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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좀비가 비처럼 내려와-25화 (2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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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이 좀비 떼는 더욱 가까이 다가와 두 사람의 지척까지 왔다. 지금은 그럴싸한 무기도 조명도 없었다. 공간도 제한돼 있었으며 차량도 동원할 수 없는 데다가 수적으로도 6대 2로 절대 불리했다.

하지만 여기서 어떤 식으로든 승부를 내야 한다는 것쯤은 태유준도 잘 알았다. 어느덧 좀비와의 싸움에 익숙해진 것이다. 상대는 높이 점프하는 데 익숙한 존재고 후각이 뛰어나 추격에 능하다. 그렇다면 한쪽으로 유인한 다음에 단번에 처리하는 게 좋지 않을까. 태유준의 머릿속에 묘책이 하나 스쳐 갔다.

“형제님, 제가 놈들을 유인하겠습니다. 한 놈씩 발목을 걸어 넘어뜨려 주십시오.”

“굿 아이디어.”

원혁은 바로 알아들은 듯, 태유준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이리 와!”

태유준은 크게 소리 지르며 셔터 쪽으로 뛰었다. 좀비들이 소리에 이끌려 우르르 그쪽으로 뛰었다.

원혁은 제일 앞에 오는 놈의 발치 아래로 슬라이딩했다. 발목을 공격당한 좀비가 큰대자로 넘어졌다. 그로 인해 뒤따라오던 놈도 첫 번째 좀비의 등 위에 엎어지고 말았다.

“이쪽이라고!”

태유준은 원혁의 공격이 성공하는 것을 확인하며 계속 소리 질렀다. 눈먼 좀비들은 앞서간 놈들이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고 허우적거리며 달렸다. 원혁은 세 번째 놈의 정강이를 제대로 걷어찬 다음, 연이어 네 번째 좀비의 무릎을 찼다.

“끼에!”

“꾸아악!”

좀비 네 마리가 바닥에 쓰러져 허우적거렸다.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놈들은 서로 후려갈기기도 하고, 신경질적으로 머리채를 잡아 휘두르기도 했다. 지금까지는 작전이 제대로 먹힌 듯했다. 하지만 아직도 두 마리가 남아 있어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었다.

두 좀비가 한꺼번에 달려왔다. 속도가 너무 빠른 데다가 동일선상에서 달려오고 있어 발목을 거는 것은 무리로 보였다. 태유준은 원혁 쪽으로 달려갔다.

“형제님! 둘을 충돌시켜요!”

태유준은 몸을 날리듯 달려 왼쪽 좀비의 멱살을 잡았다. 그와 동시에 원혁이 오른쪽 좀비를 붙들었다.

두 사람은 각각 붙잡은 좀비를 냅다 휘둘렀다. 쾅! 좀비의 머리끼리 부딪치며 뼈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께에엑!”

“꿱!”

태유준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좀비의 가랑이를 걷어찼다. 남자 좀비였던 탓에 놈은 정신을 못 차리고 바닥으로 쓰러졌다.

“끼엑…껙….”

원혁은 아직 숨이 붙은 좀비마다 찾아다니며 중식 칼로 깔끔하게 마무리 조치를 했다.

“하아. 하아.”

숨 막히는 격전이었던 만큼 태유준의 이마에서는 뜨거운 땀이 흘렀다.

“신부님 제법이네.”

“형제님이야말로요.”

두 사람이 하이 파이브를 나눴다. 그리고 남매의 무사를 확인하기 위해 몸을 틀었을 때, 놀랍게도 셔터 안쪽에서 손전등 불빛이 보였다.

“웬 소란인가 했더니. 사람입니까?”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유준은 깜짝 놀라 셔터 가까이로 다가갔다. 희미한 손전등 빛에 안경을 쓴 30대 정도의 남자가 비쳤다. 그 옆에는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홀쭉한 남자도 함께였다.

“어, 어떻게… 여기 벙커에 계시는 분입니까?”

