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늘에서 좀비가 비처럼 내려와-41화 (41/93)

[email protected]@

“신부님도 써 봐. 얼른. 나만 쪽팔리기 싫으니까.”

“알겠습니다.”

태유준이 머리띠를 썼다. 원혁은 풉 웃으며 토끼 귀를 예쁘게 다듬어 주었다. 아예 한쪽 귀를 구부려서 접어 주기까지 했다.

“끝내준다.”

“웃겨요?”

“아니. 예뻐.”

“그럴 리가요.”

“진짜야. 볼래?”

원혁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카메라 앱을 켰다. 셀카 모드로 화면을 돌려 놓고 두 사람을 나란히 프레임에 비춰 보자 태유준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이게 뭐예요!”

예상보다 더 귀여운 머리띠와 창백한 인상이 너무 안 어울렸다. 태유준은 수치심을 느끼며 머리띠를 벗으려 했다.

“이런 건 어린 사람이나, 인상이 밝은 사람이 어울린다고요.”

“아냐. 신부님 잘 어울려. 진짜 토끼 같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그만하세요.”

“얼른 렌즈 봐. 하나, 둘, 셋.”

“저기.”

말리지도 못하고 사진이 찍혔다. 태유준은 황당했으나 원혁은 사진이 퍽 맘에 드는지 사진을 배경 화면으로 설정하기까지 했다.

“나한테도 신부님 사진 생겼다.”

“제발 지워 주세요.”

“싫은데?”

태유준이 핸드폰을 잡으려 손을 뻗었으나 원혁은 손을 높이 들어 올려 피했다. 애석하게도 키 차이가 나는 탓에 태유준의 손은 닿지 않았다. 하지만 태유준은 포기하지 않았다. 분명 틈이 생길 것이다. 그때 저 사진을 지워 버릴 테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은 원혁이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그나저나 어때. 놀이공원 와서 할 만한 일은 다 한 것 같은데.”

마치 휴일에 놀이공원에 놀러 왔다가 돌아가는 사람들이 할 법한 말이었다. 놀이공원이라기보다는 좀비공원에 가까운 곳이기는 했지만, 일단 할 건 다 하기는 했다.

“그렇긴 하네요. 츄러스도 먹어 보고, 아이스크림도 먹었고, 놀이 기구는 차마 못 탔지만 남들 타는 것 구경도 했고. 머리띠 끼고 사진도 찍었네요.”

“아주 재미있었지. 그럼 이제 나가 보자.”

원혁의 말마따나 슬슬 나가 봐야 했다. 놀이공원의 좀비는 얼추 정리된 것 같았으니 이제 이동할 일만 남았다. 태유준이 일어서는데 원혁이 잠시 그의 어깨를 잡고 멈춰 세웠다. 그러더니 태유준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뚫어지게 쳐다보는 원혁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진 태유준이 고개를 돌리려 했다. 그런데 원혁은 숫제 한 손으로 태유준의 얼굴을 붙들었다. 그리고 원혁의 얼굴이 점점 가까워졌다. 태유준은 당황스러웠다. 머릿속에서는 불순한 상상이 피어올랐다.

“형제님, 지금 뭐 하시는….”

원혁의 손가락이 태유준의 입가로 다가왔다. 뭐라고 입을 열려는 순간, 원혁이 먼저 말했다.

“설탕 묻어 있길래.”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설탕을 털어 낸 원혁이 싱긋 웃었다. 태유준의 뺨만 붉게 달아올랐다. 나는 지금 무슨 엉뚱한 생각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붉어진 태유준의 얼굴을 본 원혁이 말했다.

“신부님 혹시 이상한 생각 한 거 아니지?”

태유준은 그 말에 정색했다.

“아닙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당황한 태유준은 머리띠를 끼고 그대로 나가려다가 식겁하며 머리띠를 벗어 던졌다. 원혁은 쿡쿡 웃으며 문을 열어 주었다. 태유준은 애써 마음을 가라앉히며 문을 열었다. 뒤에 따라붙는 원혁의 웃음소리가 그를 더욱더 민망하게 만들었지만 필사적으로 모른 척했다.

