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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 한다고…!”
원혁은 계속해서 안 된다고 했으나, 태유준의 머릿속에는 용산 벙커에서 한 인간이 좀비로 변하던 모습이 뚜렷하게 떠올랐다. 눈에 핏발이 서고, 악취 나는 눈물이 흘렀다. 손발이 곱아 들어 경련하는 모습이 역겨워 견딜 수가 없었다. 그 남자는 좀비에 물린 지 몇 분 만에 그렇게 변해 버렸다. 인간이 아닌 다른 무언가로 변해 버렸다. 나도 아마 그럴 것이다.
“형제님. 아직 저…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나요?”
태유준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끔찍하게 변한 모습을 원혁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되기 전에 원혁이 자신을 처리해 주었으면 했다.
원혁은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어.”
“정말입니까? 눈동자도 붙어 있고, 피부도 썩어 들어가지 않았나요?”
“당연하지. 아직 멀쩡해.”
“좀비에 물리면 금방… 손발이… 썩어 버리고… 눈알이 떨어져 나가던데. 저 역시 그렇게 됐을 텐데요. 거짓말이시죠.”
“아냐. 정말인데.”
태유준은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벌써 물린 지 몇 분이 지났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태유준은 당황하며 자신의 손을 살폈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깨끗했다. 곱아 들지도 썩어 들지도 않았다. 다른 부위를 살펴봐도 마찬가지였다. 태유준은 열이 오르거나 숨이 가쁘지도 않았고, 경련이 일어날 징조도 없었다.
태유준은 침을 꿀꺽 삼키고 다시 원혁에게 물었다.
“그럼 제가 물린 자국은 어떻게 됐습니까?”
“아주 선명해. 이빨 자국.”
“…그리고요?”
“부풀거나 염증이 생기진 않았어. 그냥 딱… 이빨 자국만 찍혀 있어.”
두 사람은 어둠 속에서 눈을 마주쳤다.
뭔가 이상하다.
태유준은 혼란스러웠다. 좀비에게 물리고도 감염되지 않았다는 사람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세상이 아귀지옥이 된 것도 따지고 보면 다 감염력 때문이 아니었나. 그러니 지금 당장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해서 안심할 일은 아니었다. 물린 후 30분이 아니라 더 늦게 발현하는 경우일지도 몰랐다.
“일단 절 묶어 주십시오. 지금은… 지금은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이러다가 또 언제 증상이 나타날지 모릅니다.”
“어떻게 널 묶어.”
“갑자기 돌변해서 형제님을 공격하면 어떡합니까. 얼른 묶어 주세요.”
“안 묶어.”
“그럼 제가 직접 저를 묶겠습니다.”
태유준은 원혁의 배낭을 뒤져 밧줄을 찾아냈다. 그러고는 스스로 몸에 밧줄을 칭칭 동여매기 시작했다.
“하, 뭐 하는 짓이야. 내가 보기에 너 멀쩡해.”
“위험하다고 했습니다. 저한테서 떨어지세요.”
“그만. 제발 차분하게 생각해 봐. 지금 물리고도 멀쩡하거든? 이거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난 거야.”
“압니다. 하지만 이러다가 갑자기 좀비로 돌변하면 어떡합니까. 어서 묶어 주세요.”
결국 원혁이 백기를 들었다.
“알았어. 저기에 묶어 줄게.”
원혁이 콘크리트 기둥을 가리켰다. 태유준은 튼튼해 보이는 기둥을 보며 끄덕였다.
“잠깐만 시간을 줘. 내가 널 묶으려면 마음의 준비가 필요해.”
원혁은 크게 한숨을 쉬고 나서 가방에서 생수를 꺼내 마셨다.
“신부님도 마실래?”
“…네.”
원혁이 태유준에게 생수병을 건넸다. 태유준도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생수병을 옆에 두었다. 아직까지는 인간의 욕망과 감각이 살아 있어 물도 마시고 싶고 땀도 나지만, 지금의 자신은 시한폭탄 같은 존재였다.
절대로 원혁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지금 깔끔하게 쏴 달라고 부탁을 해야겠다. 원혁이 못 하겠다고 한다면 내 가방에도 총이 있으니 그거라도 꺼내서 마무리를 짓자. 태유준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히려 애썼다. 조금만 용기를 내면 된다. 비록 신의 자녀인 자신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자유가 없지만, 이런 경우라면 신도 용서해 주시지 않을까.
결심을 마친 태유준은 원혁에게 다시 말을 걸려 했다. 그런데 그때 저 멀리서 그림자가 보였다. 비정상적으로 움직이는 그림자는 인간이 아니라 좀비의 것이었다.
“형제님, 뒤에 좀비가…!”
원혁이 벌떡 일어나며 뒤돌았다. 하지만 이번 좀비 역시 너무도 빨랐다. 놈은 삽시간에 두 사람 앞까지 뛰어와 공격 태세를 취했다. 원혁은 욕을 뱉으며 좀비의 가랑이를 걷어찼다.
“꽤액!”
태유준은 무기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아까의 난리 통에 짐이 흐트러진 터라 가위가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 그에게 좀비가 아가리를 쩍 벌리고 다가왔다.
태유준은 급한 대로 물병을 던졌다. 될 대로 되라는 식이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임을 봉쇄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었다.
“캬으아아!”
좀비는 생수병에 얻어맞더니 비명을 질렀다. 뭔가 이상했다. 겨우 생수병 하나 얻어맞은 것뿐인데, 좀비는 전신을 비틀며 괴로움에 몸서리쳤다. 그러더니 다음 순간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좀비가 움직임을 멈췄다. 정확히 말하자면 문자 그대로 돌처럼 굳었다.
