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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각 태유준은 세실리아를 껴안다시피 하며 기숙사로 달리고 있었다. 아직도 뒤쪽에서는 괴물들이 맹렬하게 그들을 추격했기에 아무리 숨이 차고 목구멍이 아려 와도 멈출 수 없었다.
“헉, 헉. 다 왔어요. 수녀님!”
간신히 기숙사 건물에 도착했다. 태유준은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문을 통과했다.
“이제 문 닫아!”
안토니오가 크게 외치자 베드로가 문을 걸어 잠갔다. 그가 이중 삼중으로 대문을 닫는 것을 보며 태유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막차를 탄 것이다.
실신 상태에 가까운 세실리아를 다른 수녀들에게 맡기고 태유준은 이마를 흠뻑 적신 땀을 닦았다. 좀처럼 숨이 가라앉지 않았다. 떨리는 손을 애써 부여잡으며 주저앉아 있는데 베드로가 그를 불렀다. 강당에 가 보니 동료들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모여 있었다.
“요한. 괜찮습니까?”
“네. 저는 괜찮습니다. 세실리아 수녀님이 다리를 다치시긴 했지만요. 다들 무사합니까?”
“그게… 몇 명이 안 보여요. 주임 신부님도, 보좌 신부님도….”
베드로의 목소리가 떨렸다. 태유준은 그들이 살아 돌아오지 못했음을 직감했다. 목이 메었다. 살아남은 자들 사이에 잠시간 침묵이 흘렀다. 태유준은 한숨을 내쉰 다음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저한테 핸드폰이 있습니다. 119에 구조 요청을 해 봐요.”
“어떻게 핸드폰을 갖고 있죠?”
신학도들은 주말이 아니면 핸드폰을 쓸 수 없었다. 베드로는 적지 않게 놀라는 눈치였다.
“몰래 숨겨 놨었습니다.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지만….”
“잘됐네요. 어서 전화해 봐요.”
태유준은 떨리는 손으로 119를 눌렀다. 하지만 들려오는 것은 통화 중이라는 멘트뿐이었다.
“이상해요. 전화를 안 받습니다.”
“뭐?! 119가 전화를 안 받기도 하나요?”
“여러 번 걸어도 똑같아요. 연결이 불가능하다고 나옵니다.”
112에 걸어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혹시나 싶어 태유준은 SNS에 접속해 정보를 얻었다. ‘가까운 대피소 찾기’, ‘좀비 사태’, ‘서울 좀비 떼’ 등이 인기 키워드였다. 또한 포털 사이트 메인은 실시간 상황을 스트리밍해 주고 있었다.
“이거라도 봅시다. 바깥이 어떤 상황인지 알아야 해요.”
동료들이 태유준 주변으로 모여들어 다 같이 화면을 지켜봤다.
―현재 서울 명동을 중심으로 괴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정체불명의 괴한들이 행인을 무차별 공격 하는 중입니다. 우선 영상 보시죠.
아까 본 자들과 비슷한 괴물들이 펄떡펄떡 뛰어다니며 사람들을 공격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대로변의 전신주나 가로수에서 수직으로 낙하하며 사람의 어깨나 머리를 공격하는 방식이 성당에서와 똑같았다.
후두두, 가로수에서 맹렬하게 쏟아져 내려와 행인들을 덮치는 영상은 태유준의 속을 역겹게 만들었다.
―보시다시피 이들은 일반인 복장을 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저희 방송국과 경찰서, 소방서에도 멀쩡했던 사람이 갑자기 괴물로 변했다는 제보가 빗발쳤는데요. 교수님은 이 현상을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아나운서 옆에는 나이 지긋해 보이는 남자가 흰 가운을 입고 있었다. 자막은 그를 의학 박사로 소개하고 있었다.
―오늘 일어나고 있는 이 폭동, 그러니까 공격성이 강한 상태로 타인을 물어뜯는 행위 말이죠. 이건 어떤 감염병의 증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심지어 감염이 전파되고 있다죠? 괴한들한테 물린 사람도 괴한과 똑같은 증상을 보인다고요.