밖에 나가자 좀비 시체가 개판으로 널려 있었다. 수십 미터당 한 구씩 몸이 꺾여 쓰러져 있는 좀비들을 지나쳐 태유준과 원혁은 출구 쪽으로 발길을 향했다.

원래 놀이동산의 손님이었는지 대부분의 시체들은 옷차림이 화사했고 비교적 젊어 보였다. 태유준은 착잡한 심경으로 시체들을 이리저리 피해 걸었다. 그러다가 개중에 튀는 좀비를 발견했다.

국방색 점프 슈트를 입은 좀비가 한 마리 누워 있었다. 놀이공원까지 쫓아온 놈들은 다 처리했다. 그렇다면 이 점프 슈트는 원래부터 이곳에 있던 놈일 가능성이 컸다.

“어, 점프 슈트…….”

“가까이 가 보자.”

두 사람은 후다닥 달려가 좀비를 살폈다. 태유준은 이번에도 몸 어딘가에 숫자가 새겨져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우리가 본 점프 슈트 놈들은 문신이 다 잘 보이는 곳에 있었어요. 이놈도 옷에 가려지지 않은 부위에 문신이 있을 것 같아요.”

“얼굴이나 목에는 없는데.”

“플래시 좀 가까이 비춰 주세요.”

원혁이 핸드폰으로 플래시를 만들어 좀비의 상체를 따라 위에서 아래로 빛을 비추었다. 태유준은 검시관이라도 된 듯이 신중하게 좀비의 몸을 살폈다. 그러다가 좀비의 엄지손가락에서 드디어 문신을 발견했다.

“여기 있다. 손가락에 로마자 2요.”

역시 이놈도 그중 하나였구나. 가벼운 전율이 흐르며 오한이 끼쳤다.

“이런 옷을 입고 문신한 좀비를 본 게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네요. 절대 우연이 아닙니다.”

“그렇지. 얘네가 단체복 맞춰 입고 우정 타투를 하고 돌아다니는 놈들이 아닌 이상. 그리고 점프 슈트 놈들은 밤에도 빠르잖아. 힘도 스피드도 달라.”

태유준이 좀비의 손가락을 살피며 고개를 주억거리던 때였다. 꿈틀. 태유준의 코앞에 있는 좀비의 손이 경련했다.

“헉.”

좀비가 바닥에 손을 짚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몸을 일으켰다. 분명 죽은 줄로만 알았던 좀비가 살아 움직이는 모습에 태유준은 경악했다.

“끼에엑!”

“흡!”

소스라치게 놀란 태유준은 뒤로 몸을 물리다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좀비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태유준의 몸 위를 덮치듯 날아올랐다.

“이 자식이!”

원혁이 좀비의 후드와 머리카락을 한 번에 낚아챘다. 그는 격투기를 하듯이 좀비를 바닥에 거칠게 패대기쳤다. 좀비는 캑캑거리며 지네처럼 몸을 뒤틀더니, 다시금 벌떡 일어났다.

태유준은 서둘러 바닥에서 일어나며 주머니를 뒤졌다. 그가 가위를 꺼내려 주춤대는 동안, 좀비가 원혁과 태유준을 번갈아 둘러보더니 몸을 돌려 태유준 쪽을 향했다. 마치 원혁은 못 해 보겠으니 비교적 만만한 태유준을 노리겠다는 판단을 내린 것처럼 보여 태유준은 소름이 쫙 끼쳤다.

“꾸에엑!”

좀비는 다시 태유준에게 덤볐다. 태유준은 이를 악물고 좀비에게 가위를 휘둘렀다. 몇 번 헛손질이 있은 다음, 겨우 몸을 찌르는 데 성공했다.

“크악!”

