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권
4장. 만화
꿈이 분명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아들이 지금 흠뻑 젖어 울 수가 없을 테니까.
젖어서 옅은 회색으로 변한 보료를 움켜잡는 손등이 완연한 사내다. 곱아 드는 손가락에 자신의 손가락을 강제로 얽히게 만들었다. 손등에 곤두선 핏줄이 황제의 밀랍 같은 손바닥에 엉겨 붙었다. 눈을 감고 목을 젖히고 울던 아들은 아비가 잡는 손에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눈물과 땀에 젖어 든 속눈썹 사이로 걸리는 아름다운 얼굴에 강이 붉게 달아오른 입술을 깨물며 흐느꼈다.
울지 마.
그 마음을 담아 입을 맞췄다. 양손이 얽히고, 땀에 끈끈하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황제는 기갈을 느끼는 사람처럼 허겁지겁 입술에 매달려 혀를 밀어 넣었다. 이미 몇 번 빨아들인 입술이 어렸을 때처럼 오동통하게 부어있다. 빠는 족족 부어오르는 연약한 피부. 잘못하면 상처가 날까, 걱정이 되어 함부로 물지도 못하고 전전긍긍했던 아이였다.
“폐하.”
그러나 이르게 솟아오른 여명은 황제를 단꿈에 내버려 두지 않았다. 12개의 문을 젖히고 다가온 내관의 목소리가 그의 옅은 의식을 깨트렸다. 나신으로 침대에 누워 신음하던 황제는 흘러내린 은발을 쓸어 올리며 나른한 눈으로 문을 보았다. 들어오라는 허락은 하지 않았다. 황제는 손을 내려 발기한 남근을 잡고 혀를 내밀어 입술을 핥았다.
“무슨 일이냐.”
황제가 낮고 점잖은 목소리로 채근하면서 아래론 남근을 거칠게 만졌다. 꿈속에서 아들의 연약한 내부를 헤쳤던 성기가 다시 뜨끈한 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안달이었다. 13살부터 지금까지, 각종 미녀와 미남을 안아보았던 몸이었지만 아들 같은 몸은 처음이었다. 입맞춤부터가 단 정사. 오로지 아이를 가지기 위해 의무적으로 쾌감을 좇았던 몸이 드디어 진정한 애정과 쾌감에 몸서리치고 있었다. 눈을 내리깔고 달아오른 얼굴로 신음을 잇새로 내뱉는데, 밖에서 동일한 어조로 고하는 내관의 목소리가 느리게 들렸다.
“태상황께서 하늘로 돌아가셨습니다.”
태상황, 아버지가 죽었다는 소식과 함께 황제가 사정했다. 그는 처음 몽정을 겪고 당황하던 때처럼 눈을 잘게 떨며 거대한 상체를 움츠렸다. 하, 하고 잇새로 한심한 숨을 터트린 그가 눈을 찡그리며 문을 노려보았다.
하여간, 노인네가 때도 못 맞추고. 속으로 아버지를 향해 질 낮은 말을 속삭이던 그가 지난밤 입었던 붉은 용포를 집어 들며 말했다.
“지금 가겠다.”
황제는 하얀 비단으로 만든 화려한 침의 위에 붉은 용포를 장의처럼 걸쳤다. 허리도 제대로 여미지 않은 탓에 그가 움직일 때마다 침의가 벌어져 그의 단단한 가슴팍이 드러났다. 황제는 노골적으로 피곤하다는 기색을 보이며 태감, 내관, 친군들에게 둘러싸여 태상황과 태후가 머무는 장후궁으로 향했다. 황제가 들어서자 안에 있던 사람들이 일사불란하게 엎드려서 예의를 표했다. 황제는 그들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태상황의 사체가 있는 병상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 드리운 여려 겹의 장막을 거두었다. 약 냄새가 진동했다. 절로 얼굴이 찡그려졌다. 황제는 침대 앞에 엎드려 있는 태후에게 일어나라는 말도 하지 않은 채, 곧장 쥐 죽은 듯 자고 있는 태상황을 보았다. 은발에서 백발이 된 머리는 푸석한 풀뿌리 같았다. 주름이 깊게 팬 눈가는 지는 태양답게 가치가 없었다. 조소가 깃든 눈으로 태상황의 병색이 완연한 몸을 훑어보던 황제는 고개를 숙여 그의 가슴에 대었다. 박동이 들리지 않았다. 소리 없이 은은한 미소를 입가에 머금은 황제가 확신을 위해 손가락으로 맥박을 확인했다.
역시나 죽은 게 분명했다. 맥박도, 심장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진영왕을 죽였을 때처럼 은밀하고 확실하게 태상황을 독살했다.
“하늘로 돌아가셨군요.”
황제는 꼼작도 하지 않는 마른 등을 보며 중얼거렸다. 태후는 아들을 군주로 섬기며 얌전히 복종했다. 좋은 모습이었다. 황제는 허리에 손을 올리고 드문드문 웃으며, 뒷목을 손으로 주물렀다. 그의 눈이 반쯤 감겼다. 졸음과 피곤이 가시지 않았다.
황제는 태상황의 잠든 얼굴을 보고 피식 웃으며 동전을 꺼내 입에 올려놓았다.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기 위해 필요한 노잣돈이었다. 황제는 태상황이 경직되기 전, 그의 손을 잡아 가슴에 올리고 두 손을 포갰다. 그리고 상체를 숙인 채로, 그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며 죽은 태상황에게 마지막 인사를 고했다.
“다 아버지가 자초하신 겁니다.”
태상황은 황제를 의심했다. 황제를 찾아와 어째서 태자를 선택하지 않느냐고 넌지시 말하기도 했다. 그때마다 황제가 ‘때가 되면 알아서 태자가 생길 겁니다.’ 하고 넘기긴 했으나, 두리뭉실한 말로 능구렁이 같은 태상황을 속이긴 무리였다. 태상황의 의심의 싹과 눈초리는 금세 강을 향했다. 그가 보낸 살수는 담영의 손에 의해 죽었고, 황제는 그에 대한 보답으로 태후를 이용해 그에게 독약을 먹였다. 아들은 못 믿어도, 태후만은 믿었던 태상황은 믿음에 의해 죽었다. 실체 없는 믿음은 금방 무너지기 마련이었다.
죽어서도 무엇 때문에 죽었는지 모를 멍청한 아버지. 그를 보며 차디차게 웃은 황제는 미동도 없이 엎드리고 있는 태후를 보았다.
“일어나시지요.”
태후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하나뿐인 지아비가 죽었으나 그녀의 눈엔 일말의 죄책감도, 슬픔도 없었다. 그녀가 곱게 단장한 입술을 열려 하자 황제가 조용히 하라는 듯 검지를 입술에 갖다 대었다. 그녀가 입을 조개처럼 다물고 가만히 있었다. 내관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침전엔 태후와 황제뿐이었다. 황제는 의자에 고고히 앉아 어머니를 내려다보며 지루한 듯 팔걸이를 두들겼다.
“장례가 끝나도 가시면 안 됩니다.”
“하지만 늙고 쓸모가 없는 이 몸은 지금 병이 깊어 혼례에 참석하면 폐하께 누가 될 뿐입니다.”
“어머니가 쓸모가 없다니요. 누구보다 큰일을 해주셨습니다.”
황제의 칭찬이 영 별로인 듯 태후의 입가가 꿈틀거렸다. 언제나 아들만을 위해 움직이던 태후는 이번에도 아들에게 백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 태상황의 죽음을 대가로 아들이 건넨 것은 태후를 움직이기에 충분했다.
‘순장을 폐지할 겁니다. 그렇다면 어머니는 어머니로서 영원히 태후로 남아계실 수 있습니다. 더불어 강도 죽지 않고 살아갈 테고요.’
황제는 어둠에 녹아든 태후를 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뭐든 살아야 의미가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 죽어서 명예를 얻느니, 살아서 치욕을 겪어도 다 누리십시오.’
자신의 말에 따르지 않으면 당신도 죽이겠다는 음습한 협박에 태후는 백기를 들었다. 아들의 말에 복종하지 않는다면 돌아오는 것은 죽음이었다. 아들의 말은 틀린 것이 없었다. 살아야 의미가 있는 것이지, 죽어서 명예를 누리는 건 쓰지 못하는 황금을 가진 것에 불과했다.
‘정말 그 아이를 황후로 들이실 겁니까.’
태후는 창의 무늬가 아로새겨진 바닥에서 빠져나와 황제의 앞에 섰다. 황제는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태후의 손을 맞잡으며 그녀를 보고 웃었다.
‘그게 정말 큰일이라도 되는 것 같습니다. 아버지도 강을 죽이려 하시고….’
‘역사에 없던 일이니까요. 또한, 천륜을 저버리는 일이 아닙니까? 그 아이는 폐하의 친아들입니다. 다른 이도 아니고, 친아들이요. 그 어떤 나라의 역사에도 친아들을 황후로 들이고….’
‘아들인지, 손자인지 모를 아이를 태자로 삼지 않는다고요?’
태후가 차마 하지 못한 말을 자랑스럽게 떠벌린 황제는 그녀의 어깨를 틀어쥐며 말했다.
‘이 자리는 뭐든 다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어머니가 저에게 그러셨습니다. 뭐든지 가질 수 있다고요. 그렇다면 아들을 황후로 만드는 것도 가능하지 않습니까.’
태후는 참담한 심정으로 눈을 감았다. 아들은 미쳤다. 아름다운 겉가죽과 달리 속은 비틀어지고 음습하며 한없이 이기적이고 이상한 방향으로 다정했다. 차라리 다정하지나 말지. 태후는 아들의 손등을 부드럽게 매만지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 아이를 언제부터… 연모하신 겁니까.’
‘글쎄요.’
잠시 먼 과거를 돌이켜 보던 황제는 개구지게 웃으며 말했다.
‘아들로서 사랑했던 감정인지, 연인으로서 사랑했던 감정인지 그게 중요한 겁니까? 어쨌든 연모하면 된 거겠죠.’
원래부터 제멋대로인 연혼이었다. 태상황이 그렇게 키웠고, 태후도 방임 아닌 방임으로 그가 원하는 대로 하게 해주었다. 지금에 와서 안 된다고 타일러도 황제는 듣기는커녕 귀찮게 한다며 태후의 목을 거침없이 베어버리리라. 그녀는 눈을 흘깃 돌려 송장이 되어버린 지아비를 하찮다는 듯 보았다. 권력은 한 사람에게 주어져도 언젠가 지기 마련이었다. 지금 아들이 쥔 권력은 막 태어난 것처럼 생기가 넘쳤다. 뒷방 노인네가 된 지아비의 것과 달랐다.
그녀는 어머니의 얼굴로 냉철하게 답을 내렸다. 아들의 편이 되어야 자신이 산다. 태후로서 누리는 이 부와 명예를 죽어서 가져가고 싶지 않았다. 살아남아야 의미가 있는 법이었다. 죽은 자는 말이 없었고, 죽어서 가져가는 명예는 오물보다 쓸모가 없었다.
그렇다면 아들의 권력을 더더욱 견고히 하여 자신의 입지도 탄탄히 한다. 아들과 벽을 쌓는 행위는 결코 좋지 못한 결정이다.
그 권력을 유지해줄 이는 따로 있었다. 아들을 황제로 만들어준 하늘이었다.
‘황명을 천명으로 만드는 법을 아신 겁니까?’
‘무슨 말씀이십니까.’
황제는 오만하게 웃었다.
‘천자가 곧 천명입니다.’
이미 하늘이 선택한 황제. 황제는 하늘이 자신을 버리지 않으리라는 자신이 있었다.
‘천자가 언제부터 하늘의 명령을 기다렸습니까. 천자가 말하는 것이 곧 하늘의 말씀이고, 하늘의 뜻입니다.’
넘치는 오만함에 태후는 오싹함을 느끼고 웃었다. 승리자의 미소였다.
‘하늘은 이 천자를 버릴 수 없습니다. 그러기엔, 다른 자들이 너무 무능하니까요.’
*
바람이 분다. 강은 머리카락을 헤집는 바람에 미간을 찌푸렸다. 손으로 바람을 막아보았지만 헛수고였다. 긴 소매가 펄럭여 얼굴만 세게 때릴 뿐이었다. 손을 무릎에 얌전히 내린 강은 순간 목덜미를 스치고 가는 섬뜩한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그곳엔 장례를 지켜보는 황제가 서 있었다. 숱하게 보았던 장례, 항상 그 자리에 망부석처럼 있던 황제. 달라진 거라곤 그 옆에 존재하는 여자였다. 장례의 주인이 진영왕이었을 땐 황제의 옆에 숙비가, 황제의 딸들이 죽었을 땐 그녀들의 어머니였다. 여자들만 달라질 뿐 늘 그대로였는데 오늘따라 기분이 이상했다. 벌레 여러 마리가 피부를 기어 다니는 간지러움에 강은 뒷목을 만졌다가 내렸다.
황제가 웃은 거 같았는데. 착각인가. 강은 눈을 깜박거리며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장례에 집중했다. 대신관이 앞에서 기도문을 외우고, 신관들이 그를 도와 장례를 진행하고 있다. 태상황의 관이 긴 돌길을 따라 떠나가기 시작한다. 검은 장의를 입은 황제는 그 모습을 보며 눈 한번 깜박이지 않았다. 어떤 감정을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지루해 보였다.
‘아바마마는 죽음이 무섭지 않으십니까?’
연달아 이은 자식들의 죽음에도 울지 않던 그를 보고 강이 의아함에 물었다. 황제는 허벅지에 앉아 가만히 있는 강을 마주하며 미소 지었다.
‘뭐든지 익숙해지기 마련이란다. 죽음도, 아픔도.’
강이 도통 황제를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멍하니 보자, 황제가 뺨을 감싸고 입술에 쪽, 하고 입술을 맞대며 떨어지기 전에 속삭였다
‘너도 그렇게 될 거다. 넌 천자의 아들이니까.’
결국 네 몸에 흐르는 피도 그렇다는 그의 말에 강은 쓰게 웃었다. 맞는 말이었다. 죽음에 익숙해지고, 의례 진행되는 장례에도 무덤덤해졌다. 방해물 없이 지속적으로 흐르는 시간 속에서 치열하게 살다보면 과거는 차츰 희석되기 마련이었다.
과거에 자신은 다른 형제들처럼 살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황제의 허락 없이는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가 원하지 않으니까. 그는 허락을 하는 입장이었고, 자신은 허락을 받아야 하는 수직적인 관계에서 강이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사이, 한 마디 작별 인사 없이 형제들을 떠나보내며 강은 욕구나 관계에 대해 소원해졌다.
어차피 황제가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
이러다 죽는 것도 그가 허락해야 죽을 수 있는 게 아닐지. 멍청한 생각에 잠겨 눈을 느리게 깜박이던 강은 탁, 하는 소리에 고개를 휙 올렸다. 대신관이 이제 거의 식을 마치고 있었다. 본래 태상황, 태후와 그리 사이가 좋지 않은 터라 그가 갑작스럽게 죽어도 별 감흥이 없었다. 강은 뚫어지게 관을 보면서 저녁에 먹을 음식을 생각했다. 삶은 고기에 술을 마실까. 아니면 구워서 설이 한 점, 나 한 점 먹으면서 놀까. 남은 음식은 고양이들을 주는 게 낫겠지. 그 녀석들도 배고파서 냥냥거리면서 울 텐데.
향이 밴 바람이 세게 불며 강의 헛생각을 무너뜨렸다. 소맷자락이 낙엽처럼 흩날렸다. 매섭게 부는 바람이 심상치 않다. 강은 구슬픈 소리를 내며 앞으로 향하는 행렬을 보다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이 울 것처럼 먹먹하다. 하루 전 죽은 태상황의 눈물을 대변하는 것인가. 손바닥을 내밀어 보았지만 하늘은 울지 않았다. 다만, 바람이 손가락을 맛 보 듯 쓸어 만지고 떠났다.
손을 거둔 강은 재차 앞을 보았다. 이제 행렬은 저 멀리 떠나 문을 넘었다. 은우문을 넘고, 수도를 돌며 백성들의 눈물과 위로를 받다가 미리 만들어놓은 능으로 들어가리라.
관이 완전히 은우문을 통하고 나서야 장례식이 서서히 마무리되었다. 강은 꽉 막혔던 숨을 터트리며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옆에서 버둥거리는 움직임에 강은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팔을 잃은 경혜왕이 중심을 잃을 뻔했다가, 다행히 궁녀의 도움으로 넘어지지 않고 일어섰다. 사라진 왼쪽 팔을 증명하듯 소매가 바람에 펄럭거렸다. 그가 쓰고 있던 가면도 삐끗했으나 경혜왕이 순발력을 발휘해 가면을 똑바로 썼다.
그의 멀쩡한 오른쪽 눈과 마주쳤다. 가면 속에서 그가 웃었다. 경혜왕이 자주 짓던 미소였다. 눈을 반달처럼 접고, 양쪽 입술 끝을 활짝 올려 웃는 모습이 연상되었다. 그는 황제의 아들답게 웃었다.
형님, 이라고 부르기도 전에 황제를 모시는 내관이 왔다. 강을 부르는 것이었다. 머뭇거리던 강은 등을 돌렸다.
어차피 그와 자신은 이미 멀어질 대로 멀어진 사이였다. 형제들과 가까이 하기보다는 멀리 하는 편이 더 낫다는 사실을 기약 없이 보낸 형제들을 통해 체감한 강은 입을 다물고 정면을 보았다.
과거에 파묻혀 살아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다고.
“폐하께서는?”
강이 걸어가며 묻자 내관이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늘 계시던 전각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렇군.”
단출하게 중얼거린 강은 한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한 비에 혀를 찼다.
“폐하께선 비가 오는 걸 싫어하시는데….”
“그래도 전하께서 오시니 좋아하실 겁니다.”
내관이 빙그레 웃었다.
“폐하께선 전하를 무척 사랑하시니까요.”
이상한 일이었다. 뒷목이 차갑다. 빗물이 흘러든 것일까. 손을 더듬어 만져보았지만 아직 뒷목에서 물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강은 가마에 올라탔다. 내관들은 비를 맞으면서도, 혹여나 강이 비를 맞을까 걱정하며 막을 씌워주었다. 내관들의 배려 덕분에 비를 한 방울도 맞지 않고 전각에 도착했다. 황제는 비가 유유자적하게 내리는 화원을 배경삼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젖은 전각 안에서 황제는 막 피어난 꽃처럼 웃었다. 눈은 완연한 곡선을, 입술은 위로 상승하고 있다. 볼에 올라온 홍조는 그의 기분을 나타내고 있었다.
“아가.”
자연스러운 호칭으로 강을 불렀던 황제는 턱을 괴고 눈을 감은 채 웃었다.
“또 아가라고 부르면 화낼 테냐?”
눈을 스르륵 뜬 황제가 고혹적으로 웃으며 강의 뒷목을 잡아당겼다. 호흡을 멎은 강이 두 손으로 황제의 가슴을 짚었다.
그의 가슴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황제는 눈이 커진 강을 수직적으로 내려다보며 이마를 마주 대고, 입술을 아주 살짝 맞대었다. 정말 그가 닿았는지, 안 닿았는지 착각할 만큼의 미묘한 접촉에 강은 눈을 떨었다.
“…많이 컸구나.”
“네, 많이 성장했습니다.”
“그래.”
다정하게 중얼거린 황제가 이마를 떼어내며 흡족하게 웃었다.
“이제 됐어.”
뭐가 됐다는 거지. 강은 종종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하는 황제를 보며 상체를 떼어냈다. 그의 심장소리에서 멀어지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황제는 강의 손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그는 술 때문인지 달아오른 호흡을 뱉어내며 강을 보고 속살거렸다.
“마지막 약을 먹어야지.”
강이 입을 다물었다. 어느 순간, 약을 입으로 받아먹는 걸 거부하던 고집스러운 얼굴이 겹쳤다. 황제는 술 냄새가 진하게 밴 입술을 움직여 웃었다. 상습적으로 사람을 홀리는 그 미소에도 강은 방심하지 않았다. 그의 정치적인 미소엔 늘 독이 있었다. 그 독은 아주 치명적이라, 본인을 지킬 수 있는 거리를 만들어야 했다.
진영왕의 죽음 이후로 강이 터득한 방법이었다.
강은 서서히 황제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 황제는 턱을 괴고 느슨하게 웃다가, 손가락을 뻗어 이마를 툭 건드렸다. 그의 손가락이 벽을 타듯 피부를 타고 점점 내려와 입술에 멈췄다.
강은 미묘하게 체온을 데우는 그의 행동에 눈을 내리깔았다. 그의 섬섬옥수가 보였다. 투명한 분홍빛의 손톱, 마디가 굵고 긴 손가락.
“정말 다 컸구나.”
그렇게 중얼거린 그가 입술에서 손을 떼어내며 강을 보고 웃었다.
그가 온 행복을 다 끌어안은 것처럼 행복해 보여 강은 그저 가만히 있었다.
먼 거리에서 볼 때면 사랑스럽고, 가까운 거리에서 보면 외줄을 타는 듯 두려운.
황제는 강에게 그런 사람이 되었다.
*
수도가 음울하게 푹 젖었다. 하늘로 갈수록 검은 농도가 짙어진다. 구름들은 뭉쳐 있었고 비는 굵고 세찼다. 여린 새싹들이 휩쓸려 내려갈 정도로 강한 비바람에 농민들은 집단으로 뭉쳐 새싹들이 쓸려가지 않게 했다. 본래는 왕부에서 강아지들과 놀았을 강도 농민들을 도와 밭으로 나왔다. 우의를 입었어도 비가 얼마나 들이닥치는지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다. 이른 계절에 맞지 않는 비는 정말로 태상황의 눈물 같았다. 일주일도 넘기지 못하고 각혈하며 죽어갔던 태상황. 그가 하늘에서 억울함을 토해내는 게 아닌가.
하지만 이미 살 만큼 살았고, 누릴 만큼 누린 태상황이 뭐가 그리 억울한 노릇이란 말인가. 죽은 자는 말이 없어야 했다. 죽은 자가 말이 많아봤자, 산 자들만 골치 아팠다.
“전하, 이만 가보셔도 됩니다. 이제 저희들이 하겠습니다.”
부락 우두머리가 굽실거렸다. 강은 햇볕을 오래 받아 그을리고, 주름진 그의 얼굴을 보며 온화하게 웃었다. 새의 깃털로 만든 우의에서 손을 빼낸 그는 진흙투성이인 백성의 손을 꼭 잡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내 식량과 물은 걱정 안 하도록 준비해놨으니, 마음 놓고 집으로 돌아가도 좋네.”
“전하….”
우두머리가 울먹거리며 바닥에 엎드리려는 것을 막았다.
“비가 와서 사방이 진흙일세. 엎드리지 말게나.”
강은 미리 준비해온 전을 우두머리의 손에 쥐여주고 뒤로 물러났다.
“의원에게 말해놓았지만 부족할 수도 있으니…. 물을 잘못 먹고 탈 나는 아이들이나 임산부가 있을지도 모르네. 아프면 바로 의원에게 데려가도록.”
“예, 전하!”
강은 마지막으로 싱긋 웃어주고 걸음을 옮겼다. 굳이 자신이 밭까지 나와 같이 일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이런 식으로 농사를 도와주고, 힘들 때 다독여주는 것만으로도 황제의 위신에 큰 영향을 주었다. 황제는 정말 특별한 일이 아니면 황궁 밖을 나올 수 없는 귀한 몸이니, 그를 대신해 친왕인 강이 그의 위엄을 보여줘야 했다.
이런다고 태자가 되는 것도 아니었으나, 이렇게라도 해서 친왕으로 일을 하고 싶었다. 대기하고 있던 담영이 다가와 강의 얼굴과 손에 물든 흙을 닦아주었다.
“전하, 손톱이 다 깨지고 엉망이 되셨습니다.”
담영이 속상하다는 듯 투덜거렸다. 강은 호쾌하게 소리 내어 웃으며 담영의 어깨를 두드렸다.
“아니, 사내가 손이 예뻐서 뭘 해.”
“폐하께서 좋아하시지 않습니까.”
그게 뭐 어때서. 강이 어깨를 으쓱였다. 손톱이 깨져 피가 흐르는 부위를 천으로 지혈했다. 따갑지만 참을 수 있었다.
“오랜만에 농사를 했더니 어깨가 아프구나. 오랜만에 저자에 가서 술이나 마실까?”
“폐하께서….”
“가끔 난 이상하단 말이야.”
강은 걸음을 멈추고 냉기가 서린 얼굴로 담영을 보았다. 강보다 살짝 작은 담영은 눈에 서린 강압적인 힘에 고개를 조아렸다. 강은 담영이 주었던, 이제는 붉어진 천을 내리며 말했다.
“넌 내 사람이 아닌 거 같아.”
“…전하, 이 나라의 모든 백성과 신하들이 가장 먼저 섬기는 건 당연히 천제 폐하이십니다. 전하께서도 아시는 사실이지 않습니까?”
너와 아무리 오래 함께했어도 나의 군주는 폐하라는 말에 강은 서서히 웃었다.
“맞는 말이야. 날 섬길 필요가 없지.”
중얼거리던 강은 웃음을 지웠다. 비가 강의 웃음을 다 씻어갔다. 강은 시선을 내리고 진흙 범벅이 된 가죽신을 보다가, 담영을 올려다보며 담담한 척 말했다.
“그래도 친우는 될 수 있잖아. 섬기는 건 아바마마여도 돼. 하지만 난 널….”
“절 친우라고 생각해주시는 겁니까.”
“그럼.”
강이 활짝 웃었다. 강의 얼굴에 피어난 봄꽃에 담영의 시선이 흔들렸다. 사실 이대로 강을 데리고 도망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암흑인 미래도 모르고 황제에게 안겨있는 강을 볼 때면, 황제가 주는 약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순종적으로 받아먹는 강을 볼 때면.
황제가 강을 볼 때의 시선과 강이 황제를 볼 때의 시선은 같은 듯했지만 결국 달랐다. 그들의 교차하는 시선이 도달하는 곳은 어디인가. 그곳은 아무도 모르는 미지의 폐허였다. 어쩌면 낙원이 될지도 모르는 황량한 폐허.
폐허가 겨울이 될지, 봄이 될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상황에 담영이 손을 잡은 건 황제였다. 황제가 강제로 강을 취하는 날, 담영은 그를 배신할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자신을 친우라고 여겨주는 강이 고마웠고, 미안했다.
담영은 초연하게 웃었다. 강이 알아가야 할 세계가 냉혹했다. 아버지에게 안기고, 아이까지 낳아야 하는 운명. 아니, 황제가 만들어낸 필연.
담영은 처음으로 두 팔을 벌려 강을 안았다. 빗물이 스며들었지만 담영은 강을 놓지 않았다. 강이 아무것도 모르고 음울하게 젖은 밭에서 웃음을 터트리고, 담영을 마주 안았다.
“담영아, 왜 그래? 어디 아프냐?”
“…아뇨.”
미안해서요. 당신을 강제로 보내야 하는데,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서요.
담영은 그의 어깨에 비에 눈물을 섞어 보냈다. 스미지 못한 눈물이 비와 하나가 되어 우의에 맺혔다.
그리고 사라졌다.
*
황제의 눈에 달이 떴다. 샘물이 고인 눈에 솟은 달은 찬란한 황금이었다. 그의 눈이 대전 바닥을 기었다. 시선은 창을 통해 스며든 그림자에 떨어졌다. 그림자의 끝에 서 있는 이는 자신에게 서슴없이 다가오는 시선을 감지했다.
“우리는 같은 배를 탄 거야.”
황제의 입을 열리며 노래를 부르는 듯 담담하고 유려한 말이 흘러나왔다. 대신관은 손을 맞잡고 고개를 조아렸다.
“폐하는 하늘이 선택한 자식이니, 신의 업을 대신하는 제가 어찌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이 모든 것도 하늘의 뜻.”
황제는 의자에 등을 기대었다. 그의 손이 팔걸이에 음각된 늑대의 발을 매만졌다.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백색 소매가 흔들거렸다. 바람 앞의 아슬아슬한 촛불처럼 연약하게 움직이던 소매가 한순간에 멎었다. 황제가 몸을 느리게 움직여 계단을 한 단씩 느리게 밟았다. 그의 백색 소매가 종아리 근처에서 요동쳤다.
황제의 사내답게 아름다운 두 손이 신관의 어깨에 올라갔다. 약간의 힘을 줘 어깨를 잡은 그가 미소 지었다.
“폭우가 끝나면 혼례를 준비하게. 가장 아름다운 날, 천자의 연인을 들여야 한다.”
“명심하십시오.”
신관은 황제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늘 여유가 팽팽하던 신관의 눈이 뾰족했다. 흐리멍덩하던 검은 눈은 밤인데도 또렷하게 빛이 났다.
“하늘은 늘 폐하를 주시하고 있습니다. 폐하께서 나라를 버린 순간, 하늘도 폐하를 버리실 겁니다. 그러니 항상 폐하께선 나라를 생각하셔야 합니다. 소수의 사랑하는 자의 목숨보다 다수의 사랑하지 않는 자들의 목숨이 소중합니다. 어느 쪽의 무게가 무거운지는, 폐하께서 잘 아시겠지요.”
하늘이 천자를 선택하는 확고한 원칙은 하늘이 가장 사랑하는 백성들을 지켜주는 자의 냉철함이었다. 황제는 그 원칙에 따라 백성을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그래야 했다. 그래서 원하지도 않는 여인들의 첩지를 받아 안아 자식들을 낳았다. 자신과 같은 군주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번만은 달랐다.
“…하늘도 아시는 거겠지.”
황제는 웃으며 신관의 어깨에서 손을 떼고 말했다.
“천자의 곁에 강이 있어야 천자가 나라를 잘 다스릴 수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지켜보시는 거야.”
그는 마지막으로 신관의 뺨을 감싸며 웃는 낯으로 중얼거렸다.
“천자가 모를 줄 알았는가?”
“그건 모든 천자들이 아셨습니다. 다만, 끝이 늘 좋지 않으셨죠.”
당신의 아버지를 포함해서. 신관의 눈이 그리 말했다. 황제는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자신의 턱에 손을 댔다.
“천자는 다르다.”
그는 두 팔을 벌렸다. 달빛을 온몸으로 막아낸 그는 자신이 넘치는 얼굴로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늑대의 이빨이 섬뜩하게 빛났다.
“천자는 절대 무너지지 않는다. 이곳은 천자의 나라이고, 천자의 세계이고… 그리고 천자의 아들이, 태자가 설 나라니까.”
방향이 왜곡된 연모는 일그러져서 흐른다. 그의 발끝에 고인 달빛 같다. 그 안에 고인 것은, 황제뿐이었다.
*
비가 그치고, 오랜만에 반가운 해가 떠올랐다. 창살의 문양이 그대로 비치는 걸 뜬눈으로 확인한 강은 벌떡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열었다. 차갑게 얼어붙었지만 상쾌한 바람이 불어 머리를 한 번 쓸고 지나갔다. 엉망이 된 머리를 대충 정리하며 강은 덩치가 커진 설을 끙끙거리며 안아 밖을 보여주었다.
“봐봐, 설아. 비가 그쳤다. 오늘은 나랑 같이 사냥터에 가자. 객들도 같이 오니 재밌을 거야.”
설이 멍! 하고 짖었다. 그게 귀여워서 강은 웃음을 터트리며 설의 머리에 자신의 얼굴을 비볐다.
“귀여운 것. 아무리 네 새끼들이 예뻐도 난 네가 제일 예쁘단다. 이게 부모의 마음인 걸까?”
설이 다시 멍! 하고 짖으며 앞발로 강의 얼굴을 쳤다. 난데없이 강아지에게 뺨을 맞았지만, 그것도 귀여워서 강은 코에 입을 맞추었다.
강은 사냥을 위해 행복을 입었다. 강의 머리와 잘 어울린다며 황제가 하사한 비단으로 만든 사냥용 행복이었다. 짧게 만들어졌지만, 사냥할 때 방해가 될까 봐 끈으로 소매를 여미고 화살과 활을 챙겨 설과 함께 사냥터로 향했다. 애마 바람이와 가장 아끼는 강아지 설과 나서는 사냥이라. 기분이 무척 좋았다. 강은 저자에서 유행하는 연가를 흥얼거리며 말을 타고 조심스럽게 수도를 누볐다.
가는 길에 물을 긷고 가는 여인이 넘어질 뻔했다. 아슬아슬한 뒷모습이 안타까워 말을 타고 쫓던 강은 결국 말에서 내려 여인이 머리에 인 물통을 잡아주었다. 처음엔 놀라서 욕지거리를 내뱉으려던 여인은 훤칠하고 잘생긴 강의 모습에 얼굴을 붉히고, 곧이어 강의 고급스럽고 화려한 행복에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강은 미소 지으며 여인의 손목을 잡았다.
“흙길이라 잘못하면 옷이 상하니 그만하게.”
“전하, 소녀가 들겠습니다. 이리 주시옵소서. 소녀가 들 수 있사옵니다.”
“그러면 저기까지만 들어주겠네. 나도 어차피 저쪽까지 가는 길이라.”
강의 다정다감한 말에 여인의 얼굴이 홍시처럼 변했다.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미남이 그와 잘 어울리는 목소리로 조곤조곤 얘기하니 마음이 설렐 수밖에.
강은 자신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하는 여인을 보다, 앞을 보았다. 물이 제법 무거웠다. 이렇게 무거운 걸 저렇게 작고 여린 여인이 들다니. 강은 얘기했던 것보다 좀 더 이동했다. 여인은 어쩔 줄 몰라 얼굴을 양손으로 감쌌다. 친왕의 호의에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이러다 큰 벌을 받게 되는 건 아닌지 안절부절못했다. 그녀의 걱정을 잘 아는 강은 사냥터에서 갈라지는 길에 멈췄다.
“자, 머리에 다시 얹어줄 테니….”
강이 웃음기 배인 목소리로 말하자 여인이 수줍게 고개를 숙였다. 강은 여인의 머리에 얹어진 천으로 만든 두터운 똬리를 고정해주고, 그 위에 물통을 천천히 올려주었다. 나무로 만든 통이 똬리에 위태롭게 걸쳐졌지만 여인은 능숙하게 손으로 잡고, 치마를 들며 예의를 표했다.
“잘 가게.”
바람에 휩쓸리지 못한 강의 다정하고 진중한 목소리에 여인의 눈이 흔들렸다. 사랑에 빠진 눈으로 강의 듬직한 등을 보던 그녀는 시무룩한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어차피 이루지 못할 연이었다. 그는 황제의 아들, 자신은 천한 집안의 딸. 강과 같이 길을 걷는 내내, 망상으로 강과 혼인을 했던 여인은 한숨을 터트리고, 눈빛을 고친 후 서둘러 집으로 향했다.
두 개의 갈림길에서 사냥터로 느긋하게 향하던 강은 설의 목줄을 풀어주었다. 설은 이곳에 오면 자유롭게 들판을 뛰어놀았다. 한참을 뛰어놀다가, 강이 오지 않으면 뒤를 돌아보고 멍! 하고 짖었다. 어서 오라는 뜻이었다.
늑대나 개나…. 강은 황제처럼 뒤를 물끄러미 보는 설을 보며 바람이를 재촉했다.
“자, 가자! 오늘은 비가 그쳤으니 마음껏 달려도 된다!”
돌풍처럼 달리는 설을 쫓아 바람이가 달리고, 그 위에 앉은 강은 마구잡이로 부는 바람을 정통으로 가로지르며 들판을 달렸다. 강의 손에 들린 화살은 사냥터 들판에 뿌려진 동물들의 목을 향해 날았다. 강은 환호하는 사람들 속에서 눈부시게 빛나는 자였다. 하얗고 고른 치열이 드러나게 웃었다. 드러난 목덜미는 찬란했다. 흐르는 땀방울도 청아하게 느껴질 정도로 해맑게 웃은 강은, 보석을 갈아 만든 존재 같았다. 혹은 보석을 장인이 조각해 만든 사람처럼 들판의 그늘 속에서도 빛을 발했다.
해가 하늘의 가장 꼭대기에 걸려 강이 눈부시게 빛나던 날, 강은 황제의 비가 되었다.
*
하늘의 말씀이 내려왔습니다.
대신관의 나직하고, 묵직한 한마디에 황가의 대부분 사람들이 집합했다. 단 한 명, 영현왕만 제외하고서. 무언가가 이상하다고 느낀 여 소의였지만, 간혹 몸이 아파 불운을 옮기거나, 신관의 제지로 참석하지 못 하는 경우가 있었기에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앞을 보았다. 식은 경건하지만 지루하게 진행되었다. 이제 드디어 후궁이 점지된 순간, 여 소의는 반쯤 내리뜨고 있던 눈을 떴다.
식에서 한 번도 웃지 않던 황제가 입가에 웃음 같은 것을 걸고 있었다. 여 소의는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역시, 뭔가 이상하다.
“영현왕은 이제 친왕이 아니다. 그는 천자의 후궁이며….”
고의적으로 비빈들의 자식들을 막았던, 자신의 자식들까지 죽이고 아버지마저 죽여 강을 황후로 삼고자 했던 황제의 희열에 찬 목소리가 종소리처럼 점점 확장되어 울렸다.
“희비다.”
단 한 명을 위해 그가 저지른 죄는 단연 패륜이었다.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랑이었다. 자신의 일부였던 존재를 지키기 위한 극악무도한 사랑이었다.
그러나 상관없었다. 꿈에서처럼, 너만이 날 이해해준다면. 너만이 날 사랑해준다면, 다 버릴 수 있었다.
