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늘에서 좀비가 비처럼 내려와-71화 (7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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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혁이 2인조를 연행하듯이 끌었고 태유준은 지친 남자를 부축해 주었다. 남자의 집은 여느 민가와 다를 바 없이 잔뜩 어지럽혀져 있었다. 원혁이 남자가 알려 준 대로 마당 한편에 있는 창고 문을 열었다.

“딱이네.”

원혁은 굴비처럼 엮인 2인조를 한 대씩 더 때린 다음 창고에 처박고 문을 닫았다.

“읍! 살려 줘요!”

원혁은 안에서 난리가 나든 말든 창고 문을 잠가 버렸다.

* * *

태유준이 수돗가에서 떠다 준 물을 마시고 숨을 돌린 남자는 원혁과 태유준에게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구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선생님들 아니었으면 큰일이 날 뻔했습니다.”

수척한 낯빛을 한 남자는 자신의 이름을 박광식이라고 밝히며, 이 섬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라고 말했다.

“이 섬에 납치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따로 숨어 지내셨던 건가요?”

태유준의 질문에 박광식이 부은 눈가를 손등으로 비볐다.

“그런 셈이죠. 저는 이 집에 살지 않고 이 근처 교회에 숨어 지내고 있습니다. 거기 지하실이 있어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다 그리로 모였습니다. 놈들도 교회에 사람들이 있는지는 모를 겁니다. 워낙 먼 곳이라서요.”

“아… 아직 생존자가 더 있군요.”

“한 열 명 됩니다. 저도 거기서 지낸 지 꽤 됐고요. 그런데 집의 강아지가 하도 걱정돼서… 안 되는 걸 알면서도 잠깐 나왔다가 봉변을 당한 거죠.”

그가 가리키는 자리에 개집이 하나 있었다. 밥그릇도 물그릇도 비어 있었으며, 개 목줄은 끊어진 상태였다.

“누가 풀어 준 것이기만 바랍니다.”

“별 탈 없을 겁니다.”

“말씀만이라도 감사합니다.”

“그럼 오늘 다시 교회로 돌아가실 건가요?”

“그래야죠. 바깥에서 밤을 나는 건 너무 위험합니다.”

남자의 말에 의하면 교회는 산꼭대기에 위치해 있다고 했다. 여기서는 걸어서 약 한 시간 거리라 안전상의 이유로 채택되었다고 했다.

“저희도 그곳에 머무를 수 있을까요?”

외딴집은 언제 누가 쳐들어올지 알 수 없었다. 특히나 이렇게 검은 옷이 ‘재료’를 수급하기 위해 돌아다니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안전한 곳에 은신하면서 남가도로 건너갈 기회를 엿보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이었다.

남자는 외지인을 교회로 들여도 되는가 잠시 고민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서는 생명의 은인이나 다름없는 원혁과 태유준을 내칠 수 없었다.

“알겠습니다. 따라오시죠.”

교회까지 가는 길은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올라가는 코스였다. 도저히 교회가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게, 아무리 걸어도 도통 십자가나 안내 표지판이 보이질 않았다.

가는 와중에 버려진 민가가 몇 채 보였다. 대문이 활짝 열려 있었고, 집 안과 마당은 물건이 엉망진창으로 나뒹굴고 있는 꼴로 보아 험한 일을 겪은 듯한 모습이었다.

한참 동안 겨울바람을 맞으며 걸어 올라가던 중, 박광식이 단층짜리 건물 앞에 멈추어 섰다. 거의 다 쓰러져 가는 건물은 얼핏 보기에 버림받은 듯 외관에 이끼가 잔뜩 끼어 있었다. 태유준이 가까이 가서 관찰하자 여러 가지 팻말과 간판으로 보아 개척 교회인 듯싶었다.

“들어오세요.”

박광식은 수풀로 가려진 교회의 뒷문을 열었다. 낡고 녹슨 문에서는 삐걱이는 소리가 났다.

안으로 들어서자 예배당은 텅 비어 있었으며 여기저기에 집기류가 흩어져 있었다. 사람의 흔적이나 온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이쪽입니다.”

박광식은 예배당 구석에 있는 쪽문으로 이동했다. 문을 여니 지하로 내려가는 가파르고 좁은 계단이 나왔다. 계단 아래는 까마득했으며 어둑어둑했다.

두 사람은 박광식을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 불빛 하나 없어 걷기는 불편했다.

“여러분 때문에 사람들이 당황할 겁니다. 난리가 날 수도 있어요. 제가 먼저 가서 사정을 설명할 테니 조금만 있다가 들어오십시오.”

“알겠습니다.”

박광식이 철문에 대고 박자를 맞춰 노크를 했다. 그러자 문 안쪽에서 박자를 맞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마치 용산에서 만났던 남매를 떠올리게 하는 노크 소리였다. 그들도 자신들만의 비밀 신호로 노크를 주고받았었다. 남매는 무사히 잘 지내고 있을까, 태유준의 눈앞으로 그들의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접니다. 광식이요.”

그제야 문이 살짝 열렸다. 박광식은 열린 문틈으로 들어갔고 이윽고 안에서는 여러 사람의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문이 닫혀 있어서 어떤 내용인지는 들리지 않았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다시 문이 열리고 박광식이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안쪽은 강당 같은 공간이었는데 기껏해야 서른 평 남짓한 공간에 열 명가량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미리 박광식의 설명을 들은 탓인지 그들은 소란을 피우진 않았으나 그래도 경계의 눈빛을 거두지는 않은 상태였다.

태유준은 목에 걸고 있던 묵주를 꺼내며 말했다.

“저 역시 주님의 종입니다.”

“…목사님이에요?”

“가톨릭 신학도입니다. 사태가 터지기 전에는 수도원에 있었습니다. 이쪽은 제 동행이고요.”

