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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좀비가 비처럼 내려와-38화 (38/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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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유준은 입술을 꾹꾹 깨물며 숨을 죽이고 걸었다. 손에서 물건이 미끄러지기라도 할까 봐 강하게 힘을 줬다. 호흡마저 섬세하게 컨트롤하면서 샹들리에 구역을 빠져나온 그는 뒷문 입구에 섰다. 뒤따라온 원혁이 태유준의 뒤에 섰다. 둘은 눈을 마주치고 사인을 보낸 후, 뒷문을 열었다.

거리는 아주 조용했다. 자신의 숨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는 것 같아서 걱정될 정도였다. 좌우를 살피고 트럭을 향해 걷는데, 원혁이 급하게 태유준을 재촉했다.

“형제님?”

“빨리 타!”

태유준은 본능적으로 큰일이 닥쳤음을 깨달았다. 요즘 들어 제대로 배운 법칙 하나가 있었다. 원혁은 좀비의 낌새를 잘 눈치챈다. 그러니 원혁이 다짜고짜 타라면 빨리 타야 하는 것이다.

약 200미터 떨어진 골목길 어귀에 좀비 열 마리 정도가 어슬렁대고 있었다.

태유준은 트럭을 향해 냅다 뛰기 시작했다. 수단 자락이 바람에 날렸다. 그는 짐칸에 생수 묶음을 내던지고 빠르게 조수석에 올랐다. 원혁도 거의 동시에 운전석에 탔다.

“젠장.”

“뭡니까, 저거.”

“도망쳐야겠어.”

둘의 발소리와 차의 시동 소리가 자극이 되었는지 좀비들은 고개를 꺾고 트럭을 주시하고 있었다.

“얼른 가죠.”

차가 빠르게 출발했다. 뒤를 돌아본 태유준은 깜짝 놀랐다. 무리 중 다섯 마리가 미친 듯이 속도를 내서 차를 쫓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잠깐, 저 새끼들 뭐지…?! 밤인데 왜 저렇게 빨라…?”

“그때 봤던 놈이랑 외관이 비슷해요…! 점프 슈트!”

좀비는 국방색 점프 슈트를 입고 있었다. 태유준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밤이 되면 모든 좀비는 느려지지만, 지난번에 봤던 것처럼 점프 슈트 좀비들은 빨랐다. 가공할 만큼 힘이 셌고 점프도 기겁할 만큼 잘했다. 쉽게 말해 다른 좀비들과 싹수가 달랐다.

쾅!

“으악!”

태유준이 타고 있는 조수석 창문으로 좀비가 달라붙었다. 대가리로 창문을 깨겠다는 듯, 좀비는 아등바등 매달려 이마로 유리창을 찧었다.

“이런 제길.”

원혁이 거친 숨소리를 내고서 그대로 액셀을 밟았다. 엔진 소리와 함께 차가 대로를 내달렸으나, 좀비는 끄떡도 않고 매달린 자세를 유지했다. 예전처럼 트럭의 방향을 이리저리 바꿔서 쳐 버릴 수가 없는 것이, 지금은 트럭이 너무 무거웠다.

“짐칸에도 몇 마리 탄 모양입니다. 백미러로 보여요.”

“이런 개새끼들이 무임승차나 하고 말이야.”

원혁은 입에 담지 못할 욕을 몇 마디 짓씹으며 차의 속도를 늦췄다 빨리했다. 속도에 변화를 주고 이따금 각도를 트는데도 조수석, 그리고 짐칸의 놈들은 끈질기게 차를 먹어 치우려 했다. 쾅! 좀비가 다시 한번 조수석 창문에 박치기를 했다. 아무리 봐도 원혁과 태유준 쪽이 압도적으로 불리한 상황이었다.

트럭은 정신없이 달렸다. 쾅, 쾅. 공포스러운 소리가 울려도 달릴 수밖에 없었다. 차는 큰길로 빠져나가 과감하게 드리프트를 시도했다. 두어 마리가 아스팔트 바닥에 몸을 갈았다. 원혁은 신들린 운전을 하며 몇 마리를 더 따돌렸다. 하지만 그 경주는 오래가지 못했다.

