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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도하라 키워놨더니 집착광공 됐는데-7화 (7/105)

007화

탓!

바닥을 박차고 달려든 채이가 일루간과 레오나드 틈 사이를 파고들었다. 그리고 레오나드를 등 뒤로 감싸고 팔을 들었다.

크득!

일루간의 날카로운 이빨이 채이의 살갗을 무자비하게 꿰뚫으며 팔에 박혔다.

‘윽!’

끔찍한 통증으로 인해 정신이 아찔해질 법도 했으나 지금은 조금이라도 방심했다가는 두 명의 목숨이 날아가는 상황. 채이는 일루간의 큰 송곳니를 붙잡고, 녀석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버텼다.

[카아!]

녀석이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발버둥 치고 채이가 버티는 사이 퉁 떨어진 약초 바구니가 데구루루 구르며 흐트러졌다. 약초들이 밟혀 찢기고 눈에 덮였지만 신경 쓸 틈도 없었다. 채이는 한쪽 팔을 미끼 삼아 내어준 채, 다른 손으론 허벅지에 걸린 단검을 홱 빼 들었다.

그리고….

푹!

일루간이 가진 4개의 눈알 중 하나를 힘껏 찔렀다.

[끼이이잉!]

피가 솟구치면서 사방으로 튀었다. 채이가 붙들고 있던 송곳니를 놓자 일루간이 고개를 마구 흔들며 고통스러워했다. 그 빈틈을 놓칠 채이가 아니다. 검날이 아래로 향하게끔 빙글 돌려서 잡은 채이는 바닥을 박차면서 뛰어올라 일루간의 급소가 있는 등에 그것을 정확히 박아 넣었다.

[크륵!]

울컥 피를 쏟아낸 일루간의 몸뚱이가 천천히 옆으로 기울며 무너졌다. 한쪽 팔만으로 지탱하고 있던 채이도 덩달아 떨어져서 바닥을 굴러야 했다.

“윽.”

하지만 자신이 아픈 건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이빨이 박혔다가 빠진 구멍에서 피가 줄줄 새고 있었으나…. 채이에게 있어선 그것보다 레오나드의 상태를 확인하는 게 더 먼저였다.

“레오… 괜찮니? 다친 데는?!”

영혼이 빠진 사람처럼 어딘가 넋이 나가 있는 레오나드를 구석구석 살폈다. 다친 팔이 피로 물들어 있었지만 다행히도 스친 정도였는지 상처가 얕았다.

“우선 지혈부터 하고….”

채이는 자신의 옷자락을 쭉 찢어 레오나드의 팔에 둘둘 감았다. 다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응급 처치에 불과하다. 집으로 돌아가 다시 제대로 치료를 할 필요가 있었다.

“하아.”

정말이지… 살면서 이 정도로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느끼는 건 처음이었다. 고개를 들었다. 그 앞에 놓인 레오나드는 새하얗게 질린 채 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무언가 견딜 수 없는 기분을 느끼고 있는 듯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말이다.

“왜….”

그리 중얼거린 레오나드의 표정이 더욱 구겨졌다. 맑고 투명한 유리옥처럼, 물기가 어려 반짝이던 눈동자가 아래로 또르르 떨어졌다. 한 폭의 그림 같은 얼굴에 구김살이 생겼는데도 그조차 하나의 예술을 보는 것 같아 채이는 그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그만 정신이 번쩍 드는 듯했다.

“왜, 왜 날 구해준 거야.”

힘겹게 뱉어내는 레오나드의 목소리에는 울음기가 맺혀 있었다.

“왜 다치면서까지 날 구했어? 어차피… 어차피 팔아먹으려고 나한테 잘해준 거잖아.”

쌓이고 쌓여 곯아버린 속내가.

“언젠가는 노예로 팔아넘기려고 잘해준 거잖아! 어차피, 날 버릴 거면서… 소중하지 않으면서… 왜 네가 다치는 건데.”

끝내 닭똥처럼 굵은 눈물과 함께 밖으로 쏟아졌다.

