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화 〉 절반(4).
* * *
비앙카가 이곳에는 웬일일까.
왜 개목걸이를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나는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애쉬를 바라봤다.
이 모든 일의 원인은 애쉬일 테니까.
“저 년이 복수를 도와달래. 대신 악마들을 빠르게 처리해주겠다고 하네?”
“그거랑 여기에 온 거랑 무슨 연관이 있는 건지?”
“특별 관리인 거지. 이 년 쪽지에 휘둘릴 바에, 데리고 있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애쉬는 비앙카를 흘기며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애쉬의 표정은 생각보다 온화했다.
주체하지 못할 분노나 당장 터질 듯한 화는 안 느껴졌다.
‘바라는 게 있다.’
애쉬와 비앙카, 서로 거래를 한 것 같다.
그냥 넘어갈 성격이 아닌데 이렇게 무탈하게 넘어가는 것이 이상했다.
애쉬의 눈빛이 심상치가 않았다.
“그래?”
굳이 더 물을 생각은 없었다.
애쉬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애쉬가 어련히 알아서 할까.
무슨 일이 생겨도, 어떻게든 해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크게 의문이 생기지 않았다.
나는 애쉬에게서 비앙카로 시선을 옮겼다.
비앙카는 가슴골이 훤히 드러나는 신관용 드레스 비슷한 것을 입고서,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안대를 쓰고 있는 상태라 눈이 보이지 않아 살벌하게 느껴졌다.
비앙카의 입 꼬리가 씨익 말려 올라갔다.
한 손을 달걀 쥐듯 말고, 위아래로 슉슉슉슉 흔들었다.
짓궂은 장난이라도 치듯 방긋 웃으며 말한다.
“강아진 씨, 발정은 주기적으로 풀어주고 있죠? 자칫 잘못하면 고자 될 수도 있으니까요. 제 보지 오나홀로 매일 물 빼줘야 해요.”
“아가리 닥쳐라, 비앙카.”
“아야, 아야. 강아지 씨도 아파요.”
애쉬가 비앙카의 팔을 비틀었다.
차마 꺾지는 못하고, 남사시려운 손짓은 어떻게 막아냈다.
비앙카는 제 손목을 붙잡고 있는 애쉬를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용사님, 감각 전달 할까요?”
“…….”
애쉬는 비앙카의 손을 놓아주었다.
비앙카가 손목 아프다는 듯 울상을 지었다.
“아파. 이 고통을 어떻게 해야 할까?”
연극이라도 하는 것처럼 과장된 톤으로 말을 내뱉었다.
애쉬에게 들으라는 듯 손을 파르르 떨어댔다.
애쉬의 이마에 십자 혈관이 콱 도드라진 것 같다면, 나만의 착각일까.
비앙카는 애쉬를 약 올리고 있었다.
영혼공유 술식을 믿고, 세상에서 가장 얄밉게 도발을 해댔다.
효과는 확실했다.
애쉬는 비앙카의 말 같지도 않은 말들에 부들거렸다.
지나치다고 생각될 정도로 반응이 격했다.
“음음, 우리 강아지 씨에게 호오, 라도 받아야겠어요. 용사님 때문에 아픈 거니까요.”
“비앙카!”
애쉬가 비앙카를 잡아서 제압했다.
박력있는 움직임에, 비앙카는 꼼짝없이 붙잡혔다.
“아.”
“이렇게 잡으면, 강아지도 안 아프고 아무 것도 못하지?”
비앙카의 양팔이 뒤로 꺾였다.
하지만 아플 정도는 아니었다.
손목들이 등허리에 고정되어 있었다.
“아예 이렇게 된 구속복을 구해와야겠어. 마기를 봉인하는 것으로….”
“교단에서 제작해드리겠습니다. 교단에 유능한 인재들이 많이 있습니다.”
“…….”
이때다 싶어 나서는 텔레포트 마법사.
애쉬는 그를 향해 미심쩍은 눈빛을 보냈다.
썩 믿지 않는 듯했다.
원작에서는 흑마술사를 구속하는 도구가 없었다.
만들 이유를 못 느꼈다.
당장 죽이지 않으면, 어떤 일을 저지를지 몰라서 일단 죽이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랐다.
용사 진영에 협력하겠다고 나선 흑마술사가 생겼다.
그녀에 대한 안전장치가 필요해졌다.
