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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하라 키워놨더니 집착광공 됐는데-11화 (11/105)

011화

어느 외곽 지역의 으슥한 골목.

빠악!

살벌하고 둔탁한 소음이 울려 퍼졌다. 고통으로 꺽꺽대는 숨소리도 섞여 들렸지만 인적이 드물어 엿보는 이는 없었다. 이 근처에 그나마 존재하는 것이 노예 거래만을 취급하는 불법 길드 ‘오소리’뿐이라 더욱 그랬다. 그리고 지금 쥐어 터져 피를 흘리고 있는 사내가 바로 그 불법 길드의 길드장이었다.

“윽, 제, 제발 살려만 주십쇼! 뭐든 하라는 대로 할 테니!”

오소리 길드장은 손을 싹싹 빌며 공포에 질린 얼굴로 눈앞의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딱 보기에도 건장한 체구의 사내는 기사를 상징하는 은빛 갑옷을 차려입고 있다. 최소한 그가 컴베스트 내에서 작위를 가지고 있는 귀족의 충실한 일원이란 사실은 눈가늠으로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저 녀석이 바로 이 기사 놈의 주인일 거야….’

길드장은 흘깃 눈을 굴려 사내의 등 뒤를 살폈다. 그곳에는 망토에 달린 후드를 깊이 눌러쓰고 있어서 얼굴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우두커니 서 있었다. 목소리도 듣지 못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 수 없으나, 190cm에 가까운 눈앞의 기사와 비슷할 정도로 키가 컸기에 남자라고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었다.

‘젠장…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어쩌다가 귀족 놈들한테 밉보였냔 말이야.’

지금까지 눈에 띄지 않도록 회원들의 정체를 익명으로 유지하고 활동은 분산시켰으며 덜미 잡히지 않게끔 잘 숨어 다녔는데…. 어디서 유출된 건지 위치가 발각된 길드는 이제 해체되기 일보 직전이고 길드장인 그는 감옥에 들어가거나 죽게 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귀족 놈들은 심기를 건드리지만 않으면 이런 가당찮은 일 거들떠보지도 않는 족속들인데!’

그렇게 길드장이 내심 울분을 토하고 있을 때였다.

“알고 싶은 길드원의 정보가 있다. 만일 네 녀석이 만족할 만한 정보를 알려준다면 목숨은 살려 주겠다.”

은빛 갑옷의 기사가 검집 끝으로 길드장의 어깨를 꾸욱 짚으며 말했다. 어두운 골목 그늘 속에서 내려다보는 담녹색 눈동자가 형형한 빛을 띠고 있었다. 길드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 어떤 회원의 정보를….”

그에 대한 대답은 별안간 기사의 뒤쪽에서 들려왔다. 지금까지 상황을 방관한 채 지켜보고 있던 자였다.

“채이.”

“채이… 아!”

길드장은 반색했다. 채이는 오소리 길드가 처음 생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가입했던 원년 멤버 중 한 명이었다. 그만큼 초반에는 활발한 행동을 보여주기도 했기 때문에 기억하고 있었다.

“채이라는 익명 코드로 활동했던 회원은 분명 있었습니다! 몇 년 전부터는 갑자기 활동이 뚝 끊겨버렸지만요… 아마 손을 뗀 거겠죠.”

“익명 코드?”

“예. 오소리는 익명으로 활동하는 길드라서. 그, 그리고 미리 말해두겠습니다만 그 녀석 본명은 저도 모릅니다… 어릴 적에 내다 버려진 고아란 것만 알아요.”

후드를 뒤집어쓴 사내가 잠시 침묵에 잠겼다. 순간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흘러나온 사내의 페로몬이 길드장의 숨통을 옥죄었다.

‘화, 화났나 본데….’

길드장은 그만 새파랗게 질려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나 되짚어야 했다.

“그것뿐인가?”

“아! 그,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랑가로 내려갔다가 한 번 마주쳤습니다!”

