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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좀비가 비처럼 내려와-58화 (5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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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악!”

총을 놓친 교주는 필사적으로 가스총을 잡으려 했으나, 총은 이미 원혁의 수중에 들어간 후였다. 교주는 안간힘을 써서 무릎걸음으로 기어 원혁의 허리를 부여잡았다. 원혁은 험악한 표정으로 교주를 내려다본 다음, 냅다 주먹을 갈겼다.

교주는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바닥에 엎어졌다. 숨은 쉬나 걱정이 될 정도로 미동도 없었다.

“신부님. 다친 데는 없어?”

원혁이 태유준에게 달려가 그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전 괜찮아요. 형제님은요? 형제님, 무사하신 거죠?”

태유준은 정신없이 원혁의 얼굴과 몸을 살폈다.

“뺨이랑 손도 다쳤네요. 상처가 생겼어요.”

“이건 그냥 생채기야.”

태유준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그리고 쉴 틈도 없이 원혁의 목덜미에 매달렸다. 원혁도 태유준을 힘껏 끌어안았다. 지금 태유준이 흘리는 것은 안도의 눈물이었다. 원혁은 태유준의 마른 등을 가만히 쓸어 주었다. 그러자 태유준 내면의 불안과 걱정이 파도에 씻기듯 한순간에 사라져 갔다.

날 구하러 와 주었어. 당신이, 나를.

단단하다 못해 강철 같은 팔뚝이 태유준의 몸을 감쌌다. 그게 꼭 자신을 지켜 주는 요새 같아서 태유준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뜨거운 것이 벅차올랐다.

안도. 지금 이 감정은 안도 그 자체였다. 태유준은 지금 세상 그 무엇도 두렵지가 않았다. 추격자들도, 괴물도, 그리고 시리도록 차가운 삭풍도. 이 남자의 품 안에 갇혀 있는 한 자신을 해칠 수 없을 것 같았다.

어느덧 이 남자의 존재감은 자신 안에 커다란 나무처럼 자리 잡았다. 언제 싹을 틔웠나 싶었더니 태유준도 모르는 사이에 커다랗게 자라난 것이다.

“…이제 좀 진정이 돼?”

태유준의 호흡이 안정되자 원혁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태유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얼굴을 들었다.

“이곳은 어떻게 찾아내셨습니까.”

“아, 여기? 나 끌고 간 놈들 패 주고 있는데 그 얼굴에 피 칠갑한 사이코가 오더라고. 그래서 그 새끼도 몇 대 팼지. 그니까 순순히 불던데?”

“아….”

“그 새끼한테 길 안내 하라고 시켜서 여기까지 온 거야.”

원혁은 어떤 면에서는 참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동시에 강인한 사람이었다. 태유준은 그가 다치지 않았음에, 적극적으로 자신을 찾아 줬음에 감사했다. 그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음에도 감사했다.

“그렇게 쳐다보지 마.”

“왜요?”

“빨리 탈출해야 하는데 키스하고 싶어지잖아.”

원혁이 태유준의 입술을 툭 쳤다.

“저도 마찬가지니까 빨리 여기서 나가죠.”

“진심이야?”

“저도 빈말 안 하는 성격입니다.”

태유준은 진심이었다. 당장이라도 그의 뜨거운 열기를 느끼고 싶었다. 안도감이 온몸을 휩쓸고 지나가고 나니 태유준의 깊은 곳에 있는 열망이 고개를 들었다.

“그럼 빛의 속도로 나가야겠네.”

“물론이죠. 아, 그리고 배 열쇠를 하나 챙겼어요. 저 교주 놈 배인데 부둣가에 가면 마린 19호라고 빨간 배가 있을 거예요.”

태유준이 배 키를 들어 보였다.

“오. 잘됐네. 그럼 내가 몰면 되겠어.”

“네.”

“여기 앞까지 트럭 몰고 왔으니까 부두까지는 차로 가면 돼. 얼른 움직이자.”

원혁과 태유준이 나가려던 차였다. 원혁의 주먹을 맞고 널브러져 있던 교주의 의식이 돌아왔다. 피떡이 되어 부어오른 시야에 덩치 큰 놈이 태유준을 데리고 가려는 모습이 보였다.

저 덩치가 내 보물단지를 훔치러 왔구나. 놓칠 수 없어! 안 돼.

그가 움찔거리며 바닥을 훑었다. 경비병들이 휘두르다 떨어뜨린 칼이 보였다. 교주는 잘 움직여지지도 않는 팔다리를 꿈틀거리며 칼 쪽으로 다가갔다. 원혁과 태유준은 등을 돌리고 있어 그를 발견하지 못했다.

교주의 손이 끝내 칼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그가 칼로 체중을 지탱하며 가까스로 일어나는 데 성공했다.

“가긴 어딜 가!”

그가 두 사람에게 달려들었다. 그 기척에 원혁이 뒤를 휙 돌아보았다. 칼날은 태유준을 향해 있었다. 원혁은 반사적으로 태유준을 제 뒤로 숨겼다. 칼 앞으로 몸을 내민 꼴이 된 그는 더 이상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원혁은 있는 힘을 다해 주먹을 내질렀다. 교주는 윽 하는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쓰러졌다. 의식을 완전히 잃었는지 게거품을 문 그는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태유준은 순식간에 벌어진 일에 놀라는 일도 잠시, 교주가 완전히 뻗었다는 사실에 다시금 안심했다.

“큰일 날 뻔했네요. 어서 가요, 형제…님?”

그런데 원혁이 이상했다. 그가 왼손으로 오른쪽 옆구리를 감싸고 있었다.

설마.