그러나 모든 걸 다 버리면 넌 죽어버리겠지. 네가 죽고, 내가 죽길 바라는 사람이 담장 너머에 깔려있다.
이득을 위해 가족을 방패 삼아 자신을 지켰던 황제는 처음으로 죽음의 의미를 깨닫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눈이 매섭게 내리던 날. 이윽고 찾아온 설국에 만났던 아이는 빨간 볼에 초승달 같은 눈웃음을 지을 줄 아는 귀염둥이였다. 건방지게 황제에게 ‘강아지야.’라고 말했던 꼬마. 착하다며 당과를 하나 나누어주겠다고 씩씩하게 말하던 꼬마.
그때부터였나. 사실 언제인지 아는 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좋았다. 아이와 있는 모든 시간이. 더 이상의 인내는 끝이었다. 황제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고, 창문이 닫혔다. 황제가 직접 강의 세계에 뛰어들었다. 강은 불청객이 불청객인지도 모르고 하얗게 질린 얼굴로 그를 마주했다.
‘내 아가.’
그리고 이제는 내 희비.
황제가 소년처럼 웃었다.
*
패를 올리고, 다소곳한 자세로 황제를 기다리던 강은 차츰 열리는 문에 몸을 굳혔다. 수많은 사람의 보호를 받으며 들어오는 황제가 가장 먼저 보였다. 제사가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여전히 화려한 12류 곤관에 제사용 백색 용포를 입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천명을 받고 놀라 굳은 강은 그의 발걸음에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뒤로 물러나고 있었다. 황제가 늘 그렇듯 다정하고 온화하게 웃고 있는데 눈빛이 스산했다. 어딘가 묘하게 틀어진 느낌이었다.
강은 덫에 걸린 사슴처럼 큰 눈을 흔들며 뒤로 계속 물러나다 벽에 부딪혔다. 등에 닿은 딱딱한 벽에 그제야 정신을 흠칫 차리고 정면을 보았다.
어느새 황제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황제의 곤관이 움직임에 맞춰 차르륵, 소리를 내며 강의 무의식을 일깨웠다. 황제의 용포 자락 아래 금으로 장식된 신이 보였다. 강의 머리보다 몸이 먼저 움직여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바닥에 손을 대었다.
“신 영현왕, 고귀한 천제 폐하를….”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깃털처럼 가벼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강은 잘게 떨리는 눈으로 바닥을 보며 어깨를 움츠렸다. 온몸이 굳어서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황제는 엄연히 이 나라의 군주였고, 또한 자신의 아비였는데. 어떻게 희비가 되었다는 천명이 내려온 것인가. 강의 머리에 오로지 그 생각만이 화살처럼 꽂혀 아무것도 맴돌지 않았다.
이렇게 혼란스럽고 무서운데, 정작 자신을 비로 맞아들인 황제는 아무렇지 않아서 이상했다. 보통 아비라면, 이런 반응이 나올 수 없었는데. 강의 바다처럼 넓고 듬직한 어깨가 겁먹은 초식동물처럼 떨리는 걸 눈으로 더듬어 확인한 황제가 은은한 미소를 머금었다.
“무서운 게냐?”
황제가 능청맞게 물었다. 강은 겨우 억눌렸던 숨을 터트리며 조곤조곤 대답했다.
“…예, 폐하.”
개구지게 웃던 황제가 깊은 수면 아래로 웃음을 갈무리하고 턱에 손을 대며 능글맞게 연기에 들어갔다. 아직은 태연한 황제의 가면이었다.
“난 너를 단 한 번도 무섭게 대한 적이 없는데 이상하구나. 무엇이 그리 무서운 것이냐. 비가 된 것?”
강의 숨소리가 점차 흔들리고, 끝내 멎어갔다. 강은 숨 쉬는 것도 잊은 사람처럼 떨리는 눈으로 황제의 신이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의 신은 용포 자락에 천천히 가려졌다. 강의 시야에 당도한 것은 용포에 가려진 튼튼한 그의 허벅지였다. 황제는 강의 시선이 자신의 상체를 타고 올라오기 전에, 두 팔을 이용해 강압적으로 강을 일으켜 세웠다. 팔뚝에 흐르는 피가 안 통할 정도로 잡은 힘에 강의 입에서 아, 하는 단발적인 신음이 나왔다.
한 번도 이런 식으로 자신을 대한 적 없는 황제였는데.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미약하게 반항하였지만 그의 아름다운 미소에 시선이 멍해졌다. 눈꼬리가 아래로 호선을 그리고, 입술 끝은 미려하게 올라가 있었다.
“고작 그걸로 겁을 먹으면 안 되는데…. 앞으로 정사도 해야 하고, 아비의 애도 낳아야 할 터인데.”
그의 이상한 중얼거림이 끝나고 나서 입술에 말캉하고 부드러운 것이 닿았다. 따뜻하고, 촉촉한 혀가 나와 입술을 야릇하게 쓸었다. 강은 그가 어린 시절 가르쳤던 대로 입을 열어 혀를 받아들였다. 황제의 입술은 허락 아닌 허락을 받아들이고 거침없이 여린 점막을 빨아들였다. 서로 맞닿은 입술에 끈끈한 타액이 교환되고, 젖은 신음이 연신 이어졌다.
“음… 아, 잠시…! 아읍….”
강의 손이 허공에서 움찔거렸다. 황제의 등을 잡지도 못하고 공중에서 오므라들며 당황해 어쩔 줄 몰랐다. 점막이 달아오르는 감각이 야릇했다. 입을 통해 오가는 숨에 목구멍이 간질거렸다. 그와 꽉 붙어있는 입술은 물리고 빨려서 아픈데, 그리 나쁘지 않았다.
약을 받아먹을 때처럼 혀를 이용해 그의 입을 오가던 강은 스며드는 빛에 정신을 차리고 몸을 뒤로 물렸다. 아래가 반응하고 있었다.
강이 놀라 입술을 떼어냈는데도 타액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황제가 혀로 끊어내고 숨을 겨우 몰아쉬는 강의 얼굴을 하염없이 만지며 말했다.
“강아.”
아래가 움찔하고 반응하는 입맞춤은 처음이었다. 더군다나 상대가 아비였다. 강의 얼굴은 이내 창백하게 질려갔다.
“아, 아바마마… 저, 저는….”
강이 입술을 가리려 했지만 황제가 윤허하지 않았다. 황제는 강을 침대에 앉혀 소매에 손을 넣었다. 손끝을 세워 탄력적인 피부를 매만졌다. 그 손길에 담긴 의도까지 모를 정도로 우매하지 않았던 강은 그의 손을 거부했다. 탁, 하고 손이 내쳐진 황제의 눈이 점차 가늘어졌다.
“아바마마! 소자는, 소자는 아바마마의 자식이옵니다. 소자가 어떻게 아바마마의 비가 될 수 있겠습니까? 분명히 무언가 잘못된 게 틀림없습니다.”
강이 바닥에 엎드리며 외쳤다. 제발, 그가 잘못되었다고 말해주길. 자신이 비가 되었다는 게 꿈이라고, 이 모든 게 잘못된 것이거나 우스갯소리라고 말해주길 바라고 있었다.
강의 속마음을 뻔히 알면서도 황제는 지루한 듯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이제 참을 수 있는 지점을 넘어섰다. 그나마 강이라서 이 정도로 참아주고 봐주는 것이었다. 다른 이었다면 당장 늑대가 되어 처음이건 뭐건 그런 건 따지지 않고 박아댔으리라.
황제는 심드렁한 얼굴로 강의 외침을 무시하고, 손을 내려 강의 뺨을 잡아 올렸다. 아들의 잘생긴 얼굴이 보였다. 검은 머리와 대조적인 깨끗하고 하얀 피부, 크고 순한 검은 눈, 오뚝한 코, 보드라우며 달콤한 입술. 특히 입술이 붉고 아래가 통통하여 빨기 좋았다.
“잘못 말하였구나.”
황제가 타박하며 강의 목을 대놓고 음란한 의도를 담아 매만졌다. 연강은 두려움과 불안으로 떨리는 눈으로 황제를 보았다. 인내가 모조리 사라진 미소를 지으며, 황제가 말했다.
“소자라고 말하면 안 된다. 앞으로 신첩이라고 칭하거라.”
“예…?”
강이 아연실색하여 멍하니 되물었다. 황제는 아들을 보며 유려한 미소를 지었다. 아들의 뺨에서 나비처럼 노닐던 손을 움직여 아들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자신이 내린 약초로 정성껏 씻고, 기름을 곱게 발라 단정하게 묶은 머리가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황제는 아직도 현실을 거부하는 아들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희고 고운 손을 느릿하게 움직여 아들이 쓴 친왕의 상징을 풀어버렸다.
강은 더 이상 친왕 영현왕이 아니라, 자신의 비인 희비였다.
그의 단호하고 음험한 손짓으로 무언의 협박을 알아낸 강이 고개를 저었다. 황제는 그걸 허용하지 않고 머리를 연신 만져주며 입을 열었다.
“아비의 후궁이 되는 것이 그리 싫은 것이냐.”
아비, 후궁….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개의 단어가 황제의 우아한 입을 통해 나오고 있었다. 강은 그의 다정한 손길에 눈물이 솟구쳤다. 이렇게 다정하고 온화한 아버지인데, 어떻게 비가 되라며 친왕의 관마저 벗겨 던질 수가 있을까. 소리 없이 고이기 시작한 눈물을 엄지로 닦아주며 “쉬이….” 하고 달래주었다.
어릴 때 아파서 끙끙 앓을 때처럼, 변함없는 그의 목소리에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황제는 싱긋 웃으며 그 눈물을 거침없이 털어냈다. 그리고 손에 남은 물기를 맛본 그가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
“강아.”
황제는 강의 입술을 검지로 누른 채, 자신의 말을 함부로 이어갔다. 눈빛은 냉정하고 행동은 더할 나위 없이 상냥하였으며 입은 조심함이 없었다.
“그대가 천자의 아이를 낳으면, 태자로 삼아주겠다. 그리하면 그대는 더 이상 후궁이 아니야. 태자의 어미이자, 황후가 되는 것이다.”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태자로 삼아주겠다는 말에 연강은 몸부림쳤다. 후궁도 받아들이기 힘든데, 아이를 낳고 황후가 되라니.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강이 황제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뒤로 물러났다. 엉덩방아를 찧은 강이 흐느껴 울며 고개를 저었다.
“시, 싫사옵니다…!”
자신을 부르는 칭호가 바뀌었다. 황제는 더 이상 영현왕을 아들로 대하지 않았다. 자신의 후궁으로 대했다. 황제는 싫다고 거부하는 강의 손목을 잡아 품으로 당겼다. 황제는 어깨를 밀고 몸을 비트는 강의 손목을 억지로 잡아 침대에 밀어붙였다.
“혼례식 날 보았겠지?”
눈물을 삼키는 강의 얼굴이 혈색이 없어졌다. 강이 입을 열기도 전에 선수를 가로챈 황제가 웃으며 말했다.
“이 입술과 비문으로 천자의 남근을 받아야 한다.”
혼례식 날, 바닥에 눕혀져 친지들이 보는 앞에서 범해졌던 여인이 떠올랐다. 달아오른 몸을 비틀며 간신히 늑대의 어마어마한 양물을 받아들이던 여인.
그리고 자신을 똑바로 쏘아보며 헐떡이던 은색 늑대. 강이 놀라서 황제를 불렀다.
“아바마마!”
강을 강제로 어르고 달래 침상에 눕히던 황제가 피식 웃었다. 황제는 인내심이 사라지고 조급해졌다. 그는 먹물처럼 이불에 펼쳐진 강의 머리를 버릇처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아바마마라…. 나쁘지 않구나.”
황제는 발버둥치는 강의 손목을 잡아 눌렀다. 아름다운 용안에 강이 넋을 잃고 딸꾹질을 했다. 황제는 고개를 숙여 강의 체취를 맡았다. 목덜미에 코를 파묻고 있는 힘껏 강의 냄새를 빨아 당겼다. 강이 “아아….” 하고 힘없이 울었다. 아래로 내리뜬 황제의 금안이 위로 올라왔다. 황제는 눈물로 흠뻑 젖은 아들의 눈을 마주 보며 해맑게 웃었다.
“아비의 자식을 낳아라. 그리하면 널 황후로 만들어주마.”
황제는 바들바들 떨리는 강의 손등에 입술을 살포시 내렸다. 매섭게 뛰는 강의 맥박이 입술의 얇은 피부를 통해 느껴졌다. 강이 무서워하고 있다. 처음 겪어보는 황제의 고압적인 태도에 오들오들 떨며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다.
어렸을 때 아무것도 몰랐던 아이를 직접 가르쳤던 것처럼, 정사도 하나하나 가르쳐줄 생각이었다. 처음이 다정하든, 강압적이든 어쨌든 아이는 겁을 먹으리라.
그러니 마음대로 해도 상관없겠지.
황제는 웃음을 지우고 침상에서 일어나려 하는 아들을 내리눌렀다. 손목이 양쪽으로 잡혀 눌린 강은 황제를 응시하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싫사옵니다.”
황제는 아랑곳하지 않고 드러난 목덜미에 입술을 대었다. 강이 놀라 어깨를 비틀었으나, 황제가 입을 벌려 살결을 빨아들이자 곧바로 행동이 능실의 얼음처럼 딱딱하게 굳었다.
“아….”
이상한 감각이 피어올랐다. 열이 감도는 피부 위를 깃털로 살랑살랑 건드는 듯한 기묘한 느낌에 강이 앓는 소리를 냈다. 황제는 강의 입술이 안으로 오므라들고, 달싹거리는 걸 곁눈질로 살피다가 강의 귀에 대고 입을 움직였다.
“내 그대를 소중히 여겨 초야는 인간의 모습으로 안아주겠다.”
그 누구에게도 그리 해주지 않았다. 강은 그 사실을 알아야 했다. 본래대로라면 제사를 통해 혼례 날을 잡고, 친지들이 보는 앞에서 늑대의 모습으로 초야를 가져야 했지만 강의 처음은 부드럽고 다정하게 해주고 싶었다.
“…제발.”
황제의 말은 꿀에 저민 것처럼 달콤하고 끈적거렸다. 강은 마지막으로 그 말에 매달려 보았다. 지금이라도 그가 멈춰준다면. 애원을 담아 그를 보았지만, 다가온 것은 밀어내는 손길이 아니라 끌어들이는 입술이었다. 그의 입술이 위에서 아래로, 강의 입술을 완전히 포갰다. 깊숙한 입맞춤에 강의 손이 오므라들었다. 황제는 강의 손목을 잡고 있던 손을 움직여 깍지를 꼈다. 두 사람의 손이 서로에서 넝쿨처럼 얽혀들고, 혀는 타액을 줄줄 흘러내리며 엉켜들었다.
“아, 읏… 하읏…!”
황제의 손에 잡힌 손이 가늘게 떨렸다. 추웁, 춥, 하고 질척거리는 소리가 연달아 울려 퍼질 동안 강은 한 번도 황제에게 반항다운 반항을 하지 못했다. 친아비인 걸 떠나, 그는 이 나라를 다스리는 천자(天子)였다. 그의 몸에 상처를 냈다간, 자신뿐만 아니라 친어미와 그와 관련된 자들이 모조리 죽을 것을 알았기에 쉽게 반항할 수 없었다. 황제는 농밀하고 느릿하게 입을 맞추었다. 침상에 누운 강의 다리는 그의 혀가 들어와 입천장과 치열을 애무할 때마다 움찔거렸다. 황제의 널찍한 등에 완전히 가려진 강은 부족한 숨을 쉬기 위해 고개를 틀었지만 그때마다 황제가 쫓아와 입술을 머금었다.
“아… 흐…!”
황제가 아랫입술을 빨며 잘근잘근 깨물자 강이 오묘한 신음을 흘리며 바들바들 떨었다. 혀로 입안 구석구석을 탐닉하던 황제는 강이 눈을 질끈 감고 있는 걸 확인하고서, 웃었다. 입을 맞댄 채 웃는 건 황제의 버릇이었다. 허공에 부유하는 황제의 웃음소리가 분위기를 느슨하게 만들었다. 강은 황제의 입맞춤이 깊어질 때마다 눈을 살짝 떴다. 어쩌면, 그의 웃음소리가 과거와 똑같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후, 아….”
입술을 떼어내자 강이 콜록거리며 숨을 들이마시기 시작했다. 황제와 약을 빌미로 입을 맞춘 것 빼고는 여인이나 사내와 교접을 모르니, 당연한 행동이었다. 정사 전 입맞춤이나, 애무나, 교접의 방식이나 체위나…. 모든 걸 다 가르칠 생각에 설레어 가슴이 뛰었다. 그 광경을 사관이 기록하기 시작했다. 황제가 감추려 하는 모든 것까지 사관이 알아내 춘추로 남길 터였다.
황제는 입술을 느리게 떼어내었다. 자신의 상체에 감금된 아들을 사랑스러운 눈으로 녹일 듯이 보며 입술을 닦아주는데, 강이 고개를 모로 돌렸다. 그게 불쾌했다. 황제는 강의 턱을 잡아 강제로 자신을 보게 만들었다.
“무서우냐?”
황제가 재차 물었다. 강은 이목구비를 섬세하게 더듬고 음미하는 금안 속에 감춰진 그의 본능을 엿보고 입술을 깨물었다.
그가 이런 식으로 보던 게 이런 의미였나. 혼례를 필사적으로 막고, 혼담도 듣는 척하며 결국엔 걷어차 버리고. 어머니나 형제들을 빌미 삼아 자신을 안으라고 명령하던 과거의 황제와 지금의 황제가 겹쳤다. 아무리 자기 아버지지만 조금 이상하게 느껴졌었다. 황제가 싫다는 건 아니었다. 가끔, 정말 이렇게 가끔 자신을 안고 애지중지할 때면 이상한 기분이 들었을 뿐이었다.
왜 그때 이상한 기분이 들었는지 알 거 같았다. 황제는 이런 감정을 줄곧 숨겨왔던 것이다. 자신이 도망칠까 봐, 자신이 지레 겁을 먹고 황제를 거부할까 봐.
황제는 무서워하는 강의 뺨을 매만지더니, 엄지로 입술을 만졌다.
“초야는 항상 무서운 법이지. 그대만의 문제는 아니니 걱정 말거라.”
강이 무서운 것은 그것이 아니었다. 친아버지와 몸을 섞는다는 것이 납득이 안 되어서 무서운 것이었다. 강은 황제의 손에서 벗어나고 싶어 상체를 뒤로 움직였으나, 황제가 머리채를 잡고 당겼다. 아프지 않았으나 상당히 강압적이었다. 황제가 다정하긴 했으나 선이 있는 다정함이었다. 황제에게 잡힌 채, 강은 눈을 뜨고 황제를 보았다.
“소자는 아바마마의 아이를 낳고 싶지 않습니다. 황후가 되는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소자는 그저….”
“그대가 천자의 말을 거부한다면, 그대의 어미가 죽을 텐데?”
죽음이란 말을 직접적으로 담은 황제가 고개를 젖혔다. 눈을 감고 생각하던 황제가 천천히 창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천자의 뜻을 거부하고, 하늘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벌을 받게 된다. 그대만 죽는 것이 아니야. 그대의 어미와 소중한 이들은 모조리 죽을 것이다.”
“아바마마, 제발….”
“난 그대를 안고 싶어.”
그렇게 중얼거린 황제가 강의 머리채를 잡아 움직였다. 엄청난 힘이었다. 보료에 강제로 엎드리게 된 강이 눈을 부릅떴다. 황제의 손이 강의 둔부에 닿았다. 메마른 비문에 닿은 손가락이 음란하게 안으로 파고들었다. 강의 눈꼬리에 눈물이 맺혔다.
“아, 으… 아파… 아픕니다, 아바마마…. 아바마마!”
“듣기 좋구나. 계속 부르거라.”
짐짓 다정한 사내인 것처럼 웃은 황제가 속삭였다. 강이 고개를 저었다. 이럴 수는 없었다. 보를 꽉 움켜잡은 강의 손에 힘줄이 돋아났다. 황제에게 저항하지 못하고, 보를 움켜잡은 강이 울음을 터트렸다. 안을 파고드는 손가락이 더 늘어났다. 메마른 비문을 헤집는 손가락에 강이 숨을 헐떡였다. 처음 겪어보는 고통이었다. 예전에 고열에 시달릴 때도 이렇게 아프지 않았는데.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던 강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자신을 끌어안는 팔을 보았다. 황제가 비문에서 손가락을 빼내고, 강을 품에 안았다. 흐느껴 우는 강의 턱을 잡고 입을 맞추었다. 황제의 입술이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단 과실을 빠는 것처럼 아들의 입술을 맛본 황제가 웃으며 강을 침상에 똑바로 눕혔다. 천장의 격자무늬가 눈에 아로새겨졌다. 강은 뿌옇게 차오른 세계에 참담함을 느끼고, 손을 올려 얼굴을 가렸다.
“천자가 말했을 텐데.”
황제가 냉엄한 목소리로 다그치자 강은 학습된 반응으로 손을 내려 황제를 보았다. 발갛게 물든 눈가와 투명한 눈물이 이슬처럼 떨어지는 게 보였다. 입술과 양 뺨, 눈가가 풋풋한 선홍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황제는 그 모습을 꿀 떨어지는 눈빛으로 지켜보며 웃었다.
“천자를 보라고 말했을 텐데, 보지 않는구나.”
“보, 보고… 보고 있습니다.”
강이 딸꾹질을 하면서 황제를 보고 흐느꼈다. 그러면서도 중얼거리며 대답을 했다. 비록 발음이 울음에 뭉개지고, 속도도 느리긴 했으나 의사 표현은 확실했다. 황제가 다리 사이를 파고 들어와, 발목을 잡고 벌리자 눈물이 더욱 그렁그렁 매달렸다. 강은 눈물을 손으로 슥 닦아내고 황제를 보며 겁에 질려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그런 식으로…하시면… 소자는….”
너무 부끄럽다고, 보지 말라고 말하고 싶은 강의 입이 조개처럼 다물어졌다.
“처음은 다 그런 법이라니까.”
쉬, 하고 달래준 황제가 강의 바지를 완전히 벗겨 던져버렸다. 탄탄한 근육이 잡힌 예쁜 다리가 허공에 드러났다. 황제는 강의 발목을 잡고 부채처럼 활짝 벌렸다. 강이 놀라 눈이 커지고 동공이 파르르 떨렸다.
안 돼…. 강의 입이 소리 없이 중얼거렸다.
그러나 황제는 웃으면서 강의 축 늘어진 남근을 손으로 잡았다. 자신을 닮아 건실하고 큰 남근이었다. 물론 황제의 남근이 더 컸다.
“부드럽군.”
황제가 강의 남근의 귀두부터 탱탱한 알까지 한 손으로 문지르며, 털이 없는 피부를 만졌다. 하얀 피부에서 유난히 분홍빛으로 물든 남근이 참으로 예뻤다.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매끈한 피부를 열이 오른 뜨끈한 손바닥으로 만지던 황제는 고개를 들었다. 강이 충격에 빠져 바들바들 떨고 있다. 처음이라면 겪을 부끄러움, 수치심, 두려움…. 등이 혼합되어 자신을 응시하는 검은 샘물을 보고 입술 끝을 올렸다.
“처음이니까 아비의 입으로 알려주마. 그러나 그다음은 공평하게 그대의 입으로 해다오.”
“아! 아, 싫어요…! 아읏!”
황제는 강의 울부짖음을 뒤로 하고, 입을 벌려 튼실한 아들의 남근을 머금었다. 한 번도 누군가의 것을 머금어주고, 빨아준 적이 없었다. 오로지 아들뿐이었다. 털이 없는 강의 남근을 입으로 강하게 빨아들였다. 볼이 홀쭉해졌다. 황제의 12류가 강의 배에 닿아 차가운 느낌이 들었다. 강은 흠칫 떨며 도망가고 싶었으나 황제가 종아리와 허벅지 사이에 손을 넣어 벌린 상태라 그러지도 못했다.
“아으, 아…. 이, 이상합니다… 으응… 아, 아바마마! 하읏, 거기는… 아… 으읏!”
강은 처음으로 남근에 닿은 축축하고 뜨거운 공간에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반항은커녕, 우는 것도 무서워 입을 손으로 틀어막고 고개를 이불에 대고 비볐다. 추웁, 춥, 하고 타액을 빨아들이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렸다. 마치 벼락처럼, 옆에서 치는 것 같았다. 손바닥으로 입을 막아보았으나 아랫배에서 끓기 시작한, 머리를 아득하게 만드는 쾌감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황제가 강하게 힘을 주어 빨아주고, 눈을 감아 혀를 내밀어 혈관을 다 핥아줄 때마다 신음이 가늘게 높아졌다.
“아으응…. 아, 흐응…!”
처음이라서 그런 걸까. 눈앞이 뿌옇고 하얗다. 보이는 건 오르락내리락하는 황제의 화려한 곤관뿐이었다. 아버지가 아들의 남근을 빨고, 허벅지를 꽉 잡아 벌려 타액을 골짜기에 줄줄 흘려보내고 있다. 역사서에 한 번도 적히지 않은 광경이 노골적으로 선명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핫, 아, 아윽, 아…. 아바마마, 아, 아바마마! 아, 시, 싫…!”
생각을 한순간에 멀리 보내버리는 쾌감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관통했다. 손과 발이 곱아들었다. 숨이 불규칙적으로 가빠졌다. 초점이 진작 흐려져 황제밖에 보지 못했다. 황제는 아들의 남근을 빨면서 눈웃음을 살살 지었다. 아들의 남근은 어여뻤고, 그만큼 좋았다.
아들은 처음 겪어보는 쾌감에 온몸이 굳어서 신음하며 이불을 꼭 쥐고 있었다. 이불을 쥔 팔 근육이 요동치는 게 아들의 가랑이 사이에서 잘 보였다. 활을 쏘느라 단련된 팔 근육을 빨고 싶었다.
황제가 입술을 오므리고 강의 귀두를 빨아들이면서 혀를 내밀어 요도를 쓰는 순간, 강의 몸이 굳었다. 목이 젖혀지며 목젖이 위아래로 움직이는 게 보였다. 아…. 하고 단발적으로 흘리는 신음 끝에 혀에 비릿한 맛이 났다. 강은 고작 한 번의 사정으로 몸에 힘을 풀고 고개를 모로 돌린 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땀에 젖은 가슴팍에 꼿꼿하게 선 분홍색 유두가 먹기 좋아 보였다.
그러나 지금은 먹을 것이 따로 있었다. 황제는 신음도 내뱉지 못하고 겨우 숨만 이어가는 강의 다리를 어깨에 걸쳤다. 고개를 숙이면서 손바닥에 강의 정액을 뱉어냈다. 다리가 들어 올려지는 느낌에 정신을 잠시 잃었던 강이 눈물에 엉킨 속눈썹을 움직여 눈을 떴다. 눈물이 메마르지 않은 눈이 힘없이 자신을 보고 있었다. 황제는 강이 흐느끼는 듯한 소리를 내며 고개를 바로 하고 거부하려 하자, 강의 가슴팍을 손바닥으로 눌러 제지하며 꽉 닫힌 비문에 강의 정액을 발랐다.
“그대로 넣어도 상관은 없다만….”
“으…!”
황제는 여린 살이 촘촘하게 맞물린 비문을 미적지근한 온도를 머금은 정액으로 대충 문지르다가, 손가락을 하나 넣었다. 안은 아까 손가락으로 가늠했지만, 역시나 너무 좁고 뜨거웠다. 내벽이 끈덕지게 달라붙어 손가락을 놔주지 않았다. 황제는 손가락으로 내벽 주름을 세어보듯 섬세하게 매만지며 출입을 반복했다.
강은 고통에 고개를 저으며 신음했다. 아픔에 못 이겨 황제의 어깨를 밀려던 강은 멈칫하고, 그의 옷깃만 살며시 잡았다. 옷깃을 잡은 손등이 힘없이 파들거렸다. 강은 샘솟는 눈물을 또르륵 흘러내리며 입술을 달싹거리며 말했다.
“아픕니다…. 더 하면, 정말… 너무….”
강은 차마 말을 다 잇지 못하고 더듬거리며 눈을 내리깔았다. 황제의 용포를 잡은 손에 힘이 빠져나갔다. 황제는 강의 손이 흘러내리기 전에, 손가락 하나를 더 넣어 두 개를 이용해 안을 벌려보았다. 그러나 안은 매우 질척이고 단단해 쑥 들어가지도 못하고, 내부의 조임을 받아야 했다. 황제는 손가락 끝까지 밀어 넣어 벌리다가 아파오는 남근을 잡고 비볐다. 강은 손가락과 비교도 안 되는 두툼함에 겁을 먹고 황제의 용포를 양손으로 잡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 아파요…. 아바마마… 거기는…. 드,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안 되기는.”
황제가 피식 웃으며 힘을 실어 가장 두툼한 부분을 넣기 시작했다. 가장 조임이 심한 입구가 벌어진다. 아주 조금씩, 서서히, 황제의 것에 맞춰져서. 옷깃을 잡은 손등에 힘이 들어가 힘줄이 곤두섰다. 강의 입이 떨리면서 벌어졌다.
“아, 아프… 으! 아…. 으읏… 아흑….”
황제는 강의 다리를 활짝 벌려, 자신의 것이 어느 정도 들어갔나 확인했다. 어린아이 손목보다 두툼하고 단단한 게 강의 여린 내부를 짓누르며 들어가고 있다. 내부는 손가락으로 맛보던 것보다 더 집요하게 조였다. 남근에 달라붙는 내벽에 황제의 눈이 사르르 풀어졌다.
압도적인 쾌감이었다. 이런 건 처음 겪어보았다. 수없이 많은 비빈들, 사내를 안아보았으나 격통이 가슴을 치고 단숨에 기분을 고양시켜주는 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좋았다.
“하아….”
황제의 입에서 들뜬 신음이,
“아파…. 흐읏….”
희비가 되어 황제의 남근을 받는 강의 입에선 울음이 터져 나왔다. 촘촘하게 말려있던 입구가 남근에 의해 미끈하게 펴졌다. 약간의 움직임이 더해진다면 금방이라도 찢어질 것 같았다.
“이 비문으로 천자의 씨를 받아들여 아이를 낳아야 한다.”
천천히 벌어지는 내벽에서 고통이 시작되어 전신을 엄습했다. 강의 얼굴이 엉망으로 일그러지고, 입이 벌어져 앓는 신음이 나왔다. 강이 아파, 아파라고 중얼거리며 몸을 뒤틀었다. 감당하기 힘든 고통이었다. 몸이 둔부를 시작으로 두 쪽으로 쪼개지는 것 같았다. 강이 숨도 못 쉬고 아파하자, 황제가 삽입을 잠시 멈추고 고개를 숙여 입을 맞추었다. 황제의 혀가 들어와 입안에서 애정을 퍼부었다. 그래 봤자 아래에서 다시 삽입을 시도해서 집중이 되지 않았다. 아래에서 밀려오는 아픔에 입술이 힘없이 헐떡였다. 강의 숨을 받아낸 황제의 입술이 떨어졌다. 강이 눈을 감자, 눈물이 뚝 아래로 떨어졌다. 속눈썹이 온통 눈물에 젖어 반짝거렸다.
“아바마마, 아픕니다. 너무 아파요. 너무 아파서, 소자는 아이를, 낳지 못할 거 같습니다.”
그러니 제발 그만해달라고, 강이 간접적으로 빌었다. 그러나 그 속내를 알면서도 황제는 상냥하게 웃으며 남근을 뿌리까지 다 넣었다. 까슬까슬한 음모가 둔부에서 느껴졌다. 강이 바들바들 떨었다. 내부에 가득 찬 황제의 남근이 곧 움직일 것이라고 생각하니 두려웠다. 저 거대한 것이 움직이다니. 아마 찢어져서 피가 흐를 것이다. 제대로 걸을 수나 있을까. 온갖 두려움이 머리에서 구름처럼 떠다녔다.
“다 들어갔는데 엄살이 심하구나. 이 정도면 아이도 낳을 수 있다. 걱정 말거라.”
“아바마마…!”
황제가 울부짖는 강을 내리누르고, 허리를 움직였다. 황제의 남근이 내벽을 가르며 들어와 퍽퍽 처박았다. 점막이 다 뜯겨나갈 거 같았다. 사람의 몸에 딸린 것이 아니라 흉기 같았다. 안을 휘젓고, 찢을 것처럼 박아대는 남근에 강은 하염없이 울었다.
“응, 아, 아흑, 아! 아으읏!”
얼굴이 눈물로 푹 젖었다. 황제는 그것도 사랑스러운지, 혀로 눈물을 핥았다. 황제의 금안과 입술, 그리고 손은 이리도 다정한데 하반신은 자비가 없어서 눈물이 흘러넘쳤다. 현실을 받아들이기도 전에 지독한 고통에 허우적거렸다.
“아직이다.”
잠시 멈췄던 남근 때문에 강이 이제 끝난 것이라고 안심했는데, 황제가 엉덩이를 찰싹 때리며 매정한 말을 내뱉었다. 황제가 삽입한 상태로 강의 몸을 돌렸다. 점막과 남근이 서로 맞물려 비틀리는 느낌에 강이 목을 뒤로 젖히고 울었다. 무엇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뜨거운 통증이었다. 강은 고개를 숙인 채 헉헉, 숨을 몰아쉬며 이불을 움켜잡았다. 잡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황제는 처음과 다르게 다물어지는 구멍에 남근을 갖다 대고서, 무자비하게 박아 넣었다. 내벽을 한 번에 가로지르며 벌리는 감각에 강의 눈이 커졌다.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너무 울어서 눈가가 따끔했다.
“아아!”
강이 울음을 토해내며 주먹을 쥐었다. 황제가 부들부들 떨리는 주먹을 펴게 하고, 깍지를 꼈다. 양손으로 깍지를 끼고서, 허리를 더 들어 올리게 해 자신의 남근을 깊이 파묻었다.
“아들이라 그런지, 아비를 더욱 잘 받아들이는구나. 안은 좋다고 아비의 것을 잡고 놓아주지 않아.”
“아바마마… 아바마마, 제발, 제발…. 아흑!”
엉엉 울며 강이 매달렸다. 너무 아팠다. 황제가 귀하게 여겨 전쟁터나, 사냥대회, 무술대회도 나가보지 못한 강은 크게 다친 적이 없었다. 심하게 아파봐야 배앓이와 고뿔 정도였다. 아프면 황제가 강을 자신의 궁으로 데리고 와, 품에 안고 간호까지 해주어 금방 나았다. 황제가 워낙 귀하게 여긴 탓일까. 아픔만이 극대화되어 느껴졌다. 하반신이 끊어져서 사라질 것 같은 고통이 전신을 엄습했다.
황제는 느릿하게 아들의 안을 누비면서 강의 목에 입술을 대었다. 짭쪼름한 맛이 느껴졌다. 황제는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상냥하게 만져주며 속삭였다.
“곧 아비의 품에서 극락을 느끼며 울고, 아비의 아이를 갖게 될 것이다.”
지금의 황제는 남근으로 가득 찬 아랫배를 더듬었다. 강은 고개를 숙이며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서 오열했다.
“아파… 아파요…. 소자, 죽을 거… 아아!”
“천자의 앞에서 죽음을 내뱉다니.”
황제가 크게 허리를 움직여 퍽, 하고 박아 넣으며 귀에 대고 말했다.
“아무래도 교육이 필요한 거 같구나.”
강의 얼굴이 초승달처럼 하얗게 질렸다.
*
예월궁에서 드문드문 이어가던 울음소리가 멎어갈 때쯤, 이른 여명이 살포시 내려앉고 그 뒤를 이어 가는 비가 내렸다. 세필 붓이 그려내는 획보다 더 얇던 빗줄기는 몇 시진 후 완전히 굵은 물방울이 되어 지면을 채찍처럼 때렸다. 수도의 건조하던 날씨가 순식간에 습기를 머금은 꿉꿉한 날씨가 되었다. 산은 잿빛 모자를 쓰다 못해 잿빛 응어리에 잠겨 꼭대기가 보이지 않았다. 나뭇잎도 물을 얼마나 머금었는지,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지상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이파리를 간신히 잡고 있던 물방울이 툭,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다행히 꽃잎에 떨어져 물방울은 자신만의 형체를 유지할 수 있었다.
“이랴!”
그러나 저 멀리서 경혜왕부를 향해 매섭게 달리는 마차 때문에 물방울은 분열되어 사라졌다. 마차가 가는 곳마다 질퍽한 진흙이 뭉개졌다. 그곳에 빗물이 고여 가는 이의 통행을 방해하였다
여명이 차츰 걷어지고, 그 자리에 붉은 얼굴을 한 태양이 솟아올랐을 때 마차는 경혜왕부에 멈추었다. 경혜왕이 ‘외팔이 황자’라는 치욕스러운 별명을 얻은 후로, 드나드는 손님이 적었다. 마부는 숨을 고르며 우의도 쓰지 않고 내렸다. 마부가 고개를 숙이며 문을 열자, 마차 안에 있던 객이 굳게 다물어졌던 입을 열었다.
“뭐 하느냐, 엎드리지 않고.”
“죄, 죄송합니다.”
