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2화 〉 꾼(1).
* * *
“…그래서 애쉬 그레이필드가 악마들을 다 잡고 있다는 말인가?”
“예, 그렇습니다.”
엘라도 왕국, 태양신 교단 왕도 본부.
교황, 성녀, 성자, 추기경들, 교단 최고위 간부들만 참석하는 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곳에는 배경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낯선 것도 모자라 이질적인 인물 하나가 앉아있다.
애쉬 그레이필드 담당으로 붙어있는 텔레포트 마법사, 에릭이었다.
‘왜, 왜 내가 이곳에….’
에릭이 한 것이라곤 애쉬 곁에 붙어서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한 것밖에 없다.
애쉬가 저지르고 다니는 일들을 하나하나 보고하고, 필요할 때 필요한 곳으로 옮겨주는 것이 그의 역할이었다.
평소 검소하게 사는 편이라서 부정을 저지르지도 않았다.
그런 그가 교단 왕도 본부 회의실에서, 교단 주요 인물들과 면담을 하고 있다.
“에릭 님, 눈으로 직접 보고 들은 것들을 꾸밈없이 보고한 것이 맞나요?”
“예, 옙. 맞습니다, 성녀님.”
“고개 드세요, 에릭 님. 저희는 에릭 님을 꾸짖으려 소환한 것이 아니에요. 믿을 수 없는 보고가 올라와서, 확인을 위해서 부른 것이랍니다.”
인자한 성녀의 말에, 에릭은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고개를 들었다.
사랑이나 애정 따위가 아니었다.
태양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그녀에 대한 존경, 경외, 경탄의 감정을 품은 것이다.
“애쉬 그레이필드, 용사님이 악마를 죄다 소멸시키고 계신다. 최근 사흘 동안 잡은 악마가 몇 마리라고 했지?”
“일곱입니다, 교황님.”
“어마어마하시군. 모든 용사가 해야 할 일을 애쉬 그레이필드, 혼자서 해내고 있어.”
교황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어디서 이런 용사가 나타난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활동 흔적이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이번에 아카데미를 수료한 용사인 것 같습니다.”
교단은 항상 용사 아카데미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애쉬의 기수도 당연히, 살펴봤다.
‘루크, 루크 세인트세이버. 그 소년이 가장 뛰어났지.’
교단의 관심은 루크에게로 쏠렸다.
나머지에게는 괜찮은 지원조차 되질 않았다.
한정된 자원을 될 성 부른 떡잎에게 몰아주는 것은, 지극히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애쉬는 아카데미에서 자신의 무력을 보여주지 않았다.
애쉬 그레이필드는 성적도 저조하고 특출하지 않은 용사 중 하나였다.
당연히, 교단의 관심 밖이었다.
추기경들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천사의 피를 이은 용사라고 합니다.”
“천사의 피라 하면?”
“천계 측에서 척살을 요구한 빅터 그레이필드의 딸입니다. 천사가 파견되기 전에, 그녀를 죽였다고 보고가 된…. 기록이 있습니다.”
“허허…. 그런데 지금 멀쩡히 살아 있잖은가.”
교황은 설명해보라는 듯 추기경을 바라봤다.
추기경은 침음을 흘리며, 진실을 고했다.
“…그 당시, 임무를 받은 성기사단장이…. 제3성기사단장, 아돌프인데…. 그가 임무 완수 보고를 올렸습니다만….”
“됐다. 그 이상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
교황이 혀를 끌끌 차며 추기경의 말을 끊었다.
“제3성기사단장 아돌프는 어디에 있지?”
“…만년설산의 마경수호를 책임지고 있습니다. 제3성기사단의 의무복무 시기라….”
추기경이 식은땀을 흘리며 대답했다.
그의 부하라서, 은연중에 옹호를 하고 있었다.
교황은 그런 추기경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사람을 꿰뚫어보는 듯한 교황의 시선에, 추기경의 몸이 바들바들 떨리기 시작했다.