가히 기적이라면 기적이었다. 뇌리에 퍼뜩 스친 한 장면을 놓치지 않고 떠올린 길드장의 외침에 옅게 깔리던 페로몬이 한순간에 잦아들었다. 기사가 길드장의 멱살을 잡고 재촉했다.

“정확히 어디서 마주쳤지?”

“그냥 스쳐 지나간 거라 잘….”

“멍청한 녀석.”

“바깥에서는 섣불리 접촉하지 않는 게 규칙이라…! 애초에 걔는 원년 멤버 주제에 저도 그렇고, 길드원들이랑 별로 친하지 않았다고요!”

그러고는 정말 아는 게 그것뿐이라면서 살려달라 싹싹 빌기 시작한 길드장이다. 보아하니 이젠 더 얻어낼 게 없어 보였기에, 기사는 잡고 있던 멱살을 놓고 일어나서 후드 쓴 사내를 힐끔 돌아보았다. 여러모로 심란하여 바닥만 노려보는 사내의 푸른 눈동자가 가늘게 일렁이고 있었다.

“…가자. 로렌스.”

“예.”

로렌스라 불린 기사는 한창 길드를 해체하는 중이던 부단장에게 오소리 길드장의 처분까지 인계한 뒤 제 주인의 뒤를 따라갔다.

***

컴베스트 대공국의 대도시 중 하나인 ‘랑가’.

랑가는 랭커스터 저택이 있는 블렌츠와도 가까운 도시라 항상 사람으로 북적거리는 곳이었다. 거기로 이사한 직후, 채이는 곧장 일자리를 알아보러 다녔고 어느 한 주점을 찾게 됐다. 그리고 현재까지 그곳에서 쭉 일하고 있었다. 대도시 중심에 있는 가게인 만큼 면식 없는 외영지민들이 자주 찾아오는 곳이었지만….

“채이! 이쪽에도 술 좀 더 돌려줘!”

단골이라 부를 만한 손님들도 꽤 많이 있었다.

“예에. 갑니다, 갑니다.”

채이는 안줏거리와 주문받은 술을 들고 테이블로 향했다. 그 테이블에서는 익숙한 얼굴들이 한데 모여 왁자지껄 떠들어대고 있다. 일이 잠시 끝난 점심시간 주점에 들러서 술을 곁들인 수다를 떠드는 것이 삶의 낙인 사람들이었다.

“아저씨들아. 다시 일 가야 하지 않나. 안주 좀 더 넣었으니 술은 적당히 마셔요.”

“하하, 이 집 술이 아주 기가 막혀! 좀 잘 넘어가야 말이지.”

“특히 채이가 가져오는 술이 참 맛있단 말이야. 이걸 어찌 안 마시고 넘어갈 수가 있나.”

어디 능구렁이 아저씨들 아니랄까 봐 잔소리는 그냥 슬쩍 넘겨버린다. 짧은 웃음과 함께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은 채이가 안주와 술을 내려놓았다. 그런 채이를 흐뭇하게 바라본 단골 아저씨들이 시시덕거렸다.

“채이는 나이에 비해 동안인 것도 그렇지만 어쩜 그 나이 되도록 몸도 좋고 잔병치레도 없고… 신기해. 듣자 하니 마물도 한 손으로 때려잡는다면서?”

그야 삼십 줄이 다 된 지금도 몸이 녹슬지 않게 단련 중이고, 이따금 시간 날 때마다 근처 마물 숲으로 내려가 실전 감각도 기르고 있으니까. 물론 그러는 데에 분명한 목표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저, 전생부터 이어진 직업병이라고 해야 할지…. 그땐 스스로 단련하고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 것은 곧 죽음으로 이어졌으니까. 하지만 마물이 존재하는 이 세상에서도 마찬가지니 썩 나쁘지 않은 습관이라 생각했다.

“그러니까! 주점에서 일할 게 아니라 사냥꾼으로 일해야 하는 거 아니야?”

