키고 뒤를 따랐다.

교회 안으로 돌아와 보니 사람들은 벽에 몸을 기대거나 바닥에 누워 있었다.

“간만에 음식도 먹고, 밖에도 나갔다 왔더니 긴장이 풀렸나 봐요. 다들 주무시고 계세요.”

박광식이 원혁과 태유준을 교회 장의자를 쌓아 둔 구석으로 안내했다. 작은 모포 두 개가 깔려 있었다.

그 옆자리에 자리를 잡은 할머니가 두 사람을 알아보고 알은체를 했다.

“선생님들도 좀 주무셔요. 많이 피곤하실 거야.”

“아닙니다. 저희는 아까 그 해안가 집에서 자면 돼요. 모포는 할머니 쓰세요.”

태유준이 모포를 걷어 노인에게 건넸다.

“왜 나간다 그러셔? 바닷가는 위험해. 여기가 훨씬 더 안전할 텐데…?”

“그게… 실은 저희는 아까 빼앗은 배로 남가도에 들어갈 생각이에요.”

“뭐? 남가도로 들어간다고?”

노인은 믿기 어렵단 표정이었다. 눈빛에는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네. 실은 저희의 최종 목적지는 남가도입니다. 그 안에서 찾을 사람이 있어요.”

“거기 갔다가 살아 돌아온 사람이 없는데…. 어쩔꼬….”

“네. 저희도 험한 일을 겪을 각오는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야 합니다. 가고 싶다가 아니라 가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태유준이 단단한 목소리로 말했다. 노인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형님들. 정말 남가도에 가시는 겁니까?”

그때 뒤에서 박광식이 놀란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태유준이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박광식은 놀람, 당황, 그리고 초조함이 뒤섞인 얼굴을 하더니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광식 씨.”

“저도 데려가 주십시오!”

“아니, 갑자기 왜 이래요.”

“제 동생이 거기 끌려가 있습니다. 저도 언제 끌려갈지 몰라서 그저 숨어 다니는 데 급급했지만, 선생님들이 가신다면… 비겁합니다만 데려가 달라고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박광식이 절실하게 빌었다.

“제가 뭐라도 하겠습니다, 제발 데려가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광식 씨… 거긴 위험해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동생, 동생을 구해야 합니다. 선생님들도 거기서 찾을 사람이 있다고 하셨잖아요. 저도 똑같은 처지입니다. 제발요.”

박광식의 온몸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한겨울의 추위에 떠는 것이 아니라, 몸속 깊은 곳이 떨리는 것일 테다. 엄습하는 공포로 인해, 그리고 그것을 극복하고 끝내 위험한 여정을 떠나야만 하는 운명을 받아들이기 위해.

태유준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같은 처지, 같은 마음. 가족의 생사를 확인하고 또 위험에 빠졌다면 구해 내고 싶은 마음은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아무리 위험한 곳이라 해도 뛰어들고 싶은 그 마음을.

팔짱을 끼고 서 있던 원혁이 입을 열었다.

“남가도에 쳐들어간다는 건 보통 일이 아니야.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각오는 되어 있습니다. 동생을 구한다면 전 그 자리에서 죽어도 좋아요. 제발요.”

“…만약 네가 따라오게 된다면 인질인 척 연기해야 될 거야. 우리는 검은 옷 무리인 척하고 잠입하고, 넌 인질인 척하고. 이해해? 엄청나게 위험한 일이란 거다.”

“상관없습니다. 인질인 척, 백 번도 할 수 있습니다.”

박광식이 땅을 치며 울기 시작했다. 원혁은 잠시 말이 없다가 입을 열었다.

“내일 해 질 녘에 부둣가로 나와 있어.”

“저, 정말입니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박광식이 머리를 조아렸다. 원혁은 대답 없이 태유준을 이끌고 교회 건물을 나섰다. 태유준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로써 박광식은 크나큰 위험에 휘말리게 된 셈이었다. 하지만 저렇게까지 의지가 강한데 꺾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내 손으로 가족을 구할 기회나마 잡고 싶은 그 마음을, 차마 외면하기란 어려웠다.