‘노예라니. 갑자기 무슨….’

그리고 그의 느닷없는 토로에 못내 당황하고 만 채이는 곧 마음에 걸리는 한 가지를 불쑥 떠올렸다. 바로 ‘소설 속 채이’가 노예상이라는 점이었다. 다만 채이는 레오나드에게 ‘소설 속 채이’가 저지른 과거의 나쁜 행적들을 이야기한 적이 없었다.

당연하다.

그런 거를 이런 애 앞에서 굳이 말해야 할 필요도 이유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레오나드의 반응으로 보아서는… 아무래도 그 사실을 알아버린 것 같았다. ‘소설 속 채이’의 과거를 얘가 어떻게 알게 된 걸까. 지난 며칠 동안의 일을 떠올려본 채이는 짚이는 점을 단번에 눈치챘다.

‘어제. 마을로 혼자 심부름 보냈을 때. 그때부터 기운도 없고 이상했지.’

평소에도 마을로 내려가면 채이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거나, 예전 ‘소설 속 채이’에게 했던 것처럼 물건 팔아달라며 접근하는 무리들이 존재했다. 아마 그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진실을 알게 됐거나 누군가에게 채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던 걸지도 모른다. 그제야 레오나드의 행동들도 이해가 됐다. 이로써 모든 퍼즐은 맞춰진 셈이었다.

‘좀 더 깊이 생각했어야 했는데.’

자주 일어나는 일도 아니었고 레오나드가 궁금해하지도 않았기 때문에 설렁 넘어가고 말았던 문제들이 여기서 터질 줄은….

‘아이의 눈치를 얕봤어.’

머리가 지끈거렸다. 하지만 그보다 안타까운 점은 레오나드가 제게 보이고 있는 반응이다. 눈앞의 레오나드는, 더 이상 소설 속에서처럼 눈을 흉흉하게 부라리던 복수심에 물든 암귀가 아니었다. 그저 버려질까 봐 겁을 먹은 아이에 불과했다.

“처음부터 날 속였던 거야.”

“레오.”

“나… 나는, 채이를 믿었는데.”

듣는 사람도 함께 고통스러워질 만한 레오나드의 중얼거림이 채 끝나기 전이었다. 채이는 그의 작디작은 몸을 끌어당겨 폭 안아 주었다. 그 탓에 구멍 뚫린 팔에서 피가 한차례 울컥 쏟아졌으나 신경 쓰지 않았다.

“난 널 버리지도 않을 거고 노예로 팔지도 않을 거야.”

“…….”

“그런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아. 이것만은 내 목숨을 걸고 약속할 수 있다.”

어차피 ‘소설 속 채이’가 과거에 저지른… 현재 채이가 손 쓸 수 없는 행적들을 부정해 봤자 득이 되는 건 없었다. 어설프게 변명했다간 오히려 상황이 악화될 수도 있었다. 지금 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레오나드에게 진심을 전하는 것뿐이었다.

“왜… 왜 나는 그러지 않는데?”

채이의 너른 품에 안겨 꼼지락대던 레오나드가 중얼거렸다. 채이는 천천히 레오나드를 품에서 떼어낸 뒤 시선을 마주했다.

“말했지. 넌 내게 소중하다고.”

울어서 붉어진 눈으로 가만히 바라보는 레오나드의 머리를 툭 쓰다듬었다.

“넌 모를 거다. 내가 널 얼마나 아끼고 있는지.”

전생에서 권채이는 이렇다 할 연고 없이 한평생을 살아 왔다. 누군가를 열렬히 좋아해 본 일도 없고, 의지할 수 있는 친인척도 없었다. 그렇기에 몰랐던 감정들을 레오나드와 만나면서 조금씩 알게 되었다. 부성애를 닮은 감정이 생기고 내리사랑이란 게 무엇인지를 느끼게 되었다.

그런 소중한 감정들을 선물해준 레오나드에게 애틋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지 않은가.

“…….”

