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늘에서 좀비가 비처럼 내려와-70화 (7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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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아닐 겁니다. 아무리… 아무리 악한 자들이라 해도. 어떻게 산 사람을.”

몸서리치는 태유준을 보며 원혁은 가볍게 혀를 찼다.

“우리가 파헤치고 있는 악이 일융제약이 맞고 그놈들이 남가도의 주인이 맞는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야.”

“….”

태유준은 참담한 기분이었다. 사실 머리 한구석에서는 원혁의 말이 일리 있다고 느끼고 있었다. 좀비가 자연 발생 했을 리는 없고 분명 근원이 있을 터, 정황상 좀비에는 ‘재료’가 필요했다. 프랑켄슈타인이 인간의 신체를 이용해 괴물을 창조했듯이. 다만 부정하고 싶을 뿐이었다.

“이만 돌아가죠.”

태유준이 힘없이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 두 사람은 해안가로 천천히 걸어가며 찬 바람을 맞았다. 그런데 거처에 거의 다 다다랐을 때,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흡사 싸우는 듯한 우당탕하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 간에 고성이 오가고 있었다.

이 사람 없는 섬에 대체 무슨 소리지?

태유준은 바로 골목길에 몸을 숨겼다. 원혁 역시 인기척을 지우고 태유준 앞을 가로막고서 몸을 내밀어 정황을 살폈다.

민가 앞에 검은 옷을 입은 두 명의 남자가 깡마르고 초췌한 남자 한 명을 걷어차고 있었다. 검은 옷을 입은 쪽은 수적으로도 우위에 있었을뿐더러, 얻어맞는 쪽은 삐쩍 곯아 제대로 된 반항도 못 하고 일방적으로 당하기만 했다.

“싫어! 싫다고!”

“이 새끼가 반항하네. 뒤지고 싶지, 아주?”

“어차피 죽는 건 마찬가지 아니냐!”

수척한 남자가 비틀거리며 일어나 반항을 시작했다. 하지만 한 명이 남자를 못 움직이게 고정하고 나머지 한 명이 일방적으로 발길질을 했기 때문에, 이내 형세는 한쪽으로 기울었다. 결국 수척한 남자는 바닥에 쓰러졌다.

“쉿.”

남자를 구하기 위해 튀어 나가려는 태유준을 원혁이 말렸다. 그는 태유준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귓가에 입술을 바짝 댔다.

“쟤네들이 뭐라고 하는지 들어 보자.”

축 늘어진 남자를 로프로 묶고 난 뒤, 검은 옷을 입은 자들은 담배를 꺼내 피우기 시작했다.

“젠장. 이제 이 섬도 텄네. 온종일 뒤져서 찾아낸 게 이놈 하나뿐이야.”

“다른 섬은 사정이 어떻답니까?”

“그 밥에 그 나물이지. 이 근처 섬은 젊은 남자 씨가 말랐다고 봐야 돼.”

“그럼 어떡합니까?”

“그러니까 내가 미치겠다는 거 아니야. 서울이나 경기도에서 끌고 오자니 멀잖아. 또 거기는 일반 좀비가 좀 많냐? 번거롭고 위험하니까 무조건 근처 섬에서 재료를 채집해야 되는데 윗선에서는 왜 이렇게 수급을 못 해 오냐고 난리야.”

“씨를 말릴 정도로 잡아간 게 누군데요. 우리 탓만 할 게 아니죠.”

남자들은 불만 가득한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며 연신 담배를 피웠다.

“에이. 여자나 애들한테도 약이 들었으면 좋을 텐데.”

“아서라. 여자나 어린애들은 아예 약발이 안 받아서 실험 대상도 안 돼. 무조건 남자로 잡아가야 해. 젊은 놈일수록 약발이 잘 듣고.”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사냥 잘했네요. 삐쩍 곯아서 그렇지 나이는 꽤나 젊어 보인다 아닙니까? 20대 초반 같아요.”

