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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하라 키워놨더니 집착광공 됐는데-24화 (24/105)

024화

그리 묻는 망나니의 시선은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흡사… 먹잇감을 물어뜯기 전 약점을 찾는 하이에나와도 같았다. 페로몬을 흩뿌린 것도 아닌데 말이다. 마냥 망나니 같아 보여도, 그는 카리스마를 가진 통솔자의 재목이었다.

웬만한 인간들은 지레 겁을 먹고 눈을 피했으리라.

하지만 채이는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리 볼 테면 보란 듯 뻔뻔하게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것은 사내를 도발하기에 충분한 포인트였다. 사실 채이는 “넌 뭐냐”는 질문에 뭐라고 답해야 하나 생각 중이었을 뿐이고 도발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으나 여하튼 상황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사내가 부리부리 눈을 뜨고 채이 쪽으로 다가갔다.

반면 채이는 자신에게로 다가오는 망나니를 피하지도 겁을 먹지도 않았다. 그저….

‘뭐지… 그냥 시비 건 거였나. 그나저나 얘 눈매 진짜 사납다. 생기긴 예쁘게 생겼는데.’

좀 더 뚜렷해지는 사내의 얼굴을 바라보며 감상을 늘어놓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고 있을 즈음 사내도 자신과 키가 비슷하거나 약간 작은, 눈앞의 건방진 존재를 빤히 응시하며 가늠하고 있었다.

‘귀족인가?’

옷의 원단이 어떤가만 봐도 이놈이 평범한 평민은 아니리라 생각되었다. 하지만 어딘가 이상했다.

‘페로몬이 전혀 안 느껴지는데.’

조금도 새어나가지 않게 잘 감추고 있기 때문인가. 아니면 베타 귀족이기 때문인가. 많이 양보해서 이놈이 우성 형질 귀족보다 더 귀한 베타 귀족이라고 쳐도 뭔가 이상했다.

‘날 못 알아보는 귀족이라니.’

알았다면 지금 저렇게 멀뚱히 쳐다만 보고 있진 않았을 거다. 절대로. 사내는 그리 확신했다. 당연했다. 그는 제국의 명망 높은 루드비스 왕조의 직계 자손이며 우성 형질과 이레귤러 이능향을 지니고 있는 오메가이자… 루드비레 대공국 군주와 아스타리우스 제국 황제직을 겸하고 있는 루드비스 3세의, 하나뿐인 귀한 자식이었으니까.

페르난데 디 루드비스 제1 왕자.

최소한 그 이름과 생김새 정도는 아스타리우스 제국의 수준 높은 귀족이라면, 당연히 배워 두어야만 하는 교양 상식이었다. 물론 상대가 귀족일 때의 이야기다. 자기들 먹고 사는 일이 가장 중요한 평민들에겐 해당하지 않는 사항이었다.

‘설마 싶지만….’

페르난데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제는 열받았던 것도 가라앉아서 눈앞의 존재에게 순수한 흥미가 일었다.

‘한번 떠볼까.’

이 자의 정체는 먼저 페로몬으로 위협해보면 어련히 탄로가 날 것이었다. 알파, 오메가라는 족속들은 위협적인 페로몬을 감지하면 본능적으로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페로몬을 방출하여 맞받아치고는 하니까.

흥미롭게 눈을 내리뜬 페르난데의 입꼬리가 씰룩 솟을 때였다.

일순 순풍이 일 정도로 강력하게 방출된 그의 페로몬이 짙게 내리깔렸다. 얼핏 오이 비누를 떠올리게 하는 은은한 향에 사이다처럼 청량한 향이 섞인 페로몬이었다. 하지만 산뜻함을 주는 향과 달리 거기서 느껴지는 위압감은 사뭇 남달랐기에 사람들은 기분이 좋고 나쁨을 느낄 새도 없었다.

“…….”

머리를 돌로 짓누르는 듯한 위압감에 가벼운 마음으로 구경하던 사람들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마치 그래야 하는 것처럼 하나둘 무릎을 꿇거나 바닥에 납작이 엎드렸다. 그러지 않고 있는 건 같은 우성 오메가인 에녹과 그를 눈앞에 두고 있는 채이뿐이었다.

지독한 침묵이 내려앉은 가운데.

에녹이 여차하면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 작정으로 숨죽인 채 지켜보고, 심상치 않은 상황을 눈치챈 로렌스도 허리춤에 걸어둔 미니 새장을 다급히 열었다. 그 안에서 검은 몸에 세 개의 붉은 눈을 가진 6등급 마물 비비눈이가 퍼드득 날갯짓하며 빠져나와 로렌스의 팔에 올라탔다.

[끼루루.]

이럴 때를 대비해서 데리고 나온 연락용 마물이다. 비비눈이는 일반적인 조류보다 훨씬 똑똑하고 튼튼해서 우성 알파가 있는 귀족 가문에선 흔히 길들이는 마물이기도 했다.

“코드 A1. 주인에게 알려라.”

[꾸룩.]

로렌스가 팔을 들어 올리자 코드를 이해한 비비눈이가 힘차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블렌츠 광장은 랭커스터 저택과도 가까운 곳이니 전보는 금방 레오나드에게 도달할 터였다.

‘레오나드 공자님이 오실진 모르겠지만…. 그사이에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로렌스는 떠나간 비비눈이를 뒤로 하고 서로 당면하고 있는 두 사람을 다시 돌아보았다. 에녹과 로렌스는 행여 페르난데를 어설프게 자극했다가 채이가 다치기라도 할까 봐 무작정 움직이지도 못하고 긴장해 있는 상태였다.

