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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유준이 깜짝 놀라 물었다. 살아생전 그런 직업을 가진 사람과는 얽힌 적도, 말을 튼 적도 없었다. 그러고 보니 장비가 범상치 않다 싶긴 했다.
“원래는 비밀로 하고 있지만 이 시국이니까 말 못 할 것도 없다 싶네요. 혹시 알고 싶은 것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 제가 알려 드릴게요.”
“한강 다리에 대한 정보도 있나?”
창가에 선 원혁이 뒤를 돌았다. 예전처럼 자동차의 불빛도 화려한 조명도 없이 시커멓게 죽은 원효 대교가 그의 등 뒤로 펼쳐져 있었다.
“한강 다리… 네. 알아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혹시 어느 방향으로 가는 길이신가요?”
“여의도로 가는 중입니다. 이 근처에서 원효 대교 타려다가 그쪽을 발견한 거고.”
원혁이 말하자 남자가 다급하게 대답했다.
“원효 대교로 가시면 안 돼요. 거기 지금 폭약이 설치돼 있어요.”
“네?”
“폭약?”
처음 듣는 정보에 원혁과 태유준은 남자를 바라봤다.
“내일 아침 뉴스에 나올 이야기인데요, 원효 대교랑 한강 대교, 동작 대교, 잠수교, 한남 대교… 그리고 동호 대교. 우리가 아는 한강 다리는 오늘 자정부로 모조리 다 폭파될 거예요. 그래서 며칠 전부터 강남, 강북 간 교통을 통제한 거고요.”
“지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자세히 좀 설명해 주세요.”
한강 다리가 끊긴다니, 그렇다면 강북과 강남은 영원히 단절되어 버린다는 소리인가? 태유준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여기까지 왔는데 한강을 건너갈 방법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었다. 태유준의 실망한 얼굴을 보고 남자는 급하게 덧붙였다.
“딱 한 군데, 잠실 대교는 오갈 수 있어요. 정부에서 거기만 남겨 놓는다고 하더라고요. 나중에 구조대가 다닐 수 있도록.”
“잠실…?”
태유준이 퍼뜩 고개를 들었다. 이곳 용산에서 잠실은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 평소 같았어도 차가 안 막힐 때 기준 20분 이상을 달려야 했고 대중교통으로는 거의 한 시간 거리였다.
“네. 만약 여의도를 가셔야 한다면 마포 대교나 원효 대교, 다른 다리는 절대 이용 못 하실 테니 꼼짝없이 잠실로 가셔야 해요. 거기서 강남으로 건너간 다음에 다시 서울을 가로질러서 여의도로 진입하셔야 할 것 같아요.”
“서울을 시계 방향으로 한 바퀴 돌아야 하겠군. 그 길 말고는 도저히 방법이 안 보여.”
원혁이 중얼거리며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태유준은 눈앞이 아찔했다. 만약 이 청년을 구해 주지 않았다면 운 나쁘게 다리 폭파에 휘말렸을지도 몰랐다.
오싹, 소름이 끼치면서 현실의 무게감이 실감 났다. 태유준은 팔뚝을 쓸어내리며 가볍게 몸을 떨었다.
“신부님. 우리 경로를 제대로 잡아야 할 것 같네.”
“…그런 것 같습니다.”
“오빠, 나 짐 다 챙겼어.”
세 남자가 이야기하는 동안 효영이 방에서 절뚝거리며 나왔다. 배낭을 꽉 채워서 짐을 쌌는지 부피가 꽤 됐다.
“그럼 가지.”
원혁이 앞장을 서고 그 뒤로 남매를 세운 다음 태유준이 가장 마지막에 섰다. 네 사람은 일렬로 서 조심스럽게 현관을 빠져나왔다. 태유준과 창영이 여동생을 부축하며 계단을 내려왔다.