2인조는 꽁초를 아무렇게나 바닥에 버려서 밟아 끈 다음, 축 늘어진 남자를 질질 끌고 해안가로 향했다. 남자의 메마른 발에서 신발이 벗겨졌다. 맨땅에 질질 끌리는 그의 발에서 피가 흘렀지만 그런 걸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가자. 나가서 저 새끼들 때려잡고 정보 캐야 돼.”

“좋습니다.”

원혁과 태유준은 불시에 골목에서 뛰어나와 달렸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두 사람에 2인조는 화들짝 놀라며 뒷걸음질 쳤다.

“뭐, 뭐야?!”

2인조는 얻어맞은 남자를 버려두고 황급하게 대응 태세를 취했다. 하지만 원혁의 주먹이 훨씬 빨랐다. 퍽. 원혁이 주먹을 휘둘러 한 놈의 코를 으깼다.

한 명은 태유준에게 되는대로 팔을 휘두르며 덩치로 제압을 시도했으나, 몸을 낮춘 태유준이 그의 고간을 차 버렸다.

“악!”

원혁이 마무리 펀치를 날렸다. 2인조는 순식간에 쓰러져 바닥을 나뒹구는 신세가 되었다. 태유준은 2인조가 메고 있던 가방을 낚아채 바로 열어 보았다. 안에는 건빵이나 육포 같은 식량과 함께 무전기, 접이식 칼, 로프, 그리고 가스총이 들어 있었다.

“야, 압수다.”

원혁이 가방을 통째로 낚아채 어깨에 둘러멨다. 그러는 동안 태유준은 끌려가던 남자의 몸에서 로프를 풀어냈다. 대신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의 손목을 칭칭 동여매고 무릎을 꿇리자, 그들은 잔뜩 겁을 먹고 사색이 되었다.

“야. 너.”

원혁이 쭈그려 앉아 나이와 직급이 좀 더 높아 보이는 쪽을 턱으로 가리켰다.

“너 아는 거 많지?”

“아, 아닙니다. 없습니다.”

“없기는 뭐가 없어. 아까 노가리 까는 거 다 들었어. 수급이 뭐고 재료가 뭔지 당장 말해.”

남자가 입을 꾹 다물고 시선을 피했다. 원혁은 망설이지 않고 그의 주저앉은 콧등을 다시 한번 쳤다.

“으악!”

“불 때까지 때릴 테니까 알아서 해.”

“자, 잘못했습니다. 말씀드릴게요!”

원혁이 손등에 묻은 피를 옷에 대충 문질러 닦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재, 재료는… 사람. 특히 섬에 사는… 젊은 남자고… 수급은 사람을 구해다 바치는 일입니다….”

“남가도로?”

남자가 눈을 번쩍 떴다. 그걸 어떻게 아냐는 표정이었다.

“남가도에서 너희들 나쁜 짓 하잖아. 응? 코를 얻어맞아도 백 번은 얻어맞을 짓거리 하고 있지?”

원혁이 다시 한번 주먹을 들자 남자가 주저앉은 채로 몸을 뒤로 빼며 울먹였다.

“자, 잘못했습니다. 그런데 저도 시키는 대로 한 것뿐이라서요. 제발 봐주세요.”

“봐주기 싫은데?”

“제발요!”

“흠. 그러면 한 가지만 더 물어보자. 그 재료… 아니, 사람 데려다가 하는 짓이 뭔데?”

원혁이 위협적으로 묻자 남자는 사시나무처럼 벌벌 떨었다.

“안 불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마, 말씀드릴게요. 그게… 좀비를 만들 몸이 필요해서…. 그래서 재료를 구하러 다니는 겁니다.”

남자는 눈을 질끈 감더니 바닥에 엎드리며 말했다.

“좀비를 만들 몸? 설마 산 사람을 잡아다가 좀비로 개조한다는 거야?”

“예. 예. 그렇습니다. 남자들을 공장에서 가공해요.”

“하, 미친 새끼들.”

원혁이 끓는 소리로 낮게 욕설을 뇌까리더니 남자를 발로 걷어찼다. 남자는 게거품을 물며 모래사장 위에서 발광을 했다.

“그리고 너.”