“…그의 안일한 태도에 감사해야겠군. 천계의 의뢰를 대충 수행해준 덕분에, 대륙의 평화를 손쉽게 되찾을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야.”
제3성기사단장 아돌프가 일처리를 대충 끝맺었다.
그 결과, 애쉬 그레이필드가 살아남았다.
살아남은 용사는 스스로 천사의 힘을 각성했다.
성검으로, 악마들을 다 죽이고 다니는 중이다.
“얼마나 좋은가. 매번 흑마술사들과 악마들에게 농락만 당하던 우리가 놈들을 먼저 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애쉬 그레이필드가 힘내주면…. 성기사단이 다치지 않아도 돼. 더 이상 괴롭게 죽는 사람들도 적어져. 우리 교단은 그녀를 적극 지원하는 것이 맞아.”
마계, 중간계, 천계.
각 계(?)는 고립되어 있는 공간이다.
악마는 마계에서 살아가고, 인간은 중간계에서 살아가고, 천사는 천계에서 살아간다.
그것이 당연한 섭리였다.
악마가 배척받는 이유는 그 섭리를 무시하고 중간계에 발을 들이밀기 때문이다.
중간계가 침식당하는 중에도, 천계는 중간계를 돕지 않았다.
그 정도로 철저하게 섭리를 지켰다.
그러나, 한 천사의 일탈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몰래 중간계로 내려가 사랑을 나누고 아이를 낳은 천사.
기적에 가까운 확률을 뚫고 태어난 아이.
천사의 흔적을 발견한 것은 아이가 소녀가 된 다음의 이야기였다.
“천계는 우리의 손을 빌렸어. 섭리에서 벗어난 천사 그리고 실수를 지우기 위해서….”
간섭을 최소화하기 위한 일인데, 그것이 아이러니하게도 일을 크게 키우는 원인이 되었다.
“보고는 어떻게 되었나? 천사는 발견을 했다고?”
“천사는 아이를 낳으면서 죽었다고 합니다. 천사의 시신을 직접 본 것은 아니지만, 그 유산인 광륜을 보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3기사단장 아돌프의 보고에?”
“…예.”
천사는 죽으면서 광륜을 남긴다.
빛을 잃은 고리, 천사의 증표였다.
“참 절묘하지 않은가?”
“어떤 부분에서 말입니까?”
교황은 이 상황이 즐거웠다.
“분명 천계는 아돌프의 실수를 알고 있었을 거다. 애쉬 그레이필드를 놓쳤다고,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러나 교단을 재촉하지 않았어. 자신들의 실수가 버젓이 살아가고 있는데, 방치해뒀단 말이지.”
교단은 태양신을 따른다.
그것이 곧, 천계에 복종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태양신이 천계에 있을 뿐, 태양신과 천계는 별개의 존재이고 공간이었다.
추기경들이 교황을 빤히 바라봤다.
교황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다.
“그 말씀은…?”
“천계가 애쉬 그레이필드를 살려둔 것, 다 이 순간을 위해서인 것이다.”
이유가 있어서 살려두었다.
그렇게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 이유에 가까운 상황들이 실현되었다.
악마를 베어내고 중간계에 평화를 가져오려 하고 있다.
그것도 천사의 힘을 적극 활용해서.
“애쉬 그레이필드는 천사의 힘을 일찍이 깨달았다. 아무리 섭리를 지키고자 하는 천계라 하여도, 자신이 하프엔젤이라는 것을 자각한 동족을 벨 수는 없는 노릇….”
“그래서 살려두었다는…?”
교황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망상에 가까운 이야기꽃이었다.
“상황이 절묘하게 어우러졌다. 아마도, 아돌프가 애쉬 그레이필드 앞에 당도했을 때, 천사의 피를 각성했을 거다.”
“그 시점이라면, 천계가 따로 말을 전달할 수가 없습니다.”
