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7화
“레, 레오.”
그 단단한 것의 정체가 뭔지 알아차린 채이는 얼굴이 터질 만큼 빨개지고 말았다. 별것 안 한 거 같은데, 왜 레오나드의 아랫도리가 이리도 묵직하게 성을 내고 있는 건지 채이로서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조금씩 밀착해 오며 압박하던 레오나드가 기어이 채이를 정면 방향으로 눕힌 후 그 위에 올라타다시피 하며 몸을 뒤집었다. 두 팔로 채이의 머리맡을 지탱한 레오나드는 녹은 초콜릿처럼 나른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저번에 내가 설명했지.”
“응?”
“흥분한 우성 알파의 ‘흥분향’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베타는 오메가가 될 수 있다, 라고.”
“아. 어어.”
채이가 슬쩍 시선을 회피하며 답했다. 그의 러트일이 가깝기 때문일까? 평소보다 훨씬 날것처럼 느껴지는 레오나드의 달콤한 향이 폐부로 가득 들어차자 몸 안쪽이 뜨거워지는 듯하다. 바싹 마르는 입술을 혀로 축이는 동안, 그런 채이의 모습을 빤히 내려다보던 레오나드의 눈매가 살포시 가늘어졌다.
“채이도 그걸 원하는 거 같으니까 오늘은 진득하게 노출시켜 줄게.”
“그….”
“하지만 끌어안고 자는 것만으로는 당연히 안 되겠지?”
채이의 눈동자가 다시금 동요로 흔들렸다. 사실 그동안 ‘남자끼리 응응하는 법’이라든가 ‘남자끼리 할 때 더욱 즐거운 잠자리를 만드는 법’이라든가… 나름대로 책을 통한 공부는 틈틈이 하고 있었다. 그러나 새로운 걸 접할 때마다 커다란 문화 충격과 부끄러움과 수치심이 직격하는 바람에 아직까지도 마음잡기는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그렇다고 채이를 답답하다 탓할 수는 없으리라.
확실한 실물을 아직 실제로 본 건 아니나, 간접적인 접촉으로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게 된 레오나드의 물건은 정말 무식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거대했으니까. 거기다가 베타는 알파를 잘 받아들이게끔 적응한 오메가와 달라서 만약 하게 된다면 굉장히 아프다고 했다. 잘 풀어 줘도 다칠 수 있다는데….
그런 상태로 저 괴물 같은 아랫놈을 어떻게 받아들인단 말인가. 안 된다. 운이 좋아야 찢어지는 거고, 아예 반쪽으로 갈라져 쇼크사로 죽던가 내장 파열로 죽지만 않아도 다행일 터였다.
‘어릴 땐 저렇게까지 크지 않았던 거 같은데.’
크게 동요하는 법이 없던 채이가 눈에 보일 정도로 두려움을 느끼고 있으니 그 크기에 대해서는 더 논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차라리 채이 자신이 레오나드를 안는 일이라면 조금 서툴러도 해 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레오나드가 아예 그쪽의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는 게 문제였다.
“레오….”
부끄러움에 얼굴을 반쯤 가린 채이가 선뜻 거절하진 못하고 머뭇거렸다. 다행히 레오나드는 베타와 오메가의 차이를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으며, 그로 인해 채이가 심하게 아파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다. 보기 드물게 무서워하는 채이를 보면서 레오나드도 억지로 채이와 잠자리를 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어차피 러트가 곧 올 예정이기도 하고… 그날 각인하는 것만 제대로 성공하면, 다음 문제는 그 이후에 생각해도 좋았다.
각인을 하게 되면 그 상대가 베타든 오메가든 좀 더 반려의 자극을 민감하게 받아들이도록 만들어 주고 안쪽은 훨씬 유연하게 풀리기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각인이 보조적인 역할을 해 준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레오나드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이미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함께한 지도 시간이 흐른 만큼 마음에 제법 여유가 있었다. 얼굴을 가리고 있는 채이의 손등에 쪽 입을 맞춘 레오나드가 말했다.
“걱정하지 마. 채이는 만지지 않을게.”
물론 이대로 흥분을 삭인 채 물러날 생각도 없었다.
“대신, 나한테서 눈 돌리지 말고 있어.”
채이가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눈만 껌벅거리며 쳐다보았을 때였다. 머리맡을 짚고 있던 레오나드의 손 하나가 돌연, 애먼 곳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대체 무슨 상황이 벌어지려는 건지 그때까지도 이해하지 못하던 채이는… 곧 제 바지 위를 돌아다니는 손놀림을 보곤 크게 경악했다.
이 발라당 까진 녀석이 지금 채이가 보는 앞에서 본인 걸로 손장난을 치고 있었다.
“어어… 야, 야. 잠깐만….”
눈을 어디에다 두어야 할지 모르겠다. 얼굴이 너무 뜨거워서 눈가가 촉촉해질 지경이다. 채이는 이리저리 눈을 돌리다가 손으로 얼굴을 아예 가려 버렸다. 그래도 레오나드의 사생활이니 이 정도는 흐린 눈으로 못 본 척 지나가 주려고 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레오나드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눈 돌리지 말라고 했잖아.”
아까보다 흥분으로 눅눅해진 목소리가 채이의 귓가에서 맴돈다. 그의 거칠어진 페로몬이 채이를 자극해 오니 심장이 간질거리는 것 같다. 그런데도 채이가 반응하지 않자 레오나드는 채이의 얼굴을 가리고 있는 얄미운 손등 위로 연신 입맞춤을 남겼다.
“나 제대로 봐 줘. 채이.”
“…….”