둘 중 젊은 축이었던 자에게 원혁의 시선이 향했다. 남자는 이미 동료가 당한 꼴을 보고 겁에 질려 벌벌 떠는 중이었다.

“네 동료가 기절했으니까 이 뒤는 너한테 물어봐야겠다. 좀비는 어떻게 만드냐?”

“저, 저도 잘은 모… 모릅니다.”

“한 대 맞으면 알게 될까?”

“아, 아니요. 지금 기억났어요. 주사. 주사입니다.”

남자가 납작 엎드려 원혁의 눈치를 봤다.

“여자나 어린애들은 주사를 맞혀도 효과가 없고요, 젊은 남자한테만 듣는 그런 주사… 주사가 있거든요. 살아 있을 때 주사를 놓으면 저절로… 그, 좀비가 되… 됩니다.”

“그 개같은 점프 슈트 입히고 번호 찍는 건 너희 공장에서 나온 물건 식별하려고 하는 거지?”

남자가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럼 이제 질문 타임 끝.”

“사, 살려 주시는 거예요?”

“글쎄?”

원혁이 쭈그려 앉은 자세에서 몸을 일으켜 세웠다.

“타고 온 배는 어딨어. 너희가 맨몸으로 헤엄쳐 오진 않았을 거 아니야.”

“배는 지금 여기 없, 없습니다.”

“뭐?”

“그게… 북가도로 갔습니다. 거기 들렀다가 나중에 여기로 데리러 오기로 했어요.”

이건 또 웬 개소리야. 원혁이 남자 앞으로 다가서며 인상을 구기자 태유준이 원혁 앞을 막아섰다.

“잠시만요. 제가 이어서 질문하죠.”

“하, 그래. 난 열 좀 식혀야겠다.”

“묻겠습니다. 북가도에 배가 있다고 했는데 거기서도 납치를 벌이고 있습니까?”

“그… 그런 셈입니다. 남가도 근처에 있는 섬들을 한 바퀴 돌면서 남자들을 닥치는 대로 찾고 있습니다. 저희 같은 대원들이 재료를 채집해서 해안가에서 기다리면 배가 옵니다.”

“사람더러 재료라고 하지 마세요. 채집이란 말도요.”

태유준이 단호하고 냉철하게 말했다. 남자는 기가 죽어 고개를 푹 떨궜다.

이를 어떻게 하면 좋지. 저번처럼 위장해서 남가도행 배를 타는 건 불가능하다. 그때는 커다란 크루즈 같은 배였고, 어두운 밤인 데다가 같은 복장을 갖췄으니 가능했지만 지금 올 배는 훨씬 작겠지. 현실적으로 저번처럼 같은 무리인 척 위장해서 그 배에 오르는 건 어려워. 금방 들킬 것이 틀림없다.

“으음….”

그사이 납치될 뻔했던 남자가 눈을 뜨고 몸을 움찔댔다. 상체를 일으킨 그는 상황 파악을 하듯이 사방을 둘러보다가 원혁과 태유준을 발견하고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

“어, 어억. 하, 하지 마요. 하지 마!”

“괜찮습니다. 저희는 남가도에서 온 사람들이 아니에요. 진정하세요.”

태유준이 조심스럽게 그에게 말하자, 남자는 빠르게 눈을 굴려 로프에 묶인 2인조를 찾아냈다.

“저희가 이 남자들을 제압한 겁니다. 듣자 하니 사람을 끌고 가서 나쁜 짓을 한다더군요. 이 근처 사람들도 당하고 있고요.”

“외… 외지 사람입니까?”

“네. 저희는 서울에서 왔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나중에 듣고, 일단 이 사람들부터 처리하죠.”

태유준이 손을 뻗어 남자를 일으켜 세워 주었다.

“그나저나 이 새끼들을 어떻게 할까.”

“가두죠.”

“어디 창고 같은 게 있으면 좋겠는데.”

그러자 수척한 남자가 말했다.

“제가 원래 살던 집에 창고가 있습니다. 잠금장치도 달렸고요.”

“거기가 좋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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