“음. 그 위기를 자력으로 탈출한 애쉬 그레이필드. 아돌프는 애쉬의 시신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고, 그 결과 중간계는 평화에 가까워졌다. 어쩌면 태양신께서는 모든 것을 알고 계셨을지도 모를 일이다.”
“아아…!”
추기경들은 손을 모으고 기도를 올렸다.
짧은 기도에, 신성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에릭은 그 선명한 온기에 감동했다.
눈물이 찔끔 맺혔다.
교황이 성자를 바라본다.
“천계에서는 따로 말이 없나, 성자여?”
“…….”
교황은 성자를 향해 넌지시 물었다.
자신의 생각이 맞는 것인지, 애쉬의 행적을 천계에서도 주시하고 있는지, 교단이 잘하고 있는 것인지….
애쉬에 대한 처우를 잘 하고 있는지.
아무래도 천사의 딸이다 보니, 교단 측에서 독단으로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성자가 허공을 주시한다.
마계와 천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성자는 중간계의 귀중한 인재였다.
“아무 말도 없습니다. 애쉬 용사에 대해서 완전히 손을 뗀 분위기입니다.”
“그런가? 그렇단 말이지….”
교황은 턱을 쓸어내리며 웃었다.
천계가 굳이 개입하지 않는다면, 교단은 용사에게 힘을 빌려주면 된다.
머리 아프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마계 정화를 위해 힘쓸 뿐이다.
“애쉬 그레이필드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지원해라! 용사가 악마 토벌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서포팅하란 말이야. 그것이 곧 태양신의 의지를 떨치는 것이고, 이 세상을 온기로 감싸는 일이다!”
“예!”
“그래서 말인데, 에릭!”
“예, 교황님!”
에릭이 무릎을 꿇었다.
태양신을 믿는 에릭에게, 교황은 태양신 다음으로 대단한 존재다.
태양신에 대한 신앙이 굳건할수록 그것이 신성력으로 표출되니까.
교황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애쉬 그레이필드가 관심 있어 하는 것이 있는가? 열심히 해달라는 의미에서 선물을 보내고 싶은데, 교단 본부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정되어 있어. 쯧.”
“어….”
에릭은 머릿속을 뒤적였다.
애쉬가 받으면 좋아할 선물 리스트를 쭉 나열했다.
‘…용사님이 좋아하는 것….’
흑마술사 비앙카를 죽일 수 있는 방법.
아니면 강아진의 정력에 좋은 약초나 장비.
“애쉬 그레이필드에 대한 보고서에는 그녀가 미래에 평온한 가정을 원한다고 적혀 있는데.”
“예. 강아진이란 남자와 함께 조용한 곳에서 가정을 꾸리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는 되도록 많이 낳는 방향으로….”
“종족이 다르면 임신이 매우 힘든 것으로 안다. 하프엔젤이라서 퓨어엔젤보다는 수월하겠지만, 아마 쉽지 않은 일일 텐데.”
“매일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애쉬의 골반을 잡고서, 힘껏 치대고 있는 강아진의 엉덩이를 본 것만 수차례다.
툭하면 애쉬의 엉덩이에 대고 성기를 문지르고 있었다.
에릭이 보든 말든,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커플이었다.
에릭도 그들의 애정행각에 이미 적응을 했다.
‘갑자기 흑마술사가 추가되었지….’
흑마술사는 흑마술사답게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
강아진의 뒷구멍에 이상한 것을 쑤셔 박아댔다.
그들이 용사 일행만 아니었다면, 에릭은 그들을 이단으로 신고했을 것이다.
애쉬의 성격상, 비앙카와 공생이 가능할 거라곤….
에릭으로서는 생각지도 못했다.
‘특히….’
강아진의 엉덩이를 비앙카에게 내어주고, 그의 연인인 애쉬는 강아진과 키스만 나누는 기괴한 관계….
에릭의 뇌리에 꽂혀 잊히질 않았다.
“남자 정력에 좋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좋아하실 겁니다.”