좀비가 무릎을 꿇더니 바닥을 기었다. 원혁이 좀비의 등 뒤로 다가가 끝장을 냈다. 그제야 좀비는 지푸라기 인형처럼 털썩 바닥에 쓰러졌다.

“헉… 헉.”

“이제 정말 죽었나 보군. 안 움직여.”

“아까, 죽은 척한 거죠.”

가까스로 숨을 돌린 태유준이 원혁을 바라보며 물었다.

“맞아. 우리가 자기 몸을 살필 때까지 죽은 척했다가 급하게 공격한 거야.”

“말도 안 돼. 어떻게 그럴 수가. 지금까지 이런 놈은 한 번도 없었는데.”

“보통 놈이 아니야. 이 새끼, 상황 판단까지 침착하게 했어.”

“지능이 있다는 건가요.”

“그렇게밖에는 표현 안 되지.”

태유준의 팔뚝에 소름이 돋아났다. 지금까지의 좀비들은 무식하고 과격하게 공격만 할 뿐, 함정을 파지도 못했고 지능적인 행동을 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이놈한테는 수법이란 게 존재했다.

“게다가 이상한 점 못 느꼈어?”

“어떤 점 말입니까?”

“아까 신부님이랑 나를 번갈아서 봤잖아. 그리고 신부님한테 달려들었고.”

“봤다고요? 좀비는 시력이 없는 거 아니었습니까?”

지금까지 마주친 좀비는 대부분 눈알이 없었다. 그것들은 예민한 후각과 청각으로 먹잇감을 찾아다니는 존재였다. 그 약점을 이용한 덕분에 원혁과 태유준은 좀비에 맞서 싸울 수 있었다.

그런데 조금 전 점프 슈트 좀비는 마치 눈이 보이는 것처럼 굴었다. 번갈아 두 사람을 ‘바라봤다’. 그리고 체격이 상대적으로 작은 태유준에게 덤벼들었다. 후각이나 청각으로 알 수 있는 정보가 아니었다.

태유준은 기억을 되짚었다. 처음 문신 좀비를 발견했을 때는 시력이 있는지 어떤지 판가름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리고 놀이공원으로 쫓겨 들어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놈은 확실히 우리를 봤고, 죽은 척하며 농락하는 지능까지 갖추고 있었다.

점프 슈트 좀비가 단순히 힘과 스피드만 빠른 게 아니라 시각과 지능까지 있다면 어떻게 상대해야 할까. 오싹 소름이 들었다.

“이거 가져가자.”

원혁이 조각난 손가락을 집어 올렸다. 방금 전의 싸움에서 잘려 나간 문신이 있는 엄지손가락이었다.

“이, 이건 왜 챙기십니까.”

눈앞으로 내밀어진 잿빛 손가락에 태유준은 식겁했다. 하지만 원혁은 마치 비커 안을 들여다보는 연구원 같은 눈빛을 하고서 한참 동안 손가락을 들여다보았다.

“때에 따라서 어떻게 쓰일지 몰라. 가져가는 게 좋겠어.”

그는 근처를 나뒹구는 비닐봉지를 집어 손가락을 넣고 대충 휘감았다.

“어서 가죠. 빨리 빠져나가고 싶습니다.”

“그래. 그건 나도 찬성.”

원혁이 앞장서고 태유준이 뒤를 따랐다. 찬 바람이 불어와 낙엽을 휘날리고 태유준의 머리를 흐트러뜨렸다. 추워서 소름이 돋았고, 방금 기이한 행동을 선보인 좀비 때문에 또 한차례 소름이 돋았다.

태유준은 빠르게 움직이면서도 한 번씩 뒤를 돌아보았다. 꼭 좀비가 다시 살아나 자신의 손가락을 내놓으라고 달려들 것 같아 불안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말 죽은 게 맞는지, 좀비는 그를 쫓아오지 않았다.

처음 들어왔던 입구의 차단봉을 넘어서 두 사람은 다시 외부로 나갔다. 차에 올라탄 다음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원혁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