마부는 헐레벌떡 진흙에 엎드렸다. 객은 직접 우의를 쓰고 어둠이 깔린 마차에서 나왔다. 그의 발부터 천천히 바깥으로 나와 마부의 굽은 등을 밟았다. 마부는 위에서 짓누르는 힘에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러나 이제 한 발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곧이어 다른 발이 나와 마부의 등을 거침없이 밟고 아래로 내려갔다. 현직 대장군으로 머무는 강호창이었지만, 전쟁터를 제외하고 흙 밟는 것을 무척 꺼려해 마차에서 내려올 때면 늘 사람을 아래에 엎드리게 하였다. 이것은 그의 딸도 그러했고, 그의 딸이 낳은 외팔이 황자도 그러했다. 강호창은 하인들에게 우의를 맡기고, 호위가 건네주는 흑장의를 걸쳤다. 매가 숲속을 활개치는 모습이 자수로 새겨진 화려한 장의가 비바람에 휘날렸다.
“가자.”
“예, 장군.”
강호창의 나직한 소리에 호위 둘이 그의 뒤를 따랐다. 녹진한 어둠이 휘장처럼 감겨있는 왕부는 화려한 시절을 잊은 듯, 고즈넉하고 을씨년스러웠다. 마치 손자의 잃어버린 왼쪽 얼굴처럼 왕부도 처참하게 변해갔다. 화원으로 가는 길은 깨끗했으나 늘 있던 아름다운 초목이나 우아한 새들은 없었다. 의무적으로 갖다 놓은 장식품이나 타국의 서화가 걸려있을 뿐이었다. 그것마저도 강호창이 주거나, 귀비가 선물로 주는 것들이었다. 손자가 무너지자마자, 그를 지지하던 대신들도 떠났고 귀비의 자리마저 위태로워졌다. 귀비는 이제 뒷방마마라고 불리며 숨만 부지하고 있었다. 하긴, 숙비도 미쳐서 냉궁에 끌려가 죽은 마당에 살아있는 걸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나.
귀비는 더 이상 황제를 위한 불을 피우지 않았다. 대신, 그녀는 밤마다 아들을 향한 기도를 드렸다. 그녀는 죽은 자식들의 원혼이 남아 경혜왕을 괴롭힌다는 무속인의 말에 따라 아이들의 원혼을 달래는 기도를 올렸다.
이제 다 소용없는 짓인 것을…. 강호창은 여전히 눈부시게 빛나던 손자의 과거를 잊지 못해, 그제야 죽은 자식들을 챙기는 딸의 행동에 한숨만을 푹푹 내쉬었다.
그리고 ‘연강이 황제의 희비가 되었다. 초야를 치렀다.’라는 말을 듣기가 무섭게 자신을 왕부로 부른 손자의 행동도 의심스러웠다. 경혜왕은 친왕의 자리를 명목상 유지할 뿐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하는 일이라곤 술을 마시고, 여자를 안고, 패악을 부리는 것뿐이었다. 올망졸망한 자식들이 커서 아버지를 찾는데도, 경혜왕은 자식들을 거부하며 자신의 처첩들에게까지 손을 올리는 지경까지 왔다.
그랬던 경혜가 자신을 찾는다라…. 장군으로서 수십 년을 전쟁터에서 구른 강호창은 코웃음을 치며 경혜왕이 있다는 화원에 도착했다.
“전하, 기침하셨습니까.”
본래라면 지금 술을 퍼먹고 자고 있어야 할 경혜가 하얀 바탕에 눈웃음을 짓는 기괴한 모양의 가면을 쓰고 서 있었다. 화원 동쪽에 위치한 자그마한 전각으로 경혜가 소리 없이 걸어갔다. 강호창도 경혜왕의 뒤를 따라가면서, 호위들을 문에 세워두었다. 늘 들고 다니던 도는 진작 하인에게 건넨 지 오래라, 무게감이 없는 빈 허리를 만지며 입술을 달싹였다. 강호창의 마른 수염이 마른 잡초처럼 흔들렸다.
경혜왕은 전각에 들어서자마자, 휙 소리가 날 정도로 등을 돌려 강호창을 보았다. 경혜왕의 빈 소매가 펄럭거렸다.
“들으셨지요? 제가 예전에 말씀드렸던 대로 강이 폐하의 비가 되었습니다.”
“예, 전하. 들었고, 보았습니다.”
이 늙은 두 눈으로 똑똑히, 황제가 웃으며 강을 희비라고 선포하는 것을. 경혜도 본 장면이었다. 경혜는 지금 묻고 싶은 게 아니라 자신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어했다.
경혜의 웃는 가면이 어둠 안에서 유독 희게 보여 섬뜩했다. 입이 없고, 눈만 아래로 휘어 웃는 모습이 금방 무덤에서 튀어 오른 유령 같았다.
“장군께선 그 아이가 낳은 아들이… 아니지, 아들인지 아우인지도 모를 아이가 태자가 되는 걸 보고 싶으신 겁니까? 나라의 기강이 흔들릴 일입니다. 어떻게 아들이 아비의 비가 되고, 그 자식까지 낳는단 말입니까? 아니, 애초에 남자가 아이를 가진다니요! 강은 임신을 할 수 없는 몸입니다!”
경혜가 버럭 소리를 내지르다가, 끝내 웃음을 발작적으로 터트리며 기둥을 오른손으로 잡았다. 그는 지나치게 흥분해 있었다. 강호창은 차분한 눈으로 경혜가 식는 것을 기다렸다.
“하늘은 헛되이 폐하의 비빈을 간택하지 않습니다.”
“그런 생각은 안 하셨습니까. 폐하께서 제사를 조작하실 수도 있다는 사실을요.”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말을 자른 강호창이 경혜왕을 보았다. 잔뜩 흥분하여 길길이 날뛰는 경혜왕과 달리 강호창은 고요한 수면처럼 잔잔했다. 경혜왕은 자신의 편이라고 믿었던, 언제나 자신을 달래기 위해 달려 와주던 할아버지의 묘한 태도에 눈을 가늘게 떴다. 경혜왕의 오른쪽 눈이 경련으로 파들거렸다.
“하늘은 지금 재앙의 징조를 보이지 않습니다. 폐하께서 그릇된 일을 하셨다면, 하늘이 폐하를 버리셨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어떻습니까? 폐하께서 이 나라를 통치하신 지 몇십 년이 흘렀지만, 재앙은커녕 태평성대가 도래해 백성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춘추에 따르면 천자가 그릇된 일을 한다면, 그것을 한 걸음 더 나아가 깨달은 하늘이 천자를 버리게 되어있다고 적혀있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폐하께서 아무리 대신들을 죽이고, 비빈들을 죽음과 냉궁으로 내몰아도, 하늘은 꿈적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태자 책봉에 나서지도 않았습니다.”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전하!”
강호창이 처음으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경혜왕은 꿈적 하지 않고 완벽하게 황제의 편으로 돌아선 강호창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강호창은 눈을 슬쩍 내리뜨다가, 위를 치켜보며 입을 열었다.
“이제 인정하십시오. 전하께서 그리 되신 것은 폐하 탓도, 희비 마마의 탓도 아닙니다.”
“그럼요?”
“전하께서 천제가 되실 그릇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저를 버리시겠다, 이 뜻입니까?”
“아니지요.”
강호창은 서서히 전각에서 걸음을 떼어냈다. 그는 두통이 밀려오는 머리를 꾹꾹 누르며 한숨을 내쉬고 경혜왕을 차갑게 응시하며 말했다.
“이 강호창은 처음부터 폐하의 팔이었습니다. 물론, 전하께서 이리 되시기 전에는 전하께서 천자가 되길 바랐습니다. 제 딸의 자식이었으니까요. 저라고 전하를 경애하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나 이제 알았습니다. 전하께선, 천제가 되실 그릇이 아니십니다. 이미 그 경쟁에서 지신 겁니다.”
“절 이리 만든 건 폐하입니다! 자신의 아들을 비로 만들고, 태자로 삼기 위해! 날! 이 멀쩡했던 날 이리 병신으로 만들고 지옥에 내몬 거라고요! 그리고 당신의 딸도 병신이 되었잖아!”
경혜가 쓰고 있던 가면을 내던졌다. 가면이 허공을 돌아 꽃밭이었던 흙에 착지했다. 괴기하게 웃는 가면에 물이 고였다.
강호창은 왼쪽 얼굴이 완전히 칼에 짓이겨져, 사람의 형상을 잃은 경혜를 마주 보았다. 찬란했던 과거가 아직 남은 얼굴은 선녀처럼 곱고 아름다웠다. 너무나 아름다운 손자였다. 그래서 더 안타까웠다. 딸이 자기 자식들을 죽여 가면서까지 천자로 만들려 했던 아이가 사람의 형체마저 잃어버려서. 그나마 멀쩡한 오른쪽 눈에도 광기가 돌아 정상이 아니었다.
경혜는 미쳤다. 과거를 잃고, 현재도, 미래도 완전히 잃고서. 복수에 눈이 멀어 강을 죽여 달라고 할아버지에게 매달렸고, 그것을 강호창이 거부하자 불러서 설득하려 한 것이다.
강호창은 멀쩡한 오른손으로 자신의 멱살을 잡는 손자를 노려보았다. 경혜는 장군을 벽에 밀치고 오른 눈으로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왜? 너도 내가 병신이 되니까 우스워? 그럼 버려. 그년처럼 날 버려. 응?”
“미치셨군요.”
강호창이 차갑게 말하며 손을 밀치자 경혜가 하, 하고 웃었다.
“미친 건, 저기 황궁에 사는 폐하지. 안 그래? 자기 아들을! 너무나 사랑해서 미쳐가지고 비로까지 만들었잖아! 근데 왜 나한테 너까지 미쳤다고 하는 거야!”
“폐하께선 진정한 자기 자식들을 거부하지 않으셨습니다. 궁에선 미치셔도, 밖에선 태평성대를 이룩하고 세금을 줄여주고, 땅이 비옥하게 만들어주시고, 긍휼을 베푸셨지요.”
강호창의 말에 경혜왕이 입을 다물었다. 입술이 찢긴 자리에 바람이 불어 아팠다. 경혜왕은 할아버지의 시선이 닿자 허겁지겁 소매로 얼굴을 가리며 이상한 소리를 중얼거렸다.
“보지 마…. 보지 말라고…. 내 얼굴 보지 마….”
“전하께선 제가 냉정한 할아비로 보이실지 몰라도, 제가 모시는 주인은 폐하입니다. 사사로운 복수에 눈이 멀어 희비 마마를 죽이는 일은…!”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있던 경혜왕은 강호창의 옆에 있던 도자기를 들어, 강호창의 머리를 내리쳤다. 강호창이 몸이 비틀거렸다. 순식간에 발생한 일이었다. 손자를 믿었기에, 손자가 자신을 죽이는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강호창은 기민했던 경계를 풀고 있었다. 그리고 돌아온 건, 경혜왕의 복수의 칼날이었다.
“죽어! 죽어버려! 너도! 너도 날 버렸어!”
경혜왕은 강호창이 일어나기 전에, 달려가 돌을 주워와 강호창의 머리를 내리쳤다. 강호창의 손가락이 피에 젖어 꿈틀거렸다. 아직 그는 살아있었고, 도망쳐서 황제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기어보았지만 경혜왕이 웃으며 내리박은 돌에 머리가 깨져 죽고 말았다. 기이한 소리를 내며 죽음을 맞이한 할아버지를 싸늘한 시선으로 보던 경혜왕은 피에 묻은 돌을 내려놓았다.
“나 혼자 죽을 거 같아? 절대 혼자 안 죽는다…. 다 죽여 버릴 것이다.”
경혜왕이 어둠에서 눈을 빛내며 웃었다. 아름다운 오른쪽 얼굴이 피에 젖어 요사스럽게 빛났다.
황제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최대한 비참하게 죽여야 했다. 황제는 천제였다. 하늘이 선택한 아들이었으나, 반대로 말한다면 하늘이 원하는 대로 오로지 나라만을 위해 살아야 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선택받은 아들들이 천제로서 숨 쉬고 인간으로서 자유를 포기했던 것이다.
천제가 인간으로 돌아가길 원한다면 망국이 도래한다.
그것이 실제인지는 모른다. 경혜왕은 그 전설에 한번 모든 걸 던져보고 싶었다.
실제로 천제가 황궁을 벗어나, 수도에서 아예 벗어나, 저 멀리 사랑하는 이를 위해 자유를 찾고자 한다면 나라가 어떻게 될까.
정말 나라가 망한다면, 황제는 어떻게 비참하게 최후를 맞이할까.
그날, 귀비는 강도에 의해 무참하게 살해된 아버지의 사망 소식에 혼절했다. 황제는 새로운 비에게 푹 빠져 그 소식을 듣고도 혼절한 귀비에게 가지 않았다. 그날, 귀비에게 도착한 것은 하나의 서신이었다. 발신인은 연주였다. 몇 년 만의 서신이었다.
서신을 읽어 내려간 귀비는 눈물로 젖은 목소리로 궁녀에게 말했다.
“여 소의를 불러라.”
“예, 마마.”
황제의 비가 된 날이 이제 그립지도 않았다. 그냥 다 포기하고 싶었다. 그저 모든 것을 다 잊고 잠들고 싶었다.
그러나 도저히 황제에 대한 원망만은 잊을 수 없었다. 아버지의 죽음에 눈물을 흘리고 혼절을 해도 찾아오지 않는 황제가 죽이고 싶을 정도로 원망스러웠다. 얼마나 아들을 사랑했기에, 비가 되자마자 황후가 살 궁에 앉혀두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제발 자신을 좀 봐달라고, 광증에 시달려 비틀거리던 귀비는 듣고 말았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발이 움직여 화원으로 가던 중이었다.
‘아흑….’
익숙한 목소리. 어엿한 성인이 된 강의 목소리였다. 귀비는 가슴이 매섭게 뛰는 것을 느꼈다. 왜 여기서 강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일까. 이곳은 비빈들이 산책을 위해 사용하거나, 황제와 오붓하게 다과를 들 때 이용하는 화원이었다. 사방이 뚫려있는 장소였다.
설마…. 귀비는 두근거리는 가슴에 손을 올리고 조심스럽게 흙길을 걸었다. 점차 걸어가자, 궁녀들이 보였다. 그리고 황제를 지키는 친군들과 궁내를 지키는 병사들, 최종적으로 입구를 막고 있는 내관들이 보였다.
‘아!’
가느다랗고 높은 목소리가 귀비의 귀를 때렸다. 연이어 찔걱, 하고 젖은 물소리가 들렸다.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아는 귀비는 사색이 되어 걸음을 멈추었다. 그걸 지켜보던 궁녀가 다가와 ‘마마, 현재 폐하께서 희비 마마와 정사 중이십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것을 비웃기라도 하듯, 황제의 웃음기 머금은 목소리가 살랑살랑 들렸다.
‘아가, 힘을 빼야지. 아비의 것이 아무리 좋아도 그리 먹으면 안 된다.’
‘마마, 어서….’
궁녀가 붉어진 얼굴로 속삭였다. 웬만한 것에 적응이 된 궁녀들도 아비와 아들의 정사만은 적응이 안 되는지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땅을 보고 있었다.
이제 고작 사흘째였다. 강이 희비가 된 것이. 그런데도 마치 몇 년 전에 들인 비인 것처럼, 손에 든 옥구슬처럼 다정히 하는 황제의 태도에 속에서 불이 치밀었다.
‘그리 부끄러움 타서야 친지들 앞에서 정사는 제대로 하겠느냐?’
‘…싫어요…. 아, 아읏….’
황제가 언제 한 번 저렇게 다정하게 대해준 적이 있었던가. 심지어 초야 때도, 늑대가 되어 마구잡이로 눕혀놓고 박는 것에 열중했을 뿐이다. 애무나 입맞춤 같은 건 받아본 적도 없었다.
‘으응…!’
그러나 지금 들리는 건, 입맞춤 소리였다. 혀와 혀가 맞닿아 타액이 교환되는, 질척이는 소리가 질척하게 들렸다. 강이 숨을 쉬지 못하고 애달프게 우는 소리를 내자, 황제가 웃으며 달랬다.
‘숨을 쉬어야 한다. 코가 있는데 왜 숨을 쉬질 못해.’
‘아바마마가… 읏, 아! 천천히…아, 아파요…’
‘다른 비들도 그리 말했는데…. 그대가 말하니 정말 귀엽고 사랑스럽구나.’
황제가 여 소의를 어떻게 대했는지 귀비도 잘 알고 있었다. 귀애하는 강의 어머니였지만, 황제는 늘 심드렁한 얼굴로 여 소의를 볼 뿐 안아준 적이 없었다. 대놓고 면박을 준 적도 많았다. 그가 강을 예뻐하고 나서 몇 번 부른 적이 있었지만, 어느 정도 크고 나니 뚝 끊겼다. 여 소의가 황제를 보고 무릎을 꿇어도 그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그랬는데 그 여인에게서 나온 자신의 자식은 어르고, 달래서 정사를 맺고 있었다.
찌걱, 찌걱…. 단단한 황제의 남근과 강의 내부가 맞닿아 마찰하는 소리, 철썩, 하고 강의 둔부와 황제의 허벅지가 닿는 소리가 연달아 들렸다.
‘아가, 하아, 좋으냐?’
‘아읏, 시, 싫…!’
철썩, 하고 강이 맞는 소리가 들렸다. 황제는 되도록 손을 올리지 않는 편이었는데. 어딜 맞았는지 몰라도, 세게 맞았는지 소리가 멎고 강이 사죄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바마마,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소, 소자가 그만… 흑…. 싫다고 하여….’
‘어떻게 말하라고 했지.’
황제의 것이 강과 연결된 그곳에서 빠르고, 얕게 쳐올리는 듯 젖은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좋다고….’
‘다시.’
‘좋… 좋습니다, 아바마마…. 좋아요….’
‘또?’
눈물을 훌쩍거리며 삼키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강이 오열하며 말했다.
‘여, 연모… 연모하고… 모, 못 하겠습니다. 아바마마, 그것만은 못 하겠…! 아! 아앗! 아흑, 아바마마! 아! 살살…! 제, 제발… 천천히, 으, 앗!’
우는 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정사가 아니라 얻어맞고 있는 듯한 타격 소리가 척, 척하고 달라붙는 소리 사이에서 들렸다. 모멸감, 수치심, 사랑받지 못했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힌 귀비는 자신의 아들을 떠올렸다.
저런 식으로 사랑을 받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저기서 조금이나마 쪼개진 사랑이라도 받았길 바라는 마음.
하지만 가장 자신을 비참하게 하는 건, 아들이자 비가 된 강이 받는 사랑에 반의반도 자신은 받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귀비는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궁녀의 팔을 뿌리치고 뛰어갔다. 내관들이 자신을 막았다. 친군들은 황제의 여자에게 손을 대지 못하기에, 멀찍이 서서 지켜만 보았다. 귀비는 화원 입구에 걸쳐져서 정사를 맺는 두 사람을 보았다.
황제가 비스듬히 세워진 의자에 기대듯 앉아있었다. 황제는 귀비와 눈이 마주치자 말없이 눈웃음을 지었다. 그가 웃는 소리가 나붓하게 들렸다.
‘아가, 귀비가 왔다.’
‘아… 안 돼. 안 돼요….’
손이 등 뒤로 묶인 강이 흐느껴 울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자 겨우 걸치고 있던 쪽빛 장의가 흘러내려 등이 반이나 드러났다. 사내답게 넓은 등이 훤히 보였다. 어깨는 황제보다 못했지만, 평균적인 사내들보다 넓고 직각의 선을 그리고 있었다. 오랫동안 활을 쏜 아이답게 팔 근육이 역동적이며 군더더기 없이 잡혀있었다. 비단에 묶인 두 손목은 오랜 시간 묶여있었는지, 주위가 붉게 부어올라 있었다. 황제와 연결된 둔부가 슬쩍 보였다. 황제는 귀비의 흔들리는 시선에도 불구하고, 보란 듯이 아들의 둔부를 잡아 노골적으로 만졌다.
‘올려줄까.’
황제가 장의 자락을 만지며 물었다. 강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길고 검은 머리가 장막처럼 강의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대신, 귀비는 강이 수치심에 못 이겨 주먹을 쥐고 바들바들 떠는 것을 보았다.
‘…예. 올려주십시오.’
‘이럴 땐, 신첩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이란다.’
강이 고개를 느리게 저었다. 검은 머리가 흔들거렸다. 하고 싶지 않다는 뜻으로 말하는 것 같았다. 황제의 손이 올라가 강의 머리를 젖혔다. 강의 어깨가 바들바들 떨렸다. 황제가 다정할수록 강은 흐느꼈다.
‘왜 그리 서 있지? 그대는 확인하고 싶어서 온 것이 아니었나?’
‘아바마마, 싫어요… 보여주는 건….’
황제는 울먹이며 매달리는 강의 뒷목을 잡아 눌렀다. 접합부가 뒤틀리는 소리가 들렸다. 쿨쩍, 거리며 내벽을 휘젓는 소리가 아래에서 선명하게 퍼지자 귀비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로 말을 더듬거렸다.
‘신첩은 그저, 폐하께서….’
‘건방지구나.’
황제는 강의 뒷목을 아주 사랑스럽다는 듯, 손가락을 굽혀서 만지더니 머리카락 사이에 넣어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면서도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강이 멈춰서 숨만 색색 내쉬자 상체를 꽉 틀어 안고 허리에 힘을 실어 박았다.
‘아! 아앗! 하앗, 아, 아응…! 사, 살살…!’
강이 묶인 손을 움찔거렸다. 손가락들이 꿈틀거리고, 주먹을 쥐기도 하고, 펴져서 바람을 부여잡기도 했다. 강의 머리가 황제의 어깨에 쏟아져 움직였다. 장의에 가려져 그 부위가 보이지 않았지만, 세게 넣어 살과 살이 닿는 것만으로도 삽입이 얼마나 깊은지 짐작할 수 있었다.
황제는 자신의 어깨에 고개를 숙이고 무력하게 신음만 흘리는 아들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더니 돌처럼 굳어 서 있는 귀비를 보며 가장 아름다운 미소를 보여주었다.
‘이제 알았는가? 천자는 희비를 이토록 연모하네.’
신음을 간간히 흘리는 천제의 얼굴이 참으로 가련하고 아름다웠다. 금을 박아 넣은 듯한 눈이 새침하게 웃는가 싶더니, 귀비를 향해 대놓고 적의를 드러냈다.
‘왜? 아들을 이리도 사랑하는 게 이상한가?’
‘…아닙니다.’
‘흣, 아, 아바마마…. 그만… 귀비 마마께서, 보고….’
귀비의 대답에 이어 강이 느슨해진 허리 움직임에 따라 말을 건넸다. 목소리는 거칠었고, 울음에 잠겨 무거웠다. 그러나 그 안에 묘한 색기가 있었다. 정사를 제대로 알지 못해 황제가 하는 대로 움직이고, 손끝이나 발끝만 움찔거리거나, 허리를 뒤틀고, 어깨를 파르르 떠는 행동이 시각을 자극했다.
아들과 아버지였는데. 그들은 혈연관계였는데, 둘 사이에 흐르는 끈적하고 질척이는 게 제법 그럴듯하게 들렸다. 강이 그토록 괴로워하면서도 황제에게 싫다는 소리 한번 못해서 그런 것일까. 강은 그저 흐느껴 울고, 삽입이 깊어지면 고개를 젖히며 신음하는 게 표현의 전부였다.
어릴 때와 변함없이 황제에게 한없이 순종적인 모습에 귀비는 속이 울렁거렸다.
‘귀비가 본다고 해서 벌써부터 울면 안 된단다. 그대의 어미도 올 텐데?’
강이 울음을 누르고 뭐라고 중얼거리는 게 들렸다. 황제는 눈을 가늘게 뜬 채 웃더니, 귀비를 보고 말했다.
‘이제 알았으면 가보게. 희비가 부끄럽다고 하는군.’
‘…폐하.’
‘아직도 몰라서 그 자리에 있는 것인가?’
황제가 강의 머리채를 잡아 올렸다. 강의 상체가 위에서 아래로, 직선으로 내려갔다. 강이 ‘아!’ 하고 소리를 지르며 고개를 푹 숙이고 바들바들 떨었다.
‘너무… 깊어요….’
‘아프진 않고?’
황제가 다정하게 물었다. 강은 여전히 고개를 늘어뜨리고서, 손을 꿈틀거리며 숨만 내쉬었다.
‘…아바마마, 우선… 마마부터….’
강은 아프다는 대답 대신, 귀비를 빨리 내보내달라고 채근했다. 황제는 강의 뺨을 매만지며 속삭였다.
‘입을 맞춰다오.’
그러자 신기하게도, 강이 고개를 숙여 직접 황제의 입에 자신의 입을 맞추었다. 추웁…. 빨아들이는 소음이 눅눅하게 퍼진다. 황제가 잡아먹을 듯이 입술을 벌려 빨아들이자 머금자, 강의 근육에 힘이 들어갔다. 비가 겨우 그치고, 모습을 드러낸 햇빛이 슬며시 강의 등을 더듬었다. 강의 유백색 피부가 빛을 받아, 근육의 모습이 음영을 통해 확실히 보였다. 참으로 늠름하고 사내다운 등에 뱀처럼 뻗어져 나온 황제의 팔이 감겼다. 황제는 손을 갈고리처럼 세워 강의 등에 맺힌 땀을 닦아냈다. 그의 손가락은 근육의 수를 세기라도 하듯, 척추를 따라 움직이며 꼼꼼하게 만졌다. 매끄러운 살결을 손으로 맛본 황제는 귀비를 보며 나가라고 손짓했다.
‘혼례 날 보지.’
황제는 그 말을 끝으로, 상체를 올렸다. 그는 강의 손목을 묶은 끈을 풀어내고서, 자신의 목에 감게 했다. 강이 힘없는 손으로 황제의 목을 끌어안기가 무섭게, 황제는 연결을 풀지 않고 곧장 몸을 돌려 강을 눕혔다.
‘아으읏!’
남근이 맞물린 채, 내벽이 쓸리고 감각에 강이 입을 벌리고 헐떡였다. 내벽이 쓸려서 피가 날 것 같았다. 또한, 거기에 적응될 새도 주지 않고 황제는 강을 내리누른 채 허리를 움직였다. 남근의 가장 두꺼운 부분이 구멍 입구를 있는 대로 벌리더니, 내벽을 후려치며 들어왔다. 내벽이 살아있는 생명체가 된 듯 황제의 남근에 일일이 반응했다. 그의 귀두가 안을 꾹 누르면 화들짝 놀랐고, 그의 남근이 쩍, 소리가 날 정도로 내벽을 벌리면 그 부분이 얼얼하게 아파와 숨을 쉴 수 없었다.
배는 마치 아이가 들어선 것처럼 꽉 찼다.
‘아우가 갖고 싶지?’
황제는 강의 머리 양쪽에 손을 대고 허리를 빠르고 깊게 쳐올리며 물었다. 남근의 모양대로 내벽이 쓸리고, 조였다. 강은 신음하며 자신도 모르게 다리를 더 벌려 황제를 받아들였다. 허벅지에 힘이 들어가며 근육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강은 황제가 명령한 대로, 그의 목에 팔을 감은 채 절대 움직이지 않았다. 절대로 씨를 빼지 않는 덕분에 안은 정액이 흥건하여 질펀했다. 황제가 삽입을 반복할수록, 틈 없이 맞물렸는데도 새어 나왔다. 황제는 그것들이 흘러내리면 손가락으로 닦아내어 다시 넣어주었다.
강은 입구 주변에 보글보글 맺히는 이상한 액체에 울먹거렸다.
‘아우는 싫어요.’
칭얼거리는 듯한 말에 황제가 소리 내어 웃으며 아직 떠나지 않는 귀비에게 들으라는 듯 말했다.
‘그럼 자식이 갖고 싶으냐?’
귀비는 태연하고, 여유로운 그의 물음에 망측함을 느끼며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강은 귀비가 떠나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정신을 조금씩 차렸다.
‘…싫습니다.’
‘왜?’
강은 끝날 생각이 없는 정사에 시달릴 때로 시달린 머리로 멍하니 생각했다. 아래의 감각이 없어진다. 황제와 연결된 부위는 열려서 닫힐 생각이 없었다. 강은 벌린 다리를 무의식적으로 황제의 다리에 감고, 두 손은 황제의 등에 두른 채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
‘아이는….’
‘아우를 좋아하지 않느냐. 딸도 낳고, 아들도 낳자구나. 아니다. 딸이든, 아들이든 상관없이 낳아서… 그대가 예뻐하면서 키워주면….’
강은 제발 그만하라는 뜻을 담아,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을 갖다 대었다. 다행히 그가 입을 다물었다.
‘흐응….’
황제의 옷깃을 잡은 강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의 옷자락이 형편없이 구겨졌다.
*
세상이 전부 암흑이었다. 아주 무겁고, 깊은 우물에 빠져 얇게 잘린 달빛조차 들어오지 못하는 먹물 같은 어둠 속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어둠을 벗 삼아 나가보려 팔을 뻗었지만, 팔다리에 돌이라도 매단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손가락 끝은 움직일까. 미약하게나마 꿈틀거릴 수 있었다. 숨은 제대로 쉬어지는데, 이상하게도 숨을 쉴 때마다 둔부 사이의 깊은 곳이 아팠다. 아프다는 단순한 표현으로는 더 설명이 안 될 정도로, 아리고 얼얼했다. 입구는 다물렸지만 부어서 약간의 움직임에도 고통을 호소했고, 안쪽은 무언가가 쑤셔진 듯한 이물감이 상당했다. 여인의 팔뚝 수준으로 크고 두꺼운 몽둥이가 몇 번, 아니 수십 번 오갔다. 그리고 미지근하고 끈끈한 것을 내벽마다 이슬처럼 맺히게 했다. 자신의 이전에 태어났던 형제, 자매들 그리고 후에 태어났던 동생들의 근원이었다.
‘희비.’
자신을 희비라고 부르며 나긋하게 웃는 목소리가 귀에 단번에 꽂혔다.
“…헉!”
강은 눈을 번쩍 떴다. 눈이 찌푸려질 만큼 시계가 밝았다. 하지만 모든 것이 선명한 형태로 잡히지 않았다. 나신을 가리고 있는 이불을 끌어당겨 몸을 가린 채, 앉으려 하던 강은 척추를 타고 흐르는 오묘한 감각에 숨을 멈추었다. 예민해진 내벽에 고였던 점성이 있는 액체가 꾸물꾸물 흘러나오는 게 느껴졌다. 강의 얼굴이 삽시간에 하얗게 질려갔다. 황제가 몇 날 며칠을 물고 빨아 부푼 입술을 달싹거렸다.
“아바마마….”
얼마나 울었는지, 목소리가 어딘가에 쓸리고 긁힌 것처럼 거칠었다. 목소리를 내는 것도 아파서 강은 인상을 찡그리며 목을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강의 시선이 무심코 손목을 스친 순간, 강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굳었다. 뼈가 툭 불거져 나온 부분을 기점으로 팔뚝 중간까지 붉고, 푸른 자국이 가득했다. 황제가 화원에서 강제로 손목을 묶어 안은 기억이 새록새록 피어오른 강의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그대가 스스로 신첩이라고 말할 그날을 기대해.’
황제의 목소리가 방금 들은 것처럼 생생했다. 강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귀를 막았다. 듣고 싶지 않았다. 그의 변함없는 다정함, 단아하고 유려한 미소, 따스한 손길. 다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아버지였는데, 자신을 보는 그 눈빛만은 확연히 달랐다. 그 시선을 환영처럼 느끼던 강은 울렁거리는 속에 고개를 숙였다. 이불에 반쯤 가려진 나신이 보였다. 손목에 남은 자줏빛에 가까운 멍과 달리 허벅지 안쪽과 가슴에는 붉은 흔적이 가득했다.
도망가야 한다.
멍하니 몸에 남은 낯선 흔적을 눈으로 더듬어보던 강은 떨리는 손을 내렸다. 불안정하게 떨리던 강의 눈은 문이 아니라 창에 닿았다. 불과 며칠 전까지 살던 왕부와 다르게 좀 더 높은 위치에 있었다. 가장 바깥엔 황금색 휘장이, 그리고 안쪽으로는 겹겹이 붉고 하얀 색의 휘장이 있었다. 그것들은 황실의 상징인 백색 비단에 묶여 햇빛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창문의 문양을 고스란히 끌고 들어온 햇빛이 참으로 예뻤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화장합을 열었을 때 보았던 투명한 보석 같았다. 어머니는 구하기 힘든 것이라며, 소담스럽게 웃으며 귀에 대보셨다. 강은 화장합에서 꺼내든 보석을 검지와 엄지로 쥐고 햇빛에 대보았다. 눈부시게 찬란한 빛에 눈이 멀 것 같았다.
그리고 관을 푼 황제의 머리카락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릴 때도 그와 같은 생각을 했다. 그가 눈을 가볍게 내리뜨고 자신을 쳐다보며 웃을 땐, 세상의 모든 행복을 끌어모아 안은 듯 행복했다. 그가 안아주는 팔에서, 그의 향을 맡으며 평화를 찾았다. 간혹 짓궂다고 느낄 정도로 엄하긴 했으나, 그는 다분히 다정한 아버지였다.
그랬는데….
농밀한 입맞춤에 이어 그가 목덜미를 쓸어 만지던 것이 기억났다. 그의 손은 크고 뜨거웠다. 바르작거리는 움직임이 멎었다. 그의 손바닥이 안으로 구부러져 여린 살을 매만졌다. 그의 엄지가 사내의 상징을 스치고 지나가며, 쭉 뻗어 골이 생긴 쇄골에 닿았다. 이제 그는 대범하게 옷깃 안으로 손을 넣어 강의 쇄골과 그 밑에 자리잡은 단단한 가슴을 어루만졌다. 사내답게 부드러우면서도, 단단한 손바닥에 꼿꼿하게 선 유두가 스쳤다. 강은 무심코 신음을 흘렸다.
‘흐읏.’
자신이 들어도 높고 가느다란 목소리는 교태에 가까웠다. 마치 혼례식 날 황제에게 안겼던 여인 같았다. 뒤늦게 자신이 황제에게 조르듯 신음을 흘리고 있다는 걸 깨달은 강이 어깨를 뒤틀며 반항했다.
그러나 황제에게 이미 손목이 잡힌 후였다. 황제는 강의 양쪽 손목을 침상에 누른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음영이 진 그의 얼굴에서 눈이 또렷하게 보였다. 인간의 눈과 다르게 동공이 가늘고 좁은 눈이 가늘게 접혔다. 그의 금안이 농염하게 짙어지면서, 그의 얼굴이 더욱 지척까지 다가왔다.
‘…가만히.’
황제가 입술에 닿기 전, 매끄러운 목소리로 달래듯 말했다.
‘가만히 있어라.’
그가 가만히 있으라면 가만히 있고, 그가 안으라면 그를 안았던 강은 침상에 멍하니 누워 그의 입술을 받아들였다. 그의 혀가 느리게 이 사이로 들어왔다. 혀가 치열을 훑었다. 강은 흐읍, 하고 숨을 들이마시며 눈을 옆으로 굴렸다.
느리게 닫히는 문이 보였다. 문틈으로 보이는 남자의 얼굴은, 자신의 친우인 담영이었다. 담영이 지켜보고 있었다. 친군대장이니, 황제를 호위하기 위해서 왔을 테지만 강에겐 의미가 달랐다. 함께 사냥터를 뛰어놀았던 친우였으므로, 이런 장면을 당연하게 보여줄 수는 없었다.
‘아, 담영이….’
강이 그에게서 벗어나며 중얼거렸지만, 황제는 담담하게 말할 뿐이었다.
‘혼례도 치러야 하는데, 고작 저런 걸로.’
강은 놀라서 황제를 쳐다보았다. 황제는 타액이 고인 입술을 엄지로 눌러 만지더니, 곧 턱을 잡아 벌리며 얼굴을 가까이했다. 강은 그가 풀어준 손을 움직이지도 못하고, 손끝만 느리게 꿈틀거렸다. 턱을 잡았던 황제의 손이 미끄러지듯 내려와 강의 손에 겹쳐졌다. 너무나 큰 그의 손이, 그가 몸으로 강을 가릴 때처럼 완전히 강의 손을 숨겨버렸다. 그의 소매에 강의 팔이 가려졌다.
“미쳤어….”
강은 울음이 새어 나오는 입술을 꽉 짓이겼다. 이건 미친 짓이었다. 그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그에게 안겼지만, 이젠 아니었다.
차라리 그가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어느 정도 수긍하고 안겼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과거에 남자인 비가 있었으니까. 천명을 받고, 신의 정기를 받아 아이를 임신할 수 있는 남자가 되었다. 초야 이후론 회임했다는 기록이 없는 걸로 보아, 아마도 초야에만 정기를 받을 수 있는 것으로 추측되었다.
그렇다면 나도 초야에 안겨, 신의 정기를 받아 아이를 낳아야 한단 말인가? 아버지의 아이를? 강은 문득 과거에 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우가 갖고 싶지 않느냐고…. 자식처럼 예뻐해도 된다고.
우연치고 너무 잘 맞아떨어지는 그의 말에 강은 정신없이 침상에서 내려왔다. 강의 얼굴은 귀신을 본 것처럼 하얗게 질려있었고, 몸은 열병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떨리고 있었다.
도망가야 해. 여기서, 빨리.
강은 오로지 그 생각에 사로잡혀, 몸을 가리던 이불을 던지고 장의를 걸쳤다. 장의는 강의 것이 아닌 듯, 손톱까지 내려왔다. 소매에 수놓아진 황금 늑대가 황제의 장의임을 알리고 있었지만, 강의 눈은 이곳을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떨려 그것을 보지 못했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로 몇 발자국 걸어가던 강은 허리에 울리는 통증에 허리를 숙였다. 그와 끊임없이 연결되었던 부위가 너무 아렸다. 그래도 어떻게든 걸어보려 노력하던 강은 미세하게 벌어진 틈으로 타고 흐르는 액체에 멈칫했다.
