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하늘에서 좀비가 비처럼 내려와-5화 (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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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유준은 눈을 번쩍 떴다. 안토니오는 께에-! 소리와 함께 고꾸라져 바닥에 대자로 뻗었다. 그리고 몇 번 몸을 튕기듯 경련하다가 동작을 멈추었다. 완벽하게 숨통이 끊어진 기색이었다.

“혀, 형제님….”

죽었어. 안토니오 형제님이, 죽었다.

태유준의 턱이 떨리며 이끼리 딱딱 부딪쳤다. 태유준은 고개를 들어 총알이 날아온 방향을 쳐다봤다. 그곳에는 권총을 든 원혁이 서 있었다.

“아….”

태유준은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손이 덜덜 떨렸다. 뜨끈하고 끈적한, 악취가 풍기는 피가 태유준의 턱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아마 가슴 쪽이나 배에도 잔뜩 묻었을 것이다.

썩은 피비린내가 곧 웅덩이를 이루었다. 안토니오가 죽었다는 결정적인 증거였다. 하지만 원혁은 만족이 안 되는지, 성큼 다가와 각목으로 안토니오의 목을 내리쳤다.

“뭐 하는 거예요!”

“이 새끼들, 경동맥을 제대로 끊어 놔야 다시 안 살아나.”

“그만하세요! 제발 그만!”

“정신 차려. 이 좀비가 방금 당신 잡아먹으려 했어. 침 질질 흘리면서 입맛 다시는 거, 못 봤어?”

“봤습니다. 하지만….”

괴물이 입은 옷의 등판에는 ‘대한 가톨릭회’라는 문구와 함께 십자가가 커다랗게 인쇄돼 있었다. 원혁은 괴물의 정체를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었다. 옷으로 보아 아마도 태유준의 동료였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목숨을 구해 준 사람에게 되레 큰소리라니. 원혁은 열이 받는 걸 참을 순 없었다.

“참 나. 난 지금 당신 생명의 은인이야. 고맙다는 말은커녕 혼만 나고 있네.”

원혁이 각목을 어깨에 척 메고 비아냥거렸다. 땅바닥에 주저앉은 태유준은 고개를 숙였다. 다 맞는 소리였다. 원혁이 아니었으면 자신은 목숨을 건지지 못했을 것이었다.

“살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이 은혜는 잊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신께서는 슬퍼하실 겁니다.”

“아이구, 그러셔?”

“네. 신은 다 지켜보고 계시니까요.”

“글쎄? 신이 존재하기는 해?”

“무슨 소리세요.”

얼굴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태유준이 정색했다.

“생각해 봐. 과연 신이 있다면 이런 지옥을 열었을까? 이따위 좀비들이 나대게 놔뒀겠냐고.”

원혁은 비웃음을 흘리며 각목을 흔들었다. 차 쪽으로 다시 가자는 신호였다. 태유준은 뭐라 반박하려다가 참았다. 종교적 논쟁을 하기에 저 남자는 적합한 상대가 아니어 보였고, 지금은 딱히 그런 행위를 하고 싶지도 않았다.

안토니오의 시체 옆을 지나칠 때 태유준은 저도 모르게 두 눈을 꾹 감았다. 이 모든 일들이 끔찍했다. 그는 작게 성호를 그었다.

태유준은 침묵 속에 다시 차에 올랐다. 실내등을 켜지 않아서 트럭 안은 어두웠다.

“절 살려 주신 이유가 뭡니까. 가던 길 가던 사람이니 내버려 두실 수도 있었잖습니까.”

“잘 보이려고.”

“네?”

“생각해 보니까, 지금으로서는 장 박사에 관한 실마리를 갖고 있는 사람이 당신뿐이더라고. 나야 장 박사에 대한 공식적인 정보만 알지만 당신은 아닐 거 아니야. 본가, 아지트, 개인 연구소, 자주 가는 장소. 그리고 이런 위기 상황에서 몸을 숨길 만한 곳. 이런 정보가 필요하거든.”

