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늘에서 좀비가 비처럼 내려와-61화 (6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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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입니다!”

태유준의 외침과 동시에 원혁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허공으로 날듯이 몸을 띄운 그가 돌처럼 굳은 좀비들의 목과 얼굴을 칼등으로 쳤다. 캉, 하는 소리와 함께 좀비들이 부서졌다. 바닥에 파편이 후드드 떨어졌다. 마치 조각상이 부서질 때처럼 먼지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흡사 진시황의 무덤을 장식한 병마용들이 파괴된다면 저런 느낌일까 싶은 스산한 광경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맨 앞줄의 좀비들만 처치되었을 뿐, 뒷줄에는 여전히 20여 마리가 남아 있었다. 개중 사이다를 맞지 않은 좀비가 원혁을 덮치려는 듯 팔을 뻗어 달려왔다. 태유준은 계속 사이다병을 팍팍 흔들어 좀비들을 향해 발포했다. 거품 섞인 사이다가 대포처럼 그들의 몸을 덮쳤다.

태유준은 사이다를 뿌리고, 원혁은 굳어 버린 좀비들을 부수며 한동안 교전이 이어졌다. 굳어 버린 놈들은 즉각 발로 차서 쓰러뜨렸다. 이제 창고 안에 남은 좀비는 여덟 마리 남짓이었다. 그때였다. 한참을 싸우고 있던 태유준의 눈에 수상한 정황이 포착되었다.

남아 있는 좀비들이 아까의 좀비들과 다른 모습을 보인 것이다. 태유준이 사이다를 뿌리려 들면 순간적으로 몸을 숙이거나, 어떤 놈은 심지어 바닥에 몸을 굴려 사이다 세례를 피했다. 마치 사이다가 위험 물질인 것을 알아챈 듯한 모습에 태유준은 식은땀을 흘렸다.

설마 학습하고 있는 건가. 앞선 놈들이 나자빠지는 꼴을 보고, 사이다를 피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아무리 봐도 그렇게밖에는 보이지 않는데.

그 정도 지능이라면 좀비치고 과하게 똑똑했다.

원혁도 그 사실을 눈치챘는지 막무가내로 휘두르던 중화도를 거두고 태유준을 향해 외쳤다.

“사이다병 하나만 줘!”

“네!”

태유준이 묵직한 페트병 하나를 뚜껑 열린 채로 던졌다. 턱. 원혁은 한 손으로 페트병을 받은 다음 바로 좀비의 얼굴을 겨냥해 사이다를 촤악 뿌렸다.

“꾸에에!”

좀비가 괴로워하며 고래고래 비명을 지르는 사이, 원혁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좀비의 목을 쾅 내리쳤다. 태유준 역시 한 손에 가위를 들고, 또 한 손으로는 사이다병을 들고 좀비 무리로 진격했다. 그는 좀비의 얼굴에 집중적으로 사이다를 뿌리고, 좀비가 괴로워하는 틈을 타서 목에 가위를 찔러 넣었다. 두 사람의 합동 공격에 좀비들은 맥을 못 추고 쓰러져 갔다.

이제 남은 놈은 넷.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태유준이 용기를 쥐어짜고 있던 찰나였다. 숨이 가빠 오지만 고지가 멀지 않았다. 조금만 더 힘내자.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뒤! 뒤쪽!”

원혁의 목소리에 태유준이 고개를 돌렸다. 바로 등 뒤에서 좀비 한 마리가 다가오고 있었다. 망설일 겨를도 없이 사이다부터 끼얹었다. 좀비는 괴로워하며 상체부터 돌로 변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멀쩡한 한쪽 팔을 뻗어 태유준의 어깨를 쥐었다.

강한 악력에 순간 끌려갈 뻔했으나, 태유준은 이를 악물며 좀비의 팔뚝 한가운데에 가위를 찔러 넣었다가 빼냈다. 좀비는 곧 비틀거리다가 쓰러졌고, 철저한 뒤처리를 위해 태유준은 좀비의 몸 위로 사이다를 더 뿌렸다. 치익- 하는 연기와 함께 좀비가 완전히 돌로 변했다.

“허억, 허억.”

숨이 모자라 호흡이 거칠어질 수밖에 없었다. 태유준은 연신 헉헉댔다.

“괜찮아?”

“저는 괜찮습니다. 형제님은요.”

“난 괜찮아.”

원혁이 얼굴에 튄 핏방울을 손등으로 문질러 닦으며 대답했다. 태유준은 어느덧 좀비의 사체가 사방에 널브러진 창고 안을 둘러보았다. 호러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할 정도로 끔찍한 광경이었다.

“좀비가 더 올지도 몰라. 일단 나가서 바깥을 살피자.”

두 사람은 창고 바깥으로 걸어 나와 주변을 살폈다. 어슴푸레 동이 터 오르는 부둣가에는 사람도 좀비도, 그 아무도 없었다. 적막이 이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내가 트럭 끌고 올게.”

“그럼 저는 창고 안에서 식량을 챙기고 있겠습니다.”

태유준은 창고 안을 샅샅이 뒤지며 먹을 만한 것과 생수, 사이다 페트병을 챙겼다. 5분 정도 기다리니 원혁이 고구마 트럭을 몰고 왔다. 태유준과 원혁은 번갈아서 망을 보며 식량 상자를 차곡차곡 옮겨 실었다. 통조림과 더불어 가장 중요한 사이다 묶음은 흐트러지지 않도록 트럭 짐칸에 실었다. 트럭 안에 있던 두껍고 탄성 좋은 고정용 줄로 물건들이 움직이지 않게 잘 누른 다음, 원혁은 짐칸의 걸쇠를 철저하게 잠갔다.

