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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좀비가 비처럼 내려와-55화 (5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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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혁이 태유준 앞으로 나서며 그의 몸을 가렸다.

“어디서 온 분들이신가요? 서울? 경기도?”

남자는 일견 환하게 웃고 있었으나, 어딘가 핀트가 나간 듯 광기를 띤 모습이었다. 시선도 원혁과 태유준을 보는 게 아니라 허공을 향해 있었다.

“서울.”

원혁이 침착하게 대꾸했다. 그러자 젊은 남자가 입이 찢어져라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서울 형제님! 반갑습니다.”

원혁은 그와 악수하지 않고 적당히 손을 쳐냈다.

“언제 봤다고 형제님인지는 모르겠고, 좀 조용히 해. 동네 좀비 다 깨우겠네. 좀비 꼬이면 네가 책임질 거야?”

“아,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걱정 마십시오. 이 부근에 괴물은 없습니다.”

그러더니 문을 더 활짝 열며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어서 안으로 들어오세요. 저희는 새로 오시는 분들을 반기고 있습니다.”

“환영하긴 뭘 해?”

“저희 천신강림교를 잘 알고 오셨겠지요. 저희는 이곳 인천 성역에 자리 잡고 천신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이비 종교의 본거지로구나. 태유준은 어렵지 않게 이자의 정체를 추론할 수 있었다. 교단의 간부 격이나 되는 듯했다.

“어서 오시라니까요?”

젊은 남자는 아마도 태유준과 원혁이 종교를 믿으러 온 것으로 오해한 듯했다. 태유준은 원혁에게 슬그머니 눈빛을 보냈다. 원혁이 눈빛으로 답을 했다.

귀찮은 일에 휘말려 들고 싶지 않다. 갈 길이 바쁘거든.

그때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태유준이 뒤를 돌아보니 왜소한 몸집의 노부부가 서 있었다.

그들은 손에 봉투를 들고 있었는데, 광기 어린 청년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며 봉투를 건넸다.

“말씀하신 대로 돈을 가지고 왔습니다. 제발 저희도 천신강림교의 일원으로 받아 주세요.”

이게 뭐야. 태유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노부부가 이어서 말했다.

“가게에 있던 돈 다 들고 왔어요, 50만 원입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그때까지 해맑게 웃고 있던 청년의 얼굴에서 갑자기 웃음기가 사라졌다. 그가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차이나타운 내부에 있던 분들이 들어오려면 50만 원으로는 턱도 없습니다. 천신님을 영접하기 위해서는 여러분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황금이 필요합니다.”

태유준은 대강 상황을 추리해 볼 수 있었다. 아마도 노부부는 차이나타운에서 장사를 하던 주민인 듯했다. 즉, 자신들처럼 외부에서 들어온 사람은 아니다. 그리고 이 살짝 맛이 간 놈과 천신강림교는 사람들에게서 금품을 뜯어내고 있다.

“하지만 탈탈 털어도 이것밖에 없습니다. 제발요.”

노부부가 빌었지만 청년은 그들을 거들떠도 보지 않으며 손을 내저었다.

“더 가져오십시오. 분명히 더 있을 겁니다.”

그러면서 원혁과 유준에게는 자꾸만 안으로 들어오라고 재촉했다. 원혁이 물었다.

“우리는 돈 안 냈는데.”

“이제부터 조금씩 내시면 됩니다. 이 성역 안으로 오셔서 공부를 시작하세요. 젊은 남자분들은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자, 어서.”

청년은 원혁의 고급스럽고 비싸 보이는 트렌치코트를 훑으며 말했다.

털썩. 노부부가 땅바닥에 주저앉아 곡소리를 냈다. 있는 돈 없는 돈을 다 긁어모아도 들여보내 주지 않음에 그들은 절망하고 있었다.

태유준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말도 안 되는 부조리가 벌어지고 있다. 이건 좀비가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 낸 악이다. 이런 증오스러운 일을 모른 척할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태유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대로 모르는 척 지나갈 수는 없었다. 그러려면 우선은 이들에 대해 파악하고 사람들을 도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어설프게 접근했다가는 공격을 당하거나 사람들에게 더 큰 피해를 입힐 수도 있었으므로.

태유준은 원혁에게 눈빛을 보냈다. 원혁은 너 좋을 대로 하라는 표정이었다.

“……들어가죠.”

태유준이 말하자, 청년은 이를 드러내며 킬킬 웃었다.

“잘 생각하셨어요. 환영합니다!”

원혁과 태유준은 청년을 따라 반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노랫소리와 말소리가 점점 크게 들렸다.

“오늘은 운이 좋으셨어요. 교주님이 직접 설교를 하시는 시간대에 맞춰서 오셨었거든요.”

“아, 네. 그렇군요.”

“일단 오늘 설교회에 참석하시죠, 그러면 두 분이 맡을 역할을 교주님께서 지정해 주실 겁니다.”

교주란 놈이 이 안에 있나 보군. 태유준은 침을 꿀꺽 삼키고 ‘예배실’이라 명패 붙은 공간 안으로 발을 들였다. 지하 창고를 개조했는지 조명은 다소 어둑했으며 공기가 습했다. 그 안에 백여 명의 사람들이 중얼중얼, 눈을 감고 기도하고 있었다.

“천신이시여. 주님의 이름으로 강림하소서.”