“…남자친구를 알뜰살뜰 아끼나보군. 하지만 조심해줬으면 좋겠어. 혹시라도 임신을 했다가는, 마계 정화 계획에 차질이 생길 테니….”
교황은 애쉬와 강아진의 관계를 응원했다.
“모든 일이 끝나고 난 이후에, 아이를 만드는 것이…. 흠, 교단에 괜찮은 성유물이 있다. ‘태양의 약속’을 가지고 와라.”
“그, 그것을 말입니까…? ‘태양의 약속’은 최, 최후에 최후까지 아껴야 할 성유물이 아닙니까?”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면 어떻게 하나, 추기경. 단순한 비유적인 표현이잖아.”
교황이 혀를 끌끌 찼다.
“효율의 문제야, 효율. ‘태양의 약속’을 아껴서 나중에 사용하나, 지금 애쉬 그레이필드에게 선물하고 그녀의 의욕을 증진시키나, 어느 쪽이 더 화끈한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나는 후자라고 생각하네.”
“…….”
교황은 가끔 꿈을 통해 미래를 단편적으로 볼 수 있다.
때문에 성유물을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훗날 악마들의 침략, 마계 침식을 대비하기 위해서.
최근에 꿈을 꾸지 못해 미래를 보지는 못했지만, ‘태양의 약속’ 정도는 애쉬에게 넘겨도 괜찮을 것 같았다.
최근 그녀가 잡은 악마만 열에 가까운 상황이니까.
오히려 안 주고 아끼는 것이 더 이상한 수준이었다.
“애쉬 그레이필드 본인도, 악마가 판을 치고 다니는 이 상황이 썩 달갑지 않을 거야. 아이를 낳고 키우기에는 너무 불안하지 않은가. 내가 용사였다면, 최대한 빨리 해치우고 싶을 것 같군. ‘태양의 약속’은 그 의욕을 돋우어줄 거다.”
교황은 자신의 판단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나저나…. 애쉬 그레이필드는 악마를 찾아다니는 수준이군. 마계로 넘어갈 수 있는 힘이라도 있는 건가?”
“…….”
교황의 중얼거림에, 에릭은 이유 모를 죄책감을 느꼈다.
용사 애쉬가 흑마술사 비앙카와 협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고하지 않은 상태라서, 교황의 말에 제 발을 저렸다.
가슴이 콕콕 찔렸다.
“마계로 넘어가서 악마를 죽일 수 있다니, 대단한 게 아닙니까?”
“하지만 섭리를 거부하는 일이야. 천계에서 좋게 볼 것 같지가 않아.”
“그런데 천계에서는 아무런 말도 없잖습니까. 오히려 응원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가?”
교황과 추기경들이 떠들어댔다.
회의라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애쉬에 대한 정보였다.
중간계에서 활동하는 수많은 용사들을 다 데리고 와도, 애쉬 하나에 못 미치는 상황이라 그렇다.
“그러면 에릭, 자네가 ‘태양의 약속’을 들고 애쉬 그레이필드에게 넘겨주게.”
“…성유물인데 교황님께서 직접 가시는 건…?”
추기경이 은근슬쩍 권유를 해봤으나, 교황은 고개를 저었다.
“애쉬 그레이필드, 용사답게 의무를 행하고 있으나 그 성질이 포악하고 험하다고 들었네. 내가 갔다가는 괜히 욕을 들을 지도 몰라.”
애쉬에 대한 보고에는 대부분 그녀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로 가득했다.
요약하자면, 이 년은 개씨발좆같은년입니다.
하지만 악마를 존나 잘 죽이는 용사입니다.
단 두 줄로 애쉬에 대한 보고서를 요약할 수 있다.
그 정도로 내용이 뻔했다.
교황도 그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만나기가 싫었다.
“각자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는 거다! 에릭! 애쉬 그레이필드는 네 담당이다! 네가 성유물을 전하도록!”
교황은 원탁을 콰앙 두들기며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보며, 추기경들은 생각했다.
‘그냥 무서운 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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