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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하라 키워놨더니 집착광공 됐는데-61화 (61/105)

061화

레오나드의 날 선 눈이 똑바로 채이를 노려본다.

그리고….

현실적인 문제를 논의해 보려고 한 건데 왜 이렇게까지 화를 내나, 이해하지 못한 채이는 그의 발언을 듣고 말문이 막혔다. 베타인데 오메가가 어떻게 되나? 그런 의문이 머릿속에 동동 떠다니고 있을 때였다.

“아. 잠깐…, 뭐야?”

돌연 레오나드가 채이를 끌고 테라스를 빠져나갔다. 그대로 자신을 어디론가 묵묵히 데리고 가기에 당황했으나 일단 채이는 잠자코 뒤따라갔다. 살롱을 나간 레오나드는 복도를 지나 계단을 올라갔고 비어 있는 침실에 들어가 채이를 밀어 넣었다. 거기에 문을 등지고 서더니 아예 잠금장치까지 걸어버리는 것이다.

탁.

문이 잠기는 소리가 조용히 들려온다.

곧 어둠 속에서 레오나드가 고개를 들었다. 푸른 눈이 유독 빛나는 듯했다.

“레오. 왜 그러는데?”

왠지 모를 긴장감을 느낀 채이가 마른침을 삼킬 때였다. 레오나드의 웃옷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처음에는 갑자기 더워서 그러는가 싶었지만 전혀 아니었다.

“헉! 야! 뭣, 뭐 하는 거야!”

깜짝 놀란 채이는 홍당무가 되어 벽에 바짝 붙어버렸다. 레오나드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가와 채이를 두 팔 사이에 가두었다. 달콤한 레오나드의 향이 방 안 가득 차오르니 머리가 뱅글뱅글 도는 것만 같다. 채이가 옆으로 몸을 돌리고 있자 레오나드의 달뜬 숨결이 귓가로 내려앉았다.

“채이. 그거 알아?”

“뭘….”

“흥분한 우성 알파는 흥분향이라는 걸 만드는데 거기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베타는 열성 오메가가 되기도 해.”

“…어?”

그런 방법이 있었다고?

크게 당황한 채이가 샐쭉 입꼬리를 올렸다. ‘흥분한’이라는 조건을 상기하자마자 곧 터져나갈 것처럼 심장이 뛰고 얼굴이 뜨거워졌다.

“가벼운 스킨십으로도 충분히 시도할 수 있는 일이지. 물론 쉽게 바뀌는 사람도 있고, 죽어도 안 바뀌는 사람도 있어서 시도해봐야 아는 일이지만….”

채이가 슬쩍 돌아보았다. 상념에 잠긴 듯 눈을 내리뜨고 있던 레오나드의 입술이 이내 삐딱한 호선을 그렸다.

“나는 포기할 생각이 없거든.”

그리고는 눈이 마주쳤다. 평소처럼 다정한 빛을 띤 시선이었음에도 어째 섬뜩한 기분이 드는 탓에 영문 모를 불안을 느낀 채이였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 채이. 오메가가 안 돼도 될 때까지 시도해 줄 테니까.”

그 불안은 곧 경악이 되었다.

“뭘, 뭘 해… 미쳤… 기다려, 인마!”

더듬더듬 올라오는 손을 탁 낚아챈 채이가 기겁을 했다. 이제 보니 이놈, 눈이 반쯤 맛 가 있는 상태였다. 꼭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있는 것처럼. 정체 모를 섬뜩함의 원인은 바로 이거였다.

“지금부터 안을 거야.”

레오나드가 채이의 옷깃을 슬쩍 들추며 말했다.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채이의 행동으로부터 오는 초조함과 불안에서 기인한 폭탄 발언이었다. 그리고 안겠다는 말의 뜻을 알아챈 채이는 그가 될 때까지 시도하겠다느니, 뭐니 할 때보다 더 경악했다. 그의 성급한 행동은 채이에게 있어선 쉬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연애에는 본디 순서라는 것이 있거늘….

손잡기&뽀뽀를 건너뛰고 거사부터 치르는 걸 용납할 수 없는 전 대한민국 유교인 남성의 알맹이가 외쳤다.

“야! 뭔… 발라당 까져서는! 아직 제대로 시작도 안 했는데 갑자기 그것부터 하자니 말이 되는 소리라고 생각해?”

사실 마음을 깨닫기도 전부터 술 먹고 첫 키스를 해버린 사람이 할 말은 아닌 듯했으나, 어쨌든 채이의 생각은 그러했다.

“천천히… 천천히 가자. 응?”

채이의 설득에 잠시 움직임을 멈춘 레오나드가 상념에 잠겨 침묵했다. 설득이 통했나 싶을 즈음…. 레오나드는 다시금 눈을 들어 채이와 또렷이 마주했다.

“말이 안 될 건 또 뭐 있는데? 그리고 난 원래 되바라진 놈이었어.”

설득이 통하기는 무슨.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어쩌지?’

음. 아직 나는 마음의 준비가….

채이가 빠르게 머리를 굴려 말을 고르는 동안 레오나드는 기어이, 채이가 걸친 웃옷을 없애려고 하고 있었다.

‘헉.’

위기에 직면한 순간이었다.

“…씁! 거기까지!”

그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채이가 비장의 수단을 꺼내 들었다. 아무리 그가 튼튼한 우성 알파라고 해도 제 소중이를 냅다 까였는데 멀쩡할 수는 없으리라. 그러니까 ‘비장의 수단’이라 함은 같은 남자로서 절대로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겠다는 것이다!

턱!

다리를 당겼다가 발로 가운데를 밀어내듯 치자 물컹한 무언가가 닿았다. 순간 채이는 그 크기를 가늠하고 흠칫했지만 애써 그 부분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윽….”

