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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좀비가 비처럼 내려와-15화 (1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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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민머리는 그룹 1을 풍족하게 먹이고 그룹 2에게는 딱 죽지 않을 만큼의 식량만을 공급해 왔다. 그룹 1에 편승하고 싶은 욕망을 자극한 것이다. 하지만 태유준이 그룹 3을 배불리 먹이는 것을 보자 그룹 2 사람들은 기분이 묘했다.

만약 다른 곳에서도 음식이 공급될 수 있다면 굳이 성격 나쁜 민머리의 압제를 견딜 이유가 없었다. 그룹 2 구성원들은 거의 다 비슷하게 생각했다. 그때 태유준이 그들에게 다가갔다.

“여러분께도 먹을 것을 드리겠습니다.”

“저… 정말입니까?”

그룹 2의 대표 격인 중년 남자가 물었다. 태유준은 평온한 얼굴로 담담하게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태유준은 그룹 3에게 준 것과 똑같은 양을 그룹 2에게 배분했다. 사람들은 우선 놀랐고, 다음으로는 기뻐했다. 눈칫밥을 먹던 신세에서 평등하게 물자를 나누어 받는 입장이 되니 마음속에 존재하는 두려움이 사라지는 듯했다.

“맛있어.”

“진짜… 진짜 맛있어.”

그룹 2 사람들 중 여럿이 태유준 앞에서 눈물을 보였다. 태유준은 길게 말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남은 식량은 여기 보관하자고.”

“좋습니다.”

원혁과 태유준은 먹고 남은 식량 상자 네 개를 작은 창고에 넣었다.

“그런데 어쩌죠? 저 양아치 같은 남자가 이 식량 상자를 노리면 큰일인데요.”

수도원 기숙사에서 식량을 둘러싼 싸움을 겪어 봤기에 태유준은 걱정이 컸다. 지금 상황에서는 어떻게 보면 좀비보다도 식량 부족이 더 무서운 괴물이었다.

“형제님이랑 저랑 교대로 지킨다 한들 저쪽이 수적으로 우세하다 보니까 별 의미가 없는 것 같고… 하, 어쩌지. 자물쇠가 없으니 식량을 지켜 낼 방법이 없네요.”

“자물쇠가 왜 없어.”

“네?”

원혁은 심드렁한 얼굴로 바닥에 놓인 배낭을 뒤적였다. 그리고 아날로그 자물쇠를 하나 꺼내 들었다. 동네 문방구에서 팔 것처럼 아주 평범하고 별다른 기능이 없어 보이는 자물쇠였다.

“어이, 대머리.”

부하들을 끼고 앉아 마른오징어를 씹던 민머리가 흠칫하며 원혁을 쳐다봤다.

“여기 내가 문에 최첨단 자물쇠를 붙여 놨거든. 나 아닌 사람 손이 닿으면 나한테 알림이 와. 그러면 내가 어떻게 할 것 같아?”

“그… 그거야.”

민머리는 예기치 못한 질문에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었다. 딱 봐도 최첨단 기능 따위는 없어 보였다. 그렇지만 그는 원혁의 장난스러운 얼굴에서 싸한 기운을 파악했다.

“다시 말할게. 이거 최첨단 자물쇠야. 이거를 손댄 걸 들키면 내가 안에 든 거 마음대로 꺼내 먹으라고 할까, 아니면 화를 낼까.”

원혁이 태유준의 어깨에 팔을 걸치며 그를 쳐다봤다.

“신부님은 어떻게 생각해?”

“…답이 이미 정해져 있는 것 같은데요.”

내 편이라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난 진짜 큰일 날 뻔했구나. 태유준은 속으로 한숨을 크게 내쉬며 창고 앞을 떠났다.

원혁의 겁박이 들어 먹힌 것인지 민머리 패거리들은 창고 앞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끼니마다 그룹 2와 그룹 3이었던 사람들은 공평하게 식량을 분배받았다. 그러는 와중에 그룹 1에 있던 일부 인원이 이탈해 태유준에게 식량을 요청했다. 태유준은 기꺼이 그들을 받아 주었다.

