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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장엄한 오르간 선율과 뒤섞인 성가가 성전 안에 울려 퍼졌다. 수십 명이 만들어 내는 화음은 조화로웠다.
미래의 사제들은 하나같이 진지한 표정이었다. 특히나 가운뎃줄의 남자 세례명 세례자 요한, 태유준은 스테인드글라스의 오묘한 빛을 받아 성스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는 타고나길 남의 시선을 잡아끄는 구석이 있었다. 검은 수단과 대비되는 창백한 피부, 사슴 같은 목덜미와 우아한 얼굴선이 더없이 수려했다.
더욱이 그를 명화 속 신비로운 정령처럼 보이게 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어딘지 쓸쓸해 보이는 검은 눈동자였다. 마치 흑요석처럼 새까만 눈동자는 아무리 들여다봐도 그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었다.
하지만 태유준은 몹시도 특별한 제 외모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평범하게 머리를 내리고 남들과 똑같은 수단을 입은 채 군중 속에 파묻혀 있을 뿐이었다.
“형제 여러분, 이제 우리의 죄를 반성합시다.”
침묵이 흐르며 묵상 시간이 되었다. 태유준은 다른 예비 사제들과 함께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신경은 온통 주머니 속에 몰래 숨겨 온 핸드폰에 향해 있었다. 정확히는 ‘장 박사님’에게서 새로 메시지가 도착해 있지는 않은가 신경이 곤두선 상태였다.
왜 연락이 안 되지. 벌써 사흘째 전화도 안 받고 메시지도 읽지 않으시네.
친부자 관계보다도 더 자주 연락하며 서로의 안부를 전해 온 지 10년이 넘었다. 연구 용역을 맡은 제약 회사에 보고서를 제출하는 마감 기일이라고 했으니 바빠질 것이라 생각이야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락이 두절될 것까지는 없지 않나.
태유준은 혹시 제 핸드폰이 고장 난 것은 아닐까 의심하며 인터넷 창을 켰다. 평소처럼 원활하게 포털 사이트에 접속이 됐다. 여기저기 터치해 보아도 연결은 아주 멀쩡했다. 무슨 일이실까. 이렇게까지 연락이 안 된 적은 없었는데.
그는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핸드폰 액정을 만지작거렸다. 장 박사에게 한 번 더 메시지를 보내려던 참이었다. 포털 창을 닫고 메시지를 켜려는데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메인 뉴스 제목들이었다.
1위는 ‘서울시 중구 대피소’.
2위는 ‘영동성당 근처 이상 행동자’였다.
영동성당 근처? 바로 여기잖아.
태유준은 고개를 살짝 들어 기도하는 주임 신부의 눈치를 본 다음 관련 키워드들을 검색해 보았다. 그러자 SNS 게시물과 갓 올라온 기사들이 한 무더기 쏟아져 나왔다. 결과값이 너무 많이 나와 무엇을 눌러 봐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가로수에 올라가는 미친 사람.JPG]
[빌딩에서 갑자기 낙하하는 이상 행동자.AVI]
태유준은 그중 가장 인기도가 높은 게시물을 클릭했다. 게시물 속 인물들은 하나같이 희한하고 기이했다. 교복 차림의 학생이 원숭이처럼 펄쩍 뛰어 가로수에 올랐으며, 샐러리맨으로 보이는 중년이 빌딩을 기어올라 갔다. 기괴한 동작에 태유준의 팔뚝에는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요한, 자네 뭐 하나!”
한참 동영상에 몰두하고 있는데 주임 신부가 큰 소리로 태유준을 꾸짖었다.
“아, 죄송합니다.”
태유준은 서둘러 핸드폰을 주머니 깊은 곳으로 감췄다. 그러고는 민망함을 달래며 속죄 의식에 참여했다. 하지만 아까 본 동영상이 신경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어 그는 속죄 의식을 하면서도 계속 그 장면을 떠올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합성이라기에는 너무 실감 나는 영상이었다.
“감히 신과 형제들에게 고백하노니, 생각과 말과 행위로 죄를 많이 지었나이다.”
그와 신학교 학생들이 오른손 주먹을 들어 가슴께를 쳤다.
