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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하라 키워놨더니 집착광공 됐는데-66화 (66/105)

066화

‘처음 보는 드래곤…!’

이쪽을 내립떠보는 금색 눈에 살기가 번들거린다. 저 붉은색 드래곤은 자신들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해 온 외부자들에게 엄청난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바로 자세를 고친 에녹과 레오나드가 긴장한 얼굴로 드래곤의 동향을 살폈다. 또 저 드래곤이 공격을 하면 타이밍에 맞춰 피하려는 생각이었다.

그때 드래곤의 주둥이가 열렸다.

“어떻게 이곳을 알고 왔지?”

중후한 음성. 드래곤은 실비에트와 레무엘이 그랬던 것처럼 전음을 이용하여 제국어로 말을 하고 있었다. 대화가 통한다는 걸 알아차린 채이가 목소리를 높였다.

“사전에 실비에트와 레무엘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그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 온 거니 오래 머무르진 않을 겁니다.”

“그러니… 나더러 눈감아 달라?”

뭔가 미묘한 반문에 채이가 입을 다물었다. 그러자 붉은색 드래곤이 눈을 가냘프게 접었다. 꼭 기분 나쁘게 웃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건 아마 착각이 아니었으리라.

“내가 왜 그래야 하지? 제 발로 걸어온 진수성찬을 눈앞에 두고 말이야.”

뻔뻔하게 대꾸한 드래곤은 더 이상 내숭 같은 걸 부리지 않았다. 입맛까지 다시며 노골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드러냈다. 문득 ‘드래곤은 잡식’이라던 말이 떠올랐다. 인간도 먹는다는 소리였다.

“젠장.”

레오나드가 나직이 욕을 뱉었다. 채이도 짧게 침음했다. 어떻게 해야 이 불필요한 싸움을 무마할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하고 있던 와중, 채이는 등 뒤로 다가오는 낯선 인기척을 감지했다.

“아저씨. 죽고 싶으세요?”

끼어드는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뒤쪽으로 쏠렸다. 그곳에는 삐딱하게 선 채 냉소적인 눈으로 붉은색 드래곤을 노려보는 청년이 있었다.

‘누구지?’

아름다운 은발과 세로 동공을 가진 금색 눈동자.

이곳에 인간이 더 있을 린 없으니 어느 드래곤이 폴리모프한 모습이겠으나 그걸 감안해 봐도 분명 낯선 얼굴이었다. 애초에 인간의 모습으로 폴리모프한 드래곤은 레무엘 말고 본 적이 없으니까. 하지만 채이는 어딘지 모르게 그 청년에게서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어쩐지 저 청년에게서, 레무엘이 플리모프한 모습이 비치는 것도 같았다.

‘혹시.’

물론 은발과 금안은 백색 드래곤들이 폴리모프한 모습의 특징인 것 같았기에 확신할 수 없지만…. 채이가 조심스럽게 그 이름을 입에 담아보았다.

“실비?”

그러자 채이와 시선을 맞춘 청년이 언제 뚱해 있었냐는 듯 씩 웃어 보이더니 냅다 달려와서 채이를 끌어안았다.

“채이! 보고 싶었어!”

생각한 대로 정말 실비에트가 폴리모프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폴리모프를 할 수 있게 되고 그사이 정신 연령도 많이 자란 듯하지만, 그럼에도 실비에트는 채이가 알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아! 뭘 봐요?! 그냥 손님이고 먹을 거 아니니 빨리 꺼지라고요! 감히 누구를 건드리려고… 진짜 죽어서 가죽 남긴 드래곤의 일화로 기억되고 싶어요?!”

…성격은 좀 거칠어졌을지도.

실비에트가 버럭 화를 내니 근처에서 맴돌던 붉은색 드래곤도 빼액 소리쳤다.

“더러워서 안 먹는다! 거참.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성깔하곤. 하여간 레무엘의 자식 아니랄까 봐서 꼭 닮았다니까.”

“아빠가 근처까지 와 있는데.”

“…….”

눈을 이리저리 굴리던 붉은색 드래곤이 아차 싶었는지 얼른 선회하여 돌아가 버렸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실비에트의 아버지를 무서워하는 느낌이었다.

어쨌든 실비에트 덕분에 큰 문제 없이 상황을 무마할 수 있었다.

고맙다고 말하자 그런 채이가 마냥 좋은지 실비에트는 채이를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았다. 레오나드의 불편한 시선이 느껴졌지만 당장의 기쁨을 만끽하고 싶은 실비에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채이! 왜 이제 온 거야. 너무 보고 싶었단 말이야. 그간 잘 지냈어? 나 안 보고 싶었어? 이후로 별일은 없었고?”

두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파도처럼 질문을 쏟아내자 채이가 진정하라는 의미로 실비에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보고 싶었고 별일 없었고 잘 지냈어. 이제 폴리모프도 할 줄 알고, 장하네. 근데 우리가 온 줄 알았던 거야?”

“응. 여기는 외부자가 거의 드나들지 않으니까 평소에 없던 냄새가 나면 바로 느껴지거든.”

“그랬구나.”

“히. 채이가 쓰다듬어 주는 거 좋아. 더 많이 쓰다듬어 줘.”

얌전히 쓰다듬 받는 모습은 아직 애다. 고릉고릉거리는 새끼 고양이 같았다. 많이 컸다지만, 채이에게는 아직 아기처럼 굴고 싶은 실비에트였다.

