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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좀비가 비처럼 내려와-23화 (2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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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중학생 때 타 보고 그 이후로 한 번도 못 타 봤지만, 롤러코스터가 딱 이런 느낌이었다고 태유준은 기억해 냈다. 아니, 그보다 더 무섭고 빠른 것 같았다.

“가자!”

“으아악!”

원혁은 번개처럼 차를 몰았고, 태유준은 조수석 손잡이를 양손으로 잡고 비명을 질러 댔다. 이건 과속도 아니고 고장 난 폭주 기관차였다.

원혁은 이 와중에도 여유가 넘치는지 운전석 창문을 열고 뒤쪽을 향해 소리쳤다.

“어이, 거기 괜찮지?”

“네?”

“살아 있냐고!”

“네, 네! 으악!”

트럭 짐칸에 탄 남자가 우당탕, 나동그라지는 소리가 났다.

“뭐라도 잡아!”

“알겠습니, 으악!”

원혁은 한참 달려 좀비 떼를 따돌린 다음 차를 멈춰 세웠다. 그동안 태유준과 짐칸 남자는 간헐적으로 비명을 질렀다.

“자, 이제 멈춰도 되겠네.”

“하아… 하아.”

“내려서 뒤에 분 무사한지 살핍시다.”

원혁은 손을 가볍게 털고 운전석에서 내렸다. 태유준은 후덜거리는 다리를 부여잡고 조수석에서 내려 뒤쪽으로 이동했다.

남자는 영혼까지 털린 낯으로 간신히 일어났다.

“괜찮아?”

“네. 어느 정도는요….”

머리가 산발이 되었고 안경은 깨졌지만, 남자는 이내 원혁의 손을 잡고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고맙습니다. 선생님 아니었으면 물려 죽었을 거예요. 정말 고맙습니다.”

남자는 머리가 바닥에 닿을 정도로 허리를 굽히며 원혁에게 절을 했다.

“감사는 이쪽에 해. 신부님이 당신을 발견하고 도와주자고 나선 거니까.”

그 말에 남자가 눈을 크게 떴다.

“신부님이세요?”

“아직 정식 사제는 아닙니다. 신학교 다니는 중이었어요. 그나저나 이렇게 위험한데 차도 없이 왜 돌아다니고 계셨어요.”

“그게… 먹을 것을 구하러 다니고 있었어요.”

남자는 품 안에 소중하게 안고 있던 것을 내보였다. 태유준이 들여다보니 편의점 비닐봉지 안에는 통조림이며 과자며 초코바 같은 먹을 것들이 여러 개 들어 있었다.

“집에 저랑 여동생 둘이 숨어서 지내는데, 먹을 것이 다 떨어져서….”

남자가 힘없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야위고 거친 얼굴에 낯빛이 좋지 않은 것이 며칠 굶은 사람처럼 보였다.

“밤중에는 좀비들이 느려진다는 걸 알고 있어서 슬쩍 나왔어요. 편의점에 갔더니 다 털리고 통조림이 조금 남아 있길래, 그거라도 집어 들고 나오는데 하필 좀비 떼랑 마주쳐서… 이대로 죽는구나 하는데 신부님이랑 선생님이 나타나신 거예요.”

남자는 깡마른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저는 박창영이라고 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선생님들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됐어. 감사 인사 받자고 한 일도 아닌데.”

원혁은 별것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하고 손바닥을 탁탁 털었다.

“대충 정리된 것 같으니 출발하지, 신부님?”

원혁이 운전석 쪽으로 몸을 돌렸다. 하지만 태유준은 쉽사리 발길을 뗄 수 없었다.

“댁이 어디십니까?”

“아, 이 편의점이 있는 곳 근처입니다. 저 앞 사거리에 아파트요.”

“저희랑 가는 방향이 같네요. 데려다드리겠습니다. 아직 근처에 좀비 떼가 남아 있을 테니까요. 혼자 가시는 건 위험해요.”

“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구해 주신 것만도 감사한데요.”

창영이 손사래를 쳤다. 하지만 태유준의 태도는 단호했다.