“내 잘못이오, 내 잘못이오. 나의 죄가 큽니다.”
미사는 다시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성가를 합창하는 목소리가 워낙에 커 분위기는 거룩하고 웅장해졌다. 바깥의 소음이 완벽하게 차단될 정도로 노랫소리가 점점 커졌다.
이윽고 노래가 절정에 이른 순간이었다. 고개를 들고 있던 시야에 무언가 이상한 것이 포착되었다.
“…저게 뭐지?”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장식인 동시에 외부의 직접적인 빛을 차단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바깥에 무엇이든 사물이 지나가면 그 실루엣이 비치게끔 되어 있다.
태유준은 눈을 비비고 그의 키보다 한참 위에 있는 스테인드글라스를 뚫어지라 쳐다봤다. 분명히 움직이는 무언가가 존재했다.
“사람?”
얼핏 보기에 밖에 있는 존재는 사람이었다. 머리가 달렸으며 팔과 다리가 허우적대는 것이 아주 잘 보였다. 여자인지 원피스를 입은 것 같았다. 하지만 태유준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이곳은 2층. 그것도 성당이라는 특성에 맞게 상당히 높게 지어진 건물의 2층이다. 상식적으로 이 창문에 인간의 실루엣이 비치려면 키가 4미터는 되어야 할 것이다.
아니면 창문에 찰싹 달라붙어 있든지. 그렇지만 그건 말이 안 되지 않는가.
“요한! 자꾸 집중 안 하고 뭐 하는 건가!”
주임 신부가 불같이 호통을 치며 태유준을 가리켰다. 평소 모범생인 태유준이 혼나는 모습에 동료 신학도들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쳐다봤다.
충분히 당황스럽고 창피할 만한 상황이었지만 태유준은 그런 감정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창밖의 그림자가 움직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저, 저거….”
태유준이 손으로 가리킨 순간이었다. 와장창. 스테인드글라스가 깨지며 밖에 있던 존재가 안으로 뛰쳐 들어왔다.
“으아악!”
“무슨, 무슨 일이야!”
창가에 가장 가까이 있던 태유준은 유리 파편을 뒤집어썼다.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으나 하도 요란하게 창이 깨지는 바람에 얼굴을 벴다.
“으윽!”
하지만 아픔을 느낄 여유가 없었다. 그는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경악했다. 창문을 깨고 들어온 존재는 사람이 아니었다. 인간의 형상을 한 괴물이었다.
괴물은 기괴하게 팔다리를 꺾으며 꾸에엑 소리를 냈다. 아까 예상한 것처럼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있었으나 팔과 다리 관절이 제멋대로 움직였다.
얼굴은 더 가관이었다. 눈알이 있어야 할 자리가 텅 비어 피딱지가 맺혀 있었으며 나머지 이목구비도 형편없이 무너져 있었다.
“헉.”
태유준은 순간 숨을 멈췄다. 여자, 혹은 여자였던 괴물에게서 엄청난 악취가 뿜어져 나왔다. 뚜둑. 그녀가 목 관절을 꺾어 태유준과 텅 빈 눈을 맞췄다. 공포로 온몸이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
“아아악!”
태유준의 옆에 있던 동료 바울이 소리를 지르며 장의자에서 일어났다. 진정으로 가공할 일은 이다음 순간부터 일어났다. 한 괴물이 메뚜기처럼 펄쩍 뛰어 도망치는 바울의 어깨 위에 올라탄 것이다.
괴물의 무게에 짓눌린 바울은 그대로 엎어졌고 괴물은 바울의 목뒤를 콰드득 깨물었다.
“살려, 살려 줘!”
바울이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태유준은 전신이 딱딱하게 굳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어설프게 도망을 치려고 다리를 움직여 보았으나 스텝이 꼬였다.
“더 들어온다! 어서 도망쳐!”
한 동료가 외쳤다. 태유준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뒤를 돌아보았다. 깨진 창문 틈으로 괴물 10여 마리가 뛰쳐 들어오고 있었다.
하이힐을 신고, 가방을 메고, 후드 티를 입은 그들은 할리우드 영화에서 봤던 좀비의 모습 그대로였다. 살아 있는 것이 아닌 시체에 억지로 생명력을 주입시켜 만든 듯 기괴하게 관절을 꺾었다.