“아….”
‘씨를 남겨야 한다.’
잠시 기억을 잃었던 강은 뿌연 시야로 움직이는 황제를 보며 입술을 달싹였다. 씨? 강이 멍청하게 묻는 걸 보던 황제는 피식 웃더니, 강의 다리를 더 벌려 안으로 밀착했다. 안의 살이 말려 들어가는 기분에 강이 고개를 젖혔다. 더운 숨이 허공에 서렸다.
강의 가물거리는 시선에 사관이 걸쳐져 있었다. 그는 침상을 가린 발 너머에 앉아, 씨를 남기는 황제를 보고 붓을 들었다. 그의 손이 거침없이 기록을 적어 내려갔다. 황제가 씨를 남기고, 빼는 일은 반드시 기록해야 하는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그 누구도….’
드문드문 끊겨가는 깊은 의식 속에서 황제의 말이 뚜렷하게 들렸다.
‘씨를 빼서는 안 된다. 희비가 천자의 아이를 잉태할 수 있도록….’
강의 감기는 눈에 그의 흔들리는 은발이 보였다. 움직이는 건, 아마 황제가 아니라 강이었을 것이다. 황제는 지속된 정사로 정신을 잃었다가 되찾길 반복하는 강을 놔주지 않았다. 강의 힘 빠진 손이 황제의 팔뚝에 스치고 뚝 떨어졌다.
그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화원, 침전, 다시 화원, 장서각. 여러 장소가 강의 기억 속에서 실타래처럼 풀어졌다.
강은 이를 악물었다. 걸을 때마다 정액이 점점 더 내려와 허벅지까지 적셨다. 낯선 감각이 무서웠다.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강은 애써 두려움을 누르고 창가까지 기어가듯 걸었다. 꼭 닫힌 창문의 걸쇠를 열어야 했다. 그리고 넘어가기만 한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가리라.
강의 손이 조금씩 창에 가까워졌다. 호흡이 거칠어졌다.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앞만 보고 걸어가던 강은 뒤에서 들리는 웃음소리에 어깨를 굳혔다.
도망가야 한다. 그러나 부드럽고 아늑한 웃음소리가 귀에 진득하게 걸려 강을 놔주지 않았다. 사슬로 붙잡힌 것도 아닌데, 강은 점점 가까워지는 웃음에 몸을 바르르 떨며 창가에 주저앉았다. 그의 향이 발끝까지 밀려 들어왔다. 숲 한가운데에 있는 듯한 청량한 향이었다. 점막을 흠뻑 적시는 상쾌함과 정수리부터 자신을 따스하게 해주는 햇볕 속에서 강은 한기를 느꼈다. 한기는 곧 무서움으로 변질했다.
“오, 오지 마세요.”
강은 달달 떠는 목소리로 울면서 말했다. 그리고 그가 자신을 볼까 무서워 장의로 몸을 가렸다.
“도망가려고?”
황제의 음성이 머리 위에서 들렸다. 아주 나긋하고 우아한 목소리가 벼락처럼 강의 정수리에 꽂혔다. 발끝까지 관통하는 서늘함에 강이 자신도 모르게 구석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그래 봤자 창가 아래였다. 무엇보다 그곳은 황제의 영역이었다. 황제는 도망가려는 강을 가볍게 팔로 막았다. 강의 등에 황제의 가슴이 닿았다. 적당한 온기를 머금은 그의 숨결이 목덜미를 간지럽혔다. 강의 숨은 점점 짙어지는 두려움처럼 조급해졌다.
“도망갈 셈이냐.”
강은 대답하지 못했다. 강의 머리가 사죄하듯 수그러졌다. 길게 풀어헤쳐진 머리카락 사이로 투명한 보석이 반짝였다. 강이 처량 맞게 눈물을 흘리는 걸 무심히 보던 황제는 숙였던 허리를 폈다. 그는 창가에 몸을 굽히고 비 맞은 강아지처럼 떠는 강을 보고 짧게 웃었다. 가소롭다는 듯한 웃음이 뚝 끊겼다.
강의 떨림은 이제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황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강은 동정을 마구잡이로 훔쳐간 그가 무서웠는지 겁을 지레 먹고 떨었다.
“천자의 장의를 입고 어디까지 가려고?”
“예, 예?”
강이 백치처럼 더듬어 말하며 고개를 들었다. 눈물이 어룽거리는 눈이 순진했다. 눈물을 닦아줘야 할까. 무심코 그런 생각을 하던 황제는 눈물이 발간 뺨을 타고 흐르는 게 퍽 예뻐서 거기에 시선을 집중했다. 눈을 뗄 수가 없을 만큼, 시야가 황홀해질 만큼 아이가 우는 모습이 예뻤다.
울긋불긋한 종아리가 쪽빛 장의에 가려지지 못하고 나와 있었다. 황제가 며칠 동안 난잡하게 먹어치운 몸답게 엉망이었다. 상아빛 피부에 새겨진 손자국이나 순흔이 가슴을 매섭게 흔들었다. 소매 끝에 새침하게 나온 손톱은 연한 분홍색으로 물들어있었다. 세게 쥐지 못하고, 약하게 소매를 쥐고 있는 손끝이 아이의 성품처럼 귀여웠다. 흐트러진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얼굴은 구름을 비집고 나온 달 같았다. 서늘하고 하얀 달을 가볍게 즈려밟았다. 황제의 손이 강의 머리카락을 장막처럼 거두었다. 울어서 열기가 차오른 뺨이 붉었다. 눈물이 쉽게 차오르고, 황제의 손이 움직이기가 무섭게 흘러내려 황제의 손끝에 고였다.
“아, 아바마마… 자, 잘못하였습니다.”
구석까지 내몰린 강이 황제의 발치에 앉아 눈물을 흘리며 잘못을 고했다. 황제는 손을 올려 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머리카락이 손바닥에 스쳤다. 강은 황제가 어린 시절 때처럼, 말없이 어루만져주자 안심이 된 것인지 손을 뻗어 그의 용포를 슬며시 잡았다.
“도망가고 싶다면, 각오하는 게 좋을 것이다.”
황제는 훌쩍거리며 울음을 삼키는 강의 턱을 잡아 올렸다. 눈물이 찬 달은 시리긴커녕, 눈물에 젖어 흘러 내려갈 것 같았다. 달이 녹아내리면 은하수같이 반짝거릴 것이다. 그 길은 밤이 되면 황제의 눈앞에서 길이 될 터이다.
황제는 달이 녹아내려 만들 길을 따라 걷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 길의 끝엔 강이 서 있을 테고, 황제는 강의 뒤를 쫓아 걷는 그림자가 되어 평생 붙어있을 셈이었다.
“대신들이 모두 그대에게 거세를 내리라고 청하였다. 하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지.”
거세란 말에 강이 흠칫 놀라 오들오들 떨었다. 눈밭에서 구른 후 추위에 떠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겹쳤다. 황제의 웃음이 깊어졌다. 그의 미소가 짙어질수록 볼우물도 깊어져 그 안에 빛이 서렸다.
황제는 비단같이 부드럽고 향이 나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속삭였다.
“천자가 맛보니 천하의 진미가 따로 없어서, 자르지 못하겠다고 하였다.”
강의 얼굴이 잘 익은 홍시가 되었다. 강은 황제의 눈이 지분거리는 다리 사이를 장의로 가렸다. 수줍음을 느끼는 강이 귀여워서 소리 내어 웃던 황제는 강의 머리채를 세게 잡아 자신의 눈을 보게 만들었다. 강은 웃고 있는 황제의 금안을 피하고 싶었다.
“거세도 못 하게 막았는데, 그대가 도망가 버리면 천자의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겠지.”
강의 입술이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벌어졌다. 황제는 강의 머리채를 잡아 위로 당겼다. 강의 몸이 파르르 떨리면서도 그의 손에 따라 악착같이 움직였다. 황제는 건장한 강의 몸을 아무렇지 않게 번쩍 안아 올렸다.
“천자를 아프게 하지 말아다오.”
아픈 건 자신이었다. 그가 아니었다. 지금도 황제의 시선이 스치는 그곳이, 황제가 안은 채 더듬으며 만지는 둔부가 너무 아파 말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그리고 그에게 마음대로 짓밟힌 마음은 이미 쉴 새 없이 통증을 호소해 숨을 온연히 쉴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이 멀리 멀리 도망간 것을 상상하고 고통을 토로하는 그의 얼굴이 진심으로 아파보였다. 황제는 시무룩한 얼굴이 되어 강을 꼭 끌어안으며 막힌 듯한 음성을 겨우 연결해 말했다.
“달래다오.”
천자가 중얼거렸다. 황제는 강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의 커다랗고 아름다운 눈에 슬픔이 차올랐다.
왜 그가 이렇게 힘들어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픈 건 나였는데. 이렇게 아픈데, 그에게 안아달라고, 더 이상 자신을 아프게 하지 말아 달라고 빌 만큼 힘든 건 자신이었는데.
“그대가 안아주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구나.”
“…그럼 소자를 놓아주시겠습니까?”
강이 무심코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황제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놀람의 징조였다. 화를 낼 줄 알면서도 물었는데, 그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저 강을 보고 아직도 그 생각이냐는 듯한 얼굴로 다소곳하게 웃었다.
“차라리 도망을 가렴.”
강은 입을 조개처럼 다물었다. 그의 음성은 다정하고, 눈빛도 퍽 상냥하였는데도 무서웠다. 알 수 없는 섬뜩함이 안개처럼 기어 올라와 강의 몸을 적셨다. 황제의 어깨를 잡은 강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강이 근원을 알지 못하는 두려움에 잘게 떨었다. 황제는 강의 척추를 따라 만지는 듯하다가, 팔에 걸쳐진 품이 넉넉한 장의를 서서히 벗기기 시작했다. 살결을 따라 내리 만지는 손길은 다정했으면서도, 의도가 분명하여 눈가가 시큰해졌다. 황제는 강의 드러난 쇄골에 입을 맞추었다. 살을 빨아들이는 그의 입술에서 질척이는 소리가 퍼졌다. 강은 입술을 깨물며, 그의 얼굴을 껴안았다.
황제는 그 상태에서 강을 침상까지 데리고 갔다. 방금 전까지 누워있던 곳에 다시 눕혀졌다. 강은 눈물이 맺힌 눈을 돌려 자신의 몸을 탐닉하기 시작하는 황제를 보았다. 황제는 타액으로 축축해진 아랫입술을 핥더니, 싱긋 웃었다.
등이 서늘하게 젖어갔다. 무서웠다. 자신을 향해 하염없이 다정해지는 그가. 이제 아들과 연인의 경계를 분명히 두지 않고, 애정을 마구 퍼부어주는 그에게서 도망가고 싶었다.
“도망을 가. 최대한 멀리. 어릴 때처럼, 원림에 숨어서 둘이서 놀던 때처럼 천자가 그대를 잡으러 가겠다.”
황제가 강의 다리를 벌렸다. 정해진 법칙처럼 하얗고 탄탄한 둔부를 잡아 벌리자, 발갛게 부은 구멍이 속살을 드러냈다. 뻐끔, 입을 벌리자 그 안에 남은 정액이 흘러나왔다. 황제는 울음이 거세지는 강을 보고 또박또박 말했다.
“잊지 않았겠지?”
“…아바마마.”
황제는 울음이 맺힌 그 단어를 엄지로 막으며 웃음을 흘렸다.
“이기는 건, 늘 천자였어.”
*
‘연모하지 마십시오. 연모할수록, 인간으로 돌아가게 되십니다. 하늘의 아들은 인간이 아닙니다. 하늘을 대신해서 내려온 자. 오로지 나라만을 생각하시는 겁니다.’
지겹도록 삼보들에게 들은 말에 연혼은 책상에 엎어졌다. 도대체 연모가 뭐기에 이토록 다들 입이 닳도록 연모하지 말라고 다그치는 것일까. 춘추에도 연모와 운우지정, 향락으로 황제 자리에서 강제로 내려와 능지처참까지 당한 선왕들의 이야기가 가장 먼저 적혀있었다. 연모란 것이 이렇다고. 사람의 감정을 자각한 황제는 결코 황제 자리를 지킬 수 없다고.
그때는 가소로워 보였다. 연모 따위에 지지부진하게 망한 천제들이 우스웠다. 그런 감정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앞으로만 나아가는 천제가 되겠노라고 하늘을 향해 제사를 드렸다.
모든 것이 쉬워 보였는데.
황제는 꿈속에서 흐느껴 우는 아들을 보고 가슴이 뛰었다. 아들이 울면 가슴이 아프고 쓰리다고 하던데, 그게 부모의 마음이라고 했는데, 황제는 아들이 울 때면 가슴이 설렜다. 흐트러진 검은 머리카락을 거두어 볼이 달아오른 얼굴을 감상하고 싶었다. 어릴 때처럼 서러움을 참기 위해 입술을 깨무는지, 손으로 얼굴을 가리는지. 자신이 키운 아들이니 어떻게 우는지 마음이 기억하고 있었다.
처음 본 순간부터 아들의 향에 이끌렸다. 별거 아닌 아이들의 풋내였는데, 목에서 나는 달콤한 젖내에 불과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들의 향에 집착했고, 그것이 여 소의에게도 옮겨갔다. 하지만 아들을 낳은 어미라고 해서 향까지 같진 않았다. 이목구비도 흡사했고, 향도 어느 정도 유사했으나 아들과 미묘하게 달랐다. 강의 냄새는 좀 더 연했고, 여인들이 사용하는 분 냄새가 안 났으며, 땀 냄새가 섞인 청년다운 풋풋한 체취였다. 가슴을 애태우는 체취를 맡을 때면, 연모라는 것을 비웃던 태자 시절로 돌아간 것 같았다. 강이 태어나기 전, 아직 강이 자신의 몸속에 있기도 전의 일이었다.
아들 연송을 떠올려 보려 했으나 이상하게도 연송은 기억나지 않았다. 강의 어린 시절은 손에 잡힐 듯 이리 생생한데. 점막을 누비는 향까지 다 기억할 정도인데 신기하게도 다른 아들들은 이목구비가 흐릿하게 기억에 잔재했다. 강보에 싸여 죽은 아들들까지 있었으니, 기억 못 하는 게 당연했다.
부유하는 무의식 속에서 황제가 눈을 떴다. 침전이 아직 어두웠다. 여명이 트지도 않은 시각이었으나 황제는 눈을 뜨자마자 침상에서 몸을 일으켰다. 황제의 형태가 두드러지게 보이자, 궁녀가 고개를 조아리며 다가와 장막을 거두었다.
“폐하, 기침하셨나이까.”
“소셋물을.”
황제가 간략히 말하자, 궁녀가 고개를 두 번 주억거리고 뒤로 물러났다. 침의를 입지 않은 나신으로 졸음이 몰려오는 머리를 만지던 황제는 늘어진 손을 보고 고개를 돌렸다. 강이 엎드린 채 잠들어있었다. 거의 시체에 가까운 수준으로, 숨을 느리게 내쉰다. 그러고 보니 안은 지 며칠이 흘렀지. 아들의 등과 목덜미, 손목, 손가락까지 난 흔적을 손가락으로 더듬어보던 황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흐름에 슬쩍 웃었다. 이 정도까지 아들의 몸을 탐할 생각은 없었다. 적당히 맛을 보고, 길을 낸 다음에 늑대로 변해 씨를 듬뿍 뿌려 아이가 생기게 해줄 예정이었다.
“응….”
이불을 내려 봉긋 솟아오른 엉덩이를 잡아 벌렸다. 둔부 안, 발갛게 부은 구멍이 입을 벌렸다.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정사를 가진 덕에 구멍은 적당히 느슨하게 벌어져 안에 고였던 씨가 느릿하게 흘러내렸다. 허벅지 틈에 고이는 정액을 보던 황제는 궁녀가 다가온 걸 알면서도, 정액을 손가락으로 쓸어 발간 구멍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 모습을 보던 궁녀가 얼굴을 붉혔다. 정액이 고인 구멍과 맞닿은 손가락에서 쿨쩍거리며 젖은 소리가 연신 퍼졌다. 강은 아래를 헤집는 손가락에 미간을 미미하게 찌푸렸으나, 눈을 아예 뜨진 못했다.
여기서 더 해버릴까…. 아들의 구멍에서 질금질금 흘러내리는 정액에 시선을 빼앗겼던 황제는 한숨을 내쉬며 손가락을 빼냈다.
“으읏….”
강이 침상에 이마를 대며 신음한다. 아래가 반응할 것 같았다. 하지만 아침에 늘 먹는 탕을 먹고 나면, 얼마 안 있어 조정이었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조정을 운우지정에 홀딱 빠져 가지 않는다면 어떤 말이 들릴지 뻔했다.
분명히 신관이 천자를 폐위시키라고 제사를 올리겠지. 황제는 아들을 보며 행복한 웃음에 젖어있던 얼굴을 차갑게 바꾸었다. 그는 궁녀가 가져온 소셋물에 탁한 정액이 묻은 손을 닦았다. 손을 닦은 소셋물이 물러나고, 맑은 소셋물이 등장했다. 얼굴을 닦자, 궁녀가 다가와 꼼꼼히 물기를 닦아냈다.
황제는 두 장으로 이루어진 침의를 걸치고 아침 탕을 먹는 장소로 이동했다. 몸 안을 따뜻하게 데워주며, 정력에도 도움이 되는 탕이라고 태의가 전했다. 황제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탕을 휘적거리다가 조반을 들 때 시중을 들어주는 궁녀를 보며 담담히 말했다.
“희비에게도 탕을 주거라.”
“예, 폐하.”
“희비는 정력이 약한 듯하니, 정력에 도움이 되는 걸로 탕을 만들어서 올리도록.”
그러고 보니 아침에 정력에 도움이 되는 탕을 먹으면…. 멍하니 탕을 음미하던 황제는 실실 웃고 말았다.
이제 젖 냄새가 목이 아니라 가슴에서 나겠군. 강의 유두는 연한 분홍색이었다. 그리고 작았다. 보통 여인들이 아이를 임신하면 가슴이 부풀고, 유두도 커지니 강의 것도 포도알만큼 커져서 빨기 좋으려나. 황제는 탕을 소리가 나지 않도록 우아하게 먹으면서 궁녀를 보았다. 궁녀는 황제의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시선에 난감한 듯, 고개를 숙였다.
“태감을 불러라.”
“예, 폐하.”
궁녀가 물러나고, 그 자리에 태감이 총총거리며 걸어왔다. 태감이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모를 기이한 목소리로 “폐하.”라고 부르기 전에, 황제의 아름다운 입술이 열렸다.
“희비가 아이를 잉태하면, 곧바로 비슷한 시기에 임신을 한 여인을 데려와.”
“예, 폐하.”
“그 여인을 유모로 만들 것이니, 인덕이 넘치는 여인이어야 하네. 집안도 명문가여야 하고…. 태어난 아이가 사내면, 첫날밤을 가질지도 모르니 외모가 어여뻤으면 하네.”
보통 태자의 첫날밤은 태자를 양육했던 유모, 혹은 궁녀였다. 태자의 첫날밤은 교육에 가까웠기에 쾌감을 느끼기보다, 유모나 궁녀가 어떤 식으로 운우지정을 나누면 되는지 일일이 지시했다. 황제는 기억도 나지 않는 초야를 떠올리다가 얼굴을 숙이고 있는 태감을 흘깃 보았다.
태감이 “폐하, 계속 하명해 주시옵소서.”라고 부탁했다. 황제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궁녀가 가져온 미지근한 차를 홀짝거리며 마셨다.
“희비의 젖은 천자의 것이니, 함부로 황자나 황녀에게 주지 말도록 하게.”
“마마께 미리 언질을 드릴까요?”
“그건 천자가 알려주도록 하겠다.”
그 아이는 겁이 많거든.
황제가 속으로 웃으며 차를 마셨다. 연모하지 말아야 했다. 너무 깊이 빠지면, 그곳은 깊은 우물이라 빠져나올 수 없다고 하였다. 이성과 냉정으로 나라를 다스려야 하는 황제였기에, 인간다운 감정에서 한 발자국씩 물러나야 한다고 늘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나 이미 빠져버렸다면. 뒤늦게 곁눈질로 눈치채고 도망가려 했으나, 온몸이 깊이 잠겨 입만 뻐끔뻐끔 내밀어 숨을 내쉬는 지경까지 와버렸다면, 그저 잠기는 수밖에.
차라리 계속 잠겨서, 강과 함께 잠들어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차 수면에 떠오른 고아한 얼굴을 지켜보던 황제는 삐뚜름하게 웃었다.
하늘이라 불리는 신이란 자들은 죽지 않는다. 그들은 수많은 나라를 만들어냈고, 방치했다. 그들에게 나라는 그저 자신들과 닮은 인간들을 세워놓고 그들의 발전을 지켜보다, 지겨워지면 버리는 물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연나라만은 달랐다. 하늘은 여체로 변신하여 자신의 아들과 몸을 섞었고, 그 아이와 사랑에 빠져 아이가 만들어가는 나라가 부강하길 바랐다. 또한, 나라가 부강해야만 했다. 아이의 몸은 아직 저 땅에 묻혀 신전 밑에 있었고, 아이의 피가 후손들에게 흘러가고 있었으니.
처음에는 인간의 삶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는 말에 곤란해하던 그녀는 아들의 후손들이 저지르는 우매함에 분개했다. 그들은 쉽게 일희일비했고 조정에 나태해졌다. 아들의 나라가 오랑캐들에게 침범당할 위기에 처했을 때, 그녀는 영생을 포기했다. 아들의 나라가 눈앞에서 망하는 걸 보느니, 차라리 영생을 포기하고 나라를 지키는 게 나았으므로.
그녀는 신관의 입을 통해 자신의 명을 전했다. 황제, 태자, 비빈을 선택해 부강한 나라를 유지해갔다. 병에 걸려서 시들해지는 황제는 일찌감치 버렸고, 연모의 감정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황제에게는 사형을 내렸다. 냉정과 이성,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지 못하는 황제는 이 나라를 지킬 수 없었다. 그녀가 황제를 선택하는 기준은 단 하나였다. 그녀가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종말에 눈을 감을 때까지, 죽은 아들의 빛나는 영광을 유지해주길.
영생을 포기한 하늘은 반드시 끝을 본다. 그녀가 영생을 이어갔어도, 언젠가 나라는 소멸했을 것이다. 천 년을 이어간 나라는 그 어떤 춘추에서도 볼 수 없었다. 고인 물이 자연스레 썩는 것처럼, 오래된 나라 또한 썩은 내를 풍기며 망해갔다. 하늘들은 영생을 위해 나라를 만들어 놓고 그저 지켜만 보았다.
그랬기에 연국은 하늘의 사랑을 받으며 부강해졌지만, 결국은 망국이 될 운명이었다. 시작이 있으면 언제나 끝은 있었다. 그 끝이 언제인지 아는 사람은 그 누구도 없다.
그래서일까. 황제는 끝을 모르는 상태로 달려가는 나라에서, 제사에 관여했다는 죄책감이 없었다. 오히려 제사에 관여했지만 잠잠한 하늘을 보며 자신감이 충만하게 차올랐다.
나는 천자다. 하늘의 선택을 받은 몸이다.
하늘조차 나에게 흠집을 내지 못하는데, 그 누가 나에게 흠집을 내겠는가.
피어오른 불꽃을 보며 황제는 주먹을 쥔 채 웃었다. 자신이 선택했고, 하늘은 들어줬다. 아니, 강을 주지 않으면 자신이 다른 백성들을 불러내어 나라를 망칠 생각을 알고 강을 내려준 것이다. 황제는 불꽃을 보며 웃음을 터트리고 싶었다.
아들을 향한 사랑에 하늘도 감격했다. 자신의 사랑은 하늘에게만 인정받으면 상관없었다. 문무백관들이 어떻게 아버지와 아들이 사랑을 나누느냐며 욕을 해도 괜찮았다. 수많은 비빈도, 자식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자신에게 종이 인형 같은 존재였으므로, 언제 사라져도 상관없었다. 오로지 강만, 숨을 쉬며 자신의 옆에 있으면 되었다.
그리고 자신은 아무도 오지 못하게, 성을 지어서 강을 거기에 가둬두고…. 강을 직접 죽이고 자신도 그 뒤를 따르고 싶었다. 강의 죽음까지도, 오로지 천자의 손으로.
하지만 천자가 먼저 죽고, 그 마지막을 희비가 쓸쓸이 보내는 건 보고 싶지 않았다. 아들은 자신만큼 희비를 사랑해주지 않을 테니까. 희비는 외로움을 많이 타는 아이였다. 형제들이 가는 것에도 그리 눈물을 흘렸는데, 천자가 가버리면 외로움에 사무쳐 울고 말겠지. 그 아이가 우는 걸 보느니.
아, 이게 연모의 감정인가.
처음과 달라진 자신의 두근거림에 황제는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위로 들어 올렸다. 화려한 천장의 무늬에 황제는 웃음을 기묘하게 흘렸다.
시나브로 그의 눈이 감기며, 그는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연모라…. 하찮은 것인데.”
이상하게 그대의 앞에선 진귀한 것으로 느껴지는구나.
그의 웃음이 한순간에 사그라지고, 그는 토라진 아이처럼 천장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속이 하찮은 것에 의해 일그러지고 있었다.
*
하늘이 미치지 않고서야 친아들을 폐하의 비로 간택하다니. 정말 나라에 망조가 든 것이 아닌가?
비정기적 조정을 마치고 대전을 떠나던 대신들이 입을 모아 조용히 쑥덕거렸으나, 망조가 든 나라라고 하기엔 지극히 조용했다. 지루할 정도로 잔잔한 하늘과 하늘하늘한 바람이 불어 돋아난 새싹들을 축복했다. 하늘에 수놓아진 구름은 얇고 투명하여 그 푸름이 호수처럼 청명하였으며 바람은 산뜻하여 흙먼지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라의 각 현마다 존재하는 신전에서는 올해의 농운이 대길이라는 소식을 전했다. 이 모든 것이 연강이 폐하의 비가 되었기 때문이라는 소문이 퍼져갔다. 소문은 발 없는 말처럼 순식간에 현들을 돌아다녔고, 백성들은 의심의 눈을 보내면서도 날이 무척 좋으니 어느 순간 그것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본래 연국 자체가 하늘과 그녀의 아들이 몸을 섞어 탄생한 나라였고, 몇 대는 근친으로 그 피를 이어갔으니 어느 정도 간택이 타당하다는 것이 백성들의 뜻이었다.
그러나 황제가 연강을 금이야, 옥이야 아끼며 품에 끼고 도는 것을 면밀히 알고 있던 대신들은 의심이 점점 커져갔다.
황제가 연강이 스물이 되도록 혼례를 보내지 않았다는 점이 그 의심의 바탕이었다. 후궁의 가장 첫 번째 조건인 깨끗한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부러 황제가 강을 보내지 않고 혼담까지 파기시켰다는 게 대신들 귀와 입을 통해 물 흐르듯 퍼져갔다.
전쟁터에 한 번도 보내지 않은 것도 심증 중 하나였다. 그들 중 누군가는 ‘비빈들이 냉궁으로 쫓겨난 것, 그리고 황자들이 몇 년을 간격으로 죽어나간 것도 의심스럽다.’라고 말했지만, 품계가 높은 대신의 서늘한 설명에 끝이 났다.
‘그것은 우연의 일치일 뿐이오. 본래 연국의 황자들, 황녀들이 장수하는 경우가 적지 않소? 살아남는다 하더라도, 태자에서 황제가 된 천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죽음뿐이오. 폐하를 보면 알지 않소? 폐하께선 천자가 되자마자 외척을 9촌까지 멸하셨고, 친아우인 지홍왕을 제외하고 형제들은 살리지 않았소이다. 그리고 그 전부터 폐하의 형제들은 일찍 생을 마감하셨으니…. 그것은 우연의 일치, 자연의 섭리요.’
그들은 잠시 입을 다물었으나, 이내 다른 자가 백미를 꿈틀거리며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걸 제외하더라도 걸리는 게 있습니다. 어째서 거세를 거부하시는 겁니까? 남자인 비는 반드시 거세를 해야 합니다. 폐하의 살아있는 비빈들이나 궁녀와 눈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그들 중 하나가 아이라도 덜컥 임신하면요? 말 그대로 황궁이 쑥대밭이 될 겁니다.’
‘그리고 다들 아시지 않습니까. 폐하가 얼마나 희비를 아끼셨는지요. 다른 황자들이 와도 시큰둥하신 폐하가, 희비만 오면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달려나가신 걸 아시지 않습니까. 본모습으로 변하여 아껴주신 것도 그렇고….’
‘만약 그것이 처음부터 폐하의 뜻이었다면….’
의심은 의심을 낳았고, 그들의 눈빛은 점차 무거워졌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엔 그간 황제의 행적이 의심스러웠다. 다른 아들들에게 무관심하다 못해 죽어가도 일말의 눈빛도 주지 않던 자가 유일하게 사랑한 아들이었으니.
그 사랑이 이런 식으로 변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애초에 염두에 두지 못해, 그들은 말을 잃어버렸다. 아니, 애초에 그 누구도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 그런 식의 의심을 두지 못했을 것이다.
‘어허! 하늘의 뜻입니다. 하늘께서 선택한 일을 일개 인간에 불과한 우리가 떠들 것이 아닙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다른 무관 한 명이 벌컥 화를 내었다. 그러자 다른 문관들도 거기에 동요하여 쑥덕거렸다. 하늘의 뜻을 의심하다니, 무엄한 일이라고. 반대편에 있던 품계가 오품 이상인 문관은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나직하게 말했다.
‘하지만 춘추를 보십시오. 다른 나라를 보십시오. 그 어떤 나라도! 춘추에도! 아들이 아버지의 비가 되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이게 무슨 해괴한 일이랍니까? 근친혼은 무려 사백 년 전에 끝난 일입니다. 그마저도 자신의 동생과 했지, 부모와 자식 간에 운우지정을 나누어 자식인지, 손자인지도 모르는 아이를 낳은 적이 없다 이 말입니다. 만약 제가 폐하라면, 자식이 비가 되었다면 거부했을 것입니다. 왜냐고요? 자식이니까요!’
나직한 말은 점점 거칠게 속도를 냈고, 절정에 달했을 때 모두 입을 다물고 깊은 생각에 빠졌다. 확실히 이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하늘이 비빈을 간택하는 나라라지만, 너무 태연스럽게 명을 받아들이고 아들을 잡아와 그날 몸을 탐해, 안에 씨를 뿌린 황제가 이상하게 느껴졌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아들을 안지 않았던가. 연강이 애달프게 우는 소리가 예월궁 너머로 들렸다고 한다. 아바마마, 제발.
그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침묵은 깊어졌다. 천명이라고 받아들인 자들은 가볍게 털어내고 자리를 떠났지만, 그렇지 못한 자들은 머리를 맞대고 의심을 키워갔다.
만약 황제가 정말 아들을 그런 의미로 사랑하여 제사에 관여한 것이라면. 그러나 관여하였다면, 어째서 하늘이 지금까지 가만히 있는 것일까. 하늘의 묵묵부답이 그들의 의심을 꾹꾹 눌렀다.
그렇게 무마가 되어가며, 연강의 혼례로 조정이 시끄러워질 무렵 한 대신이 황제를 바라보았다. 그날, 연강을 새벽부터 유린하고 후련한 표정으로 온 황제는 유난히 아름다웠다. 37살이란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청아하고 앳된 모습이었다. 수려한 모습에 빠져들 것 같았다. 황홀하다는 수식어가 부족할 만큼 찬란한 황금색 눈이 고아하게 접히며 웃을 때면, 그의 미소에 넋이 나갔다.
그러나 대신은 정신을 차리고 황제를 불렀다.
“폐하, 여쭐 것이 있사옵니다.”
“무엇인가?”
오늘따라 다정한 황제가 턱을 괴며 우아하게 되물었다. 대신은 잠시 마른침을 꿀꺽 삼키며 입을 열었다.
“외람되오나, 희비 마마에 관한 청이옵니다.”
“외람되면 하질 말아야지.”
황제가 웃음을 터트리며 가볍게 말했다. 대신은 잠시 말을 잃고 바닥을 보았다. 고의적인 정적이 대전 발치에 깔렸다. 황제는 입가에 걸린 다분히 인위적인 미소를 지우고 대신들의 얼굴을 살폈다.
의심을 가진 자가 있었고, 자신에게 충심을 보이는 자들도 있었다. 모든 이가 자신에게 충심을 바치는 것은 아니었으니…. 눈을 나른히 반쯤 감은 황제가 입을 열었다.
“말해보게. 무슨 청이지.”
황제가 물었다. 대신은 눈을 질끈 감았다.
“희비 마마께선 사내의 몸. 춘추와 예법에 따르면, 사내의 몸을 한 비빈이 여자인 비빈과 운우지정을 나눠 아이를 가진 적이 있습니다. 결국 희비 마마께서도 사내이신데…. 사방에 폐하의 여인들을 보면 음심을 품지 않을까 염려가 되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이어온 궁법을 어기는 건, 이치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생각되옵니다.”
“아직도 거세 타령인가?”
황제가 귀찮다는 듯 되물으며 쯧, 혀를 찼다. 그가 고개를 젖히자 턱에 고정된 끈이 달랑거렸다. 황제는 여전히 두터운 의심으로 무장하며 응시하는 신하들을 게슴츠레한 눈으로 보며 입술을 움직였다.
“천자의 비빈들 중엔 희비의 어머니가 있지.”
다들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개중에는 침을 노골적으로 삼키는 자도 있었다. 황제는 정숙하지 못한 대신을 보며 웃음을 흘렸다.
“벌써부터 그러면 안 되지. 곧 혼례인데.”
“폐하….”
탄식하듯 나온 소리에 황제는 더욱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그의 섬섬옥수가 팔걸이에 새겨진 늑대의 머리를 매만졌다. 그러다가 눈을 느리게 뜬 황제는 길게 이어진 대전을 보며 느긋하게 말을 이어갔다.
“어머니인 빈이 있고, 천자의 비빈들 중 대다수는 그 아이의 어머니이기도 하지. 그러니 함부로 몸을 맞추는 일은 없을 것이야. 그 아이는 어머니와 몸을 섞을 수 없는 아이거든.”
그가 웃음을 짙게 덧그렸다.
“물론 아버지와는 몸을 섞을 수 있지만. 천자가 그리 만들었고, 곧 그대들의 눈으로 볼 수 있을 걸세.”
“폐하! 정녕 아들인 그분에게서 자식을 보실 겁니까? 희비는 폐하의 아들이고, 그 아들에게서 아이를 보는 건… 자연의 섭리가….”
대신의 말이 점점 흐려졌다. 말을 이어가는 그의 얼굴이 벌게진다. 의심의 싹을 가진 대신들이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다시 한번 제사를 드리는 것이 어떨까요, 폐하. 오백 년이 넘는 역사를 가져온 연국이지만, 친아들이 비가 된 적은 없었습니다.”
“맞습니다. 하늘께서도 실수를 하실 수 있습니다.”
웅성거림이 점차 커져갔다. 저잣거리의 고성만큼은 아니었지만, 황제의 심기를 거스르기엔 충분했다. 황제는 충심으로 가득 찬 자들이 소리를 지르는 걸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저들이 ‘어찌 하늘의 뜻에 의구심을 가지는가?’라고 소리쳐도 자신이 의심의 싹을 잘라내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었다.
아직은 아들들보다 쓸모가 많은 자들이었기에, 황제는 살의조차 느끼지 않았다. 필요 없는 아들은 죽여야 했지만, 아직 필요성이 남은 자들은 살려둬야 했다. 과거를 열어 인재를 뽑을 때까진 저들이 필요했다. 황제는 짧게 웃었다. 웃음소리는 그윽하게 그들의 귀를 꿰뚫었다. 핏대를 세우며 서로에게 욕을 하고, 고성을 지르던 자들은 차츰 쌓여가는 웃음에 고개를 돌렸다. 황제가 턱을 괸 채, 귀엽다는 듯 대신들을 보며 너무나 아름답고 산뜻하게 웃고 있었다. 세상이 순식간에 꽃밭으로 변했다. 대전에 감돌던 고성이 황제의 미소 한 줄기에 식었다.
“다 싸웠는가?”
황제의 부드럽고 상냥한 목소리에 봄비가 내린 것처럼 분위기가 기묘하게 변했다. 봄비라, 그리 차갑지 않지만… 어딘가 서늘함이 남은 음성에 등에 땀이 내렸다.
“이제 천자가 말을 하겠네.”
“예, 폐하.”
황제가 조곤조곤 대신들을 어르고 달래며 말하자, 대신들이 그의 말에 고개를 숙였다. 황제의 음성엔 단단한 힘이 있었다. 약하고 무른 듯 보이지만, 실제론 누구보다 강한 검이 그에게 내재되어 있었다. 황제는 어좌에 반듯하게 앉아 그들을 차분한 시선으로 내려다보며 입술을 천천히 열었다.
“아비가 아들을 그렇게 사랑하는 게 이상한 일인가? 천자는 그리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데, 이 점에 대해 의심을 가지는 자들이 많은 것 같네.”
사랑. 아름답고 애틋한 단어에 대신들이 몸을 움찔 떨었다. 황제가 말하는 그 사랑은, 단순히 아비가 아들을 애정하는 게 아니었다.