“바리케이드!”

막다른 골목에 몰린 것이다. 끼이익, 요란한 소리를 내며 차가 멈춰 섰다. 덕분에 조수석 쪽을 공략하던 좀비는 주르륵 미끄러졌다. 짐칸에 있던 놈들도 거리로 나뒹구는 신세가 됐다. 하지만 도로에 나뒹굴고도 집념이 남았는지, 놈들은 고장 난 몸으로 일어서 팔다리를 질질 끌며 차를 쫓아왔다.

“젠장. 막다른 길이야.”

쾅쾅쾅. 좀비들은 마치 차에 탈 권리가 있다는 듯, 차를 둘러싸고 차 문과 앞유리를 미친 듯 두드리기 시작했다.

“일단 좌우에 붙은 놈들을 각자 맡자고. 무기 챙겨.”

“예.”

“하나, 둘, 셋 하면 간다.”

원혁과 태유준은 칼과 가위를 꽉 쥐고 카운트를 셌다. 그리고 셋을 외침과 동시에 각자의 문을 거세게 열었다. 갑작스러운 일격에 양쪽 문에 매달려 있던 좀비들은 멀리 나가떨어졌다. 원혁과 태유준은 곧바로 내려 엉덩방아를 찧고 있는 좀비를 해치웠다.

“그런데 아까 열 마리는 돼 보였잖아요. 나머지는 어디 간 거죠?”

그 말을 하기 무섭게 궤엑, 소리가 태유준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점프 슈트를 입은 좀비들이 미친 듯 달려오고 있었다. 소름이 오싹 끼쳤다.

“빌어먹을.”

원혁이 태유준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그들은 바리케이드를 넘어 달리기 시작했다. 길이 막다르거나 말거나, 지금은 전진해야 했다.

“끼에! 끼엑!”

“꾸아악!”

좀비들이 괴성을 지르며 무서운 속도로 그들을 추격했다. 엉성하게 걷던 놈들은 제 발에 걸려 넘어졌고, 어떤 놈들은 바리케이드를 박살 내다가 파편에 알아서 찔렸다. 하지만 그런 멍청한 광경에 안심하기는 일렀다. 개중 점프 슈트를 입고 행동이 빠른 좀비들은 움직임이 달랐기 때문이다.

점프 슈트 좀비들은 다른 놈들보다 월등하게 높게 뛰어 바리케이드를 장애물 경주 선수처럼 손쉽게 젖혔다. 펄쩍펄쩍 뛰며 다리를 찢었고, 다른 좀비의 등을 딛고 도약하는 과감함마저 선보였다.

“계속 따라와요.”

“점프 슈트?”

“네.”

“망할. 일단 뛰어.”

태유준은 은색으로 된 바리케이드와 시야를 가로막는 각종 구조물을 헤치며 뛰었다. 하도 정신없이 달리느라 그것들이 무엇인지 제대로 볼 겨를은 없었다. 다만 지금 자신이 넘어 들어가는 입구가 지하철역에서 교통 카드를 찍고 들어가는 곳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도 언뜻 눈을 스친 문구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꿈과 로망의 나라로 어서 오세요’였다. 색색깔의 깃발이 펄럭이며 아름다운 문구를 휘날렸다.

웬 꿈과 로망? 여기 대체 어디야.

태유준은 혼란을 느끼며 바리케이드 안쪽의 세상으로 발을 디뎠다. 사람 키보다도 큰 동물 인형이 우뚝 앞을 막아서고 있었다. 태유준은 순간 비명을 지를 뻔했다. 그 너머로는 알록달록하게 꾸며진 화단, 바이킹, 롤러코스터, 그리고 이름도 모를 각종 놀이 기구들이 눈앞에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놀이공원…?”

지금 좀비들한테 쫓겨서 여기까지 온 거야?

태유준은 황당함에 헛웃음이라도 짓고 싶었다. 중학생 때 체험 학습 이후로 단 한 번도 와 보지 않은 곳이다. 이곳을 좀비 떼 수십 마리와 방문하리라고는 하늘에 맹세코 꿈꿔 본 적이 없었다. 티켓도 없이 무단으로 말이다.

