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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유준은 기가 찼다. 듣자 듣자 하니 이 종교는 최소한의 겉포장도 없는 모양이었다.
“세상 어디에도 그런 교리는 없습니다. 말이 됩니까? 메시아가 어떻게 돈을 보고 강림하죠.”
“왜 말이 안 돼? 여기 있는데.”
교주는 정색하며 이마에 자글자글 주름을 만들었다.
“네 논리는 됐고, 사람들한테 빼앗은 재산이나 되돌려 줘.”
“어어? 이 친구는 나랑 생각이 좀 많이 다른 것 같네?”
교주가 불만스럽다는 듯 눈썹을 까딱거렸다.
그때 피 칠갑을 한 청년이 다시 문을 열고 들어왔다.
“교주님. 준비 다 되었습니다. 나오셔도 됩니다.”
“뭐, 처음엔 그랬던 친구들도 있었지 근데 지내다 보면 생각이 바뀔 거야. 내가 장담해.”
교주는 반질반질 윤이 나는 구두 끝의 먼지를 털고 씩 웃더니 밖으로 나갔다.
원혁과 태유준은 시선을 교환했다.
“무슨 허튼짓을 벌이려는 걸까요.”
“한번 가 보지.”
두 사람은 교주가 나간 뒤 시간 차를 두고 건물을 빠져나갔다. 부흥회라고 했으니 상당히 눈에 띄는 장소에서 할 것 같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건물 뒤쪽 공터에 가설무대가 세워져 있고 교주는 이미 그 위에 올라가 마이크를 쥔 모습이었다.
무대 아래는 더 앞자리를 차지하려는 교인들로 북적였다. 마치 인기 가수의 콘서트를 방불케 하는 모습이었다.
“좀비들한테 어서 오라고 고사를 지내는구만.”
원혁의 말에 태유준도 공감했다.
“서울에 비해 좀비가 적은 편인 것 같긴 하지만 이렇게 난리를 치면 안 되죠.”
두 사람의 걱정과는 무관하게 교주는 신이 나 보였다. 그는 무대 위에 설치된 불을 이용해 기묘한 문양을 그리며 춤을 췄다. 자신의 모습을 감췄다가 드러내는 마술 같은 것도 선보였다.
어설프고 조잡하기 짝이 없었으나 교인들은 크게 환호하며 열광했다.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자도 있었다.
싸구려 음악 소리와 엉터리 성가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였다. 피 칠갑을 한 청년과, 그와 비슷한 수준으로 맛이 가 보이는 자들이 헌금 상자를 들고 나타났다.
“황금을 바쳐라!”
“아이고. 천신님, 저 좀 잘 봐 주십시오.”
한 신도가 절을 하며 헌금함에 현금 다발을 집어넣었다. 어떤 이는 금반지도 빼서 넣었다.
“더 많이 바쳐! 황금을 내놔라!”
“여기 있습니다. 제 정성을 봐 주세요!”
“헌금 상자에 자기 정성을 다 쏟아 내십시오.”
네 명의 남녀는 아마도 간부급인 듯 보였는데, 동서남북으로 바쁘게 다니면서 돈을 걷었다. 라면 상자만 한 크기의 헌금함에 돈다발과 귀중품, 보석들이 가득 차올랐다. 산더미처럼 불어나는 돈들을 보며 태유준은 기가 찼다.
이딴 식으로 돈을 벌고 있구나, 벌레만도 못한 인간들이.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운 시대에 갈 길을 잃은 자들을 달콤한 말로 꾀어 내 제 배를 불리는 작태에 태유준은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홀린 듯 기도하며 반지, 목걸이, 순금 덩어리를 헌금함에 미친 듯 욱여넣고 있는 자들이 가엾기도 했다. 저들은 가짜라도 숭배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이 세상을 견딜 수 없었겠지. 죽음에 대한 공포, 괴물에 둘러싸여 옴짝달싹 못 하는 상황 속에서 즉물적이고 가시적인 구원을 찾는 것도 이해가 갔기에 태유준은 사람들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천신이시여. 어서 강림하소서.”
