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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는 기분 나쁘게 웃으며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도끼를 붕붕 돌렸다. 마른 쪽도 낄낄대며 삽으로 손장난을 쳤다. 태유준의 몸에 힘이 들어갔다. 이들은 분명하게 유준에게 해를 끼치려는 것이었다.
태유준 역시 맨손으로 있지는 않았다. 원혁이 안쪽을 살피러 들어갈 때 태유준도 품 안에 작은 과도를 하나 넣어 놨었다. 하지만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폭력을 쓰고 싶지는 않았다. 부디 이 칼을 휘두르는 사태는 없어야 할 텐데. 태유준은 이 상황을 최대한 말로 해결하고 싶었다.
하지만 남자들은 막무가내였다. 덩치가 도끼를 치켜들어 유준을 향해 휙 내리꽂았다. 다행히 먼저 공격의 수를 읽은 태유준이 잽싸게 몸을 날렸다.
“야, 너 지금 피하냐? 형님이 정신 좀 일깨워 준다는데. 이 새끼가!”
공격이 실패로 돌아가자 덩치는 열이 잔뜩 오른 듯했다. 두 남자가 동시에 소리를 지르며 달려들었다. 태유준은 정말로 폭력을 휘두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로 얻어맞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갈등에 빠진 유준이 망설이고 있을 때, 뒤쪽에서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하는 새끼들이야!”
원혁이었다. 갑자기 거구의 위협적인 남자가 나타나자 2인조는 멈칫했다. 이쪽을 향해서 걸어오는 원혁은 새삼스럽게 강해 보였다. 남자들은 눈에 띄게 주춤했으나 자존심이 더 앞섰던 모양이다.
“그러는 너는 뭐, 뭐야.”
그렇게 말하는 덩치의 목소리에는 쫄아 붙은 기색이 역력했다. 그럴 만도 했다. 어둠 속에서 주유소 조명 아래 서 있는 원혁은 평소의 능글거리는 그의 모습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차가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게다가 한 손에는 잘 벼린 중식도를 들고 있었다.
“이 새끼들이 감히 신부님을 건드려?”
“거, 건드렸다. 어쩔래.”
“그럼 죽여야지.”
원혁이 칼을 쳐들었다. 그가 큰 보폭으로 그들에게 다가가자, 남자들은 식겁하며 뒤로 물러서기 바빴다. 덩치가 말라깽이의 뒤로 잽싸게 숨었다.
“야, 너 왜 내 뒤에 숨어.”
“몰라! 형이 어떻게 좀 해 봐.”
“나라고 아냐…! 에라 모르겠다!”
남자들은 도끼와 삽을 내던지고 달리기 시작했다. 스텝이 꼬여 간간이 넘어지면서 그야말로 줄행랑을 쳤다.
“웃기는 녀석들이네. 내가 죽인다는 말을 믿어?”
원혁은 그들을 뒤쫓지 않았다. 대신 원혁에게 빠르게 걸어왔다.
“신부님 괜찮아?”
“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예쁜 얼굴 어디 다친 거 아니지?”
원혁이 유준의 두 뺨을 감싸고 얼굴 이곳저곳을 살폈다. 유준은 원혁의 손을 떼어 내려 했으나, 원혁의 힘이 세 쉽지 않았다.
“이것 좀 놔주시죠. 전 아주 멀쩡합니다.”
“그래. 목소리가 기운찬 걸 봐서 멀쩡해 보여.”
“그나저나 안쪽은 어땠어요?”
“난장판이야. 다들 여기 들러서 기름 훔쳐 갔나 봐. 그래도 두 통이나 찾아냈어.”
원혁은 그렇게 말하며 멀찍이 떨어진 곳에 놓인 기름통을 가리켰다.
“그래도 찾아서 다행이네요.”
태유준은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말했다. 하지만 목소리에 힘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신부님, 괜찮아?”
