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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좀비가 비처럼 내려와-10화 (1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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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이 자욱하게 깔린 길을 달려 차는 을지로로 진입했다. 얼마 안 가 ‘방산 시장’이라는 대형 간판이 나타났다.

“차는 일단 여기 세워 두자고.”

“예.”

둘은 소곤거리며 차에서 내렸다. 걸음 하나하나가 조심스러웠다. 일단 주변을 경계하며 시장 안으로 들어가 가게들을 살폈다.

‘베이킹용품점’, ‘향초 전문’이라고 쓰인 곳들을 무시하고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삼보 식자재 마트’라는 간판이 보였다. 두 사람은 서둘러 가게 입구로 다가갔다.

마트 안에는 조명이 들어와 있었다. 둘은 일단 유리창 너머로 내부를 살폈다. 과연 식자재 마트답게 입구에는 쌀 포대가 놓여 있고 신선식품을 진열하는 대형 쇼케이스, 일반 식품을 적재하는 선반 같은 것이 여러 개 보였다.

태유준은 조심스럽게 마트 문을 짚었다. 그런데 힘을 주자 손쉽게 문이 열렸다.

“…열린다!”

가게 주인이 도망치면서 문을 걸어 잠그지 않은 것 같았다. 태유준은 신에게 감사하며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마트는 생각보다 규모가 큰 곳이었다.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초대형 마트보다야 작았지만 전문점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손색이 없었다. 적어도 입구에서 매장 끝까지가 한눈에 들어오진 않을 만큼 컸다.

“안에 좀비가 있는지부터 살피지. 그러고 나서 움직이는 게 좋겠어.”

원혁이 낮게 속삭였다.

“맞는 말입니다.”

두 사람은 좌우로 동선을 나눠 가게를 훑어보기로 했다. 태유준의 정신이 깨어나며 신경이 곤두섰다. 이 마트 안에서 괴물을 마주치면 식량이고 뭐고 끝장이었기 때문이었다.

태유준은 선반에 놓인 물건들을 살피는 동시에 건너편과 대각선, 그리고 가게 깊숙한 곳까지 시야를 다각도로 펼쳤다.

태유준이 맡은 우측은 조리 도구가 폭넓게 갖춰져 있었다. 식자재를 사러 온 식당 주인들이 곁들여 사 가라고 구색을 갖춰 들여놓은 물품인 듯했다.

전문 식당에서나 쓸 법한 도마, 크고 작은 칼과 가위, 돈가스 망치며 스테인리스 쟁반 등이 눈길을 끌었다. 경계를 늦추지 않고 매장 끝까지 갔지만 딱히 좀비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다시 가게 입구로 와 원혁과 합류했다.

“우측은 조리 도구 코너였어요. 아무것도 안 보였습니다.”

“내 눈에도.”

“식량을 챙겨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래. 한 가지 더. 어떻게 차까지 운반할지도 생각해 봐야겠는데.”

마침 태유준의 눈에 밀어서 쓰는 카트가 보였다. 가게 안에서 물건을 나를 때 쓰는 도구 같았다.

“여기 싣고 가면 어떻겠습니까?”

“소음을 유발해서 위험할 것 같은데. 만약에라도 좀비를 마주치면 신부님이나 나나 곤란해지지 않을까? 좀비 새끼들, 시력은 확실히 없는데 후각과 청각이 예민하잖아.”

“그걸 어떻게 아시죠?”

“눈깔이 없잖아. 그럼 다른 감각이 발달하기 마련이지.”

그는 자기 눈을 두 손가락으로 찌르는 흉내를 냈다. 대단히 냉소적인 말투였다.

“일단 맛있는 메뉴로 고르자. 난 저쪽에 있을 테니 신부님은 이쪽 맡아 줘.”

원혁이 가게 반대편으로 사라졌다. 태유준은 선반으로 다가가 물건들을 살폈다. 제일 먼저 컵라면과 인스턴트 밥이 눈에 들어왔으나 이것들은 끓는 물이 필요해 곤란했다. 차라리 데우지 않아도 되는 레토르트 식품들을 몇 가지 살폈다.

한참 태유준이 물품들을 선정하고 있는데 등 뒤에서 저벅저벅 발소리가 들렸다.

“벌써 다 고르셨습니까?”

뒤를 돌아봤다. 태유준은 들고 있던 5분 카레를 툭 떨어뜨렸다.

“어… 어떻게.”

괴물 한 마리가 가게 안으로 진입 중이었다. 처음 수도원에서 목격한 괴물들만큼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빨랐다. 태유준이 얼이 빠진 사이에 그것은 난데없이 풀쩍 뛰어올랐다. 천장에 부딪칠 정도로 높게.

“꿰엑!”

소리를 지르는 좀비는 삼보 식자재 마트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이 시국에 출근이 하고 싶냐!

태유준이 마음속으로 외쳤다.

“꾸에엑!”

바닥에 쿵, 착지하고 쭈그려 앉은 괴물이 혀를 길게 내 입맛을 다셨다. 태유준의 전신에 소름이 돋아났다. 태유준은 허겁지겁 달리며 마트를 한 바퀴 빙 돌았다.

마트 직원이 뒤에서 그를 쫓았다. 쾅, 쾅, 선반에 몸을 마구 부딪치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물건이 우수수 쏟아져 엉망으로 바닥을 굴렀다.

“헉, 헉.”

태유준은 일부러 복잡한 선반 사이사이로 뛰었다. 좀비는 힘이 세고 운동 신경이 좋았으나 지적 능력이 둔감해 보였다. 이렇게 하면 따돌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빙빙 길을 돌아서 다닐수록 괴물은 머리와 몸을 무식하게 선반에 부딪쳤다. 그렇게 괴물에게 타격을 주면서 태유준은 어느덧 아까 있었던 조리 도구 코너에 도착했다.