“끼엑!”

뒤이어 좀비들도 차례차례 놀이공원으로 뚫고 들어왔다.

“신부님!”

저 멀리 맞은편에서 달리고 있는 원혁이 외쳤다.

“찢어져서 달리자.”

“네!”

“이따가 바이킹에서 만나!”

“알겠습니다!”

곧 갈림길이 나왔다. 원혁은 우측으로, 태유준은 좌측으로 달렸다. 그에 따라 좀비들은 잠깐 우왕좌왕하다가, 각각 방향을 잡고 절반씩 나누어 뛰기 시작했다.

탁탁. 뒤에서 밭은 발소리가 들려왔다. 점프 슈트 입은 놈들이 맹렬한 속도로 달려오고 있다고 생각하니 태유준은 끔찍했다. 두어 차례 그들을 관찰해 본 결과 놈들은 일반 좀비보다도 훨씬 힘이 좋고 달리기가 빨랐다.

이대로라면 놈들한테 잡히고 만다.

태유준은 머리를 써야 할 순간임을 직감했다. 위기에서 빠져나가려면 정공법을 쓰는 걸로는 부족하다. 도박을 해야 한다.

좀비 놈들의 가장 큰 특징이 무엇인가. 눈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무식하고 빠르게 달릴 줄만 알지 섬세하고 복잡한 움직임을 수행하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놈들을 가장 무력화시킬 수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여기야! 여기라고!”

태유준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면서 달렸다. 좀비들은 착실하게 그의 뒤를 따랐다.

흡사 피리 부는 소년이 된 태유준은 자신의 시야 끝에 있는 귀신의 집을 쳐다봤다. 저기라면 중학생 때 가 본 적도 있고, 내부가 대충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안다. 입구가 동굴의 입처럼 생겼으며 내부 통로는 좁고 미로 같다. 그러니 무식하게 뛸 줄만 아는 좀비들은 절대 저 복잡한 내부에서 다시 바깥으로 헤집고 나오지 못할 것이다.

다만 위험성이 있다면 태유준이 좀비들을 이끌고 저 안까지 직접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었다. 그 안에서 좀비가 태유준을 공격하는 데 성공할 수도 있고 어쩌면 다대일의 상황에 처할지도 몰랐다.

하지만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인 법, 태유준은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핸드폰을 꺼내 빠르게 플래시를 켠 다음 제 발부리를 비추며 뛰었다. 귀신의 집 입구가 점점 가까워졌다. 프랑켄슈타인, 처녀 귀신, 그리고 하필이면 좀비를 형상화한 각종 조형물들이 간판을 장식하고 있었다.

“들어와!”

태유준이 크게 외치며 입구를 차단하는 은색 봉을 뛰어넘었다. 그가 과감하게 귀신의 집 내부로 들어가자, 마치 동굴 같은 분위기 속에서 시커먼 두 갈래 길이 나왔다. 아마 어느 길로 가나 귀신 분장을 한 아르바이트생들이 뛰쳐 나와 사람을 놀랬던 것으로 기억한다. 안전한 길인 척하다가도 모형 괴물이 느닷없이 튀어나와 관람객들의 비명을 유도하기도 했고 말이다.

그리고 지금은 태유준이 좀비들을 혼비백산시킬 차례였다.

태유준은 핸드폰 불빛에 의존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세 갈래 갈림길이 나왔다.

분명히 뒤쫓아 오는 놈들은 갈팡질팡한다. 제대로 앞이 보이지 않으니 날 제대로 추격할 수 없어. 3분의 1 정도만 여기로 들어올 거다.

태유준은 가장 왼쪽 갈림길로 들어갔다. 몇십 미터 정도 들어갔을 때, 태유준은 깜짝 놀랐다.

“윽!”

모퉁이에서 갑자기 처녀 귀신 모형이 튀어나오는 바람에 그는 거의 넘어질 뻔했다. 등줄기에 소름이 쫙 돋았다. 뒤에서는 우당탕 한 무리의 좀비 발소리가 들렸다. 가슴이 쿵쾅쿵쾅 뛰다 못해 혼절할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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