“왜요. 주점에서도 꽤 쓸 만한데? 손님들 괴롭히고, 행패 부리는 놈들 제압하기에 딱 좋은 인재잖아요.”

실제로 목소리가 크면 그게 전부인 줄 알고 설치는 술주정뱅이들이 채이가 일하는 주점에선 행패를 부리지 못했다. 웬만큼 단련했다는 베타들도 채이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건 그렇지.”

“채이 덕에 분위기도 늘 좋고.”

아저씨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정확히 알 순 없지만, 그들이 생각하기에 채이는 신체적 조건이 ‘베타보다 조금 우위에 있는 오메가 수준’만큼은 되는 것 같았다. 다만 알파는 비교할 만한 대상이 아니다. 먹이사슬의 최강자라고 할 수 있는 알파, 특히 우성 형질을 가진 그들은 고등 이종족들과도 비등한 신체 능력을 갖추고 있으므로.

“아무튼 우리는 안타까워서 그러는 거야… 사냥꾼으로 활동하면 돈도 훨씬 더 많이 벌 텐데.”

“채이 정도면 기사단에도 지원할 수 있지 않나? 베타이긴 하지만 눈독 들일 만한 인재잖아.”

“악착같이 살 생각은 없어서. 됐고, 기껏 더 넣어준 안주 다 식겠다. 얼른 먹기나 해요.”

악착같이 사는 건 전생의 경험만으로 충분하다. 채이가 턱을 까닥이자, 아저씨들도 아직 따뜻한 고기를 집어 먹으면서 화제를 돌렸다. 그렇게 채이가 다시 테이블을 돌아다니며 일을 할 때였다.

“채이! 혹시 사장님 못 봤어요?”

서빙을 끝내고 카운터로 가던 도중 주방에서 빼꼼히 고개를 내미는 이가 있었다. 이름은 요렌테. 채이보다는 늦게 들어왔지만 그녀도 벌써 이 주점에서 3년째 일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아뇨. 아침에 잠시 보고 이후로는 못 본 거 같은데… 무슨 일이에요?”

“아니, 잠깐 나간다고 하더니 아직도 안 오셔서. 확인받아야 할 것도 있는데 대체 어디까지 가버리신 거람….”

요렌테가 발을 동동 구르며 중얼거렸다. 도와주고 싶었지만 주인장이 어디로 가버렸는지는 채이도 모르는 일이기에 어찌할 방도가 없었다.

‘혹시 무슨 일 생기셨나.’

이렇게까지 오래 자리를 비울 일이 있으면 항상 얘기를 하고 외출하던 사람인데… 이상한 일이긴 하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채이는 직원용 조끼를 벗었다. 걱정이 되는 것과는 별개로 이만 퇴근할 시간이었던 까닭이다.

“오, 채이! 일 끝난 거지? 여기서 우리들이랑 대화나 잠시 하고 가지 그래.”

그때 조금 전의 단골 아저씨들이 손짓하며 채이를 불렀다. 참으로 채이에게 관심이 많은 아저씨들이었다. 그만큼 채이가 두루두루 호감을 사는 사람이라는 뜻이겠지만. 잠시 고민한 채이는 조금 더 기다려서 주인장이 무사히 돌아오는지도 확인할 겸, 그들과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 내렸다. 어차피 집으로 돌아가도 하는 일은 그다지 없었기에.

채이가 여분의 의자를 끌어다 앉으니 마침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려던 중이었는지 아저씨 하나가 목소리를 낮추고 말을 꺼냈다.

“자네들. 그 소문 들었나?”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소문 이야기였다.

“뭔데?”

“무슨 소문?”

다들 머리를 한데 모으고 안주를 씹으며 눈을 반짝였다.

그 사이에 끼어 있던 채이도 슬쩍 웃은 채 아저씨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최근에 불법으로 운영되고 있던 길드를 박살 내고 다니는 사람이 있더래.”

그리고 그건 채이의 흥미를 끌기에 충분한 소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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