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늘에서 좀비가 비처럼 내려와-18화 (18/93)

[email protected]

한편 주변에서는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인터넷이 안 돼.”

“전화도 먹통이야. 일반 전화는 말할 것도 없고 119, 112 같은 번호도.”

불안 가득한 목소리가 주변에서 흘러나왔다. 사람들은 그룹별로 모여 서로의 통신사를 물어보고 개중 신호가 잡히는 사람의 핸드폰으로 인터넷 접속을 시도했다.

“점점 약해져. 난 아까까지만 해도 됐는데… 어?! 완전 끊겼어.”

한 여자가 절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이 신호탄이 되었다. 모든 사람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정신없이 연결을 시도했다. 태유준도 장 박사에게 전화를 걸어 보았다.

―지금은 서비스가 불가능합니다. 잠시 후 다시 시도해 주십시오.

기계음만 되풀이될 뿐, 전화가 전혀 연결되지 않았다. 통신사 시스템에 문제가 생긴 게 틀림없다는 생각에 태유준은 초조해졌다.

“어, 다시 돼.”

“나도. 인터넷 느리지만 돼. 다행이다.”

사람들은 이내 안도한 듯 핸드폰을 붙잡고 아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하고, 인터넷을 이용했다. 태유준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장 박사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전화도 걸어 보았다. 하지만 바람과는 달리 아무런 응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가슴이 뻥 뚫린 것만 같았다.

아까의 통신 소동 때문인지 사람들은 눈에 띄게 초조해했다. 언제 통신이 끊길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사람들을 예민하게 만들었다. 태유준 역시 배식을 하는 와중에도 핸드폰 신호를 확인하는 등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신부님. 피곤해 보여.”

“전 괜찮습니다.”

배식을 마친 태유준이 작은 방에 앉아 멍하니 있자 원혁이 다가와 태유준의 옆에 앉았다.

“통신 때문에 그래?”

“네… 어차피 장 박사님하고는 연락이 안 되고 있었지만요. 통신이 완전 끊기니까 좀…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잠깐이었으나 먹먹함과 두려움, 막연함과 혼란스러움이 머리를 스쳤다. 이대로 통신이 영구 두절 되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도 들었다. 조금 비약해서 말하자면 마치 현대 문명이 무너지기 직전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당연하게 누려 왔던 것들이 하나씩 파괴되어 간다. 불과 몇 주 만에 인류가 쌓아 온 문명의 탑이 송두리째 무너지고 있다. 태유준은 이럴 때일수록 신에게 기도를 해야 하지만 그러지도 못하는 스스로가 한심하고 나약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무리 마음을 다잡으려 해도 아까 낮의 소동 같은 일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평온하거나 점잖게 굴지도 못했다.

“신부님.”

“왜 부르십니까.”

“흠… 혹시 위로가 필요해?”

“네?”

태유준이 고개를 돌려 원혁을 봤다. 원혁은 피 묻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대답했다.

“신부님 표정이 딱 그건데. 진한 위로가 필요한 사람.”

“제가 언제… 아닙니다. 저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직업이지 위로받는 직업이 아니죠.”

“아닌데. 지금 얼굴에 먹구름이 잔뜩이거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

원혁은 패스트푸드 주문을 받는 점원처럼 가볍게 말했다. 그러니 태유준은 더욱 말을 아끼게 됐다.

“괜찮습니다.”

“괜찮은 척하다가 병나겠는데, 우리 신부님.”

“정말 아무렇지 않습니다. 그냥 좀… 피곤할 뿐입니다.”

태유준은 그렇게 말하며 눈꺼풀을 내리깔았다. 피곤하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정신도 그렇고 몸도 그랬다.

“알았어. 그러면 나한테 기대서 자.”

“아직 6시밖에 안 되었는데요.”

“여기 볕도 안 드는데 밤낮 구분해서 뭐 해. 잘 수 있을 때 자 두는 게 낫지.”

하긴. 여기서는 해가 뜨는 것도, 지는 것도 볼 수가 없다. 오직 어둠 속에 희미하게 불을 밝힌 실내조명만이 존재할 뿐이다.

아직 전기가 나가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태유준은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잠 속으로 침잠했다. 밀어 내는 것을 깜빡하고 원혁의 어깨에 몸도 기대 버렸다. 편안한 잠이 느릿한 파도처럼 밀려들어 왔다.

그러다가 태유준은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깼다. 원혁이 자신의 팔과 몸을 사정없이 흔들었기 때문이다.

“신부님! 얼른 일어나.”

“혀, 형제님…?”

“진동. 진동!”

“네…?”

그 말을 듣자 몸이 뒤흔들리는 통에 알아채지 못한 진동이 느껴졌다. 주머니 안에 넣어 둔 핸드폰이 징징 울리고 있었다.

태유준은 등줄기가 서늘해질 만큼 놀라며 퍼뜩 몸을 일으켰다. 잽싸게 주머니에 손을 밀어 넣는데 손이 떨렸다. 액정을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장 박사님]

태유준은 허둥지둥 핸드폰을 쥐었다. 손이 미끄러워 핸드폰을 놓칠 뻔했으나 가까스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

“박사님!”

하지만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것은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삐익, 두두두 하는 기계음. 그리고 어떤 남자가 멀리서 영어로 뭐라 뭐라 지껄이는 소리였다. 정확하게 들리지는 않았지만, 외국인인 듯한 남자는 화가 난 억양이었다.