그가 말하는 사랑은 연인들이 말하는 연모의 감정이었다. 은애였다. 보통의 남녀, 아니면 남남끼리 가능하지만, 가족끼리는 어울리지 않는 은애란 감정. 대신들이 슬그머니 눈치를 살폈다. 황제의 따스한 눈빛에 용기를 얻은 한 명이 입을 열었다.
“폐하, 하지만 평범한 아비라면 아들이 비가 되었을 때…. 그렇게 당연하게 받아들였을지 의심스럽습니다. 아들을 안을 수 있는 아비가 과연 몇 명이나 있겠습니까. 그것도 친아들입니다.”
“하늘께서 먼저 아신 거겠지. 천자의 애정이 다르다는 것을. 그래서 아들을 연인으로 내려주신 걸세.”
노래를 부르듯 유려하고 매끈한 말솜씨에 다들 입을 떡 벌렸다. 너무나 자연스레 아들을 연인이라고 칭하고, 진심으로 애정을 보이는 황제였다. 황제가 비빈들을 어떻게 대했는지, 아들들의 죽음에 어떻게 눈을 돌렸는지 잘 아는 대신들은 끈적거리는 눈빛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천자가 아이를 혼례를 보내고 싶지 않아 하는 건, 그대들도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네. 아이를 너무 사랑하니까. 그렇지 않은가? 자네도 천자에게 사랑하는 딸을 보내고 싶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되네.”
하늘의 명에 따라 딸을 황제의 비빈으로 보내야 했고, 그 딸이 아이를 낳다가 쓸쓸히 죽은 무관 김명호는 말이 없었다. 그의 풍성하고 하얀 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김명호도 황제에게 의심 어린 눈빛을 보낸 자로, 황제는 가장 지척에 있는 그를 기억하고 일부러 말을 건넨 것이었다. 황제는 김명호를 보며 쐐기를 박았다.
“천자도 그대와 같았을 뿐이야, 처음에는. 아이가 천자의 곁에 있길 바랐네. 그래, 처음엔 그랬지….”
과거에 묻어둔 일을 더듬어 꺼낸 황제가 눈을 내리깔고, 쓸쓸히 웃다가 바꾸었다. 그의 미소는 이제 사라지고, 거기에 스민 건 황제의 냉담한 분노였다.
“천자라고 처음부터 아들을 그런 음심으로 보았겠는가? 말이 되는 소리를 하게! 천자도 아비의 마음으로 천자의 아이를 유달리 아끼고, 예뻐했을 뿐일세. 그 아이가 사랑스러우니까. 늘 천자의 옆에 있길 바랐으니까. 그러다가….”
얼굴을 숙이고, 손으로 가린 황제는 속으로 웃었다. 하늘보다 먼저 내가 깨우쳤다. 그래, 내가 내 마음대로 제사를 바꾸었다. 그렇게 외치며 대신들을 농락하고 싶었으나, 그는 하늘이라는 기가 막히는 방어벽을 세웠다.
하늘이 있는 한, 그 누구도 자신과 아들이 있는 영역을 침범할 수 없었다.
웃음을 애써 지운 황제는 고뇌에 찬 얼굴로 돌아와, 무거운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목소리는 워낙 우렁찼고, 힘이 있었기에 대신들의 귀에 쏙쏙 박혔다.
“하늘께서 알아채신 거야. 천자가 희비를 얼마나 은애하는지. 그 감정이 어떤 것인지…. 아, 걱정 말게.”
어좌에서 몸을 일으킨 황제가 서릿발이 서린 눈으로 대신들을 노려보았다. 명백한 적의와 분개에 대신들은 이를 악물며 애써 황제를 올려다보았다. 황제는 아무 말도 못하는 대신들을 보며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미소를 느리게 지었다.
그리고 그의 입술이 서서히 열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혼례야. 그날 보게. 천자가 어떻게 아들을 사랑하는지. 얼마나 은애하는지 말이야. 그날 그대들의 눈으로 보면, 더 이상 의심하지 않겠지.”
말을 멈춘 황제가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천명은 천명일세. 그걸 기억하게.”
황제는 무료하게 덧붙였고, 미련 없이 대전을 떠났다.
*
혼례까지 이제 겨우 하루가 남았다. 황궁에선 혼례를 준비하느라 하나같이 정신이 없었고, 황궁 밖에서는 백성들이 새로운 비를 위한 제사로 분주했다. 거리마다 홍등이 올라왔다. 황궁에도 이제 선명한 붉은 빛으로 흔들거렸다. 무녀들과 신관들은 신성한 의식을 위해 백의를 갖춰 입고 예월궁으로 향했다. 그들은 강의 혼례를 위해 파견된 교육관들이었다.
혼례의 정사는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본모습으로 돌아간 황제의 정액, 그들이 성수라고 일컫는 씨앗들을 몸에 받아 태자가 될지도 모르는 아이를 잉태하는 일이었다. 아무리 강이 황제의 친아들이라 하더라도 이건 거부할 수 없었다.
강은 그날 황제와 공개적으로 정사를 맺고, 아이를 임신한다. 하늘이 내린 숙명이었다. 신관이 예월궁에 들어섰다. 스무 명이 넘게 모인 무녀들은 숙였던 고개를 슬며시 들어 궁을 보았다. 비빈들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는 터라, 의무적으로 창병들을 최소한의 인원으로 배치했는데 예월궁만은 달랐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 있는 창병들과 황제의 친군으로 둘러싸인 예월궁은 궁이 아니라 마치 절대 나올 수 없는 옥이나 냉궁 같았다.
“마마를 보러 왔소.”
신관이 황제의 명이 적힌 패를 건네며 친군 대장에게 말을 건넸다. 친군 대장 담영이 황제의 패를 무릎을 꿇은 채 받고서 느릿하게 일어나며 신관을 직접 침전까지 안내했다.
“마마는 일어나셨소?”
“저도 모르겠습니다. 마마께서 들어오지 말라고 하셔서요.”
담영이 애석하다는 듯 슬쩍 웃었다. 미소는 예의였는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무녀들이 소리도 없이 뒤를 따라왔다. 담소는 자연스레 단절되었다. 홍등이 만드는 오묘하고 야릇한 붉은 기운이 야심한 시각이 되면서 사방에 짙게 깔렸다. 물안개같이 자욱하게 깔리는 붉은빛을 알아챘는지, 침전 안에서 울음소리가 구슬프게 들렸다. 틈새를 비집고 들리는 소리에 담영은 손을 멈칫했다.
“우선 제가 먼저 들어가서 마마께 고하고 오겠습니다.”
갑자기 신관과 무녀들이 들이닥치면, 강이 지레 겁을 먹고 창으로 달아날 것 같았다. 도망가지 못하게 철저한 방책을 세워놨지만, 강이 도망을 치려 시도하다가 몸에 상처라도 난다면 큰일이었다. 혼례 전까지 몸에 상처가 나서는 안 되었다. 황제도 그걸 알고, 절대 심할 정도로 강과 정사를 맺지 않았다.
그랬다가 혼례가 미뤄지고, 안에 씨앗이 제대로 움트지 않을까 봐 염려했기 때문이다. 황제는 강에게서 아이를 보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담영은 황제의 아래에 깔려 팔다리를 움직이지도 못하던 강을 떠올리다가, 머쓱하게 입가를 가렸다. 황제가 머릿속을 염탐할 수 있는 자였다면 머리를 도려내고도 남을 일이었다. 아직 토끼 같은 자식이 있었는데 황제의 손에 죽을 수는 없었다.
담영은 얼굴을 최대한 무표정으로 유지하고, 침전 밖에 있는 내관에게 신관이 가져온 패를 보여주었다. 내관이 숨을 들이마시더니, 건장한 체격답게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마마, 신관 우현영이 폐하의 명을 받아오셨나이다. 문을 열겠사옵니다.”
황제의 명은 강의 허락보다 더 위였기에, 강의 말은 필요 없었다. 문이 소리도 없이 스르륵 열렸다. 담영은 홀로 침전 안으로 들어갔다. 강이 어디에 있을까. 눈을 돌리던 담영은 여러 겹이 겹쳐진 휘장 안에 솟아난 둔덕을 보았다. 미세하게 오들오들 떨리는 게, 딱 봐도 저 안에 숨은 듯했다.
어렸을 때부터 강은 황제가 없으면, 저런 식으로 침상에 올라가 금침을 뒤집어쓰거나 가장 구석진 곳에 숨는 게 버릇이었다. 황자 시절에는 체구가 작아 어디든 숨을 수 있었지만 어른이 된 지금은 아니었다. 담영은 어렸을 때와 한 치도 다르지 않고 똑같은 강의 행동에 어깨를 늘어뜨리며 허탈하게 웃었다.
이러다가 혼례식에서도 버릇처럼 황제의 품으로 파고드는 건 아닌지…. 그러면 황제가 더 좋아서 강을 울려버릴 텐데. 강이 그만해달라고 하는 손짓은 황제의 음심을 불태우는 것이었다. 그걸 본인만 몰랐다. 황궁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심지어 강의 어머니인 여 소의도.
“마마, 담영이옵니다.”
담영이 침상 아래에 무릎을 꿇고 소곤소곤 말하자, 이불이 들썩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불에서 쏘옥, 얼굴이 나왔다. 휘장같이 긴 검은 머리카락이 강의 하얀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머리카락을 거두어도 되겠습니까?”
담영이 물었다. 강의 머리가 느리게 주억거렸다. 담영은 손을 뻗어 강의 머리카락을 느리게 쓸어 올렸다. 유난히 하얗고 고운 얼굴에서 눈가만 빨갰다. 아니, 황제가 하도 물고 빤 덕분에 입술도 붉었다. 그 외에는 전부 달을 그대로 녹여 만든 듯 창백하고 서늘했다. 강은 이불 속에서 웅크리고 누워 고개를 슬쩍 들어 담영을 보았다. 유일하게 자신의 편이라고 생각했는지, 강이 울먹거렸다. 금세 강아지처럼 순하게 구는 강을 보고 담영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내일이 혼례인데, 아직도 현실을 부정하고 있었다.
“마마, 혼례를 위해 신관과 무녀들이 왔습니다. 이제 일어나셔야 합니다.”
“마마라고 부르지 마.”
강이 고개를 떨구며 눈물을 툭, 툭 떨구었다. 강이 고개를 젓더니, 이불을 꼭 쥐고 있던 손을 움직여 담영의 손을 잡았다. 강의 손목에 남은 적나라한 흔적이 보여 민망해졌다.
“난 마마가 아니야…. 너마저 나한테 그러면 어떻게 해. 나한테 이러지 마….”
강이 담영의 손을 필사적으로 당겼다. 담영이 차분하게 손을 뿌리쳤다. 황제의 눈이 많았다. 자신의 목숨과 가족의 안위를 위해서라도 조심해야 했다. 담영이 자신을 거부하자, 강은 충격을 받은 듯 눈이 토끼처럼 커졌다. 그리고 잠시 후, 눈이 일그러지더니 소리 없이 커다란 눈물을 쏟아냈다.
“마마는 폐하의 비입니다. 이제 저와 손을 잡을 수 없는 몸이십니다. 폐하만을 섬기고, 폐하만을 위해….”
“아바마마잖아!”
강이 소리쳤다. 담영이 입을 다물고 말간 시선으로 보자, 강이 참을 수 없었는지 몸을 살짝 일으켰다. 그러나 안에서 후려치는 듯한 통증에 금세 무너졌다. 강은 신음을 흘리며 침상에 손을 짚고 있었다. 황제가 손가락으로 정액을 넣고 간 덕분에, 안에 고였던 정액이 허벅지를 타고 흘렀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기분에 강은 아랫배를 감싼 채 멍하니 침상을 보았다.
침상에도 황제와 자신의 흔적이 수두룩했다. 어쩌면, 형제로 태어났을지도 모르는…. 그 생각까지 미친 강은 고개를 흔들었다.
“너까지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 있어? 넌 내 친우잖아! 적어도, 너라면… 나한테… 아버지를 지아비로 섬기라고 말하면 안 되잖아…. 응? 담영아. 제발…. 나 싫다. 너무 아파….”
아픈 것보다 그가 아버지라는 사실이 너무 괴로웠다. 무엇보다 더 괴로운 건, 황제의 눈빛이 과거와 달라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황제는 지금도 자신을 너무 예뻐했다. 정사를 맺으면서 눈물을 닦아주는 거나, 입을 맞추는 것이나…. 다 같은 황제였다. 눈에서 달콤함이 뚝뚝 흐르는데, 황제의 남근은 자비롭지 않았다. 그와 연결된 밀지는 너무 아파서, 다리를 움직일 수도 없는 지경이었다.
“나, 난 아버지를 지아비로 섬기고 싶지 않아. 내가 원한 혼례는 이런 게 아니었다. 나는… 너처럼 아내를 들이고, 자식을 낳고 싶었을 뿐이야. 아버지의 자식을 원한 게 아니었어….”
“폐하께서 원하시지 않습니까.”
담영이 담담하게 말했다. 강은 옆에서 벼락을 맞은 사람처럼 눈을 황망하게 떴다. 눈물도 멎고, 강의 입에선 흐느낌에 가까운 기묘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폐하께서 원하시면, 다 드려야 한다는 말이냐?”
“폐하께선 이 나라의 지존이십니다. 하늘의 아들이시고요. 그 누구도 폐하의 명을 거부할 순 없습니다.”
잠시 말을 멈춘 담영이 강을 똑바로 보며 쐐기를 박았다.
“설령 그게 아들이라 하더라도, 폐하께서 원하시면 아이를 낳아드려야죠.”
강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갔다. 강의 입이 일그러지더니, “흐으윽….” 하는 서글픈 소리가 나왔다. 강은 금침을 뒤집어썼다. 다시 솟아난 산이 들썩거렸다. 강이 안에서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어떻게 다들 그럴 수 있는 거야….”
나 너무 아픈데…. 강이 금침 안에서 비 맞은 강아지처럼 떨면서 오열하는 게 담영의 귀에 들렸다. 담영은 우두커니 앉아 강이 울음을 그칠 때까지 기다렸다.
어차피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강은 어쨌든 황제의 비였고, 그것을 스스로 납득하게 되면 황제와 다시 좋아질 것이다. 황제도 강의 온순한 성정을 알기에 별다른 다그침 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강은 도망가지 못한다. 강은 황제에게 유난히 약했다. 또, 형제들에게도. 그러니 황제의 아이까지 임신하게 된다면 발이 묶여 아무것도 하지 못하리라.
담영도 그것만은 장담했다. 혹시나 하는 염려 때문에 호위들을 깔아놓긴 했지만, 여태까지 봐온 강을 알고 있었기에 담영은 너무 쉽게 강을 다루었다.
“마마, 씻으셔야 합니다. 청결한 몸으로 돌아가 폐하를 받으셔야죠.”
“…뭐?”
강이 금침에서 눈만 드러냈다. 송아지처럼 크고 맑은 검은 눈이 두려움으로 확장되는 것을 보며 담영은 또박또박 말했다.
“내일이 혼례입니다. 모르셨습니까? 오늘 무녀들이 마마를 씻겨드릴 겁니다.”
“…담영아. 너 정말… 나를 아바마마의 비로 보는 것이냐?”
“마마, 편하게 생각하십시오. 폐하께서 마마를 연모하는 건, 마마께서 제일 잘 알지 않으십니까?”
강이 눈물을 매단 채 고개를 저었다. 검은 머리가 애틋하게 움직였다. 눈가가 아까보다 붉게 물들었다. 강에게 넌지시 얘기를 했는데도 반응이 없자, 결국 담영은 포기하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내관의 그림자가 보였다. 담영은 그쪽으로 걸어가 내관과 궁녀들에게 입을 열었다.
“마마께서 몸이 편치 않아 신이 직접 탕까지 모시겠습니다. 그러니 폐하께….”
그들이 알아서 고개를 끄덕였다. 담영은 안심하고 강에게 돌아갔다. 그런데 강이 침상 구석으로 이불을 뒤집어쓴 채 이동하고 있었다. 꾸물꾸물 움직이는 걸 무표정한 얼굴로 지켜보던 담영이 성큼성큼 움직여, 강을 그 상태로 안아 올렸다.
“싫어!”
강이 미약하게 버둥거렸지만, 지금으로서는 담영을 이길 수 없었다. 담영은 강을 갓 태어난 아기처럼 안고서 내려다보며 말했다.
“마마, 신이 탕까지 모셔다드리지요.”
강이 아래로 쓰러지지 않게 단단히 받쳐 안아 탕까지 데리고 갔다. 침전과 탕이 연결된 구조라 강이 반항할 새도 없이 도착했다. 언질을 받은 궁녀들이 탕을 데워놓은 상태라, 안이 김으로 자욱했다. 담영은 이제 얼굴을 가리고 흐느끼기 시작한 강의 몸에서 이불을 거두었다. 강의 나신이 드러났다. 하얀 몸이 황제의 입술 자국으로 얼룩덜룩했다. 상처를 내지 않고, 자신만의 흔적을 남겨둔 황제의 솜씨에 담영은 쓰게 웃었다.
이리도 사랑하는데. 차라리 아들로 태어나지 말지. 아들로 태어나서 이렇게 괴로워하다니. 담영은 웃음을 갈무리하며 강을 천천히 탕 안으로 넣었다. 뜨거운 물이 밖으로 흘러넘쳤다.
강은 담영에게 깊은 배신감을 느꼈는지, 바닥만 쳐다보았다. 담영이 몸을 일으켜 나가려는데, 강이 고개를 들어 올려 담영을 또렷한 눈으로 보았다. 눈물이 흥건했지만, 의사만은 분명했다.
“넌 날 이제 친우라고 보지 않는 것이지.”
“…마마시지요.”
담영은 고개를 예의 바르게 꾸벅거리며 등을 돌렸다.
“그리고 전 항상 폐하를 생각하는 충신입니다. 폐하께서 원하신다면…. 마마가 원하지 않아도, 드릴 겁니다.”
강은 숨을 들이켜 마시고, 고개를 숙였다. 바닥에 적신 물웅덩이 위로 이슬비 같은 눈물이 흘러내렸다.
차라리 꿈이면 좋을 텐데. 저 잔인한 말도, 자신을 정말 마마처럼 대하는 무녀들의 손도. 그리고 황제의 달콤하고 애정 어린 시선도….
“싫어….”
강이 몸을 부르르 떨며 중얼거리자, 그걸 들은 무녀가 강의 뺨을 닦아주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안 됩니다, 마마. 혼례식에선 절대 싫다고 말씀하시면 아니 되옵니다. 폐하의 성수를 받아들이시면 좋다고 말씀하셔야 합니다.”
“성수…?”
강이 핼쑥해진 얼굴로 중얼거리자, 무녀가 별것도 아니라는 듯 웃으며 말했다.
“마마의 안에 뿌려지는 폐하의 씨앗들입니다. 그날은 마마께서 아이를 갖게 해드릴 테니, 성수이지요.”
“예, 마마. 폐하께서 안에 뿌려주시면 이렇게 말씀하시면 되옵니다.”
옆에 있던 앳된 얼굴의 무녀가 강의 고운 머리카락을 빗겨주며 나긋나긋하게 덧붙였다.
“폐하, 신첩의 몸에 성수를 주셔서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 그러면 정말 아이가….”
강은 자신도 모르게 아랫배를 감쌌다. 이곳에 황제의 씨앗을 받는다. 그러면, 아이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걸 강론 때 들었고, 직접 보기도 했다. 춘추에도 분명히 적혀있었다. 이 안에… 아바마마와 자신의 아이가…. 생각만 해도 오한이 들었다. 따뜻한 물 안에 들어가 무녀들이 씻겨주는데도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강이 겁을 먹고 탕 안으로 자꾸 도망가려 하자, 무녀들이 고운 손으로 단호하게 막아 세웠다.
“폐하의 음경까지 마마의 이 입술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늑대가 된 폐하의 남근은 아주 깊숙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잘못하면 다치실 수도 있습니다. 그날의 폐하는 완벽한 성체인 늑대시니까요.”
“그 아이가 남자아이면… 마마처럼 훌륭한 황자로 성장할 겁니다.”
무녀들이 강을 씻겨주며 교육을 했다. 늑대가 된 황제를 어떻게 흥분시켜야 하는지, 어떤 식으로 안에 받아들이고 조여야 하는지.
그러나 강은 듣고 싶지 않아 귀를 손으로 막았다. 인간인 황제를 받아들이는 것도 이렇게 괴로운데, 늑대가 된 아바마마를 받아들이라니. 배가 터질지도 몰랐다.
“안 돼… 몸이 망가질 거다. 느, 늑대인 폐하는….”
오랜 시간 탕에 있었기 때문일까. 강이 붉어진 얼굴로 울먹거리며 말했다. 그 말을 들은 무녀들은 약간의 뜸을 들인 후, 봄바람 같은 살랑거리는 웃음을 터트렸다.
“마마, 괜찮습니다. 폐하는 절대 피를 보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예, 마마. 폐하께선 열셋의 몸으로 처음 정사를 하셨는데 그때도 피를 보지 않으셨사옵니다.”
그녀들이 자랑스럽게 황제의 정사에 대해서 말해주었지만, 강은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죽고 싶었다. 강이 탕에서 아픈 몸을 이끌고 도망가려 하자 그녀들이 눈치채고 강을 붙잡았다. 다 큰 사내였기에 쉽게 그녀들을 뿌리칠 수 있었으나 그 와중에도 그녀들이 다칠까 봐 강은 반항하지 못했다.
그리고 탕으로 나오게 된 강은 붉은 혼례복을 마주했다. 황제는 강의 몸을 오랜 세월 보았고, 만져본 덕분에 혼례복은 오차 없이 강의 몸에 딱 맞았다. 마지막으로 머리에 면사가 씌워졌다.
“정말 혼례란 말이냐?”
강이 울어서 쉰 목소리로 물었다. 면사를 거두자, 시야가 뚜렷하게 보였다. 강은 자신을 정말 황제의 비처럼 대하는 무녀들의 눈을 피해 발부리만 응시했다. 그녀들 중 한 명이라도 “아니옵니다, 마마. 다 거짓이옵니다.”라고 말해주길 바랐지만, 애석하게도 나온 건 화답이었다.
“예, 마마. 드디어 신성한 혼례가 내일이옵니다.”
어둠이 몰려왔다. 강은 붉은빛이 흐느적거리며 앉은 어둠을 빤히 보며 몸을 굳혔다. 강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손은 떨리고 호흡도 불안정했지만 어느 정도 확신이 섰다.
아바마마의 아이를 낳을 순 없었다. 이건,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주변에서 받아들이라고 해도, 자신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강은 다시 이불 안으로 꾸물꾸물 들어갔다. 탕에서 무녀들이 정성껏 씻겨준 탓인지 눈이 노곤해서 눈을 뜰 수 없었다. 아주 잠깐만 눈을 감았다가, 혼례 전에 몰래 도망가야겠다. 강은 황궁의 구조를 잘 알고 있었다. 황제는 어린 시절, 자신을 안아 천금궁 안에 있는 탈출구까지 알려주었다. 원래 그곳은 태자만 알 수 있다고 했지만, 황제는 강을 특별히 여겨 그 구조까지 몸소 보여줬다. 날이 밝기 전에, 몰래 거기로 숨어들어서…. 그렇게 머리로 계획을 짜던 강은 까무룩 잠이 들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누군가 자신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걸 느꼈다. 아주 다정하고 상냥한 손이었다.
“…아바마마.”
어떻게 이 손을 모를 수 있을까. 4살 때부터 자신을 오냐오냐하며 길러준 손이었다. 안 떠지는 눈에 힘을 주려 했지만, 눈이 떠지지 않았다. 너무 아팠다. 특히 황제의 남근이 여러 번 길을 낸 그곳이 아려왔다.
“아바마마, 소자 아픕니다, 너무… 아파서….”
“그리도 아팠느냐?”
황제가 뺨에 입술을 대며 물었다. 강은 훌쩍거리며 그렇다고 대답했다. 황제는 아주 잠깐 말이 없더니, 강의 얼굴을 거의 다 가린 이불을 내렸다. 황제의 금안이 강의 붉은 얼굴을 음미했다. 황제는 열이 차오른 뺨을 엄지로 쓸어 만지다가, 뒤에서 허리를 숙이고 있는 내관에게 입을 열었다.
“약을 준비해야겠다.”
“미약을 준비하겠사옵니다.”
“붓을 준비하도록.”
“바르는 용도로 쓰실 겁니까?”
“그래.”
황제는 용포를 천천히 벗었다. 혼례복을 입을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곧 있을 혼례를 기다리지 못하고, 설레는 얼굴로 웃었다. 아들을 공식적으로 자신의 비라고 선포할 날이 머지 않았다. 황제는 열에 들뜬 신음을 흘리는 아들을 응시했다. 아들의 피부가 뜨겁다.
“아이가 아프다는데 어쩔 도리가 없네.”
황제가 입술 끝을 올려 유려하게 웃었다. 어쩔 도리가 없다는 사람이 저렇게 예쁘게 웃다니…. 내관은 침상에 웅크리고 누워 우는 강을 보며 고개를 숙였다.
*
살이 비치는 얇은 침의를 입었는데도, 황제의 금안이 안을 파고들어 와 햇빛처럼 누볐다. 도저히 황제를 볼 엄두가 나지 않아 강은 주섬주섬 손을 움직여 장의라도 훔쳐오려고 했으나, 고양이만도 못한 어설픈 도둑질은 황제에게 들통났다.
“어차피 오늘 밤에 다 벗겨질 텐데.”
황제가 웃는 낯으로 은밀한 농담을 툭 던졌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강이 말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입만 벙긋거렸다. 그러지 말라고, 말은 못 하고 강이 황제의 긴 소매를 잡아챘다. 강은 주변에 있는 새초롬한 무녀들과 엄숙한 궁녀들, 내관들 틈에서 자신의 존재를 뚜렷하게 나타내지 못했다.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황제와 조반을 들고, 차를 나눠마시던 사이였지만 이제는 상황이 판이하게 달라졌다. 모두 입을 모아 ‘마마’라고 부르는 걸 견디지 못했다. 전하라고 불리며 당당하게 궁을 활보했던 걸 잊은 사람처럼, 강은 어깨를 움츠리고 눈치를 보느라 바빴다. 마치 황제의 눈에 들기 전 황자 시절로 돌아간 듯했다. 마지막으로 황제를 항상 보필하는 총관 태감까지 나가고 나서야 강은 숨통이 트이는지 고개를 들었다. 황제의 눈이 실처럼 가늘어졌다. 그의 눈은 집요하게 강의 눈가에 머물렀다.
다 창백한데, 눈가만 빨간 것이…. 강의 어머니인 여 소의도 그러했는지 생각해보았으나, 도통 생각나지 않았다.
“그런 말은….”
끝이 허물어질 것 같은 연약한 목소리로 강이 겨우 말했다. 황제는 턱을 괸 채 무료한 얼굴로 강을 보았다. 강의 입술이 조개처럼 열렸다가, 굳게 닫혔다. 몇 번이나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던 말을 입안에서 곱씹던 강이 드디어 용기를 내어 황제에게 전했다.
“소자가… 잘 따르겠으니, 부디 어머니만은 부르지 말아주십시오. 어머니만은, 제발….”
“그럼 어머니라고 생각 안 하면 될 것을. 여 소의라고 생각해.”
“아바마마!”
강이 황제의 소맷자락을 움켜잡으며 그를 불렀다. 황제는 개의치 않은 얼굴로 선선하게 웃으며 강의 뺨을 만졌다. 뺨을 여러 번 어루만지자, 황제의 손바닥에 고였던 열이 강의 뺨으로 이동했다. 창백했던 뺨이 조금이나마 사람답게 따뜻하게 변했다. 강은 황제의 손목을 애틋한 손으로 붙잡았다. 황제의 손등에 강의 손바닥이 겹쳤다. 그렇게 고왔던 아들의 손은 친왕이 되어 활을 연습하면서 일반 사내들처럼 딱딱하게 변했다. 그래도 아들만의 부드러움과 유약함은 여전해, 황제는 아들이 만져주는 손길에 눈을 내리뜨고 가만히 있었다.
“어머니만은…. 부탁드립니다. 소자가 천명을 받들어 아바마마의….”
강이 숨을 멈추고 눈을 떴다. 검은 눈에 물기가 솟구쳤다. 서러움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아바마마의… 비가…”
강이 띄엄띄엄 말하다가 못 참겠는지 고개를 숙였다.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눈물이 보였다. 숨죽여 우는 모습은 체념에 가까웠다. 그 모습조차 어여쁘고 사랑스러워, 황제는 눈을 떼지 못했다.
그래, 내 아들이니 저렇게 예쁘지. 저렇게 사랑스럽고 애틋한 아들을 남에게 주라고? 그럴 수 없었다. 그런 가능성을 생각하는 것조차 속이 탄다. 입이 바짝바짝 마른다. 천자가 직접 천금궁에서 먹이고, 재우고, 씻기고, 예뻐하며 고이고이 키워낸 아들이었다. 벌써부터 강을 예뻐해 주고 싶어서 아랫도리에 열이 몰리고 있었다. 아직 혼례 전인데, 벌써부터 침상에 눕혀놓고 마음껏 탐닉하고 싶었다.
그것도 모르고, 강은 눈물이 맺힌 뽀얀 얼굴을 들어 황제를 보았다. 황제는 가슴이 지끈거려서, 자신도 모르게 가슴팍에 손을 갖다 대었다.
“그러니까 어머니만은 혼례식에 참석 못 하게 해주시면 안 됩니까? 소자가 잘하겠습니다.”
“그대가 천명을 받아 희비가 된 순간부터 여 소의는 어머니가 아니다. 여 소의는 그대보다 품계가 낮은 빈일 뿐이지. 그리고, 희비를 낳아준 어머니고. 그리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강이 절벽에 매달린 사람처럼 절박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는 괜찮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또한 어머니도 절망적일 것이다. 자신의 지아비가 자신의 자식을 안는 모습을 봐야 한다니.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안 그래도 성정이 약해 비빈들의 괴롭힘에도 말 한마디 못하던 어머니였다. 그나마 강이 황제의 애정을 듬뿍 받아 괴롭힘이 덜해져 얼굴이 폈지, 그렇지 않았다면 시름시름 말라서 죽었을 것이다.
그녀를 생각하니 벌써부터 눈가가 시큰했다. 자신이 황제를 거부하면 어머니에게 손을 뻗을까 봐 두려웠다. 황제는 정말 무섭도록 자신만 예뻐했고, 그 외 모든 사람을 쳐다보지 않았다. 그의 곁에서 보고 자란 게 있으니 강은 애정을 받을수록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황제는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남들에게 쉽게 잔인해진다. 또한 자신에게 어려운 것이 그에겐 너무 간단했다. 그러니 자신이 알아서 맞춰준다면, 그가 쉽게 해결해주리라 믿었다.
“아바마마에겐 쉬운 것이지만 소자에겐 어려운 일입니다. 소자는 어머니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일 수 없습니다.”
“그런 모습이라니? 아파하는 모습? 걱정마라, 오늘은 아프지 않게 할 테니까.”
분명 같은 대화를 하는데 자꾸만 어긋났다. 자신이 원하는 걸 뻔히 알면서 황제는 얄밉게도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고 있었다. 강이 애가 타서 손을 뻗어 황제의 손을 꼭 잡았다. 양손을 잡고 문지르며 애교 아닌 애교를 부리는데 황제는 부드럽게 웃을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다 알면서.
“그대는 다른 자들과 달라.”
“아들로서 말씀이십니까?”
“뭐, 여러모로 다르지.”
황제가 상냥하게 웃으며 강을 끌어당겼다. 예전과 다름없는 다정하고 안락한 아비의 품이었다. 강이 황제의 품에서 바르작거리자 황제가 순순히 강을 풀어주었다.
“다정하게 안아줄 테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아.”
참담함에 강은 눈을 내리뜨고 묵직한 숨을 내뱉었다. 가슴에 응어리가 진 것처럼 아파왔다. 따끔따끔하기도 하고, 열이 고이기도 했다. 이것이 말로만 듣던 울화통인가. 온 황궁에 소문이 날 정도로 황제의 사랑만 받고 자라 고통을 모르던 강에게 이런 고통은 너무 낯설었다. 지끈거림을 이기지 못하고 강이 투정을 부리듯 황제의 손을 잡았다. 어릴 때부터 이어져온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아무리 황제가 강을 후궁처럼 대하고 안고 있어도, 아직 강의 몸은 황제를 아버지로 생각해 그때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소자가 이렇게 부탁드려도 아니 되는 것입니까?”
강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황제가 물끄러미 강을 보았다. 강의 눈빛이 말하고 있다. 제발, 이라고. 눈물을 매달고 저런 식으로 부탁하고 매달리면 더 해주기 싫었다.
왜냐하면 더 울리고 싶었으니까. 이유는 강이 어이가 없을 정도로 간단했다. 황제는 심술궂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건 아니 된다.”
황제가 딱 잘라 거절했다. 참담함이 가슴으로 내려와 푹푹 찔렀다. 날카로운 창이 가슴을 도려내는 듯한 통증에 강은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어머니 앞에서 늑대인 황제에게 안겨, ‘성수를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해야 한다는 게 너무 치욕스러웠다.
“어머니만은 제발 혼례식에서 제외시켜 주시면…. 아바마마, 제발….”
강이 사색이 되어 황제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이제 헤어질 시간이 성큼 다가왔고, 황제는 혼례 준비를 하러 가야 했다. 황제는 적절하게 강의 손을 떼어내며 몸을 일으켰다. 얇은 침의를 입은 강이 멍하니 황제를 보았다. 흐트러진 침의 사이로 강의 하얗고 길쭉한 몸이 보였다.
“그것은 하늘의 영역이다. 천자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황제가 눈을 들어 올려 강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
“천자의 핏줄이나, 천자의 남근을 한 번이라도 받은 자는 성스러운 혼례식을 봐야 한다. 그대의 어미도 마찬가지야.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 그대는 기억해야 해. 천명은 천명이라는 사실을.”
*
혼례식을 불과 몇 식경 앞둔 때, 강은 무녀들의 도움을 받아 몸단장을 하고 있었다.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화려한 붉은 혼례복이 하나씩 입혀졌다. 후궁들과 대신들이 보는 앞에서 다리를 벌리고 친아비의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아무리 생각해도 비참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라면, 형제들이 거의 다 죽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들의 죽음을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자신이 소름 끼쳐 강은 몸을 파르르 떨었다. 강의 얼굴이 마치 체기를 느끼는 사람처럼 허옇게 질려가고, 온몸에 힘이 들어가자 그것을 살펴보던 무녀 세희가 다가와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마마, 어디가 아프시옵니까?”
마마라는 소리에 강이 멍하니 있다가 단단한 팔뚝에 이마를 댔다.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대는 걸 본 세희가 깜짝 놀라 강의 어깨를 잡았다. 부드럽고 고운 손길에 강이 고개를 들어 올리자 세희가 엄한 얼굴로 강의 얼굴을 잡고 말했다.
“마마의 옥체는 더 이상 마마의 것이 아니옵니다. 고귀하신 하늘의 뜻을 받든 옥체시고, 성수를 받아 천제의 아이를 낳아야 하는 귀한 옥체이옵니다. 귀하게 여기시옵소서.”
“너희들은 내가 이상하지도 않으냐? 나는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아바마마의 아들이었다.”
강의 말에 세희가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가만히 강을 보고 있더니, 나긋한 음성으로 말했다.
“하늘께서 다 뜻이 있으셔서 마마를 선택하셨으니, 저희들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희가 맡은 일은 마마를 보필하여 훌륭한 황손을 생산케 하는 것입니다. 그 외의 것은 중요하지 않지요.”
그녀들은 최종적으로 나라를 위해서 살아가는 신하들이었으니, 황제나 강의 처지를 불쌍하게 여기지 않았다. 그녀들의 눈에 서린 냉정함에 강은 체념한 듯 얌전히 얼굴을 맡겼다. 강이 말이 없어지자 그녀들은 이 틈을 타 강의 긴 머리카락을 꼼꼼히 빗겼다. 황제가 어린 시절부터 손수 가꾼 터라 머리가 무척 곱고 아름다웠다.
강은 그녀들의 손을 받아들이며 계속 정면을 보았다. 자신과 동고동락했던 담영이 우두커니 서서 강을 감시하고 있었다. 담영의 부하들도 담영처럼 강을 빤히 보며 혹시나 하는 가능성에 대비했다.
자신이 어머니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걸 다 알면서…. 강은 이 아름다운 황궁에 자신의 편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가슴이 텅 비어갔다. 자신은 형제들을 어떻게든 살리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는데. 그 노력은 다 쓸모없는 것이었다니.
가슴이 왜 이리 허하고 쓰린 것인지…. 강이 욱신거려오는 가슴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마마, 이제 일어나시지요. 준비를 해야 합니다.”
무녀들이 강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강의 몸이 비틀거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담영이 다가와 잡아주려 하자, 강이 거부했다.
“폐하의 명입니다.”
담영이 나직하게 말하며 강을 번쩍 안았다. 너의 도움은 필요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황제의 뜻이라 하니 할 말이 없었다. 담영은 오로지 모시고 있는 황제의 말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움직였으니까.
“천제의 아이를 낳아 비의 본분을 다하십시오. 그것이 마마가 하실 일이옵니다. 그러고 나면 모든 것이 편해질 겁니다.”
담영이 강의 손을 따스하게 잡아주며 자기 딴에 위로를 했지만, 강에게 전혀 위로가 되지 못했다. 강의 눈이 축 내려갔다. 참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며 강이 침울해졌지만 그 누구도 눈 하나 깜박이지 않았다.
