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ail protected]
“어. 아마 그런 것 같은데.”
“설마 제가 좀비를 무찔러서 그런 걸까요?”
“그렇겠지. 여기 교리가 그거잖아. 천신이 좀비 무찌르러 온다고.”
“하아….”
그사이 무대 뒤에 웅크리고 있던 교주가 슬그머니 재등장했다. 벌벌 떨다가 사태가 진정되니 다시 나타날 용기가 생긴 것이다. 그 역시 무대 뒤에서 모든 광경을 다 지켜봤다. 태유준이 물을 뿌리자 기적처럼 좀비들이 죽어 버렸다.
저놈은 뭐 하는 놈이지? 혹시 물에 뭐라도 탔나? 그래. 그렇구나, 저건 특수 약물이야.
처음에는 너무 놀랐다. 하지만 곧 기발한 아이디어가 머리를 스쳤다. 그는 당장 일주일 뒤에 메시아가 온다고 큰소리를 친 상황이었다. 당연히 이 인천 땅에 메시아가 올 리가 없었으므로, 그는 마지막까지 금품을 긁어모아 인천을 뜰 생각이었다.
그런데 좀비를 소멸시키는 약물을 지닌 놈이 나타나다니. 지금 눈앞에 보이는 태유준은 그에게 있어 굴러들어 온 보물 그 자체였다.
그렇다면 이 신기한 놈을 놓칠 수는 없지. 잘만 활용하면 이 인천 구석뿐만 아니라 전국을 돌면서 떼부자가 될 수도 있겠는걸.
생각이 거기까지 미친 교주가 피 칠갑을 한 청년에게 말했다.
“저놈 잡아. 덩치는 알아서 처리하고.”
“네!”
태유준이 곤란해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와중이었다. 등 뒤로 청년이 다가오나 싶더니, 한순간에 태유준의 양손을 결박했다.
“읍!”
엄청난 힘이었다. 청년은 그대로 태유준을 무대 뒤로 끌고 갔다. 사람들은 엎드려 절을 하고 울부짖느라 무대 위에서의 가벼운 소동에는 무관심했다. 다만 원혁은 사색이 되어 달렸다.
“뭐 하는 짓이야!”
원혁이 빠르게 달려 청년의 뒷덜미를 잡으려 한 순간, 원혁의 앞으로 네 명의 남자가 나타났다. 기습이었다.
“윽!”
그들은 원혁의 팔다리를 잡고 매달렸다. 원혁은 주먹을 휘두르려 했으나 네 명이서 죽을힘을 다해 매달린 탓에 몸을 자유롭게 뻗지 못했다.
“유준아!”
“형제님!”
태유준은 끌려가면서도 애타게 원혁을 불렀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 * *
태유준은 그 길로 교주의 집으로 끌려왔다. 태유준을 끌고 온 양아치들은 그를 거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 놓았다.
집 안은 영화에나 나올 법하게 화려했으며, 중세 시대를 연상시키는 촛대와 샹들리에로 장식돼 있었다.
아마도 헌금으로 덕지덕지 금칠을 한 집이겠지. 역겨운 놈.
태유준은 가래침이라도 뱉고 싶은 심경이었다.
“어서 오라구.”
미리 도착해 있던 교주가 까딱까딱 손짓을 했다. 그는 집 안인데도 시뻘건 정장을 착용하고 있었다.
“기분은 좀 어때?”
“….”
“아이, 목소리도 안 들려주고 너무한다, 참.”
“….”
“일단 식사라도 좀 할까 우리?”
교주가 말하자 유준을 끌고 왔던 남자들이 강제로 그를 식탁 의자에 데려다 앉혔다.
교주가 기다란 식탁 맞은편에 앉아 태유준에게 끈적한 눈길을 보냈다. 태유준이 계속 침묵하며 그를 노려보자, 교주는 잊고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는 듯 손가락을 튕겼다.
“아, 맞다. 그 덩치. 어떻게 됐으려나? 내 경비병들이 강하고 무자비하기로 유명하걸랑? 근데 넷이나 달려들었으니 과연 어떻게 됐을지 궁금하네. 아마 지금쯤 시체도 찾기 어렵지 않을까?”