* * *

외딴집의 차가운 방바닥에 누운 두 사람은 쉬이 잠들지 못했다. 어차피 원혁도 자지 않는 것 같기에 태유준은 한숨과 함께 입을 열었다.

“드디어 내일이네요.”

“응.”

“그동안… 두어 달 정도에 불과했지만 참 긴 여정을 달려온 것 같습니다.”

“나도야.”

원혁이 옆으로 돌아누워 태유준의 허리에 팔을 감았다. 그가 태유준의 뺨을 쓰다듬었다. 태유준도 원혁 쪽으로 조금 몸을 움직였다. 두 사람의 몸이 바짝 밀착되었다.

“내일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도착하자마자 육탄전으로 맞서는 건 무리잖아요.”

“내 생각에는 광식이를 잘 활용해야 해.”

“그건 그래요. 자연스럽게 보이려면 그 방법이 최선이죠.”

두 사람은 소곤거리며 계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우리가 놈들 배를 타고 들어갈 거잖아. 그때 광식이를 잡아 온 척 열연을 펼쳐야지.”

“옷까지 갖고 있으니 위장하고 들어가는 것 자체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광식 씨 신변이 위험하지 않을까요? 바로 끌려가서 실험체가 될 수도 있잖아요.”

“그렇게 되기 전에 우리가 본거지를 털고 장 박사랑 광식이를 데리고 나와야겠지.”

“그렇긴 해요. 하지만 가능할까요.”

“너무 걱정하지 마. 계획한 대로 하자. 항상 이겨 왔잖아.”

원혁이 태유준의 목덜미에 쪽. 가볍게 입을 맞췄다. 간지러운 동작에 태유준의 긴장이 풀렸다.

“간지러워요.”

“간지러우라고 하는 건데.”

태유준의 아래턱에 입을 맞춘 원혁이 조금씩 위로 올라왔다. 마침내 입술과 입술이 닿았을 때, 태유준은 눈을 감았다. 원혁이 태유준의 위로 그림자를 드리우며 그의 턱을 감싸 쥐었다. 악력이 강해 도저히 벗어날 수가 없었다.

깊은 키스가 주는 쾌락과 아찔함. 여기에 태유준은 몸을 맡기고 잠시나마 두려움을 잊고 싶었다. 묘한 불길함도 잊어버리고 싶었다.

가슴이 빠르게 뛰었다. 태유준은 그게 나쁜 예감 때문이 아니라 흥분에서 비롯된 것이라 믿으며 원혁의 목에 팔을 둘렀다.

해가 뜰 무렵 태유준은 얕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는 자각몽 안이었다. 스스로를 인지할 수 있었고, 상식적인 판단도 이성적인 생각도 가능했다.

그는 거친 풍랑이 몰아치는 바다에 떠 있는 위태로운 배에 타고 있었다. 그 옆에는 장 박사가 태유준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 박광식과 그를 닮은 동생도 함께 타고 있었다.

하지만 어딜 둘러봐도 원혁은 보이지 않았다. 태유준은 숨통이 막혀 왔다.

‘어디 있어요. 어디!’

원혁을 찾아 사방에 외쳐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참담함과 슬픔이 몰려와 태유준의 가슴을 찢어발겼다.

‘가야 한다. 유준아.’

장 박사가 태유준을 타일렀다. 태유준은 어느새 눈물을 흘리며 울부짖고 있었다.

‘안 돼요. 그 사람이 없어요. 안 보인다고요.’

‘…그 사람은 우리랑 함께 갈 수 없어. 단념해라.’

‘갈 수 없다니요. 안 돼요. 같이 가야죠.’

‘출발하자.’

이윽고 배가 거친 엔진 소리와 함께 출발했다. 저 멀리 자욱한 안개에 뒤덮인 섬이 점점 멀어져 갔다. 태유준은 손을 뻗으며 외쳤다.

‘싫어. 안 돼.’

폭풍우와도 같은 파도와 장대비, 천둥소리가 태유준의 외침을 묻었다. 눈물을 흘리며 목 놓아 외쳐도 바뀌는 것은 없었다. 원혁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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