‘천명은 천명이다.’
이 모든 일을 가능케 한 하늘이 있었으므로, 그들은 강의 얼굴을 닦아주었다. 요 며칠 울어서 그런지 얼굴이 부었다. 그래도 워낙 선이 날렵하고 서늘하게 잘생긴 얼굴이라, 특유의 고고한 분위기가 더 살아났다. 황제가 품에 끼고 예뻐한 아들답게 잘생긴 얼굴이었다.
혼례식을 위해 어여쁘게 치장해주려 하던 궁녀는 들고 있던 분을 내려놓았다. 강이 눈을 내리뜬 채 손을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강은 어깨에 걸쳐진 흐느적거리는 혼례복을 마뜩지 않다는 눈으로 흘겨보고 있었다. 손가락을 다 덮는 긴 소매와 땅에 끌리는 옷자락이 불편했다.
“마마.”
자신을 부르는 마마란 소리에 강이 흠칫 놀라 눈을 가늘게 떴다. 아무리 들어도 적응이 안 되는 호칭이었다. 무려 5겹이 넘게 입은 혼례복을 잡아당기며 강이 물었다.
“원래 혼례복을 이렇게 입히지 않았는데….”
황제가 태자를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식들만 죽어나가는 상황에서 하늘은 벌이라도 주듯 비빈을 선택했고, 황제는 그때마다 여인들을 안아야 했다. 그 탓에 그는 치렁치렁한 혼례복을 입어야 하는 허례허식을 과감하게 잘라내 늑대가 되어 여인만 안고 물러났다. 그런 황제가 이런 정석적인 혼례복을 내리다니…. 강은 떨떠름해서 소매를 만지작거렸다.
“폐하께서 혼례복을 입히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아바마마가?”
궁녀가 묘한 표정을 지으며 강의 얼굴에 분을 톡톡 발랐다.
“아바마마라니요. 마마의 지아비이신걸요. 폐하라고 부르셔야지요.”
궁녀는 강의 얼굴이 굳어가는 걸 보면서 싱긋 웃었다.
“설마 폐하에게 안기면서 아바마마라고 부르실 겁니까? 아니 됩니다. 폐하라고 부르셔야 합니다. 마마는 더 이상 소자가 아니라 신첩이시고요.”
정말 나만 어려운 것인가. 남들은 너무 태연자약해서 강은 할 말을 잃었다. 적응할 시간도 주지 않았다. 강이 울상이 되어 고개를 숙이자 궁녀가 “마마.” 하며 작게 타박했다. 눈치를 보던 강이 움찔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폐하의 몸에 절대 상처를 내선 아니 됩니다. 또한 아프다는 소리나, 싫다고 하시면 아니 되고….”
“아, 알고 있다.”
강이 얼굴을 붉히며 무안한 듯 입술을 달싹거렸다. 궁녀는 자신의 본분을 다해 강을 어여쁘게 치장해주며 말을 이어갔다.
“혼례복은 폐하께서 직접 벗기실 터이니, 마마께서 벗으시면 아니 됩니다.”
“…뭐?”
궁녀가 그런 것도 모르냐는 듯한 얼굴로 웃었다.
“원래 혼례에서 신랑이 신부의 옷을 벗기는 겁니다. 마마께선 그저 가만히 누워서 폐하를 즐겁게 해드리면 됩니다. 이 의식은 단순한 혼례를 떠나….”
궁녀가 살짝 말을 끊고, 강의 입술에 붓을 느긋하게 갖다 대며 단호하게 음성으로 확정을 지었다.
“황궁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하늘의 뜻을 받아 폐하의 아이를 잉태하는 성스러운 제사니까요. 마마께선 성실히 임하셔야 합니다.”
차라리 독한 술을 마시고 이날의 기억을 모두 잊어버렸으면…. 강은 앞을 바라볼 수 없어 머리를 부여잡고 고개를 숙였다. 머리보다 가슴의 통증이 너무 심했다. 누군가 위에서 몸을 짓누르는 듯한, 강한 압박감에 가슴이 짓눌리고 있었다.
그만, 그만, 제발 그만…. 가슴에서 연신 같은 말이 비명처럼 터져 나왔다.
그러던 사이, 종이 울렸다.
혼례의 시작이었다.
*
눈앞에 투명한 면사가 하늘하늘 움직인다. 이걸 걷어버리면, 혼례가 다 무산이 되었으면 좋겠다. 아주 멍청하고 하찮은 생각을 하면서 강은 닫힌 문을 보았다.
제발, 문이 열리지 않기를. 제발, 제발…. 다 거짓말이고, 꿈이기를. 강은 겁에 질린 사람처럼 덜덜 떨면서 혼례복을 꽉 잡고 빌었다.
하지만 문밖에서 들린 건, 가래가 낀 듯 탁한 신관의 우중충한 목소리였다.
“천제 폐하의 희비는 제단 앞에 서시오.”
강을 담당하는 신관 둘과 수십 명의 무녀가 일어섰다. 신관이 물이 흐르는 듯한 손길로 문을 열었다. 면사에 가려진 시야에도 제단이 또렷하게 보였다. 제단 앞에는 대신관이 신성함을 상징하는 백의를 입고 서 있었다. 그의 손에는 두루마리가 들려있었고, 그의 양옆에 서 있는 신관의 손에는 작은 단지와 붓이, 그리고 종이 들려있었다. 확실히 강이 알고 있던 혼례와는 달랐다.
그리고 대신관과 신관들을 너머로 비빈들이 품계에 따라 허리를 꼿꼿하게 펴고 앉아있었다. 익숙한 얼굴들이 한가득이었다. 그중에 어머니도 있었다. 여 소의는 유독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앞을 간신히 보고 있었다.
어머니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고 왔는데, 막상 어머니를 마주하니 모든 것이 망가졌다. 강은 뒤로 물러났다.
“싫어….”
강이 핏기 하나 없는 얼굴이 되어 중얼거렸다. 이건 아니야… 할 수 없어.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아바마마에게 안기고 싶지 않아. 강의 마음이 같은 말을 반복했다.
“가셔야 합니다, 전하.”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던 담영이 현실을 깨워주기 위해, 일부러 ‘전하’라고 불렀다. 강이 느리게 고개를 들어 담영을 보았다. 강은 울지도 못할 만큼 굳어있었다.
“제발, 제발 부탁이야. 담영아. 아바마마에게 안기고 싶지 않다…. 제발, 제발…!”
강이 담영의 팔에 매달리며 마지막으로 부탁했다. 담영이 친군들을 보자, 그들이 다가와 강을 떼어냈다. 강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때마다 면사가 흔들리며 강의 얼굴이 드러났다. 곱게 잘생긴 모습이 처연했다. 담영은 제사를 앞두고 한숨을 쉬지 않았다. 그는 엄한 얼굴로 강을 보며 낮게 속삭였다.
“전하, 어찌 이리 어리게 구십니까? 폐하를 실망시키고, 하늘을 절망시킬 작정이십니까? 이건 다 나라를 위한 일입니다. 어서 가십시오. 천명을 거부할 수 있는 자는 그 누구도 없습니다. 설령 폐하라 하더라도, 해야 하는 일입니다.”
친군들이 무력을 써서 강을 떼어냈다. 문이 열리고, 강이 끌려 나왔다. 강이 고개를 숙여 오열하며 띄엄띄엄 말했다.
“이러지 말게, 제발…. 어찌 다들 나에게 이리도 잔인하단 말이냐….”
강이 장영후의 품에 안겨 엉엉 우는 소리가 저 멀리 다 퍼졌다. 그 소리를 들은 강의 친어미인 여 소의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가며 몸을 들썩였다. 그것을 보던 귀비가 손으로 허벅지를 꽉 눌러 여 소의를 막았다.
“자네는 봐야 해.”
“마마.”
여 소의가 울음 섞인 목소리로 귀비를 불렀다. 귀비가 담담한 시선으로 여 소의를 보며 말했다.
“그럼 자네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지? 가만히 입이나 다물고 자네의 아들, 아니 희비나 잘 보게. 폐하가 얼마나 아끼시기에, 우리와 다르게 혼례복까지 입혀가면서 안으시려는지.”
여 소의가 터져 나오려는 눈물을 손으로 틀어막으며 울었다. 귀비는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도 눈 하나 깜박이지 않았다. 귀비는 작정한 듯 여 소의를 말로 괴롭히기 시작했다.
“경사를 앞두고 울다니. 참으로 불경하기 그지없다. 자네가 울어서 희비가 모진 고통을 받길 원하는 건가? 쯧쯧, 반겨주지는 못할망정…. 이러다가 불운이 깃들까 봐 걱정이네.”
그녀가 고개를 숙여 바들바들 떨었다. 강의 울음소리가 커지고 있었다. 강이 오지 않으려고 버티자, 결국 친군들이 강을 억지로 끌어와 제단 앞에 앉혔다.
아름다운 혼례복을 입은 미남이 제단 앞에서 초식동물처럼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자신을 보는 시선이 버거운지 고개를 들지도 못했다. 그 모습을 차마 여 소의는 볼 수 없어서 내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냉소적으로 본 귀비는 피식 웃으며 담담하게 말했다.
“형편없긴….”
둥, 하고 북소리가 혼약식의 시작을 알렸다. 강은 신관 앞에서 바닥에 손을 짚고, 고개를 들어 정면을 보았다. 굳게 닫힌 문이 보였다. 저곳에서 황제가 늑대로 변해 다가올 것이다.
“제발….”
하지만 강의 애원은 신관의 위엄에 찬 목소리에 묻혔다. 고어로 신에게 말을 건 신관이 고개를 돌려 강을 보았다. 강이 덫에 걸린 사슴처럼 큰 눈에 눈물을 매달고 신관을 보았다. 자신의 편이 아무도 없는 걸 머리로, 몸으로 알면서 강은 신관에게 도움을 청했다. 강은 거의 정신을 반이나 놓은 것과 다름없었다. 눈은 초점이 없어서 흐렸고, 입은 멍청하게 같은 말을 거듭했다. 강은 현실을 거부하고 있었다. 신관은 곱게 치장해서 오늘따라 예뻐 보이는 강을 빤히 보았다. 강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엎드린 채, 입술을 달싹였다. 강의 눈이 자신의 지아비를 찾고 있었다.
“아바마마는….”
“폐하께서는 인간의 모습으로 들어오셔서 마마의 혼례복을 직접 벗겨주실 겁니다.”
대신관이 뒤로 물러나자, 옆에 있던 신관이 다가왔다. 그의 손에 들린 단지와 안에 담긴 붓이 수상했다. 자신이 본 혼례에선 저런 게 등장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사소한 도구에도 겁을 지레 먹은 강이 처량 맞게 오들오들 떨었다. 대신관은 그 모습을 보며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이제 황제가 들어올 차례였다.
강이 들어온 곳과 대척하고 있는 커다란 문을 무녀들이 열었다. 어둠이 다 잡힌 공간 너머에 묻혀있던 황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극도의 겁에 질린 강이라도, 빛나는 듯한 그의 외모에 정신을 차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과 비슷하게 불타는 듯한 붉은 혼례복을 입은 황제가 구름을 타고 내려온 신선처럼 유유히 다가오고 있었다. 반짝반짝 빛나는 은발을 하나로 틀고, 비녀를 꽂아 붉은 비단으로 장식한 게 인상적이었다. 바닥에 끌리는 붉은 옷자락도 그의 방해가 되지 못했다. 황제는 거리낌 없이 주변의 시선을 물리치고 강의 앞에 단아하게 무릎 꿇고 앉았다. 황제가 손을 들어 강의 면사를 올리고, 손으로 치장한 강의 얼굴을 더듬었다. 그리고 황제가 화사하게 웃었다. 꽃이 핀 것처럼 아름다운 미소였다.
“어여쁘다.”
황제의 손이 차례대로 강의 이마, 눈, 콧날, 그리고 미끄러져 내려와 입술까지 내려와 멈췄다.
“이 입술로 드디어 신첩이라고 말할 때가 왔구나.”
그제야 강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눈을 크게 떴다. 신첩. 자신은 황제의 아들이 아니라 비로 공식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다.
하지만 강을 더 놀라게 한 것은 무릎 꿇은 황제였다. 그 누구에게도 무릎을 꿇지 않던 황제가 유일하게 강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입을 맞추기 위해 가까이 있었다. 강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뻗어 황제의 소매를 잡았다. 무엄한 행위라고 다그쳐도 뭐라 할 말이 없는 행동이었지만, 그 누구도 강을 다그치지 않았다. 황제는 아들의 귀여운 교태라고 생각했는지 유려하게 웃고 있었다.
“아, 아바마마. 어찌하여 소자 앞에서….”
“그대는 내 비니까.”
깔끔하게 말을 잘라냈다. 비라는 직접적인 명칭을 들은 대신, 비빈, 그리고 살아남은 종친들은 사색이 되어 앞을 뚫어지게 보았다. 말로만 듣던 걸 실제로 보는 건, 매우 다른 느낌이었다. 겨우 떠오른 감정을 가라앉힌 사람들이 무표정이 되어 황제와 강을 바라보았다. 황제는 강의 손을 꼭 잡았다. 무술을 연마하고, 활을 쏘느라 손가락에 굳은살이 있었다. 손바닥도 마찬가지였다. 황제는 감정을 알아챌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로 강의 손바닥이며, 손가락을 매만지다가 고개를 들었다. 황제는 신관이 가지고 온 합환주를 집어 들었다. 이걸 나누어 마시면 진짜 부부가 되는 것이었다.
“그대와 천자가 혼례를 치르는 것이다.”
거칠어진 숨을 죽인 황제가 애써 태연하게 말을 이어갔다.
“인정받는 진짜 부부가 되는 것이야.”
부부란 말에 어디선가 울음이 들렸다. 강은 20년 동안 들은 목소리를 쉽게 알아챘다. 어머니였다. 어머니가 그만 울음을 참지 못하고, 흐느끼신 것이다. 강은 일부러 그곳을 보지 않았다. 우는 어머니를 보면 마음이 와르르 무너질 것 같았다. 사람의 것이 아닌 듯한 황제의 용안에만 집중하려 했다. 형제들은 마구잡이로 쓸려나가 죽었지만, 어머니만은 그리 만들 수 없었다.
어머니와 형제는 애초에 무게 자체가 달랐다. 저울에 달아도, 어머니 쪽이 훨씬 무겁게 기울어졌다.
“합환주를 들어야지.”
강은 떨리는 손으로 합환주를 들려 했지만, 손이 정말 미친 듯이 떨려서 잡지 못했다. 강이 결국 “모, 못 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황제는 그것도 사랑스럽다는 것처럼 빤히 보더니, 입에 합환주를 머금었다. 붉은 술잔이 완전히 황제의 입술에 기울어지고, 황제가 잔을 신관에게 내밀었다. 그가 받아들자, 황제가 보란 듯이 강의 얼굴을 감싸고 입을 맞추었다.
“으응….”
며칠 동안 황제가 가르쳤지만, 여전히 미숙한 입놀림으로 강이 술을 받아먹었다. 추웁, 춥…. 강이 황제의 입을 통해 합환주를 받아 부부의 연을 맺는 걸 본 대신들은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분명 아들과 아버지였는데. 둘 사이에 흐르는 이 연인 같은 야릇한 분위기는 무엇이란 말인가. 속에서 끓는 이상하고 오묘한 기분에 그들은 몸을 들썩였다.
황제는 강이 술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잘 받아먹을 수 있게, 고개를 틀었다. 강의 고개가 같이 따라 돌아가려 하자, 황제가 웃음을 흘리며 손으로 턱을 잡고 고정했다. 강은 눈을 질끈 감고 입을 벌린 채 아기 새처럼 황제가 주는 술을 받아마셨다. 꼴깍, 꼴깍하고 술이 강의 목을 타고 넘어가는 소리가 황제의 귀에 선명하게 들렸다. 이제 부부가 되었다는 증명 같았다.
“후….”
황제가 눈을 감고, 입술을 떼어냈다. 달콤하게 이어지던 입맞춤이 끝나고 나서야 이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정신을 차렸다.
유일하게 황제가 사람 같아 보이던 순간이었다. 정말 정성껏, 온 힘을 다해 부딪히고 입술을 머금고 있었다. 황제가 눈을 감고 애절하게 입을 맞추는 모습을 본 비빈들은 입술을 씰룩거렸다. 그 어떤 비빈도 저런 입맞춤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흐으….”
황제와 입맞춤을 마친 강이 부들부들 떨며 입술을 가렸다. 황제가 다정하게 빨아준 입술이 따가웠다. 강이 얼굴을 붉히며 입술을 가리자 황제가 손목을 잡아 내렸다. 그의 손이 위로 올라와 강이 입고 있는, 가장 치렁치렁한 새빨간 혼례복을 벗겼다. 허리에 묶인 여러 겹의 끈이 풀어지고, 혼례복이 스르륵 소리를 내며 바닥에 쌓여갔다. 강은 어느새 옷 하나만 남겨놓고 다소곳하게 앉아있었다. 강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붉었다. 황제는 강의 얼굴을 쓰다듬더니 입술을 벌려, 그 안에 손가락을 넣었다. 황제의 길고 단단한 손가락 두 개가 강의 입안을 누비기 시작했다. 강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황제를 보았다. 이게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는 아들이라니. 황제는 그 사실이 무척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워 환하게 웃었다. 강은 그 표정을 보며 무의식적으로 황제의 손가락을 한 번 빨았다. 힘을 뺀 상태로, 추웁, 소리가 날 정도로 혀와 살갗이 부딪혔다. 눈을 굴려 다른 이를 보지도 못하고 황제만 응시하며 강이 손가락을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부끄러우냐.”
황제가 물었다. 강은 눈을 내리뜨고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예, 폐하.”
손가락을 물고 있는 상태가 발음이 뭉개졌다.
“성수를 받아들이는 걸 부끄러워해서는 아니 된다.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말을 멈춘 황제가 강의 남은 옷 사이로 손을 넣어 부드러운 허벅지를 만졌다. 노골적이고 음란한 손길에 강이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황제가 이리 오라는 듯 팔을 벌려, 강의 얼굴을 어깨에 대게 했다. 강이 황제의 어깨에 뺨을 숙여 사람들로부터 시선을 피한 뒤 숨을 몰아쉬었다. 강의 습윤한 숨결이 황제의 목을 간지럽혔다.
황제와 강의 애틋한 행위를 본 사람들은 헛기침을 하거나, 얼굴을 붉히거나, 마른침을 삼켰다. 유독 침 삼키는 소리가 크게 들려 강의 귀가 더 빨갛게 달아올랐다. 황제의 손이 다리에서 올라와 늘어진 남근에 닿았다.
“흡…!”
황제가 강의 귓가에 다가와 속삭였다.
“천자의 아이를 한 번에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 혼례를 기쁘게 받아들이라는 듯, 황제가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피가 섞였든, 안 섞였든 어쨌든 얼굴을 보고 산 가족들이 자신과 친아비의 관계를 보고 있는데 어떻게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강은 미약하게 고개를 저었다.
“시, 싫….”
강이 울먹거리며 거부하자 황제가 소리 내서 웃었다. 강은 싫다는 말을 하지 말라고 연거푸 말했던 사람들의 말을 떠올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오늘은 좋다는 소리를 할 것이다.”
자신이 가득 찬 목소리였다. 황제는 강을 자신의 가랑이로 끌어당겼다. 어떤 의도인지 분명했다. 강은 부들부들 떨며 아랫입술을 꽉 물었다. 허리에 동여매진 끈이 보였다. 황가를 상징하는 금색 용이 수놓아져 있었다. 황제는 그것을 풀지 않고, 강의 입술을 더듬으며 애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입으로 풀라.”
“예…?”
말을 들었는데 강은 백치처럼 되물었다.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황제는 피식 웃더니 모두가 들을 수 있게 또박또박 말했다.
“입으로 매듭을 풀고, 천자의 성수를 직접 받아마셔라.”
강이 숨을 멈추고 주먹을 쥐었다. 온몸이 수치심에 오들오들 떨리기 시작했다. 마치 심한 열병을 앓는 사람처럼, 강의 얼굴이 뜨겁게 불타올랐다. 좌우에 앉은 사람들은 예의상 들고 다니는 합죽선을 펼쳐 붉어진 얼굴을 가렸다. 그러면서도 눈은 드러내 강이 황제의 남근을 빠는 걸 기다렸다. 강은 딱딱하게 굳은 검은 눈으로 황제의 다리를 보다가, 바닥에 엎어져 울었다.
“어찌하여…. 소자에게 이리 잔인하십니까?”
강이 고개를 들어 황제를 보았다. 강의 커다란 눈에 청승맞은 눈물이 맺혀있었다. 마치 자신의 죽음을 알아챈 순한 송아지 같은 눈망울이었다. 어룽거리는 눈물이 파르르 떨리는 눈꺼풀 탓에 붉은 뺨 위로 흘러내렸다. 투명한 궤적이 선명하게 그려졌다가 사라졌다.
“소자는 아바마마의 아들인데, 어찌하여… 어찌하여 이리도 잔인하게 소자에게 그런 걸 원하시는 겁니까.”
가슴에 열이 맺힌 듯 아파왔다. 강은 눈을 질끈 감고 후드득 눈물을 아래로 떨어뜨렸다. 생을 잃은 꽃이 바람에 몸을 맡기고 떨어지는 것과 비슷한 움직임이었다. 강이 고개를 들어 올려 황제를 보더니, 무언가 결심한 얼굴로 입술을 열었다.
“차라리 다른 후궁들처럼 소자를 안으십시오.”
황제가 불쾌하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나 손길을 더할 나위 없이 다정했다. 그는 강의 눈물을 닦아주며 쾌활하게 웃었다.
“싫다.”
그는 강의 턱을 부드럽게 매만지더니, 엄지를 내밀어 부풀어 오른 아랫입술을 만졌다. 정말 여린 강이었다. 구석구석이 다 여렸다. 고작 한 번의 입맞춤으로 이리 부어오르다니.
“그대를 다른 후궁들처럼 여겨달라니. 천자의 애정이 두려운 모양이구나.”
“두렵고 무섭습니다, 아바마마.”
“왜 무서운지 천자는 알 수가 없구나.”
단조로운 목소리로 중얼거린 황제가 강의 입술을 톡톡 두들겼다.
“풀고, 삼키고, 빨아서 성수를 삼키기만 하면 되는데 그게 그리도 어려운 일이더냐? 네 어미였던 여 소의와 다른 후궁들도 능숙한 입놀림으로 성수를 받아마셨다.”
황제는 고아한 시선으로 겁먹은 강의 얼굴을 더듬어 보더니 미소를 띠며 상냥하게 물었다.
“그럼 늑대가 된 천자의 양물을 물테냐? 그것을 원한다면 그리 해주마. 그대가 선택해.”
강은 고개를 숙이고 고민에 빠졌다. 무얼 선택해도 그리 좋지 않은 고민이었다. 사람의 모습을 한 황제의 남근을 빨 것인지, 아니면 늑대의 거대한 양물을 입에 넣고 빨 것인지 골라야 했다.
참으로 원통하구나. 가슴이 찌르르하고 울리는 통증에 강은 허탈한 숨을 내뱉었다. 그러나 통증은 옅어지지 않고 더욱 심해졌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 온몸이 조각조각 찢겨나갈 것 같았다.
그러나 고통을 억누르고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도망치지 못할 거면, 빨리 해결하고 어디론가 몸을 눕히고 싶었다. 어머니가 없는 장소라면 더더욱 적격이었다.
강은 하얗게 질린 얼굴을 황제의 가랑이 사이에 파묻었다. 바닥에 납작 엎드려서 입술을 움직여 옷고름을 잡았다. 손을 쓰지 말라는 뜻을 잘 알았기에, 강은 오로지 부드러운 입술만으로 황제의 남근을 꺼냈다. 꽤 오랜 공을 들여 황제의 남근을 꺼낸 강이 눈을 들었다. 황제는 어서 하라는 듯, 지루한 얼굴로 강을 보고 있었다. 그때, 강은 왼쪽에서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자신을 보고 웃는 경혜왕을 보았다. 오랜만에 보는 제정신인 경혜왕이었다. 광증에 시달려 사람을 상습적으로 죽이고, 자신의 아내와 자식마저 죽인 자였는데 오늘은 웬일로 맨정신으로 자신을 또렷하게 보고 있었다. 멀쩡한 그의 왼쪽 눈이 몸을 누비자 얼굴이 불타올랐다. 얼굴보다 더 붉어진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강은 울지 않으려 했는데, 울음이 터져 나왔다. 서럽게 울면서 강은 눈을 감고 황제의 말랑한 남근을 입에 넣었다. 아직 서지도 않았는데 커서 벌써 힘들었다. 강은 남근을 문 채, 눈을 깜박거렸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황제는 강의 무지에 웃음을 터트렸다. 강에게 가르칠 것이 많다는 사실이 황제를 설레게 만들었다.
“힘을 줘서 삼켜라.”
황제가 볼을 툭툭 건드렸다. 강은 열이 고인 숨을 뱉어내며 볼을 오목하게 해서 황제의 남근을 빨았다. 강이 살덩어리를 쪽쪽 빨아들이는 소리가 노랫소리처럼 궁에 울려 퍼졌다. 추웁, 춥…. 혀와 점막이 남근을 빨아들이고, 핥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강은 어느새 눈을 감고 빨리 사정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남근이 흥분하자 더 커져서 이젠 반도 못 삼킬 지경이었다. 그런 강을 위해 황제가 허리를 움직였다. 황제의 의도 있는 배려에 남근이 불쑥 들어와 목젖을 찔렀다. 강의 고아한 얼굴이 팍 일그러지며 입에서 토라진 듯한 신음이 나왔다. 그러나 황제가 강의 반항을 손으로 머리를 잡아 막았다. 황제가 풀어진 눈으로 강을 탐하며 허리를 느릿하게 움직였다. 좁은 목구멍까지 남근이 제집인 것처럼 들락날락했다.
“크흑, 컥…. 하아, 흡!”
강이 숨을 쉴 틈도 주지 않고 황제가 남근을 넣고, 뺀다. 강은 그때마다 괴로움에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이리저리 틀었으나 그때마다 뱀처럼 남근이 쫓아와 목구멍으로 쑥쑥 들어왔다. 비릿한 맛이 입안 전체에 감돈다. 입에 타액을 머금지 못하니, 남근과 입술을 타고 줄줄 흘렀다. 그 행위를 몇 번이고, 보란 듯이 아주 느리게 반복한 황제가 눈을 떴다. 사정의 기운이 아랫배에서 끓고 있다. 빨리 아들의 입에 성수를 부어주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흐으읍!”
강의 목구멍 안까지 남근을 넣은 황제는 나른한 신음을 흘리며 안에 사정했다. 정액이 주륵 입가를 타고 흘렀다.
“흐으읏…. 아….”
모자란 숨을 허겁지겁 마셨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야릇한 신음이 강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그 소리를 들은 대신 한 명이 앉은 다리를 움찔거렸다. 그가 가랑이 사이를 꾹 누르자 아픈지 얼굴을 붉혔다. 황제는 강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강이 더 삼킬 수 있도록 앞으로 다가갔다. 연약한 붉은 점막으로 들어오는 거대한 남근에 강이 고개를 틀었다. 강이 바닥에 쓰러져 숨을 몰아쉬었다. 더 이상 할 수 없었다. 목이 너무 아팠다. 황제의 남근이 정말 커서 삼키는 것도 고역이었다.
“흐으, 흑, 아, 모, 목이… 너무….”
강이 더듬거리며 말할 때마다 미처 삼키지 못한 타액이 주르륵 흘러 바닥에 고였다. 황제는 그 말을 다 듣기도 전에, 두툼해진 남근을 잡아 강의 얼굴을 탁탁 때렸다. 남근으로 뺨과 입술을 얻어맞은 강이 억울하다는 듯,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황제는 그것도 모자라 강의 타액으로 범벅이 되어 더 번들거리는 남근을 강의 얼굴에 문질렀다. 황제의 남근이 얼마나 길고 두툼했는지, 강의 얼굴 전체에 타액이 비벼졌다. 강의 턱부터 이마 위까지 남근이 점령했다. 황제는 비비기도 하고, 남근으로 고의적으로 강의 뺨을 때리기도 했다. 그 행위는 적당히 아프면서 수치스러웠다. 강이 입술을 깨물자, 황제가 “아, 해야지.”라고 나긋하게 말했다. 강이 체념한 듯 눈을 감고 입을 벌렸다.
“흐으읍!”
남근이 목젖까지 단숨에 찌르며 들어왔다. 강이 상체를 바르작거렸다. 숨이 막혔다. 강이 무엄하게도 황제의 허벅지를 긁기 시작했다.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황제는 물러나지 않고, 아직 남은 남근을 넣었다.
“크윽…!”
숨통을 남근이 막고 있었다. 강이 두 손을 뻗어 발버둥치자, 황제가 여유롭게 반항하는 손을 잡아 내리누르며 강의 입에 사정했다. 입안에 모이기 시작한 비릿한 맛에 강이 고개를 틀려 하자, 황제가 그 입을 남근을 넣어 막으면서 우아하게 말했다.
“삼켜라.”
강이 눈을 빠르게 깜박였다. 그때마다 눈물이 폭포처럼 흘러내렸다. 황제는 애틋한 손길로 눈물을 닦아주며, 다른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도록 말했다.
“성수를 흘릴 셈이냐. 위로든, 아래로든 성수를 받아야 하는 법. 그것이 후궁의 도리다.”
황제를 멍한 눈으로 본 강이 입안 있는 정액을 삼켰다. 강이 삼키는 걸 확인한 황제가 남근을 빼냈다. 강이 붉어진 얼굴로 바닥에 엎어져 색색거렸다. 잘했다는 듯, 강의 머리를 쓰다듬은 황제가 고개를 들어 무녀를 불러들였다. 무녀들이 소리 없이 빠르게 다가와 강이 입고 있는 옷을 벗겨 내렸다.
드디어 다가온 합방에 강이 반항했다. 모든 이의 시선이 쏟아졌다. 가슴이 쿵쾅거렸다.
“시, 싫다… 싫어…! 싫어! 싫습니다!”
강의 반항이 거세지자 친군들이 우르르 다가와 강의 사지를 내리눌렀다. 금세 나신이 되어 머리가 눌리고, 손과 발도 눌렸다. 강이 눈물을 터트리며 고개를 움직이려 해도 목을 잡고 있는 자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
“아바마마! 싫습니다! 싫습니다, 제발, 제발…!”
강이 울부짖는 소리를 들은 여 소의가 창백해진 얼굴로 부들부들 떨다가 결국 실신했다. 엄청난 정신적 충격에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한 것이다. 그 모습을 보던 귀비는 냉정한 얼굴로 궁녀들을 불렀다. 궁녀들도 무심한 태도로 쓰러진 여 소의를 끌어내렸다. 대신들은 안쓰러움과 기대감으로 가득 찬 눈으로 강을 보았다. 강은 대신들과 후궁들, 그 외의 사람들의 시선이 화살처럼 쏟아지자 모멸감을 참지 못했다. 수치심이 파도처럼 쓸려와 강의 몸에 몰아쳤다.
“오늘 그대는 쾌락에 몸부림치며 울게 될 것이다.”
황제가 웃음이 밴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황제는 신관이 건네는 작은 항아리를 받아들었다. 황제의 긴 손가락이 반질반질하게 빛나는 붓의 막대 부분을 집었다. 막대를 들어 올리자 끈적거리는 액체가 엉겨 붙은 붓이 드러났다. 황제는 붓을 들어 올려 강의 깨끗한 비문에 가져갔다.
“흐읏…!”
기름과는 다른, 미끈하면서 끈적이는 것이 비문 안으로 들어왔다. 부들부들한 붓이 내벽 안에 있는 촘촘한 주름들을 쓸었다. 푹, 들어온 붓이 안까지 끈적이는 것을 발랐다. 붓이 좌로, 우로, 그리고 빙글 돌기도 하면서 꼼꼼히 안을 누볐다. 한 번으로는 모자라 황제는 몇 번이나 항아리에 붓을 담가, 끈적거리는 것을 안에 넘칠 때까지 발랐다. 밖에 있는 주름과 안에 있는 내벽 주름 사이사이마다 그것들이 달라붙어 있었다. 강은 헐떡거리며 손가락을 움직였다. 친군이 손목을 잡고 누르고 있어, 손가락만 움직여 바닥을 만질 수 있었다.
“흐응, 아, 으, 으으…. 아, 아, 안이…. 아…!”
그런데 어느 순간, 기분이 이상했다. 몸이 붕 뜬 듯한 이상한 고양감에 바닥을 긁어내렸다. 하반신이 끓어오른다. 아래가 간질간질했다. 빨리, 누군가 들어와서 이 느낌을 해결해줬으면. 강의 눈에서 초점이 뭉개졌다. 입에선 계속 달아오르고 교태가 섞인 신음이 나왔다. 뒷방 늙은이도 금방 세울 것 같은 간드러진 신음이었다.
“뜨거우냐?”
황제가 피식 웃으며 강의 둔덕을 잡아 벌렸다. 좁은 구멍이 허공에 드러나 뻐끔거리고 있었다. 며칠 동안 정성 들여 안아준 덕분에 적당히 벌어져, 잘 익은 과육 같은 내부가 보였다. 벌써부터 남근을 물고 싶어서 물을 줄줄 흘려낸다. 황제가 엄지로 겉에서 움직이는 주름을 세세히 만지며 펴주자 강이 야릇한 신음을 흘리며 울었다.
“이, 이상합니다, 아바마마…! 아, 안이… 으응, 앗…!”
강의 달콤한 신음소리가 높아지고, 안으로 조금씩 드나드는 손가락이 마찰되는 소리가 커지자, 자리 잡은 대신들과 후궁들은 성욕이 달궈지는 걸 느꼈다. 분명히 친아비와 아들이 정사를 나누는 것인데.
황제가 장난삼아 입을 동그랗게 모아 바람을 후, 불자 강이 엉엉 울었다. 안에 개미가 기어 다니는 듯한 간지러움에 몸을 틀었다.
“아, 아, 안이… 뜨겁습니다, 아아…!”
“그리고?”
황제가 손가락을 넣어 활짝 벌리며 물었다. 손가락이 끈적거리는 것을 비비며 안을 긁어내리자 강이 눈을 질끈 감고 고개를 저었다. 친군이 눈치 빠르게 강의 목에서 손을 떼고 일어났다. 강은 고개를 틀어 뒤에 있는 황제를 보며 입을 달싹거렸다.
“가, 간지러워서… 참을 수가…. 흑…. 아바마마, 소자가 이상합니다, 소자가…. 흐응, 아, 앗!”
“간지러운 게 아니다, 강아.”
아들의 이름을 다정하게 불러준 황제가 자신의 남근을 꺼내 입구에 비볐다. 강은 거대하고 두툼한 남근이 안을 시원하게 비벼줄 거라 생각하자 기대감에 늘어진 채 눈물을 흘렸다. 황제가 자신의 안에 무언가를 발랐고, 거기에 몸이 빠르게 반응하고 있었지만 지금 그것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내부의 간지러움을 해결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간지러움이 전신을 타고 올라와 자신을 괴롭힐 것이다.
황제는 야속하게도 남근을 다 넣어주지 않았다. 그는 미끈한 선단만 살짝 담갔다가 빼어냈다. 구멍이 조였다가 풀어지는 걸 확인하며, 황제는 선단을 넣고, 빼는 걸 반복했다. 가장 두꺼운 부분이 입구만 희롱하는 기분에 강은 울음을 왈칵 터트렸다. 빨리 들어와 주세요, 아바마마… 소자를 위해서…. 강의 마음이 소리 없이 중얼거렸다.
내부가 아버지를 원하고 있었다. 아버지든 뭐든…. 늑대가 되든…. 그라면 다 좋았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였으니까, 자신의 마음을 잘 알고 달래줄 것이다.
“그대의 입으로 말해. 이곳에 뭘 넣어줬으면 좋겠지?”
황제가 선단을 푸욱, 소리 나게 넣으며 다정하게 물었다. 안이 벌써 희열에 차서 빈 곳을 꾹꾹 조인다. 공허하다. 빨리 꽉 채워줬으면. 그의 남근이 들어와 거칠게 쑤셔줬으면 좋겠다.
“아아…. 아바마마….”
친군이 하나, 둘 떠나갔다. 강은 이제 자유로운 몸이 되었지만 황제에게 종속되어 움직일 수 없었다. 강은 바닥에 뺨을 대고 누워 헐떡거리며 눈을 떴다. 사람들이 자신을 보며 음란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닿자, 강은 서러운 눈물을 터트리며 얼굴을 가렸다. 강은 안에서 고조되는 간지러움과 뜨거움에 몸을 비틀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화살 비처럼 쏟아져 자신의 나신에 꽂혀 들었지만, 간지러움부터 해결하고 싶었다.
강은 쾌락에 초점을 잃은 눈을 깜박이며 황제에게 말했다.
“소자의 안에… 아바마마의 것을….”
“무엇을 말하는지 도저히 모르겠구나.”
황제가 퉁명스럽게 말하며 항아리를 들어, 붓을 꺼냈다. 붓을 직선으로 세우자 맺혀있던 것이 톡, 톡 이슬처럼 비문에 고여 들었다. 황제는 아직 안이 다 젖지 않았다며 다시 신관에게 약을 가져오라 말했다.
“아프지 않게 해주겠다.”
“으응, 이, 이젠…. 시, 싫… 하악!”
