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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좀비가 비처럼 내려와-37화 (37/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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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에 그런 실험을 했다면, 대체 왜…. 이유가 있었을 텐데. 전 이해가 안 가요. 왜 이딴 짓을 했을까요?”

태유준이 생각하기에 그 누구라도 굳이 죽은 자를 되살린 괴물을 만들어 낼 이유가 없었다. 예를 들어 군대이든, 기업이든 그 어떤 단체도 지금은 정상적인 운영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아예 시장 경제와 국가 체제 자체가 무너질 지경인데 좀비를 길러 내서 어디에 쓴단 말인가. 지능도 없고, 컨트롤할 수도 없고, 또 공격적이기만 한 좀비를.

“설령 누군가가 좀비를 이 땅에 태어나게 했더라도 그들한테는 한 점 이득이 없는데요. 말이 안 됩니다.”

“흠. 그렇네.”

“이야기하다 보니 목이 마르네요. 피곤하기도 하고요.”

“그럴 만도 해. 며칠을 쉬지 않고 달려왔는지 모르겠다. 신부님이랑 나랑 처음 만난 게 벌써 한 달도 더 된 일인 거 알아?”

“아… 벌써 그렇게 됐네요.”

태유준의 눈이 침대 옆 협탁에 놓인 달력으로 갔다. 기억하건대 좀비 사태가 처음 터진 날은 11월 1일, 천국에 있는 모든 성인들을 기념하는 축일이었다. 행사를 맞이해 평소 잘 걸치지 않는 수단을 차려입고 대성당에서 미사를 드리고 있었더랬지.

그런데 지금은 어느덧 12월 6일. 성 니콜라스 축일이었다. 원래대로면 수도원 사람들이 정신없이 크리스마스를 준비하고 있을 무렵이다.

좀비가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손재주 좋은 태유준은 성당 부지를 꾸미는 팀에 투입되어 말구유와 동방 박사 모형을 만들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는 올해 크리스마스에 눈이 내리게 해 달라는 보육원 아이들의 기도에 동참했을 텐데, 지금은 이게 다 뭔가.

“좀비 놈들과의 생쇼가 해를 넘기지는 않았으면 좋겠는데.”

원혁은 그렇게 말하며 창가에 기대섰다. 그의 등 너머로 잿빛 하늘에 흰 먼지 같은 눈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어… 눈?”

“명색이 첫눈인데 이런 데서 맞이하니까 기분이 묘해. 그렇지?”

“그렇네요.”

태유준도 테이블을 벗어나 원혁의 옆으로 가 섰다. 안전상의 이유에서인지 창문은 아주 살짝만 열리게끔 설계돼 있었다.

“창문 열게요.”

“얼마든지.”

태유준이 힘을 줘 창을 밀자, 20센티미터 정도 문이 열렸다. 싸늘하고 매서운 찬 바람이 들이닥쳤다. 그 바람에 깃털처럼 날리는 눈송이가 실내로 들어왔다.

“눈 맞았다, 신부님.”

“…네.”

“눈 맞으니까 더 예쁘네.”

열린 창틈으로 차가운 공기와 어우러진 눈송이가 점점 더 많이 들어왔다. 태유준은 손을 뻗어 눈송이를 잡아 보았다. 하지만 눈송이는 손에 닿자마자 녹아서 손끝에 눅눅한 물기를 남길 뿐이었다.

이 겨울이 다 가기 전에 이 사태가 끝날까. 과연 내년에는 사람들이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까.

태유준은 조금 이른 크리스마스 기도를 했다. 부디 성 니콜라스가 듣고 있다면, 선물 대신 세상을 원래 모습으로 되돌려 달라고.