“….”
태유준의 얼굴이 눈에 띄게 꿈틀거렸다. 교주는 재미있는 일을 겪는다는 듯 눈을 빛냈다.
“그러고 보니까 너랑 그 덩치 딱 붙어 다니던데. 그 왜, 마지막에 너 뺏길 때도 아주 영화를 찍어 대고 말이야. 혹시 너희 사귀어?”
“그분에 대해서는 함부로 이야기하지 마십시오.”
“왜. 죽은 애인 언급하니까 마음이 찢어지나 봐?”
지금 저 미치광이가 자꾸만 원혁의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한 가지. 내게 자극을 줘서 반응을 이끌어 내기 위함이다. 휩쓸리지 말자.
태유준은 무표정을 유지하며 꼿꼿한 자세를 취했다. 그러자 교주는 짜증 난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손가락으로 머리카락을 배배 꼬았다.
“뭐, 배고프니까 일단 식사라도 하자?”
교주가 은식기를 들며 입을 쫙 찢었다. 태유준은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지금 식탁으로 서빙되어 오는 메뉴들은 아주 다양하고 호화로웠다. 생선회, 스테이크, 초밥, 중화요리 등 국적을 뒤섞어 놓은 요리들은 하나씩 객관적으로는 먹음직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태유준의 식욕을 티끌만큼도 돋우지 못했다.
그저 원혁이 어떻게 되었을지. 혹여나 다치지는 않았을지 걱정이 되었고 또한 이 미치광이의 집에 얼마나 갇혀 있게 될지 막막할 따름이었다. 갈 길이 먼데 파트너, 아니, 원혁이란 사람 자체와 떨어졌다는 게 태유준에게는 큰 타격이었다.
“너무 맛있다. 당신도 좀 먹지 그래?”
교주는 메뉴가 흡족한 듯 신나게 음식을 퍼먹었다. 입가에 양념을 잔뜩 묻힌 그가 물 한 모금 마시지 않는 태유준을 불만 가득한 눈으로 바라봤다.
“상 차린 사람 서운하네. 왜 안 먹어?”
태유준은 대꾸하지 않았다. 속으로는 원혁에 대한 생각, 그리고 어떻게 해야 이 집을 빠져나갈 수 있나 하는 생각뿐이었다.
“하, 내가 맛있는 거 먹여 줘도 다 소용이 없네. 당신 진짜 나랑 동업 안 할 거야? 나 아까 다 봤어. 당신이 좀비 죽였잖아. 당신이 갖고 있는 그 특수한 약이랑 내 화술이면 우리 전국 돌면서 천신교 세력을 불릴 수 있어. 아마 불교나 천주교, 개신교보다도 신도를 많이 모을 수 있을걸?”
“됐습니다.”
태유준은 교주의 말에서 힌트를 얻었다. 교주는 좀비를 무찌르는 태유준의 능력을 초능력이라 생각하지 않고, 특수한 약을 물에 탄 것으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태유준이 입을 열지 않는 한, 그것이 타고난 능력이라는 것은 알기 어려울 테니.
“되긴 뭐가 돼. 내가 이 인천 땅에서 모은 신도만 해도 얼마나 많은데. 신도만 모았나? 집도 모으고 차도 모으고 배도 모았지. 여기는 바닷가라 배 가진 사람들이 그렇게 배를 바쳐. 당신 배가 얼마나 비싼지 알기나 해?”
교주가 침을 튀기며 열변을 토했다.
“아, 안 되겠다. 나랑 거실 좀 나가자.”
“제가 왜요.”
“왜긴. 내 컬렉션 좀 자랑하려고! 그래야 네가 나랑 같이 동업할 맛이 날 거 아니야!”
교주가 눈을 희번덕거리며 태유준을 재촉했다. 따라나서지 않았다가는 멱살을 잡고서라도 끌고 갈 기세여서 태유준은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거실로 나갔다.