이어서 두 사람은 바다 기상을 살폈다. 해가 떠오르고 있지만 여전히 풍랑이 거세고 날씨가 우중충했다. 안개도 잔뜩 끼어 시야도 나빠 보였다.

“바로 출항하기는 무리겠어. 일단 쉴 만한 곳을 찾자.”

“네. 여기서 너무 멀지 않은 곳으로요.”

“창고는 안 돼. 이쪽은 언제 좀비가 나올지 모르니까 완벽하게 문을 잠글 수 있는 실내여야 해.”

“그러면 숙박 시설이 좋겠는데요. 항구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여관 같은 게 있을 겁니다. 찾아보죠.”

두 사람은 차례로 차에 올라 떠오르는 태양을 뒤로한 채 부둣가를 벗어났다. 털털거리는 트럭 안에서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이따금 손을 잡았다. 비록 피가 튀고 땀에 젖었지만 서로의 온기를 확인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런 순간이었다.

태유준의 말대로 부둣가에서 조금 떨어진 곳, 시내라고 부르기엔 초라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상권이 조성된 곳에 모텔이 서너 개 보였다. 모텔 골목에는 사람이 없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가득했다. 태유준과 원혁이 탄 차는 아주 신중하게 모텔 골목을 서행했다.

이윽고 두 사람은 가장 안쪽에 있는 모텔 주차장에 진입했다. 얼핏 보면 못 보고 지나칠 만큼 외지고 좁은 곳에 있는 터라, 대로변에 있는 모텔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할 듯했다.

“동시에 내려요.”

“주위 잘 살펴.”

하나, 둘, 셋을 세고 두 사람은 트럭에서 내렸다. 재빠르게 좌우를 살폈지만 이렇다 할 기척은 없었고 들려오는 소리 또한 없었다. 원혁이 주차장에서 모텔로 연결되는 문 앞에 서서 내부를 슬쩍 들여다보았다. 선팅이 진해 비록 잘 보이진 않았지만 움직이는 것은 없는 듯했다.

“내가 먼저 들어갈게.”

원혁이 문을 열었다. 이곳은 지하 주차장에 해당했기 때문에 카운터가 바로 연결돼 있지 않았다. 다만 한 계단 더 올라와 카운터에서 안내를 받고 방값 결제를 해 달라는 안내 푯말이 보였다.

원혁이 앞서고 태유준이 뒤를 엄호하며 계단을 올랐다. 언뜻 보니 카운터는 지키는 사람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카운터는 비었어. 안쪽으로 들어가면 객실 키가 있을 거야.”

“형제님, 제가 들어가서 키를 하나 가져올게요.”

태유준이 카운터 옆에 딸린 직원 출입문의 손잡이를 돌렸다. 잠겨 있지 않아 바로 문을 열 수 있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끔찍한 악취가 확 풍겼다. 태유준은 인상을 찌푸리며 악취의 근원을 찾았다.

“…이런.”

냄새의 근원은 카운터 아래쪽이었다. 그곳에는 중년으로 보이는 남자의 시체 한 구가 쓰러져 있었다. 부패해 가는 시체 냄새가 역겹게도 코를 찔렀다. 그 남자의 목덜미에는 심하게 물어뜯긴 자국이 있었는데, 좀비로 변하기 전에 과다 출혈로 죽은 듯 보였다.

“…이 모텔에도 좀비가 습격했었나 보군.”

미처 도망치지 못한 자의 최후. 살아 있었던 인간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해 태유준은 두 손을 모았다.

“잠깐 기도하겠습니다.”

망자를 위해 짤막한 기도를 올린 다음, 태유준은 책상 위에 놓인 키들을 살폈다.

“어떤 방이 좋을까요. 방 키를 잘 골라야겠는데요.”

“방 안에 시체나 좀비가 있으면 곤란하니까 행운의 방을 찾아야겠지. 좋아하는 숫자 있어?”

“평소에 0을 좋아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닌 것 같네요. 다양하게 집어 보겠습니다. 잘못 골랐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 넉넉하게 챙길게요.”

태유준은 2층 객실 열쇠 두 개와 3층 객실 열쇠 한 개를 집어 들었다. 만약의 경우 탈출하기 쉽도록 저층 방에 묵어야 한다는 것은 이제 이들 사이에 암묵적 룰이 되었다.

“그럼 탐색하죠.”

“2층부터 가자.”

건물에는 아직 전기가 들어오는 것인지 천장의 센서등이 길을 밝혀 주었다. 비록 들어왔다 꺼졌다를 반복하긴 했지만.

“비상구 계단으로 올라가자.”

“네.”

원혁이 복도 끝 비상구 출입문을 열자 휑한 바람이 불어왔다. 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라가 2층 복도로 들어서자 객실 정비 물품을 실은 카트가 엉망으로 엎어져 있는 것 외에 특별히 눈에 띄는 것은 없었다.

“201호부터 열어 볼게요.”

태유준이 201호 앞으로 가 키를 꽂고 돌렸다. 문을 열어 본 그는 바로 쾅, 하고 문을 닫더니 몸서리를 쳤다.

“하아. 여긴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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