―지금까지 제보된 영상에 의하면 이 증상은 사람 간에 전파가 되는 것 같아요. 감염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무는 건데요, 그렇게 되면 이제 물린 사람도 늦어도 30분 내에 동일한 특성을 보입니다. 전염이라는 거죠.
―이 패턴이 꼭 할리우드 좀비 영화 같아서, 어떤 네티즌들은 이 사람들이 좀비다. 이렇게 주장하기도 하던데요?
좀비라는 단어에 실내의 공기가 싸해졌다. 태유준은 긴장감과 공포심으로 질린 동료들의 얼굴을 둘러보았다. 다들 말은 안 해도 느끼고 있었다. 이건 인간이 아니라고. 좀비라는 말이 어울릴지도 모른다고. 그건 사실 태유준 본인도 느끼고 있는 부분이었다. 그 가공할 점프력과 기이한 몸짓, 괴상한 소음. 그건 사람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그리고 사람에 대한 공격성. 또한 이 의학 박사의 말이 맞는다면 그것에 물린 자는 똑같이 좀비가 된다. 영화에서나 봤던 좀비가 현실에 나타난 것이다. 믿을 수 없었지만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음, 꼭 그렇게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원인불명의 질환이다, 이렇게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지금 들으신 바와 같이 원인을 알 수 없는 감염병이 서울 한복판에 퍼지고 있습니다. 외부 활동을 자제하시고 집 안에 계신 분들은 실내에 머물러 주십시오. 실외에 계신 분들은 대피소로 서둘러 이동해 주십시오. 인터넷에서 ‘가까운 대피소 찾기’ 기능을 이용하시면 안전한 장소로 가실 수 있습니다. 서울시 중구 지정 대피소는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 아래 지하 벙커입니다. 비상사태이니만큼 시민 여러분께서는 신중하게 행동하시기를 당부드리는 바입니다.
화면이 광고로 전환되었다. 태유준은 탄식했다. 이 시국에도 광고를 띄우다니. 잠시 짜증이 밀려온 그가 이마를 짚었다.
“후우… 일단 119와 연결은 쉽지 않은 상태입니다. 형제님들, 제가 최대한 연락을 시도해 보겠습니다.”
대답하는 사람이 없었다. 태유준은 주변 동료들이 다 얼이 빠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군가는 작게 울었고 누군가는 멍하니 바닥에 주저앉았다.
태유준은 몇 분씩 간격을 두며 119에 전화했다. 하지만 지금 응답할 수 없다는 말만 연거푸 들려올 뿐 전화는 먹통이었다.
“아직도 안 받아요, 요한?”
“네. 연결이 어렵습니다.”
“하… 어떡하지. 우리 이대로 여기 갇히는 것 아닌가.”
한 동료가 울먹였다.
불안하고 두려운 것은 태유준도 마찬가지였다. 이럴 때 자신의 그 ‘능력’이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그 능력은 진작에 사라졌다.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났고, 마찬가지로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의 손을 떠났다. 많은 것을 잃게 하고서. 그래서 지금 이 상황에서 유준이 기댈 곳이라고는 신밖에 없었다.
태유준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두 손을 모았다. 그는 신에게 성호를 바친 다음 속으로 중얼거렸다.
주의 이름에 기대 비노니 인간의 적이여, 사라져라. Vade, hostis humana.
그는 지금 자신이 빈 것처럼 기도문으로 인간의 적을 물리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구조 신호는 연결되지 않고 기도를 읊조려 봤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태유준은 내리는 장대비를 고스란히 맞고 있는 사람처럼 무력감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시금 똑같은 내용으로 기도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매달릴 수 있는 건 오직 신뿐이었다. 그는 수십 번 수백 번 기도를 되풀이했다. 주변에서는 주로 침묵과 가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이것이 하늘에서 좀비가 비처럼 떨어지던 첫날 태유준이 마주한 세계였다.
* * *
“119는 아직인가?”
“네. 구조 약속은커녕… 연결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습니다.”
