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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하라 키워놨더니 집착광공 됐는데-100화 (100/105)

10화

레오나드는 결국 한숨과 함께 펜대를 내려놓았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집중이 안 될 수가 있는지.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채이를 드디어 자신만의 것으로 곁에 둘 수 있다’는 생각에 잔뜩 들떠 있었는데. 현재는 그랬던 자기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질 만큼 기분이 추락한 상태라 업무에도 지장이 오고 있었다. 심란한 마음만큼이나 러트를 앞둔 페로몬도 요동치고 있어 더욱 그러했다.

-조금만 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지켜보는 건 어떻게 생각해?

채이의 목소리가 여전히 귓가에서 맴도는 듯하다. 레오나드는 속상하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허물없이 지내게 된 지도 벌써 수개월이 지났는데, 여전히 자신만 애를 태우고 있는 것 같아서.

하지만 자신이 아집을 부리고 있다는 것도… 사실은 알았다. 어쩌면 자신의 이러한 아집이 채이를 더욱 위험으로 몰고 가는 걸지도 모르지…. 자신이 적을 만들면 만들수록 채이도 함께 타깃이 될 테니까.

레오나드가 아랫입술을 잘근 짓씹으며 이마를 짚었다.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지 그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이라도 달려가 채이를 품에 안고, 제 것으로 만들고 싶은데.

모든 세상이 레오나드를 방해하는 것만 같았다.

솔직히 채이만 제 곁에 있어 준다면 신분도 명예도 다 버리고 떠날 수 있는 레오나드다. 채이가 오메가로 재발현하지 않아도 전혀 상관없었다. 하지만 그건 도리어 채이에게 마음의 짐을 지우게 하는 것 같아, 선뜻 결정할 수 없었다.

분명 채이라면 ‘자신 때문에 레오나드가 본래 가져야 하는 것들을 포기했다’고 생각할 테니까. 그것은 레오나드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자신의 신분과 위치가 채이를 풍족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면 여전히 이용할 가치도 충분히 있고 말이다.

“…….”

문득 레오나드는 고개를 들어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채이를 방에 두고 온 지 1시간 가까이 지난 상태였다. 채이가 정말 얌전히 기다리고 있을지도 의문이었기에 초조해진 레오나드는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

‘가 봐야겠어.’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은 상태라 한들 어쩔 수 있나.

지금의 레오나드에게는 채이가 더 중요했다.

레오나드가 적당히 서류를 정리한 후 복도로 나가자 조용히 대기하고 있던 병사들이 정중하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들을 힐끔 쳐다만 보고 발걸음을 서두른 레오나드는 메인 저택을 나가 오닉스 저택으로 곧장 향했다.

복도는 조용하다.

계단을 올라가니 그곳에는 채이의 방 앞을 지키고 선 병사만이 존재했다. 레오나드가 가까이 다가가자 그를 발견하고 더욱 어깨에 힘을 준 병사가 제 이마에 척, 손날을 붙였다. 인사치레를 무시한 레오나드는 고개를 돌려 문짝이 무사한지부터 살폈다. 방을 떠나기 전, 채이도 조금 화가 났던 것 같아서 문짝이 무사하지 못할 수도 있겠다 생각했는데 의외로 멀쩡하여 오히려 묘한 이질감이 들었다.

“…아무 일도 없었나?”

“예! 얌전히 잘 계시는 거 같습니다.”

레오나드의 물음에 병사는 힘차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이 문을 뜯고 나가면 그쪽은 어떻게 되냐’는 채이의 질문에 ‘살려 달라’ 빌었던 것은 스리슬쩍 없었던 일로 만들었다. 병사를 힐끔 쳐다본 레오나드가 단단히 걸어 잠갔던 것을 풀고 문을 열었다.

“채이?”

