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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편의점에서 났어요! 제가 다녀올게요.”
태유준은 곧바로 편의점 방향을 향해 뛰었다. 허겁지겁 달려 편의점 입구에 도착해 보니, 푸른 빛으로 깜빡이는 편의점 안에 좀비 한 마리가 보였다. 태유준은 본능적으로 문을 열고 편의점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좀비는 음료수 냉장고 앞에 서 있었고 신제환은 직원 계산대 너머에 숨어 있었다.
“이리 나와요!”
태유준이 소리치자 그는 그제서야 사람이 온 것을 알았는지 팔다리를 버둥거리며 계산대를 빠져나오려 했다. 계산대 너머로 나오려면 테이블을 위로 젖혀야 했지만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진열대 위에 있던 물건만 넘어뜨릴 뿐, 그는 쉽사리 빠져나오지 못했다.
“으, 으아아… 도와주세요!”
사색이 된 그의 앞으로 태유준이 달려갔다. 좀비는 팔을 휘저으며 과자 봉지와 컵라면을 바닥에 엉망진창으로 떨어뜨리고, 나아가 물건 진열대를 넘어뜨렸다. 개판이 된 상황에서 태유준이 할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뿐이었다. 그는 과감하게 가위를 꺼내 들었고, 그가 좀비를 처리하는 동안 신제환은 겨우 계산대를 벗어났다.
“하아… 하아. 괜찮습니까?”
태유준은 숨을 몰아쉬며 신제환을 쳐다봤다. 그는 안색이 좋지 않았고, 온 얼굴이 땀에 젖어 있었으며 손에 초콜릿을 꽉 쥐고 있었다. 초콜릿은 겨우 하나였다. 과자 진열대를 보니 애시당초 초콜릿은 이것 하나 남아 있었던 듯, 텅 비어 있었다.
“….”
이것 하나 건지자고 편의점에 온 건가. 아까 대표와 말하는 내용을 들어 보니 지난번에도 편의점에 온 적이 있고 그때 초콜릿의 재고 상황을 파악했을 텐데.
순간 태유준은 화가 치밀었다. 하마터면 좀비에게 당할 뻔한 상황이었다. 겨우 저 초콜릿 하나 때문에.
“지금 이거 하나 가져가려고 편의점 온 겁니까?”
“…죄송합니다.”
“하, 빨리 나가요.”
태유준은 한숨을 푹 쉬었다. 신제환은 여전히 하얗게 질린 얼굴로 편의점을 나섰다. 그는 여전히 초콜릿을 꽉 쥐고 있었다.
벙커 대표는 신제환에게 욕을 했다. 신제환은 여러 차례 고개를 숙여 사과하고, 태유준에게도 미안하다고 했다.
“됐어요. 빨리 돌아가기나 합시다.”
태유준은 어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는 앞장서 카트를 끌었고, 뒤에서 신제환이 어떤 얼굴을 하고 따라오는지 보지 못했다.
식량팀은 카트에 짐을 가득 싣고 다시 방화 셔터를 통과했다. 중앙까지 짐을 옮기고 나서 벙커 리더가 원혁과 태유준에게 정식으로 악수를 청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먼저 나서 주신 덕분에 용기를 내 싸울 수 있었습니다.”
“아닙니다. 다 같이 힘을 합친 결과죠.”
“내가 잘 싸웠긴 해.”
원혁이 거드름을 피우며 팔짱을 꼈다. 태유준은 이해를 좀 해 달라며 나머지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신제환의 반응이 유별났다.
“저… 형제님?”
그가 갑자기 거칠게 기침했다. 또한 자꾸 추운지 팔뚝을 쓰다듬기도 했다. 꽤 두툼한 옷을 입고 있는데도 그는 자꾸만 오한을 느끼는 사람처럼 굴었다.
“혹시 어디 불편하십니까?”