이제 남은 것은 자신들이 기득권층이라고 믿는 민머리 패거리와 그에 편승해 식량을 독점해 왔던 그룹 1의 극히 일부뿐이었다. 그들의 수를 합쳐 봤자 채 열 명이 되지 않았다.

이로써 벙커 내에 존재하던 그룹은 사실상 와해되었다. 가장 약해서 먹을 것을 빼앗기고 멸시당하던 집단이 가장 많은 식량을 나누어 가지게 됨으로써, 민머리가 만든 질서는 조금씩 흐트러지게 되었다.

그리고 만으로 이틀이 지난 시점, 그룹 1의 구성원 다섯 명이 무리를 탈주해 태유준 측으로 투항했다. 민머리와 그를 따르는 놈팽이들은 사람들에게 화를 내며 성질을 부려 보았으나 이미 평등의 맛을 본 사람들이 돌아갈 리 만무했다. 이들은 빠른 속도로 무력화되어 갔다.

“썩을. 저 희멀건 놈이랑 무섭게 생긴 놈. 저놈들만 안 받아 줬어도 여긴 내 멋대로 굴러갔을 텐데…!”

민머리는 사람들에게 배식을 하는 원혁을 씩씩대며 노려보았다. 그는 왕국을 잃고 식음을 전폐한 왕처럼 시름시름 앓다가 갑자기 분노하기를 반복하는 중이었다.

“저 새끼, 특히 맘에 안 들어. 자기가 뭐라도 되는 것처럼 굴잖아.”

민머리는 원혁이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주절거렸다. 원혁이 발걸음을 뚝 멈췄다. 그리고 민머리를 빤히 쳐다보더니, 주머니에서 육포 봉지를 하나 꺼냈다.

“이거나 먹어 봐. 맛있어.”

“이 새끼가? 시비 걸지 마!”

“내가 언제 시비를 걸었다고 그래. 먹기 싫으면 말고.”

찌익. 원혁이 육포 봉지를 시원하게 찢어 안에 든 육포를 꺼냈다. 그러고는 입에 쏙 넣어 우물우물 씹기 시작했다.

“망할 놈아. 누구 놀리냐!”

머리끝까지 열이 뻗친 민머리는 냅다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원혁은 그런 민머리의 주먹을 큰 손바닥으로 막아 내며 질겅질겅 육포를 씹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힘을 줘 민머리의 주먹을 움켜쥐자 민머리가 앓는 소리를 냈다.

“이…이익!”

결국 민머리가 나가떨어졌다. 원혁은 바닥에 드러누워 콧김을 뿜는 그의 뺨을 톡톡 두드렸다.

“분위기 흐리지 말고 권할 때 먹지 그랬어.”

쯧. 원혁이 혀를 차며 육포를 마저 씹었다. 그 광경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민머리의 수하들은 자기들끼리 눈빛을 교환했다.

“저기… 저희도 줄에 끼워 주시면 아… 안 될까요.”

“저도요.”

놈들이 민망한 듯 뒷머리를 긁으며 배식 줄에 합류했다. 태유준은 그들에게 선뜻 건빵과 생수를 건넸다.

“고, 고맙습니다! 신부님, 고맙습니다!”

“우와. 진짜 착하시네요. 감사합니다!”

믿었던 부하 놈들까지 빠져나간 그는 보잘것없는 신세로 전락했다. 이빨 빠진 호랑이도 그보다는 보기 좋을 것이었다.

민머리는 속으로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두고 봐라, 희멀건 놈과 덩치 놈. 내 왕국을 무너뜨린 대가를 치르게 해 주마.

* * *

새벽 3시, 남자들이 모여 자는 강당 안은 고요했다. 밤과 낮의 구분이 없는 세상에 살고 있다고는 해도 최소한의 끼니 구분은 있었기에 이 시간에 활동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또한 하루 중에 안심하고 쉴 수 있는 최소 시간은 확보해야 한다는 노약자들의 의견이 있었다. 사람들은 새벽 2시부터 아침 7시까지는 조명을 최소한으로 켜 두고 조용히 움직이기로 규칙을 정했다.