“…어?”
물을 뒤집어쓴 좀비는 석고상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돌이 된 상반신에 비해 하반신은 아직 멀쩡했다. 좀비는 더듬더듬 다리를 움직여 원혁에게 다가왔다. 반은 굳어 있고, 반은 움직이는 몸은 보는 것만으로도 역겨웠다.
“뭐야, 이거 뭔데.”
원혁은 인상을 쓰며 중식 칼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힘껏 팔을 휘둘러 좀비의 목을 쳐 보았다. 그러자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좀비가 바스스, 가루가 되어 무너진 것이다. 다만 다리는 원래의 모습 그대로였다.
“이게 무슨…!”
“상체만 부서졌어?!”
두 사람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대체 이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문제란 말인가.
원혁이 쭈그려 앉아 좀비의 잔해를 살피는 동안, 태유준은 시계를 봤다. 이미 좀비로 변할 시간은 훌쩍 지났는데도 자신의 몸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 그리고 앞에는 이상하게 변한 좀비가 쓰러져 있다. 이 모든 정보가 가리키는 것이 무슨 뜻인지 그는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왜 난 좀비로 변하지 않지? 그리고 저 좀비는 왜 간단한 공격에 모래처럼 무너져 버렸나.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일단 이곳을 떠나는 게 중요했다. 그건 원혁도 마찬가지였는지, 그가 태유준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일단 나가자고. 또 다른 좀비가 있을 수도 있어. 벌써 두 마리나 마주쳤으니 말이야.”
“전 버리고 가십시오.”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일어나. 그리고 지금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신부님 멀쩡하잖아.”
“그냥 단순히 시간이 걸리는 게 아닐까요? 사람마다 변하는 시간이 다를 수도 있고….”
태유준이 작게 중얼댔다. 그렇지만 속으로는 느꼈다. 지금 이 육체는 지극히 멀쩡하다.
원혁이 태유준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며 물었다.
“신부님이 제일 잘 알 거 아냐. 지금 신부님, 인간이야 좀비야?”
“그거야… 제가 사람이라고 느껴집니다.”
“그럼 됐어. 내가 보기에도 멀쩡해, 신부님은.”
그 말에 태유준은 더 이상 미적거릴 수 없었다. 그는 주섬주섬 일어나 짐을 챙겼다.
“그래도 제가 혹시 갑자기 변한다면 절 죽여 주십시오.”
“난 그렇게는 못 한다고 분명히 말했어.”
“….”
“그나저나 여기는 어떻게 들어왔을까. 이해가 안 되네.”
“혹시 처음부터 따라온 건 아닐까요? 여기 공기는 오랫동안 사람이 지나가지 않은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먼저 와 있었을 것 같지는 않아요.”
원혁이 얼굴을 굳혔다. 그러고 보니 들어오면서 문을 잠그지는 못했으니, 뒤따라 들어왔다면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죽은 척 시늉에, 문을 열고 누군가를 쫓아올 정도의 지능이 사실이라면….”
원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일단 짐 챙기자.”
둘은 일사불란하게 떨어뜨린 물건들을 주웠다. 격렬한 싸움에 휘말리는 바람에 핸드폰과 무기는 물론이고 배낭 앞주머니에 넣어놨던 물건들까지 다 쏟아져 나와 있었다.
“엇.”
태유준이 멈칫했다. 바닥에 떨어져 잇는 건 다름 아닌 좀비의 손가락이었다. 숫자 2가 박힌 그 손가락은 놀이공원에서 주워 온 것으로, 혹시 나중에 필요할지 모른단 이유로 원혁이 비닐봉지에 집어넣었던 기억이 났다.
“…손가락이.”
“왜 그래. 신부님.”
“좀비 손가락 기억하십니까. 놀이공원에서 가져온 거요.”
“기억하지. 근데 왜.”
“…돌이 되었어요, 그 손도.”
“뭐?”
원혁이 플래시로 태유준이 든 것을 비췄다. 태유준이 집어 들자 한때 손가락이었던 것이 모래처럼 바스러져 태유준의 손바닥 위를 거칠거칠하게 맴돌았다.
“방금 전까지 이게 바닥에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집으려고 보니까 돌처럼 굳어 있었어요.”
“그럼 아까 그놈만 이상한 게 아니라, 여기에도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는 건데.”
태유준은 그 말에 고개를 돌려 바닥을 봤다. 방금 손가락이 떨어져 있던 자리는 물로 젖어 있었다. 좀비와의 싸움에 생수병을 던지는 바람에 바닥이 흠뻑 젖은 것이다.
“…설마 저 물이.”
“물?”
“아까 좀비도 물을 맞았고 이 손가락은 생수에 젖었습니다. 공통점은 오직 그것뿐이에요. 물과 놈들이 관련 있는 게 아닐까요.”
태유준이 생수병을 집어 올렸다.
“하지만 이건 그냥 생수인데. 그리고 그놈들은 비가 와도 멀쩡하잖아. 움직임이 느려질 뿐이지.”
“…그건 그렇습니다.”
태유준은 생수병을 쳐다보았다. 지극히도 평범한, 500밀리리터짜리 생수병은 호텔에 들렀을 때 집어 온 것으로, 조금 전 태유준이 마실 때만 해도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우선 그 물병도 챙겨서 나가자고.”
“네.”
“여의도까지 얼마 안 남았어.”
벽에 희미한 음각 글씨가 보였다.
[여의나루 선착장까지 2.5킬로미터, 방향은 정북쪽.]
둘은 발걸음을 서두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