“강림하여 저를 거둬 주소서. 천국 문에 들어가게 해 주소서.”
신도들이 헌금함에 대고 절을 했다. 원혁이 상소리를 섞어 가며 구역질 나는 티를 냈다.
“왜 저래.”
“역겹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요. 이 불안한 시국에 저렇게 자신감 넘치게 메시아가 나타날 거다, 이 힘든 시기가 끝나고 천국이 펼쳐질 거다, 말하는 자를 따를 수도 있죠. 물론, 사기라는 게 문제지만요.”
이 시대는 아무것도 확신할 수 있는 게 없으므로 강한 주장을 하는 자를 믿고 싶어진다. 인간의 나약한 면을 이용해 돈벌이를 하는 저 교주란 인간은 참으로 추잡한 존재라고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렇다면 이런 일은 얼마나 자주 열려 왔던 걸까. 태유준은 주변을 둘러보다가 중년의 여자 신도에게 말을 걸었다.
“이런 부흥회가 자주 열립니까?”
“아뇨. 부흥회는 오늘이 처음인데요.”
신도의 말에 의하면 소규모의 설교회나 교리 연구회는 자주 열렸지만 이렇게 다 같이 모여 대규모의 기도를 드리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라고 했다.
“천신님, 그러니까… 메시아 강림을 믿으십니까?”
“당연한 소릴 하시네요. 보시면 우리 천신강림교 일대에는 좀비가 돌아다니질 않아요. 정부에서 못 때려잡아서 골머리를 썩는 그 좀비가 이 동네에는 없다고요. 그게 다 메시아가 나타나려는 성스러운 징조예요.”
여자는 확신에 찬 말투로 말했다.
좀비가 잘 보이지 않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들도 성당에 고립되어 있던 좀비 한 마리를 제외하고는 이곳에 와서 좀비를 마주친 적이 없었다. 여자는 이 모든 게 천신강림교 덕분이라며 입에 침을 튀기며 말했다. 유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무대에서 큰 소리가 나자 다시 여자는 주의를 그쪽으로 향했다. 부흥회는 점점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는 듯, 앰프가 터지도록 노래가 커졌다. 교주는 빨간 정장 위에 치렁치렁한 두루마기를 입은 채 무당처럼 깡충깡충 뛰었다.
“천신께서는 우리와 함께할 것이다!”
사람들이 소리를 질러 대며 환호했다.
“미국에도 진짜 많은 종교가 있지만 이렇게 호러블한 종교는 처음이다.”
“저도 이단에 대해 공부 좀 했다고 자부했지만 이렇게 최악의 종교는 처음 봅니다.”
“게다가 허접하기까지 하네. 쯧.”
그런데 갑자기 공연이 중단되었다. 피 칠갑 청년이 무대 위로 뛰어 올라가 급하게 사운드와 조명을 중단시킨 다음, 교주에게 귓속말을 했다.
“뭐?!”
교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사람들은 웅성거리며 서로를 쳐다봤지만 왜 부흥회가 중단되었는지 아무도 이유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곧 그 이유가 드러났다. 사람들이 밀집해 있던 한구석에서 으악! 하는 비명이 들렸다. 원혁과 태유준, 그리고 모든 사람의 시선이 소리 난 방향을 향했다.
좀비 떼가 그곳에 있었다.
“아악!”
“꺄아악!”
밤이라서 좀비의 속도는 그다지 빠르지 않았다. 하지만 숫자가 열 마리 이상이었으며, 지독한 악취와 기괴한 소리가 났다. 또한 이 지역 사람들은 오랫동안 좀비를 보지 못하였기 때문에 혼비백산할 수밖에 없었다.
“끼야악!”