바깥으로 나온 네 사람은 주변을 살피고선 눈짓으로 이야기했다. 원혁이 운전석, 그리고 만장일치로 효영이 조수석에 탔다.
태유준과 창영은 트럭 짐칸에 올라타 앉았다. 이내 트럭은 덜컹이며 어두운 거리를 미끄러지듯 달려 나갔다.
* * *
차로 달리니 불과 10분도 안 되어 신용산역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으슥한 곳에 트럭을 세우고 네 사람은 길을 건넜다. 창영이 동생을 안고 길을 건널 수 있도록 태유준과 원혁이 그의 뒤를 엄호했다.
불이 죄다 꺼진 신용산역은 으스스한 분위기를 풍겼다. 서울에서도 손꼽게 큰 역으로 유동 인구가 많은 곳이었지만, 지금의 역은 말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역 이름이 쓰인 간판에도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다만 역 광장 곳곳에는 인간의 시체인지 좀비의 사체인지 구분할 수 없는 것들이 군데군데 널브러져 있었다. 유준은 고개를 돌려 그 형체를 외면했다.
“저기 저 대기업 본사 건물들이 이 밑에 있는 지하도를 통해 서로 연결돼 있어요. 가운데에는 상가가 있고, 지하철도 연결돼 있고 그런 거미줄 같은 구조인데요. 지금은 방화 셔터를 내리고 벙커로 쓰고 있대요.”
창영의 말에 의하면 신용산 벙커는 이 일대에서 가장 규모가 큰 곳으로 접근성 또한 좋았다. 그 말은 대기업 본사와 고층 빌딩 등, 사방에서 진입이 가능해 누구라도 손쉽게 벙커로 갈 수 있다는 말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좀비의 침입에 취약하기도 하다는 게 그의 덧붙임이었다.
“그렇네요. 음… 우리는 저기 지하철역을 통해서 접근해 봅시다.”
태유준의 눈에 4호선 지하철역이 보였다. 지하로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는 당연히 작동하지 않았다. 그들은 계단을 통해 내려가기로 했다.
비쩍 마른 체격인 창영은 여동생을 업고 헐떡였다. 얼굴에서 땀이 줄줄 흘렀다.
“제가 업을게요.”
태유준은 보다 못해 창영을 말렸다.
“아니에요. 제가 할 수 있어요.”
두 사람이 가벼운 실랑이를 벌였다. 그때 원혁이 뒤돌아보며 툭 한마디를 던졌다.
“빨리 가려면 내가 업는 게 제일 효율적일 것 같은데.”
“형제님이 업으신다고요?”
“대신에 짐 좀 들어 줘. 내가 손이 두 개밖에 없어서.”
태유준과 창영은 서로를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 중에는 원혁이 압도적으로 나았다.
결국 원혁이 효영을 업고 남은 두 남자가 짐꾼이 되었다. 넷은 한 덩어리로 뭉치듯 걸어 역사로 진입했다. 원래 복합 쇼핑몰과 연계되어 운영되었던 만큼 지하철역이라고 해도 웬만한 기차역만큼 규모가 컸다.
어디에 벙커 입구가 위치한 거지. 여기 너무 복잡한데.
태유준이 창영에게 벙커 정보를 물어보려던 참이었다. 앞서가던 원혁이 우뚝 멈춰 섰다.
그리고 아주 작게 쉿, 소리를 냈다.
태유준은 본능적으로 몸을 굳히며 원혁의 기척을 살폈다. 원혁은 곧 고개를 들어 천장 쪽을 올려다봤다. 태유준도 일행들과 함께 천장을 쳐다봤다. 그리고 펼쳐진 광경에 자기도 모르게 흡, 소리를 낼 뻔했다.
높다란 천정을 가로지르는 콘크리트 빔에 좀비들이 매달려 있었다. 그것들은 머리를 아래로 늘어뜨린 채 잠을 자고 있었는데 그 수가 적지 않았다. 언뜻 보이는 것만 해도 스무 마리 이상 되어 보였다.
