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촤아악, 물이 날아가 좀비의 얼굴과 머리를 적셨다. 그와 동시에 좀비에게서 연기가 타오르며 끄에엑! 고통스러운 비명이 흘러나왔다.
“악! 끄악!”
좀비는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몸부림쳤지만, 몇 초 지나지 않아 석상처럼 굳어 버렸다. 그 틈을 타 원혁은 중화도를 꺼내 석상의 목을 쳤다. 마치 부실한 조각상이 깨지듯 좀비는 조각이 나며 무너졌다.
“어서 타!”
원혁이 운전석에 오르고, 태유준도 후다닥 뛰어 조수석에 탔다. 원혁은 재빠르게 시동을 걸며 후진을 했다. 차는 도로를 역주행하며 스키드 마크를 남겼다.
“신부님 덕분에 살았어. 성수 위력이 엄청나네.”
“아닙니다.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태유준은 진땀으로 젖은 이마를 닦으며 대답했다. 사실 십년감수했다.
“그럼 가 볼게. 인천까지 가는 길에는 또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가자고.”
“좋습니다.”
원혁은 대로로 나가 쭉 길을 달리며 태유준에게 물었다.
“장 박사 집이 동인천역 근처라고 했지?”
“네. 거기에서 좀 더 들어가면 있는 오래된 주택이에요. 차이나타운 근처죠.”
“번지수를 모르니까 그쪽 가서 눈대중으로 찾아야겠군.”
“내비가 능사는 아니니까요.”
두 사람은 대략적인 방향을 잡고 달렸다. 주요 경로는 경인 고속 도로였다. 원래대로면 한 시간이면 인천까지 갈 수 있겠지만, 지금 도로 사정은 개판 그 자체라 장애물이 너무 많았다. 무너진 입간판, 정체불명의 바리케이드, 그리고 시체.
그래도 길은 있었다. 굽이굽이 국도와 샛길을 통해 차는 나아갔다. 그리고 새벽녘 동이 틀 무렵, 두 사람은 인천의 동쪽 끄트머리에 도착했다.
“시간이 애매하니까 여기서 쉬었다가 가야겠네. 더 갔다가는 해가 뜨겠어.”
“저기서 쉬어 가면 어떨까요.”
태유준은 해안가의 절벽 위에 지어진 성당을 가리켰다. 높은 지대에 고고하게 솟아 있는 건물로 다가가 보니, 성당은 침묵에 잠긴 채 쇠사슬로 대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음. 그래. 여기는 주님의 집이지?”
“그렇습니다.”
“그럼 신부님하고 주님하고 친하니까 나도 자도 되겠다.”
“저기, 형제님. 성당은 원래 모든 이에게 열려 있습니다만.”
“모범적인 답변이군. 어쨌든 여기서 묵었다 가자. 이런 성당도 안에 숙직실이 있어?”
원혁이 언덕길로 차를 운전하며 물었다.
“이 성당은 피정 활동을 위한 곳이에요. 저도 장 박사님하고 한 차례 온 적이 있었죠.”
“피정?”
“수도원에서 조용히 묵상하고 기도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을 뜻합니다.”
“템플 스테이 같은 거구나.”
“…뭐. 그렇게 이해하셔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어쨌든 그래서 이 성당에는 여행자들을 위한 간이식당이랑 잠자리가 마련돼 있습니다.”
원혁은 대충 알았다는 듯한 표정을 짓더니, 가방에서 중화도를 꺼내 코트 안주머니에 넣었다. 태유준 역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야 한다는 것쯤은 알았으나, 성당 안에 무기를 들고 들어가는 것이 꺼려졌다. 그래도 저 안에 좀비가 있을 확률이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는 날이 잘 벼려진 가위를 선택했다.
성수와 갈아입을 옷가지 등은 가방에 넣어 가져가기로 하고,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렸다. 태유준이 성당 대문으로 다가가 쇠사슬을 풀려 하니 원혁이 고개를 저으며 담벼락을 가리켰다.
“넘어서 들어가면 되지.”
“네? 도둑도 아닌데 왜 담을 넘습니까.”
“쇠사슬이 너무 칭칭 감겨 있잖아. 신부님 손 다쳐.”
