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늘에서 좀비가 비처럼 내려와-29화 (2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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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원혁에게 벙커 사람들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두려움과 절망감을 품고 그를 바라봤을 뿐이다. 방금 전까지 동료였던 사람을 무참히 죽여 준 사람. 고마운 마음과 함께 불편함과 공포가 복합적으로 벙커인들을 휩쌌다.

원혁은 사람들이 차지하고 있지 않은 구석 자리로 향했다.

“형제님.”

태유준이 빠르게 달려와 원혁의 옆에 섰다.

“별일 없으셨습니까.”

“보다시피 멀쩡해.”

“어떻게 됐는데요.”

“처치하고 문밖에 버렸어.”

“….”

“그렇게 쳐다볼 거 없어. 난 어차피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뭐.”

원혁은 그렇게 말하며 머리 뒤로 깍지를 끼고 벌러덩 누웠다. 태유준은 말없이 그의 옆에 앉아, 원혁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이제는 알아서 해 주네? 두통 치료.”

“머리 아프실 것 같아서요.”

“역시 날 알아주는 건 신부님밖에 없어. 우리 결혼할까?”

태유준은 농담에도 반응하지 않고 시름 가득한 얼굴로 원혁을 내려다봤다.

“…형제님. 이 상황에서 이런 말 하는 거 좀 이상한 거 압니다만, 한 가지만 부탁드려도 될까요.”

“뭔데?”

“만약에 말입니다. 만약인데….”

“만약에 뭐.”

“제가 좀비에 물리게 된다면.”

태유준은 말을 하다 말고 잠시 침묵했다.

“신부님이 왜 물려. 내가 안 물리게 잘 지켜 줄 건데.”

“만약이라고 했잖습니까.”

“그래, 계속 말해 봐.”

“…만약에 제가 좀비에 물리는 일이 생긴다면, 저를 쏴 주세요.”

“뭐?”

“우리한테 총이 있잖아요. 그걸로 바로… 쏴 주세요. 아직 인간일 때 죽고 싶습니다.”

태유준이 처연하게 말했다. 그의 소원은 다른 게 아니었다. 산 날의 끝까지 장 박사를 찾고, 만약 중간에 좀비가 되어야 한다면 그저 인간답게 끝을 맞이하고 싶었다. 기도를 할 시간도 주어지면 좋겠다. 인간으로서의 지성과 감각이 바스러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속죄를 하고 신에게 믿음을 고백하고 싶다.

“진심이야?”

“저 진지합니다. 좀비가 되면 지금 제가 느끼는 감각도 생각도 다 정지하잖아요. 그렇게 괴물이 되어 사느니 깔끔하게 총을 맞고 죽고 싶어요.”

“내가 그럴 수 있을까?”

“…왜요. 저를 못 쏘실 것 같으세요?”

원혁이 코웃음을 쳤다. 황당해도 이렇게 황당할 수가 없었다.

“내가 널 어떻게 쏴.”

“왜 못 쏘시는데요.”

“같은 팀이잖아.”

원혁이 또 그 카드를 꺼냈다. 태유준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같은 팀이라도 쏴야 할 때는 쏘는 겁니다.”

“그럼 신부님은 내가 좀비 되면 바로 쏠 거야?”

“그게 가장 합리적인 길이라면 그렇게 해야죠.”

“와, 너무하네.”

원혁이 태유준의 손을 아프지 않게 물었다. 태유준은 식겁하며 이런 장난 치지 말라고 원혁의 이마를 때렸다. 원혁은 어딘가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벌떡 일어나 앉은 원혁은 답지 않게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부님. 확실하게 말해 두는데 난 신부님 안 쏴. 아니, 못 쏴.”

태유준은 대답할 말이 없었다.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원혁의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목마르시죠. 물이라도 가져오겠습니다.”

“아냐, 됐어. 내가 가져올게.”

원혁은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장신의 그가 우둑, 목 관절을 꺾으며 스트레칭을 하자 사람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쏠렸다. 꾸벅꾸벅 졸던 사람조차도 원혁의 커다란 그림자에 눈을 비비며 일어날 정도였다.

원혁은 물이 있는 곳을 향해 걷다가 멈칫했다.

“어…?”

그의 시선이 한 가족에게로 향했다. 상대는 중년의 부부와 20대 후반의 아들로 구성된 가족이었다. 아들이 원혁의 옷을 보며 말했다.

“저 옷, 내 옷이랑 똑같은데.”

“저 얼굴, 내가 아는 얼굴인데.”

태유준은 원혁이 바라보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김은진의 부모님과 오빠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형제님, 잠시만요!”

태유준이 허겁지겁 원혁의 앞으로 달려 나왔다. 김은진의 오빠는 한 번 더 놀랐다.

“이 후드 티도 내 거랑 똑같잖아.”

깜짝 놀란 청년에게 태유준은 침착하게 손을 내밀었다.

“옷에 대한 건 나중에 설명드리고, 일단 여쭙겠습니다. 김은진 씨 가족 맞으시죠?”

“은진이? 우리 은진이를 알아요?”

김은진의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 태유준의 소매를 움켜쥐었다.

“우리 딸. 은진이. 은진이를 어떻게 압니까. 은진이를 봐, 봤어요? 살아 있습니까?”

아버지는 흥분해 말을 더듬었다. 태유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바로 엊그제까지 같이 있었습니다. 광화문 벙커에서요.”

“세상에, 은진아…!”

김은진의 어머니가 두 손을 가슴에 모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녀의 오빠도 벅찬 표정을 지으며 어머니를 껴안았다.