파스타로 끼니를 때운 덕에 배가 고프지는 않았으나, 원혁은 미니바를 다 털어 먹일 생각인지 끝도 없이 서랍을 열었다. 초코바, 견과류, 병에 든 과일 주스를 쉴 틈 없이 태유준에게 안겨 주었다. 한창 먹던 중 미니바 가격표를 발견한 태유준이 기함했으나, 원혁은 어차피 네가 돈 낼 것도 아닌데 뭘 놀라냐며 핀잔을 줬다. 또한 이 상황에서 돈은 누가 받아 낼 것이며 카드고 현금이고 기능을 하겠냐는 게 원혁의 주장이었다. 태유준은 딱히 받아칠 말이 없어 조용히 주스를 마셨다.

밤에는 미리 푹 잔 태유준이 불침번을 서기로 하고 원혁을 재웠다. 하지만 원혁은 혼자 자면 재미가 없다면서 한사코 태유준을 옆에 눕히려 했다.

“누워서 불침번 서면 되잖아.”

“그게 불침번입니까?”

“편하게 해, 편하게.”

결국 태유준이 졌다. 그는 가운 차림으로 똑바로 누워 천장을 보며 네 시간 동안 불침번을 서기로 했다.

“허리에 손은 왜 감으시는 건데요.”

“습관이야.”

“거짓말하지 마세요.”

“들켰다.”

원혁은 뻔뻔하게도 태유준의 허리를 휘감고서 휘파람을 불었다. 태유준은 하나뿐인 동행과 싸워서 얻을 것이 없다고 판단해 대답을 하지 않았다.

* * *

초호화 침구에 몸을 누인 덕일까. 호텔을 나설 때쯤 태유준의 피로감은 상당히 감소되어 있었다. 목욕 때문에 피부에도 간만에 윤기가 돌았다. 고급 어메니티를 피부에 펴 바르던 태유준은 잠깐 지난번 목욕할 때 일어난 일이 생각나서 울컥했으나, 기도로 감정을 승화시키고 짐을 쌌다.

그리고 간만에 후드 티 대신 사제복을 꺼냈다. 유명 가전 브랜드의 다리미로 옷을 다렸더니 어제 산 옷처럼 번쩍번쩍 빛이 났다. 망한 세상이지만 사제임을 잊고 싶지 않았다. 자꾸만 살생을 저지르게 되고, 누군가를 미워도 하고 화도 내며 여기까지 왔지만, 그래도 자신은 아직 신의 품 안에 있다는 안정감을 얻고 싶어 굳이 사제복을 입었다.

“짐 다 챙겼어? 신부님. 손 좀 내밀어 봐.”

“왜요.”

“카드 키 한 장 주려고.”

원혁이 태유준의 손바닥에 카드 키를 얹어 주었다.

“이걸 왜 저한테 주시는 겁니까?”

“우리가 만약에 찢어지게 되면 여기로 와.”

“예?”

“봐서 알겠지만 이 방만큼 안전한 데가 없어. 알겠지? 신부님이랑 나랑 서로 잃어버리면 여기서 모이는 거야.”

태유준은 지금 남자가 하는 말이 와닿지 않았다. 정확히는 이해가 잘 안 됐다. 각자의 목적이 부합해 장 박사를 찾으러 임시 팀을 구성했을 뿐, 그와는 원래는 일면식도 모르는 낯선 사이였다. 그런데 왜 마치 처음부터 일행이었던 듯이 다시 합류하자는 것일까.

“…가다가 찢어지게 되면, 그냥 그대로 자기 갈 길 가야지. 왜 다시 만납니까?”

“왜냐니? 섭섭하네. 지난번에도 그러더니. 우리 같은 팀이잖아.”

원혁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 그 반응이 태유준은 생경했다.

“팀이요? 설마 그럼 제가 장 박사님 소재를 잘 알고 있어서가 아니라…?”

“아니, 그러면 신부님은 예를 들어서 내가 다쳤어. 운전이고 싸움이고 못 할 상황에 처했어. 나 버리고 장 박사 찾아서 가 버릴 거야?”

“…아니죠. 그럼 안 되죠.”

“나도 마찬가지야. 우린 팀이니까.”

“저기… 언제 팀을 맺었죠?”

“하, 나 참.”

원혁이 허리춤에 손을 얹고 헛웃음을 지었다. 마치 믿었던 동료에게 배신당한 사람 같은 표정이었다.