괴물들이 점차 늘어나자, 난무하는 비명과 함께 긴박한 탈출이 시작되었다. 성당 안의 수십 명은 우당탕 넘어지고 굴렀다. 실내는 삽시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혼비백산한 사람들은 출구를 찾지 못했다. 그나마 맨 뒷줄에 있던 예비 사제가 문을 열며 대피하라고 소리쳤다, 사람들은 신발이 벗겨질 정도로 빠르게 도망쳤다.
태유준도 아비규환이 된 성당을 빠져나와 1층으로 계단을 타고 내려갔다. 헉, 헉 숨이 차도록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와중에도 제 뺨을 힘껏 후려 갈겼다. 자꾸만 다리에 힘이 빠질 때마다 그는 뺨을 쳤다. 스스로 정신을 차리기 위함이었다.
로비로 내려와 보니 발 빠른 사람들은 이미 건물을 빠져나가는 중이었다. 태유준 역시 인파에 뒤섞여 뛰었다. 그때, 그를 발견한 4학년 안토니오가 큰 소리로 외쳤다.
“바깥은 안 돼! 기숙사로, 요한. 기숙사가 안전해!”
“네!”
안토니오의 말이 옳았다. 건물 바깥에서도 하나둘씩 괴물이 들어오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려면 저들을 뚫고 나가야만 했다. 맨손으로 괴물을 상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급하게 바깥으로 뛰쳐나가던 이들은 괴물에게 붙들렸고 곧 처참한 꼴이 되었다.
태유준은 밖으로 나가려던 걸음을 틀어 부지 안쪽 길을 따라 뛰었다.
수도원 기숙사는 이곳 성당 건물에서 구불구불한 길을 통해 500미터 거리의 언덕 위에 위치해 있었다. 성인 남성이라면 몇 분 안에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하지만 괴물들은 인간들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 그들은 가로수에 올라가 있다가 허공을 가로질러 바닥으로 낙하했다. 그리고 달리기가 느린 자들을 속속들이 낚아챘다.
“아악!”
때로는 발목을 잡아채 넘어뜨리고 그 위로 올라타 팔뚝을 씹어 먹었다. 한번 사람에게 달라붙은 괴물들은 절대로 먹잇감을 놓아주지 않았다.
여기저기서 괴물이 사람을 습격하는 소리가 요란했다. 사람들의 비명을 지척에서 듣는 태유준의 등줄기에는 소름이 돋아났다. 자꾸만 다리에 힘이 풀리려 했다.
“악!”
지척에서 누군가가 넘어지는 소리가 났다. 태유준이 소리 나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수도원의 막내 수녀 세실리아였다. 그녀는 다리를 심하게 삐끗했는지 좀처럼 일어나지 못했다.
“수녀님! 걸을 수 있겠어요?”
“안 되겠어요. 절 버리고 가세요.”
그녀가 울먹거렸다. 태유준은 주변을 살핀 다음 그녀를 안아 올렸다. 그리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그의 목덜미에 팔을 두른 세실리아가 흐느끼며 울었다.
뒤에서는 여전히 비명과 뒤섞인 괴물들의 소리가 끔찍하게 들려왔다. 태유준은 악몽 같은 풍경으로부터 이를 악물고 힘껏 도망쳤다.
* * *
원혁은 평소 운전에는 자신이 넘쳤다. 한때 F1 리그에서 뛴 적도 있을 정도였다. 경영 전선에 뛰어드느라 레이싱을 그만둔 지금도 그는 쉬는 날마다 아마추어 레이싱에 참가해서 속도를 즐기고는 했다. 그리고 그는 늘 말했다. 젝라렌을 타고 달리는 순간은 천국과도 같다고.
하지만 지금은 잠깐 그 말을 취소해야 할 듯했다. 괴물들 너댓 마리가 잭라렌 앞유리에, 또 다른 너댓 마리가 지붕에 들러붙어 있었다. 그것들은 악취 풍기는 입을 벌리며 괴성을 질렀다. 눈알이 없고 이목구비가 무너져 있었으나 그들의 강한 탐욕만큼은 알 수 있었다. 괴물들은 원혁을 물어뜯고 싶어 견디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와장창! 운전석 옆 차창이 깨졌다. 괴물은 창문 안으로 고개를 집어넣고 원혁의 트렌치코트 자락을 물려고 용을 썼다.