태유준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사람을 상대로 폭력을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신부님 성격상 그렇겠지.”
“…만약 제때 안 나타나 주셨으면 저는 결국 반항했을지 모릅니다. 과도를 휘둘렀을지도 모르죠. 저답지 않게요.”
원혁은 기름통을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이런 세상에서 신념을 관철하는 게 쉽지는 않을 거야. 신부님 아니라 그 누구더라도 말이지.”
원혁의 말이 맞았다. ‘목숨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명분하에 법이나 질서는 서서히 의미를 잃어 갔다. 자신이 살아남으려면 뭐든지 해야만 하는, 내 목숨이 최우선인 세상이다.
주유소를 빠져나온 트럭은 쉬지 않고 달렸다. 간간이 버려진 차량이나 방치된 시체로 막힌 구간을 지나서 시가지 골목을 통과하다 보니 시간이 제법 걸렸다. 원래 예정한 시간은 새벽 3시쯤 잠실 대교를 건너는 것이었으나 막상 잠실 대교 북단에 도착했을 때는 희미하게 동이 터 오를 무렵이었다.
“드디어 여기까지 왔군.”
“창영 형제님 말이 맞았군요. 지나갈 수 있겠어요.”
“그렇지만 곧 해가 뜰 시간이야. 다리만 건너고 나서 바로 쉴 곳을 찾자고.”
창영이 준 정보대로 잠실 대교는 뻥 뚫려 있었고 바리케이드도 없었다. 간단한 입간판이 ‘임시 통제’를 알리고 있을 뿐. 그것들만 치운다면 오가는 데 무리가 없어 보였다.
“내려서 상황 좀 살피고 간판 치우겠습니다.”
“같이 해.”
두 사람은 차에서 내려 사방을 살폈다. 다행히 인근에는 좀비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서서히 밝아 오는 태양이 다리를 비추기 시작하자, 태유준은 금방 이질감을 느꼈다. 다리 아래 육중한 기둥에 다닥다닥 좀비가 붙어 있었다. 해가 조금 더 밝게 떠오르자 그것들이 조금씩 꿈틀댔다.
“기둥 쪽에 좀비가 있어요. 완전히 날이 밝기 전에 서둘러 움직여야겠습니다.”
“젠장. 알겠어. 입간판들만 빨리 치우자고.”
그들은 힘을 합쳐 ‘임시 통제’라 쓰인 입간판 여러 개를 길옆으로 치웠다. 무게가 묵직하고 크기도 커서 태유준 혼자 들기에 벅찬 것도 있었다. 그때마다 원혁이 힘을 보태 장애물을 걷어 냈다. 빠르게 작업을 마치자, 어느덧 기둥에 매달린 좀비들이 활기 있게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이 꼭 부화 중인 애벌레 같아서 태유준은 속으로 잠시 욕을 했다.
“그런데 우리가 차를 타고 가면 소리가 나잖아요. 속도를 높이면 엔진 소리가 좀비를 자극할 텐데요, 어떡하죠.”
“그렇다고 천천히 가면 늑장 부리다가 해가 뜰지도 몰라. 일단 빨리 차에 타.”
“네.”
원혁과 태유준이 다시 차에 올랐다. 그러는 동안 해는 빠르게 떠올랐고, 기둥에 매달려 있던 좀비들이 하나둘 깨어나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텅 빈 눈구멍으로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찾아 팔을 휘적거렸다. 아직 해가 완전히 뜨지 않아서 느린 움직임이었지만 충분히 위협적인 몸짓이었다. 무엇보다 숫자가 문제였다. 언뜻 보기에도 수십 마리였다.
“가자. 별수 없어. 꽉 잡아, 신부님!”
“으윽, 네!”
트럭이 급발진했다. 대교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트럭의 진동에 좀비들이 자극받았다. 그것들은 꾸엑꾸엑 괴상한 소리를 내며 대교로 올라왔다. 그리고 소리가 나는 방향을 따라 트럭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왔다. 유준은 사이드 미러를 통해 그 광경을 보며 진땀을 흘렸다.