하지만 인내심의 한계에 달한 레오나드가 치근덕거리는 실비에트를 강제로 끌어냈다. 채이의 품에 쏙 안기는 크기였던 당시에도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실비에트가 폴리모프까지 할 수 있게 된 지금은 더욱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치 않게 채이와 떨어져 버린 실비에트가 레오나드를 흘겨볼 때였다. 저만치서 폴리모프한 모습으로 걸어오는 두 명의 드래곤이 실비에트의 이름을 불렀다.

“실비.”

한 명은 눈에 익은 레무엘이었고 다른 한 명은 실비에트의 친아비인 것 같은데… 흑발에 금색 눈동자를 가진 모습이었다. 백룡이 아니라서인지 다른 이유에서인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오랜만이구나.”

레무엘이 채이 쪽을 보면서 슬쩍 웃었다. 레무엘의 알은체에 채이도 가벼이 고갤 까닥여 그녀의 인사를 받았다. 곧 지켜보고 있던 실비에트의 아버지가 다정한 얼굴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당신이 ‘채이’군요. 평소 아들을 통해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제 이름은 라무드라고 합니다. 일전엔, 우리 실비를 구해주셔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그러면서 고개 숙여 감사를 전한다. 인간 앞에서도 굉장히 예의 바르고 상냥한 사람… 아니 드래곤이었다. 그런데 왜 아까 그 이름 모를 붉은색 드래곤은 이런 상냥한 드래곤을 무서워했던 것일까?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채이가 그런 의문을 품을 즈음 라무드가 제 가족들과 한차례 시선을 교환하곤 채이와 일행들에게서 거리를 두고 섰다.

“우선, 저희들의 집으로 함께 가시지요.”

실비에트와 레무엘도 마찬가지로 거리를 두고 섰다. 그에 대한 이유는 금방 알 수 있었다.

“레어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하늘을 날아야 하기 때문에… 잠시 폴리모프를 풀도록 하겠습니다. 조심스럽게 옮겨 드릴 테니까 무서워하지 마세요.”

잠시 후 라무드를 시작으로 실비에트와 레무엘도 모두 폴리모프를 풀고 본연의 모습을 드러냈다.

펄럭.

옷을 찢고서 부풀어 오른 날개가 하늘로 활짝 펼쳐진다. 어마어마한 신축성을 가진 특수한 옷인지 나머지 부분은 적절하게 변형되어 그들의 몸을 감쌌다. 그에 조금 더 호기심을 가지기도 전에 채이는 레오나드의 도움을 받아 몸을 낮추어야 했다. 작은 날갯짓만으로도 풍압이 엄청난 탓이었다.

레오나드가 채이와 에녹을 잡아주어서 망정이지 잘못하면 데굴데굴 굴렀을 터. 처음, 그들이 폴리모프한 채로 찾아온 이유는 나약한 인간들에 대한 나름의 배려였던 모양이다.

‘와….’

채이는 보기만 해도 위압감이 느껴지는 드래곤들의 모습에 작게 감탄했다.

가까이서 보니 정말 크다.

특히 라무드.

레무엘, 실비에트가 눈처럼 새하얀 것과 다르게 라무드는 칠흑처럼 새까만 몸체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크기는 레무엘과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컸다.

수컷과 암컷의 차이도 있겠으나 아까 전 채이와 일행들을 공격했던 수컷 레드 드래곤과 비교해도 훨씬 거대했다. 채이의 생각을 알아차린 듯 실비에트가 제 아버지인 라무드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발성이 아닌 전음으로 말이 흘러나왔다.

“나랑 엄마는 화이트종이고 아빠는 블랙종이야. 엄청 크지? 원래 블랙들이 드래곤들 중에서 몸집이 제일 크거든. 힘도 제일 세고. 그래서 블랙은 드래곤들 중 최강의 종이라고도 불려.”

“아. 그래서….”

아까 그 붉은색 드래곤이 무서워하며 도망간 거였구나. 채이가 납득하고 있는데 돌연 고개를 숙여 채이를 바라본 실비에트가 눈을 반달로 접더니 못 참겠다는 듯 주둥이를 들이댔다.

“채이 너무 조그매! 귀여워.”

“네가 너무 커버린 거지.”

“나 많이 컸어?”

“그럼. 아주 많이 늠름해졌어.”

콧김이 간지러워 웃은 채이가 실비에트의 긴 주둥이를 문질문질 쓰다듬었다. 이내, 실비에트가 채이를 포함한 세 사람을 품에 끌어안아 단단히 잡았다.

“다들 안 떨어지게 조심해.”

이쪽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라무드와 레무엘이 먼저 하늘로 날아올랐다. 날갯짓을 할 때마다 폭풍 같은 바람이 불어닥치며 바닥을 긁었다. 제 부모의 뒤를 따라 실비에트도 하늘로 힘껏 날아올랐다. 비행기가 막 이륙했을 때처럼 내장 기관이 붕 뜨는 듯하다가 잠시 후 안정감을 되찾았다.

“절벽 아랜 보이지도 않네요….”

“떨어지면 즉사겠군.”

“너만큼 튼튼해도 그러려나?”

“응. 나도 결국 인간인걸.”

“두… 두 분. 무서운 소리는 하지 말아주세요…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해주세요!”

채이와 레오나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눈치였으나 에녹은 그들의 살벌한 대화 내용에 지레 겁을 먹고 실비에트의 팔을 꼬옥 붙들었다. 그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본의 아니게 겁을 준 것 같아서 미안한 채이가 싱겁게 웃었다.

“미안. 실비가 잘 잡아주고 있으니까, 그럴 일은 없을 거야. 걱정하지 마.”

그렇게 채이와 일행들은 ‘드래곤의 품에 안겨 하늘을 나는’ 신기한 체험을 하면서 그들의 레어 입구로 무사히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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