“잠시만요. 형제님. 무슨 일입니까!”

“괜찮, 괜찮…아.”

원혁의 손가락 사이로 시뻘건 피가 배어 나왔다. 태유준은 황급하게 무릎을 꿇고 그의 복부를 살피려 했다.

“그냥 스친 것뿐이야. 심한 것 아니니 걱정 마.”

그렇게 말하는 원혁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 전혀 괜찮아 보이지 않았다. 태유준은 참담한 심경으로 원혁을 부축했다.

“트럭에 구급 키트가 있어요. 일단 안전한 곳으로 가서 처치해요.”

태유준은 원혁을 부축해 현관을 빠져나왔다. 집 바로 앞에 트럭이 세워져 있었다. 태유준은 원혁을 먼저 조수석에 태운 후 운전석에 올라 빠르게 시동을 걸었다.

“으윽….”

원혁이 한 차례 입술을 씹으며 인상을 썼다. 피가 끝없이 흘러나와 시트를 적셨다. 태유준은 패닉이 오기 직전이었다. 혼란스러워서 운전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핸들을 제대로 잡을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었다.

“괜찮아. 천천히 가.”

원혁이 손을 뻗어 태유준의 벌벌 떨리는 손을 덮었다.

“난 괜찮으니까, 천천히 움직여.”

격려는 따뜻했으나 고통에 찬 목소리였다. 태유준은 이를 악물고 핸들을 움켜쥐었다. 지금 정신을 차리고 이 상황을 타개할 사람은 자신뿐이었다.

[인천항]

태유준은 도로의 이정표를 보고 차를 몰았다. 항구로 가면 어떤 식으로든 마린 19호의 정박지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었다. 또한 빈 트레일러나 창고 등 잠시 쉬어 갈 곳도 존재할 것이다.

다행히 교주의 집에서 항구가 멀지 않아 두 사람은 빠르게 항구 근처에 도착했다. 역시 예상대로 물류 회사들이 사용했을 법한 창고가 여러 개 보였다. 태유준은 차를 멈추고 원혁을 부축해 내리게 했다.

“저기 들어가서 앉아요.”

태유준은 밭은 숨을 내쉬는 원혁을 데리고 빈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곳곳에 나무로 된 상자, 종이로 된 상자들이 적재되어 있었으며 썰렁하게 추웠다. 그래도 벽면을 보니 조명 스위치가 있었다. 조명을 하나만 켜서 최소한의 조명만 확보한 뒤, 셔터는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수준으로 낮게 내렸다.

“구급 키트 가져올게요.”

태유준이 부리나케 차로 뛰어가 구급 키트와 담요, 수건과 생수를 가져왔다.

“좀 볼게요.”

원혁은 오른쪽 옆구리를 베인 듯했다. 출혈이 심각한지 셔츠가 온통 피로 물든 모습이었다. 태유준은 자꾸만 아찔해지는 정신을 수습하며 원혁의 셔츠를 벗기려 했다.

“유준이가 나 막 벗기네.”

“이 상황에서 농담이 나오세요?”

“좋아서 그렇지.”

원혁이 큭큭댔다.

“장난하지 마세요.”

입으로는 정색을 했지만 태유준의 손은 벌벌 떨리고 있었다. 막상 벗겨 내 보니 생각보다도 더 상처가 컸고, 깊게 찔린 듯한 정황이었다.

침착하자. 일단 소독부터 해야겠지.

태유준은 군 복무 시절 배운 구급 처치 방법을 떠올려 보았다. 일단은 소독이 가장 중요했다. 그는 키트에서 소독약을 꺼내 냅다 원혁의 환부에 들이부었다. 원혁이 흠칫했다. 고통이 상당할 텐데 원혁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꿰매야 하는데….”

구급 키트에는 당연한 말이지만 수술 용품이 없었다. 급한 대로 거즈를 펼쳐 손수건 모양으로 만든 후 가져다 대 보았지만, 그건 임시방편에 불과할 뿐이었다. 이내 거즈가 흠뻑 젖을 만큼 피가 배어났기 때문이다.

자연 회복을 기대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다. 이건 제대로 치료받아야 하는 부상이다.

“꾹 누르고 계세요. 금방 피 멎을 거예요.”

말로는 침착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절망에 빠졌다. 태유준은 혹시나 모를 기적을 기대하는 수밖에 없다는 걸 알았다. 지금으로서는 출혈을 지연시키는 것 외에는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과다 출혈은 예견된 일이었다.

태유준은 애타게 구급 키트를 뒤지며 뭐라도 도움될 만한 것이 없을까 눈에 불을 켰다. 하지만 반창고와 연고 따위가 이 사태를 막아 줄 리 만무했다. 점점 손에 경련이 심하게 오고 눈동자가 흔들렸다.

절망. 이 남자를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태유준은 지금 이 상황이 공포 그 자체였다. 잃고 싶지 않아. 이 사람이 없는 세상을 살아가고 싶지 않아. 나 혼자 여정을 떠난다면… 상상도 하기 싫어.

눈가가 점점 붉어졌다. 울음을 참아 내느라 코끝도 빨개졌다.

“유준아.”

낮고 담담한 목소리가 태유준을 불렀다.

“…네.”

눈가가 젖은 태유준은 얼굴을 숨기고 싶었다. 그는 소맷자락으로 눈물을 훔쳤지만, 다시 한번 자신을 나직하게 부르는 목소리에 끝내 울음을 참지 못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요. 어떻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

후드득, 눈물이 떨어졌다. 마치 어린아이처럼 태유준은 서럽게 울었다. 창고 안에 그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원혁이 난데없이 말했다.

“만져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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