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 꾼(3).
* * *
약속의 일주일이 지났다.
그 일주일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첫 번째는 비앙카의 자리가 굳건해졌다는 것.
뱀 위에 올라탄 개구리 마냥, 애쉬와 비앙카는 임시적 동맹을 맺었다.
“용사님의 부정적인 감정이 클수록 더 농밀한 마기를 얻을 수가 있어요. 그리고 용사님의 감정은 강아지 씨를 빼앗길 때, 가장 크게 반응하고 있고요.”
실험결과, 애쉬의 감정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변화가 없다.
눈앞에서 대학살이 펼쳐져도, 어린 소녀가 강간을 당해도, 슬픈 희생 장면을 보아도, 애쉬는 하품만 쩍쩍 해댈 뿐이었다.
하지만 나조차도 익숙해져버린 비앙카의 허리 놀림에는, 수십 번 봤음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 순간 추출해낸 마기는 악마 둘을 소환할 수 있는 분량.
“그래서 제가 약속한 일을 해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강아지 씨를 범할 수밖에 없어요.”
“진짜 좆같은 소리만 골라서 하네.”
애쉬는 비앙카를 향해 으르렁거렸다.
마왕 바알을 잡기 전까지 나를 범할 수밖에 없다는 말에 발작을 해댔다.
비앙카는 허공에 두둥실 떠오른 무언가를 보며 활짝 웃었다.
“이거 봐요. 용사님에게서 풍기는 부정적인 감정, 마기의 농도를 헬 체인의 흑마술사들이 봤다면…. 남자는 무발기 사정을 하고 여자는 시오후키 하면서 가버렸을 거예요.”
비앙카가 팔을 휘저으며 마기를 회수했다.
무형의 기운인 마기는 비앙카의 손 위에서 고체화되었다.
저렇게 보관하고 있는 것만 한 주머니였다.
두 번째는 내 레벨이 꽤 올랐다는 것.
내 심장에 새겨진 맹약이 한 몫 톡톡히 해냈다.
‘본능적으로 굴복하고 있다는 말은 참…. 어이가 없네.’
내 스스로는 굴복한 적 없다고 생각하는데, 맹약은 그렇게 판단하지 않았다.
맹약의 판정은 내 무의식이 비앙카에게 굴복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음음, 나한테 박힐 때만큼은 복종하는 것이 편하다는 걸 몸이 기억하는 거지. 그게 더 기분 좋아질 수 있는 방법이고 말이야.”
비앙카는 뻔뻔했다.
맹약으로 선순환을 만들어주었다며, 자신에게 고마워하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미친년.’
애쉬는 나를 비앙카에게 넘겨준다.
그 과정에서 비앙카는 애쉬에게서 마기를 추출한다.
나는 비앙카에게 범해지며 맹약의 조건을 충족한다.
비앙카가 추출한 마기 중 일부가 내 몸에 스며들며 경험치가 된다.
순환 아닌 순환.
그렇게 기이한 관계가 정착되었다.
내 레벨은 17.
일주일 사이에 엄청난 성장을 이룩했다.
“…나랑 하는 수련보다 훨씬…. 어휴.”
애쉬는 내 성장을 보고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이 흙바닥에서 굴리는 것보다 비앙카가 침대 위에서 굴리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 것을 보았으니, 노골적으로 서운해 하는 것이다.
내 잘못이 아닌데 괜히 미안해졌다.
세 번째, 우리는 악마의 절반을 토벌했다.
마계에 남아있는 악마는 총 서른하나.
‘원작은 이제 쓸모가 없다.’
원작에서는 이 시점에 루크의 이야기가 진행된다.
병 들어가는 마을의 원흉을 해결하고, 납치된 여자 아이를 찾아다니는 둥, 흑마술사들의 자잘한 악행을 해결하는 수준에 그친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회귀한 용사 하나가 악마들을 다 죽이고 다녔다.
내용 전개가 급속도로 이루어졌다.
“마계가 주춤하도록 만들어뒀으니까 시간이 조금 생겼죠? 이제 잠깐 쉬도록 해요.”
비앙카는 더 이상 악마소환을 진행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평화와 멸망 사이에서 줄을 타며, 복수의 과실이 탐스럽게 열리길 기다리고 있었다.