틀린 말은 아니었다. 태유준도 당장 여의도 연구소로 가려던 참이었으니.

“신부님도 그곳들을 하나씩 뒤져 보려는 거잖아. 내가 거기 따라가야겠더라고. 나도 좀 같이 갑시다.”

원혁이 태유준의 어깨에 손을 턱 얹었다. 태유준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쳤다.

영리하고 영악한 인간이군. 미련 없이 자신을 놓아주는 듯 굴더니, 절체절명의 순간 목숨을 구해 주며 호감을 쌓았다. 그러고는 동행을 요구한다. 고급 수준의 협상 기술이다.

“제가 장소 정보를 제공하면, 형제님. 아니, 그쪽은 뭘 해 주실 겁니까.”

“든든한 고구마 트럭 제공.”

원혁이 기어를 툭툭 두드렸다.

“진심이신가요?”

“나 전직 카레이서야. F1 리그에서 뛴 적도 있어. 그래서 운전을 미친 듯이 잘해. 이런 고물 트럭으로도 시속 140킬로미터 이상 속도로 곡예 운전 보장해.”

“진짜입니까?”

“못 믿겠으면 인터넷에 검색해 봐. 미국 이름은 크리스 어빙이야.”

태유준은 미심쩍어하며 핸드폰으로 ‘크리스 어빙’을 검색했다. 그러자 정말 원혁의 신상을 자세하게 설명한 사이버 백과사전이 나왔다.

크리스 어빙. 다국적 제약 기업 ‘노 모어’ 오너. 서울 출신으로 제프 어빙(노 모어 창업주)의 후처가 된 어머니를 따라 열 살 때 미국으로 건너감. F2 리그에서 챔피언십을 거머쥐고 F1 리그까지 진출하였으나 한 시즌도 안 되어 은퇴. 그 이후로는 경영 수업에 몰두함.

그 밑으로는 F1에서 뛰던 시절의 사진이 있었다. 사진 속에서 그는 훤칠한 외모에 자신 있어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지금의 원혁보다 한참 어릴 적 같았다. 그러고 보니 이마의 흉터도 보이지 않았다.

“…사실이군요.”

“왜 사람 말을 못 믿어.”

그거야 당신 정체가 수상해 보이니 그렇죠.

태유준은 말을 속으로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총. 아까 봤듯이 난 과감하고 결단력이 있어. 여기까지 오면서 이 총으로 죽인 좀비가 한 서른 마리 되는 것 같은데?”

원혁이 품 안에서 아까 사용한 권총을 꺼냈다. 방금 안토니오를 죽인 총이라 생각하니 태유준 입장에서는 섬뜩했다.

“신부님한테 줄 여분도 있어.”

원혁이 글러브 박스를 열었다. 그 안에는 권총이 한 정 더 있었다.

“나랑 동행한다면 얻을 수 있는 것들이야. 그리고 하나 더.”

“뭡니까. 나머지 하나 더는.”

“예뻐해 줄게.”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태유준은 신경질적으로 눈매를 찡그렸다.

“신부님 예뻐.”

“왜 갑자기 헛소리를 하세요.”

이 남자는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총 얘기를 하다가 왜 그쪽으로 튄단 말인가.

“내가 취향 진짜 까다롭거든. 아직까지 이상형을 못 만났어. 근데, 신부님 딱 보는 순간 느낌이 왔어.”

“집어치우세요.”

가끔 남자들이 이런 식으로 접근을 해 오곤 했다. 태유준은 이 레퍼토리가 지겨웠다. 여자들한테서는 느낄 수 없었던 신비로움이 느껴진다는 둥, 네가 예비 사제라는 점이 날 미치게 만든다는 둥 개소리를 실컷 들으며 살아왔다.

“아니. 왜 이렇게 까칠해?”

“제 목숨을 살려 주신 것과 별개로, 불쾌한 건 불쾌한 겁니다.”

태유준이 정색하며 말했다.