“성부와 성자와 천신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정식 기도문도 아니네. 엉망진창이야.

태유준은 엉터리 기도를 바치고 있는 사람들을 쭉 훑은 다음 원혁과 함께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때 갑자기 사방이 고요해졌다. 찬송가 비스무리한 싸구려 음악 소리도 멎었다.

단상에 한 남자가 쿵쾅거리며 과장된 몸짓과 함께 등장했다. 남자는 요란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는데, 윤이 번드르르 나는 빨간 정장을 빼입고 은색 넥타이를 한 차림을 한 상태였다. 거기에 뾰족한 구두를 신으니 밤무대 가수 같기도 하고 광대 같기도 했다.

남자는 마이크를 잡더니 별안간 크게 소리쳤다.

“기도하라!”

그러자 사람들이 환호성을 고래고래 질렀다. 남자는 록 스타처럼 관중을 향해 손가락을 쿡, 쿡 찌르며 말했다.

“천신이 메시아로서 올지니! 이곳에 모인 자들은 천신님과 함께 천국에 오를 것이다!”

사람들의 함성이 더욱 격해졌다. 태유준과 원혁은 서로를 쳐다보며 벙찐 눈빛을 교환했다.

‘생각보다 본격적인데? 메시아를 찾아 대고 말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진짜 종말론자들이네요.’

그들 주변의 사람들은 울부짖고, 펄쩍펄쩍 뛰었고, 미친 듯이 기도를 했다. 남루한 차림새에 얼굴이 핼쑥한 자들이 처량맞게 울자 호러 영화가 따로 없었다.

태유준이 팔뚝의 소름을 쓸어내리던 그때, 무대 위에 있던 교주가 원혁과 태유준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젊은 전사들이 왔습니다! 모두 환영의 박수를 보내 주십시오.”

“와아!”

그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람들은 원혁과 태유준을 향해 박수갈채를 보냈다. 기립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질러 댔다.

‘이거 뭐야…?’

‘저도 당황스럽습니다.’

살다 살다 전사 소리를 다 듣네. 원혁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분위기 따라잡기 힘드네, 이거.

예배인지 뭔지 모를 세리머니가 끝나자 사람들은 재빨리 흩어졌다. 교인들이 하나둘 문밖으로 나서자 곧 공간 안에는 교주, 원혁과 태유준, 그리고 그들을 안내한 젊은 청년만이 남게 되었다.

태유준은 정신을 잘 차리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손바닥에 손톱을 박아 넣었다. 호랑이 굴에 물려 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데, 여긴 호랑이 굴도 아니고 사이비 굴이니 더한 공포가 자신을 덮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아, 오늘도 열심히 찬양했더니 목이 마르군.”

교주는 생수를 따서 꿀꺽꿀꺽 삼켰다. 순식간에 물 두 병을 싹 비운 그가 원혁과 태유준을 보며 금이빨이 드러나게 웃었다.

“환영하네! 신입 전사들이여.”

교주가 원혁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 원혁은 벌레라도 닿은 양 그 손을 바로 쳐 냈다.

“오. 기백이 있는 친구로군, 난 이런 친구 맘에 들어.”

뭐지, 이 또라이는. 원혁은 교주의 캐릭터를 파악하기조차 싫었으나, 그의 변태스러운 캐릭터가 너무나 선명했다.

“조금 있다 밤에 부흥회가 열릴 거야. 야외에서. 우리 전사들도 꼭 참여하길 바라.”

“부흥회요?”

태유준이 묻자 교주가 반가운 질문이라는 듯 득달같이 대답했다.

“메시아가 이 마을에 내려올 예정이야. 그분의 강림을 기원하면서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춤을 추고 노래를 하는 거지.”

“어…… 그렇군요. 잘 알겠습니다.”

피 칠갑을 한 청년은 시계를 보더니 아차, 하며 교주에게 인사를 했다.

“저는 부흥회 준비를 하러 이만 가 보겠습니다.”

“그래. 수고해.”

청년을 내보낸 다음, 교주는 원혁을 슥 훑었다.

“자네는 내 경비병을 하면 좋겠군.”

“경비병?”

원혁의 날 선 목소리에 교주는 금세 말을 바꿨다.

“음? 경비병 역할이 마음에 들지 않는가 보군. 그럼 우리 성역 입구의 수문장은 어떤가.”

문지기 같은 소리 하네. 원혁은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교주는 원혁에게 한 마디를 더 붙여 보려다가 그의 싸늘한 얼굴에 슬그머니 꼬리를 내렸다.

대신 태유준에게 다가가 휘파람을 불었다.

“오, 자네는 인물이 아주 훤해! 우리 교단의 얼굴마담으로 삼기 좋겠어, 어때, 프로필 사진 한 방 찍을까?”

교주가 몸을 흐느적거리면서 웃었다. 원혁이 태유준과 교주 사이로 끼어들었다.

“헛소리 좀 작작 해.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너희 사람들 돈 빼앗냐?”

그 말에 교주는 섭섭한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삐죽였다.

“뺏다니. 난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닌데.”

“여기 들어오려면 돈 바쳐야 하잖아.”

“그건 다 이유가 있지. 천신님께서 강림하려면 황금이 필요해. 황금을 잔뜩 쌓아 놓고 기도해야 효험이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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