그때 구석에 앉아 있던 초로의 여인이 일어나 태유준의 손을 덥석 잡았다.

“제 아들을 구해 주셨다면서요. 감사합니다, 선생님.”

“저 혼자 한 게 아니라 여기 이 형제님이 힘을 써 주셨습니다.”

“아이고, 고마워라. 어쩌면 좋아.”

거의 울먹이는 여인에게 태유준은 손을 꼭 잡아 주었고, 원혁은 무뚝뚝한 얼굴로 고개만 까딱해 보였다.

“이쪽으로 오시죠.”

박광식이 구석진 자리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난방은커녕 습기와 냉기가 가득 찬 공기가 여실히 느껴지는 곳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창문이 없어 칼바람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점 정도였다.

태유준이 가만히 사람들을 살폈다. 주민들은 박광식 못지않게 초췌한 몰골을 하고 있었다. 오랫동안 굶은 티가 났고,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서울 벙커에서 지내던 시민들과 확연히 다른 점이 있었다. 눈빛에 저항심이 가득했다는 점이다.

“썩을 놈들, 또 시작이군.”

“가만두면 안 돼. 어떻게든… 어떻게든 복수해야 해.”

태유준이 가만 살펴보니, 섬 주민들은 검은 옷들에게 가족을 잃은 뒤 강한 분노와 적개심을 갖고 있는 듯했다.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라고 언제까지 당할 순 없어!”

한 젊은 여자가 이를 악물고 외쳤다. 그녀 옆에 있던 사람들도 그 말이 맞는다며, 검은 옷의 남자들이 다시는 이 섬을 노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동조했다.

그렇군. 이들은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 무력하게 당하고만 있을 타입이 아니다. 태유준이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박광식의 모친이 가방을 주섬주섬 뒤지더니 비닐봉지를 꺼냈다.

“이거라도 드세요. 선생님들.”

“이게 뭔가요?”

“땅콩이에요.”

비닐봉지는 작았으며 그 안에 들어 있는 땅콩의 양도 얼마 되지 않았다. 절반은 껍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태유준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도 그녀는 이 작은 봉지를 몇 번에 걸쳐서 나누어 먹었을 것이다. 이마저도 다 떨어지면 더 이상 먹을 것도 없겠지. 그런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아들을 살려 줬다는 이유로 지금 내게 땅콩을 내미는 것이다.

뜨거운 것이 가슴 안에서 치밀어 오르는 기분이었다. 목이 멘 태유준은 잠시 말을 삼가다가 봉지를 다시 박광식의 모친에게 쥐여 주었다.

“전 괜찮습니다. 어머님 드세요.”

“조금만 먹어 보래도.”

“괜찮아요. 그보다도….”

태유준이 박광식을 쳐다봤다.

“이곳에 식량은 없는 거겠죠.”

“식량은 떨어진 지 오래입니다. 바깥에서는 미친놈들이 남자들을 납치하러 쳐들어오고, 섬이다 보니 물자는 점점 소진되고. 이제 한계입니다. 진짜 놈들 배라도 빼앗아서 도주라도 하지 않으면…!”

박광식이 질렸다는 듯 진저리를 쳤다.

“이제 이 섬에 젊은 남자라고는 저 하나 남았어요.”

“광식아….”

모친이 고개를 푹 숙인 박광식의 등을 안고 토닥였다. 그녀의 주름지고 마른 손등을 보자 태유준은 가슴이 미어졌다.

“유준이 너 무슨 생각 하는지 다 알아.”

원혁이 태유준의 뒤로 와서 귓속말을 했다.

“네?”

“어떻게 하면 사람들 도울까 고민 중이지?”

원혁이 벽에 등을 기대며 피식 웃었다.

“너랑 하루 이틀 같이 지낸 것도 아니고 이젠 표정만 봐도 알지.”

“…하지만 남가도로 가는 길이 지체될까 봐 망설이는 것도 사실입니다. 사람들을 돕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요.”

태유준은 딜레마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지금까지 전 사람들을 돕는다는 미명하에 가다가 멈추고, 가다가 되돌아가고를 반복했어요. 그것만 아니었으면 조금 더 빨리 장 박사님을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 후회가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무엇보다도 형제님께 미안하고요.”

“흠. 난 딱히 사과를 듣고 싶은 게 아닌데.”

“…그러면요?”

원혁이 손을 들어 손가락을 쫙 폈다가 오므리는 동작을 취했다.

“그놈들한테 섬사람들은 당하기만 했잖아. 그러니까 그 새끼들 걸 빼앗아다 주는 건 찬성이야.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린 우리 거 챙겨야지.”

“어떻게요?”

“그 개같은 셔틀인지 나발인지 하는 선박을 털자. 안에 분명히 먹을 게 있을 거라고. 무기도 있겠지. 그걸 털어서 먹을 건 사람들한테 나눠 주고 배와 무기는 우리가 갖는 거야. 그걸 타고 남가도로 가면 돼. 그럼 우리도 이득이고 섬사람들도 이득을 볼 수 있어.”

원혁의 주장은 말이 되는 소리였다. 어차피 이 섬에 있는 배 중 멀쩡한 건 단 한 척도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놈들의 배를 탈취해 남가도로 가는 것은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었다.

“그 배가 언제 여기로 온다고 했지? 북가도에 들렀다 올 거라고만 했었나.”

“네. 딱히 시간은 말하지 않았어요.”

“그렇다면 해안에서 때려눕힌 놈들 가방에서 건빵 같은 게 나온 것도 말이 되네. 잘하면 여기 며칠간 머무를지도 모른다고 판단한 거야.”

“정해진 배 시간이 있는 게 아니라 하염없이 배를 기다리는 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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