“…에이, 구속은 좀 아니죠. 제가 뭘 했다고 이 자세로 움직이지도 못하게 해요.”
“네 존재 자체가 거슬려.”
비앙카는 설마, 하는 목소리로 고개를 들었다.
애쉬는 그것조차 용납하지 않았다.
“강아지랑 고통을 공유해? 고통 안 느끼게 해줄게. 아예 못 움직이도록….”
“그렇게 해도, 그 답답한 감각을 공유할 수 있어요. 말했잖아요. 영혼공유라고.”
비앙카가 낄낄거렸다.
내 영혼을 저당잡힌 이상, 애쉬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영혼공유를 어떻게 해야지.’
원작에서는 영혼공유라는 술식이 나오지 않는다.
주인공 용사 루크에게 쓸 만한 기술이 아니었다.
영혼공유, 양날의 검.
상대와 나의 생명이 묶이는 것이다.
흑마술사 입장에서, 굳이 상대 용사에게 걸 이유가 없다.
상대가 죽으면 자신도 죽는다.
내가 죽으면 비앙카도 죽는다.
지금은 비앙카가 내 목숨 가지고 애쉬를 괴롭히고 있지만, 실제로는 비앙카도 내 몸뚱어리를 지켜야 한다.
애쉬가 부재중일 때, 누구보다 먼저 나를 안고 도망쳐야 하는 입장인 것이다.
‘그런 상황이 올 것 같지는 않은데.’
영혼공유란 그런 의미다.
비앙카는, 자신이 복수를 끝내기 전까지 애쉬가 나를 지켜낼 것이라고 확신하며, 내게 영혼공유 술식을 걸었다.
“하아.”
애쉬는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을 감추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비앙카를 풀어주고 노려본다.
살기를 흘려보냈다.
비앙카는 어깨를 으쓱였다.
애쉬의 반응을 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강아지 씨, 여기 호오 해주세요.”
뻔뻔하게 내게 다가와, 제 손목을 내밀 뿐이었다.
나는 애쉬의 눈치를 살폈다.
나 같아도 빡칠 상황이기에, 움직이지 않고 기다렸다.
“아, 악마…!”
텔레포트 마법사가 기겁을 하며 한 걸음 물러났다.
애쉬의 얼굴이 그만큼 살벌했다.
악마보다 더 악마 같았다.
“빨리요.”
비앙카가 내 눈 앞에 손을 흔들었다.
비앙카의 뒤로, 애쉬의 모습이 보였다.
이걸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깐만.’
애쉬는 나 때문에 비앙카를 어찌 할 수 없다고 해도.
‘그러면 나는?’
영혼공유 술식에 영향을 받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다.
비앙카 또한 내 죽음에 영향을 받는다.
애쉬는 나를 인질로 잡은 비앙카보다 을의 위치에 있지만, 나는 아니다.
나는 비앙카에게 휘둘릴 이유가 없었다.
“…꺼져, 시발년아.”
비앙카를 향해 법규를 날려준다.
호오, 는 무슨 얼어죽을 호오.
비앙카가 내게 했던 짓을 떠올려라.
처녀막을 따먹게 해준 것은 고맙지만, 내 뒷구멍을 처참하게 유린했다.
내 동정을 빼앗아갔다.
남성으로서 치욕적인 경험이었다.
내 뒷구멍을 들락거리는 이물감….
아직 잊지 않았다.
“…강아진 씨?”
비앙카가 멍청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네가 그러면 안 될 텐데, 그런 눈빛이었다.
거만하기 짝이 없는 년.
그에 비해 애쉬는 활짝 웃음꽃을 피웠다.
내가 반항을 선택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 같다.
“영혼공유. 그거 나랑 엮여 있잖아. 그지?”
“음음, 강아지 씨랑 연결되어 있지. 그러니까 반항하면 안 좋아.”
“내가 죽으면 너도 죽는데?”
“…영혼공유 말고 맹약도 있다는 걸 잊은 거야?”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머금는 비앙카.
그제야 머릿속에, 다른 제약도 걸려 있다는 것이 스쳤다.
일주일 간 애쉬와 지내면서 까맣게 잊고 있었다.
“…….”
뒤쪽에 서있는 애쉬가, 불길한 분위기를 금방 눈치 챘다.
표정이 싸늘하게 굳어 갔다.
비앙카를 통제할 수 없으니, 불안감이 겉으로 드러났다.