“혼자는 위험합니다.”

그러고는 태유준은 동의를 구하듯이 원혁을 쳐다봤다.

“신부님. 우리 서둘러야 한다고….”

“하지만 이분을 그냥 둘 수는 없습니다. 다친 동생이 집에서 기다리고 있다는데, 무사히 귀가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원혁은 잠시 고민하는 기색이었다. 그러자 태유준이 거절할 수 없는 조건을 제시했다.

“형제님. 제가 성심성의껏 이마 만져 드리겠습니다. 시간 무제한으로요.”

그 말을 들은 원혁이 반색했다. 그렇잖아도 슬슬 약발이 떨어져 가고 있던 중이었다.

“신부님이 그러고 싶다면 그러는 거지. 대신 트럭이 2인승이라 이번에도 짐칸에 타야 돼. 괜찮지?”

“아, 정말요. 진짜 고맙습니다. 너무 감사해요.”

남자는 또 한참 감사 인사를 한 다음 시키지도 않았는데 트럭 짐칸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까의 질주로 인해 짐칸은 박스를 탈출한 고구마, 확성기, 밧줄과 노끈 등이 어지럽게 나뒹굴고 있었다.

간단한 짐 정리가 끝나자 원혁과 태유준은 차에 올랐다. 시동을 거는 동안 태유준은 말을 고르다가 입을 열었다.

“아까는… 정말 감사했습니다.”

이 남자의 기지 덕분에 무사히 위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설마 고구마 장수처럼 소리 질러서 좀비 떼를 유인할 줄은 몰랐지만.

원혁이 유준을 돌아보고 미소를 지었다.

“멍청한 좀비 놈들이 순순히 유인돼서 다행이지. 신부님이 무사해서 좋네.”

“….”

“길동무가 있어야지, 안 그래?”

원혁은 장난스러운 목소리였으나, 태유준은 기분이 묘했다. 장 박사 말고 자신의 안위를 걱정해 주는 사람은 참으로 오랜만이었다. 생소함과 쑥스러움을 감추기 위해 태유준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자 원혁이 이어서 물었다.

“어때? 고구마 트럭으로 하길 잘했지?”

“네. 확성기도 있고, 차 덩치도 크고 아주 좋습니다.”

원혁이 킥킥 웃었다. 태유준은 멋쩍게 목뒤를 긁다가 조용히 입꼬리를 올렸다.

* * *

다행히 가는 길에는 좀비가 많지 않아 무사히 창영의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파트 앞에 내린 그는 고개를 숙여 인사하며 한사코 통조림을 내밀었다.

“이거라도 감사의 뜻으로 드릴게요.”

“이거 주면 뭘 드시려고. 됐어요. 힘들게 구한 거니까 동생분하고 나눠 드세요.”

태유준이 남자의 품에 다시 통조림을 안겨 줬다. 그는 민망해하며 통조림을 챙겼다.

“그런데 벙커로 가는 게 안전하지 않을까요? 물론 벙커가 최선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만, 이렇게 식량을 구하러 다니는 건 너무 위험해 보여요.”

벙커에 들어가면 최소한의 안전은 보장받을 수 있되 인간관계로 고통받는다. 광화문 벙커와 신용산 벙커가 크게 다르리란 법도 없었다. 그렇지만 태유준의 생각에는 식량 없이 버티는 것보다는 사람들이 있는 벙커로 가는 것이 구조대를 기다리는 데는 유리할 수도 있었다.

“네. 그렇잖아도 저희도 신용산역 벙커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좀비를 피하다가 다리를 다치는 바람에….”

창영은 그렇게 말하며 말끝을 흐렸다.

“차가 없으니까 동생 데리고 움직이기가 어려워요. 느리게 걷다가 습격이라도 당하면 끝장이니까요.”

“아….”

그제야 남매의 사정을 이해한 태유준이 작게 탄식했다.

“그럼 우리가 데려다주지.”

원혁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태유준은 의외라는 눈빛으로 원혁을 바라봤다.