“…!”

하지만 놈은 금방 쫓아와 태유준의 앞을 가로막았다.

“끄윽, 꺼걱…!”

괴물은 선반에 부딪쳐 두 팔이 부러진 건지 팔꿈치 아래 관절이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하지만 아직 이빨만큼은 날카롭게 빛났다. 그것이 쩌억- 사람이 벌릴 수 있는 크기의 두 배는 되게 입을 벌렸다. 태유준은 절박해졌다. 이대로 죽을 순 없었다.

물러가라, 괴물아. 사탄아!

차라리 예전처럼 능력이라도 있으면 좋았을 텐데. 태유준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신을 집중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태유준’은 평범한 인간의 육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신에게 빌 수밖에 없었다.

신이시여, 내게 용기를 주소서.

태유준은 선반으로 손을 뻗었다. 아무것이나 손에 쥐었다. 잡고 보니 식당용 대형 도마였다. 흡사 방패만큼이나 크고 단단했다.

“까아아, 끄에엑!”

괴물이 찢어지는 소리를 내며 뛰어왔다.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그의 정수리를 태유준은 도마로 세게 내리찍었다.

“끄아악!”

괴물이 아프다며 울부짖었다. 태유준은 인상을 썼다. 아무리 이 모양 이 꼴로 변했다 한들, 한때 사람이었던 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것에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다시금 괴물이 저에게 뚜두둑, 목을 돌려 아가리를 벌렸으므로.

빠각. 이번에는 목젖을 노렸다. 도마의 옆면으로 목젖을 후려쳤다. 괴물이 크게 휘청였다.

되… 된 건가. 물리쳤나. 태유준은 순간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아직이었다. 괴물이 쿵쿵거리며 발 구르기를 한 다음, 휙 점프를 했다. 태유준이 미처 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윽!”

순식간에 몸통이 밀려 바닥에 몸을 찧으며 드러누웠다. 그 바람에 태유준은 도마를 놓쳤다. 태유준 위로 올라탄 괴물은 껄껄 웃듯이 괴이한 소리를 냈다. 입에서 시궁창 냄새가 났다. 괴물이 혀를 날름거리며 태유준의 목덜미에 입을 가져다 대려 했다.

안 돼. 이대로 죽을 수 없어…!

태유준은 바둥거리며 괴물의 아가리를 피했다. 한계까지 힘을 쥐어짜 팔을 뻗었다. 포장이 벗겨진 회칼이 보였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드디어 칼자루를 잡았다. 태유준은 본능적으로 괴물의 목을 노리고 칼을 휘둘렀다.

괴물은 억 소리도 내지 못하고 털썩 태유준의 몸 위로 쓰러졌다. 그리고 미동도 없이 그대로 멈췄다.

태유준의 전신이 벌벌 떨렸다. 제 위에 쓰러져 죽은 괴물의 체중도, 목덜미에 닿아 있는 좀비의 축축한 얼굴 감촉도, 흘러내리는 끈적한 피도, 거기서 나는 썩은 내도 다 감당하기 힘들었다.

멍하니 누워 있는 태유준에게 원혁이 다가와 손을 뻗었다.

“일어나.”

태유준이 바들거리는 손을 뻗어 원혁과 손을 맞잡았다. 힘을 주어 당기자, 뻣뻣하게 굳은 시체가 옆으로 떨어지며 태유준은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다리가 마구 후들거렸다.

“떨지 마, 신부님.”

태유준은 피에 젖은 가슴팍을 내려다보았다. 안토니오의 피를 뒤집어썼던 하얀 맨투맨 티와 달리 지금의 검은 옷은 핏자국을 드러내지 않았다. 우습고 아이러니했다. 아무리 피가 튀어도 티가 나지 않는다는 것이.

“하아….”

태유준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입가가 부르르 떨렸다. 무섭다. 공포스럽다. 괴물과 살을 맞댄 게 토악질이 날 만큼 역겹다.

한때 사람이었던 자를 죽였다. 내가, 내 손으로 칼을 휘둘렀다.

“후…흡.”

뺨을 타고 말간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턱 끝에 맺힌 눈물은 그대로 그의 수단 자락으로 떨어졌다.

수단은 아까 피를 머금을 때 그랬듯 눈물도 잘 삼켰다. 너무나 시커메서 아무런 자국도 남지 않았다.

“으으, 으윽…!”

태유준은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얼굴을 세차게 문지르며 울자 손에 묻었던 피가 고스란히 얼굴에 배어났다. 꺽꺽대며 가슴을 쳤다. 질퍽이는 피가 주먹에 묻어났다.

“울지 마, 신부님.”

“흐으… 내가 죽였어. 내가…!”

태유준은 울부짖었다.

괴물은 너무나 징그럽고 무서웠다. 그 와중에 가장 끔찍했던 것은 그 몸뚱이에도 생생한 체온이 있었다는 점이었다.

* * *

“손이랑 얼굴 좀 닦아야겠네. 여기 물티슈도 있을 것 같아. 기다려.”

울음이 한소끔 가라앉은 후, 원혁이 대용량으로 포장된 물티슈를 가지고 왔다. 태유준은 여러 장을 뽑아 얼굴과 손을 닦았다.

하지만 워낙에 피가 많이 튀었던지라 열 장, 스무 장을 써도 해결이 안 됐다. 태유준은 서른 장도 넘게 물티슈를 써 가며 얼굴과 목덜미, 그리고 피에 젖은 머리카락을 닦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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