“예쁜 걸 예쁘다고 말도 못 하나?”

“속으로 혼자 생각하시든가요.”

“난 겉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스타일인데.”

“일기장에 쓰세요.”

“흠. 그럼 차랑 총, 그리고 예뻐함. 이렇게 세 가지로 조건을 압축하자.”

“세 번째 거는 빼라니까요?”

“자, 이제 계약하지.”

원혁은 뻔뻔하게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태유준은 어이가 없고 억울했지만, 남자와 길게 설전을 벌이기에는 이 상황이 너무나 피곤했다. 또한 핵심적인 사항이 중요했다. 남자의 총과 차. 그리고 좀비를 아무렇지 않게 죽이는 저 잔혹함과 결단력은 분명 이 서울 시내를 뒤지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었다.

“우리 둘은 공통적으로 장 박사를 찾고 있어. 하지만 장 박사가 어디 있는지는 전혀 몰라. 그러니까 힘을 합치자는 거야.”

“…예.”

“협력 기간은 장 박사를 찾을 때까지. 그 이후에는 알아서 갈 길 가는 걸로.”

“당연한 소리입니다.”

태유준이 남자의 손을 맞잡았다. 손바닥은 뜨거웠으며 굳은살이 잔뜩 박여 있었다. 원혁은 꽤 오랫동안 태유준의 손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악력도 세서 꼭 온몸이 그의 손아귀에 갇혀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태유준은 남자의 꿍꿍이를 전혀 알 수 없었다. 정말 정보만 빼 가려는 것일까? 장 박사님에게 해가 되는 건 아닐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태유준은 이것을 어디까지나 일시적인 동맹으로 삼고, 영리하게 굴어야겠다고 다짐했다. 결코 마음을 놓지 않을 생각이었다. 만약 장 박사님에게 해를 끼치려 든다면 그때는 태유준도 가만히 있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제 손 놓죠.”

“조금만 더요. 예쁜 신부님.”

“벌써 또! 그리고 저 신부님 아닙니다. 아직 사제 서품 받기 전이라 그냥 신학교 학생이에요.”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해?”

“그냥 세례자 요한이라고 불러 주십시오, 형제님.”

“음. 그건 왠지 입에 안 맞는데. 예쁜이는 어떨까?”

“…세례자 요한이요.”

“그럼 예쁜이 요한은 어때?”

원혁의 집요함에 태유준은 질려 버렸다. 결국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하, 맘대로 해요.”

“알았어. 예쁜아.”

원혁은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그제야 태유준의 손을 놓아주었다. 아직도 손에 열기가 고스란히 남은 기분이라 태유준은 못내 찝찝했다.

“자, 이제 장 박사를 찾으러 가 보자고. 어디부터 어떻게 수색할지 정해 볼까.”

원혁이 핸드폰을 켜 서울 시내 지도를 펼쳤다. 태유준은 꼼꼼하게 서울의 지형을 눈에 담은 뒤 입을 열었다.

“음… 제 생각에는, 너무 의외의 장소가 아니라 오히려 일반적인 장소로 가야 합니다.”

“그 말은?”

“박사님이 어디 먼 곳으로 가 버리셨을 수 있지만, 그렇다 해도 개인 연구소부터 가야 한다는 거죠. 남들이 잘 모르는 곳이 있거든요. 거기서 숙식도 주로 해결하셨습니다. 요새 막히는 연구가 있다면서 주로 그곳에서 밤을 새우곤 하셨어요.”

“그게 어디죠?”

“여의도입니다. 저도 그쪽으로 가려고 나서던 참이었어요.”

“오. 여의도. 여기서 좀 가야 하네.”

원혁이 지도에서 여의도 부근을 확대했다.

“좋아. 여의도 연구실부터 가 볼게.”

그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 털털거리는 트럭 특유의 시동 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놈들은 청각이 예민한 것 같으니 서둘러 빠져나가겠어. 아, 그 전에.”

“예?”

원혁이 태유준 쪽으로 훅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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