붓이 내부로 들어와 푹, 푹 움직였다. 부드러운 붓은 안을 휘젓고, 딱딱한 막대는 내벽을 긁어내려 시원함을 주었다. 쾌락과 시원함을 동시에 주는 붓의 움직임에 강이 참지 못하고 앞으로 기어가려 했다. 황제가 강의 허리를 잡아당겼다. 강의 내부를 휘젓던 붓을 꺼낸 황제가 벌떡 선 남근을 하얀 엉덩이에 탁탁 때렸다. 뜨거움을 가진 남근이 자신의 살을 건드리자 강은 참을 수 없었다. 저것은 밖에 있어선 안 되었다. 안으로 들어와 내부에 있는 간지러움을 모조리 긁어내 가져가야 했다.
“말해라. 무얼 넣어줄까.”
황제가 말했다. 강은 바닥에 이마를 대고,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눈앞에 붉은 천들이 넘실거리는 게 보였다. 혼례를 알리는 비단들이, 황제를 상징하는 12개의 영물이 수놓아진 비단들이 무희의 옷깃처럼 흩날리고 있었다.
이건 자신과 친아비의 혼례식이었다. 그런데 이제 그런 건 중요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상한 기분이 계속 오가고 있었다.
강은 타액으로 범벅이 된 오동통한 입술을 달싹거렸다. 강의 혀가 여러 번 나와 입술을 핥았다.
“아바마마의… 남근을….”
강은 왈칵 울음을 터트렸다. 비참했다. 그런데 안이 너무 간지러워서 참을 수 없었다. 어서 빨리 들어와 자신을 이 괴로움에서 해방시켜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강은 고개를 돌려 오로지 황제를 보며 애처로운 어조로 중얼거렸다.
“소자에게 넣어주시옵소서.”
“그리고?”
황제가 남근을 천천히 밀어 넣으며 되물었다. 황홀함에 강의 얼굴이 흐물흐물 풀렸다. 들어오는 것만으로도 느끼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강과 황제를 보며 엉덩이를 들썩이며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데도, 강은 황제만 보았다. 자신의 괴로움을 해결해준 사람은 황제밖에 없었다.
강은 눈을 천천히 감았다. 잔뜩 고인 눈물이 아래로 꽃잎처럼 후드득 떨어졌다.
“미천한 소자에게… 성수를 주십시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황제가 남근을 뿌리까지 박아 넣었다. 엄청난 쾌감이 용솟음쳤다. 끝도 없이 들어오던 남근이 한 지점을 푹, 찔러주면서 내벽을 사납게 긁으며 나갔다. 나가는 걸 원하지 않았다. 강은 바닥을 긁었다. 그것을 발견한 황제는 강의 손목을 잡아 뒤로 고정시키고 허리를 퍽, 퍽 박아 넣었다. 강이 목을 비틀며 신음했다. 고정했던 머리카락이 풀리기 시작하면서, 흘러내려 강의 얼굴에 달라붙었다. 긴 머리채가 새 깃털처럼 너울거렸다.
“흐응, 읏, 아, 아바마마…!”
“좋으냐?”
황제가 신음을 참지 않고 거친 목소리로 물었다. 강이 고개를 끄덕이며 더듬거리며 말했다.
“조, 좋아서… 으읏, 아, 더 세게…. 아앗!”
“참으로 어여쁜 몸이다.”
푸욱, 소리가 날 정도로 남근을 깊이 박아 넣은 황제가 사정하며 낮게 중얼거렸다.
“하늘께서 천자를 위해 아름다운 선물을 주셨구나.”
색욕에 젖은 아름다운 얼굴이 우아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제 사람의 모습으로 범했으니, 늑대로 변해 그대를 실컷 탐해주겠다.”
황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혼례식을 치르는 궁 안에 냉기가 감돌았다.
그러나 냉기는 겉으로 드러내는 황족들의 가면일 뿐, 속으로는 들끓는 음심을 가라앉히느라 애쓰고 있었다. 강은 개처럼 엎드려 다리를 벌린 채, 헐떡거리고 있었다. 머리를 고정했던 비녀는 바닥에 떨어져 굴러간 지 오래였다. 길고 탐스러운 머리가 흘러내려 하얀 나신을 덮었다. 검은 머리카락 사이로 드러난 얼굴은 발갛게 달아올랐으며, 황제에게 시달린 엉덩이 또한 군데군데 붉은 점이 올라와 있었다. 강이 바닥을 긁어내리며 괴로워하는 소리가 궁을 적시자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흠, 흠하며 헛기침을 했다. 앞자리를 차지한 경혜왕의 얼굴은 가면으로 가려져 있었으나 붉어진 귀마저 가릴 수는 없었다.
황제는 사람들의 반응을 음미라도 하는 것처럼, 차분하고 고요한 시선으로 주변을 살펴보더니 한 지점에 멈췄다. 후궁들이 앉아있는 자리에서 누군가를 찾는 듯, 눈을 가늘게 뜨더니 입술 끝을 서서히 올렸다. 황제의 용안에 퍼져가는 초승달 같은 은은한 미소에 후궁들은 어깨를 흠칫 떨었다.
황제의 시선은 아래로 꽂혔다. 아래에서 처음 겪는 쾌락에 어찌할 바를 모르고 몸을 비틀며 우는 강을 사랑스럽다는 듯 보던 황제가 허리를 숙였다. 황제의 상체가 점점 강에게 가까워졌다. 황제는 한쪽 무릎을 바닥에 댄 채, 강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친군에게 말했다.
“여 소의를 끌고 와.”
친군들은 무릎을 꿇고 손을 모아 황제의 말에 따르겠다는 의사를 보였다. 친군들이 발 빠르게 궁 밖을 빠져나가는 소리가 강의 신음소리 위에 살짝 섞여 들어갔다. 황제는 안에서 불꽃처럼 들끓는 쾌감을 감당하지 못하는 강을 안쓰럽다는 시선으로 보았다. 강이 아랫배를 감싸 쥐고 헐떡거렸다. 급기야 눈에는 눈물이 가득 맺혀 이슬처럼 후드득 떨어졌다.
“아바마마…. 소자, 너무….”
무지한 몸이 성욕에 들끓고 있었다. 작은 벌레들이 내부를 파고들어 좀먹고 있는 기분이었다. 황제의 남근을 원하고 있었다. 황제의 남근이 내부를 파고 들어와, 그 크고 두꺼운 선단으로 내부를 긁어주길 바라고 있었다. 그것이 아니면 안 되었다. 아까 전처럼 황제가 들어와 줬으면 좋겠는데, 황제는 침의와 비슷할 정도로 얇은 옷을 입은 채 강을 무심히 보고 있을 뿐이었다. 자신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무정하게 구는 아비가 미워서 강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괴로워도 어쩔 수 없다.”
자조적으로 웃으며 중얼거린 황제는 한 곳만 뚫어지게 보았다. 금안이 궁에 있는 모든 빛을 빨아들인 듯, 요사스럽게 빛났다. 강은 황제의 발아래에서 온몸이 뒤덮는 쾌락에 아이처럼 흐느껴 울며 배를 감싸 쥐었다. 강이 건장한 상체를 비틀 때마다 언뜻 보이는 나신에 사람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참기 힘든 광경이었다. 본래 혼례식이 이렇게 요사스러웠는지, 아랫도리에 음심이 가득 고일 정도로 못 참는 것이었는지 판단할 수도 없었다.
풀 수 없는 성욕의 틀에 갇힌 듯한 괴로움이 사람들을 엄습했다. 어차피 누군가를 범할 수 없는, 신성한 혼약식이 어서 빨리 끝나 기루로 가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강렬한 염원이 들었다. 모두가 고문 같은 성욕에 괴로워하고 있을 때, 황제만이 여유롭게 허리에 손을 얹은 채 누군가를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친군들이 양쪽 팔에 한 여자를 끌고 궁 안으로 들어왔다. 겨우 정신을 차린 듯, 그녀는 낮게 신음하며 눈을 가늘게 떴다. 곱게 단장한 얼굴이 엉망이었다. 이미 한참 전부터 운 듯, 눈이 밤처럼 부어있었다.
“형편없군.”
자신과 강 앞에 털썩 주저앉은 여 소의를 보며 황제가 비웃었다. 여 소의는 바닥에 엎어진 채로 신음하다가, 친군이 다가와 상체를 들어 올리자 발작하듯 소리를 질렀다. 황제의 고운 아미가 일그러지자 친군이 주저하지 않고 여 소의의 입을 틀어막았다.
“감히…. 천자의 후궁과 혼인을 치루는 중에 소리를 지르다니. 무엄하다!”
황제의 목소리가 벼락이 내려친 것처럼 쩌렁쩌렁하게 궁에 울려 퍼졌다. 혼례식에는 황제, 그리고 황제와 혼인을 맺는 여인 외에는 그 누구도 신음을 내거나 소리를 질러선 안 됐다. 약간의 소리나 행동은 괜찮지만, 쩌렁쩌렁하게 소리를 내어서는 안 되었다. 그것이 법도였다. 깨어지지 않는 철벽같은 법도를 어겼으니, 여 소의가 벌을 받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대신들과 비빈들은 입가를 가린 채, 안으로 웃었다. 그들은 친어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했다.
여 소의가 벌벌 떨며 상체를 반듯하게 일으켰다. 그녀는 구겨진 치맛자락을 붙잡으며 황제를 보았다. 강을 볼 때와는 전혀 다른 눈으로 황제가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칼을 머금은 듯한 날카로운 금안을 마주하기가 힘들어 고개를 내리자, 바닥에 엎어진 채 신음하는 아들이 보였다. 장성한 아들이 아버지의 손에 의해 신음하고, 쾌락을 찾는 걸 보자 여 소의는 이를 악물고 시선을 위로 올렸다. 눈물이 맺힌 여 소의의 붉어진 눈이 황제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 담긴 감정을 알아챈 황제가 가소롭다는 듯 턱에 손을 대고 웃었다.
“저년을 어찌할까.”
황제에게 간접적으로 감정을 드러내자 그녀도 자신의 억울함을 감추지 않았다. 황제는 하늘이 내려준 자식이었다. 그에게 반발하는 건 패륜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에게 달려드는 친군이 아니었다면, 당장이라도 황제에게 달려들 기세였다.
“아바마마….”
강이 바닥에서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올렸다. 머리카락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여 소의 쪽으로 고개를 처박고 있던 강은 엉금엉금 기어 황제의 발치로 기어갔다. 황제의 백옥 같은 발을 보던 강이 눈물을 울컥 터트리더니, 고개를 숙였다. 강의 눈물이 황제의 발에 떨어져 구슬처럼 맺혔다가 추락했다. 황제는 강이 무슨 짓을 벌이려는지, 눈을 가늘게 뜨고 강만을 집요하게 보았다. 여 소의는 침음하며 눈을 감았다. 다른 이들은 둥글고 탐스러운 엉덩이를 보고 뜨거워진 침을 삼켰다.
황제가 탐욕스럽게 맛볼 만한 엉덩이로구나. 하늘이 괜히 강을 천제의 후궁으로 삼은 게 아니구나. 하나같이 음습한 생각을 뱀의 자취처럼 늘어놓았다.
“아바마마, 소자가….”
타들어 갈 듯한 쾌감 속에서 강은 애써 이성을 잡았다. 어머니를 살려야 했다. 이대로 두다간,
황궁의 고문은 황궁에서 산 강이 잘 알았다. 눈이 파이고, 다리가 비틀리고, 손톱 밑에 얇은 대나무가 꽂히고…. 혹은 황제와 같이 늑대로 변할 수 있는 황족들의 사냥감으로 전락한다. 그들이 어떤 식으로 사냥감이 되었는지 잘 아는 강은 절박하게 황제에게 매달렸다.
그것들이 어머니에게 행해지는 것을, 친아들로서 볼 수 없었다. 어머니가 자신을 지키려 했던 것처럼, 자신도 어머니를 지키고 싶었다. 우스운 사실은 모자 사이를 흐트려 놓는 것이 바로 친아비라는 점이었다.
강은 황제의 앞에서 나신이 되어 신음하며 그에게 부탁했다.
“아니, 신첩이 후궁으로서 극진히 폐하를 모실 테니 제발, 제 친어미는….살려주시고, 밖으로 내보내주시면…….”
말을 이어갈수록 눈물이 쏟아져 내려 뒷말을 이을 수 없었다. 제 자존심을 모조리 버린 강이 황제의 발치에 엎드려 서글프게 울었다. 신첩, 이라는 호칭을 들은 사람들의 눈은 가느스름해졌고 여 소의는 무거운 숨을 내뱉다가, 입을 꽉 틀어막았다.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아들을 옥죄는 사슬이라는 걸 알아챈 여 소의는 속으로 모든 울분을 삼켰다. 아들의 수치와 억울함, 체념을 친어미가 되어 같이 짊어주지 못한다는 것이 한스러울 뿐이었다.
황제는 자신의 발에 입을 맞추는 강을 보더니 싱긋 웃었다. 그는 상체를 숙여 강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냉정하고 가혹하던 황제가 자신에겐 더할 나위 없이 다정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적어도 황제가 자신에게는 마음이 약했으니.
“여 소의를 보내줄 테니, 천자가 늑대로 변해 온다고 해도 무섭다고 도망쳐서는 아니 된다. 알겠느냐?”
강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깜박였다. 눈물이 떨어졌다. 그 모습도 가련하고 청초해서 황제는 끓어오르는 성욕을 참을 수 없었다. 강은 부풀어 오르는 황제의 가운데를 물끄러미 보다가 신음을 흘려내며 고개를 숙였다. 강이 대답하지 않자 황제가 날렵한 턱을 잡아 올렸다. 강의 얼굴이 붉었다. 어미의 얘기에 간신히 이성을 차린 듯, 어느새 눈이 초점을 잃고 흐릿했다. 강의 짙은 검은 눈에는 황제 외에는 그 누구도 없었다. 친어미도 친어미라 하더라도 담지 못할 눈이었다.
“그리할 수 있겠느냐. 그대는 천자가 늑대로 변하는 걸 무서워하니.”
“아닙니다, 아바마마. 아니, 아니…. 아니….”
쾌락에 신음하던 강이 손을 뻗어 황제의 상체에 매달리며 흐느꼈다. 더 이상의 쾌감은 힘들었다.
“폐하, 신첩을 이 고통에서 해방시켜 주십시오…. 괴롭사옵니다.”
더듬지 않고 자기 자신을 신첩이라고 부르는 강을 애틋한 시선을 보던 황제가 고개를 숙였다. 그의 입술이 강의 입술에 아주 살짝 닿은 위치에서 속삭였다.
“그대는 아름다워. 천자의 사랑을 받을 자격이 충분하다.”
황제가 입을 맞추었다. 녹진하고 강렬한 입맞춤에 강은 바닥에 무릎을 대고, 손으로 상의를 틀어잡았다. 긴 머리채가 입맞춤의 강도에 따라 넘실거렸다. 황제가 깊은 입맞춤을 지속하면서 아들을 보았다. 그리고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눈웃음을 지었다. 서로의 혀가 덩굴처럼 얽히는 소리에 대신 한 명이 법도를 어기며 헛기침을 했다. 보다 못한 타인이 합죽선을 접어 입을 쳤다. 조용히 하라는 뜻이었다. 옆 사람이 알아듣고, 입술을 꽉 깨물었다.
분명히 피를 나눈 부자였는데, 그 누구보다도 야릇하고 적나라한 정사였다. 후궁들 또한 아래가 축축하게 젖어 들어가 다리를 비틀었다. 본래 혼례식이라는 게 다들 흥분하기 마련이었지만 오늘은 유독 심했다. 봐서는 안 될 걸 본 듯한 이상하고 야릇한 기분이 휘몰아친다.
입맞춤을 끝낸 황제는 강을 엎드리게 했다. 강이 각오한 듯, 손에 이마를 대고 신음을 흘려보냈다. 달궈지기만 하고 풀리지 못하는 쾌감은 고문이었다. 배 안이 간지럽고 뜨거워 이 이상 참을 수 없었다.
늑대든, 뭐든 좋으니 제발…. 이 지옥에서 해방시켜주길.
강의 소원을 알아챈 듯, 황제가 고개를 좌우로 느리게 저었다. 빛을 빨아들이지 못하고 토해내는 은발이 찬란한 빛을 발산하며 줄어들었다. 한 지점으로 모인 털은 등 뒤로 전염되듯 퍼져가고, 팔다리가 뒤틀리며 동물의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뼈가 우득, 우득 부딪히는 소리가 사방에 경고처럼 음산하게 울려 퍼졌다. 황제의 입에서 나른한 신음이 터져 나오더니, 곧이어 짐승의 울음소리로 바뀌었다.
황제가 늑대로 변해 네 발로 서서, 고개를 들고 긴 울음을 토해냈다. 황제의 울음에 응답하듯, 늑대로 변할 수 있는 자들이 옷을 찢고 늑대로 변했다. 황족 중 수인은 많은 수가 죽어 늑대가 된 이는 드물었다. 고작해야 네 마리였다. 그중에서도 몸집이 단연 큰 건 황제였다.
황제는 다른 늑대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했다. 범만 한 늑대가 금안을 번뜩이며 자신의 비를 향해 걸어갔다. 강은 근처에서 들려오는 늑대의 발소리에 몸을 흠칫 굳혔다. 뒤를 돌아보니, 자신의 몸을 뒤엎을 정도로 큰 늑대가 금안을 빛내고 있었다. 도망가고 싶었다. 등 뒤로 한기가 스쳐 지나갔다. 공포였다. 처음으로 겪어보는 공포에 강은 온몸을 덜덜 떨었다. 당장이라도 도망가고 싶었지만, 강은 이를 악물고 이마를 바닥에 고정시켰다.
아무리 쾌락에 몸을 맡겼어도 한 자락 남은 이성이 어미를 위해 참으라고 말하고 있었다. 참아야 했다. 어미를 위해서라도, 그리고 이 끝없는 쾌락을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흐응…. 아, 흣….”
늑대의 부드럽고 포근한, 온기를 가진 혀가 둔덕을 핥았다. 커다란 혀가 자신의 비를 위해 구석구석을 핥아주고 있었다. 강은 회음부를 시원하게 핥아주는 혀에 움찔거렸다. 더, 더, 더, 해달라는 말이 입에서 맴돌다가 결국 밖으로 터져나갔다. 그걸 들은 늑대가 낮게 으르렁거리더니, 혀를 모아 구멍을 집요하게 빨아주었다.
“흣, 아, 아, 거긴… 아, 싫어…!”
싫은데, 주름을 샅샅이 핥아주고 펴주는 혀가 좋아 참을 수 없었다. 동공이 풀려갔다. 이제, 그 무엇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강의 입이 벌어지며 요망한 말을 내뱉었다.
“흐응…. 아바마마, 아바마마….”
하지만 늑대는 계속 입구 주변을 혀로 빙빙 돌려 핥아줄 뿐, 애석하게도 넣어주지 않았다. 마치 그 뒤의 말을 하라는 듯 협박하는 것 같았다. 강은 잡을 것이 없어 힘겹게 바닥을 짚으며 신음을 흘렸다. 안이 뜨겁다. 간지럽다. 도저히 풀리지 않는 쾌감에 죽을 거 같았다. 강은 뜨거운 눈물을 매단 채, 고개를 들어 앞을 보았다.
강의 눈이 완전히 흐물흐물 풀렸다. 주변을 맴도는 늑대들이 왜 침을 질질 흘리는지 알 수 없었다. 지금 중요한 것은, 터질 듯 말 듯 배 안에 고인 쾌감이었다.
“아바마마… 신첩에게… 으응…. 성수, 성수를….”
강이 바닥을 긁어내리며 애원하자, 한 늑대가 다가와 손을 핥아주었다. 강의 손끝에 맺힌 피를 빨아먹었다. 천자의 비를 위한 가족들의 애정이었다. 손끝을 핥아주는 것뿐인데도 강은 쾌감에 오들오들 떨었다. 다른 늑대도 어슬렁거리며 다가왔다. 늑대의 혀가 축 늘어져 강의 눈물을 핥아주었다.
황제가 앞발을 강의 등에 올렸다. 본격적으로 시작을 알리는 행위에 강은 침을 질질 흘렸다. 무섭지만, 그만큼 기대가 되었다. 늑대의 양물이 내부를 뚫고, 고문 같은 쾌감을 단번에 날려줄 것을 생각하니 다리가 저절로 벌어졌다.
“아바마마, 신첩 너무 괴롭습니다. 빠, 빨리…. 아, 아아…!”
늑대의 발기한 양물이 닿았다. 황제가 인간으로 안아줄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늑대의 양물은 안에 단단한 심지가 있는 듯, 매우 딱딱하고 녹아내릴 듯 뜨거웠다. 안에 단단한 뼈가 있는 듯했다.
울퉁불퉁한 핏줄도 섬세하게 느껴졌다. 황제가 넣고 싶어 안달 난 듯, 으르렁거리며 앞발로 강의 등을 내리눌렀다. 하지만 좁은 인간의 내부를 한 번에 뚫기엔 늑대의 양물이 너무 컸다. 늑대의 양물에서 무언가가 줄줄 흘러 날씬한 종아리를 적셨다.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 멍하니 있는데, 어느 순간 회음부에 비벼지는 딱딱함에 눈을 부릅떴다.
“…흐…. 아, 큭….”
늑대의 양물은 정말 컸다. 입구의 주름이 인간의 것을 삼켰을 때와는 다르게 펴졌다. 한계를 넘어서 벌어져, 딱딱하고 거친 양물을 오물거리며 삼키기 시작했다. 붉게 달아오른 입구가 한눈에 보기에도 버거워 보였으나 늑대는 착실하게 삽입을 진행했다. 느릿하게 들어간 양물이 반이나 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것을 다 넣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배가 금세 가득 찼다. 밖에서 눈으로 확인해본다면, 아랫배가 부푼 것이 보일 것 같았다. 강은 손을 내려 아랫배를 만졌다. 배가 부풀었다. 아이를 임신한 것처럼, 늑대의 양물이 배를 채웠다. 버거움에 숨이 가빠왔다. 늑대의 성기는 인간의 살덩어리와 다르게 딱딱함이 남달라 내벽이 더욱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저 살짝 움직여도, 쭈욱 하고 긁어내려 온몸이 파들거렸다.
“아파…. 아픕니다, 아파요…. 아바마마, 너무… 흐으!”
늑대가 움직이지 말라는 듯, 앞발로 등을 더 세게 누르고 뒷발로 다리를 벌리게 했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것을 본 다른 늑대의 눈이 가늘어졌다. 고통이 가득한지, 입구가 뻐끔거리지도 못하고 간신히 물고 있는 형국이었다. 조금만 더 넣으면 찢어질 것처럼 보였으나 기특하게도 양물을 계속 머금고 있었다. 과연 하늘이 내려준 비빈다운 자태였다. 늑대의 양물은 내부를 일직선으로 펴기라도 할 것처럼 꾸역꾸역 들어왔다. 길을 들이지 못했기에 공을 들여 넣어야 했다. 그렇지 않다면 소중한 비의 안이 손상될 것이다. 늑대의 아이를 낳아야 하는, 귀한 몸이었다.
안으로 진입하던 양물은 둥글고 하얀 엉덩이 안으로 사라졌다. 늑대의 부드러운 털이 등과 다리에 닿았다. 늑대의 양물이 불같이 뜨겁기 때문일까. 넣어주고, 쑤셔주면 풀릴 것 같던 쾌감이 더욱 증폭되었다. 강은 바닥에 몸을 납작하게 엎드린 채, 늑대의 양물을 받아들였다. 늑대는 혀를 내밀어 강의 목덜미며 등을 삭삭 핥아주었다. 늑대의 애정이 느껴졌다.
“아아!”
일부러 녹진하게 길을 낸 보람을 느끼기라도 하는 것처럼, 늑대의 양물이 빠르게 빠져나갔다. 양물의 움직임이 생생하게 느껴지며, 온몸이 경직되었다. 아팠다. 하지만 그 뒤를 따라오는 찌르르하고 울리는 쾌감에 눈이 뜨끈하게 달아올랐다. 눈물이 고이며 손에 떨어졌다.
“하으으! 으, 아! 아, 아…. 흐응, 기, 깊습… 앗!”
늑대의 양물이 길을 내고, 파고들기를 반복하며 내부를 벌렸다. 내부가 착실하게 벌어지며, 늑대의 양물을 조이고 풀어주었다. 늑대의 뜨거운 숨이 강의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늑대의 혀가 내려와 목덜미를 야릇하게 쓸었다. 늑대의 양물은 안에 넣고 있는 것만으로 힘들었지만 그만큼 끊을 수 없는 쾌락을 안겨주었다. 온몸이 전율하듯 달달 떨렸다. 강의 남근이 벌떡 서더니, 정액을 흘렸다.
“하악!”
늑대의 양물이 세게 빠져나갔다가, 그것보다 더 센 힘으로 파고들었다. 내벽이 헐어버릴 것 같았다. 안 봐도 내벽 안이 어떨지 상상되었다. 꿈틀거리면서, 요사스럽게 붉어져 늑대의 양물을 빨아들이고 있을 것이다.
늑대가 앞발로 강을 내리누르며, 허리를 움직여 퍽퍽 쳐올렸다. 인간의 힘으로도 세다고 생각했는데, 늑대의 힘은 그것과 비교가 불가능했다. 선단이 거의 빠져나와 입구에 걸리더니, 쉬지 말라는 듯 단숨에 박아 넣어 허리가 무너지게 만들었다. 근육이 오밀조밀하게 잘 잡힌 허벅지가 무력하게 떨렸다. 마치 누군가에게 맞는 듯한 소리가 강의 엉덩이에서 울려 퍼져 온 궁에 다 들렸다. 사람들은 애써 체면을 지키려는 듯, 뜨거운 숨을 뱉어내며 다리 사이를 세게 오므렸다. 혼례식에서 남근을 세우는 것만큼 추한 것도 없었다.
이것은 성스러운 혼례식이었다.
“흣, 아아, 너, 너무 깊어서…. 흐윽…! 아, 그만…!”
안에서 연속적으로 터지는 쾌락에 강이 엉금엉금 앞으로 기어가자, 늑대가 입을 벌려 강의 목을 아프지 않게 물었다. 따끔한 이빨이 닿았다. 강이 오들오들 떨면서 고개를 숙였다. 늑대가 미안하다는 듯, 혀를 내밀어 이빨 자국이 남은 목덜미를 핥아주었다.
“아흑!”
늑대의 양물이 느리게 빠져나가더니, 쑤욱하고 밀어 넣으며 아주 깊숙이 양물을 파묻었다. 내부가 아픔에 시달려 힘겹게 양물을 조였다. 곧이어 양물 끝에서 뭔가가 흘러나오는 게 느껴졌다.
이제 첫 번째 사정이었다. 강은 늑대의 양물과 이어진 비문에서 물방울의 형태로 정액이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늑대가 계속 으르렁거리며, 가지 말라는 듯 허리를 더 밀착했다. 신기하게도 이제 더 들어올 곳이 없는 것 같았는데, 입구를 벌리며 깊숙한 곳에 안착했다.
강은 신음하며 바닥에 널브러졌다. 뜨거움이 한 차례 사라지자 남은 것은 탈력감이었다. 강이 눈물로 흠뻑 젖은 눈을 깜박거렸다. 아직도 남아있었는지 눈물이 흩어졌다. 멍하니 눈을 깜박이던 강은 눈앞에서 자신을 보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강의 몸이 굳어졌다. 사람이 있는 것도 모르고 정신 나간 것처럼 황제의 양물을 받아들였던 자신이 떠올랐다. 강의 안색이 파랗게 변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강은 얼굴을 가리며 몸을 떨었다. 여전히 황제의 양물을 물고 있는 것이 수치스러워, 엉엉 울자 늑대가 혀를 내밀어 얼굴을 핥아주었다.
“아아…. 흐윽….”
강이 눈을 꾹 감고 눈물을 흘렸다. 늑대가 양물을 빼냈다. 안에 고였던 정액이 닫히지 못한 비문에서 흘러내렸다. 강이 여전히 멍청하게 엎드려 있으니, 신관과 무녀가 다가와 강을 반듯하게 눕혔다. 강의 벌어진 다리 사이로 늑대가 다가왔다.
곧 두 번째 사정을 맞아야 했다. 강은 체념한 듯, 눈을 감고 팔을 축 늘어뜨렸다. 그러자 무녀가 다가와 두 팔을 들어 올려 늑대의 목을 감싸 안게 했다. 어렸을 적, 늑대로 변한 아비의 등을 탔을 때와 똑같은 느낌이었는데 사뭇 다르게 느껴져 눈가가 뜨끈해졌다. 아무리 울고, 울어도 비참함이 희석되지 않았다. 붉게 변한 강의 입술을 늑대가 핥아주었다. 커다란 혀가 핥았을 뿐인데, 얼굴과 목이 젖어 들어갔다. 강의 울음이 점차 멎어 들어가자, 늑대가 느릿하게 비문에 양물을 갖다 대었다. 내부는 강의 내면과 다르게 어서 오라는 듯, 양물을 수월하게 쑤욱 삼켰다. 늑대가 기분이 좋은 듯 그르렁거린다. 강은 늑대의 털을 꽉 잡으며 신음했다. 늑대가 고개를 숙인다.
“흐읏….”
강이 입술을 달싹이며 신음을 흘렸다. 늑대의 목을 안은 팔에 자연스럽게 힘이 들어가, 강이 매달리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늑대들은 신성한 결합을 살펴보더니, 고개를 들어 울었다. 울음은 전염되듯 번져가, 궁을 점령한 늑대들이 모두 울었다. 마지막은 황제였다. 황제는 강의 품에 안긴 채, 성기를 박아 넣으며 길게 울었다. 깊은 산에서 들을 법한 짐승의 울음소리에 강은 눈을 스르륵 감았다.
늑대의 보드라운 털이 팔과 상체에 닿았다. 늑대는 전에 길을 낸 내부를 음미하려는 것처럼 양물을 느리게 움직였다. 강의 입에서 신음이 가느다랗게 흘러나왔다. 수치스러웠지만 강은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늑대는 눈을 가늘게 뜨고 강을 관찰하더니 혀를 내밀어 빳빳하게 선 유두를 핥아주었다.
“으응…. 아…!”
공을 굴리듯, 혀로 유두를 툭툭 건드려주자 강의 신음이 점차 높아졌다. 눈을 감은 강이 황제의 목에 매달려 애달프게 울면서 허리를 자신도 모르게 흔들었다.
“아흣, 아바마마, 아, 거긴…. 아아… 흣…!”
늑대는 강이 무의식중에 낸 신음과 저지하는 듯하면서도 애처롭게 부탁하는 어조가 마음에 들었는지, 입을 벌렸다. 늑대가 부드럽고 온기를 가진 혀로 유두를 농락했다. 유륜을 포함해 가슴 전체를 쓸어 핥아주는 놀림에 강이 정신을 못 차렸다. 훗날을 대비해 미리 빠는 것 같았다.
“아바마마, 아아…. 더 이상은…. 으으응!”
늑대가 퍽, 퍽 올려치던 허리를 조금 늦추어 느끼는 부위를 찔러주면서 유두를 핥아주었다. 강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 흑단 같은 머리를 적셨다. 강은 늑대의 목을 아래로 끌어당겨 안았다. 늑대는 앞발을 강의 머리 사이에 두고, 뒷발을 허리에 두어 몸을 지탱했다. 완벽하게 자신의 몸을 지탱한 늑대가 강의 애절함은 봐주지 않고, 매섭게 허리를 놀렸다. 주름이 다 펴진 비문 사이로 여인의 팔뚝보다 두꺼운 양물이 들어가고, 나오는 것은 기이하고 야릇한 광경이었다. 전에 방출한 정액이 몽글몽글 주변에 맺혔다. 맺혔던 정액이 방울 상태로 안으로 들어갔다. 여린 살이 파헤쳐지는 광경을 신관은 아주 진중한 시선으로 보았다. 비문이 점점 더 붉게 달아올랐다. 주름은 사라져 매끈하게 펴져 늑대의 양물을 정성껏 빨고 있다. 아주 맛있게, 탐욕스럽게. 그것이 빠져나가면 울 것처럼 비문이 늑대의 양물을 머금고 있다. 실제로 강은 좋아서 온몸을 틀고 있었다. 아예 쾌락에 몸을 맡긴 듯 눈이 멍하고 입이 벌어져 연신 늑대가 된 황제이자 아버지를 찾고 있었다.
“아응, 아바마마, 흣, 소, 소자…. 아, 너무…. 하아… 으으!”
강이 정신을 못 차리고 본인을 소자라고 칭하자, 듣기 싫다는 듯 늑대가 허리를 쳐올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금 전보다 깊숙한 곳에 자신의 씨를 방출했다. 늑대는 사정을 마칠 때까지 강의 품에 안겨있었고, 강은 늑대를 차마 놓지 못해 계속 안고 있었다.
“아기가… 으응, 아기가 생기면…. 아, 싫습니다….”
강이 울먹거리며 중얼거렸다. 늑대의 양물로 임신한 듯한 느낌에 괴로웠다. 이렇게 임신해버리면, 아기를 가져버리면 어떡하지. 지금 늑대의 양물을 품고 있는 것도 이리 힘든데 아이는 어떻게 견디지…. 그리고 혼례를 맺으면 정말 아이가 생긴다는데…. 무서웠다.
황제가 울지 말라는 듯 눈물을 혀로 닦아주자, 강은 그만 안도를 하고 황제의 목을 끌어안았다. 늑대의 숨결이 느껴진다. 어릴 때부터 수도 없이 탄 늑대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강은 온몸을 엄습한 지독한 피곤함에 눈을 감았다. 고였던 눈물이 붉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강의 팔이 힘없이 바닥에 축 늘어졌다. 이미 정신을 반쯤 놓았으나, 늑대는 목울림을 멈추지 않고 양물을 박아 넣어, 사정을 지속했다.
두 번째 사정이 끝났고, 마지막이 남았다. 가장 길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강은 아직 맛보지 못했다.
“흐으…. 아, 너무….”
늑대가 된 황제가 사정하는 성수의 양이 너무 많아, 흘러넘쳤다. 늑대의 양물과 강의 내부가 빈틈없이 맞물려 있었는데도, 얼마나 많았는지 거길 비집고 하얀 성수가 허벅지를 타고 실금처럼 흘렀다. 허벅지 안이 축축하게 젖어 들어가는 기묘한 감각에 강이 다리를 오므렸다.
“그만, 그만…. 아….”
느끼는 부근을 날카롭고 긴 양물의 끝으로 찌르니, 허벅지와 허리가 연신 달달 떨렸다. 그래서 그만하고 싶었다. 더 이상의 쾌감은 너무 괴로웠다. 늑대의 사정에 맞춰 발딱 서서 정액을 배출하던 성기는 토해낼 것도 없었다. 인간일 때 한 번, 늑대일 때 두 번이나 비벼지고 달궈진 내벽은 얼얼했다. 헐어버린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어 강은 울음을 터트렸다. 좋은데, 무섭다. 오직 그 감정만이 선연하게 남아 강을 위태롭게 만들었다. 남근이 빠졌을 때, 강은 살기 위해 앞으로 엉금엉금 기어갔다. 늑대가 그걸 놓치지 않고 느릿하게 다가왔다. 강은 앞에 드리우는 늑대 형상의 그림자에 덜덜 떨었다. 예감과 다르지 않게 딱딱하게 곤두선 남근이 여린 살에 닿는 게 느껴졌다. 절로 이를 악 물었다. 아, 하는 밭은 신음이 나오면서 남근이 매끄러워진 내벽에 빨리듯이 들어갔다.
“아바마마, 그만….”
강의 머리가 폭포수처럼 흘러내려 제단 앞을 장식했다. 늑대의 왼쪽 발이 강의 머리 옆에 당도했다. 늑대의 다리는 기둥과도 같아, 마치 강에게 자신의 다리를 잡으라고 말하는 듯했다. 강은 털이 보송보송하게 자란 늑대를 보고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 계속 연결된 부위로 인해 정신이 혼미하다. 머리가 쾌감에 녹아들었다.
“으응!”
늑대가 흘러넘치는 성수를 이용해 허리를 느리고 차분하게 움직였다. 늑대의 커다란 몸에 완벽하게 깔린지라, 강의 신체는 이제 손과 발, 그리고 길게 흘러내린 머리카락 정도만 보였다.
“아, 좋아…!”
느끼는 부근을 연속적으로 찌르고, 도망가는 양물에 강의 몸이 복숭앗빛으로 달아오르며 부르르 떨었다. 분명히 입으로 ‘좋다’라고 말했다. 강의 눈이 완전히 풀려 아버지를 찾고, 좋다는 말을 수치도 모르고 말했다.
“아바마마, 아, 좋아요…. 아아! 으읏!”
처음은 너무 커서 아팠지만, 두 번째에는 안을 풀어주고 정액을 듬뿍 싸주어 부드럽게 만들어준 덕분에 세 번째에서는 쾌감을 완연하게 즐길 수 있었다. 하늘로 붕 떠서 오르는 듯한 강렬한 쾌감에 입이 벌어지고 손발이 오므라들었다가, 펴졌다. 강은 쾌감에 몸을 덜덜 떨면서 앞으로 기어갔으나 늑대가 그때마다 쫓아와 안을 찔러주자 금세 무너져 내렸다.
“아아…. 아! 아앗, 하윽, 아…!”
강의 입에서 새된 신음이 터졌다. 처음 겪어보는 고통 없는 달콤한 쾌감에 패배했다. 좋아서 미칠 것 같았다. 계속 이 정사가 지속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몸을 안으로 말며 좋다고 중얼거리던 강은 울먹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감히 아버지와 정사를 맺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다니. 하늘이 천벌을 내릴 음탕한 생각과 몸이었다.