하지만 정작 모든 걱정의 대상이 되고 있는 채이는….

‘얘 지금 나 위협하는 건가?’

그 대단하신 인물을 눈앞에 두고도 무덤덤하게 생각하고 있을 뿐이었다.

‘재수 없네.’

그가 이 제국 황제의 아들이라는 걸 알았다면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었을지도 모르나… 그마저도 관심이 없어 몰라본 채이에게 페르난데는 그냥 성격 급하고 눈매 더럽고 말본새 안 좋은 왕재수일 뿐이었다. 이 눈앞의 사내에 대한 첫인상을 확고하게 정립한 채이가 허리에 턱 손을 올렸다.

“불만이 있으면 말로 해.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왜 아무렇게나 페로몬을 흘려? 그건 어디서 배워 먹은 막된 짓이야?”

“…뭐?”

“귀족이 그래서야 되겠어?”

페르난데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제 아버지인 제국 황제에게도 잔소리 같은 건 들어본 역사가 없건만. 하물며 채이에게선 일말의 공포도 느낄 수 없다. 도리어 페르난데가 알 수 없는 두려움을 느끼고는 정신이 혼미해졌다.

‘뭐야… 이 녀석은. 아무리 그래도 우성 형질 페로몬인데, 너무 멀쩡하잖아. 이런 놈은 처음인데. 나랑 같은 이능향을 가지고 있는 건가?’

이능향은 마물 조종과 정신 조작을 할 수 있는 레귤러 타입과 이외의 변칙적인 이레귤러 타입으로 나뉜다. 그리고 페르난데가 가진 이능향은 이레귤러 타입으로 페로몬을 두르게 되면 ‘타인의 페로몬이 주는 영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힘’이었다. 하여 그는 우성 알파의 페로몬이 주는 위압감에서도 멀쩡할 수 있으며 타인의 이능향이 가진 힘으로부터도 안전했다.

하지만 이레귤러 이능향은 유전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채이가 페르난데와 같은 이능향을 가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 실제로 채이는 그런 힘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 자식은 대체 뭐지.’

페르난데가 오만상을 찡그렸다.

“너 정체가 뭐야.”

아까와 비슷한 질문에 채이 또한 황당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의기양양하게 다가올 때만 해도 이제 곧 멱살잡이할 것처럼 굴더니만, 결국 또다시 도돌이표였다. 뭐 하자는 거지? 하지만 채이는 이 왕재수가 대화로 해결해볼 생각이 들었나 보다! 하고 금방 긍정 회로를 돌렸다.

“이름은 채이라고 한다. 나이는 올해로 서른다섯이고….”

“아니! 너 뭐냐고. 우성 알파야?”

페르난데가 답답하다는 듯 빽 소리를 쳤다.

참나. 정체가 뭐냐 물어서 기껏 말해주고 있었는데, 왜 짜증이람?

“그냥 베타야.”

“…뭐?”

“베타라고. 베타.”

“…하?”

입을 떡 벌린 페르난데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가능했다. 정신력이 특별하게 강하거나 유독 둔한 정신머리를 가진 자에게는 페로몬이 주는 위협이 잘 통하지 않으니까.

일반적인 마물들과 달리 고등 이종족으로 분류되는 엘프와 드워프, 드래곤에겐 우성 형질 발현자의 위협이 잘 먹히지 않는 것 또한 같은 이치였다. 반대로 유독 심약한 심장을 가진 우성 형질 발현자와 고등 이종족도 존재하니 저마다 경우가 다르다고 보는 게 맞으리라.

하지만 페르난데는 그 가능성을 부정했다.

이 눈앞의 괘씸한 사내가 자신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게 더 신빙성 있다는 쪽으로 생각했다.

“거짓말하지 마! 너….”

페르난데가 거칠게 손을 뻗었다. 숨죽여 지켜보고 있던 에녹과 로렌스가 그런 페르난데의 돌발 행동에 깜짝 놀라며, 끼어들기 위해 한 발 내딛던 찰나였다.

“아악!”

누군가가 아주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렀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뜬 채 소리만 엿듣고 있던 사람들이 놀라서 헛숨을 들이켰다. 그들은 필시 채이가 크게 다쳤으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웬걸.

그 비명은 페르난데의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섣부른 판단으로 채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가 그대로 잡혀서 역방향으로 꺾인 것이다. 이른바 손목 회전 꺾기다.

“악! 아파! 아프다고!”

고래고래 소리치니 채이가 손을 놓아주었다. 페르난데는 처량한 모습으로 쓰러져 자기 손목을 붙잡았다. 팽팽해진 긴장감이 풀리고, 지켜보던 사람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넋을 놓았다. 설마 베타가 우성 발현자의 위협을 견딘 것도 모자라서 손까지 예쁘게 꺾어줄 거라고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너 이… 미친….”

“그러게 왜 갑자기 손을 써?”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몸에 밴 습관이 나와버렸잖아. 눈물까지 찔끔 흘리며 아파하고 있는 페르난데의 모습에 채이가 내심 미안함을 삼켰다.

“너 솔직히 말해. 베타 아니지!”

“베타 맞다니까.”

페르난데가 표독한 시선으로 채이를 노려보았다.

그러나 기가 죽어서 옴츠러든 입매와 울어서 붉어진 눈망울을 하고 있어서는, 하나도 무섭지 않다. 온갖 허세란 허세는 다 부리더니만… 이 녀석도 결국 철이 덜 들었을 뿐인 꼬맹이였다.

그를 머리 위에서 내려다보던 채이가 가벼이 웃었다.

“나쁜 짓 해서 벌 받은 거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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