“박사님! 제 목소리 들리세요? 어디세요.”

―유준….

잠시 장 박사의 목소리가 들려오나 싶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 태유준의 귀에 퍽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가까이에서 선명하고 크게 들린 소리였다.

“박사님! 장 박사님…!”

태유준이 다급하게 외쳤으나 이내 전화가 뚝 끊겼다. 태유준은 숨을 몰아쉬며 다시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흘러나오는 멘트라고는 ‘지금은 전원이 꺼져 있으니 다음에 다시 걸어 달라’는 것뿐이었다.

“무슨 일이야. 장 박사 전화였어?”

“네. 그런데 전화를, 전화를 안 받습니다! 꺼져 있대요.”

태유준은 거의 울먹이다시피 하며 여러 차례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연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태유준의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나쁜 일에 휘말려 든 것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퍽 소리와 외국인 남자가 지껄이는 소리, 기계음. 무엇 하나 장 박사의 평화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순간 머리가 띵, 하면서 태유준의 다리가 휘청였다. 원혁이 태유준의 몸을 받치며 그를 바닥에 앉혔다.

“진정해. 침착하자고. 일단, 장 박사 목소리가 맞았어?”

“틀림없어요. 제 이름을 불렀고요.”

태유준은 마른세수를 하며 수차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자신이 들은 것을 원혁에게 그대로 설명했다.

“여의도 지역에 무슨 일이 난 걸 수도 있으니, ‘벙커’에 접속해서 찾아보자고.”

“아, 네. 그렇게 해요.”

두 사람의 핸드폰 모두 약하게나마 신호가 잡힌 상황이었다. 태유준은 좀비 사태로 생겨난 ‘벙커’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각 지역의 벙커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소통하는 일종의 게시판이었다. 태유준은 서둘러서 여의도 말머리를 단 글을 검색했다.

스크롤을 내리던 와중, 태유준이 헉 소리를 냈다.

[여의도] 방금 총소리 같은 거 나지 않았어?

└ 나 들었어 ㅇㅇ 우리집 여의나루인데 희미하게 들렸어 대체 무슨 일이지

└ 73빌딩 쪽에 사는데 우리집에서는 꽤 크게 들렸어. 드디어 좀비들이 총까지 배운 줄 알고 쫄았다.

└ 근데 방금 그 총소리는 좀비랑은 좀 관련 없는 것 같지 않아? 지금은 저녁이기도 하고… 참고로 난 엄청나게 큰 소리를 들었는데 73빌딩 너머 한강변에서 소리가 났어. 확실함.

태유준의 팔뚝에 소름이 돋아났다. 글쓴이들은 하나같이 방금 총성이 들렸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장 박사가 관련 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태유준은 식은땀이 났다.

“여의도에 무슨 일이 난 모양인데?”

원혁이 심각한 얼굴로 말을 걸었다. 태유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찾은 글을 보여 주었다.

“제가 본 글들도 그래요. 총성이 있었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추정되는 위치가 장 박사님 집 부근…입니다.”

“뭐?”

“73빌딩 너머 한강변. 여기는 장 박사님이 연구소로 쓰는 오피스텔이 있는 곳이에요.”

그렇게 말하는 태유준의 얼굴에는 핏기가 하나도 없었다.

“뭐? 그럼 위험한 거 아냐?”

“네. 확인, 확인…을 해 봐야 할 것 같아요.”

태유준은 혼란스러웠다.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아서 그는 여러 차례 숨을 몰아쉬며 스스로를 진정시켜야 했다.

“침착해, 신부님. 지금 우리가 찾아볼 수 있는 정보들을 취합해야 돼.”

원혁이 태유준의 어깨를 두드렸다. 태유준은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일단 뉴스를 봐야겠어요.”

그들은 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다. 하지만 어제와 비슷한 기사만이 올라와 있을 뿐 여의도에 대한 속보는 없었다. 요즘 들어 언론은 제대로 된 취재를 하지 못했다. 그러니 좀비 사태에 대한 집계나 단발적인 기사만 써 댈 뿐 이렇다 할 소식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별다른 뉴스는 없어요.”

“라디오는 어떤가 살펴봐.”

원혁이 정장 조끼 안주머니에서 손바닥만 한 납작한 라디오를 꺼내 주었다. 자동 FM 채널 수신 버튼을 누르자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그녀 역시 오늘의 괴한 빈번 출현지와 그에 대한 정부 방침, 구조를 기다려 달라는 판에 박힌 소리만 할 뿐이었다. 똑같았다. 정부는 여전히 좀비를 괴한으로 칭하고 있었다. 태유준은 그것이 마치 현실 도피처럼 여겨졌다.

대체 여의도는 어떻게 되었단 말인가. 장 박사님의 다급한 외침은. 정체불명의 남자와 총소리는 다 뭔가.

속이 다 울렁일 지경이었다. 머리가 띵했다. 이대로 벙커 안에 갇혀 있을 때가 아니었다.

빨리 여의도로 가야 해. 마포 대교가 가로막혔든 말든, 나는 내 길을 가야 한다고.

그는 굳게 결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직접 가서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장 박사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난 게 틀림없어요.”

원혁 역시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의 몸짓 역시 바쁘고 분주했다.

“결심했다면 시간 끌 거 없지. 당장 나서자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