벽을 짚고 있던 레오나드의 손이 주르륵 미끄러졌다. 예상했던 대로 알 깨기의 효과는 굉장했다. 레오나드를 쓰러트린 채이는 흐트러진 옷부터 추스르고 빠르게 말을 이었다.

“미안! 근데 네가 내 얘기는 듣지도 않고 성급하게 굴잖아. 이런 건 서로 합의하에 해야 하는 거야. 알겠니? 그니까 그, 거시기하는 건 나한테도 생각할 시간을 줘.”

한차례 채이를 무서운 눈으로 노려본 레오나드도 결국 시든 꽃처럼 눈꼬리를 늘어트렸다.

“…나랑 하는 게 그렇게 싫어?”

다행히 알 깨기를 맞고 제정신은 차린 듯한데 너무 과격한 거부였던 나머지 그에 대한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었다. 일부러 조금 빗나가게끔 치긴 했지만 레오나드의 소중한 부위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았을지 잠깐 걱정이 됐다.

그래도 생각한 것보다 크게 아파하진 않고 있으니… 괜찮으리라. 실제로 레오나드는 맞아서 아픈 것보다는 정신적인 충격을 더 받았다. 물론, 자신이 울컥하여 밀어붙이려 했던 게 잘못이란 걸 알지만 말이다.

“채이도 나랑 같은 마음이라며.”

“그래, 너 좋아해. 그건 진짜야.”

“그럼?”

“천천히 하자는 거지… 아무래도 나는 네가 처음이고… 남자끼리 그 거시기한 걸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니까.”

솔직히 말하면 미지의 영역에 대한 두려움이 좀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채이는 인생을 거의 일에만 할애하고 사랑은 뒷전이던 모태 솔로에 준비된 플라토닉 지향파였다. 물론 채이 본인도 욕망에 충실한 남자이긴 한지라 그 너머의 영역에 관심이 있고 또 그걸 원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지금은… 초기니까.

풋풋한 연애도 해보면서, 자신이 모르고 있던 레오나드의 이면을 천천히 알아가는 그런 과정을 거치고 싶었다.

“나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해.”

채이가 진솔한 속내를 꺼내자 레오나드도 뾰족해져 있던 눈을 누그러트렸다. 그리고는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것 같더니 이내 납득한 눈치로 고개를 들었다. 자신을 처음이라고 말해 주어서 상당히 누그러진 점도 없잖아 있었다.

“내가 얼마나 기다리면 될까?”

“음.”

채이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고민하자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던 레오나드가 먼저 제안했다.

“그럼 내 러트가 오기 전까지 마음의 준비를 해 봐. 어차피 러트 오면, 그때 각인도 같이 할 셈이었으니까. 앞으로 한 육 개월 정도 남았나.”

“…응? 각인?”

각인이라 하면 언젠가 책에서 본 적이 있다.

분명 ‘러트가 온 알파’가 원하는 상대와 몸을 합일시키는 순간 상대에게 자신의 것이라는 표시를 남기는 거라고 했던가. 발현자들 사이에선 흔히 있는 일이라 혼약 관계이거나 결혼한 상대에게는 대부분 각인을 남긴다고 했다.

그 사실을 떠올린 채이가 화들짝 놀랐다.

“잠시만. 만약 그전까지 내 형질이 오메가로 바뀌지 않으면 어떡하려고 그러는….”

하지만 채이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입을 다물어야 했다. 눈을 치켜뜬 채 노려보는 레오나드의 눈매가 여간 날카로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이상 그의 신경을 건드렸다간 알 깨기로 진정시킨 게 무용지물이 되어버릴지도 몰랐다.

“나는 채이가 마지막까지 오메가로 발현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반드시 각인할 거야.”

“알겠으니 일단… 옷부터 입자.”

결국 각인 문제는 넘어가기로 한 채이가 널브러진 레오나드의 옷을 주워 다시 입혀 주었다. 맨살이 조금도 안 보이게 마지막 단추까지 꼭꼭 채워서.

뭐. 6개월이면 꽤 여유로우니까.

각인과 관련된 문제는 그때 재고해도 늦지 않을 터였다. 그리고 각인은 영구적인 형태가 아니라는 점도 컸다. 알파 쪽에서만 각인을 새기고 푸는 게 가능하다는 까다로운 제약이 있다고 하지만…. 어쨌든 언제가 됐든 자의로 해제하는 게 가능하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됐다.”

레오나드의 옷을 모두 입혀 준 채이가 먼지를 털어줄 때였다. 썩 아쉬운 눈치로 가만히 채이를 바라보던 레오나드가 그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에 채이가 고개를 들자 레오나드는 자연스럽게 내려와 채이의 입술 위에도 쪽, 도장을 찍었다. 이제는 거리낄 게 전혀 없다는 듯 당당한 행동이었다.

“…이거 안 익숙해질 것 같다.”

겨우 식었던 채이의 얼굴이 다시 달아올랐다. 이런 스킨십으로도 새빨개지는 반응이 새삼 귀엽다고 느낀 레오나드의 입꼬리가 부드럽게 호선을 그렸다. 당분간은 이런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한 레오나드가 손을 내밀었다.

“돌아가자.”

채이도 내밀어진 그의 손을 흔쾌히 맞잡았다.

“레오… 아까는 미안. 괜찮아?”

“괜찮을 것 같아. 채이가 먼저 키스해주면.”

“…해볼게.”

두 사람은 일찍이 저택을 빠져나가는 동안 꼬옥 깍지 껴 맞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그 달콤한 모습을 바람을 쐬려고 나왔던 에일런이 우연히 보고 말았지만 레오나드와 채이가 그 사실을 알아채는 일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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