“벙커에서 은진 씨와 서로 도우며 지냈습니다. 저희는 먼저 나왔구요. 은진 씨가 가는 길에 자기 집에 한번 들러 달라고 부탁하더군요. 빈집이길래 밥을 먹고 옷을 입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할 일이 아니에요. 우리 은진이가 살아 있다니, 우리 은진이랑 서로 돕고 지냈다니…! 너무 고마워요. 우리 애 소식을 알려 줘서… 흐흑.”

김은진의 어머니는 엎드려 통곡했다. 엉엉 우는 가족들을 보며 태유준은 착잡함을 느꼈다.

“살아 있다니 그 말만으로 힘이 되는군요. 어서 만나고 싶은데… 대체 언제쯤… 이 사태가 정리될지.”

김은진의 아버지가 한숨을 내쉬었다.

“언젠가 모든 사태가 끝날 겁니다. 그때 되면 꼭 다시 만날 수 있을 겁니다.”

태유준의 말에 김은진의 어머니는 눈물 젖은 얼굴로 되물었다.

“정말 그럴까요. 그런 날이 올까요.”

가족을 위로하기 위해 꺼낸 말이었으나 사실 태유준도 확신할 수는 없었다. 언제 좀비들이 사라질지, 혹은 없앨 수 있을지. 과연 그런 일이 가능한가 단언할 수 있는 자는 아마도 지금 이 세상에는 한 명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태유준은 사제가 될 몸이었다. 눈물 흘리며 괴로워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반드시 이 지옥에는 끝이 있을 겁니다.”

태유준의 말에 김은진의 어머니는 울음을 왈칵 터뜨렸다.

“흐흑…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이 말밖에는 할 말이 없네요.”

가족들의 감정이 한소끔 가라앉을 때까지 태유준은 그들의 곁에 있어 주자고 했다. 원혁은 한두 시간 정도 여유가 있으니 그렇게 하라며 창영, 효영 남매의 옆에 드러누워 쉬었다.

알고 보니 김은진의 부모님과 오빠 역시 가톨릭 신도들이었다. 태유준이 예비 사제라고 밝히자, 그들은 김은진이 그랬던 것처럼 태유준에게 평화의 기도를 해 주었다.

“평화를 빕니다, 사제님.”

“감사합니다. 저희는 이만 가 봐야 할 것 같아요.”

“가셔야 한다니. 따로 행선지가 있으신가요?”

“네. 사람을 좀 찾고 있어서….”

“지금은 위험하니 웬만하면 벙커에서 지내는 게 안전할 텐데요. 꼭 지금 찾아야 하나요?”

김은진의 어머니가 염려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 태유준은 앙상하게 마른 그녀의 손을 감싸 쥐었다.

“네. 저한테는 아버지 같은 분이셔서… 꼭 찾아야 합니다.”

“이런. 아버지 같은 분이라니, 그럼 꼭 만나야겠네요. 이럴 때일수록 더 보고 싶은 법이죠.”

그녀는 태유준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수척하지만 상냥한 눈빛으로 위로를 전했다.

“이곳 벙커에서도 가족이나 친지를 찾아서 밖으로 나가는 사람이 간혹 있어요. 우리야 은진이가 어디 있는지 전혀 몰라서 못 갔을 뿐… 조금의 실마리라도 있으면 움직였을 거예요.”

“어젯밤에 그 아저씨도 온 지 이틀 만에 나갔잖아.”

옆에 앉아 있던 김은진의 오빠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맞아. 여기 오래 머무를 것처럼 보이더니만… 갑자기 나가서 안 돌아오셨지.”

“대체 어떻게 되셨을지 모르겠다. 혹시 사고라도 났을지 몰라.”

“쯧. 그런 말 하면 못써.”

김은진의 어머니가 아들을 나무랐다. 그녀는 이내 태유준에게 양해를 구하듯 말했다.

“들고 나는 사람이 많아요. 사람들이 양쪽으로 나뉘어서 갈등을 빚고 그러다 보니까 불편해서 금방 나가 버리시는 분들도 계시고…. 저희랑 같이 지내던 중년 남자분이 계셨는데 그분도 이틀 정도 계셨나? 금방 나가시더라고요. 같은 신자라 참 좋았는데. 세례명도 우리 바깥양반이랑 같고 해서 더 반갑고요. 워낙에 특이한 세례명이라서.”

순간 태유준은 묘한 감각에 휩싸였다. 궁금증이 인 것이다.

밖으로 홀연히 떠나 버렸다는 중년의 남자도 가톨릭이었다는데, 그 독특한 세례명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보통 남자 신도들의 세례명은 태유준과 같은 요한, 아니면 안토니오나 베드로, 마테오 등 이름 몇 개를 돌려 쓰는 수준이었다.

그래서 신자들 사이에서 특이하다는 평을 들을 만한 이름은 많지 않았다. 특이한 세례명이라고 하면 장 박사가 쓰는 퀜시노 정도일까.

태유준이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이었다.

“그분도 아빠처럼 퀜시노셨지.”

김은진의 오빠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태유준은 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퀜시노…였다고요?”

“네. 흔치 않은 세례명이죠. 그런데 왜요?”

설마 그 중년이 장 박사였을까.

태유준의 가슴이 쿵쿵거리며 맥박이 빠르게 뛰었다. 그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지도 못한 채 다급하게 물었다.

“혹시 그분, 안경을 썼고 눈이 처진 편인가요?”

“어… 그랬던 것 같은데….”

“아니다, 잠깐만요. 사진을 보여 드릴게요.”

태유준은 허겁지겁 핸드폰을 꺼내 사진 파일을 열었다. 지난여름, 연구실에서 장 박사와 찍은 사진이었다.

김은진의 어머니와 오빠는 사진을 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이 남자분이랑 똑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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