태유준이 그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갔다. 신제환이 퍼뜩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하지만 태유준은 그의 눈에 가득 선 핏발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금방이라도 눈이 튀어나올 것처럼 그의 흰자는 붉게 물들어 있었다.
태유준은 그대로 돌처럼 굳었다. 신제환은 허리 뒤로 손을 감추며 황급하게 자리를 뜨려 했다.
“왜 그래요.”
그때 벙커 대표가 다가와 두 사람 사이에 끼었다.
“신제환?!”
그가 당황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옆에 서 있던 중년 남자도 뒷걸음질 쳤다.
“제환이가 좀비… 좀비에 물렸어!”
그 말이 나오자마자 사람들 사이에 웅성거림이 일었다. 신제환을 중심으로 홍해가 갈라지듯 사람들이 멀찍이 거리를 두고 손가락질을 했다.
“진짜로 물렸어?”
“확실한가요?”
“어떻게 좀 해 봐요.”
경악과 비난, 원초적인 공포가 섞인 물음이었다.
“나… 나는… 아… 그게.”
신제환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산만하게 굴었다. 그의 눈 역시 공포로 질려 있었으나, 이내 그 눈에서는 핏물이 흘러내렸다.
“꺄악!”
“으악!”
사람들은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고, 저 멀리 도망가기도 했다. 혼란해진 분위기 속에 벙커 리더가 신제환의 손목을 틀어쥐었다.
“손이군. 손에 물린 자국이 있어.”
리더가 싸늘한 눈으로 신제환을 쳐다봤다.
“그… 저, 괜찮을 거예요. 진짜… 사, 살짝 물렸거든요.”
신제환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헐떡였다. 그의 오른손은 이미 세포가 괴사한 듯 검푸르게 변해 있었다.
“격리해.”
“사살해!”
“지금 당장 죽여야 돼!”
사방에서 온갖 소리가 쏟아져 들어왔다. 벙커 리더가 신제환의 몸을 노끈으로 칭칭 묶었다. 신제환이 거세게 반항했으나, 옆에서 남자 몇 명이 가세하자 저항할 도리가 없었다.
“안 돼!”
순간 날카로운 비명 소리가 공기를 찢었다. 아까 신제환과 애틋하게 이별하던 여자, 유나가 미친 듯이 달려오고 있었다.
“죽이지 마! 제발!”
여자가 울부짖었다. 흡사 짐승이 내는 듯한 소리에 태유준은 숨을 죽였다.
“제환아! 제환아!”
벙커인들은 냉정했다. 두어 명이 유나를 제압했고, 두어 명은 신제환을 무릎 꿇리는 데 성공했다. 하도 세게 짓눌러 무릎 꿇리는 바람에 신제환의 손에서 초콜릿이 떨어졌다. 그는 허겁지겁 그것을 주워 꼭 쥐었다.
태유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아까 편의점에서 가져온 초콜릿이 틀림없는데, 도대체 저게 뭐라고 저렇게 집착한단 말인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제발, 아저씨. 저 죽이지 마세요.”
아직까지 인간의 자아가 남아 있는지 신제환은 울었다. 비록 피와 함께 섞여 흐르는 눈물에서는 악취가 났지만, 그것이 인간의 눈물임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살려 줘요. 제발요.”
“빨리 처리해야 해. 30분이 지나면 좀비로 변한다고.”
한 중년이 시계를 보며 답답해했다. 그 옆에서 신제환은 울며 꺽꺽댔고, 유나란 여자는 이미 다른 곳으로 옮겨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내보내야겠지.”
리더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서도 이런 일은 익숙하지 않았다. 외부에서 물린 사람을 버리고 온 적은 있어도 물린 자가 실내로 들어온 적은 없었다. 또한 사람들이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 처형을 해야 하는 일도 처음이었다. 자신이 리더라고 해서 쉽사리 신제환을 죽일 용기가 나는 건 아니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함께 일하고, 움직이고, 먹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동료였기 때문에.