그런데 방 안이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숨어 있을 공간도 그다지 없는데 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순간 심장이 쿵 떨어지는 걸 느낀 레오나드가 빠르게 주변을 살폈다. 방 안을 훑는 레오나드의 눈동자가 가늘게 떨리고 있다. 이내, 그는 침대 쪽 창문이 활짝 열려 있는 것을 확인하고 말았다.

“……!”

설마.

레오나드는 성큼성큼 창가 쪽으로 다가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이렇게 높은 위치에서 도망친답시고 떨어진 건 아니겠지. 하지만 확신할 수 없는 일이다. 상대는 다른 이도 아닌 채이였으니까.

불안으로 심장이 크게 뛰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게도 아래에 핏자국이나 떨어진 흔적 같은 건 보이지 않았다.

“채이….”

채이의 이름을 읊는 레오나드의 목소리가 평소답지 않게 흐트러졌다.

대체 어떻게 나간 것일까. 방 안에 없고 문으로 나가지 않았다면 활짝 열린 창문으로 나갔다고밖엔 생각할 수 없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문을 잠가 두지 않았을 터였다. 아니… 아예 창문도 확실하게 막아 두는 편이 더 좋았으려나.

‘어디로 간 거지.’

레오나드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어떻게든 스스로를 진정하려 애썼다. 그나마 오늘은 저택 대문이 허술하게 열려 있지도 않을 것이기에, 하늘로 솟은 게 아닌 이상 그는 이 저택 어딘가에 아직 있을 터였다.

그때였다.

“왜, 왜 그러십니까?”

심상치 않게 흘러나오는 페로몬에 놀란 병사가 방 안쪽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홱 돌아본 레오나드와 눈이 마주친 병사는 “히익!” 기겁하며 놀라 뒤로 나동그라졌다. 페로몬이 주는 위압감 때문인지, 레오나드가 평소보다 더욱 거대하고 두렵게 느껴졌다.

“거기 너.”

“예, 예!”

“로렌스 기사단장에게 가서 전해라. 채이가 어디로 간 건지 찾으라고.”

그에 병사는 비명처럼 대답한 뒤 도망치듯 내달렸다. 무슨 상황인지도 모르고 그저 레오나드가 시킨 것을 이행하기 위해서였다. 병사가 사라지고 얼마 안 있어 거칠어진 페로몬을 진정시키고 있던 레오나드도 조금 괜찮아지자마자 저택을 박차고 나갔다. 이미 기사들이 이곳저곳을 뒤지며 채이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채이가 자주 다니는 산책로 쪽도 찾아.”

“예.”

레오나드의 명령을 받은 근처의 기사가 바쁘게 자리를 옮긴다. 그때까지만 해도 레오나드는 금방 채이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기사들의 움직임이 분주해질수록 마음이 초조해졌다. 어째서인지 채이가 이 근처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자꾸만 샘솟았다.

“공자님!”

그즈음 바깥 분위기가 어수선하자, 채이와 레오나드의 오붓한 시간을 위해 자리를 비워 주고 사라졌었던 에녹이 헐레벌떡 뛰쳐나왔다. 레오나드의 험악한 페로몬이 저택 전체를 뒤덮다시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형제들과 랭커스터 부부도 저택 안에서 조용히 상황을 살피고 있었다.

“무슨 일이세요? 괜찮으신 거죠?”

“…에녹.”

“네.”

에녹이 긴장한 채 대답했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평소보다 흐트러진 모습도 위태로워 보이는데, 허공을 응시하는 눈빛이 누구 하나는 죽일 것처럼 느껴져 등골이 섬뜩했다. 여기서 제어를 잃고 폭주라도 했다간 큰일 날 것임을 알기에 그나마 가까스로 이성을 유지하는 걸로 보였다. 하여 레오나드의 상태를 걱정스럽게 살피고 있을 무렵 그가 한숨을 한번 내쉬고서 입을 열었다.

“약 가져와.”

“네?”

“안정제.”