“젠장.”
원혁이 조용히 욕을 씹을 때마다 날카로운 눈매가 거친 기운을 풍겨 냈다. 객관적으로는 잘생긴 미남자가 맞았으나 거칠게 빚어진 골격에 어깨는 두툼하고 이마에는 칼자국이 있는 데다가 삼백안인 그는 위협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좀 떨어져, 이 새끼들아!”
원혁이 소리를 지르며 차의 속도를 높였다. 하지만 그가 빠르게 달리며 엔진 배기음을 낼수록 나무 위에 올라가 있던 괴물들은 차 위로 펄쩍 뛰어내릴 뿐이었다. 혹은 빌딩을 오르다가도 원혁의 차에 관심을 가지고 몸을 날렸다.
원혁은 혼란스러운 도로를 이리저리 곡예 운전 하며 괴물들로부터 도망치려 했으나, 차 천장에 쾅! 하고 괴물 한 마리가 낙하할 때마다 차가 입는 손상이 어마어마했다.
도로가 뻥 뚫려 있으면 시원하게 이것들을 쳐 버리고 영동성당으로 달려갈 텐데 그건 불가능했다. 도망치려는 차와 인파들로 도로가 꽉 막혀 있었으니 말이다. 아무리 기적에 가까운 운전 기술을 가졌다 한들 난리를 맞이한 서울 한복판의 도로 사정은 녹록지 않았다.
그새 또 한 마리가 앞유리에 낙하했다. 와장창! 이번에는 추락의 여파로 백미러가 부서졌다.
“안 되겠다. 차 타고 가다가는 차 파편에 맞아 죽겠어.”
원혁은 사랑하는 젝라렌을 버리기로 결심했다. 그는 대시 보드를 열어 권총 두 자루를 챙기고 그대로 갓길로 차를 대며 속도를 줄였다. 그러고는 차가 채 멈추기 전 잽싸게 내려 도로로 몸을 날렸다.
“윽!”
엄청난 충격이 몸을 덮쳤다. 우당탕 몸이 굴러가며 트렌치코트가 마구 긁히고 찢어졌다.
“으, 아프네.”
원혁이 목을 우두둑 좌우로 꺾으며 일어났다. 충격이 어마어마했으나 몸 걱정은 조금 있다가 할 예정이었다. 그의 애마 젝라렌은 괴물로 완전히 뒤덮여 있었다. 그것들은 목표물이 잽싸게 빠져나갔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차 안팎에 들러붙어 꿈틀꿈틀 기어 다니고 있었다. 원혁은 역겨운 광경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원혁은 경적과 사이렌을 뒤로하고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주변에 누가 있지는 않은지 살핀 다음 정장 안주머니에 손을 넣어 곱게 접힌 종이 한 장을 꺼냈다. 다행히도 긁히거나 찢어지지 않았다.
[대한 가톨릭 교적부-세례자 요한(태유준)]
교적부는 진작 경호원도 잃고, 젝라렌도 잃고, 조만간 돈도 휴지 조각이 될 것 같은 이 상황에서 원혁에게 가장 중요한 물건이었다.
원혁은 증명사진 부분에 눈길을 멈춰 세웠다. 그리고 휘파람을 불었다.
교적부를 받아 들고 대충 확인하긴 했지만 다시 봐도 인상적인 얼굴이었다. 마치 늪에 핀 장미 같다고 원혁은 생각했다. 어두운, 어딘가 음울하게까지 느껴지는 인상이었지만 증명사진으로도 화려한 이목구비는 가리지 못했다. 원혁은 엄지손가락으로 사진 부분을 쓸어내렸다. 사진이 이 정도인데 실물은 과연 어떨까 싶었다.
“태유준. 내가 널 만나러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난 이제 차가 없고, 지금은 버스도 지하철도 탈 수가 없는데.”
그는 혼잣말을 하면서 주변을 둘러봤다. 마침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맛 좋은 호박고구마’ 플래카드를 건 구식 트럭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