멍하니 이야기를 듣고 있던 레오나드의 눈동자가 순간 반짝이며 물기가 어른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 방울, 두 방울 눈물을 떨구더니 기어이 참았던 울음을 다시금 터트리고 말았다.

“흐윽, 흐어엉!”

채이는 무너지듯 폭 안겨 오는 레오나드의 등을 부드럽게 도닥여 주었다. 레오나드도 그간 많이 힘들었을 거다. 친부모에게 제대로 된 사랑도 못 받고 자라다가 버림까지 받았던 아이니까. 또 정을 준 사람에게 버려질까 두려웠겠지. 나이에 비해서야 어른스럽다 생각되어도 결국 10살이 채 되지 못한 어린아이였다.

“채이… 후윽, 미안해. 내가, 내가 의심해서, 나 때문에 다쳤어. 많이 아플 텐데….”

“괜찮아. 이 정도는 별거 아냐.”

채이는 눈물을 멈추지 못하는 레오나드를 데리고서 우선 집으로 내려갔다. 상처 부위를 깨끗이 씻어내고 새로운 천으로 다시 상처를 감싸 지혈했다. 그러던 중, 다친 채이의 팔을 살포시 확인하던 레오나드가 다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원래 이렇게 눈물이 많은 아이였나 싶다.

아마 몇 년간 흘릴 눈물을 오늘 다 흘려보내는 거지 않을까. 채이는 고장 난 레오나드의 눈물샘이 웃겨서 그만 푸시시 웃어버렸다. 모든 일이 원만하게 잘 끝났으니 비로소 마음 편히 웃을 수 있는 거기도 했다.

그날 레오나드의 응급 처치가 끝나고서야 제 상처를 지혈한 채이는 레오나드의 재촉으로, 마을의 수도원으로 내려갔다. 관통상이 결코 가볍지 않아서 봉합을 해야 할 듯싶었는데 이런 변방 마을에는 고급 의료 설비를 갖춘 시설이 없다. 그러나 재생력에 관여하는 마물의 체액을 이용해 사람들을 고쳐주는 곳은 있었다.

그게 바로 수도원이다.

‘소설 속 채이’의 기억은 끄집어내지 않으면 퍼뜩 떠오르는 게 아니었던 탓에 레오나드가 말해 주어서야 떠오른 정보였다.

수도원의 수녀와 수도사들은 채이의 상처를 보자마자 미리 구비되어 있던 ‘힐링 워터’로 빠르게 치료해주었다. 수녀는 너무 늦지 않게 찾아왔으니 상처는 완전히 회복할 거라고도 말했다. 정말이지 다행이었다.

그날 밤.

채이와 레오나드는 불을 피워 둔 벽난로 덕분에 따뜻함을 느끼면서 침대 속에 오순도순 붙어 대화를 나누었다.

“노예상이라던 건 정말이야?”

“음. 그랬던 거 같아.”

“…뭐야. 남의 일처럼 말하고.”

“어쨌든 지금은 아니란 거지.”

채이의 말에 레오나드가 담요 속으로 얼굴을 반쯤 숨기고는 침묵했다. 그러다 길지 않은 침묵 뒤에 재차 말을 이었다.

“숲에 가지 말라고 했던 건….”

“네가 위험해질 수 있으니까.”

“…….”

“오늘 일처럼. 정말 그뿐이야.”

그렇게 채이는 레오나드의 앞머리를 손가락으로 정리해준 후 조곤조곤 덧붙였다.

“피곤할 텐데 이제 그만 자렴.”

“…응.”

“잘 자고. 내일 아침에 보자.”

포근한 열기 때문인지 레오나드의 뺨이 볼그스름했다. 그걸 마지막으로 눈을 감는데 잠들기 직전 레오나드가 채이를 조용히 불렀다.

“채이.”

“으응?”

“…고마워.”

그래그래.

채이는 아마 그리 답한 것 같다. 그날은 피를 너무 많이 쏟은 데다가 이래저래 피곤한 일이 많았기 때문일까. 꿈 한 점 꾸지 않고 푹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밤늦게까지 펑펑 내렸던 눈은 어느새 말끔히 그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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