사람들은 야단법석을 부리며 도망쳤다. 하지만 미처 피하지 못하고 좀비에게 붙잡힌 사람들도 있었다. 교주는 그 모습을 보면서 겁에 질려 외쳤다.
“북쪽 수문장이 뚫렸다니, 이 무슨 일인가! 오오, 메시아시여!”
이 와중에도 그는 메시아를 운운하며 부들댔다. 듣자 하니 차이나타운 맞은편 입구에 경비병들을 세워 놨던 모양이다. 하지만 이렇게 동네방네 어서 오십사 소리를 질러 대니 좀비가 꼬이지 않을 리가 없었다. 경비병이 몇이나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르르 몰려드는 좀비 떼를 막아 내지 못한 듯했다.
태유준은 이 와중에도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그가 너무 시끄러웠지만, 지금은 교주를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그는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생수병 한 개를 잽싸게 주워 들었다.
태유준은 급하게 뚜껑을 따고 그 안으로 손가락을 집어넣었다. 이번에도 ‘성수’의 기적이 통하길 바라며.
“아악!”
“살려, 살려 주세요.”
“꿰엑!”
원혁과 태유준은 무대 위로 날듯이 올라갔다. 그 와중에 사람들은 서로 얽히고설켜 쓰러지고, 서로를 깔고 그 위를 짓밟으며 한 덩어리가 되었다.
처음에 열 마리 남짓이던 좀비는 이제 스무 마리 가까이 되었다. 좀비에게 물린 자가 그새 좀비로 변한 것이다.
원혁은 무대 위로 올라오는 좀비들을 향해 중화도를 휘둘렀다. 그러자 좀비들이 후드득 나가떨어졌다. 그가 닥치는 대로 칼을 휘둘렀으나, 계속 불어나는 좀비를 상대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태유준은 이를 꽉 깨물고 생수를 힘껏 뿌렸다.
“꿰에엑!”
“끼아악!”
생수를 정통으로 맞은 좀비들이 멈춰 서며 비명을 질렀다. 그들의 몸에서 회색 연기가 피어오르는 새를 놓치지 않고, 원혁은 좀비들을 공격했다. 태유준 역시 돌처럼 굳어 버린 좀비들을 해치웠다.
“신부님! 여기.”
원혁이 무대 위를 나뒹굴던 생수병 하나를 집어서 태유준에게 던졌다. 태유준은 서둘러 생수병을 열어 한 모금을 마신 뒤 다가오는 좀비들을 향해 물을 흩뿌렸다.
“꿰엑!”
“끄윽!”
좀비들이 연기와 함께 기화되어 사라졌다. 원혁이 마무리를 지었다.
“후우. 후우.”
태유준은 땀으로 젖은 이마를 닦아 내며 헐떡였다. 한 차례 싸우고 나니 체력이 다 방전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주변에서 수군거림이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보니 살아남은 신도들이 태유준을 경외심 가득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아…….”
태유준은 이제야 깨달았다. 남들이 보는 앞에서 좀비에게 성수를 뿌렸고, 좀비가 바스러졌다.
“저분이 물을 뿌리니까 좀비가 돌이 됐어. 당신도 봤지?”
“봤어. 설마… 저분이…….”
태유준은 당황스러웠다. 이런 식으로 능력을 만천하에 공개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너무 놀란 나머지, 본능적으로 능력을 써 버렸다.
“아… 저, 그게.”
뭐라고 변명이라도 하려던 찰나였다. 한 교인이 땅에 이마가 닿도록 격렬하게 절을 했다.
“저분이 천신이시다! 강림하셨다!”
“처, 천신…?!”
“천신이시여!”
한순간이었다. 사람들은 분위기에 휩쓸려 태유준에게 하나둘 절을 하며 손을 모아 빌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엎드려 통곡을 하기도 했다.
“천신이… 절 가리키는 겁니까?”
태유준이 당황 가득한 목소리로 원혁에게 물었다. 원혁은 어이없다는 듯 대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