“맞습니다. 저희는 이곳 벙커의 임시 대표고, 소란이 심해 사람들이 불안해하길래 나와 봤습니다.”

임시 대표라는 말에 태유준은 속으로 긴장했다. 광화문에서 전횡을 일삼던 민머리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여기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순간적으로 불길한 예감도 머리를 스쳤다.

그러나 일단 겉으로 보기에 두 남자는 그다지 독단적이거나 사나워 보이지 않았다. 그저 지치고 초췌해 보일 뿐이었다.

“부상자가 있습니다. 들여보내 주십시오. 집에 먹을 것이 떨어졌고 아프기까지 해 갈 곳이 없는 상황입니다.”

“부상자?”

30대 남자가 손전등으로 효영과 창영을 비췄다. 그는 효영의 발목에 칭칭 감긴 붕대를 보더니 잠시 40대 남자와 귓속말을 나누었다.

제발 이들에게 인정이 남아 있길. 다친 자를 모른 척하지 말아 주길. 태유준은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기도했다.

“벙커는 처음입니까? 아실지 모르겠지만 벙커라는 곳이 그리 녹록지는 않습니다.”

“잘 압니다. 저랑 옆의 남자분은 잠깐 광화문 벙커에 머무른 적이 있고, 그때 식량을 구하러 다니느라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식량을 구하러 다녔다고요?”

30대 남자가 안경을 고쳐 썼다. 태유준은 지금이 그에게 어필할 기회임을 직감했다.

“네. 밤마다 마트로 먹을 것을 구하러 다녔고, 실제로 거기서 구한 식량을 벙커 사람들이 나누어 먹었습니다.”

“흠… 저기 널브러진 좀비들도 직접 해치우신 건가요?”

“물론입니다.”

벙커 대표들은 눈을 마주치더니 다시 한번 귓속말을 했다. 이윽고 30대 남자가 운을 뗐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우리 벙커는 수용 인원이 꽉 차 더 이상 사람을 받지 말자는 의견이 있습니다. 하지만 벙커에 들어와서 내부 일에 협조해 주신다면 저 부상자를 포함해 여러분을 받아들여 주겠습니다.”

“내부 일이란 게 뭡니까?”

“식량을 구하러 외부에 나갔다 오는 일이나 그 과정에서 좀비를 발견하면 사살하는 일을 통칭합니다.”

남자는 네 사람을 차례로 훑은 다음 이야기를 정리했다.

“지금 앞에 계신 분들은 건강해 보이지만, 저쪽 남자는 상태가 좋지 않아 보이고 여학생은 부상 중이니 핸디캡이 큽니다. 제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시리라고 봅니다. 그러니 두 분이 이곳 내부 일에 협조해 주신다면 모를까, 그냥은 입장이 어렵겠습니다.”

원혁과 태유준은 잠시 시선을 교환한 다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와 남매를 모르는 척한다는 것은 태유준에게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원혁은 지금 태유준의 손바닥에 두통을 의존하고 있는 중이므로 그가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태유준이 눈짓을 하자 원혁이 머리를 짚었다.

“나 이러다가 천국에서도 제일 좋은 데로 가겠네.”

원혁이 혼잣말처럼 중얼댄 다음 벙커 대표에게 대뜸 다가섰다.

“그런 거라면 질리도록 해 왔으니 들여보내 줘. 밥값은 하고도 넘칠 테니까.”

대뜸 반말을 하는 그의 태도에 당황할 법도 했지만, 남자들은 원혁의 피지컬을 훑어보고는 굳이 태클을 걸지 않았다. 다만 한 차례 더 물을 뿐이었다.

“우리 일은 편의점이나 터는 간단한 규모가 아닙니다. 우린 벙커 인원에 대비해서 훨씬 많은 양의 식량이 필요한 상황이고, 상당히 멀리까지 식량을 구하러 외출하고 있습니다.”

“비축하시는 겁니까?”