“안 되겠어. 한 번에 빠져나가자.”
원혁이 가속 페달을 밟았다. 트럭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그러자 좀비들 중 네다섯이 비척거리며 트럭으로 다가왔다.
원혁은 좀비들이 차를 에워싸기 직전에 그 틈새를 빠져나왔다. 개중 몇 마리는 트럭에 몸을 부딪치기도 했다. 쿵쾅거리는 소리가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액셀을 미친 듯이 밟은 덕에 차는 가까스로 잠실 대교 남단에 도착했다. 그러나 북단에서부터 쫓아온 좀비들은 열성 팬이라도 되듯이 그들 뒤를 따라 계속 쫓아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둘은 정신없이 트럭을 몰며 상의했다.
“젠장. 저것들을 처리하고 가야 돼.”
“맞습니다. 지금 이대로 가지 말고 확실히 처리하고 가야 하는데… 잠시만요.”
꾸에엑, 끼엑! 요란한 소리를 내며 좀비 떼가 달려오고 있는 상황에서 신속하고 차분하게 판단하기란 어려웠다. 하지만 어처구니없는 상상을 해내기에는 오히려 좋았다. 태유준은 강변을 따라 조성돼 있는 한강공원에서 힌트를 찾았다.
“배. 배가 있어요.”
“배? 저거 유람선 아니야?”
폐허처럼 방치된 유람선 선착장이 그들의 오른편에 펼쳐져 있었다. 한때는 서울의 낭만을 상징하던 아이템이었으나 손님 하나 없는 새벽의 선착장은 황량함 그 자체였다.
“설마 배도 몰 줄 아세요?”
“당연하지. 저 정도는 껌이야.”
원혁은 이 상황에서도 여유를 잃지 않고 허세스러운 코웃음을 흘렸다. 태유준은 비장한 목소리로 진지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제 아이디어 한번 들어 보세요. 저 유람선에 일단 좀비들을 태워요. 최대한 열심히 유인해서 이 근방 좀비들을 다 태웁니다.”
“그러고?”
“배만 출발시켜 버리죠. 우린 빠져나오고요.”
“기막힌 아이디어네. 좋아, 신부님. 해 보자고.”
그들은 차머리를 돌려 선착장 방면으로 직진했다. 그러자 소리에 이끌린 좀비들이 후다닥 달려 미치광이처럼 트럭을 쫓아왔다. 끼익. 원혁은 급하게 차를 세웠다. 아직 좀비들과 약간의 이격이 있는 지금이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그는 트럭에서 내리자마자 확성기를 집어 들고 냅다 뛰었다. 태유준도 각목을 꺼내 들고 그의 뒤를 따라 달렸다. 그들이 배와 땅을 잇는 가교를 건너는 동안 해가 완전히 떠올랐다. 좀비들의 속도가 가공할 만큼 빨라졌다. 배 앞에 다다른 두 사람은 눈빛으로 신호를 교환했다.
원혁은 배 안으로 들어가면서 확성기에 대고 소리쳤다.
“한강 유람선 타실 분들은 이쪽으로!”
귀청을 찢을 듯 커다랗게 울려 퍼지는 소리에 좀비들이 유람선 방향으로 고개를 틀었다. 원혁은 그들을 자극하기 위해 계속해서 소리쳤다. 좀비들은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유람선으로 기어올라 갔다.
태유준은 유람선에 제대로 타지 못하는 손님들을 맡았다. 그것들을 각목으로 밀어서 배 안으로 쑤셔 넣듯이 태웠다. 물론 그의 지도에도 불구하고 방향을 잃고 헤매는 좀비들은 선착장에서 발을 헛디뎌 물속으로 빠졌다. 손도 안 대고 코를 푼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