원혁은 일행들을 살짝 돌아본 다음,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조용히 하자는 무언의 메시지였다.
남매 둘이서 들어가게 했더라면 큰일이 났겠구나. 번거롭더라도 우리가 함께해 다행이다.
태유준은 마음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발걸음을 죽여 걸었다.
“그런데 벙커로 들어가는 입구가….”
일행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졌다. 지하철에서 중심 상가로 이어지는 부분에 방화 셔터가 굳게 내려와 있었다. 태유준이 다가가 셔터를 살펴보았지만, 자동으로 내려와 잠겨 버린 것인지 셔터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사람 손으로 밀어 올릴 수는 없어 보였다.
“셔터 안쪽으로 분명히 벙커가 있을 텐데… 어떻게 들어가야 하는 걸까요.”
태유준은 잠시 머릿속으로 지하도의 조감도를 그려보았다. 네 개의 건물이 기둥처럼 사각형의 꼭짓점에 위치하고 있고, 그 가운데에 식당가와 병원 등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당연히 각 건물이 아닌 중심부에 모여 있을 것이다.
“혹시 좀비를 막기 위해 출입구마다 셔터를 내려놓은 거라면 우리도 들어갈 수 없는 것 아닌가.”
원혁이 한마디를 던지자 나머지 셋은 할 말을 잃었다.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였기 때문이다.
“잠시만요. 제가 출입이 가능한 곳을 검색해 볼게요. 분명히 사람이 드나드는 출입구가 있을 겁니다.”
창영이 짐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냈다. 핸드폰 데이터로 인터넷에 접속한 그는 이런저런 사이트에 접속하며 정보를 수집했다. 그동안 원혁과 유준은 주변을 살피며 경계를 섰다.
“어… 가능성이 있는 곳이 한 군데 있는데, 여기서 좀 가야 돼요. 우리가 지하철역 2번 출구로 들어왔잖아요. 여기 말고 길 건너 주상 복합 아파트 상가동에서도 에스컬레이터를 통해서 지하상가로 연결되네요.”
“그래요? 거기는 얼마나 떨어져 있죠?”
“조심히 움직이면 10분 정도 걸릴 것으로 보여요.”
태유준의 물음에 창영이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다른 길은 보이지 않았으니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네 사람은 방화 셔터를 통한 진입을 포기하고 지하철역에서 다시 지상으로 올라가기로 뜻을 모았다.
그들이 계단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던 때였다. 일행의 좌측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태유준은 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방향을 쳐다봤다. 시커먼 암흑 속, 좀비 대여섯 마리가 비척이며 걸어오고 있었다.
“조, 좀비예요.”
“꺄악!”
무리 지어 오는 좀비들을 보며 효영이 소리 질렀다. 그 날카로운 비명이 기폭제가 되었는지 좀비들의 속도가 빨라졌다. 그것들은 흐느적거리던 몸을 곧추세우고 팔을 갈퀴 모양으로 만들며 휙휙 허공을 긁었다.
“시, 신부님. 도망쳐요, 어서.”
창영이 겁에 질려 울먹이며 계단참에 발을 디뎠다. 태유준은 그런 그의 팔뚝을 꽉 잡으며 속삭였다.
“지상으로 도망가는 건 안 돼요. 바깥에 저놈들하고 나가면 더 소란스러워지고, 좀비 떼가 더 몰려요.”
“해치워야 돼.”
태유준과 원혁이 한마디씩 하자 창영과 효영 남매는 입을 틀어막고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일단 동생 업어. 둘 다 조용히 하고 여기 가만히 있어.”
원혁이 효영을 오빠에게 맡겼다. 효영은 제 오빠의 옷자락을 꽉 쥔 채 이를 악물고 소리를 내지 않으려 최선을 다했다. 원혁과 태유준은 그들을 보호하듯이 앞으로 몇 발짝 걸어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