이것도 식량의 균등 배분을 통해 계급 체계가 무너지면서 소수가 의견을 낼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 규칙이 세워졌을 때 혼자 유난히도 투덜거렸던 인물, 민머리는 지금 강당 구석에 자리를 잡고 누워 있는 중이었다. 실눈을 뜨고 자는 시늉을 했지만 정신만큼은 또렷했다.

그는 지난 며칠간 원혁이 권하는 음식을 거부하며 고집을 부렸다. 원혁은 번번이 놀리듯 민머리에게 음식을 권했다. 심지어 사람들이 죄다 원혁에게 충성하고 태유준을 숭배하는 듯 보여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그래서 그가 생각해 낸 것이 원혁과 태유준의 뒤통수를 치는 것이었다.

놈들이 식량을 구해 올 때마다 타고 다니는 트럭이 있다고 들었다. 그 트럭의 바퀴에 펑크를 내 버리자. 그러면 두 놈 다 식량을 못 구해 올 것이고, 민심은 돌아설 테니까.

민머리는 스스로 세운 계략에 만족하며 킬킬댔다. 그러면서 조끼 주머니 속에 숨겨 놓은 송곳 손잡이를 은밀하게 쓰다듬었다.

아, 운도 좋아라. 어쩌다가 이 썩어 빠진 박물관 비품실에서 이런 걸 찾아냈담.

민머리는 자화자찬하느라 입이 찢어질 지경이었다. 그는 자신의 부산스러운 움직임이 바로 건너편에 있는 사람들을 깨우는 줄도 모르고 슬그머니 일어나 출입구 쪽으로 향했다.

* * *

민머리가 벙커를 빠져나왔을 때는 새벽 6시가 조금 넘은 시간. 해가 뜬 것은 아니었으나 사물이 또렷하게 보일 정도는 되었다. 벙커 사람들은 잠들어 있고 웬만큼 밝을 때. 이 시간을 노리느라 아주 애가 탔다.

“고구마 트럭이라고 했는데….”

민머리는 입맛을 다시며 게걸스럽게 주위를 둘러봤다. 어서 놈들의 차에 펑크를 내고 싶어 견딜 수 없었다.

날이 아주 환한 것은 아니라 실눈을 뜨고 주변을 수색해야 했다. 민머리는 트럭으로 보이는 차마다 일일이 다가가 ‘고구마’라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나 확인했다. 하지만 워낙 차들이 질서 없이 뒤엉켜 있고 첩첩산중으로 주차가 되어 있어 살피기가 쉽지 않았다.

“에이씨, 어디 처박아 둔 거야.”

그가 발치의 깡통을 걷어차며 눈을 부라렸다. 초조하게 굴며 대로로 나가자 도로 한편에 세워진 고구마 트럭이 보였다.

“아, 여기다 세워 놨었네. 한참 찾았잖아.”

민머리는 희번득 눈을 빛내며 쭈그려 앉았다. 일단 뒷바퀴에 펑크를 내 줄 생각으로, 그는 급하게 안주머니의 송곳을 빼어 들었다.

흐흐. 잘 가라.

그가 송곳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런데 턱, 하고 사람 살갗 같은 게 손등에 닿았다.

“헉.”

트럭 주인 놈들인가? 날 따라 나왔나 보다. 여차하면 때려눕혀야지.

민머리는 그렇게 생각하며 재빨리 뒤를 돌았다. 얼굴에는 가식적인 웃음을 띠었다.

“하하. 잠깐만, 내 이야기 좀 들어 볼래?”

하지만 그는 돌처럼 굳어 버렸다. 민머리의 등 뒤에 있던 것은 원혁이나 태유준이 아니었다. 가로수에 거꾸로 매달린 좀비가 팔을 아래로 쭉 뻗고 있었다. 방금 닿은 살갗도 바로 그 좀비의 손이었던 것이다.

“으아아아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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