화려하면서도 촌스럽게 꾸며진 거실 한구석에 장식장이 있었다. 그 안에는 차 키와 함께 배를 조종할 수 있는 열쇠들이 잔뜩 놓여 있었다.
“내가 바닷가 사람이라 그런지 난 차보다 배가 좋더라. 이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마린 19호. 특별히 빨간색으로 도색도 했지.”
교주가 씩 웃으며 배 키를 흔들었다. 순간 태유준의 머릿속에 하나의 그림이 스쳐 지나갔다. 저 키를 손에 넣는다면 남가도로 갈 수 있지 않을까? 원혁이 배를 운전할 줄 아니까 마린 19호라는 배를 탈취하기만 하면 된다.
원혁의 강인함에는 의심이 없다. 그는 분명히 무사히 살아 있을 것이다. 낯선 곳이고, 수많은 적들에게 둘러싸인 상황이지만 분명히.
태유준은 손바닥에 손톱을 박아 넣으며 이를 악물었다.
교주는 콧노래를 부르다가 힐긋, 태유준을 쳐다봤다.
“어때? 이제 나랑 손잡고 싶은 마음이 들어?”
태유준은 머리를 굴렸다. 일단은 협조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 조금 듭니다.”
“아, 진짜? 드디어 똑똑해졌네.”
교주가 박수를 짝짝 쳤다.
“잘 생각했어!”
교주는 살랑거리는 걸음으로 걸어와 태유준이 앉은 소파의 팔걸이에 걸터앉았다. 그러고는 삐쩍 마른 손으로 태유준의 어깨를 쓸었다.
“그나저나 정말 예쁘게도 생겼네. 사람들이 좋아하겠다. 네 얼굴은 우리 사업에 큰 보탬이 될 거야.”
“만지지 마십시오.”
태유준이 그의 손을 휙 쳐 냈다.
“앙칼지네?”
교주가 픽, 웃으며 태유준의 어깨를 다시 움켜쥐었다. 앙상한 체구였지만 악력이 생각보다 셌다. 그의 손가락이 태유준의 쇄골을 만지작거리면서 점점 목덜미에 가까워졌다. 은근슬쩍 태유준의 목빗근을 더듬더니, 이윽고 손가락이 아래턱을 잡았다.
“지금 뭐 하는….”
그 순간이었다. 와장창, 거실 유리창이 깨졌다.
“뭐야. 뭐야!”
교주는 벌떡 일어나며 호들갑을 떨었다. 동시에 저 멀리 있던 피 칠갑을 한 청년과 덩치 큰 양아치 두 명이 후다닥 뛰어왔다. 와장창! 이번에는 누군가가 거실 창문을 깨부수며 집 안으로 몸을 내던졌다.
원혁이었다.
“야! 남의 집에서 뭐 하는 거야!”
교주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청년과 양아치 두 명이 한 번에 원혁을 향해 덤벼들었다. 원혁은 긴 다리를 뻗어 청년을 저 멀리 날려 버리고, 양아치 두 명의 얼굴에 어퍼컷을 한 방씩 먹였다.
“윽!”
“으악!”
묵직한 주먹에 얻어맞은 양아치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원혁은 양아치 둘의 머리채를 잡고 둘을 사이좋게 박치기시켰다. 곧 그들은 바닥에 대자로 쓰러져 신음했다.
“너… 너! 이 새끼가!”
교주가 거실 서랍장을 뒤졌다. 그 안에 호신용 가스총이 들어 있었다. 그가 부랴부랴 총을 꺼내 장전을 준비하는 동안, 원혁은 저벅저벅 교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교주의 얼굴 전체를 한 손으로 덮어 그의 시야를 차단했다.
“야! 손 치워!”
“너 같으면 치우겠냐.”
“치, 치우라고!”
악력이 엄청나 교주는 옴짝달싹도 할 수 없었다. 그가 악악거리며 소리를 지르는 동안, 태유준은 아까 눈여겨보았던 배 키를 낚아챘다. 태유준이 원혁에게 고갯짓으로 신호를 주자, 원혁은 곧바로 교주를 확 밀어 뒤로 나자빠지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