태유준의 물음에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실은 이 벙커 안은 두 무리로 갈려 있습니다. 우리 쪽 사람들은 수도 시설을 점령한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줘야만 물을 쓸 수 있습니다. 지금 그쪽이랑 사이가 말도 못 하게 나쁘지만 그렇다고 해서 벙커를 박차고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식량을 구하러 다닐 수밖에요.”

태유준은 잠시 제 귀를 의심했다. 벙커 안에 수도 시설이 하나인데 그걸 빌미로 한 무리에게 식량 사냥을 강제한다고. 좋게 말해 물물 교환이지, 솔직한 말로는 착취였다.

“그렇군. 알겠어.”

충격을 받은 태유준과 달리 원혁은 담담한 반응이었다. 남자는 그런 원혁의 무감각한 태도가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좋습니다. 들어오시죠.”

셔터 안쪽에서 남자가 버튼을 조작했다. 철컹, 소리와 함께 굳게 닫혀 있던 방화 셔터의 일부가 열렸다.

태유준 일행은 셔터 너머로 발을 디디며 다 같이 침묵을 지켰다. 지하도 양옆으로는 상점이 즐비했다. 태유준은 가끔씩 좌우를 살피며 한때 인파로 북적였을 패스트푸드점, 안경점, 편의점 같은 일상의 공간을 훑었다. 모두 시커멓게 조명이 죽어 있어 원래 사람들이 드나들었던 느낌이 남아 있지 않았다.

벙커 대표들은 태유준 일행을 데리고 한참을 걸어갔다. 상가 복도를 지나 모퉁이를 돌자, 어둑한 조명에 잠긴 광활한 공간과 함께 삼삼오오 앉아 있는 사람들 수십 명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까지는 예상 가능한 그림이었다.

다만 태유준의 시선을 끄는 것은 광장의 중심을 경계로 엉성한 가벽이 형성돼 있다는 점이었다. 가벽은 공사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 합판을 여러 개 이어 붙인 것으로, 마치 공간을 인위적으로 절반 가르듯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벽은 천장까지 이어져 있지도 않고 광장의 가로 너비를 다 채울 만큼 길지도 않았으므로 태유준은 벽 너머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그곳에도 수십 명의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이 어설픈 가벽은 뭐지.

태유준의 의구심 어린 시선을 느꼈는지, 벙커 대표가 태유준에게 목소리를 낮춰 설명을 시작했다.

“이 벽이 수도 시설을 가진 무리와 저희를 나누는 경계선입니다.”

설명을 듣고 보니, 가벽 근처를 서성이는 남자가 두엇 보였다. 그들은 꽤나 덩치가 좋고 몸이 단단해 유도 선수 같은 이미지였으며, 인상도 상당히 셌다.

문지기 같은 존재구나.

대충 감을 잡은 태유준은 남매를 데리고 구석진 자리로 향했다. 일단은 남매를 쉬게 하는 것이 중요했다.

“새로 오셨나 봐요.”

“네. 밖에 있다가 안전 때문에 들어오게 됐습니다.”

“바깥 상황은 좀 어때요?”

한 여자의 질문에 태유준은 착잡한 말투로 대꾸했다.

“좋지 않습니다. 차도 사람도 나다닐 수 없는 지경이고, 좀비는 점점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하… 그렇죠. 저희도 점점 식량이 부족해지고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겨우 식량을 가져와도 벽 너머 사람들 때문에 늘 먹을 게 모자라니까요.”

벙커 안의 시민들은 몹시도 피곤해 보였다. 광화문 벙커 사람들처럼 날이 서 보이지는 않았으나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때 벙커 대표와 함께 있던 40대 남자가 다가와 효영에게 말을 걸었다.

“부상자는 나랑 같이 갑시다. 병자들을 위한 공간이 따로 있어요.”

“감사합니다.”

효영은 파리한 안색을 띠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했다. 창영이 그녀를 부축하며 거듭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 선생님.”

“얼른 동생이나 데리고 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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