그가 망설임을 보이자 성난 사람들의 욕설 소리가 높아졌다. 안 죽이고 뭐 하냐는 비난도 거셌다. 그때, 원혁이 한 발을 내디뎠다.
“형제님…?”
“잠깐만, 신부님.”
원혁은 태유준을 한 번 쳐다본 다음, 리더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크지 않은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총대를 멜게. 난 외부인이니까. 내가 죽이는 게 나을걸.”
“…당신이 죽이겠다고요?”
“당신은 여기 리더잖아. 구성원을 죽이는 건 쉽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외부에서 온 내가 그 역할을 맡겠다고.”
“그래 준다면야 고맙겠습니다만.”
원혁은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뒤돌아 신제환의 멱살을 잡고 일으켰다. 사람들이 비명을 질렀다.
“사, 살려 주세요. 저 멀쩡해요. 인간이에요!”
“따라와.”
원혁은 그대로 신제환을 끌고 처음 자신이 들어왔던 남쪽 셔터 방향으로 걸어갔다. 길을 가는 내내 신제환은 경련하고, 발작하고, 구토했다. 더 이상 핏발이 설 수 없는 눈에서는 냄새나는 피눈물이 흘렀고 입에서는 침이 질질 흘렀다. 손가락도 곱아 들었는지 초콜릿이 그의 손아귀 안에서 우그러졌다.
“나… 사람, 사람… 인간. 줘야 돼, 초콜릿.”
아직까지는 인간의 언어를 쓸 수 있지만 그마저도 거의 퇴화해 가는 시점이었다. 그래도 신제환은 끝없이 호소하듯 말을 했다. 자신은 살아 있다고, 자신은 인간이라고.
“흐… 끄극, 죽이지 마. 아직 …초콜릿, 못 줬….”
신제환과 원혁이 셔터 앞에 다다랐다. 신제환은 이제 남은 절차라고는 목이 베인 채 길바닥에 내버려지는 일뿐이라고 생각했다. 흐려지는 의식 속에서도 비참함이 들끓어 올랐다. 유나가 보고 싶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초콜릿을 건네야 했다.
그런데 원혁이 먼저 말을 걸었다.
“안 죽여.”
“…끄, 극… 안… 죽여?”
“지금 우리 뒤를 따라오는 사람, 당신 애인이지?”
신제환이 목을 뚜둑 꺾어 뒤를 봤다. 시뻘건 시야 너머, 숨죽여 울고 있는 유나가 보였다.
“유…나.”
유나는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멈췄던 숨을 몰아쉬며 무너졌다. 원혁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가슴을 치는 그녀를 한 번 보고, 신제환의 잿빛 손에 들린 초콜릿을 한 번 봤다.
“…유, 나.”
“그래. 저 여자랑 같이 밖으로 내보내 줄게. 어차피 그러려고 왔지, 당신도?”
유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비틀비틀 걸어왔다. 그녀가 신제환을 꽉 끌어안았다. 초콜릿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원혁은 그것을 주워 툭툭 먼지를 턴 다음 유나에게 건넸다. 유나는 주룩주룩 눈물을 흘리며 그것을 받아 들었다.
“이제 나가.”
원혁이 셔터 출입 버튼을 누르자 곧 쇠창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남녀는 끌어안은 채로 셔터 바깥으로 나갔다. 이윽고 인간의 경계 바깥에 서게 된 유나는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을 문질러 닦으며 원혁에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원혁은 대꾸하지 않고 다시 버튼을 눌렀다. 쇠창살이 묵직한 소음과 함께 외부와 내부를 차단했다.
뒤돌아서서 다시 벙커로 걷는 동안, 날카로운 여자의 비명이 한 번 울렸다. 그리고 이내 그쳤다.
저들로서는 가장 좋은 결말일지 모르지.
원혁은 아무것도 못 들은 척하며 고개를 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