“아니, 신부님. 왜 그렇게까지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건데? 나도 선행 베풀고 다녀야 천국에 한자리 생길 것 아니야.”

원혁은 퍽 억울하다는 투였다. 태유준은 신을 믿지 않는 원혁이 천국 운운하자 수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라지 않았습니다. 다만 무슨 생각인지 궁금할 뿐입니다.”

“신부님 손.”

“네?”

“이마 만지기 무제한도 좋은데, 말고 여분으로 하나 더 예약하려고.”

원혁이 태유준의 손을 가리켰다.

“예약은 또 뭡니까.”

“그런 게 있어.”

그렇게 말하며 원혁은 웃었다. 어딘지 수상쩍은 웃음이었다. 하지만 손을 빌려주는 것뿐이라면 뭐 별거 있겠나 싶었다. 태유준은 흔쾌히 대답했다.

“그렇게 하죠. 그나저나 진짜로 제가 만지면 두통이 사라진다고 믿으십니까?”

“당연하지. 나 미친 듯이 머리 아프다가도 신부님 손만 스치면 싹 낫는다니까.”

원혁은 단호하게 말했다. 태유준은 팔짱을 끼고 먼 산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내가 실컷 쓰다듬어 줄 테니까 형제님은 오늘 내가 하자는 대로 다 해요. 어때요?”

“좋지! 정확히는 좋아 죽지.”

원혁이 펄쩍 뛰며 기뻐했다. 태유준은 오버액션을 펼치는 원혁을 슬쩍 밀고 창영에게 말을 걸었다.

“그럼 여동생분하고 같이 이 차에 타시겠어요?”

“그래 주시면 정말 감사하죠.”

그는 뜻밖의 복권이라도 당첨된 듯 손을 모아 감사를 표했다.

“그럼 안으로 들어가요.”

“네. 저희 집은 3층이에요.”

집은 평범한 복도식 아파트였다. 세 사람은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타고 3층으로 올라갔다.

똑똑. 창영이 현관문을 박자감 있게 두드렸다. 태유준이 보건대 남매끼리 암호를 만들어 둔 듯했다. 잠시 후 안쪽에서 문이 열렸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나타난 사람은 갓 스무 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긴 머리 소녀였다. 눈빛에는 경계심이 가득했고 몸은 야위었으며 한쪽 발목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오, 오빠. 이 사람들 누구야.”

“효영아. 나쁜 사람들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이분들이 길에서 날 구해 주시고 여기까지 데려다주셨어.”

“정말?”

효영이라 불린 소녀는 깜짝 놀라더니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놀라지 마. 이분들이 우리를 신용산역 벙커로 데려다주시기로 했어.”

“진짜예요? 어떡해, 너무 감사해요.”

효영은 입을 틀어막으며 놀람을 표했다.

“어차피 저희도 지나가는 길입니다. 그보다는 어서 짐을 싸세요. 동트기 전에 신용산역에 도착해야 하니까요.”

“맞네요.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얼른 챙길게요.”

여동생은 작은방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창영은 태유준과 원혁을 거실 소파로 안내했다. 그가 부지런히 방과 거실, 주방과 욕실을 오가며 보스턴백과 배낭을 채웠다. 개중 눈에 띄는 것은 거실에도 데스크탑과 노트북이 있고, 열린 방문 너머로도 데스크탑이 여러 대 보인다는 점이었다.

태유준은 노트북을 꽁꽁 싸서 가방에 넣는 그에게 물었다.

“컴퓨터 쪽 일을 하시나 봐요?”

“아, 저 아직 학생이에요. 취미로 이것저것 하고 있기는 하지만요.”

그렇게 말하며 그가 부속 장비들을 가리켰다.

“그래도 덕분에 정보도 얻을 수 있었어요. 저는 컴퓨터를 좀 다룰 줄 알아서요.”

“벙커 사이트 말씀하시는 건가요? 저희도 거기에서 정보 많이 얻었습니다.”

“아… 그게, 실은 저는 해커예요. 그래서 국방부 인트라넷이랑 국토부 서버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정보를 수집하던 중이었어요.”

“해커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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