결국 성화에 못 이긴 채이가 슬쩍 손을 내리자, 레오나드도 기다렸다는 듯 채이의 눈두덩이에 입술을 찍었다. 그러더니 손가락 끝을 물려고 하기에 반사적으로 손을 치워 버렸고, 그 틈을 놓치지 않은 레오나드는 다신 얼굴을 가리지 못하게 채이의 입술을 삼켰다. 달짝지근한 레오나드의 페로몬 때문인지 정신없이 섞이는 단숨조차 달달하게 느껴졌다.
채이는 둘 곳 없이 방황하던 손을 레오나드의 어깨 위로 둘렀다. 연인끼리라면 평소에도 자주 하는 자세였지만 이런 데에 여전히 면역이 없는 채이는 낯부끄러워져서 눈을 다시 질끈 감아야 했다.
만약 입술을 뗀 레오나드가 “눈 떠야지?” 하고 장난스레 재촉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일이 끝날 때까지 눈을 감은 채로 버텼을 거였다. 채이가 조금 원망스럽게 쳐다보자 레오나드의 눈이 반달처럼 휘었다.
하지만 곧 채이를 내려다보던 눈동자에 쾌락이 젖어 든다. 점점 흐릿해지며 가늘어지는 레오나드의 시선이 못내 배덕하고 자극적이었다.
“채이….”
미간을 옴칠하며 구긴 레오나드가 단숨을 뱉었다. 보고 있기만 하는 건데도 등줄기가 찌릿해지는 서늘한 감각과 함께 채이의 아래쪽에도 피가 몰렸다. 레오나드의 얼굴만 보고 있던 채이는 자신도 모르게 슬쩍 눈동자를 데구루루 떨구었다.
채이의 몸 위를 더럽힐 생각은 없는지 바지도 벗지 않고 있었기에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흥분하기 전보다 크기가 더 커진 것처럼 보였다. 그가 현재 입고 있는 옷은 잘 때만 입는 나이트가운이라 헐렁하고 통이 큰 편인데도 그 부피감이 두드러질 정도였으니까.
‘어디까지 커지는 거람?’
이제는 저 안에 든 것의 한계가 궁금해질 지경이다. 시청각적 자료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흥분하는 남성답게 채이는 한번 마주한 것에서 쉬이 눈을 떼지 못했다.
그즈음이었다.
낮게 우는 짐승처럼 나직이 삼키는 레오나드의 신음 소리가 귀를 자극했다. 다시 눈만 데구루루 굴려 그 얼굴을 바라본 채이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을 느꼈다. 아찔한 감각이 찌르르 등골을 타고 오르는 것만 같았다. 어느새 채이도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레오나드의 가는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 이렇게 되다니. 그것도, 한때는 제 손으로 키우다시피 했던 그 꼬맹이이건만. 채이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부끄러움과 약간의 수치심을 느꼈다. 자신이 이리 욕구에 약한 사람일 줄은 이번에 처음 깨달은 일이었다.
잠시 그 상태로 여운을 느끼던 레오나드는 무방비하게 풀어진 얼굴을 들더니 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마치 후희를 즐기듯 콧잔등으로 입술로 내려오며 연신 아기 새처럼 쪽쪽거렸다.
“…한 번 더 씻고 옷 갈아입어야겠다.”
이내 레오나드가 반쯤 풀린 눈을 한 채 떨어졌다. 벗지 않은 상태로 하고 말아서, 지금 굉장히 찝찝할 것이다. 그대로 잘 수는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괜히 저를 신경 쓰느라 그런 것 같아서 미안해진 채이는 슬쩍 일어나 레오나드의 머리를 다시 끌어다가 입을 맞춰 주었다. 고분고분히 눈을 감고 채이의 버드 키스를 받아 준 레오나드는 살짝 들뜬 것처럼 보이는 얼굴로 말했다.
“채이는 괜찮아?”
그러고는 힐끔 채이의 아래쪽을 내려다본다. 그 얄궂은 시선이 의미하는 바를 알아차리자마자 얼굴이 새빨개진 채이는 얼른 다리를 움츠리며 몸을 돌렸다.
“나, 나도 씻어야지. 장난 그만하고 빨리 씻고 와.”
“알았어. 다녀올게.”
…하여간 말은 잘 듣는다니까.
채이는 어딘가 가벼워 보이는 발걸음으로 사라지는 레오나드를 지켜보다가, 완전히 그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즈음에야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러곤 이마를 한 손으로 짚으며 최대한 열기를 식히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를 바라보던 레오나드의 눅눅한 시선이, 절정에 달아 날것의 감정을 드러내던 레오나드의 낯선 얼굴이 자꾸만 머리 한편에 떠올랐다. ‘으아아아아!’ 속으로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른 채이가 제 얼굴을 가렸다. 후끈한 아랫도리의 열기를 진정시키기는커녕 더욱 부채질만 하고 있는 꼴이었다.
‘어떡해. 계속 생각날 것 같은데.’
채이가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신음을 뱉는 레오나드의 입술이 그렇게 예쁜 것이었던가. 저를 담은 파란 눈동자가 그리도 심장을 뛰게 하는 거였던가. 잊을 만하면 불쑥불쑥 머리를 내미는 배덕감을, 완전히 억눌러 버릴 정도로 야한 얼굴이었다. 레오나드의 모든 것이 또 한번 새삼스럽게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그날 밤.
욕실에서 느긋하게 열기를 가라앉히고 나왔던 채이는 약간 어색한 기분으로 레오나드를 만났으나 먼저 씻고 잘 준비를 하고 있던 레오나드는 언제나 그랬듯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채이를 반겨 주었다.
이후 오메가 발현의 증상이 나타났냐고 하면… 아쉽게도 아니다. 채이와 레오나드의 은근한 노력은 계속되었지만 러트일을 하루 남겨 둔 날까지, 채이에게서는 결국 어떤 이변도 일어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