“용사님, 저 텔레포트 좀 쓸 수 있을까요?”
“…왜.”
“확인해봐야 할 게 있어서요. 오랜만에 헬 체인 상황도 살펴봐야 하고….”
이것저것 개인적으로 할 일들이 있으니, 잠깐 풀어줬으면 좋겠다.
비앙카는 그리 말했다.
애쉬는 비앙카를 흘겼다.
비앙카가 원하는 것은 절대 들어주기 싫다는 의지가 엿보였다.
“대신 발정 풀어드릴게요. 제가 곁에 없으면 발정이 걸리지 않도록….”
“영원히 꺼지면 되겠네, 그럼.”
“에이. 그럼 용사님이 강아지 씨를 백날 단련시킬 거예요?”
“…….”
아이러니하게도, 몸을 써서 흙바닥을 구르는 것보다 침대 위에 엎드리는 것이 훨씬 효과가 좋았다.
둘 다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후자가 편하기는 했다.
일주일이란 시간은 페니반에 대한 내 가치관을 바꾸기에 충분했다.
악마의 도구 마냥 나쁘게 생각할 만한 것은 아니다, 정도로….
실제로, 비앙카 없이 관계를 맺기도 했다.
하게 해달라고 애원하는 눈을 보면 매정하게 거부하기가 힘들었다.
애쉬에게 보지 쓰게 해달라고 징징거리던 내가 떠올라서, 가끔 대주고는 했다.
‘슬라임 이식을 안 했으면, 기저귀를 차고 다녔을 것 같아.’
내가 자기 크기에 적응한 것 같다면서, 페니반 크기를 키우고 싶어 하던데….
그것만큼은 꼭 막겠다고 다짐했다.
나한테 몸을 부딪치며 흥분하는 애쉬의 모습을 보고 싶은 거지, 진짜 뒤로 박히면서 느끼는 똥게이가 된 것은 아니니까.
“알았어. 풀어줄게.”
“감사해요, 용사님.”
이 둘이 그나마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게 된 것은 최근의 일 때문이다.
덕분이라고 해야 할까.
비앙카는 자신을 싫어하는 것은 괜찮지만 너무 적대하지는 말아 달라고 말했다.
애쉬는 당연히 그것을 거부했고, 싸움으로 이어졌다.
─ 저는 강아지 씨의 뒤를 따먹을 뿐이에요. 그 과정에서, 왜 용사님이 화를 내시는 건지 모르겠어요. 물론 빼앗겼다고 느끼는 소유욕이 마기를 풍족하게 뿜어내지만, 너무 격한 것 같아서요.
비앙카의 말은 도발에 가까웠다.
애쉬가 화를 내질렀다.
비앙카는 그런 애쉬를 차분하게 설득했다.
─ 남녀 간의 관계가 신성시되는 이유는 단순히 살을 맞대는 것 때문이 아니에요. 그 관계를 통해 아기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죠. 여성에게 순결을 강조하는 것도, 남자들이 여자에게 자신의 아이를 확실하게 잉태시키기 위함이고요.
─ 그런 의미에서 저는 강아지 씨와 섹스를 하지 않은 것과 다름이 없어요. 사랑이란 감정을 나누기 위해 키스를 한 것도 아니고, 아이를 만들기 위해 자궁에 씨를 받은 것도 아니고.
─ 그냥…. 용사님께 빼앗겼다는 감각을 전달하기 위해 육체적일 뿐인 관계, 육탄전, 그냥 레슬링을 한 것뿐이라고요. 서로 검을 맞대며 실력향상을 위해 수련하는 기사들과 다르지 않아요. 어떤 느낌인지 아세요?
─ 저는 강아지 씨와 살을 부딪치면서, 아무런 쾌감도 느낄 수가 없다고요.
궤변이었다.
내 위에 올라탔을 때, 제 혼자 잔뜩 흥분해서 달아올라있던 표정을 똑똑히 기억한다.
그 얼굴은 아무런 쾌감도 못 느끼는 자가 지어보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살을 섞고 부딪치다보면, 자연스럽게 정이 쌓이게 된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
그것은 지역 간의 거리를 뜻하지만, 사람 간의 거리에도 비유로 사용할 수 있다.
실제로, 보름 전과 현재, 비앙카와의 거리가 생각보다 좁혀졌다.