“112는?”
“마찬가지입니다. 아예 받지 않습니다.”
사흘이 지났다. 태유준은 72시간 동안 여러 번 신고를 시도했으나 모두 연결에 실패했다. 그의 대답에 4학년 안토니오는 크게 실망한 듯 보였다. 태유준은 그를 위로하고 싶었지만 차가운 빵을 한 조각 건네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고마워.”
“얼른 드세요.”
태유준은 제 몫의 빵에서 하나를 더 덜어 안토니오에게 건넸다. 그리고 식전 감사 기도를 올린 다음 차갑고 딱딱한 빵을 베어 물었다. 우물우물 빵을 씹는 동안 주변 동료들은 여전히 침묵했다.
기숙사는 총 2층짜리 건물이었는데 2층은 기도실과 침묵실로 활용되고 있어 원래부터 신학도들은 1층만을 써 왔다. 그리고 스무 명의 신학도들은 다섯 개 방에 네 명씩 배정되어 잠을 잤다.
하지만 지금은 흩어져 자는 게 위험하다는 여론이 있었으므로 대강당으로 이층 침대를 모조리 끌고 와 합숙을 하는 상황이었다.
지금 태유준이 있는 곳은 강당 옆 식당이었으며 조리실은 깊숙한 안쪽에 있었다. 조리실 냉장고에는 약간의 냉동식품이 있었지만 신선식품의 양은 많지 않았다. 소박하고 검소한 생활을 해야 하는 신학교의 특성상 한 번에 대량의 음식을 저장하지 않는 문화가 있었다.
그에 따라 음식은 점점 줄어들어 갔다. 하루에 한 사람이 먹을 분량을 정해서 배분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었다.
이곳에 있는 자들은 대부분 성인 남성이고 남은 음식은 한정적이다. 이대로 물자가 부족해지면 우린 어떻게 되지? 다 같이 굶주림에 시달릴 것이다. 바깥의 도움이 없는 상황에서 그렇게 되면 싸움이 일어나지 않을까. 태유준은 굳이 식량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으나, 속으로는 무척 신경 썼다.
겨우 며칠 지났을 뿐인데 절반 이상 비어 버린 냉장고. 벌써부터 먹는 양을 줄이고 있다는 수녀님들. 보이지 않는 신경전.
이 숨 막히는 긴장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구조대였다. 그러나 뉴스를 검색할 때마다 마주하는 것은 감염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소식뿐이었다.
[이상 행동자 대폭 증가. 서울 은평구, 관악구에서도 다수 발견]
[모든 학교 등교 중지. 보육 대책은?]
[서울시 폐쇄할까? 경기도-인천과 첨예한 갈등.]
어떤 뉴스도 긍정적이지 않았다. 태유준은 빵을 삼키며 메시지함에 들어갔다. 하도 자주 들어가 창이 닳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그는 자주 메시지함에 접속하고 있었다.
…박사님의 연락이 없네.
오늘도 장 박사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당연히 전화도 메시지도 수신하지 않았다.
태유준은 남들보다 늦된 스무 살에 인생과 믿음이라는 주제로 번뇌했고 고통받았다. 대학교도 진학하지 않았고 술만 마시며 나태하게 살았다. 그런 그를 다시 번듯하게 살게 해 준 인물이 바로 장준식, 태유준의 가톨릭 대부였다.
유능한 의학자인 그는 연구로 분주한 가운데에도 태유준을 자주 찾아왔다. 커서 신부님이 되고 싶다는 태유준의 꿈을 지지해 주었고 전폭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태유준 역시 자신을 버린 양부모가 아닌, 장 박사를 친아버지처럼 여겼다.
사제 서품을 완수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면 많이 기뻐하실 텐데. 날 자랑스러워해 주실 텐데. 대체 어디에 계신 걸까. 혹시 이 사태에 휩쓸려 다치거나 위험해지신 건 아닐까.
걱정이 산더미였다. 태유준은 어느새 굳어 빠진 빵을 꾹꾹 씹어 삼켰다. 그가 다시금 뉴스를 검색하려 할 때 식당 구석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두 예비 사제가 일어나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다.