핑계는 그럴싸한데 그에 수반되는 결과가 담 넘기라니 좀 이상했다. 태유준이 따지고 들기에는 시간이 촉박해, 그대로 일이 진행되었다.
“내 등 밟아.”
“그래도 됩니까?”
“그러라고 있는 등이야.”
원혁이 몸을 구부려 태유준이 밟고 올라설 수 있도록 등을 댔다. 태유준은 담장에 매달리듯이 손을 뻗으며 원혁의 등을 밟았다. 읏차,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넘어갔다.
다음은 원혁의 차례였다. 가방을 담 너머로 휙 던진 그는 쉽게 담을 넘어 성당 부지 안으로 들어갔다.
수도원 부지는 영동성당에 비해 전혀 밀리지 않게 넓었다. 서울 아닌 땅에 지어져 넓기도 했고, 워낙 오래된 곳을 증축한 탓이기도 했다. 그 말인즉슨 이 안에 좀비가 있다면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올지 모른다는 뜻이었다.
“우선 내부를 살피죠.”
두 사람은 시선을 교환하고 각자 무기를 꽉 잡은 다음 본당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인공조명이 다 꺼져 1층 로비는 어두웠다. 침묵이 가라앉은 공간에 두 사람의 발소리만이 울렸다.
태유준이 손짓을 하며 원혁을 2층으로 이끌었다. 미사가 집전되는 성당이 바로 2층에 위치해 있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가자,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희미하게 새벽빛이 들어오고 있었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아주 조용했다.
그런데 원혁이 갑자기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며 쉿 소리를 냈다. 그러고는 눈만 굴려서 한쪽을 쳐다봤다. 태유준도 그 방향으로 시선을 줬다.
벤치 한가운데에 사람이 앉아 있었다, 아니, 사람이 아니었다. 사람이라면 뒤통수에 저렇게 큰 상처를 입고도 몸을 좌우로 흔들거리며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중년으로 보이는 남자는 뒤통수의 절반이 날아가 있었다. 역한 모습에 저절로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때, 벤치에 앉아 있던 좀비가 코를 킁킁거리며 일어났다.
“…!”
태유준은 등줄기에 소름이 끼쳤다. 원혁이 작게 속삭였다.
“내가 왼쪽으로 갈 테니까 신부님은 오른쪽으로 가.”
태유준은 즉시 오른쪽으로 뛰었고, 원혁은 왼쪽으로 달려갔다. 좀비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혼란에 빠진 듯 보였다.
그러다가 한순간, 벤치에 손을 더듬거리며 비척거리던 좀비가 태유준 쪽으로 고개를 휙 틀었다.
좀비가 구에엑 소리를 내며 어깨 관절을 꺾고, 무릎 관절을 튕겼다. 코를 벌름거리며 침을 줄줄 흘리는 것으로 보아 좀비는 오랫동안 굶주린 끝에 먹잇감을 만난 듯했다.
태유준은 서둘러 가방에서 생수 한 병을 꺼냈다. 여차하면 물을 끼얹어 돌로 만들어 버릴 심산이었다.
하지만, 한때 단정했을 것으로 예상되는 넥타이와 셔츠 차림을 보자 정신이 퍼뜩 깨어났다. 지금은 퀴퀴한 냄새가 나는 자였지만 어쩌면 주일에 미사를 드리러 온, 이 성당의 신도였을지도 모른다. 한때는 멀쩡하고 멀끔한 자였겠지. 신을 따르는.
그 생각이 들자 태유준은 잠시 아찔해졌다.
주님의 공간에서 살생을 저질러도 될까요. 한때는 당신의 아들이었을 저 좀비를 해치워도 되겠습니까.
태유준은 마치 하늘의 허락을 구하듯 읊조린 다음, 생수병을 열려 했다. 그런데 너무 긴장한 탓이었을까. 손이 미끄러졌다. 퉁, 생수병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에 좀비가 자극받았는지 맹렬하게 뛰어오기 시작했다.
태유준은 숨을 몰아쉬며 가위를 꽉 잡았다. 두렵고 또 무서웠다. 좀비가 아니라 사람이 달려오는 것만 같아 가위를 손에서 놓고 싶기도 했다. 이곳은 성스러운 성전 안. 저 사람은 괴물이 되기 전 분명 기도를 올리고 있었으리라.