“안 돼…. 아!”
늑대가 그르렁거렸다. 기분이 좋은 듯 웃는 소리였다. 늑대는 이제 허리를 빠르고 얕게 쳐올리면서, 그 부분을 겨냥해 양물을 마찰했다. 강의 입이 벌어져 신음도 나오지 않았다. 고개가 안으로 더 말려들어 갔다. 강의 손가락이 갈고리처럼 바닥을 긁었다.
이제 그만 해달라고 애원하려는 순간, 배 속이 이상해졌다. 쾌감이 강해지면서, 거기에 서리는 고통에 강은 고개를 틀었다. 배를 만져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배가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늑대의 양물이, 자신의 배 속에서 커지고 있었다. 특히 그 부분을 찌르는 선단 부분이 유독 커져 쾌감이 휘몰아쳐 등과 배가 찌르르하고 울렸다. 절로 눈물이 솟았다. 너무 좋아서, 그리고 아파서.
“아, 아아…. 아, 아아앗! 아흑! 아파…!”
강이 고개를 느리게 저었다. 그때마다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강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바닥을 짚고 상체를 세워 뒤를 보았다.
“흐으… 아바마마…. 그만…. 아읏.”
쾌감에 젖은 눈으로 황제를 돌아보며 비는데, 늑대가 입을 벌려 혀를 내밀었다. 늑대의 긴 혀가 눈물을 핥아먹었다. 강은 그사이에도 배에서 둔탁하게 치밀어 오르는 쾌감에 엎어졌다.
“하읏! 아! 아기가…!”
찌르고, 도망갈 때는 쾌감이 순간 번쩍 터졌다가 사그라지니 참을 수 있었지만 이건 아니었다. 느끼는 부근에 완전히 밀착해서 선단이 커져 쉴 틈도 주지 않고 밀착했다. 쾌감을 넘어서 고문이었다. 강은 바닥을 긁을 힘도 잃어버리고, 바닥에 얼굴을 대고서 숨을 몰아쉬었다.
배 안이, 아기를 가진 것처럼 부풀었다. 버거웠다.
“아기가… 생기면…. 흐으….”
그리고 직감이 들었다. 이번이 끝나면, 아기를 가지게 될 것이라고. 강은 두려움에 파르르 떨며 기어갔다.
아기는 싫어…. 강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엉금엉금 느리게 기었다. 무릎이 바닥에 마찰되었지만, 아프다는 감각도 느끼지 못했다. 배에서 팽창한 양물이 그 부분을 그저 스쳤을 뿐인데, 쾌감이 파도처럼 몸을 대려 강의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흐응, 아, 좋아아…. 아읏…!”
늑대의 눈이 가늘어졌다. 늑대 또한 양물을 계속 조이고, 물고, 빨아주는 내벽에 만족한 듯 그릉그릉 소리를 내며 주둥이를 흔들었다. 강은 손을 내려 배를 만져보았다. 배가 아까 전보다 뚜렷하게 부풀었다. 늑대의 양물이 안에서 커졌기 때문이다. 입구 부분은 그대로였지만, 안에서 커진 듯 배꼽 아래가 툭 튀어나와 있다.
늑대는 다리를 벌리고 하반신을 밀착했다. 늑대의 털이 허벅지를 간지럽혔다. 강은 반사적으로 다리를 더 벌렸다. 그 덕분에 들어오지 못할 것 같던 남은 뿌리가 둔덕에 부딪히며 강의 성기가 벌떡 섰다.
“아, 아아앗! 아아!”
강의 성기는 텅 비어, 하얀 물만 핏, 핏 연약한 빗물처럼 흘렸다. 근육이 잘 잡힌 등으로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아래로 흘러 고였다. 강이 이마를 바닥에 비볐다.
“흐응, 아, 좋아…. 좋아요, 아바마마… 아아…!”
약 때문일까. 혼례식 특유의 그 정제된 음란함 때문일까. 원인을 찾아 헤맸지만 답은 나오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안에서 사정을 해도 줄어들지 않는 늑대의 성기에 눈이 감겼다. 말로 다 표현이 안 될 정도로 몸이 고양되었다. 마지막 사정도 두 번째처럼 틈새를 타고 흘렀다. 부푼 양물이 안에서 작아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기에 늑대는 계속 강의 내부에 양물을 묻고 있었다. 잠시 정신을 잃었던 강은 느리게 흔들리는 시야에서 황제를 보았다. 황제는 여전히 늑대였다. 늑대의 긴 주둥이와 축축한 코가 보였다.
“…아기가….”
쾌락에 절여진 머리는 둔했고, 혀는 그것보다 더 느려서 발음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강은 늑대의 목을 두 팔로 안은 채 백치처럼 중얼거렸다.
“아기가 생기면…. 무섭습니다….”
강이 결국 울음을 왈칵 터트렸다. 늑대는 그딴 건 생각하지 말라는 듯, 부풀어 오른 양물을 움직였다. 강의 눈이 커졌다.
“아, 망가져요…! 싫어…!”
배가 양물로 부푼 상태에서 움직이다니. 예민하게 달아오른 내부는 조금만 움직여도 찢어질 것 같았다. 아예 망가질지도 모른다. 강이 몸을 바르작거리자 늑대가 두 다리로 팔을 내리눌렀다. 움직이면 다친다는 뜻이었다.
“아, 윽…! 더 이상은… 아!”
더 하면 망가진다며, 팔을 휘저어 늑대의 다리를 밀어내려 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작은 단지처럼 부풀어 오른 선단이 입구에 걸쳐졌다. 입구가 더 벌어졌다. 안 돼, 안 돼…. 망가져…. 강이 중얼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눈물이 엄청난 양으로 흘러내려 바닥에 고였다.
“아아아아!”
그때, 늑대가 단번에 양물을 퍽, 소리 나게 넣었다. 내부의 점막이 늑대의 양물에 따라 말려들어 갔다. 주름이 생기기가 무섭게 다시 펴지며, 퍽, 찔걱, 하는 음란한 소리가 크게 퍼졌다.
둥글게 부푼 선단이 그 부근에 딱 밀착해 질퍽, 질퍽 소리가 날 정도로 움직였다. 내부가 이제 완전히 그 모양으로 펴진 듯했다. 아주 살짝 오므라들어 양물을 감싸고 애무했다.
강의 눈이 파르르 떨리며 뒤집혔다. 그러다가 고개가 푹 숙여졌다. 강이 폭풍처럼 내부에서 휘몰아치는 쾌감에 지고 기절한 것이다. 늑대는 약간 남은 성수를 마저 안에 흩뿌리고 나서야 호흡을 골랐다. 늑대의 더운 숨이 강의 축 늘어진 상체 위로 는개같이 뿌려졌다.
늑대가 얌전히 안에서 성기가 줄어들 때까지 기다렸다. 강의 몸은 조금씩 뭍에 나온 물고기처럼 파득거렸다. 성기가 줄어들면서까지 느끼는 부근을 괴롭혔기 때문이다. 강의 성기도 조금씩 힘을 받아 다시 섰고, 투명한 액을 줄줄 쏟아냈다.
강의 몸에 양물을 넣고 있던 늑대의 몸이 차츰 작아졌다. 온몸에 가시처럼 돋아난 부드럽고 풍성한 털들이 짧아지더니 자취를 감췄다. 거기에 다시 나타난 건 매끈하고 아름다운 황제의 옥체였다. 황제는 앞발은 두 손이 되었고, 다리들은 길고 날씬한 신체로 변했다. 황제는 아직도 강의 몸에 자신의 성기를 넣은 채 사람으로 변신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늑대의 머리가 황제의 우아하고 반듯한 얼굴로 돌아오며 긴 은발이 쏟아져 내렸다. 황제는 소리 내어 웃으며 남근을 넣은 상태로 강의 몸을 돌렸다.
“아흑….”
기절한 상태로 내벽이 쓸리고, 마찰되자 거기서 발생되는 열과 고통, 그리고 쾌감에 강의 눈꺼풀이 움직였다. 강이 눈을 느리게 떴다. 고였던 눈물이 반동을 이기지 못하고 붉은 뺨 위로 흘러내렸다. 이제 아예 짓무를 것처럼 변한 눈가가 예뻐서, 황제가 입을 갖다 대었다. 쪽, 소리 나게 눈가에 입을 맞춰준 황제가 웃었다.
“예쁜 것.”
“으응….”
강이 고개를 저으며 그만해달라고 부탁했다. 강의 손이 힘없이 황제의 상체를 밀어냈다.
“아파요….”
“아프기만 한 게 아닐 텐데?”
강은 초점이 없어진 눈을 깜박였다. 아직 황제와 연결되어 있었다. 하반신 아래론 이제 쾌감 말고는 아무것도 느낄 수 없었다. 비문이 벌어져 황제의 남근을 오물오물 물고 있는 것도 당연하게 느껴졌으니까.
“…좋아요….”
강이 낮고 연약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 말은 흘리듯 나왔다. 아들의 입술을 빤히 보던 황제가 웃음을 굳히고 강에게 재촉했다.
“뭐라고 했느냐? 다시 말해다오. 그대의 말만이 천자를 기쁘게 한다.”
강의 두 팔이 움직였다. 황제가 오랜 시간 길들이고, 가르친 아들은 본능적으로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버지의 목에 팔을 둘렀다. 황제를 자신 쪽으로 당긴 강은 향이 날 것 같은 황제의 하얀 뺨에 입을 맞추고 쓰러질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요, 아바마마.”
황제가 멍하니 강을 보았다. 강은 황제에게 그만해달라는 의미를 담아 좋아라고 말한 후, 완전히 정신을 놓았다. 지나친 쾌감에 시달린 몸이 황제의 팔에 늘어졌다. 황제는 아들이 다치지 않게 조심스럽게 안은 후, 사정이 끝난 남근을 빼내었다. 강의 다물리지 못한 비문으로 정액들이 느리게 빠져나왔다. 황제는 다가온 신관이 준 의복을 갖춰 입고, 강의 나신을 자신의 장의로 가렸다. 기절한 강의 머리가 황제의 어깨에 닿았다. 황제는 혹여나 자신의 비가 깰까 봐 두려워 조심하며 안은 채, 뒤를 보지도 않고 차분하게 명령했다.
“식은 끝났다. 모두 돌아가라.”
황제의 손바닥이 강의 배를 지그시 만졌다.
아기는 반드시 생겨야 했는데. 오늘이 아니더라도, 날은 많으니…. 아직은 조급할 일이 없겠지. 황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강을 안고 걸음을 재촉했다.
뽀얗게 차오른 달빛이 부자의 몸을 적셨다.
*
낮이나, 밤이나 황제를 위해 늘 빛이 나야 하는 궁이건만 여 소의의 궁은 어제나, 오늘이나 쥐새끼 한 마리 없는 것처럼 조용하고 빛조차 없었다. 가끔 궁녀들이 조반이나 석반, 그리고 사이마다 먹어주는 다과를 준비해서 올리면 들리는 흐느끼는 소리만이 유일한 기척이었다. 황제의 명령 때문에 그녀를 오랫동안 모시던 유모나 궁녀들은 모조리 궁 밖에 나가게 되어, 그녀를 딱히 신경 써주는 이들도 없었다. 그저 그녀가 쓰러져 있는 침전 앞에 음식을 가져다주는 게 전부였다. 형식적인 보살핌 속에 그녀가 시들어갈 때쯤 오랜만에 그녀를 진심으로 위해주는 이가 나타났다. 외팔이 황자의 어머니인 귀비였다. 늘 궁에 처박혀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던 귀비가 머리를 화려하게 틀어 올리고, 꽃을 꽂아 나타났다. 경혜왕의 피습 이후로 잘 먹지 못해 얼굴은 뼈가 도드라질 정도로 수척했지만, 눈만은 생기가 넘쳤다. 막 피어오른 꽃이 아니라 무르익은 시기의 꽃처럼 그녀의 몸에서는 완숙한 미가 흘렀고, 지나가던 궁녀들도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자신이 몸종처럼 데리고 다니는 내관과 궁녀들을 모조리 내친 귀비는 궁에 딸린 약소한 전각에서 염주를 만지작거렸다. 아들의 무구한 영광을 위해 기도를 드리던 염주는 이제 용도가 바뀌었다. 오로지 아들의 건강과 안위를 위한 것이었다.
‘어차피 내 아들이 황제가 되지 못하면, 네 아들도 황제가, 그리고 황후도 되지 말아야지’
내 아들이 못 가진다면, 다른 아들도 마찬가지였다. 황제의 뒤를 누가 잇는지 이제 궁금하지 않았다. 나라의 안위도, 백성들의 목숨도. 가지지 못할 거면, 다 죽어버려야 했다. 그래야 공평했다. 내 아들은 왼쪽 얼굴이 갈리고, 팔도 잘려서 미쳐 가는데 황제는 행복했고, 강은 그 품에서 아비가 좋아 몸을 복숭앗빛으로 물들이고 우느라 바빴다.
전부 다 죽어야 해. 그 자리는 내 아들의 것이었고, 태후도 내 것이었는데…. 그녀는 눈을 새초롬하게 뜨고서 염주가 끊어질 정도로 세게 쥐었다.
그녀가 강과 여 소의에 대한 살의에 불타오를 때, 저 멀리서 여 소의의 가마가 보였다. 한동안 먹지 못해 기력이 다해 그녀가 걸어올 힘이 없었는지, 가마에 축 늘어져 있었다. 그래도 아들이 희비가 된 덕분에 내관들이 무척 신경 쓰는 게 느껴졌다. 복에 겨워서 그게 좋은지도 모르고 침전에 처박혀 우는 꼴이라니. 가소로워서 속으로 비웃으며 귀비가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표정을 정돈했다. 같은 자식을 둔 어머니의 입장에서 흐느끼는 듯한 표정을 지은 귀비가 치맛자락을 잡아 올리고 여 소의를 향해 뛰어갔다.
“괜찮은가?”
“마마….”
가마에 기대어 누워있던 여 소의가 끙끙 앓는 얼굴로 귀비를 불렀다. 여 소의에게 손을 내밀자, 그녀가 주저했다. 눈에 힘은 없지만 의심이 가득하다. 황궁에 산 세월이 상당한지라, 그녀도 더 이상 어린 시절의 여 소의가 아니었다. 잠시 고민하던 여 소의는 이내 손을 잡고 느리게 일어났다. 소녀처럼 작고 여린 몸이 비틀거렸다. 충격으로 잘 먹지 못해 몸이 마른 탓이었다.
“나에게 기대게.”
“아닙니다, 마마. 제가 어찌….”
말을 흐리던 여 소의는 고개를 저으며 힘을 주어 전각으로 걸어갔다. 그녀들은 내관들과 호위들을 밖에 세워두고 전각 안에 다소곳하게 앉아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강과 닮은 차갑고 서늘한 이목구비를 가진 여 소의는 유독 심성이 여리고 약해, 눈빛도 꺼져가는 불빛 같았는데 오늘은 아예 영혼이 빠져간 것처럼 넋이 나갔다.
하긴, 그날의 혼례식이 충격이긴 충격이었다. 황제가 그렇게 좋아서 안달이 난 건 처음이었으니까. 정말 정성을 다해 입을 맞추고, 늑대 상태로 안으면 찢어질까 무서워 인간 모습으로 안아주고, 그렇게 좋아하는 남근을 빨게 하는 것도 적당선에서 멈추었다. 강도 아바마마, 아바마마 부르면서 좋아하다가 폐하, 라던가 신첩, 이라는 단어를 아무렇지 않게 쓰며 그의 목에 매달렸다.
누가 봐도 아버지와 아들 사이는 아니었다. 황제의 눈에 흐르던 그 달콤한 눈빛을 떠올리던 귀비는 가슴이 턱 막히는 기분에 눈을 내리떴다. 그게 어떻게 아버지의 눈이란 말인가. 그 눈은 완벽한 연인을 응시하는 눈이었다. 문제는 황제는 항상 같았다는 거고, 그걸 아버지와 연인 사이에서 조율했다는 것이다. 그걸 누가 알아챘을까. 희비 전에는 정말 다정한 아버지였으니.
나도 가지지 못한 것을, 그 아이는 너무 아무렇지 않게 가졌고 내 아이는 나와 같이 구석에 처박혀 모든 것을 잃었는데, 그 아이는.
처음에는 둘 사이를 향한 반감이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그 안에 들어차는 건 질투였다. 수치스러웠지만, 이건 노골적이고 명백한 방향을 가진 질투였다. 너무 화가 났다. 왜 자신은 안 되는 것인지. 경혜는 왜 버림받는 것인지. 고작 그 얼굴로 황제의 마음을 달래고, 다리를 벌려주는 거라면 다른 사람도 많았다. 강이 특별한 게 도대체 뭐라고.
그 아이는 심지어 늑대로 변신하지도 못하는 하급이었다. 그나마 다행은, 혼례가 아니면 남자이기에 임신이 그렇게 자주 되지 않으리란 것이었다.
그러니 죽이지 못하더라도, 아슬아슬하게 유산만 시킨다면…. 유산으로 인한 죽음이라면, 황제에게도 타격이 가지 않을까. 귀비는 황제가 심병에 걸린 강을 가둬놓고 마음껏 취하고 있을 때 홀로 머리를 잡고 생각에 잠겼다.
답은 하나였다. 강을 대놓고 죽이지 못하니, 적당한 선에서 유산을 시키고, 유산을 빙자한 죽음으로. 그리고 황제를 미치게 만든다. 황제가 광증에 제대로 정사를 보지 않는다면 하늘은 다시 새로운 군주를 지정할 터이다.
생각만 해도 너무 기뻤다. 강도 죽고, 황제도 미쳐서 폐위라니. 황제에겐 죽음보다 더한 형벌을 내려줄 것이다. 속으로 박수를 치며 기뻐하던 귀비는 애써 여 소의를 보며 웃었다.
“많이 힘들었지?”
“아뇨. 괜찮습니다.”
전혀 괜찮지 않은 얼굴로 여 소의가 시무룩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귀비는 혀를 차며 바싹 말라 뼈가 튀어나온 여 소의의 손등을 잡았다. 그동안 비빈들의 괴롭힘으로 화관을 강제로 만드느라 손이 찢기고, 터져 상처가 가득했다.
“내가 자네에게 너무 모진 말만 했네. 그걸 사과하러 왔어. 폐하께서 아들이자 후궁인 희비를 그리 대하실 줄이야…. 폐하께서 그렇게 오래 후궁을….”
“마마, 외람되오나 혼례식 얘기는 그만하면 아니 되겠습니까? 듣는 제가 가슴이 너무 미어져 듣지 못하겠습니다. 마마께는 그저 비빈일 테지만, 저에게는 아들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제 아들이 아니지만, 제 배로 낳은 새끼인데…. 어찌 그 광경을 마음 좋게 보겠습니까? 아무리 하늘이 내려준 명이라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이 아닙니까?”
여 소의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애써 말을 이어갔다. 그 모습을 보며 귀비는 속으로 웃었다. 그래, 저런 마음이 진정한 어미지. 아들이 후궁이 되어서 좋아하는 어미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귀비는 여 소의가 우는 모습을 보다가 혀를 차며 옆으로 다가왔다. 눈물을 다정하게 닦아주자 여 소의가 서러움을 못 이기고 귀비의 손에 기대어 흐느꼈다.
“괜찮네. 이곳은 자네와 나뿐이야.”
귀비가 여 소의의 등을 다독여주며 속삭였다. 그러니 뭐든 나에게 다 말해도 된다고, 은근슬쩍 여 소의를 유혹하고 있었다. 평상시라면 귀비에게 예민하게 대했을 여 소의는 이것조차 감격스러운지 눈물이 매달린 눈을 들어 올렸다. 예쁘긴 정말 예쁜 얼굴이었다. 냉철한 무사 같은 얼굴을 했으면서, 울면 저렇게 처연하다니…. 황제가 왜 강을 끼고 사는지 알 것 같기도 했다. 어미와 닮은 강 또한 울리고 싶은 얼굴이었다. 창호지 같은 얼굴에 매화가 피어올랐으니, 그 누가 꺾고 싶지 않을까.
음심을 자극하는 얼굴이었다. 괴롭히고, 울리고, 강제로 다리를 벌려서…. 가슴을 틀어쥐고. 황제가 자주 하던 행동을 머리로 떠올리며 거기에 강을 대입해보던 귀비는 고개를 저었다.
둘이 퍽 잘 어울려서 더 문제였다. 금기를 너무나 태연하게, 하늘의 명으로 과감하게 벌이던 그 둘의 행위가 잠재된 무언가를 자극했다.
“내가 잘못 생각했네. 처음에는 단지 천명이니, 어쩔 수 없다 생각하고 자네를 다그쳤지만 이건 아닐세.”
“마마….”
“나도 한 아이의 어미야. 내 아이가 불운을 겪었을 때, 가슴이 찢어지게 아팠네. 불운은 경혜 하나로 족해. 차라리 경혜는 왕부에서 평화롭게 살기라도 하지, 영현, 아니 희비는 무슨 죄로 이 옥에 갇혀 그 청춘을 폐하께 바쳐야 한단 말인가?”
“전 강이 저와 같이 살길 바라지 않습니다. 제 아이만은, 자유롭게…. 그저 행복하게 살길 바랄 뿐입니다. 그 아이가 아무리 아버지를 사랑한다 해도, 어찌 아버지의 아이까지 낳겠습니까? 그리고 그 아이는 무엇이 된단 말입니까? 모두가 손가락질을 할 것입니다! 폐하께서 살아계실 때야 아무 말도 못 할 테지만, 만약 폐하가 하늘도 돌아가시고, 강과 그 아이만이 남는다면요? 그 아이가 태자가 되지 못한다면요?”
태자라는 이야기에 귀비의 눈이 가늘어졌다. 망측한 일이었지만, 가능할까 봐 무서웠다. 아버지와 아들의 정사도 가능했고, 임신도 현실이 되었는데 그게 되지 못할 리가.
그러니 죽여야지. 그 아이가 태자가 되지 못하게. 딸인지, 아들인지 가늠할 수 없으니 아예 싹을 뽑아버려야 했다.
“마마, 저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제 아이가 희비라니요! 제 아이는 며칠 전만 해도 평범한 친왕이었습니다! 혼례도 치르지 못한….”
“정신 차리게, 여 소의. 자네마저 흐트러지면, 그 아이를 누가 구해주겠는가? 이제 자네밖에 없네.”
귀비는 자꾸 자신에게 매달려 우는 여 소의를 꽉 잡아주며 눈을 마주치고 거짓된 위로를 속삭였다. 여 소의는 딸꾹질을 하며 귀비를 빤히 보고 멍하니 눈을 깜박였다.
“기회는 언제나 찾아와. 폐하께선 내명부에 간섭하지 못하시지. 심지어 태후께서도 태상황께서 하늘로 돌아가신 이후로, 심병에 걸리셔서 현에 계신 지금이 중요하네.”
“…아이를… 제 손으로 살리라고요?”
그녀는 귀비의 심지가 굳센 눈에 넘어간 듯, 숨을 헐떡거리면서 희망에 차서 물어보았다. 귀비는 여 소의의 눈물을 소매로 다정하게 닦아주며 그녀만이 들을 수 있게 속삭였다.
“그럼 자네의 아이가 폐하의 아이를 낳게 만들 것인가?”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귀비는 그녀를 보며 엄숙한 얼굴로 또박또박 말했다.
“경혜는 몸이 망가져서 이제 아무것도 못 하고, 진영은 하늘로 돌아갔고, 소현은 자신의 어미를 죽여 폐위되어 후라는 이름으로 바뀌었지. 그런데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친왕들마저 위태로운 상태에서 강이 임신하면 더욱 혼란만 가져올 것이야. 또한, 강이 원하지 않은 상황이었다면 어떡하겠는가?”
“하지만 천명이었습니다.”
“만약 폐하가 하늘에게 부탁한 것이라면? 그래서 일부러 혼례도 못 치르게 하여 동정의 몸으로 남겨둔 것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그렇다 하더라도 하늘께서 답을 주신 건데, 감히 인간인 제가….”
막상 답을 내리려 하니, 여 소의가 끙끙거렸다. 이 나라에서 태어나자마자 하늘을 섬긴 그녀에게 하늘의 뜻을 거부하리라는 건 힘든 일이었다. 그건 강도 똑같았다. 천명이니까. 너무나 강력한 그 한마디에 강은 아무 말도 못 하고 황제에게 순순히 안겼다. 끝에는 자기도 좋아서 엉덩이를 발갛게 물들이며 더 해달라고 빌긴 했지만.
“하늘이 중요한가, 자네의 아이가 중요한가?”
귀비가 여 소의에게 냉정한 음성으로 물었다. 정신이 나간 듯 귀비를 보던 여 소의가 소리 없이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말했다.
“강이 중요하지요.”
“…그래. 우리는 어미가 아닌가? 아이를 가장 먼저 생각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것이야.”
“그런데 왜 마마께서… 저에게 이런 위로를 해주시는 겁니까?”
“망가진 건 주로 충분하네.”
귀비가 쓸쓸한 얼굴로 웃으며 대답했다. 그녀는 손을 내려 거칠어진 여 소의의 손을 맹세하듯 꼭 잡으며 담담히, 그러나 힘을 주어 말했다.
“내 아들이 그리된 이후에야 그런 마음을 깨닫다니, 너무 미안했네. 자네에게 그러지 말았어야 했어. 자네뿐만 아니라 냉궁에 갇혀 죽은 현비나, 미쳐버린 숙비에게나…. 좀 더 자애롭고 따스하게 다가갔어야 했네. 우리는 결국 같은 처지에 있는 여자들이 아닌가. 그 누가 원해서 폐하의 비가 되어 아이를 낳고 살았겠는가. 결국은…. 같은 끝을 보고 달리고 있었는데. 좀 더 우리끼리 뭉쳐서 아이들을 지켰다면, 이렇게까진 되지 않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했네. 그래서 너무 미안했네. 자네의 아이를 내가 좀 더 신경써 주고, 사랑해줬어야 했는데. 이제라도 괜찮다면, 내 사죄를 받아준다면…. 그 아이를 위해 지금이라도 도움을 주겠네.”
“도, 도움이요?”
여 소의가 한 가닥의 희망을 잡고 되물었다. 드디어 물었다. 그래, 그렇게 나와야지. 그래야 내가 네 아들의 아이를 유산시키고 네 아들도 죽여 버리지. 네 아들이 잘못되건 말건, 그건 내 알 바가 아니야. 내가 바라는 건, 나와 내 아들을 이런 불구덩이로 내몬 황제도 미쳐서 죽길 바라는 것.
속에서 피어오르는 악의를 꾹꾹 눌러 담은 귀비가 능숙하게 가면무를 펼쳤다.
“강을 이 궁에서 내보내도록, 우리 둘이 힘을 합쳐보세. 그 아이는 우리와 다른 삶을 살아야지. 그 아이는 이제 겨우 약관의 사내가 아닌가?”
*
안에서 열이 끓어오른다.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강렬한 성욕은 간지러움과 비슷했다. 그러나 이제까지 겪었던 간지러움과 다르게, 애타는 듯한 이 느낌은 해답이 있었다. 바로 황제의 거대한 남근이었다. 그게 안으로 들어와 내벽을 세게 비벼준다면, 안에 있는 이 열이 풀려서 개운해질 것이다.
“흐….”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 혼례는 끝이 났는데, 자신만은 아직 그 혼례에 머문 듯 계속 황제가 생각났다.
너무 좋아서. 황제의 입맞춤도, 안을 느리고, 빠르고, 혹은 몸은 신경 쓰지 않고 뱃가죽을 뚫을 것처럼 쑤셔주는 그 행위도. 다 좋아서 미칠 지경이었다. 이제 아버지가 아버지로 보이지 않았다. 그의 따사로운 금안은 자신을 녹여 내릴 듯 보고 있는 것 같았고, 그의 손은 다리를 벌려 남성의 상징을 잡고 흔들 것 같았다. 버겁다고 느껴졌던 구음도 괜찮다고 느껴졌다. 황제의 남근을 물고 빨았을 때 숨을 쉴 수 없다고 느껴서 어깨를 들썩였는데, 이제와 생각해보면…. 자신은 아버지의 남근을 물면서 느끼고 있었다. 다리 사이가 축축하게 젖어들 만큼 입의 예민한 점막으로 느껴버렸다.
그게 너무 수치스럽고, 황제에게 미안해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아버지와 정사를 맺고 느끼는 자신이 너무 더럽고 음탕하게 느껴져서 침전 밖으로 나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 혼례를 본 사람들이 전부 자신을 향해 수군거릴 것이다.
아버지의 남근을 빨고, 그것에 박히며 흥분한 더러운 아들이라고.
“싫어….”
강은 귀를 틀어막고 이불에 고개를 처박았다. 모든 것이 다 싫었다. 매일같이 자신에게 입을 맞추고, 구음이나 정사를 강요하는 황제나, 회임을 했는지 안 했는지 확인을 하러 오는 의원이나, 자신을 늘 뚫어지게 쳐다보며 감시하는 담영이나.
그냥 자신을 놔줬으면…. 절망감에 가득 찬 강이 아랫배를 감쌌다. 회임이 됐는지, 안 됐는지 두려웠지만 진맥을 보게 할 자신이 없었다.
정말 임신해버리면 어떡하지. 아기는 또 어떻게 낳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과 거기에 따른 절망감에 우울은 더욱 깊어졌다. 강이 습관적으로 귀를 틀어막고 이불 속으로 꾸물꾸물 기어들어 가는데, 갑작스레 문이 열렸다.
그리고 멍! 하고 우렁차게 짖는 소리가 들렸다. 강은 이불에서 얼굴을 조심스레 꺼내었다. 짖는 소리가 매우 익숙하다 했더니, 언제 왔는지 모를 설이 침전 문가에서 꼬리를 흔들고 있었다. 더군다나 설의 목줄을 쥐고 있는 사람은 황제였다. 막 정무를 마치고 왔는지, 몸에 바람 냄새가 한껏 묻어 있었다. 황제는 우울감에 파리하게 변한 강을 보고 환하게 웃었다. 미소가 얼마나 해맑은지 마치 햇살 같았다.
“희비, 천자가 그대를 위해 그대의 강아지를 데리고 왔네. 어떠한가? 이제 기분이 좀 풀렸는가?”
“…설은 왜….”
강은 황제가 설이를 데려오는 게 마음에 들면서도, 괜히 불안해져 타박했다. 그러자 칭찬을 바라며 커다란 꼬리를 살랑일 것 같던 황제가 금세 시무룩해졌다.
“아니, 천자는 그대가 매일 침전에 있으니 외로울까 봐….”
황제가 설과 함께 걸음을 오붓하게 맞추며 들어와 침상에 앉았다. 장의를 벗고, 평복으로 돌아온 황제는 오늘따라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찬란한 은발의 반은 관으로 고정하고, 남은 머리는 등에 폭포수처럼 흘러내렸다. 백옥 같은 뺨엔 묘한 설렘으로 홍조가 깃들어있었다. 늘 우아하게 웃던 황제가 이렇게 말간 미소를 지을 수도 있구나. 침전에서 심병을 앓느라 우울해졌던 강은 그만 한숨을 내쉬며 황제의 손을 잡았다.
이러니 저리니 해도 아버지이고, 이제 하늘의 명을 받아 지아비가 되었으니 받아들여야겠지. 포기는 빠를수록 좋았다. 그걸 황제를 통해 습득했다. 황제는 단 한 번도 출정이나, 혼례를 명한 적이 없었고, 그걸 결국 강이 스스로 포기하게 만들었다.
지금도 그러했다. 처음엔 강이 거부해도, 황궁에 있는 어머니를 들먹거리며 협박했다. 그런 의미에서 설을 데려온 게 아닌가…. 하고 불안해져 황제의 눈치를 살피던 강은 포기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이 아무것도 모르고 해맑게 웃고 있는 강아지 설이 좋았으니까. 자신이 어렸을 적부터 키워온 강아지가 자기 때문에 죽는 건 원하지 않았다. 부디, 건강하게 오래 살았으면 했다. 그러고 보니 하얀 강아지를 주워온 이유도 아버지 때문이었다. 황제가 은색 늑대인지라, 하얀 강아지를 보면 어린 시절에 본 아바마마가 생각이 나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강은 깊은 우울이 배인 얼굴로 설의 목덜미며 턱을 살살 만져주었다. 설이 기분이 좋은지 눈을 반쯤 감고 그릉그릉거렸다.
“감사합니다, 아바… 아니, 폐하.”
강이 순간 울적해진 얼굴로 폐하라고 불렀다. 기뻐하는 모습보단 불안해하고, 풀 죽은 모습에 가까운 강을 보고 황제는 피식 웃었다. 어쨌든 아들이 포기하고 자신을 ‘폐하’라고 불러서 기분이 좋았다.
“그래. 앞으로 폐하라고 불러야 해. 천자는 그대의 지아비니까. 알겠느냐?”
“…예. 소자… 아니, 신첩이…앞으로….”
띄엄띄엄 말하던 강이 설을 끌어안고 고개를 숙였다. 설마 우는 건가. 이렇게 잘해주는데도 우울해하는 강을 보자 속이 뒤틀렸다. 하늘의 아들인 내가 직접 나서서 왕부에서 개새끼를 데려왔는데.
잠시 화를 내려던 황제는 속을 삭이고 아들의 굳은살이 박인 손을 잡았다. 강이 몸을 움찔 떨었다.
“강아지보다 천자를 안아줘야지. 정무를 보고 오느라 얼마나 힘이 들었는 줄 아는가?”
“…설이를 본 지가 오래 되어서….”
강이 우물쭈물하며 중얼거리다가 포기하고 두 팔을 벌려 황제를 안아주었다. 황제는 강의 허리를 잡아 자신의 허벅지에 앉혔다. 어린 시절처럼, 황제의 허벅지에 앉아 그를 보게 된 강은 습관적으로 그의 어깨에 이마를 대었다. 황제는 혼례 이후로도 몇 번 지속된 정사로 몸에 기운이 쏙 빠진 강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여기서 좀 더 근육이 빠져 말랑해지고, 허리가 가늘어지면 딱 좋을 텐데. 그리고 배는 임신해서 부풀고, 가슴은 풍만해지고. 황제는 그 생각을 하며 강의 가슴이며 배를 더듬었다. 간지러움에 강이 몸을 뒤틀었다.
“아바마마, 설이가… 설이가 봅니다. 그만해주십시오.”
“보는 게 뭐 어때서 그러느냐?”
“소자는, 아니… 신첩은 싫습니다.”
“익숙해져야 한다.”
강이 황제의 어깨에 고개를 기대고 훌쩍였다. 아직도 이런 점에서 강은 너무 미숙했다. 그 점이 너무 좋았다. 평상시엔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냉정한 강이 자신의 아래에선 방심하고 잘 우는 게.
“얼른 아비의 아기를 가져야지.”
“…무섭습니다…. 그러다가 몸이 망가지면… 어찌합니까?”
강이 고개를 슬며시 들고 황제를 보았다. 눈물이 맺힌 검은 눈이 꼭 도살당하기 전 송아지 같았다. 물론 강이 죽을 일은 없었다. 황제는 개구지게 웃으며 강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소매로 닦아주었다. 도르륵, 흘러내리는 눈물이 영롱하기 그지없다. 핥아먹고 싶었다. 황제는 참지 못하고 강의 눈물을 핥으며 침상에 강을 눕히고 다리를 벌리게 했다. 다시 시작된 정사의 기미에 강이 팔뚝으로 얼굴을 가렸다.
“아래가 부어서 아픕니다.”
“원래 자주 하면 붓기 마련이지.”
“…정말 아픕니다, 폐하.”
“아프기만 한 건 아니지 않은가?”
강이 팔뚝을 내려 눈만 내보였다. 절망감으로 가득 찬 눈이 예쁘다니. 정말 어쩔 수 없는 중증이었다. 강이 결국 포기한 듯 눈을 감았다. 속눈썹마다 눈물이 맺혔다. 처마에 고인 빗물 같았다. 황제가 다리를 벌려 어깨에 걸치고, 전날 남은 정액을 이용해 퉁퉁 부은 비문과 회음부를 남근으로 긁어내리자 강이 입술을 꽉 물었다.
“아프… 아…!”
강의 손이 갈고리처럼 휘었다. 황제는 그 손에 깍지를 껴 눌렀다. 납작한 배를 손바닥으로 만져보았다.
“얼른 아이를 가져야지.”
강이 눈을 돌려 황제를 멍하니 보았다. 황제의 남근이 부은 비문을 누르며 들어오는 압박감에 입이 벌어졌다. 강의 고개가 뒤로 젖혀지고, 정성껏 빗기고 씻긴 머리가 흩어졌다.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설원에 피어난 겨울꽃처럼, 아들의 눈가와 입술이 차츰 붉어졌다. 이것을 도화라고 하던가. 황제는 화사하게 웃으며 아들의 눈가에 입을 맞추었다. 색색거리는 호흡이 점점 거칠어지고, 아들의 몸은 바들바들 떨려왔다.
“아으으…. 아파….”
강이 파르르 떨며 중얼거렸다. 황제는 아들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비비적거리며 물었다.
“정말?”
정말, 아프기만 한가? 그리 묻자 강이 점점 들어오는 남근에 이성을 잃었다. 배가 가득 찰 정도로 깊숙이 들어온 남근에 자신을 놓아버린 강이 황제의 목을 끌어안으며 속삭였다.
“아뇨….”
좋습니다….
강이 중얼거리며 황제를 꽉 안았다.
4권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