“내일부터 음식 배분을 철저히 하자고. 내가 맡을 테니까.”
“뭘 믿고 너한테 음식을 맡겨? 네가 뭔데.”
“음식이 공평하게 분배되고 있지 않은 것 같으니까 그렇지. 저기도 봐, 안토니오가 빵을 두 개나 더 먹고 있잖아.”
그 말을 들은 태유준이 인상을 썼다.
“형제님들. 이건 제가 안토니오 형제님에게 그냥 드린 겁니다.”
“저것 봐. 불공평하다고. 모두가 똑같이 빵을 나눠 먹어야 하는데 말이야.”
“제가 드리고 싶어서 드린 것뿐인데요.”
“저런 놈들 때문에 질서가 흐트러질 거야. 기강을 바로잡아야 해.”
늘 침착한 태유준이었지만 저렇게 빈정거리는 말투는 듣기 힘들었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기강이요?”
“요한. 참아.”
안토니오가 중재에 나섰다.
“내가 이 빵을 요한에게 돌려줄게. 됐지?”
2인조는 그제서야 시큰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은 평화가 찾아왔으나 태유준은 이 기숙사 안이 곧 위태로워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신을 믿는 자들이라 하더라도 이런 극한 상황에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배고픔과 생명의 위협은 가장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했다. 그들은 평소 웃는 낯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던 예비 사제 동료들이 아니었다. 자신의 생존이 최우선인 이 상황에서 인간들은 작은 행동 하나에도 예민해지며 날을 세웠다.
어떤 신학도는 하루 종일 울었고 어떤 신학도는 그런 그에게 시끄럽다며 버럭 화를 냈다. 그리고 혹자는,
“꾸에엑!”
창문 바로 바깥에서 들리는 괴성에 혼이 나갈 듯 두려워했다.
“아악! 어떻게, 어떻게 좀 해 봐!”
“진정하십시오. 창살이 있으니 들어오지 못할 겁니다.”
“그래도! 저, 저기 있잖아!”
문제는 에어컨 없는 기숙사 건물의 특성상 이곳저곳에 창문이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지금도 지나가는 괴물이 창에 얼굴을 들이밀고 안쪽 냄새를 맡으려고 어슬렁거리는 실루엣이 보였다. 창이 반쯤 불투명해서 망정이지. 태유준은 창이 투명이었다는 상상도 하기 싫었다.
“괜찮아요. 형제님. 조금만 있으면 조용해질 겁니다. 제 가설이 맞는다면요.”
태유준은 식은땀을 흘리는 동료를 가볍게 토닥인 다음, 시계를 가리켰다. 지금은 저녁 7시. 날이 어두워질 시간이었다.
사흘을 지내며 알아낸 사실이 있었다. 이 괴물들은 밤이 되면 잠잠해진다.
“어제도 그제도 7시가 넘으니까 저놈들이 조용해졌어요. 기억하시죠?”
“끄흡, 흡… 마, 맞아.”
동료는 눈물범벅이 된 채로 끄덕였다.
“확실히 이 시간쯤 되면 조용해져요. 보시다시피 안 움직이고요.”
태유준은 그렇게 말하며 반투명한 창문을 가리켰다. 저녁의 어스름한 빛에 나무에 거꾸로 매달린 좀비들의 실루엣이 보였다. 일찍 잠자리에 드는 놈들이었다.
“그래도 바로 저기에 있잖아.”
“괜찮아요. 저렇게 매달리고 난 후에는 어지간해서는 움직이지 않습니다.”
동료는 그 말에도 진정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태유준은 그의 손을 가만히 잡아 주었다.
Deus, audi nos. (신이시여, 들어 주소서.)
태유준은 기도문 몇 줄을 외며 생각했다. 이 기도로 괴물들이 사라지고 평상시와 같은 하루가 열렸으면 좋겠다고, 잠시 말도 안 되는 꿈을 꾸었다. 하지만 그것은 꿈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