태유준의 손이 떨려 왔다. 좀비는 그사이 점점 가까이 다가와 아가리를 쩍 벌렸다. 살고자 하는 태유준의 본능이 바짝 고개를 들었다. 내가 공격하지 않으면 상대가 날 해칠 것이다. 난 어떻게든 이 남자의 목숨 줄을 끊어 놔야 한다. 살아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그저 추잡한 괴물일 뿐이야!
태유준은 이를 악물었다.
“흐읍!”
좀비의 쇄골 아래에 가위 날이 박혔다.
“꾸에엑!”
좀비가 몸을 튕기며 괴로워했다. 태유준은 다시 한번 쐐기를 박으며 좀비의 숨통을 끊어 놓았다. 얼굴에 검붉은 피가 튀었다.
“하아… 하아….”
“신부님.”
원혁이 빠르게 다가와 태유준을 살폈다. 태유준은 가만히 눈을 감았다가 뜬 후, 성당 맨 뒤로 갔다. 그곳에는 미사를 보러 입장할 때마다 손을 적시는 성수를 담은 항아리가 비치되어 있었다.
벌써 사태가 터진 지도 두 달여가 되어 간다. 당연히 그 누구도 이 항아리의 성수를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며, 물을 갈아 주고 축복을 내려 주지 않았을 테다. 즉, 이것은 그저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고인 물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유준은 떨리는 손을 뻗어 성수에 더러워진 손을 씻었다. 얼굴의 핏자국을 닦아 냈다. 물비린내인지 피비린내인지 모를 것이 코를 찔렀지만, 그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흐으… 흐윽.”
신성한 곳에서 가장 부정한 짓을 저지른 느낌이었다. 나는 내가 살아남기 위해 남을 죽인다. 이제는 본능에 가까운 몸짓으로 무기를 휘두른다. 어디가 약점인지, 어떻게 무기를 휘둘러야 잘 죽일 수 있는지 본능적으로 찾아내고야 만다. 그들이 아무리 좀비로 변했다고 해도, 한때는 나와 같은 사람이었는데. 신의 자녀였는데.
하지만 죽이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어르고 달랠 수도, 기도로 치유할 수도 없다. 잔인하게 죽이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흑.”
뜨거운 눈물이 뺨을 타고 흐름과 동시에 태유준의 목구멍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그것은 애달픈 울부짖음이자, 어린아이가 토해 내는 듯한 본능적 울음이었다. 태유준은 가슴을 치며 맨바닥에 엎드렸다. 12월의 날씨는 이 바닥마저 꽁꽁 얼린 후였다.
그 차가움이 태유준을 한층 서럽게 만들었다. 눈물이 용솟음쳤다.
“나… 나는, 죽이고 싶지 않았어.”
태유준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싫었어. 하지만….”
웅크린 그의 등으로 원혁이 손을 뻗었다. 단단한 손길이었다.
“신부님.”
“신부님이라고, 부르지 마. 싫어. 싫어!”
자신의 신분을 일깨우는 그 호칭이 태유준은 몸서리치게 싫었다. 죄책감이 바위처럼 그를 짓눌렀다.
이웃을 사랑하라 하였는데 죽이고 있습니다. 무자비하게 무기를 휘두르는 저 자신이 낯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 생명이 우선입니다.
하염없이 눈물을 떨구며 울먹이는 그를, 원혁이 나지막하게 불렀다.
“…유준아.”
“….”
“네가 살아야 돼. 난 이기적인 놈이라서 이렇게밖에 말 못 하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건 네 목숨이야.”
“….”
태유준은 침묵한 채 가는 숨을 내쉬었다. 감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한단 말인가. 내가 뭔데 남들보다 중요한 존재란 말인가.
아무 말 없는 태유준을 향해, 원혁이 거듭 말했다.
“너를 지켜. 그래야 뭐든 할 수 있어.”
“제가… 뭘 할 수 있는데요. 저는 그저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자일 뿐입니다.”
“그 자체가 중요한 거야. 넌 네 목숨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만으로 잘하고 있는 거야.”
“누굴 위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