“언제긴. 당신이 내 고구마 트럭에 탄 순간부터지.”

“예…? 그게 그런 뜻이었어요?”

“몰랐으면 지금부터 알아 두면 돼. 자, 빨리 받아.”

태유준의 눈앞으로 고급스럽게 음각된 키가 내밀어졌다. 태유준은 얼떨떨한 기분에 그 키를 선뜻 쥐지 못했다. 그러자 원혁이 손을 뻗어 억지로 카드 키를 쥐게 했다.

“빨리 가자고.”

누군가와 팀을 이룬다. 그것도 이 남자랑.

태유준은 기분이 묘했으나, 일일이 그 감정을 토로하기에 그는 서툰 구석이 많았다. 그래서 그저 키를 쥐고 고개를 끄덕인 후, 성경책을 펼쳐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 있는 페이지에 그것을 끼웠다.

창세기 8장, 지독한 홍수가 끝나고 마침내 새 세상을 맞이한 노아의 방주에 대한 글이었다.

[둘째 달 스무이렛날에 땅이 말랐더라]

성경 속 노아와 가족들은 비 그친 땅에 뿌리를 내렸다. 태유준은 그 구절을 다시 한번 눈에 담다가, 자기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신기하다. 카드 키 한 장이 뭐라고 이 참혹한 세상 속 대피처가 생긴 기분인 걸까.

* * *

“나가기 전에 물건들을 좀 챙기자고. 쓸 만한 생필품이 많이 있을 거야.”

태유준과 원혁은 호텔 안을 샅샅이 뒤졌다. 다행히도 비품실이 열려 있었다. 내부는 무질서하게 어질러져 있었고, 바닥에는 반쯤 터진 생수병들이 나뒹굴었다. 아마도 혼란의 순간 호텔에 머물던 사람들이 이 안에 들이닥쳐 비품을 털어 간 모양이었다.

“그래도 뜯지 않은 물병도 있네. 다 가져가자.”

“깨끗한 수건이랑 시트도 있어요. 필요할 것 같으니 많이 챙기겠습니다.”

태유준은 새하얗게 표백된 수건 여러 장과 깨끗한 시트를 한 벌 챙겼다. 부피가 줄어들게끔 그것들을 개고 있는데, 원혁이 가볍게 감탄하며 트레이에 실린 물건들을 뒤적거렸다.

“커피다.”

“인스턴트커피요?”

“안 그래도 요새 카페인이 모자라 미칠 지경이었는데 잘됐네. 커피 좀 가져가야겠어.”

원혁은 때아닌 카페인 타령을 하며 커피 스틱을 가방 안에 쑤셔 넣었다.

두 사람은 반짇고리, 종이컵, 일회용 칫솔, 작은 비누 등 사소한 물건을 몇 개씩 챙겼다. 물건이 곧 생명 줄이라도 되는 듯 태유준은 소중히 짐 가방과 생수 묶음을 껴안았다.

“그럼 내려갈까? 느낌상 놈들이 자고 있을 것 같기는 한데 그래도 조심히 가자.”

“네.”

태유준과 원혁은 10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내려가는 짧은 순간 동안 긴장이 심화되어, 태유준은 입술 각질을 물어뜯었다. 1층에 도달하는 순간 띵, 소리가 나서 좀비들을 자극할까 걱정이 됐다.

띵.

1층에 도착했다는 알림 벨이 고요한 호텔 안을 울렸다.

태유준은 사방을 경계하며 빠르게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샹들리에를 붙들고, 혹은 다리로 감고 잠들어 있던 좀비들이 움찔거렸다. 놈들이 근육 경련을 일으킬 때마다 샹들리에가 위태롭게 흔들렸다.

호텔 뒷문으로 나가려면 무조건 샹들리에 아래를 지나야 했다. 태유준과 원혁은 서로 눈을 바라보며 오케이 신호를 해 보인 다음, 복도 양옆으로 나누어 걸었다.

절대로 이들을 깨워서는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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