거부감이 많이 옅어졌다는 말이다.
하지만, 애쉬는 설득이 됐다.
완전히 넘어간 것은 아니고, 그럴 수도 있겠다, 정도의 납득에 가까웠다.
그것만으로도 둘 사이의 분위기가 많이 유해졌다.
‘굳이 따지자면 태양의 약속을 받은 직후로 많이….’
애쉬에게 의욕이 생겼다.
원래부터 마왕을 죽이고 싶어 했지만, 그 열정이 더욱 거세졌다.
그 욕망이 어느 정도냐 하면, 비앙카의 힘을 빌리면 6개월 내에도 끝낼 수 있다.
오히려 제 입으로 비앙카의 빌리고 싶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덕분에 횟수가 늘었고….’
쓰리썸 같지 않은 쓰리썸이 많아졌다.
비앙카가 내 엉덩이에 치대고, 애쉬가 키스로 달래주는….
그 과정에서 ‘해제’의 레벨도 열심히 올렸다.
비앙카의 각인을 풀기 위해서는 아직 한참 남았지만, ‘해제’가 D랭크에 도달한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있다.
“좀 있다, 다음에 봐요.”
비앙카는 텔레포트를 발동해, 볼 일을 보러갔다.
아스페라톤 기사 저택에는 애쉬와 나, 둘만 남게 되었다.
“…강아지. 일루와.”
비앙카가 사라지자마자, 애쉬는 내 몸을 탐했다.
앞이고 뒤고, 자신의 색을 칠하듯 정성껏 핥고 빨았다.
나는 얌전히, 애쉬에게 몸을 내어주었다.
* * *
아스페라톤 기사 저택에서 유테론 남작의 저택으로 복귀했다.
근 보름 만에 돌아왔다.
좀 더 일찍 올 수도 있었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다.
유테론 남작의 저택은 스쳐지나가는 귀족의 집 중 하나였다.
“어서 오십시오, 용사님.”
유테론 남작과 유테론 아가씨가 우릴 마중 나왔다.
딸의 목숨을 살려주었으니, 지극정성으로 대접했다.
애쉬는 딱히 이런 것을 바라고 움직이는 스타일이 아니다.
꼴리는 대로 저지르고, 뒤따르는 이익을 거부하지 않을 뿐이다.
“기사들 저택보다는 확실히 괜찮네.”
“유테론은 용사님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예전에 거래를 제안했던 그 유테론 남작이 맞는가, 의문이 들 정도로 저자세였다.
그 이유가 가까운 데에 있었다.
‘자기 딸을 구해줬다고 저러는 게 아니다.’
그건 아주 작은 이유.
진짜 저자세로 기어가기 시작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악마를, 무지막지하게 잡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벌써 소문났어?”
용사 애쉬 그레이필드는 악마를 사냥할 수 있다.
그 힘으로 악마 개체수를 꽤 줄였다.
교단 측에서 정보를 통제하고 있어, 그 숫자가 정확히 알려진 것은 아니다.
서른한 마리를 잡았으나, 실제 알려진 숫자는 다섯 정도로 축소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위대한 업적.
일개 남작이 뻗댈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유테론 남작 입장에선, 프레소 백작령으로 보내기 전까지의 기억을 말끔하게 지워버리고 싶을 테지.’
그 참담한 심정이 이해가 됐다.
애쉬는 별로 개의치 않는 듯했지만, 갑과 을에게는 분명한 입장 차이가 있었다.
“동료 분들을 불러드리겠습니다.”
잊고 있었던 친구들.
빈센트 할아범과 린, 소우타.
“용사님!”
“……?”
빈센트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런데, 애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느껴졌다.
“너희, 왜 손 잡고 다녀?”
나보다 먼저, 애쉬가 물어봤다.
애쉬의 물음에, 린과 소우타가 머릴 긁적이며 말을 망설였다.
“허어….”
애쉬는 어처구니없다는 듯 실소를 흘렸다.
나를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야릇한 망설임이 섞여 있었다.
“손, 잡을래?”
나는 슬쩍 손을 뻗었다.
“아니?”
애쉬는 내 손을 거부했다.
애쉬의 손에는 여전히 내 목줄이 쥐어져 있었다.
하루이틀 일도 아니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대신, 애들 근황을 물었다.
“뭐하고 지냈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