처음에는 무슨 말인가 싶어 어벙하게 반문했던 에녹이 뒤늦게 그 의미를 알아차렸다. 그러니까 러트 안정제를 달라는 것이었다. 그제야 에녹은 레오나드와 채이 사이에 어떤 문제가 생겼음을 깨달았다. 그렇지 않다면 이날까지 어떻게 기다렸는데, 갑자기 러트 안정제를 가져오라 할 리 없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채이 님이 보이지 않으시네.’

에녹은 더 이상 군말하지 않고 러트 안정제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 레오나드는 망설임 없이 약을 들이켰다.

레오나드도 되도록 이번 러트만큼은 지우고 싶지 않았지만, 채이와 문제가 생긴 이상 이런 상태로 계속 있을 수 없었기에. 채이를 온전한 모습으로 다시 보기 전까지 다른 걸 생각할 여유는 없었다.

안정제를 먹고 조금 있으려니 약효가 나는 듯하다. 스스로를 진정시킨 레오나드는 본격적으로 채이를 찾으러 돌아다녔다. 그러기를 약 한 시간. 채이가 저택 안에 없을 것 같다는 불안은 이내 확신이 되었다. 혹시 어디 건물 안에 들어가 있을지도 몰라 구석구석 다 찾았지만, 어디에서도 채이를 발견했다는 말이 없었기 때문에.

하지만 묘한 일이었다.

당연히 저택 밖으로 나간 이가 있는지에 대한 정보도 확인했지만 입구 근처로는 쥐 새끼 한 마리도 지나다니지 않았다고 들은 까닭이었다. 그와 관련하여 레오나드에게 거짓을 고했을 시 어찌될지는, 누구보다 그들이 가장 잘 알 것이기에… 한낱 힘없는 병사들은 바들바들 떨어 가며 열심히 진실만을 토로했다.

‘대체 어디로 간 거야.’

채이가 저택 어디에도 없다. 대체 왜… 무엇 때문에 모습을 감춘 것일까. 철없이 투정을 부려서? 감히 구속하려 드는 자신의 되바라진 행동에 그만 질려 버린 걸까? 그렇다면 어디로, 어떻게 사라져 버린 것일까.

레오나드는 눈앞이 아찔해졌다.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다가 정신이 번쩍 드는 기분이다. 하필이면 자잘한 다툼 뒤에 그의 행방이 묘연해진 터라 더욱 미칠 것 같았다. 그냥 지금의 모든 게 후회되어 얼른 채이를 만나 무조건 미안하다 매달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채이가 아예 다시는 제 시야 밖으로 떠나지 못하게끔 만들고 싶다는 잔혹한 생각도 들었다.

“채이….”

레오나드가 떨리는 손으로 제 얼굴을 감싸 쥐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정말 미치고 말 것이다. 어떻게든 다시 채이를 찾아야 한다. 이제는 채이를 제 곁에 두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을 것 같았다. 일단 만나면… 잘못했다고 싹싹 비는 편이 좋을까. 아니면 만나자마자 발목만 살짝 분질러 두는 편이 좋을까. 그가 자신을 질린다는 눈으로, 혐오스럽다는 눈으로 쳐다본다 해도 상관없었다. 레오나드가 진지하게 고민을 하고 있을 때였다.

“레오!”

순간 빠르게 회전하던 사고가 멈추었다. 짙은 안개가 머릿속에 잔뜩 끼어 있는 것 같았는데 제 이름을 부르는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한순간에 개는 기분이었다. 멍하니 서 있던 레오나드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저택 곳곳을 뒤져도 행방이 묘연하던 채이가… 바로 그곳에 있었다.

“…….”

레오나드는 홀린 사람처럼 그리로 다가갔다.

그리고 채이에게 손을 뻗으려 할 때였다.

“하자.”

레오나드의 잔인한 속셈을 알 리 없던 채이는 조금 상기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하자. 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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