“이거 안 되겠네. 우리 강아지도, 버릇이 너무 없어졌어. 용사님은 용사님이니까 이해를 한다지만, 강아지는 그러면 안 된단 말이야.”
심장에 새겨진 맹약….
맹약?
[맹약(SSS)]
마기(??)로 이루어진 결속.
위치 『심장』
맹약에 대한 정보를 띄웠다.
생각해보니까, 내 몸을 옥죄던 고통들은 맹약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다.
비앙카가 만들어낸 개목걸이….
맹약은 비앙카에게 순종했을 때, 마기를 환원해 내 성장을 도모해주는 시스템의 역할이었다.
나를 해하는 내용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역시….’
비앙카는 내게 구라를 쳤다.
블러핑을 날리고 위협을 가했다.
그것은 곧, 비앙카가 내 반항을 막을 수 없다는 의미였다.
비앙카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내가 딱히 반응을 보이지 않자, 더 거세게 흔들렸다.
“뭐. 어쩌라고.”
비앙카를 향해 턱을 까딱거렸다.
최대한 얍삽하게 보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애쉬의 표정이 밝아졌다.
다시 기세가 이쪽으로 넘어왔다.
“…….”
비앙카가 인상을 찡그렸다.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지 못해, 짜증을 내는 것 같았다.
“아.”
텔레포트도 발동이 안 된다.
물러나려다가 실패했다.
“어딜 가려고?”
애쉬가 비앙카를 붙잡았다.
비앙카와 진솔한 대화 시간이 생겼다.
애쉬는 비앙카를 협상 테이블에 앉혔다.
당장 대가리를 찍어 버리고 싶을 텐데, 용케도 참고 있었다.
“이건 실수네. 우리 강아지가 간파해낼 줄은 몰랐어.”
“우리 강아지라고 부르지 마라. 입 찢어 버린다.”
애쉬가 으르렁거렸다.
비앙카는 애쉬의 경고를 들은 체도 안 했다.
“확실히, 이런 점이 영혼공유의 단점이야. 실패할 가능성이 높은 술식을, 내 순결로 겨우 발동시킨 건데…. 쯥. 반만 성공한 느낌이잖아.”
비앙카가 혀를 차며, 제 실수를 인정했다.
애쉬 앞에서는 갑의 행세를 해도, 내 앞에서는 그러지 않겠다는 말이었다.
“용사님. 눈 좀 곱게 뜨고, 우리 계획을 짜봐요. 용사님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서라도, 빨리 협력하고 일을 진행하는 편이 낫잖아요.”
“…….”
“제가 임신을 도와드릴 수 있어요. 필요한 재료도 모으고 하다 보면, 시간이 부족할 거예요. 이렇게 다투면서 낭비할 시간이…. 아깝지 않으세요?”
테이블에 앉은 비앙카는 태연하게 협상을 주도했다.
“오늘부터 하루에 한 놈씩 소환하죠. 목표는 절반을 정리하는 것.”
“마계 72악마의 절반?”
“예. 그러면 흑마술사들도 주춤할 거예요. 악마들이 소환에 응하지 않을 테니,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하니까요.”
“…….”
애쉬는 잠깐 고민하는 척 했다.
악마를 사냥할 수 있게 도와준다는데, 무슨 고민을 하는 걸까.
“마기는? 충분해?”
“이미 잔뜩 모았어요. 용사님 덕분에요.”
“…뭐?”
“잠깐 실례할게요.”
비앙카가 애쉬의 머리 위로 팔을 뻗었다.
애쉬에게서 시꺼먼 마기가 뽑아져 나왔다.
“강아지 씨를 건드릴 때마다 부정적인 감정이 팍팍 나와요.”
비앙카는 눈을 지그시 감고 마기를 느끼기 시작했다.
“어우, 일주일 동안 쌓인 게…. 장난 아니네요. 제 보지 오나홀 효과가 죽여줘요.”
“…너 이 개새끼가….”
“이 정도면 악마 일곱은 소환할 수 있어요. 이참에 보지 오나홀이 아니라 진짜 보지로 발정을 처리할까요? 그러면 하루에 두 마리씩도 가능할 것 같은데.”
“씨발년아. 선이라는 게 있다.”
“농담이에요.”
비앙카의 손바닥 위에 마기 결정이 차곡차곡 쌓였다.
그 양이 생각보다 어마어마 했다.
* * *